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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스콧 피츠제럴드의 정신이상자 아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빛나는 여성'으로 <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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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젤다>


<젤다> 표지. ⓒ에이치비프레스



영미 문학사의 빛나는 그 이름 'F. 스콧 피츠제럴드', 읽지는 않았어도 그 이름 들어보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인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미국의 황금기인 1920년 이른바 '재즈시대' 상징이다. 사교적이고 소비 지향적이며 주체적인 여성들, 즉 '플래퍼'를 다룬 소설로 뉴욕의 유명 인사가 된 그, 그에겐 소설 주인공의 대상이 되는 뮤즈가 있었는데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였다. 


잘 나가는 집안의 말괄량이 젤다는 1920년대 황금기를 스콧과 함께 흥청망정 보낸다. 뉴욕은 물론 유럽을 수없이 오가며 진정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볼 때, 스콧은 젤다를 거의 있는 그대로 소설에 옮겨 재즈시대의 상징이 된 것이라 하겠다. 


문제는, 젤다를 말하는 수식어다. 스콧을 재즈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나아가 20세기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수식하는 한편, 정작 그가 그런 위치에 설 수 있게 해준 뮤즈인 젤다는 오랫동안 위대한 작가의 재능을 탕진케 한 정신이상자 아내로 불렸다. 하지만, 그녀도 1920년대 당시 글을 썼다. 물론 단독으로도 썼고, 공저가 아닌 스콧 단독으로 표시가 되었을 뿐 스콧과 공저로도 썼다. 


지난 2월 27일 개봉한 영화 <더 와이프>가 겹쳐진다. 명배우 글렌 클로즈가 분한 '조안'은 작가 남편의 성공을 위해 평생을 바쳐 '킹메이커'로서 결국 그로 하여금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후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는데... 아마도 스콧, 젤다 부부 사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제목이 '조안'이 아닌 '더 와이프'라는 점에서, '젤다'라는 제목이 더 눈에 띈다. 


국내 최초로 '젤다 피츠제럴드' 아닌 '젤다'의 이름으로 '젤다'의 편에서 온전히 소개되는 그녀의 소설과 산문 모음집 <젤다>(에이치비프레스)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아주 필요한 책이라 하겠다. 젤다를 단순히 스콧의 뮤즈이자 재즈시대의 뮤즈에서 재즈시대의 당당한 작가이자 예술가로 나아가 시대의 일원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빛나는 여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대공황 이후 1930년대로 접어들자 스콧의 소설은 저물고 젤다는 정신착락을 일으킨다. 그들은 별거 생활에 들어갔고 스콧은 1940년, 젤다는 1948년 세상을 떠난다. 스콧의 소설은 이후 재평가되어 지금의 위치에 오른 반면, 젤다는 1970년 평전이 발표되어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뒤늦게 재평가되었어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보이듯 여전히 부정적인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 


이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함께 활동했던 영미 문학사 최고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그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데서 가장 크게 좌지우지되었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그의 그녀에 대한 평가'가 '그녀에 대한 평가'의 전부인 양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젤다는 1922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잡지에 단편소설과 산문들을 기고했다. 그녀는 작가였다. 20년대 후반엔 뒤늦게 시작한 발레임에도 발레단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을 정도의 수준에 올랐고, 30년대 중반엔 회화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그녀는 예술가였다. 


그런 그녀를 소콧은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여자가 어디 감히'라는 생각이 그의 정신을 지배했을 것이 분명하다. 젤다는 다방면의 재능과 기질을 타고났음에도, 스콧의 압력과 시대의 핍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니, 이길 수 없었다. 뒤늦게 우리를 찾아온 '젤다'라는 이름과 '젤다'의 이름으로 보는 글과 '젤다'라는 이름의 책은, 그래서 너무 반갑다. 


그녀의 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글은 여러 모로 편협하고 단편적이며 '멋'이 없다. 특히, 소설에서 두드러지는데 글이 향하는 중심은 있을지언정 정작 글의 중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자체로는 쉽게 잊힐 파편들이다. 


하지만, '멋'이 있다. 그녀만의 스타일이랄까. 앞서 말한 '멋'과는 다른, 애초에 시선을 편협하고 단편적이고 글이 향하는 중심에 둔다면 이만큼 멋있는 글도 없다. 화려한 기교 대신 대상을 향한 정성 어린 묘사가 있고, 풍부한 위트와 함께 날카롭게 번뜩이는 반어와 풍자의 기법이 엿보인다. 저자 본인 그 자체와 본인의 삶, 그리고 본인으로 대변되는 당대 '플래퍼'를 이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힘들 것이다. 


'극장 매니저들에게는 섹시함으로, 안목 있는 관객에게는 육체적 흡인력으로, 공연계의 저속한 방면에 널리 퍼져 있는 적들 사이에서는 재능 부족으로 통하는 특징이었다.'(소설 '재능 있는 여자' 중에서)

'그녀는 추파를 던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추파를 던졌고, 몸매가 좋았기에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체면이 필요 없었기에 얼굴을 분과 연지로 덮었고, 본인이 따분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따분해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을 늘 하고 싶었던 일과 의식적으로 일치시켰다.'(산문 '플래퍼 예찬' 중에서)


스콧이 그녀와 공저로 글을 짓고, 그녀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그녀의 모습을 묘사했던 게 전부 그녀의 재능에서 발현되었던 것이고, 그런 그녀의 재능을 스콧은 높이 사 인생뿐만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서 동반자로 함께 한 게 아니라, 분노하고 무시하고 깎아 내릴 뿐이었다. 젤다는 그런 모습을 두고, '피츠제럴드 씨는 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산문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 중에서)라며 날카롭게 번뜩이는 글을 서평을 썼다. 


결코 그녀를 영미 문학사에 빛나는 거장 아니, 재능이라고도 두둔할 이유도 마음도 없다. 이 책을 통해 젤다를 소개하는 엮은이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건 '젤다'라는 사람, 그 자체와 삶이다. 스콧이 스콧이라는 사람과 삶이 아닌 소설로 재평가 받았듯, 젤다는 젤다라는 사람과 삶이 재평가되어야 한다. 


젤다 - 10점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지음, 이재경 옮김/에이치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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