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큐레이터'S PICK] <에이프릴의 딸>
영화 <에이프릴의 딸>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우리나라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유망한 감독들이 많다. 그들은 주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내 이름과 얼굴과 필모를 알리는 경우가 많은데, 멕시코의 젊은 거장 후보인 미셸 프랑코 감독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녀 뒤에서 빛나고 있는 멕시코라는 '후광'이 한 몫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겠는데, 지금 현재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멕시코의 세 친구들' 알폰소 쿠아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 세 명의 거장이 구축한 각각의 독특하고 확고한 작품 세계를 씨네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사랑해 마지 않게 된 이유를 '멕시코'라는 공통분모로 굳이 생각해 볼 때, 미셸 프랑코 감독을 향해 기대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그것뿐이라면 기대와 달리 실망을 하게 되더라도 할 말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데뷔작부터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었고 이후 내놓은 모든 작품(3 작품)이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영화제 칸이 총애하는 차기 거장임에 틀림없다.
<애프터 루시아>가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크로닉>이 각본상을, 그리고 최신작 <에이프릴의 딸>이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것. 연출과 각본은 물론 편집, 프로듀서, 제작에까지 관여하는 그녀를 만능영화인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세 작품은 우리나라에도 모두 개봉되었는데, 아무리 출중해도 제3세계 영화는 흥행에 큰 제약이 따르기에 잘 수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멕시코 영화 전성기라는 시대 조류가 뒤따른 것일까, 그녀의 영화들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녀의 영화를 접하는 우리는 좋다.
엄마 에이프릴과 딸들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심심하게 시작해 파격적으로 끝난다. 후반부 내내 계속되는 연속적인 파격을 소개할 순 없으니 전반부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임신한 10대 발레리아와 언니 클라라는 함께 살고 있다. 클라라가 인쇄소를 운영하며 나름 안정적으로 지내는 그들이다. 그들은 발레리아의 임신 사실을 엄마에게 숨겼는데, 임신 7개월이 지나 클라라가 엄마에게 알린다. 엄마 에이프릴은 그들을 찾아오고, 아주 반가운 듯 해후한다. 곧 카렌이 태어난다. 에이프릴의 손녀이자 발레리아의 딸이다.
카렌의 아빠는 17살에 불과한 마테오다. 에이프릴도 클라라를 낳았을 당시 10대 후반에 불과한 나이였다. 에이프릴은 발레리아가 아닌 마테오와 그때 그 심정을 공유한다. 에이프릴과 발레리아와 마테오는 따로 또 같이 카렌을 돌본다. 에이프릴은 카렌을 향해 ‘우리 예쁜 아기’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만큼 애정을 듬뿍 쏟는 듯하다. 자신도 제대로 건사하고 컨트롤하기 힘든 10대 발레리아와 마테오가 어쩌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 에이프릴이 대신한다.
어느 날 갑자기 에이프릴은 발레리아와 마테오 동의 없이 마테오 부모와의 합의를 통해 카렌을 입양 보낸다. 당연히 발레리아는 에이프릴을 멀리한다. 고소하려고도 한다. 마테오는 어쩌질 못해할 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에이프릴은 카렌을 입양 보낸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의 집에 맡겨놓은 게 아닌가? 그러곤 마테오한테만 그 사실을 알린다.
한편, 에이프릴은 클라라에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뚱뚱해진 그녀가 살을 뺄 수 있게 강제할 뿐이다. 사실, 발레리아에게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그녀가 미성년의 나이에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도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말이다. 클라라의 아빠와 발레리아의 아빠가 다르다고도 하는데, 에이프릴의 과거와 정체가 궁금해진다.
불친절한 영화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영화 <에이프릴의 딸>은 에이프릴의 ‘딸’이 아닌 ‘에이프릴’이 주인공이다. 그녀가 발레리아에게 저지르는 갑작스런 엽기 행각이 이상하고 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우린 그녀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그녀는 왜 딸에게 그런 것일까. 왜 클라라와 발레리아에게 그런 게 아니라 발레리아에게만 그런 것일까.
에이프릴의 행동 대상이 발레리아에 있지 않다고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 영화가 굉장히 불친절하다고 느낄 만한 대목인데, 에이프릴의 현재 그것도 본인이 사는 지역이나 집이 아닌 딸이 사는 곳에 와 있는 지금에서 단편적으로 지나가는 단서들로만 그녀의 과거와 사연과 정체를 유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두 명의 다른 남자에게서 두 딸을 낳았고, 그들뿐 아니라 딸들과도 좋은 관계에 있는 것 같진 않다. 또한 별 다른 직업을 두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위와 같이 유추한 사실을 종합해 다시금 유추해 볼 수 있는 건, 에이프릴은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고 지금도 욕망을 분출할 의향이 있으며 그 대상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것이다. 딸과 손녀를 향한 모성을 뛰어 넘는 욕망이 다름 아닌 마테오를 향하고 있다고 해도, 너무 충격을 받거나 분노를 행하거나 구역질을 느끼지 않도록 하자. 사실, 영화는 굉장히 느리고 무심하고 담담하게 진행되지만 충격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에이프릴의 욕망 충실한 행동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들여다볼 요지는 있다. 에이프릴 앞에 ‘여자’라는 수식어를 두어 ‘모성보다 욕망에 충실한 여자’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겠고, 인류의 태곳적 신화 이야기 중 하나인 ‘부모와 자식 간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겠으며, 불완전한 한 인간의 어쩔 도리 없는 저지름 또는 사이코패스의 완전한 통제 하 전략적인 작전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해하기도 싫은 더럽고 추잡한 이야기라고 한마디로 상정해버려도 할 말은 없을 정도이다.
불편한 영화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해하기 싫은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은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동서고금 이보다 더 추잡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사로잡았고 사로잡고 있으며 사로잡을 게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렇게밖에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심정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는 신화를 가지고 오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정도의 의미가 있는 영화인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보는 내내 굉장히 불편하기도 했다. 주지했듯 영화적으로 매우 불친절했기에 끊임없이 이면을 들여다봐야 했던 점도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고 해석을 하려 하면 할수록 불편했다. 영화를 차지하는 상당히 많은 장면이 알 수 없는 곳으로 말없이 차를 타고 가는 뒷모습인데, 답답함과 불안함의 불쾌한 뒤섞임이 영화 전체로 퍼지는 걸 목격하게 된다. 물론 이런 느낌의 영화를 즐기는 이도 많을 테고 이런 느낌이 영화를 보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기에, 취향의 문제이겠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서 헤어 나와, 영화를 통해 2차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를 즐기고 또 그런 영화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에이프릴의 딸>은 영화를 보고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영화 밖으로 나가 영화를 통해 생각하지 못하고 영화 안에서 돌고 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다분히 취향의 문제로, 오롯이 영화에 천착하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보는 진정한 방법일 수 있다.
<에이프릴의 딸>은 어떤 영화일까. 누구한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알고서 보고 그저 즐기기도 힘들고 나를 돌아보며 여러 생각을 하기도 싫다. 현실적으로 공감할 만한 요소가 있지도 않다. 다만, ‘인간’으로서 깊고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불편하고 불쾌했던 역설적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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