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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깨시민'을 위한 섬뜩한 독재 교육 우화 <송곳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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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송곳니>


영화 <송곳니> 포스터. ⓒ필굿 엔터테인먼트


모든 것엔 기원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5만 명 전후의 흥행성적과 폭발적인 비평성적을 기록한 바 있는 <더 랍스터> <킬링 디어>의 감독 요르고스 란디모스, 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잔인하고 빙퉁그러진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통렬한 우화를 선사하는 그의 기원은 어디일까. 


그리스 태생인 그는 <더 랍스터> 이전까진 4편의 영화를 당연하게도 오로지 그리스를 배경으로만 영화를 찍었다. 그중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더 랍스터> 이전 그의 이름을 알린 <송곳니>가 요르고스 란디모스 영화의 기원 또는 스타일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고정팬도 생기고 '젊은 거장'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그의 시작은 어땠을까. 아니, 이 영화로 시작을 알 순 없으니, 지금은 확립되다시피 한 그의 스타일의 시작은 어땠을지 궁금증을 갖는 게 맞을 것 같다. <송곳니>는 그에 대한 답을 충분히 줄 수 있을 것이다. 


잔인하고 빙퉁그러진 세계


영화 <송곳니>의 한 장면. ⓒ필굿 엔터테인먼트



오늘 배울 단어는 '바다', '고속도로', '소풍', '카빈총'이다. 그중 '바다'를 들여다보자. '바다'는 나무 팔걸이가 달린 안락의자로 집의 거실에 있는 걸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예문은 "서 있지 말고 바다에 앉아서 나랑 얘기나 해요"란다. '고속도로', '소풍', '카빈총'에도 상식과 동떨어진 의미가 부여되고 예문이 나열된다. 


도시 근교의 대저택, 수영장과 정원이 있고 높은 담장이 둘러진 그곳에 세 남매가 아빠한테 기괴한 교육을 받는다. 엄마는 교육을 함께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아빠만 차를 타고 저택 밖에 나갈 수 있는 걸 제외하고 나머지는 집밖에 나가는 것도 허락 없이 안 되고 저택 밖에 나가는 건 절대 안 된다. 아니, 송곳니가 빠지고 나서는 나갈 수 있다. 나갈 땐 차를 타야 하는데, 운전은 송곳니가 다시 나고 나서야 배울 수 있다. 


이 잔인하고 빙퉁그러진 세계를 창조해낸 건 아빠다. 그는 엄마와 공조해 생활의 수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철저히 통제한다. 매일매일 시행되는, 외부와는 전혀 다른 의미 체계의 단어 외우기. 즉, 교육. 그리고 다시는 '불순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이다. 


아빠는 막내아들 남자 구실 '교육'과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의 여자 경비원을 지에 들인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지 못하게 첫째딸과 교류 아닌 교류를 하는데, 비디오 테이프나 헤어젤을 가져다준다. 첫째딸은 그렇게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고 결국 생각할 수도 없었던 계획을 시도하려 하는데...


독재와 교육


영화 <송곳니>의 한 장면. ⓒ필굿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포스터를 통해 대놓고 메시지를 전한다. '전 세계가 격찬한 독재에 대한 통렬한 우화!' 전 세계가 격찬한 것도 맞고 독재에 대한 이야기인 것도 맞고 우화인 것도 맞으니 더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순 없으니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영화의 전반에 흐르는 '교육'을 말해보고자 한다. 


교육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 능력을 후천적으로 올바르고 수준높게 끄집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자와 피교육자 모두 어느 하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 사실상 동등한 관계로서 존재해야 한다. 인간이 절대 완벽할 수 없기에, 스승이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에 일방적이면 안 된다. 


바로 영화 <송곳니>에서처럼 말이다. 스승인 아빠가 제자인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그리고 일부러 '잘못된' 사실을 주입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교육의 중요성을 몇 번이고 다시 되새기게 된다. 물론 여기서 아빠가 주입시키는 사실이 '잘못된' 게 아닌 '다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게 중요하진 않다. 


반쪽 짜리 독재 우화


영화 <송곳니>의 한 장면. ⓒ필굿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독재'의 모습엔 '왜'가 빠져 있다. 오로지 '어떻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건 다분히 의도한 설정일 텐데, 의도한 게 아니라면 반쪽 짜리 독재만 보여주고 있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감독은 독재를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황당무계한 시스템이라고, 독재자를 대상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납득되는 이유 없이 오로지 일방적으로 주입만 시키는 바보괴물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난 독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독재란 물 샐 틈 없는 대의명분을 갖고 겉으로나마 철저하게 눈높이를 맞춘 생활을 영유하며 일방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의미를 주입시키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이 아닌 너른 마음으로 회유책을 쓰기도 한다. 영화에서의 아빠는 절대 독재자와 같을 수가 없다.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나. 또는 회유 당해 전향하고 말았나. 그건 독재자가 펼치는 독재라는 것에 능력과 매력이 있었다는 이야기겠다. 그래서 우린 이 영화를 통해 독재 그 자체가 아닌 독재에의 우화를 들여다보는 정도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첫째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져 성공하고서는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매우 궁금하다. 독재의 가장 큰 폐해, 독재를 당하는 사람들이 객체가 되어 길들여진다는 것. 독재자의 바람대로 우매한 민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독재를 끝내고 나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게 된다는 것. 이런 생각들을 독재자들이 계속 양산해내고 주입시킨다는 것. 우리나라가 독재를 청산한 지 30년, 앞으로 30년은 언제 다시 출현할지 모를 독재를 주시해야 한다. 언제나 깨어있는 시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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