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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안시성 전투로 보여주는 양만춘의 전략과 전술 <안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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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안시성>


영화 <안시성> 포스터. ⓒNEW



올해 '추석 영화' 중 그나마 성공한 작품은 <나쁜 녀석들: 더 무비>다. 전통의 추석 영화였던 <타짜> 시리즈를 제치고 이뤄낸 성과라 하겠지만, 큰 성공이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추이는 작년 추석이 특이 심했다. 유례없는 동시개봉 <명당> <협상> <안시성> 3파전에 한 주 전에 개봉했던 <물괴>까지 4개 영화가 맞붙어 제로섬 게임을 하며 단 한 편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안시성>이 엄청난 제작비와 4편 중 그나마 가장 좋은 평가를 받으며 패자와 다름 없는 승자를 기록했다. 겉으론 나머지 3편의 흥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540여 만 명을 불러들였지만, 손익분기점이 580만 명이기에 성공 아닌 실패에 가까웠다. 물론, 극장 수익 말고 다른 수익 채널을 통해 손해는 보지 않았겠지만 추석 대전의 명실상부한 승자라고 하기에 민망했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안시성>은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다. 역대 한국 영화 제작비 순위 10위 안에 들 게 자명한 200억여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하는데, 그에 걸맞는 장대하고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전투씬을 선사했다. 달러로 환산하면 2000만 달러가 채 되지 않을 텐데, 할리우드에서 이런 독립영화 제작비 정도의 돈을 들여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면 절대 <안시성> 정도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안시성과 양만춘


영화는 제목 '안시성'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안시성 전투'를 다룬다. 645년 당 태종은 2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해 파죽지세로 주요 성들을 빼았는다. 이에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15만 명으로 맞붙게 하지만 대패하고 만다. 연개소문은 평양성으로 후퇴하며 당 태종의 다음 목표인 안시성 성주 양만춘을 죽이라며 전투에서 살아남은 학도 병사 사물을 비밀리에 파견한다. 사물은 안시성 출신이기도 했다.


사물은 양만춘 암살을 호시탐탐 노리지만, 정작 양만춘은 다 알고 있는 듯 유유자적하며 대전투가 코앞인데도 별다른 준비 없이 성민들, 휘하 군인들과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며 여유 있게 지낼 뿐이다. 사물은 의아해하는 한편 양만춘의 인품에 고뇌가 늘어갈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안시성을 지켜낼 수 있는가? 정신승리에 불과한 게 아닐까? 누가 보아도 비교가 안 되는 압도적 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곧 당 태종의 20만 대군이 안시성에 당도한다. 양만춘은 불과 5천 명에 불과한 이들과 함께 대항한다. 아무리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성에서 머나먼 길을 떠나온 군대에 맞서 확고하고 빈틈없이 완벽한 전략과 전술을 쓴다고 해도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당 태종은 큰 돌을 날리고 사다리로 성벽을 오르며 수레로 성문을 부수면서 돌파하려 하고, 성벽보다 훨씬 높고 큰 사다리 수레를 이용하며, 토산을 지어 안시성을 공략한다. 이에 양만춘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결국 평양성에서 연개소문이 도와주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것이다. 


한국 블록버스터 시대극


영화 <안시성>은 당 태종 20만 대군의 세 번에 걸친 대규모 공격을 버텨내는 양만춘의 안시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 이 영화를 보는 유일한 이유가 전투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전투씬들 자체가 하나하나의 완벽한 스타일을 구축해 긍정적으로 다가왔을 반면, 누군가에겐 전투씬이 아닌 영화 자체를 보러 왔으며 전투씬들조차 숱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봐왔던 장면들의 표절에 가까운 짜깁기에 불과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 블록버스터 시대극의 또 하나의 전형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전쟁 영화에 항상 애매하게 등장하는 드라마를 이 영화는 최소하하면서, 차라리 애매하게 처리할 게 아니라 아예 무(無)에 가깝게 처리하고자 했다. 하여 <안시성>에는 양만춘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캐릭터들이 도구로 사용될 뿐 캐릭터성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걸 띄고 있지 않다. 


그나마 양만춘에게 입체적 캐릭터성을 부여하고자 했는데, 그를 단순히 안시성의 성주이자 군인으로서의 장군이 아닌 '지도자'로서의 상(像)을 이식시킨 것이다. 지도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생각이자 행동이지만 사실 아무도 하지 않는, 백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무리로 대하지 않고 개개인으로 대하는 것 말이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2013년 <변호인>, 2014년 <명량>이 보여준 지도자상과 맞닿아 있다. 


전투씬의 전략과 전술


뭐니뭐니 해도 <안시성>을 보는 건 전투씬의 전략과 전술이다.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안시성 전투는 거대 전쟁의 일부 전투일 테니, 전략보단 전술이 볼 만한 요소에 해당한다 하겠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당 태종이 절대 질 수 없는 불패 전술로 안시성을 밀어붙이면, 양만춘은 그에 정확히 상성되는 전략을 펼쳐 물리치는 것이다. 


마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의 전투 장면을 보는 듯 전투씬 하나하나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를 이루는 드라마의 개연성은 찾아볼 수 없고 찾아볼 이유도 없으며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지만, 영화를 이루는 전투씬 속 개연성은 정확하다 못해 정밀하다. 영화적 상상력과 과잉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여러 모로 무리 없이 감탄하며 즐길 수 있다. 


이런 류의 시대극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1년 만에 <봉오동 전투>가 나왔다. 문제는 이 영화는 전투 전략에 상당히 힘을 쏟은 만큼 애매할 게 뻔 한 드라마에도 힘을 쏟은 것이다. 더구나 그나마 볼 만한 전투씬도 장엄과 장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제2의 <안시성>이 나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엄청난 제작비를 기본으로, 전쟁과 전투에 힘을 쏟는 한편 다른 영화적 요소들을 배제하거나 전쟁과 전투만큼 힘을 쏟아야 하니 말이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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