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된 리뷰

쿠엔틴 타란티노의 걸출한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

반응형



[오래된 리뷰] <저수지의 개들>


영화 <저수지의 개들> 포스터. ⓒ미라맥스



2020년대를 코앞에 둔 지금,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감독들 중 1980~90년대에 걸쳐 걸출한 데뷔를 한 이들이 많다. 코엔 형제의 <블러드 심플>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90년대로 넘어가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크로노스>, 크리스토퍼 놀란의 <미행>,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 등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90년대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넘어설 데뷔작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아니, 그 영향력으로만 따진다면 전후로 그런 데뷔작이 나오긴 결코 쉽지 않다. 이 영화로 데뷔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그는 최근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까지 10여 편의 작품을 내놓았는데, 2번째 작품인 <펄프 픽션>과 함께 <저수지의 개들>을 최고작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 


물론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할 순 없는 것이, 그는 201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이후 한 작품만 연출하고 감독에서 은퇴해 책과 연극 각본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과연 이루어질지 의문이긴 하나 과연 그다운 생각이라고 본다. 여전히 막강한 파급력이 있는 '건강한' 모습으로 뒤로 물러선다면 그것 만큼 완벽한 게 어디 있겠는가. 


다이아몬드 도매상 털기, 하지만 스파이가...


쿠엔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을 만들기 전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던 영화광 점원이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실이다. 그는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건 물론 주연의 소소한 한 축으로도 활약한다. 불과 수천 만원의 소규모 독립영화로 만들 예정이었던 이 영화는, 우연이 겹쳐 예산이 10억 단위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기엔 터무니 없이 적은 예산이었지만. 


영화는 여덟 명의 사내들이 식당에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별다른 내용 없이 지나간 후, 배에 총을 맞은 미스터 오렌지를 미스터 화이트가 차에 태우고 은신처 창고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죽어가는 오렌지, 괴로워 하는 화이트, 이내 미스터 핑크가 오고 미스터 블론드가 온다. 미스터 블루와 미스터 브라운은 죽은 듯하다. 


그들은 조 캐봇과 그의 아들 에디의 수주를 받고 다이아몬드 도매상을 털고자 모인 이들이다. 혹시 잠복해 있을지 모를 경찰 스파이 때문에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게 했다. 하지만, 작업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떼로 몰려 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들로 보아선 여덟 명의 공모자들 중 스파이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일행은 창고에 모여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며 옥신각신한다. 그런가 하면 화이트, 블론드, 오렌지 순으로 어떻게 조와 에디를 만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한편, 다이아몬드 도매상을 털고 난 직후의 모습들도 볼 수 있다. 정작 중요한 듯한 작업의 순간만을 빼놓은 채 전후 사항을 다(多) 시점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분히 쿠엔틴 타란티노가 의도한 게 아닐까 싶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연출 스타일 정립


쿠엔틴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로 사실상 영화 연출 스타일을 정립했다. 이후 그가 꾸준히 보여주는 연출 스타일이 총망라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전매특허이다시피 한 잔인하고 잔혹한 폭력 위의 범죄, 뭔가 있을 것 같아서 영화 내용과 이어질 만한 게 나올 것 같아서 유심히 들어 보지만 아무 상관 없는 잡담인 게 드러나는 비속어 다분히 섞인 대사, 실명이 거론되며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다방면의 대중문화코드. 


무엇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시점과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야기가 특출나다. 서사가 있는 영화라면 왠만하면 순서대로 진행될 텐데, 이 영화는 퐁당퐁당 형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것도 아닌 것이 몇 가지 시점을 넘나드는 것도 모자라 시점 속에 가짜 이야기까지 넣는 대범함을 보였다. 우리는 그게 가짜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극중 인물들은 진짜라고 믿는 게 재밌다. 


이쯤 되면 알아차릴 수 있는 건, 그 '가짜' 이야기들은 영화에서 있으나 마나 할지 모르지만 쿠엔틴 타란티노가 전하고자 하는 게 바로 거기에 있다는 점이다. 그는 다름 아닌 그 가짜 이야기를 팔고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가짜 같은 진짜 혹은 진짜 같은 가짜에 열광한다.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와 함께 놀고 있는 거다. '내가 기가 막힌 이야기 한 편 들려줄까? 재미있을 거야.'


재미있는 이야기


우린 언제든 그가 건넨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까지 30여 년 가까이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이야기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 불러도 이상한 게 없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이야기꾼이라기보다 '영화꾼'이다. 영상이 아닌 글로만 봤으면 이 만큼의 환희를 맛보진 못했을 거다. 그는 영화를 위한, 영화에 의한, 영화를 만든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통상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강탈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예산이 부족해 찍지 못했다고도 하는데, 그는 그런 현실적인 제약을 영화적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강탈 장면의 삭제라는 선택을 했고, 대신 강렬한 캐릭터들 하나하나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도 딱히 이상하다는 걸 느끼진 못할 것이다. 우린 그가 의도한대로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놀이동산에 온듯, 우린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영화 세상에서 영화 기구를 타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 다방면의 다양한 대중문화 코드들과 쌈박하다 못해 웃기기까지 해 속이 시원해지는 비속어들이 반길 것이다. 굳이 깊이 해석하려 들지 말고 의아해하지 말고. 혹시 이상한 게 있으면 지체 없이 그에게 말하라. 그는 언제나 아주아주 심도 깊은 토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결코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안 하는 것이리라.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