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
영화 <소셜 네트워크> 포스터.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그가 손을 댄 영화와 드라마에서 단 한 번의 미스도 없었다. CF 감독으로 출발해 광고계를 평정하고 할리우드의 눈에 들어 1992년 <에일리언 3>으로 데뷔한다. 3년 만에 들고온 <세븐>으로 평단과 흥행 대박, 이후 그가 들고온 작품들에게서 실망과 실패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천재 감독 데이비드 핀처 이야기다.
감각적인 스릴러로 이름을 드날린 후 드라마로 선회해 2008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세련된 영상미와 감각적인 편집은 어디 가지 않고 상향되었다. 2년 뒤 나온 또 다른 드라마 <소셜 네트워크>는 데이비드 핀처의 연출 능력이 최상위로 극대화된 작품이다.
2010년 당시 페이스북는 유례없는 상종가에 있었다.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페이스북로 대표되는 SNS는 그 영향력이 극대로 확대되며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버렸다. 가히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대격변, 자연스레 부작용이 생겨날 수밖에.
영화는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립 과정과 몇 년 후의 2개의 소송 과정을 교차로 보여주며, 동시에 마크 저커버그가 몸소 소셜 네트워크의 실체 또는 이면을 들춰내게 한다. 이보다 시의적절한 콘텐츠를 찾기 힘들 정도로,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페이스북 창립과 소송 이야기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하버드에 다니는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 여자친구를 비하해 차이고 기숙사로 들어와 블로그에 여자친구를 비방하는 글을 올린다. 그러곤 친구들의 아이디어와 도움으로 하버드 모든 기숙사의 여학생들 사진을 끌어모아 얼굴을 비교하는 사이트 '페이스매쉬'를 만든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그는 유명인사가 된다.
이에 하버드 내 엘리트클럽 중 하나의 소속이던 엄친아 윙클로스 형제(아미 해머 분)와 디브야 나렌드라가 마크에게 접근한다. 하버드 배타적 커뮤니티인 하버드 커넥션을 만들고자 하는데 프로그래밈을 담당해달라는 거였다. 마크는 곧바로 수락하지만 이후 한 달 넘게 잠수를 타고는, 그 사이 친구 에두아르도 '왈도' 새버린(앤드루 가필드 분)의 투자로 'The Facebook'을 론칭해버린다.
'The Facebook'은 공전의 히트, 엄청난 인기를 얻고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왈도는 광고를 시작해 돈을 벌자고 반면 마크는 지금의 근사함을 잃지 말자는 부딪힘, 마크가 윙클로스 형제와 디브야의 하버드 커넥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내용의 소송 등이 진행되며 삐그덕댄다.
와중에 냅스터 창립자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 분)가 여러 사업적 제안까지 해온다. 그에 비하면 아마추어 수준인 왈도와 숀의 제안이 솔깃한 마크, 'The Facebook'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여자, 콤플렉스, 돈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소셜 네트워크>는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초창기 유명한 실화를 기반으로 당사자 중 하나인 새버린이 자문한 논픽션 <우연한 억만장자>를 원작으로 했다. 유명한 실화란 다름 아닌 마크 저커버그를 상대로 한 2개의 소송으로, 윙클로스 형제와 디비야가 소송을 건 저작권과 새버린이 소송을 건 주식 계약이다.
영화는 빈틈 없고 반 박자 빠른 듯한 편집으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흥미로울 것 없이 치졸하기만 한 초창기 이야기를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롭게 펼쳐낸다. 그들은 모두 똑똑한 머리와 혹은 좋은 집안까지 등에 업은 채 지금은 초거대 갑부로 군림하고 있지만, 그 시작은 거창한 게 아닌 '여자' '콤플렉스' '돈' 등이었다. 소송도 마찬가지이고...
윙클로스 형제와 디비야가 하버드 커넥션을 만들고자 했던 건 보다 손쉽게 여자를 만나려는 이유였고, 마크가 'The Facebook'을 더 키울 수 있었던 발판이 여자였으며 더 키우고자 했던 이유는 콤플렉스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모든 이들의 최종 목표는 물론 더 많은 돈이다.
우리가 21세기 초에 맞이하게 된 네트워크 혁명의 뿌리와 과정과 결과가 여자, 콤플렉스, 돈이라는 슬픈 결말에 이르는 것이다. 슬프지만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건 그게 인류 역사이기도 하고 인류가 이룩해왔던 혁명의 본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퉈 나서서 다방면으로 해석하고 포장하기에 알기 힘든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소셜 네트워크>는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이 아닌 현 시대의 이야기다.
이 시대의 신화이자 전설이자 혁명의 치졸하고 치명적인 치부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이 영화가 대단한 건 현 시대의 이야기와 본질을 알게모르게 깨닫게 하면서도, 소셜 네트워크 자체가 갖는 본질과 문제점도 영화의 핵심에 가깝게 포진시켜 내보여 포장 아닌 포장을 하는 능력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마크 저커버그를 앞세워 그가 (지금은 훨씬 뛰어넘지만) 당시 5억 명의 친구를 얻고 50조 원이 넘는 자산을 지니게 되었지만, 진짜 친구들은 모두 떠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 것이다.
SNS를 하는 사람과 SNS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나를 보여주고 싶고 남들이 뭐하는지 알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나를 보여주기 싫고 남들이 뭐하는지 별로 알고 싶지 않으며 '그런 소통'을 해서 뭐하나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페이스북 친구들이 3500명, 카카오스토리 구독자가 19000명, 블로그 방문자가 1900000명에 이르지만, 그중에 오프라인에서 만나 '진짜 소통'을 하는 사람은 0%에 수렴한다. 또한 그것과 별개로 친구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가상의 친구들을 사귀고 '관리'할 동안 실제의 친구들에겐 그만큼 신경을 쏟지 못하게 되는 걸까.
페이스북 덕분에, 카카오톡 덕분에 전국은 물로 전 세계와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 부작용을 생각하기도 전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미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가끔 옛날 생각을 한다. "그땐 어떻게 그리 '불편'하게 살았지?"
우린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하게도, 보다 외롭지 않으려고 보다 공감하고 보다 오가는 게 많은 세상을 만들려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반대급부로 말이다. 영화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신화이자 전설이자 혁명의 가장 치졸하고 치명적인 치부를 드러내었다. 이 또한 외면할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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