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그래스 이즈 그리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그래스 이즈 그리너> ⓒ넷플릭스
지난해 캐나다는 의료용으로 뿐만 아니라 식품과 음료 등 모든 형태로 대마 사용을 합법화시켰다. 미국에서도 30개 주 이상이 의료용 대마 사용을 합법화했고, 10개 주에서는 기호용 대마 판매와 사용까지 전면 합법화했다. 태국이 작년 동남아시아 최초로 의료용 대마 사용을 합법화시킨 데 이어. 한국도 올해 50여 년만에 대마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 목적으로 대마 성분 의약품 구입을 합법화시켰다.
캐나다와 미국의 대마 합법화 '열풍'으로 국내외 여행객들의 국내 대마 밀반입 사례가 수백% 늘어났다는 보도가 줄을 잇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마가 전 세계의 핫이슈가 되어 가고 있다. 그것도 '대마 규제'가 아닌 '대마 규제 완화' 또는 '대마 합법화' 말이다. 한쪽에서는 승리라 자축하며 눈물을 흘리고 환호를 부르고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때맞춰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 <그래스 이즈 그리너>를 선보였다. 대마초 합법화 바람이 부는 지금, 곡절 많은 역사를 되짚는다는 설명과 함께. 사실 대마 합법화에 강력하게 찬성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보고 나면 어느 정도 동조하게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는바, 대마가 불법인 나라나 대마 합법에 반대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굉장히 불쾌하고 도발적이고 위험하다 하겠다. 더불어 다분히 미국 유색인종 입장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미국의 대마 규제와 금지 그리고 인종차별
다큐멘터리는 '미국은 왜 이제서야 대마초 사용을 용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그 시작은 1930년대 재즈 뮤지션, 미국의 대마초 역사를 미국의 음악 역사와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재즈 뮤지션 거의 모두가 대마초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노래에도 쓰인 바, 지금까지도 쓰이는 다양한 은어를 창조해냈다.
전 세계적으로 '대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그 이름, 힙합 전설이자 대마초 사업가로 유명한 '스눕 둑'이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터 그는 대마를 찬양하며 뮤지션들이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만들어낼 때 대마가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내 영혼을 꺼내 보는 느낌이죠.' 그밖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에 동조하는데, 하나같이 대마가 최고의 모습을 꺼낼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1910년 미국에 대마가 들어왔을 때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흑인과 멕시코인을 위시한 이주민들이 대거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대마'를 하는 그들이 백인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봐 두려워 규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금지화의 아버지' 해리 앤슬링어 출현한다. 그는 금주국 소속 직원에서 1930년대 마약국 수장이 되어서 전면적인 마약 금지화를 시작한다. 문제는 그가 뼛속까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 그 이면엔 온갖 음모론도 도사리고 있다.
1937년 사실상 대마초는 금지되지만, 같은 시기 뉴욕의 라과디아 시장이 의뢰한 대마초 종합 보고서는 앤슬링어가 대마초에 대해 말한 게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의 목적은 미국인의 마약 중독을 막기 위해 대마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인종차별에 기반해 대마를 금지하는 것이라는 뜻. 즉,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대마 규제와 금지 역사엔 인종차별이라는 키워드가 반드시 언제나 함께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 문화와 연관된 미국의 대마 역사
미국 대마의 역사는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깊이 연관된다. 1960년대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를 위시한 '비트 세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비트 세대는 재즈의 기풍을 문학에 녹여내어 문학적으로 창의적인 표현을 가능케 했고, 반사회와 반문화의 키워드로 누구나 행하는 대표적 불법인 대마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에 이미 대마초 합법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1970년대 초중반 리처드 닉슨과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마 금지뿐만 아니라 대마를 위시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혁명의 시대 60년대, 자유의 시대 70년대를 지나, 억압과 규제의 시대 80년대가 도래한 것이다. 마약, 아니 대마초는 그 논란과 쟁점과 전쟁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표적은 흑인과 라틴계로 향했다고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다.
그 억압과 규제를 뚫고 나온 또 하나의 저항 문화가 바로 힙합이다. 힙합과 대마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건, 그것들을 잘 알지 못하는 누구라도 대략적으로나마 인지하고 있을 테다. 그 사이 밥 말리를 위시한 레게도 대마와 깊은 관련이 있는 건 물론이다. 대마의 역사를, 재즈와 비트 세대와 마약과의 전쟁과 힙합의 역사와 접목시켜 알기 쉽고 흥미롭게 보여주는 건 탁월한 선택과 그에 따른 구성이었다고 본다.
아쉬운 건, 반대 의견을 단 한 가지도 듣지 못해 형평성에 있어서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 대마초가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대마초 자체로는 설혹 오히려 좋은 점만 있고 나쁜 점을 찾을 수 없다고 할지라도, 대마초로 시작해 '진짜' 마약인 필로폰, 헤로인, 코카인 등으로 갈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하나로도 대마초의 위험성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그마치 15년 전에 유현이라는 저자가 <대마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내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차라리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낫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 책에서 보이는 '진실'과 '근거' 그리고 펼치는 '논리'와 '주장'이 <그래스 이즈 그리너>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주장하고 받아들이는 주체들의 생각과 힘과 영향력 등이 모두 판이하게 다르다고 하지만, 두 콘텐츠 모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 보지는 않는다. 다만, 대마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과 시대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에 대한 환기를 시키는 데는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대마의 현재와 미래
<그래스 이즈 그리너>가 놓치지 않는 부분이 대마의 역사뿐만 아니라 대마의 현재와 미래이다. 이 부분이 사실 보다 충격적이었는데, 정부에서 판단하기에 합법이든 불법이든 어차피 수많은 사람들이 피고 있는 대마초이기 때문에 그럴 바엔 차라리 수면 위로 올려 세금 장사를 하는 게 여러 모로 이득이 되는 시점에 왔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다분히 자본주의적 생각의 발현으로, 몇십 년 동안 인종차별의 주요 방편으로 사용했던 대마 규제를 푼 게 아니라는 점이 와중의 이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발맞춰 경영자와 자산가와 기업가들이 대마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불법의 늪에 빠져 대마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업에 뛰어들기는커녕 제대로 된 인생조차 살 수 없게 된 유색인종들에겐 먼 일이라는 것.
대마는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왔다. 그 주인은 유색인종 아닌 백인일 것이 자명하다. 아니, 계급적으로 높은 사람들의 것이 될 테다. 대마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했던 '그들'은, 앞으로도 다른 식으로 대마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할 것이다. 비단 '대마'뿐일까, '마약'뿐일까 생각해본다. 규제를 통해 계급을 유지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규제를 푼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도록 '그들'이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점이다. 결국 바뀌는 것 없을 것이기에, 너무 많이 파고 들어가고 싶어지지 아니하고 너무 많이 알고 싶어지지 아니하며 너무 많이 관여하고 싶어지지 아니하게 된다. 그것 또한 '그들'이 원하는 것일 테고,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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