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학과 권력>
<대학과 권력> 표지 ⓒ휴머니스트
대학 위기론이 팽배하다. 사학 비리는 추악한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표적 얼굴마담이 된 지 오래이고,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는 등록금으로 먹고 사는 사립대학들이 폐교의 수순까지 밟게 하는 폭탄으로 자리매김하기 직전이다. 그야말로 이곳 저곳에서 위기의 촉수를 뻗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학 위기의 현대적 원인들 즉,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계속된 원인들이 존재한다. 대학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 대학은 많아졌는데 대학교육 질적 상태는 답보상태라는 것, 취업자 알선소도 모자라 실업자 양성소 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것,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딜 가나, 누구나 한 마디씩 해봤음직한, 누구한테나 한 마디씩 들어봤음직한 대학 위기의 원인들이다. 와중에 충격적일 수 있는 사실을 전하자면, 위의 '현대적 원인들'이 결코 현대적이지 않다는 것 즉, 우리나라 대학이 생기기 시작한 100여 년 전부터 이미 존재해온 고질적 병폐라는 것을 말이다.
한편에서는, 한국의 대학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수도권과 지방 대학 간의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대학 특성화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 대학 자율화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 등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대학 역사 100년을 되짚은 책 <대학과 권력>(휴머니스트)은 지금의 대학, 그 위기와 문제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그 원인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권력'을 꼽았고 그중에서도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을 핵심으로 보았다. 권력으로 본 대한민국 대학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대한민국 대학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볼 수도 있겠다.
타율적 권력의 그림자 그리고 대학권력
우리나라 대학은 애초에 자율적이 아닌 타율적으로 생겨나 운영되었다. 근대 고등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제 시기였다. 서울대학교의 전신이라 할 만한 경성제국대학과 관립 전문학교, 그리고 조선인을 위한 사립 전문학교가 모두 일제의 식민권력의 통제 아래 있었다. 해방이 되고서는 일제 식민권력 대신 미군정이 들어서 미국적 학문을 토대로 미국식 대학 모델을 심었다. 이후 대학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가장 미국화된 곳이 되었다.
이미 70여 년 전, 한국의 대학은 가장 미국화된 곳이었다. 즉,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고 무방한대, 작금의 대학 위기 중 하나인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와 정반대의 지점이라는 게 흥미롭다. 한편, 태초의 지점에서부터 자율이 아닌 타율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작금의 대학 개혁 방향인 '자율성 회복'과 맞물리는 대목이라 역시 흥미롭다.
1950년대 들어 그동안 식민권력에 억눌러 있었던 교육열이 폭발하면서 대학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거기에는 이승만 정부의 방임만이 아닌 부추김, 대학교육 특히 사립대학 재건에 앞장 선 주요 인물들의 대학 안팎 권력 독점 등의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1950년대가 저물고 1960년대 들어 4.19로 이승만이 물러가면서 대학 또한 크게 변한다.
대학 위기의 현대적 원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너무 많은 대학'은 이미 60년 전에 존재하는 대학 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다. 또한 대학의 양적 팽창이 대부분 사립대학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점이 현대 대학이 나아가야 할 개혁 방향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대학의 공공성 확보'와 맞닿아 있다는 게 한편 신기하면서도 자못 충격적이다. 사학 비리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한 '대학권력'의 모태는 이미 오래전에 존재했었다.
국가권력, 그리고 시장권력
1960년대 들어 대학 민주화를 통해 대학 위기를 돌파하려 했었지만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며 무참히 짓밟혔다. 대학권력을 압도하는 국가권력의 손길은 대학의 자율과 자치를 고려하지 않고 개혁과 대학 안정화라는 명목으로 대학 운영 전반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는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까지, 즉 20여 년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짧은 서울의 봄이 지나고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며 국가권력의 무시무시한 촉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졌다.
현대에도 여전한 대학 위기 최대의 원인이자 대학 개혁 최대 기원, 그리고 대학교육 방향 중 가장 첨예한 논란의 주인공인 '대학 자율화'가 가장 침해를 받았던 시기가 1960~80년대다. 필자도 최소한의 의문이 드는 부분이 '대학 공공성 회복'과 '대학 자율화 회복'의 동시 추구 가능성인데, 이 중 한 가지를 추구하면 다른 한 가지를 추구할 수 없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아마 극악적 양자택일의 우리나라 역사의 성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1990년대들어 한국 대학은 전에 없는 놀라운 변화를 했다. 양적 팽창에 버금가는 질적 향상은 평가에 따른 선별 지원과 대학 스스로의 개혁으로 확보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를 휩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의한 시장권력에 포섭되어 갔다. 더 큰 문제는, 국가권력과 대학권력이 바로 이 시장권력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세 권력의 공고한 연대는 2010년대에서 2020년대로 넘어가는 바로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대학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주체가 없다.
돌아보니,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가 한국 대학만큼 잘 적용되는 사례도 드문 것 같다. 1950년대가 저물 때 대학은 위기에 몰렸고 여기저기서 '대학망국론'이 등장했고 이에 대학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1950년대'를 '2010년대'로 고쳐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도 제시한 대학 개혁의 방향 중 진정한 '대학 자율화'야말로 한국 대학 위기의 반복된 역사의 가장 큰 이유이자 그 역사의 반복을 그만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다른 위기나 개혁 방향이 그때 그때의 시대와 포섭된 권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는 다르게,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한국 대학의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공통적으로 진정 이룩할 수 없던 게 '대학 자율화'이기도 하고 말이다.
2015년 8월 17일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고현철 교수는 교육부가 총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 대신 간선제로 바꾸라고 요구한 데 반발해 투쟁하다 부산대 본관 4층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 대학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요구한 것인데, 이에 정부는 국립대 총장 선출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간선제 유도 방식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한 교수의 고귀한 죽음이 던지는 파장이 부디 널리널리 퍼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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