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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빈민을 향한 묵념, 부자를 향한 선언, 자본주의를 향한 선전포고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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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표지 ⓒ문학동네



1997년 <작은 것들의 신>으로 데뷔와 동시에 부커상을 거머쥔 아룬다티 로이. 부커상이 노벨 문학상,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며, 한 해 동안 영연방 국가에서 영어로 씌어진 가장 뛰어난 소설 작품에게 선정하는 만큼 아룬다티 로이의 데뷔는 충격적이었다. 


인도를 배경으로 사회의 관습과 제도가 한 가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린 이 작품 이후 20년 넘는 시간 동안 소설을 더 이상 내놓지 않고 있는 그녀는, 인도로 돌아가 반체제 활동과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생존의 비용>, <9월이여 오라>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등에 그녀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문학동네)는 지난 2014년 출간한 르포르타주 작품으로,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인도의 모습을 까발리고자 한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같은 르포르타주이거니와 내용도 상당 부분 겹쳐서, 저 작품을 접했다면 이 작품을 접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듯싶다. 


인도를 배경으로 논하는 현대 자본주의 작동 방식


책은 현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르포르타주로 논한다. 시작은 인도 최고의 갑부 무케시 암바니 소유의 사상 최고가 집인 안틸라이다. 그곳엔 총 27층에 헬리콥터 이착륙장 세 곳, 엘리베이터 아홉 대, 공중정원, 무도회장, 웨더룸, 체력단련실, 여섯 층에 이르는 주차장, 그리고 600명의 하인이 있다. 그 모습은 인구 부자 100명이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인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역시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이기도 할 것이다. 즉, 세계 최악의 자본주의 국가. 인도를 넘어 세계적인 갑부인 무케시 암바니와 함께 하루 3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유령같은 사람들이 8억 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빚에 쪼들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5만 농민의 숫자가 너무 적어보일 정도이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인도는 지난 1991년 신산업정책을 내세우며 엄청난 성장일로를 걸었다. 그 결과 말도 나오지 않는 소득불균형과 빈부격차가 생산되었을 뿐이다. 저자가 통찰력 있고 강력하면서도 서늘하게 밝혀내는 그 과정은 충격적이다. 인도 부자들은 '국제적 기업'이라는 탈을 쓰고는 돈으로 모든 짓을 저지른다. 


이념적, 종교적, 정치적 갈등을 빌미로 토착민을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학살하고, 나아가 기업 자선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기묘하고 온건한 언어를 진화시켜 포용과 연대의 능력으로 정부와 정당과 선거와 법정과 미디어와 진보적 여론 그리고 민중까지 포섭하고 관리한다. 


저자는 지난 2001년 국회의사당 공격의 주요 피의자였던 '무함마드 아프잘 구루'의 사법살인이 그 연장선상의 끝에 위치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영유권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출신으로, 2012년 2월 초 아무도 모르게 전격적으로 교수형 당한다. 카슈미르에서는 당연히 시위가 잇달았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응징했다. 


파스키탄과의 전쟁은 계속 되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가며, 정부는 합법적으로 군대를 이용해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아, 일부 사람들이 무기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는 사실을 깜박할 뻔 했다. 


빈민을 향한 묵념, 부자를 향한 선언, 자본주의를 향한 선전포고


일련의 일들이 과연 21세기 현재 세계적인 IT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며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우뚝 일어선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세계소득불평등보고서에 의하면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소득불평등을 보이고 있는 나라 중 하나라고 하는데, 저자가 알리려는 인도 자본주의의 폐해가 머리 아닌 가슴으로 다가온다. 


비록 인도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가 두 발 붙이며 살아가는 한국도 가히 준세계적인 수준이다. 전체 소득 중 상위 1%가 15%, 상위 10%가 50%에 육박하니 말이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우린 이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는가?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저자는 책을 내놓을 당시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큰 감명을 받고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아예 갈아엎자는 주장을 한다. 끝없는 불평등을 제조하는 이 체제에 뚜껑을 덮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며 명백한 요구사항을 밝힌다. 기업 교차소유 금지. 필수적 사회기반시설 민영화 금지. 주거, 교육, 그리고 보건의 권리 누릴 수 있는 자유. 부자의 자녀들이 부모의 부 세습 금지. 


짧은 상황 인식, 굵고 강력한 주장, 와중에 아주 넓은 식견이 담겨 있는 이 세계적인 운동가이자 작가의 르포르타주는, 빈민을 향한 묵념임과 동시에 부자를 향한 선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향한 선전포고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행동에 앞서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정치적 언어를 담아낼 그릇을 요구한다. 그러고 나선 이 터무니없을 것 같은 혁명을 더 이상 터부시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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