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예술영화계를 지탱하는 이들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나 블록버스터급 큰 영화를 보기에 지친 분들을 위한 탈출구, 예술영화, 다양성영화, 독립영화 등으로 불리우는 작은 비상업영화만 취급하는 영화관이 있죠. '예술영화관'이라고 불리는 이곳,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꽤 많이 있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 시네큐브, 아트나인, 필름포럼, KT&G 상상마당 시네마, KU시네마테크, 더숲 아트시네마, 이봄시어터, 에무시네마 등이 서울에 있고 경기도에는 명필름아트센터, 부산에는 영화의전당, 전주에는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등.
국내 최초의 예술영화상영관은 1994년 서울 대학로에서 문을 연 동숭시네마텍이라고 해요. 90년대 예술영화 붐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죠. 하지만 1993~2000년에 대형 멀티플렉스가 차례로 문을 열면서 2000년대에는 내리막길을 탑니다. 상업영화의 무지막지한 물량공세와 자본 논리 앞에 상업성 떨어지는 예술영화가 설 자리가 많지 않은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치겠죠. 그럼에도 주지했다시피, 많은 예술영화관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많은 예술영화관들이 자리를 지켰고 또 새로 생겨났습니다.
이광모 감독이 이끄는 '영화사 백두대간'은 국내 예술영화에 큰 족적을 남겼죠. 위에서 언급했던 국내 최초의 예술영화상영관 동숭시네마텍을 동숭아트센터와 함께 기획하여 운영했고 2000년에는 흥국생명과 공동으로 광화문에 씨네큐브를 열어 9년 동안 운영했습니다. 1990년대 예술영화 1세대를 열어젖히고는 2000년대 예술영화 2세대도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2008년에는 국내 최초로 대학 캠퍼스에 일반인을 위한 상설영화관인 아트하우스 모모를 개관해 2010년대 예술영화 3세대도 마련했고요.
아트하우스 모모의 프로그램들
영화계의 꽃이라면 단연 ‘영화제’가 있죠. 지나가 잊힌 영화들, 소구점이 있는 영화들, 생각할 의미를 주는 영화들을 한 주제로 뭉쳐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 가장 소중하고 각별한 프로그램일 것입니다. 백상이니 대종이니 하는 수상이 주가 되는 영화제 아닌, 부산, 전주, 부천 영화제들을 지나, 순식간에 명멸하지만 의미 깊은 영화제들이 많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이상 “모모”)도 직접 또는 다른 주최자와 함께 매년 다양한 영화제들을 개최합니다.
아울러, 모모는 동숭시네마텍 시절부터 영화학교를 꾸준히 진행해왔다고 합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교육이 목표이자 목적인 이 프로그램은 ‘씨네큐브 영화학교’를 거쳐 현재의 ‘모모 영화학교’로 발전하여 2016년부터 매년 절찬리에 진행하고 있다죠. 예술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데에 이만큼 적절한 프로그램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모모의 간판 ‘모모 큐레이터’가 있습니다. 영화사 백두대간은 참으로 많은 ‘국내 최초’를 시행해왔는데요, 모모 큐레이터 또한 그렇습니다. 국내 최초 능동형 관객 참여 시스템이죠. 모모의 직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관련 없는 일반 관객도 아닙니다. 그저 예술영화가 좋아서, 모모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모여 능동적으로 모모의 대소사에 참여하는 가장 적극적인 관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직접 영화제와 영화학교를 기획하고 참여하며 이외에도 다양한 모임, 세미나,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홍보활동도 기획하고 참여합니다.
모모 큐레이터에 대해
작년 2018년이 모모 개관 10주년이었다면 올해 2019년은 모모 큐레이터 10주년이 되는 해이죠. 여기서 잠깐, 모모의 공식 명칭이 따로 있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가 아니고, ‘아트하우스 모모 이화 KB 시네마’라죠. 영화사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아트하우스 모모’와 대학 내 공간 명칭인 ‘이화 KB 시네마’가 합쳐진 이름으로, KB 국민은행에서 이화여대에 후원한 이유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영화사 백두대간은 모모를 설립, 운영함에 있어 KB 국민은행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책임 아래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돌아와서, 모모 큐레이터는 2010년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2019년에 10기를 맞이했고, 필자는 10기로 참여해 운영기획홍보팀에 소속되었죠. ‘영화후에’를 비롯해 모모 안팎으로 도움 되는 여러 일들을 유지해나가고 새롭게 기획해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밖에도 영화학교팀과 영화제팀을 꾸려 새롭고 다양하고 특별한 이벤트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실행합니다.
모모 큐레이터가 지난 10년 동안 해왔던 주요한 일들을 살펴보면, 2011년 ‘와레와레! 한일영화축제’를 공동 기획 및 진행했고, 모모의 대표 영화제인 ‘스웨덴 영화제’를 2012~2015년까지 공동 기획 및 운영 지원했습니다. 2012년에는 국내 최초의 영화관 팟캐스트 ‘모모의 영화 보는 다락방’ 방송을 직접 하기도 했죠. 2015년에는 영화사 백두대간 창립 21주년 기념 ‘백두대간 21주년 영화제: 20+1’을 기획 및 진행했고, 2016년부터는 모모 영화학교를 기획 및 진행하고 있죠. 2018년에는 ‘블랙리스트 영화제’를 직접 기획 및 진행했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와 모모 큐레이터
사실, 영화계에서 아트하우스라고 한다면 ‘CGV 아트하우스’가 먼저 생각날 것입니다. 2004년 ‘인디영화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뒤 2007년 ‘무비꼴라쥬’로 바꿨고 2014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고 하네요. 독립·예술영화상영관인 이곳, 예술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라 할 수 있는 곳이죠. 굴지의 유통배급사에서 운영하다 보니, 상업영화보다 개봉관이 적다거나 상영시간대가 제한되어 있을 뿐 다른 유수의 예술영화상영관보다 훨씬 다양한 영화들을 훨씬 다양한 곳에서 훨씬 다양한 시간대에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아트하우스 모모’는 한 곳에서 1관과 2관의 두 관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하루에 상영하는 영화도 현재는 7 작품 정도가 한계이고요. 대학 내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과 편리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둘 다 현저히 떨어지는 편입니다. 심지어 이화여대생조차 모르는 경우가 꽤 많다고 합니다. 독자적인 시설이 아닌, ‘ECC’라는 이화여대를 대표하는 초대형 건축물 안에 크지 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테죠.
심지어 큐레이터 제도는 CGV 아트하우스에도 있습니다. 신진영화평론가가 영화 상영 후 관객에게 15분가량 영화에 대해 해설을 제공하는 것이죠. 2011년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모모 큐레이터와는 성질이 확연히 다릅니다.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는 영화에 대한 해석 및 관련 정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달함으로써 심도 있는 영화감상을 도와주는 일종의 전문가이죠. 모모 큐레이터와 성질이 비슷한 건 오히려 또 다른 대표 예술영화관 아트나인 서포터즈 ‘아트나이너’입니다. 신작 리뷰를 쓰고 모니터링을 하며, GV 및 행사 참여와 취재 활동과 SNS 활동까지 전방위적으로 하죠. 활동혜택도 비슷하고요. 하지만, 모모 큐레이터처럼 영화제나 영화학교나 각종 기획 프로그램과 같은 독자적인 활동을 하진 않거나 또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모모 큐레이터, 나아가 아트하우스 모모와 영화사 백두대간은 예술영화를 사랑해주시는 관객들과 더불어 예술영화계를 지탱하고 이끄는 모체입니다. 모모 큐레이터는 아트하우스 모모, 영화사 백두대간과 더불어 활동을 하고 그들을 위해 시간과 품을 들여 본업 외에 또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예술영화계를 위한 마음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투철한 자본주의 시대에, 획일화의 시대에 비상업적 다양성 영화를 취급한다는 것 자체에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을 바꾸는 건, 그 주체는, 결코 큰 것 아닌 작은 것들의 모음일지 모릅니다. 영화계의 작은 모임 모모 큐레이터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일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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