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큐레이터'S PICK] <히치하이크>
영화 <히치하이크> 포스터. ⓒ무브먼트
열여섯 정애(노정의 분)와 효정(김고은 분)은 무작정 길을 떠난다. 정애는 집 나간 엄마를, 효정은 이름만 알고 있는 친아빠를 찾으려 한다. 먼저 효정의 친아빠를 찾으러 서울에서 강화로 간 그들, 하지만 이름과 주소만으로는 찾기가 요원하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았지만 헛탕을 치고 밤 늦게 히치하이크에 성공해 서울로 향한다. 뭔가 이상하다, 인신매매인가? 무작정 도망치고 결국엔 경찰에 의해 무사히 구출된다.
그런데 담당 경찰 이름이 현웅(박희순 분)이다. 효정이 찾는 이름만 알고 있는 친아빠와 똑같은 이름, 사는 곳도 비슷하니 정애는 확신한다. 반면 효정은 반신반의, 대면대면. 사실 효정은 얼마 후 새아빠가 생길 예정이다. 반면, 정애는 아빠가 많이 아프다. 더군다나 아빠는 정애의 앞날을 막지 않으려고 치료도 받지 않는다. 정애는 곧 세상에 홀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효정이 아닌 정애가 현웅을 향한다.
서울로 돌아갔다가도 다시 현웅을 찾는 정애, 그에게서 그리고 그의 집에서 안식을 얻는다. 인신매매범에게서 도망치다가 다리를 다친 효정을 대신해 친아빠를 찾아주겠다는 핑계를 대고서. 정작 그녀는 집 나간 엄마를 찾는 데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엄마가 병원에 있어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정애는 단단하게 버텨왔지만 버팀목을 찾아야 한다.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까.
세상에 홀로 남게 된 소녀의 성장물
영화 <히치하이크>의 한 장면. ⓒ무브먼트
영화 <히치하이크>는 세상에 홀로 남게 된 열여섯 소녀의 성장물로, 죽어가는 아빠를 대신해 집 나간 엄마로 표상되는 의지할 곳을 찾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히치하이크'는 그 여정을 비유적이고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미성년자로서 무전(無錢)의 절박한 상황에서 구해줄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삶의 여정.
우린 이 여정에서 구원, 포기, 가족 등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처럼 영화 내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건 연출보다 연기의 힘이 컸다. 연출은 다분히 요즘 한국 독립영화스러워서 특이점을 찾긴 힘들었는데, 정애로 분한 노정의 배우가 어린 나이에 영화를 거의 이끌다시피 하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연기를 선보였다. 캐릭터 자체가 그랬기도 했지만 훌륭히 소화했다.
여기에 베테랑 박희순 배우가 전혀 튀지 않는 무채색에 가까운 연기로 중심을 잡으며 다른 배우들을 돋보이게 해주었고, 효정으로 분한 김고은 배우가 역시 어린 나이임에도 전혀 어설프지 않게 톡톡 튀면서도 안정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독립영화인 만큼 연출과 각본과 연기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는데, 연기를 필두로 대체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구원과 포기
영화 <히치하이크>의 한 장면. ⓒ무브먼트
먼저, 구원에 대해서 시작해본다. 히치하이크라는 이미지는 낭만으로 가득 차 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의 차를 얻어타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정의 일부분, 기대와 설렘이 한 가득이다. 하지만 이를 삶에 대비해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갈 곳도 의지할 이도 없는 어린 소녀가 자신의 삶을 구원해줄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내맡긴다는 게 쉽기는커녕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히치하이크는 낭만과는 정반대의 지극한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구원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살기 위해, 할 수 없는 걸 해야 하고 하기 싫은 걸 해야 하며 해선 안 되는 걸 해야 한다. 구원이라는 단어가 갖는 함의는 참으로 숭고하고 위대하지만, 구원을 현실화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정애에겐 미안하지만, 그녀는 구원을 바랄 뿐 행하는 건 쉽지 않을 테다.
그러면 포기해야 할까. 정애의 아빠가 정애의 삶을 위해서 자신을 포기했듯 정애도 삶을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정애의 삶을 위해서 포기한 만큼 정애는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까. 영화는 포기로서의 포기가 아닌 나아가기 위한 포기를 역설한다. 여기서 포기는 희생의 다른 말일 수도 있고 현실 직시의 다른 말일 수도 있으며 인간다움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세 가지 전부 다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애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고 그저 구원자만 찾아다니는 무능자가 아니며 그저 받기만 바라는 파렴치한이 아니다. 인신매매, 죽어가는 아빠라는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위협부터 자잘하고 추상적이며 귀찮기까지 한 위협까지, 그녀를 흔드는 많은 것들을 때론 무덤덤하게 때론 무신경하게 때론 무탈하게 지나치고 헤쳐나간다. 어느샌가 포기란 말은 더이상 어울리지 않게 된다.
가족의 의미, 그리고 거슬리는 부분들
영화 <히치하이크>의 한 장면. ⓒ무브먼트
두 소녀가 가족 아닌 가족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만큼,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애는 아빠가 있고 효정은 엄마가 있다. 정애의 아빠는 치료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병에 걸렸지만 치료를 하지 않는다. 정애는 집 나간 엄마에게 막연한 희망을 걸고 길을 나서지만 엄한 효정의 아빠라고 추정되는 경찰 현웅에게 기대게 된다. 그녀는 길지 않은 인생에서 온전한 가족 형태를 가진 사람을 처음 접한 것일까.
한편, 효정은 곧 새아빠가 생긴다. 그래서일까, 친아빠로 강력하게 추정되는 현웅을 향한 마음이 크지 않다. 새아빠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정애처럼 가족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가족이 찾아온 셈이다. 정애와 효정 둘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지만, 안정감 있어 보이는 효정과 달리 정애에게서 절벽 끝에 선 느낌을 받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영화의 디테일적인 측면에서 몇몇 부분이 거슬렸다. 정애와 효정, 그리고 정애는 몇 번이나 남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한다. 창문으로 들어가고 창문으로 비추는 햇살을 받으며 잠들고 창문으로 도망치는 등 영화적 장치로 사용한 흔적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납득하기엔 불편한 구석이 명백했다. 또한 정애로 분한 노정의의 연기력과 단단하게 버티는 정애라는 캐릭터와는 별개로, 정애의 성격이나 행동 양상이 주는 불편함도 있었다. 효정하고는 하염없이 잘 어울리고 잘 웃는 모습을 보면 전형적인 여중생인 것 같지만, 그렇게 단정지을 수도 없는 애매모호함과 여러 모습들 때문에 떨어지는 개연성이 달갑지 않게 다가왔다.
온전히 그 때문이진 않겠지만 크게 한몫 하기에, 영화는 독립영화 특유의 작가주의적 답답함이 자칫 불쾌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경계 어린 줄타기가 아슬아슬했다. 필자에겐 나쁘지 않은 정도로 다가왔지만, 누군가에겐 불쾌하게 다가왔을지 모르겠다. 시종일관 그 어디에서도 시원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더불어 여러 의미들을 되새기고 생각하면서 얻게 될 수밖에 없는 답답함 이상의 것들. 감독의 다음 작품이 한편 기다려지면서도 한편 마냥 선택할 것 같진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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