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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라이언 고슬링이 내보이는, 잔혹한 본능의 폭발과 액션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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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드라이브>


영화 <드라이브> 포스터. ⓒ판시네마



오프닝으로 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영화들이 있다.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봐도 비교적 예전 것들엔 <007> 시리즈, <저수지의 개들>, <스크림>, <업> 등이 있고 비교적 최신 것들엔 <라라랜드>, <베이비 드라이버> 등이 있다. 모아 놓으니 하나같이 전체적 작품성도 빼어난 축에 속하는 작품들이라는 게 신기하다. 더불어 개성이 뚜렷해 꼿꼿한 듯하면서도 해당 장르를 선도하며 회자가 되는 작품들인 것도 눈에 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한 편 더 있으니, 덴마크 출신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분한 드라이버가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주며 LA의 색채감 있는 한밤중을 강렬하고 한편으론 차갑게 질주하는 장장 12분간의 오프닝이 인상적이다 못해 환상적이다. 당장이라도 도시의 밤거리를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멋진 시퀀스이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20년도 더 된 데뷔작 <푸셔>를 통해서도 감각적인 오프닝을 선보였는데,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색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자체로 완성된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영화 세계에 전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그만의 절대적 분위기와 색감 스타일은 최신작(2016년작) <네온 데몬>까지 이어진다. 2010년대 들어서 그의 영화들은 모두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드라이브>로 감독상을 받았다. 명백히 할리우드 액션 영화임에도 칸 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드라이버의 잔혹한 본능이 향하는 곳


미국 LA, 밤에는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주며 낮에는 카센터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한편 스턴트맨으로도 활약하는 이름 없는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 분). 그에게 선과 악은 무의미하고 오직 차를 운전하는 '드라이버'로서의 삶만이 의미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띈 여인 아이린, 그녀에겐 아이도 있지만 드라이버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온다. 


아이린도 그에게 끌린 듯,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감옥에 가 있던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가 돌아오자 행복한 시간은 끝나고 만다. 쉽게 아이린 곁을 떠나지 못하는 드라이버, 우연히 스탠다드의 일에 휘말린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의 악연으로 협박 받고 있었던 것,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스탠다드뿐만 아니라 아이린과 아이한테도 가닿을 것이었다. 드라이버는 밤에 하던 일을 스탠다드와 함께 하기로 한다. 


별 것 아닐 줄 알았던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스탠다드가 죽고 만다. 드라이버는 위협을 받고 아이린과 아이도 위협을 받을 걸 깨닫자 잔혹한 본능을 폭발시킨다. 그 배후에 자신을 경주 드라이버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버니와 니노 일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거기엔 드라이버의 실력을 알아준 카센터 주인 섀넌도 껴 있었으니 그도 위험할 것이었다. 버니와 니노 일당은 드라이버와 그 주위 사람들을 노리고, 드라이버의 잔혹한 본능은 그들로 향한다. 그 끝은 어떤 식으로든 무자비할 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의 감정 한점 폭발과 충격 액션


<드라이브>는 할리우드 액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이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한 명백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이지만, 여타 동 장르의 영화들과 완연히 결을 달리한다. 기본적 스토리 뼈대는 별다를 게 없다. 폭력 범죄에 깊숙이 발을 담궜을 게 분명한 한 남자가 새로운 의미가 된 사랑하는 여자를 향해 앞뒤 볼 것 없이 직진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도 앞뒤가 없지만 그걸 표현하는 영화도 앞뒤가 없다. 범죄영화인 만큼 주를 이룰 수밖에 없을 액션은 실로 '쌈박하다'. 주인공이 이름도 없이 살아가며 오직 드라이브만 생각하다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여인만 생각하듯,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 따윈 거들떠 보지도 않고 핵심만 노린다. 주인공-영화-액션이 한 몸으로 움직인다. 감정이 썩이지 않은 채 계속되는 투박한 타격감이 두렵게 다가온다. 그 감정 없는 폭력의 강도와 수위는 충분히 충격적일 만하다.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복잡하면서도 다층적인 감정이 담긴 배우가 내보이는 '감정 없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의 액션일 테다. 그에겐 또래 할리우드 스타들에겐 없는 감정의 방이 있는 것 같다. 당연히 그가 맡은 배역은 그중 한 가지 내지 몇 가지를 내보인다. 하지만 <드라이버>의 드라이버는 그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기에 외려 그 안에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와중에 한 여인에게로 생긴 감정의 폭발이 본능의 폭발로 이어져 누구도 말릴 수 없고 누구도 형용할 수 없는 색채를 띄게 된다. 영화 외적의 '감정의 방'을 영화 내적의 '감정 없음'으로 응축시키곤 다시 '감정의 한점 폭발'로 내보이는 것이다. 


스타일리시, 그리고 '개구리와 전갈'


영화의 스타일리시함을 설명하는 데 색감과 함께 OST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둘 다 오프닝에서 완벽에 가깝게 내보였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종횡무진한다. 영화의 격을 높이고 결을 달리하게 하고 다른 세계 또는 차원으로 끌고가게 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여, 영화를 보다 보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전체적으로 미래지향적 세련됨이 아닌 고전복고풍 신선함이 스타일리시의 핵심이라는 게 신기한 한편 의아하다면 의아할 지점이다. 햇빛을 한껏 받은 한낮의 포근함과 네온불빛이 반사되는 한밤의 몽환적임이 대비를 이루는 스타일은 고전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는 영화에서 주인공 드라이버의 삶과 성향을 반추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편, 영화 중후반 드라이버의 폭발이 끝을 향해 갈 때 대사가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로, 개구리가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주는데 건너는 중에 전갈이 개구리에게 독침을 쏴서 함께 가라앉는다. 전갈은 '그것이 내 본성'이라고 이유를 댄다. 드라이버가 즐겨 입는 재킷 뒤에 전갈이 그려진 것도 그렇고 본성이 폭발해 무차별 폭력의 화신이 된 것도 그렇고 그가 전갈인 듯한대, 그는 한편 범죄자들을 태우고 도망치는 일도 하는 만큼 개구리라고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드라이버가 전갈이든 개구리이든,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에 따르면 그와 함께 있는 이가 파멸을 면치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온 아이린과 그녀의 아이 곁에 계속 있어야 하는가 떠나야 하는가. 이 아이러니까지 영화가 추구하는 주요 지점은 아닐 테지만, 보는 이로써는 그 이면과 이후까지 생각하게 된다. <드라이브>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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