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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남북 해빙 시기에 더 읽혀야 할 책, <팔과 다리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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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장강명 작가의 <팔과 다리의 가격>


<팔과 다리의 가격> 표지 ⓒ아시아



장강명 작가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인권 단체에 후원을 하기도 하고, 북한 문제에 대해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도 했죠. 일종의 사명감이랄까요. <팔과 다리의 가격>(아시아)는 장강명의 사명감을 가장 잘 표현해낸 첫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나온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예담)이 있습니다만, 장강명이 사명감을 갖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진 않았죠. 


그는 문학계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전무후무할 네 개의 문학공모전 수상으로 문학계의 ‘적자’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순문학 아닌 장르문학 또는 대중문학에 천착한 ‘서자’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10년 넘게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터득한 건조한 문체에, 그때그때 들여다본 현실을 비판하고 조명하는 데 ‘장르’를 도구로 사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그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궁극적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업작가가 되면서 재미있지만 날카로운 현실 비판 소설을 내놓았고 최근 들어선 더욱 직접적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화두를 던지는 논픽션을 내놓았습니다. 그에게서 ‘조지 오웰’의 스멜(?)이 나는 건 비단 저뿐인가요? 그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길의 종류는 같은 것 같습니다. 


조지 오웰은 풍자와 투철한 비판 정신에 입각해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비판하는 글을 여럿 발표했죠. 르포와 소설과 에세이를 오갔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신문사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이, 그의 글이 나아가는 그 끝엔 ‘전체주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자 궁극적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장강명 작가의 '북한 문제'


장강명에게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는 ‘북한 문제’일까요. 그가 그동안 내놓은 책들, 『표백』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당선, 합격, 계급』 등으로 한국의 기막힌 현실을 다방면으로 비판해왔던 건 ‘빅픽쳐’였던 것일까요. 현실 비판 작가로서의 확고한 자리매김. 비판의 방향을 북한으로 틀어도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아니, 굉장히 영리해 보입니다. 한국 비판=북한 옹호, 북한 비판=한국 옹호의 구도를 생각하기 쉬운데, 그 구도를 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엔 북한 ‘인권’ 문제라는, 인권이 붙고 인권은 곧 ‘인간’이 됩니다. 그가 바라보는 궁극적인 대상은 인간 또는 개인이 되는 것이고, 비판의 대상은 사회 혹은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는 그걸, 즉 북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팔과 다리의 가격>에서 대상이 되는 ‘이 사람’ 지성호 씨의 경우, 장강명 작가가 기자 시절 때인 5년 전에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죠. 그는 북한인권단체이자 북한이탈주민 지원단체 NAUH의 대표로, 북한의 실상과 인권 문제를 알리며 북한이탈주민 구출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지성호의 소년 시절 이야기이자 동시대 ‘고난의 행군’ 실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장강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북한 문제’의 일환이긴 하지만, 거기에 스며있을 수밖에 없는 직접적 정치·이념의 사항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니, 저자 본인이 이 책이 그런 길로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히죠. 


제목에서 암시하듯 지성호 씨는 한쪽 팔과 다리가 없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 오직 생존을 위해 기차에서 석탄을 훔치고는 제때 뛰어내리지 못하고 전봇대에 부딪친 결과라고 합니다. 고난의 행군이 낳은 피해를 떠앉고 진정한 고난으로 나아간 모습이랄까요. 저자가 묘사한 그때 그곳에서의 소년 지성호의 처참한 모습은 치가 떨리고 모골이 송연합니다. 


'고난의 행군'과 소년 지성호의 이야기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고난의 행군 당시 소년 지성호와 가족의 파란만장한 여정은 아닙니다. 그들의 여정, 특히 소년 지성호의 여정을 통해 본 ‘고난의 행군’, 나아가 고난의 행군을 통해 본 ‘북한 실상’이죠. 그래서 책의 성격이 조금 특이합니다. 인물 논픽션이자 실상을 파헤치는 르포이기도 한 것이죠. 


저자는 소년을 소개하고, 소년이 당한 사고를 소개하기 전에 ‘…… 대하여’ 3탄을 준비합니다. 마치 소년이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고, 소년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야기하려는 게 부가적인 것 인양 배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들은 ‘굶을 때 생기는 일’ ‘탄광마을의 삶’ 그리고 ‘미공급 사태’입니다. 보편적 실상, 북한의 실상, 고난의 행군 실상을 차례로, 그리고 점점 더 디테일하게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건 다름 아닌 보편적 실상, 굶을 때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매우 배가 고파지는 현상에서 시작해 먹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며 결국에는 필히 죽고 마는... 고난의 행군, 즉 미공급 사태 당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소 33만 명 이상이 죽은 이유가 바로 굶어 죽은 것, 아사(餓死)였던 것이죠. 


탄광마을의 삶은 소년 지성호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 한편 1990년대 북한의 생생한 실상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은 실상을 내보입니다. 특권계층에 속한 소년의 장래 희망은 노동당 간부가 아니라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을 일으켜 남한을 공산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라죠. 일상 전체가 잿빛은 아니었던 바, 착하고 순박한 마을 사람들과의 추억은 보편을 기반에 두고 있습니다. 


미공급 사태는 수많은 이들이 눈앞에서 굶어죽는 상상초월의, 상상불가의, 상상불허의 현장입니다. 완벽한 통제, 감시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재앙은, 통제와 감시만이 선사하는 최악의 일이었습니다. 그곳에 조금의 자유라도 있었다면 절대까지는 아니라도 그 정도의 죽음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었을 테죠. 모든 걸 떠나서 너무나도 안타깝고 치가 떨리는 죽음입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기 


장강명 작가가 주목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에 대해서, 그때의 참혹함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잘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요. 저자는 말하죠.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이들에겐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그에 맞춰 관심을 가지는 반면, 눈앞에서 굶어 죽어간 동포들에겐 어떻게 이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느냐고요. 동포 아닌 인류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이죠. 


그 대상이 ‘북한’이기에, 고난의 행군에서 살아남아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내려와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북한이탈주민’이기에, 남한의 보수와 정치·이념 지향점이 맞닿을 수밖에 없기에, 관심을 가질 수 없던 이들이 많았을 테고 관심을 가졌어도 내색할 수 없던 이들이 많았을 테며 관심을 가지기 싫었던 이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저자의 바람과는 별개로 솔직히 정치·이념적으로 생각의 물꼬가 자연스레 터지지 않기가 힘듭니다. 우리 모두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자의 말마따나 한국 사회의 정치·이념 지형에서 북한 문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진영 간 정쟁 소재로 소모되다가 갈피를 잃지 않나요. 


다만, 이 책이 저자의 바람대로 그런 길을 걷지 않는다면,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 속절없이 굶어 죽어간 인민들의 존엄만을 생각하는 데만 그 몫을 다한다면, 우리 한국 사회는 비로소 바람직한 사회로 진입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해하고 공감하고 인정하는 사회, 우리 모두가 바라지만 너무나도 진입하기 힘든 사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팔과 다리의 가격>은 이 남북 해빙 시기에 오히려 더 많이 읽혀야 할 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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