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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아담 샌들러의 코미디적 '똘끼'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연출적 '똘끼'가 만나다 <펀치 드렁크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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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펀치 드렁크 러브>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 포스터. ⓒ컬럼비아픽처스


아는 사람은 아는 천재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20대 때 장편 데뷔를 한 그는 두 번째 작품 <부기 나이트>로 영화계에 '파란과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센세이션널' 하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만드는 작품마다 족족 평단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데뷔 20년 동안 채 10편도 되지 않는 작품을 내놓았는데, 전부라도 해도 좋을 만큼 상업, 대중과는 거리가 먼 친 영화제와 친 평단적이었다. 개 중에 그나마 힘을 빼고 만들었다는 '로맨틱 코미디'가 2002년작이자 네 번째 작품 <펀치 드렁크 러브>이다. 


그의 영화들에는 여러 의미로 강렬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의 획기적이고 천재적인 연출력에 가려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사실 그의 작품 주인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감독 그 자신인 것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어땠을까?


'아담 샌들러'라고 하면 북미 흥행력 최강의 코미디언으로만 알려져 있다. 배우로선 아주 좋게 봐줘야 2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의 인생작이 바로 이 작품이다. 세 손가락으로 뽑을 수 있을 만큼 보기 드문 정극을 선보이는데, 평소 그를 좋아했든 싫어했든 신선하다. 그럼에도 선보이는 아담 샌들러의 코미디적 '똘끼'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연출적 '똘끼'가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 하겠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들의 사랑


그들의 사랑은 평범함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의 한 장면. ⓒ컬럼비아픽처스



조그만 청소용품 회사를 운영 중인 배리(아담 샌들러 분), 어느 날 아침 누군가가 회사 앞에 버리고 간 풍금을 사무실로 들여놓는다. 그와 동시에 여인 한 명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레나(에밀리 왓슨 분)라는 이름의 그녀는, 곧 배리의 여동생 소개로 다시 한 번 그의 앞에 나타난다. 


배리에겐 7명이나 되는 누나들이 있는데, 평생 그녀들에게 시달려온 그는 평소엔 절대 행할 수 없는 폭력적 행동을 가끔 보이고 참을 수 없는 울음이 가끔 터진다. 그는 한 번도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가본 적이 없지만, 비행 마일리지 쿠폰을 모으며 탈출을 꿈꾼다.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폰섹스를 하게 된 배리, 다음 날부터 끝없이 전화를 걸려와 협박을 일삼는 폰섹스 상대는 알고 보니 악덕 사기 업체의 일당이었다. 배리는 시달리는 와중에 레나와 가까워진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배리와 레나의 사랑, 그들은 그들만의 사랑을 이루고 이어나갈 수 있을까? 배리는 악덕 사기 업체의 끈질긴 협박과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까? 비행 마일리지를 모아 이 지옥을 탈출할 수 있을까?


전혀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


전무후무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의 한 장면. ⓒ컬럼비아픽처스



아담 샌들러의 코미디 영화들을 익히 알고 또 봐왔어도, '영화 배우' 아담 샌들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나도 아담 샌들러를 매우 싫어한다. 그의 코미디를 보고 있으면 나의 '급'이 하향되는 느낌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도 그만의 코미디적 요소가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그가 매우 훌륭하게 보여준 정신병리심리학적 로맨스 연기가 일품이었기에 완벽에 가깝게 가려졌다. 그건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와 일치한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OST들은 정녕 보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데 출중한 능력을 뽐낸다. 중간에 몇 번이나 영화를 스톱시키려 했는지 모른다. 감독이 작정을 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배리의 내면을 훌륭하고 완벽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을 하고 나선 감탄이 함께 했다. 


명백한 로맨틱 코미디, 한 남자가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자신과 비슷한 힘듦과 그 힘듦으로 인한 이상(異常)을 지니고 있는 여자를 만나 중화 또는 시너지를 일으켜 잘 된다는 내용,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오로지 감독의 역량으로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정신병리심리학적 로맨스 측면


정신병리심리학적 측면이 강하게 보인다.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의 한 장면. ⓒ컬럼비아픽처스



영화가 가지는 정신병리심리학적 로맨스 측면을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가보자. 해석에 정답은 없으니 어떻게든 생각해볼 요지는 있을 테다. 배리가 보이는 폭력적 성향은 자신도 알 수 없이 또 주체할 수 없이 때려부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무엇을 왜 때려부수는 것일까.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 이를 테면 평생을 두고 자신의 인생을 넘나들며 들들볶는 7명의 누나들의 잔소리, 그저 소통을 하고 싶었던 폰섹스 상대의 무지막지한 배신(?), 비행 마일리지를 다 모았음에도 8주나 기달려야 한다는 믿기 힘든 소식 등. 


배리는 그때마다 자기만의 방에 갇히는 동시에 벌거벗은 채 만인 앞에 내동댕이쳐졌고, 본인의 힘으론 해결할 수 없는 압박과 변화로 힘들어했다. 그럴 때마다 자기 안의 또 다른 나가 출현해 해결해버리든 그저 화풀이에서 그치든 하는 것이다. 현실, 현재의 배리로선 할 수 있는 건 마일리지를 모아서 단행하는 탈출뿐이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레나는, 그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게 티가 날 정도의 레나는, 그와 비슷한 듯한 정신병리심리학적 면모를 보이는 레나는, 기적과도 같다. 몇몇 상징성 다분한 명장면을 통해 배리의 레나를 향한 기적에의 척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데,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력이 돋보이는 가운데 로맨스적인 면모도 가득하다. 다양한 면모와 요소를 한통속으로 버무리는 게 아닌, 각각을 살리는 데 여지가 없는 완벽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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