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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스탈린 죽음 이후 우왕좌왕 좌충우둘 권력 쟁탈 블랙 코미디 <스탈린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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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스탈린이 죽었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 포스터. ⓒM&M 인터내셔널



1953년 소련 모스크바, 라디오 모스크바에서 모짜르트를 연주하고 있다. 와중에 총서기장 스탈린이 전화를 해서는 17분 뒤에 본인한테 전화를 하라고 한다. 정확히 17분 뒤에 끝나서 청중이 흩어진 모짜르트 연주를 녹음해 대령하라는 명령이었다. '죽기 싫은' 감독은 명령을 실행에 옮긴다. 한편 그 시각 스탈린은 핵심 측근 4인방과 함께 다차(시골 별장)에 머물러 있다. 


총서기장과 함께 술을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낸 4인방은 집으로 향하고 스탈린은 모짜르트 연주 녹음집을 감상하다가 함께 딸려온 피아니스트의 쪽지를 읽고는 쓰러진다. 다음 날 아침, 식사 담당에 의해 발견되어선 핵심 4인방과 주요 장관에게 알려진다. 가장 먼저 달려온 NYPD(내부인민위원회) 장관 라브렌티 베리야는 일급기밀로 보이는 문건을 빼돌린 후 다음 사람을 기다린다. 


이어 달려온 이는 부서기장 게오르기 말렌코프로, 어리바리한 듯 2인자이지만 베리야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다음 단계로 의사를 부르길 원하지만 베리야는 원하지 않는다. 파자마 차림으로 나타난 모스크바 제1서기 니키타 흐루쵸프는 베리야의 정적인 듯, 강력하게 의사를 부를 것을 주장한다. 설전이 오가는 사이 노동부, 통상부, 국방부 장관들이 등장한다. 한편 스탈린의 핵심 측근 4인방 중 외무부 장관 몰로토프는 오지 않았다. 의사를 부르기로 한 그들, 하지만 유능한 의사들은 스탈린을 독살하고자 한 혐의로 모조리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 상태였다. 


곧바로 후계를 위한 치열한 암투에 들어간 그들, 흐루쵸프는 노동부 장관과 함께 하고 베리야는 게오르기와 함께 한다. 그들은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의 눈에 들기 위해 혈안인 와중에, 게오르기를 바지사장 격의 1인자로 추대하고 2인자를 베리야로 올린다. 흐루쵸프는 스탈린 장례위원장으로 권력놀음에서 배제된 느낌이다. 베리야는 군대를 대신하여 자신의 NYPD를 배치시키고 흐루쵸프는 새 보안령을 내리고는 소련군 사령관 주코프와 작당해 맞불을 놓는다. 스탈린의 죽음 이후 이 '개판'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


스탈린 죽음 이후 권력 쟁탈기


스탈린 죽음 이후 권력 쟁탈기를 그렸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의 한 장면. ⓒM&M 인터내셔널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련의 모든 권력이 응집된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죽음 이후 핵심 측근들이 벌이는 우왕좌왕 좌충우돌 권력 쟁탈기를 블랙 코미디로 그렸다. 스탈린의 손발이 되어 충실히 독재를 완성시킨 핵심 측근들의 행동은 정말 가관이다. 주지했다시피 실화와 실존 인물을 그대로 가져다놨기에 오히려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극장 상영 금지를 당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러시아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당시를 코믹이하게 그린 것에 누군가의 반감을 살 수 있는 건 이해가 간다. 그만큼 이 영화가 스탈린의 죽음 당시를 강력하게 희화화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이 박정희의 죽음 당시를 블랙 코미디로 그렸듯이 말이다. 


살아생전은 물론 죽어 없어진 지 오래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독재자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그 무지막지한 억압의 분출이 어떤 식으로든 이뤄져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비록 그 분출이 또 다른 억압을 낳는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식의 방법은 당시를 보다 가감없이 들여다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영화를 즐기는 두 가지 방법


실화와 실존 인물을 알고 보든, 모르고 보든 각각의 재미가 있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의 한 장면. ⓒM&M 인터내셔널



영화는 스탈린을 제외한 스탈린의 핵심 측근 4인방, 장관 3인방, 자식 2인방, 군사령반 1인방이 사실상 모두 주연이다. 이보다 더 인간군상을 잘 드러내 보여줄 수도 없을 것이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자가 없고 서로 물리고 물리지 않는 자가 없기에, 반드시 누군가 죽어야 끝이 난다. 비록 스탈린 생전 당시 2인자인 게오르기가 엄연히 1인자를 물려받았지만, 사실상 흐루초프와 베리야 간 죽음의 대결이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영화를 보는 또는 즐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스탈린의 죽음과 이후 실존 인물들의 권력 쟁탈 실화를 어느 정도는 알고 나서 보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름과 직책과 스탈린 생전, 사후의 행동양식을 간략히나마 일별하고 나서 보면 블랙 코미디적 요소에 집중할 수 있다. 즉, 영화적으로 재밌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실화와 실존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보는 것이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영화를 '즐길 수' 있을 텐데, 실화와 실존 인물이야 어쨌든 저쟀든 그저 영화를 이끄는 사건과 등장 인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편견 없이 다양한 인간 군상 하나하나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겠다. 앞엣것의 '영화적'이 블랙 코미디적 말장난과 웃픈 행동거지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면, 이번 것의 '영화적'은 수많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서 각자 모두 다른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이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 하겠다. 


블랙 코미디의 정석


블랙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준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의 한 장면. ⓒM&M 인터내셔널



영화의 배경은 분명 소련이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은 대부분 영국과 미국 출신이다. 감독 아만도 이아누치는 스코틀랜드인이고, 흐루초프로 분한 스티브 부세미는 미국인이며, 베리야로 분한 사이몬 러셀 빌은 영국인이다. 극 중 스탈린의 죽음에 결정적 역할을 한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니아미노프나 유디나로 분한 올가 쿠릴렌코만이 우크라이나인으로 주연 중 유일한 소련 출신이라고 한다. 


그러 하니 자연스레 영어를 쓰는데, 그 자체로 코미디가 아니고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주요 역사 인물을 동양의 다른 나라 누군가가 다른 나라 언어로 연기한다고 생각해보면 아주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그 어느 것에도 예속되지 않고 또한 굴하지 않고 유연하고 활기차게 이끄는 코미디의 정석이란 것이 이런 게 아닐까. 


그렇지만, 영화는 결코 웃기기만 하진 않는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만 생각하면서 봤다간 종종 끔찍하게 진지한 정치 드라마 못지 않은 장면을 목격하면서 치를 떨지도 모른다. 우리 주인공들은 스탈린 살아생전 그를 도와 당시 1억 7천만 소련 국민들을 공포에 벌벌 떨게 한 장본인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되겠다. 하나 같이 어리바리하고 한심하고 웃기기까지 해도 말이다. 그들 모두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턱짓과 손짓, 말 한 마디와 펜 한 자루로 죽였다. 스탈린은 고유명사였지만, 소련이라는 시스템에서는 하나의 명사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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