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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조선인 강제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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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인 강제연행>


<조선인 강제연행> 표지 ⓒ뿌리와이파리



일본제국은 1868년 1월 메이지유신으로 설립된 메이지정부 이래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 후 미국에 의한 군정 실시 2년 뒤 1947년 5월까지 계속되었다. 이 79년 동안 일제는 천황을 국가원수로 제국주의 시대를 이어갔는데, 우리나라는 그 절반 이상의 시간 동안 사실상의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았다. 


일본으로선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의 전성기였을 그때, 일제는 단기간에 최고의 위치로 치고 올라가 역시 단기간에 최악의 위치로 곤두박칠 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나치독일과 더불어 수없이 많은 콘텐츠로 재생산되었고 수없이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많은 자료가 있을 그들 스스로 조작하고 차단하고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채 정교하게 재멋대로 재생산과 연구를 해버리는 바람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잘못 알려져 왔다. 그럼에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려 했는데, 그렇게 그들 스스로를 올바르게 되돌아보는 것만이 진정한 일제의 역사를 아는 것일 테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근대사 전문가 도노무라 마사루 교수가 전격적으로 총체적인 기본 사료를 통해 1939년~45년까지의 총력전체제 하의 전시 노무동원 실체를 파헤친 책 <조선인 강제연행>(뿌리와이파리)도 그 일환이라 하겠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건 결국 일본제국주의(일제)의 본질, 나아가 일제 식민지 통치의 본질이다.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저자는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라고 주장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할 만한 이 말은, 사실 심층적이다 못해 굉장히 새로운 해석에 의한 것이다. 극히 일부의 조선인과 대부분의 일본인이 이루는 동원된 사람과 그 가족이 국가의 원조를 보장받는 반면, 조선에서는, 조선인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즉, 일본인 동원과 조선인 동원 사이에 명백한 차별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중심에 두고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선, 노무동원이 실시될 당시 일본 내지에 비해 조선은 물질적 근대화가 훨씬 더뎠고, 미디어가 발달하지 못했고, 행정기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으며, 사회교화에 한계가 있었다. 대다수 농민들은 몰락했고 생존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제는 군수 경기 하에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탄광 등 광업 부문이 심각했고, 이에 일제는 조선인의 도일을 억제하는 한편 통제에 의한 조선인 도입을 모색해 일손 부족 문제 해결을 촉진했다. 와중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제는 이른바 총력전 체제로 진입한다. 그렇게 1939년부터 국가총동원계획이 수립되고 노동력과 관련해 노무동원계획이 수립된다. 이 계획은 일본 내지는 물론 상대적으로 많은 것들이 열악한 조선에서도 실시된다.


이 계획은 일본제국 하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즉, 오히려 일본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동원계획의 조잡함과 강제성과 열악함 등에 있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준비가 부족한 채, 역시 일손 부족에 허덕이는 조선 남부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실정을 무시한 채, 조선인의 반발은 물론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지의 피동원인들의 반발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진행한 것이다. 


허접하고 무모하다 못해 모순적이기까지 한 일제


저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이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로, 최종 결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결여한 사회에서 충분한 조사와 준비가 부족한 조직이 무모한 목표를 내걸고 추진하는 행위가 가장 약한 사람들의 희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는 일제라는 가해자와 조선이라는 피해자라는 이분법 층위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우선 실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일제의 노무동원은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적재적소에 일손을 배치해 국가의 보다 나은 앞날로 나아가는 것일 텐데, 제대로 된 준비와 관리와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행태는 내부에서의 진지한 목소리도 모두 무시한 채 계속되다가 패망에 직면해 강제적으로 그만두어졌다. 


그런 속 빈 강정 같은 계획 하에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면 필연적으로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다. 계획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반발이 생길 것이고, 그럼에도 밀어붙인다면 강제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거기엔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폭력이 수반된다. 문제는, 이런 국가폭력이 소위 제국민의 일원이라 할 만한 조선인에게만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일제의 명백한 존재와 함께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 등을 비롯한 일제 통치 하의 식민지민 모두를 하나의 제국 하의 국민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저자의 시각이 그렇고, 저자의 철저한 기본사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지표와 결론이 그를 반영한다. 일제는 허접하고 무모하다 못해 모순적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일제의 실체, 일제의 식민지 통치 본질이 그렇다. 그들은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군국주의를 앞세워 많은 식민지를 영위하며 그 위세를 만방에 떨쳤지만, 실상 속 빈 강정에 무대포에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고 있었다. '조선인 강제연행'이라는 일제의 수많은 헛짓거리 중 하나일 뿐인 것만으로도 그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일제에 대한 연구는 더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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