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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희대의 살인범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를 잡는 '인간사냥꾼' <하이웨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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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하이웨이맨>


영화 <하이웨이맨> 포스터. ⓒ넷플릭스



보니와 클라이드, 대공황과 금주법의 시대인 1930년대 초 미국에서 '활약'한 연쇄강도 및 살인범 커플이다. 1932년 초부터 1934년 중반까지 12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이 희대의 살인범 커플이 유명한 건 희망도 미래도 없는 당대에 맞섰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암울했던 당대를 향한 적대심이 하늘을 찌를 듯한 상황에서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대리만족의 개념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이들의 짧지만 굵은 이야기는 훗날 수없이 많은 콘텐츠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영화, 드라마, 음악 심지어 비디오게임까지, 그중에 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1967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일명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선구자적 존재로, 이후 영화에서 섹스와 폭력의 노출이 전에 없이 용인되기에 이르렀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장을 연 영화이다. 


보니와 클라이드에 관한 또 다른 영화가 우리를 찾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이웨이맨>으로, <블라인드 사이드> <세이빙 MR. 뱅크스> <파운더> 등으로 나름의 탄탄한 이야기를 선보여왔던 존 리 행콕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보니와 클라이드를 쫓았던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프랭크 해머와 매니 골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체가 범죄자 아닌 범죄자를 쫓는 사람들인 것이다. 


보니와 클라이드, 해머와 골트


보니와 클라이드 아닌, 텍사스 레인저 출신 해머와 골트. 영화 <하이웨이맨>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34년 미국 텍사스 이스텀 교도소 농장, 보니와 클라이드는 수감자 몇 명의 탈옥을 돕는다. 여론은 교도소에 부정적이게 되었고, 텍사스주 당국은 곧바로 반응한다. 지난 2년 동안 잡을 수 없었던 악랄한 살인자들을 잡기 위해, 해체된 '인간사냥꾼' 텍사스 레인저 역대 최고라 일컫는 프랭크 해머(케빈 코스트너 분)를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공식 직책 '고속도로 순찰대원' 즉 하이웨이맨으로 수락한다. 그는 곧 역시 전 텍사스 레인저 매니 골트(우디 해럴슨 분)와 접촉해 함께 행동한다. 


이젠 과거의 명성에 비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진 해머와 골트, 정식 파견된 젊은 FBI에게 무시당하고 보니와 클라이드를 눈앞에서 높치는 등 안팎으로 설 자리가 없는 듯하다. 와중에 보니와 클라이드는 경관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후 여전히 그들을 신성시하는 이들은 많았으나 여론은 상당히 그들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이 하이웨이맨들에게 힘이 실린 것이다. 


해머는 그들의 여정을 연구하여 함정을 파고는 추적대를 결성해 기다린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함정으로 오게된 보니와 클라이드, 추적대는 그들을 향해 백 수십 발의 총을 난사한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그 자리에서 죽어, 2년에 걸친 범죄 행각은 처참하게 막을 내린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보니와 클라이드의 시체,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해머와 골트가 대조를 이룬다. 


시대 조류를 막기 위해 소환된 구시대 유물


정부는 보니와 클라이드를 잡기 위해 구시대 유물 소환을 결정한다. 영화 <하이웨이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는 보니와 클라이드 실화를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주지했듯 주체가 보니와 클라이드 아닌 해머와 골트인 게 특이점이다. 그들에 대해 수없이 많은 콘텐츠가 선보여 왔지만, 일찍이 그들을 죽인 추적대를 다룬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열광했던 건 보니와 클라이드였지, 그들을 죽인 해머와 골트는 아니었다. 


19세기 말까지 텍사스를 위시한 미국 서부는 일명 '서부 개척 시대'로 '무법 시대'와 다름 아니었다. 이 시기 무법자들을 추적해 사살하는 '인간사냥꾼'이 바로 텍사스 레인저였다. 해머와 골트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로 최강의 살상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서부 개척이 끝나고 미국은 서부에도 이성과 법을 들인다. 텍사스 레인저는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아야 했던 것이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며 당대 누구보다 막강한 명성을 떨친 1934년 현재에서, '인간사냥꾼' 카우보이 텍사스 레인저는 지나간 구시대의 유물과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보니와 클라이드는 금주법과 대공황으로 불안하고 불만 있고 대다수를 대변하는 현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비록 그 방법은 살인이었지만 '서민을 털고 죽이는' 은행만 턴다는 로빈 후드적 신화를 밑바탕으로, 시대의 조류였다. 


당국은 통제하지 못할 시대의 조류를 막기 위해 구시대의 유물을 소환한 격이다. 구시대의 유물, 즉 '보수'는 제 몫을 해내고 '진보'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보니와 클라이드를 진보로 해머와 골트를 보수로 보는 건 매우 단편적이고 거친 비유이지만, 그렇다고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당국은 해체된 텍사스 레인저를 소환해선 안 되었었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지 못한 아쉬움


<하이웨이맨>의 미덕은 보니와 클라이드 실화에서 보니와 클라이드 아닌 해머와 골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정도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 사실 해머와 골트라는 특수한 캐릭터를 가지고 특수한 의미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신구 캐릭터의 대립과 조화에도 불구하고 당대 공권력의 구멍을 신랄하게 까발리지도 못했고,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 항상 한 발 늦는 노인 보안관 벨과 영화 곳곳에 나오는 노인들을 통해 운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복잡다단하게 숨기면서 드러내지도 못했다. 


해머와 골트처럼, 실제로도 최고의 자리(아카데미 수상)와 최악의 자리(골든 라즈베리 수상)를 오간 적이 있는 케빈 코스트너와 우디 해럴슨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하긴 하다. 60대 중반과 50대 말에 위치한 그들의 나이를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한창이지만 연기한 85년 전 1934년 당시로선 완전히 '가버린' 세대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그들의 가버린 신체 능력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의한 뛰어난 감과 신념을 부각시키고자 한 듯하다. 종종 터져 나오는 자신들에 대한 실망과 함께. 하지만 그조차 두드러지게 부각되지 못한 채, 전체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게 구성되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운명론적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진 것처럼, 이 영화는 충분히 존재론적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는다. 훨씬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린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1934년 미국이 대공황으로 크게 휘청일 때 금주법으로 역행하고 살인을 살인으로 막는 인간사냥꾼을 고용하며 역행했듯, 이해하지도 수긍할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시대를 역행하려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비단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신체적으로 '노(老)'한 이들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주류한 이들만도 아니다. 하찮은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자신만의 영위를 이어나가려는 이들일 것이다.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건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시대가 아니고 그런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