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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보스턴 마라톤 테러에서 살아남은 '영웅'의 이야기 <스트롱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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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스트롱거>


영화 <스트롱거> 포스터.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2013년 4월 1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시에서는 여지없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117회 째를 맞이해 연례 마라톤 대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행사로,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가 일어난 날을 기념하는 '애국자의 날'인 매년 4월 셋째주 월요일에 열리는 만큼 진행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참가자 2만여 명 이상과 관람객 50만여 명이 손꼽아 기다린 날이었다. 


경기 시작 4시간여, 우승자가 결승점을 통과한 지 2시간여 지난 시점에 결승점 부근에서 연이어 두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대회는 중단되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단순 폭발 사고가 아닌 폭탄 테러로 규정, 곧바로 용의자 색출에 나섰다. 테러범은 테러 발발 4일 만에 붙잡혔는데, 체첸계 이민가정 출신의 형제였고 형은 검거과정에서 죽었고 동생은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테러로 3명이 사망하고, 최소 18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9.11과는 다른 성격의 테러로, 미국 사회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한 이민가정 출신의 낙오자가 저지른 비조직적 무차별적 성격을 지녔다고 보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 관련해 3년 뒤와 4년 뒤에 영화가 만들어져 나왔다. 보스턴 테러 이후 뉴욕으로 향하는 테러범을 추격하는 이야기를 담은 <페트리어트 데이>, 보스턴 테러로 두 다리를 잃고도 살아남은 '영웅' 제프 바우만의 실화를 그린 <스트롱거>가 그것들이다. 두 영화 모두 '테러'를 자양분으로 삼은 미국 우월주의, 영웅주의와는 최소한의 거리를 두고 있다. 이중 <스트롱거>는 한국에 2년 지각 개봉을 하여 새삼 소개해본다. 


테러 이후 영웅이 된 제프 바우만


보스턴 테러 이후 영웅이 된 소시민 제프 바우만. 영화 <스트롱거>의 한 장면.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프 바우만(제이크 질렌할 분)은 코스트코에서 일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에겐 세 번이나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연인 아닌 연인 에린 헐리(타티아나 마슬라니 분)가 있다. 여지없이 술집으로 향한 제프는 에린을 보고 아는 체를 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그녀는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할 생각이다. 제프는 결승점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한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 당일, 50만여 명의 관람객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시작한 지 4시간이나 지났지만 완주를 위해 열심히 결승점으로 달리는 에린, 제프는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바로 그때, 결승점 부근에서 연이어 두 번 폭발한다. 피해가 없는 이들은 근처로 피신하고, 피해를 입은 이들은 현장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에린은 무사했지만, 제프는 병원에서 깨어나보니 두 다리가 없는 상태이다. 


마취가 덜 풀린 상황에서도 제프는 기억하고 있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FBI에 알린다. 그는 테러범 검거에 크게 기여하고, 최악의 테러에서 살아왔다는 점과 함께 부각되어 보스턴의 '영웅'이 된다. 6주 후 퇴원하는 제프, 이후 그는 재활치료를 하면서 각종 행사에 불려다닌다. 엄마를 비롯, 가족들과 지인들은 제프가 영웅이 되었다는 것에 큰 만족을 보인다. 


하지만, 정작 제프는 혼자서는 볼 일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처지. 그 메울 수 없는 간극에서 괴로워한다. 에린만이 제프의 옆을 지키며 그의 모든 것을 거든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지만... 제프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는 쉽게 가실 것이 아니었다. 힘들어하는 제프와 그런 제프를 지켜보며 힘들어하는 에린.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


보스턴 스트롱


'보스턴 스트롱'의 의미. 영화 <스트롱거> 포스터.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트롱거>는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로 두 다리를 잃은 제프 바우만과 곁에서 그와 함께 모든 걸 견뎌낸 연인 에린 헐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더 강하게'라는 뜻일 제목은 테러 이후 보스턴 시의 구호였던 '보스턴 스트롱'에서 따온 걸로 보인다. 영화에서 수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다름 아닌 그 스트롱이 제프를 괴롭히는 가장 큰 압박이자 벽이자 걸림돌이었다.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두 가지를 찾아 지목하고 거기서 위안을 찾는다. '적'과 '영웅'이다. 명명백백한 적이 있을 때는 영웅에게 시선이 쏠리고, 적이 명확하지 않을 땐 적을 만들어내든 찾든 해서 어떻게든 적에게 시선이 쏠린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는 테러 4일 만에 테러범이 잡혔다. 명명백백한 적을 찾았으니 영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다. 


제프는 두 다리를 잃고서도 살아남았고 힘든 재활치료를 받으면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으며 범인 검거에 결정적 공을 세우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모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위안의 징표가 되는 '보스턴 스트롱'의 산증인인 것이다. 제프도 그 사실을 잘 안다. 모든 이들이 '영웅'으로서의 자신이라는 걸. 하지만, 실존적인 제프는 어느 날 갑자기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다. 누구보다 힘든 게 당연한대 힘든 내색을 할 수 없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으며, 그저 평범하고 싶지만 '공인'으로 행동해야 한다. 


제프로서는, 더이상 나의 삶이 나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물론, 내 인생에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못지 않게 내 인생에 나는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제프의 경우 완연히 다른 결이 아닌가. 그는 다시금 세상에 평범하게 진입해 살아가고자 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으로 나가기 전 본인과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의 세상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이 그걸 두고 보지 않거니와 주위에서 부추기는 게 문제지만. 부디 그에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 발판 마련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제이크 질렌할과 타티아나 마슬라니


완벽한 연기를 펼친 제이크 질렌할과 타티아나 마슬라니. 영화 <스트롱거> 포스터.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이크 질렌할은 특유의 푹 꺼진 눈덩이와 슬프고 공허한 눈망울 그러면서도 일면 강인한 얼굴로 제프 바우만의 테러 직후 삶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우리는 그 덕분에 제프 바우만의 영웅적인 겉모습과 실존적 고민에 휩싸인 이면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스트롱거>로 감정이입을 넘어 추체험하는 자신을 목도했다면, 모두 제이크 질렌할 덕분이겠다. 


하지만, 정작 더 눈이 가는 이는 에린 헐리로 분한 타티아나 마슬라니다. 미안함, 죄책감, 책임감, 사랑, 현실을 복잡다단하게 오가며 어떤 면에선 제프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하는 에린 헐리의 면면은, 우리로 하여금 제프 바우만과는 따로 또 같은 추체험을 하게 한다. 제프의 고민이 실존적이라면, 에린의 고민은 실제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그들을 둘러싼 제프의 가족과 지인들 나아가 보스턴 시민들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 여기의 우리들과 다를 바 없다. 누구나 크나큰 일을 직접적이기보다 간접적으로 당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우리가 보였고 보이고 있고 보일 행동은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들의 속을 들여다볼 용기도 없거니와 사실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들을 통해 그저 위안을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결은 다르지만, 작년에 넷플릭스로 제공된 <7월 22일>과 함께 보면 좋을 듯싶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 작품으로, 2011년 7월 22일 일어난 노르웨이 테러 실화를 담았다. '테러'를 주제이자 소재로 삼아 테러가 주체가 되는 많은 영화들과 다르게, 테러 이후와 피해자들 이야기를 주요하게 담았다. <스트롱거>와 <7월 22일> 모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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