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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눈, 책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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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표지 ⓒ메디치



지난 2004년 11월 개최된 중국고도학회 회의에서 정저우가 중국 8대 고도 중 하나로 공인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대표 고도는 중국 역사상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도읍 중에서 여러 면에서 명망이 높아 공인된 도읍을 말한다. 최초 논의될 당시엔 시안, 뤄양, 카이펑, 난징, 베이징의 5대 고도였는데, 항저우와 안양 그리고 정저우가 합세했다.


이 도시들 중 뒤늦게 합세한 안양과 정저우는 고대 상(은)나라 때 도읍이다. 안양은 상나라의 도읍인 은허가 발굴된 곳이고, 정저우 또한 상나라의 도읍인 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내부에서는 쉬이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만 중국 외부에서는 쉬이 인정할 수는 없는 고도들이다. 


<중국을 빚어낸 여서 도읍지 이야기>(메디치미디어)는 제목에서처럼 중국 6대 고도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최초의 5대 고도인 시안, 뤄양, 카이펑, 난징, 베이징에 항저우를 추가한 6대 고도. 그래서 책은 '중국을' 다루지만,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책은 절대 아니다. 비판적인 시선이 다분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중국 역사 이야기를 읽다가도 흠칫 놀라고 화들짝 생각에 미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중국 역사를 대하는 명백한 논조


책은 우리에게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좋은 의미로 여기저기서 귀가 따갑게 들었거나 지나가면서 얼핏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을 짜깁기해놓았다. 중국의 여섯 도읍지 3000년 이야기는 새로울 게 하등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저자의 시선이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건, '하나라' 논쟁에 관련한 부분이다. 책은 친절하게도 면지를 이용해 여섯 도읍지의 위치와 역대 중국에 존재했던 왕조들의 도읍지를 정리해두었다. 책에 정리된, 즉 저자가 정리했을 역대 중국 왕조에 하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나라가 중국 왕조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상나라가 BC 1600~BC 1646이고 서주가 BC 1646~BC 771이라고 되어 있는데, 큰 실수인 듯하다. 공통으로 BC 1646를 BC 1046으로 고쳐야 하겠다.)


저자의 중국 역사를 대하는 명백한 논조가 반영된 모습이라 하겠다. 지난 1996년 중국 국가주의 프로젝트의 역사 부분 중 하나로 '하상주단대공정'이 실시되어 하, 상, 주나라 세 중국 고대 국가 존재가 확정된 것이다. 하지만 다분히 중화주의적인 의도가 엿보이지 않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의도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우린 중국을 알아야 한다. 건국 이후 30년을 지나 개혁개방 이후 30년도 지난 지금,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몽'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 실현의 작동방식에서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게 아닌 현재와 미래로까지 뻗어나간다. 고로 우리는 중국의 역사를 가장 잘,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도읍지'를 택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처럼 땅덩어리가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역사라면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흥미로운 일이거니와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여섯 도읍지


장안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시안'은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한, 중국은 물론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 중 하나라 꼽히며, 개척 2000년이 넘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다. 이곳엔 수많은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도,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는 실천 동력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다. 


시안은 중국 역사에서 초반과 중반에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나라들인 주, 진, 한, 수, 당 등의 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했다. 그 기간이 도합 1100년을 넘어 '천년고도'라는 근사한 별명(?)도 갖고 있다. 


반면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750여 년 전 원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35여 년을 제외하곤 쭈욱 도읍지로서 역할을 다 해왔다. 이곳 또한 시안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끊기지 않고 내려오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기에 남다르다 하겠다. 앞으로의 중국은 다름 아닌 베이징과 함께 하지 않을까. 


베이징은 근대 중국의 멸망과 함께 쓰러졌지만, 현대 중국의 부활과 함께 전에 없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현대화된 글로벌 도시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베이징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으니, 고대 베이징성의 중심을 관통하여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일직선인 '중축선'이다. 이 선의 상징은 지고무상의 황권이고, 그것은 곧 작금의 중국이 나아가고자 하는 궁극일 것이다. 


뤄양, 카이펑, 항저우, 난징은 중국 7대 고도 혹은 중국 8대 고도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명망 높은 도시들이다. 중국 역사상 각각 수백 년씩은 도읍을 한 곳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뤄양은 '천하의 중심'이고, 카이펑은 중화민족의 '불요불굴과 자강불식의 정신'을 구현한 곳이며, 항저우는 쑤저우와 더불어 '천당'에 비유할 만큼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난징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상기하게 만든다. 


책은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지만 동시에 자칫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협소한 시각으로만 중국을 바라보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말했듯 중국처럼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일수록 '중심'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편하겠'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천대받고 소외받는 중심 아닌 '소수'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참으로 많다. 단순히 생각하면, 수많은 중국 역사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때론 그 자체로, 때론 비판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조금 더 심층적으로 생각하면, 한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눈 즉 '공간'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통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꺼운 책을 끝내고 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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