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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흥미로운 설정에 인간 심리를 건드리는 변주... 그 끝은? <양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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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양의 나무>


영화 <양의 나무> 포스터. ⓒ영화사 오원



내세울 건 사람들도 좋고 생선도 맛있는 것뿐인 평화롭고 작은 어촌 마을 우오부카, 6명의 낯선 이들이 신규로 전입온다. 시청 직원 츠키스에(니시키도 료 분)는 상사의 지시로 거주지도, 근무지도 정해져 있는 그들의 정착을 돕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정체를 의심을 품게 된 그는 상사에게서 여러모로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지자체가 고용과 주거를 보장하면 신원보증인 없이 수감자들을 가석방시킬 수 있게 정책이 바뀌면서, 인구 과소의 어촌 마을 우오부카가 이를 받아들였고 그들은 최소 10년간 우오부카 소속의 시민이 되어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모두 갖가지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이었다는 사실...


어느 날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 새로 전입 온 6명이 살인범이었다는 걸 유이하게 아는 츠키스에는 그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대놓고 야쿠자인 스기야마를 제외하곤 5명 모두 지금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람을 죽였던 이들...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흥미로운 설정, 기대되는 변주


영화 <양의 나무>의 한 장면. ⓒ영화사 오원



좋은 원작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왔던 일본의 믿을 만한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2006년에 장편을 데뷔한 그의 작품들은 2010년 4번째부터 국내에도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은 <종이 달>, 199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를 훌륭하게 변주해내어 깊은 인상을 주었다. 


드라마를 기본으로 그 위에 다양한 장르를 덧씌우고 흥미롭기 이를 데 없는 설정과 자유자재 변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시킨 그의 신작 <양의 나무>가 국내에 상륙했다. 이 영화 역시 기본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어떤 변주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6명의 평범한(?) 살인범 수감자가 가석방되어 들어오는데 얼마 안 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설정,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들을 향한 다양한 형태의 시선들, 마을 전설과의 접점에서 벌어지는 변주. 


현대사회적 문제들, 그리고 인간 심리의 근간


영화 <양의 나무>의 한 장면. ⓒ영화사 오원



영화는 일본의 현대사회적 문제들인 가석방, 지방의 인구 과소, 고령화 등을 터치하며 기본 설정을 정하는 동시에 이목을 끌고, 그 반석 위에서 인간 심리의 근간을 과감히 터치하며 궁극적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그들을, 살인범들을 믿을 수 있겠냐고. 용서를 하고 안 하고가 아닌, 믿을 것인지 믿지 못할 것인지의 질문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살인범을 용인하고 용서하는 것과 용인하지 못하고 용서할 수 없는 건 상대적으로 가능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절대적으로 어렵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한 후에도, '믿음'을 주는 건 또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살인범이 아닌 평범한 사람과도 믿음을 주고 받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는 누구나가 아주 절실히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살인범'이라는 낙인은, 그가 살인과는 전혀 상관 없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실수를 했을 때도 '역시 살인범이야. 살인범인 이유가 다 있지. 괜히 살인을 했겠어.'라고 생각하게 되어 '믿음'과는 하등 멀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악독한 범죄인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을 향해, 인간이 가장 컨트롤하기 힘든 믿음과 불신이라는 절대적 반대의 입장이면서도 한끗 차이로 경계에서 오가는 두 개념 중 하나를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인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이라면 어떻게 할 수밖에 없을까.


헐거운 용두사미


영화 <양의 나무>의 한 장면. ⓒ영화사 오원



츠키스에가 우리를, 평범한 인간을 대변한다. 그는 분명 선해 보이는 사람이다. 더불어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마을 사람, 아버지까지 최대한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지만 그 자신이 관련된 건 객관적이기 힘든 것 같다. 그와 별개로 일어날 사건은 일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란 절대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길 바라서도 안 된다는 걸 시사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츠키스에를 중심으로, 6인끼리의 대면이나 얽힘이 아닌 츠키스에와의 대면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영화가 질문을 던지는 대상이 츠키스에를 내세운 평범한 인간들, 즉 영화 밖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영화 자체도 그 때문인지 뒤로 갈수록 실망의 길로 가는 것 같다. 


우리가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알고 싶었던 건 우리가 아닌 살인범들이었을 테다.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보이 A>가 훌륭하게 보여준 감성 말이다. 거기에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더해져 얽히고 설킨 와중에 아픈 감성들의 부딪힘이 극에 다다르면 더할 나위 없는 서스펜스 스릴러 드라마가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두고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와 '헐겁다'라는 형용사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리 평범한 스릴러의 틀에서 벗어나 스릴러 앞에 '심리'를 붙이며 새로운 스타일 변주를 시도했다고 하나, '빵' 터져야 할 후반이 오히려 전반보다 헐거운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래도, 전반이 적어도 설정에서는 용에 비견될 정도로 괜찮은 건 그 자체로 이 영화를 볼 만한 충분한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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