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포스터. ⓒ(주)디오시네마
영화를 즐겨 보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야깃거리가 있는 영화는 리뷰를 써서 소개하고 기억에 남기려고 애쓰다 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군(群)'이 형성되는 걸 느낀다. 소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좋아하는 작가군이 형성되는 것처럼, 영화는 감독군이 형성된다.
믿고 보는 배우가 있듯이 믿고 보는 감독도 있을 텐데, 영화에서 배우에 비해 감독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기에 그냥 지나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감독군이 형성될 때 말 그대로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7년에 개봉했지만 한국에는 이제야 상륙한, 그동안 제목과 포스터, 최소한의 스틸컷과 내용 등의 단편지엽적인 정보만으로 기대를 품고 있었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이하 '도쿄의 밤하늘')도 그중 하나다.
한국 개봉이 확정되고 찾아보기 시작하기 전엔 전혀 몰랐다. 감독 이시이 유야가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을 연출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00년대 중순부터 꾸준히 작품을 내왔던 그의 유이한 한국 개봉작인 두 편 모두 필자가 굉장히 잘 보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도쿄의 밤하늘>을 인상 깊게 보고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상실로 점철된 삶들의 만남
상실로 점철된 청춘의 삶들이 도쿄의 하늘 아래에서 만난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일본 도쿄, 미카(이시바시 시즈카 분)는 시골에서 홀로 상경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고 아빠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낮에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걸즈 바'에서 일한다. 그녀는 연애에 대해 비관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이다.
신지(이케마츠 소스케 분)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공사판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자신에게 알맞다고 생각하는, 한 쪽 눈이 잘 안 보이는 말 많고 책 열심히 보는 청년이다. 그는 그저 절대적 절망 없이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갈 뿐이다.
미카와 신지는 우연히 만난다. 이 천 만 명이 넘게 사는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몇 번이고 우연히 마주친다는 건 참으로 기막힌 우연, 이를 필연으로 이어가는 건 그들의 선택이자 몫이다.
한편, 그들은 삶은 '상실'로 점철되어 있다. 미카는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지금은 매일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미카는 친구 아닌 친구 같은 공사판 친구였던 토모유키(마츠다 류헤이 분)가 갑자기 죽는 걸 시작으로 하나둘씩 자신의 곁을 떠나는 걸 막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는 영화
이 영화는 시에서 감성을 빌려온 만큼,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자.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쉽지 않은 원작인 사이하테 다히의 시집 <밤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푸른색이다>를 모티브로 삼았다. 시에서 감성을 빌려온 만큼, 영화는 가히 몽환적이고 이미지적이고 그래서 불친절하다. 이야기 서사가 없다시피 하고 대신 그 자리를 여러 영화적 기법과 시적 대사가 차지하니, 누군가는 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
반면, 누군가는 시쳇말로 '마약에 절은 것 마냥' 이 영화에 심취할 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나름의 결론까지 지어야 하는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겨도 괜찮기 때문이다. 감독의 메시지나 의도가 심오하고 현실적이기까지 하다고 해도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이 '왜' 푸른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푸른 밤하늘'을 감상하는 데 방점을 두는 것이다.
필자는 사실, 후자 아닌 전자 타입이다. 생전 시라는 걸 거의 읽어본 적 없고, 소설도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서사의 깊이가 어마어마한 대하소설만 읽었다. 그런데, 위에서 주지했다시피 아무런 정보 없이 이런 시적인 영화를 봤으니 어떻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론까지 짓는 와중에도 나름 충분히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겼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전반부는 도쿄 특유의 동경할 수밖에 없는 도시적 풍모와 더불어 한없이 고독하고 불안하고 단편적이고 진정성 없는 다층적 매력을 잘 표현해냈다. 그게 매력이라고 하기 힘들지라도 매력이라도 느끼게끔 말이다. '블루'는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슬픔'을 상징한다. 도쿄의 밤하늘이 항상 가장 짙은 블루라는 건 도쿄가, 도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슬프다는 것, 슬픔을 느낀다는 것...
'도쿄'를 서울로 바꿔보자. 혹은, 베이징으로 뉴욕으로 런던으로 파리로 바꿔보자. 서울은 왠지 잘 어울릴 것 같다. 다른 대도시들은? 역시 어울린다. 도시의 슬픔은 누구도 극복하기 힘든 삶과 죽음의 간극을 비정하게 담고 있다.
죽음의 공포와 불안, 그래도 힘내요
상실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떠는 삶. 그래도 힘내라고 말한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영화는, 그러나 일본 도쿄가 배경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종종 '튀어나오는' 불안들 중 '지진'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잊혀지지 않는 그 사고 그리고 사건 말이다. 인간의 태생적인 불안 중 가장 심오한 건 역시 '죽음'이다. 살면서 항시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안고살 수밖에 없는데, 일본 도쿄라는 세계적인 대도시에는 직접적인 죽음이 함께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는 여러 뜻하지 않는, 의도하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죽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단순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영화는 또 한 번 더 들어가 빈곤과 단절로 방황하고 힘들어 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삶에 얹힌다. 도쿄, 청춘, 죽음의 세 키워드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삶 위에 턱 하니 주저앉아버린 형국이다.
어찌해야 하나, 삶과 죽음이 구분 없이 명멸하는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해 살 수밖에 없이 만들어진 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그러나 사실 시종일관 굉장히 낙관론적인 비전을 내보인다. '힘내요', 여긴 도쿄지만 그래도 '힘내요'라고 말이다.
결국 사랑이다. 죽음이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손짓해도 사랑이 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곳곳에서 이 모습을,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모습을 공감력 있게 보여준다. 그때 잊을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그래서 나아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힘내라는 건 사랑하라는 말과 한 치의 오차 없이 같다. 삶과 죽음의 모습이 모두 같다면 불행하지만, 사랑의 모습은 모두 같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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