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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국내 역대 최고의 (밀리터리) 공포영화 <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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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알 포인트>


영화 <알 포인트> 포스터. ⓒ시네마 서비스



1972년, 베트남전쟁도 끝나가는 무렵에 사단본부 통신부대에 "하늘소 응답하라, 여기는 당나귀 삼공" 무전소리가 들려온다. 당나귀 삼공은 다름 아닌 6개월 전 작전명 로미오 포인트, 일명 '알 포인트'에서 사라진 18명 수색대원 부대의 암호명이었다. 


사건을 수사하던 현병 수사부대장은 마침 사고를 치고 끌려온 최태인 중위(감우성 분)에게 따로 처벌을 내리진 않을 테니 자원부대를 이끌고 알 포인트로 가 흔적도 없이 행방불명된 수백대원들의 흔적을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린다. 최태인 중위는 엘리트 출신으로 얼마전에 있었던 큰 전투에서 홀로 생존하면서 훈장을 주렁주렁 받은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의욕이 없어 보인다. 


7명의 지원자와 한 명의 선임하사 그리고 최태인 중위까지 9명은 강을 건너 알 포인트로 간다. 그곳에서 7일간 수색을 벌일 것이다. 도중 베트콩과의 일전을 벌이고, 곧 발견한 비석에는 '손에 피를 묻힌 자, 돌아갈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안개에 싸여 낮 동안엔 식별이 힘든 그곳, 이틑날 새벽 머지 않은 곳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허름한 건물이 보인다. 야영을 하던 일행은 그 건물로 향하는데, 다음 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대원들이 하나둘 씩 죽어가는...


국내 최고의 밀리터리 공포물


국내 최고의 (밀리터리) 공포 영화로 오랫동안 칭공받고 있다. 영화 <알 포인트>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영화 <알 포인트>는 베트남전쟁 파병 40주년이 되는 2004년에 내놓은 공포영화이다.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군인들의 수색 작전을 배경으로, 원한으로 떠도는 귀신에 의해 또는 그 공포로 미쳐가는 동료들에 의해 군인들이 몰살당하는 내용이다. 


국문학과 출신으로 지금은 교수를 하고 있지만, 90년대 <하얀 전쟁>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링> <텔 미 썸딩> 등 주로 공포, 스릴러 장르에 두각을 나타냈던 공수창 감독의 데뷔작이 <알 포인트>이다. 


3년 뒤 비슷한 느낌의 밀리터리 공포물 <GP506>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화계에서 볼 수 없는 공 감독의 <알 포인트>는 최초의 베트남전쟁 배경 밀리터리 공포물이자 당연히 국내 최고의 밀리터리 공포물이기도 하다. 


나아가 영화는 국내 역대 최고의 공포영화로 칭송받고 있다. 1998년 <여고괴담>으로 붐이 일었던 공포물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해 꾸준히 만들어져 몇몇은 큰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정도를 제외하고는 명작은커녕 제대로 된 작품을 찾기도 힘들다. 


공포의 핵심


이 영화는 '공포'에 초점을 맞춰 다른 모든 것들을 수단화한다. 영화 <알 포인트> 포스터. ⓒ시네마 서비스



영화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를 긴장감과 공포를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다. 어떤 전쟁 영화를 보든 받는 느낌 말이다. 하지만 적과 본격적으로 대치하는 전투 장면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만큼, 전하고자 하는 공포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분명 본격적인 수색 작전 이전엔 9명이었던 인원이 어느새 10명으로 불어나 있다는 점과 최 중위를 비롯 몇몇 병사들에게 계속 보이는 귀신에의 공포,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는 것 같은 소문까지. 


여기에 긴장감을 한껏 유발하는 으스스한 배경음악과 적에 의한 죽음이 아닌 어이없고 불가사의하고 황당한 병사들의 죽음의 면면들이 겹치면, 자초지종도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의 극도 공포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알 포인트>는 다른 무엇도 아닌 '공포'에 초점을 맞춰 목적으로 하여 다른 모든 사항들을 수단으로 쓴다. 그 자체에 공포의 요소가 다분한 밀리터리를 가장 수단으로 쓴 것이고, 공포영화로서의 본분에 충실했기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베트남전쟁의 이면


베트남전쟁의 이면을 자연스럽게 들여다보는 훌륭한 스토리를 갖췄다. 영화 <알 포인트> 포스터. ⓒ시네마 서비스



9명의 각기 다른 캐릭터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나아가면서 다른 사연들이 소소하게 채워져 있는 바 그걸 들여다보는 것도 한 재미 하겠지만, 영화는 통으로 뭉뚱그려 '베트남전쟁'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베트남전쟁이라는 초유의 국제전은 명분이 전혀 없는 전쟁이었다. 내전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지극히 미국의 터무니 없는 망상과 자국 이익을 위한 조작으로 크게 번진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수의 군인을 파병하여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입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정치, 사회적 요건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일방적 주장을 할 순 없다. 거기에 참전한 수많은 장병들을 모두 싸잡아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베트남전쟁의 실상은 보다 개인적이고 지엽적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다.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전쟁에 임하여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자만이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점이나, 적과의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장렬히' 전사한 경우는 없고 터무니 없이 죽는 점이나, 알고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들인 병사 한 명 한 명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죽어야 하는지' 하는 점들 말이다.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파병이 어느덧 5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에 대해 누구도 속시원하게 말하기 힘들다. 참전 당시의 앞뒤상하좌우를 모두 살펴보아도 상반되고 충돌하고 모순적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가해자와 피해자와 가해자이자 피해자들이 생존하여 아픔을 주고 당하고 있다. 도무지 풀기 힘든 현대사의 숙제인 것이다. 


몇 가지는 감히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고, 우리나라 장병들은 그곳에 가서는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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