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독자에게]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 표지 ⓒ아시아
편집자로 일하면서 난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편집자뿐만이 아니라 어느 직종에서 일을 하든 마찬가지이겠지요. 급작스레 결정된 사항, 많지 않은 준비 시간, 팔리지 않을 게 뻔한 상품,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중요한 행사 관련 책, 시간과 공력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물질적으로 많은 걸 남기지 못하는...
'아시아에서 평화를 노래하자'는 기치로 지난해 시작된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올해 2회째를 맞이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광주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정식으로 개막하기 전 초청된 아시아 작가들이 가장 먼저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하는 만큼, 민주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앞장 섰던 광주의 기치와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은 주요 프로그램과 별도이지만 주요 구성 형식의 하나로 '아시아문학상'을 운영합니다. 아시아 출신 작가가 대상이 아니라, 아시아 문학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 작품을 쓴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데 아무래도 아시아 작가일 가능성이 크겠죠. 몽골 시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가 제1회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었습니다.
이번 제2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 우리앙카이 시인이 초청되었는데요. 그에 맞춰 '제1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작가 작품집'을 저희 '아시아 출판사'에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이 페스티벌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만, '아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출판사답게 많은 아시아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해왔던 게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죠. 제2회 아시아문학상에는 베트남 소설가 '바오 닌'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이 분 또한 저희 아시아 출판사와 각별한 인연이 있기에 내년에도 저희가 '제2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작가 작품집'을 제작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시를 모르는 편집자의 번역시집 편집
개인적으로, 문학 편집자임에도 불구하고, 시를 잘 알지 못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시를 싫어합니다. 종종 시를 접하게 되거나 접하게 될 수밖에 없을 때면, 제 스스로가 한없이 성질이 급하구나 하고 자책하게 되죠. 단어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 음미하며 감상하는 것도, 한 편 전체를 달달 외우듯 감상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 저이지만 'K-포엣' 시리즈를 담당하며 백석, 안도현, 허수경 시인 등의 시선집을 단순 감상 아닌 책임 편집까지 해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는 '내겐 너무 먼 당신'입니다. 더군다나 책을 팔아 이윤을 남겨야 하는 출판 편집자 입장에서 시집은 '내주는' 콘텐츠라고 생각하기 쉽죠.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요.
와중에 '제1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작가 작품집'이라는 부제로 '담딘수렌 우리앙카이'라는 몽골 시인의 시 62편을 번역하여 시집으로 묶어내야 하는 작업은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종종 작업을 해왔던, 몽골 문학에 정통한 '이안나' 번역가께서 함께 해주셔서 그나마 수월했지만 말이죠.
담딘수렌 우리앙카이 시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중을 열광시키기보다 후학들에게 존경받고 비평가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는 '몽골 대표 시인'인데요. 노벨문학상 아닌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된 적이 있는 이력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국내엔 당연히 처음으로 소개되는 시인의 시집인데요. 개인적으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이질적이지 않았던 몽골 감수성
몽골이라는 나라와 그곳에 뿌리내린 민족이 우리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민족과 맞닿아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시들은, 시들의 감수성은, 감수성의 사유는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시들이 몽골적, 즉 유라시아 대륙의 유목민 감수성이 지극히 풍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 시집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아시아)에 실린 62편의 시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시는 "봉투 가득 겨울이..."라는 딱 한 줄 짜리 시 <편지>입니다. 우리나라 그 어떤 대중적 서정시 못지 않은 서정성을 자랑(?)합니다. 비록 그 서정성이 우리나라 1990년대에 어울리는 듯합니다만.
표제이기도 한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에는 그를 대변하는 수식어 '시대의 양심'의 한 모습이 보입니다. "(중략) 가여울 만치 연약한 조국의//안쓰러운 대지에 터지며//뜨거운 내 온 마음의 날개를//그리스도의 손바닥, 발끝처럼//쾅쾅 십자가에 못 박는다!" 시 해석을 해본 적도 없고 하고 싶은 적도 없지만, 이 시를 통해 시인이 몽골적이지 않게된 아픈 조국을 향한 슬픔을 내보이고자 한다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한편, '몽골적'이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나무>라는 시에 "나뭇잎의 아우성은 너의 말인가, 바람의 말인가?//가을의, 마음을 술렁이는 고요는 너의 침묵인가,//자취가 끊어진 새들이 남겨놓은 여운인가?"라는 어구가 보이는데, 자연과 교감하는 이 모습을 통해 모든 자연만물에 신이 존재하며 인간은 자연을 존중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몽골 유목민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연 친화적인 몽골적 면모는 비단 이 시뿐만이 아닙니다. 제목만 보아서도 알 수 있는, <두루미> <해와 물과 함께> <말에게 물을 먹이다> <고향의 산들> <나비> <눈과 흙... 나...> <나의 몽골> <몽골 돌> 등에서도 엿볼 수 있죠. 그야말로 생전 접해본 적 없는, 접해보기 힘든 몽골 문학, 몽골 시의 정통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집 한 권이지만, 가장 몽골적인 것이 가장 아시아적이고 가장 세계적이게 되어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문학은 그래도 몽골보다는 훨씬 큰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을 텐데요. 과연 가장 한국적인 걸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애초에 가장 한국적인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고요.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아시아적이고 가장 세계적이게 되어 가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의심 없이 이어나가는 문인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 - 담딘수렌 우리앙카이 지음, 이안나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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