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워너브라더스


1965. 일리노이주 박람회가 열렸던 때, 남편과 함께 두 남매가 박람회에 가게 된다. 아내는 4일 간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이들이 어서 떠나주기를 바란다. 너무나 단조로운 아이오와 생활. “조용하고 사람들도 참 착하다.” 이게 전부인 삶이다.

 

그녀가 꿈꿨던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아니다. 교사 일을 하다가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그만두었지만 후회가 밀려온다. 남편은 무뚝뚝의 전형이고, 아들은 엄마의 부탁을 잔소리로 들으며, 딸은 제멋대로다.

 

전설적인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1995년 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부인. 잔잔한 일상에 파문이 일어날 시간이다. 그런데 시간은 4일 밖에 없다. 과연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아이오와에 있는 로즈먼 다리를 향하던 중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 분)의 집에 들렀다가, 길을 묻고는 같이 다리로 향한다. 그들은 돌아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는 여자. 꽃을 꺾어주고 은근슬쩍 스킨십을 하는 남자. 농담을 주고 받으며 마음껏 웃는 남과 여. 운명적 사랑에 빠진 남과 여.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중년의 사랑(불륜)을 옹호하게 된다. 


그 어떤 판단이나 도덕이 개입되지 않아요. 그저 그대로...있는 그대로죠. 정말 아름다워요."

 

그녀는 꼭 이성과의 사랑이 아닌, 변화가 필요 했다. 일종의 일탈을 꿈꾸었다고 할까. 다른 세계의 새로운 사람과의 대면으로 설렌 것이다. 그녀는 그와 대화하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같이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 한 잔 하고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블루스도 추고 키스하고 목욕하고 그의 몸을 탐닉한다. 그녀는 그렇게 한 명의 여자가 된 것이다. 그 두려움이 동반된 설렘과 떨림이 싫지 만은 않다. 


모든 곳이 자신의 집처럼 느낀다는 남자의 말. 이것은 내 것이 여자, 이 남자는 내 것. 그런 경계선이 너무 많죠.” “모든 사람이 가족을 이루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미국의 가족 윤리에 불만이에요. 온 나라가 최면에 걸린 것 같아요.” “자신을 속이지 말아요, 프란체스카. 당신은 단순한 여자가 아니에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죄스러움을 느끼는 여자에게 남자는 "괜찮아요.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에요. 자식들에게 숨길 일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둘 간의 확고한 차이가 발견되는 대화가 계속되지만 그 둘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느낀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남자는 떠난다. 하지만 여자는 참지 못하고 새벽에 로즈먼 다리를 찾아가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겨 찾아오게끔 한다. 이후 그들은 4일 간의 여행을 떠난다. 그 둘 만의 여행. 동네에 있으면 어떤 수모를 당할 지 알 수 없다. 

 

초원과 다리... 낯익은 사람들과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기로. 그 하루가 원하는 곳으로 우릴 데려가게 뒀다.”


여자는 전에 없이 여성스러워진다. 그들은 그 몇 일 간의 휴가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의 모든 걸 알고 싶고 자신 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게 남자는 그걸 구속으로 생각한다. 남자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남자에게 있어 그 여자는 지나 가는 사람에 불과할지 모른다. 


“당신이 떠나고 나면 난 평생 여기 앉아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겠죠. 당신은 또 어디 가서 멋진 친구들과 얘길 하고 있겠죠. 내 얘기까지."


그들은 함께 떠날 것을 결심한다. 남자도 여자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여자는 여행용 짐을 싸고 그 날 밤으로 바로 떠날 준비를 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저녁 식사. 결국 여자는 같이 갈 수 없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삶보다 남편과 아이들, 가족의 삶이 더 중요하다. 그녀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선택한다. 그와 함께 가면 평생 죄를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와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된다. 그를 사랑하기에 보낸다.


다음 날 돌아온 가족들. 아내이자 엄마로 돌아온 여자. 집안일을 하며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낸다. 어느 비 오는 날,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하게 된다. 도중에 남자를 보게 된 여자. 남자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비를 맞고 서 있는 남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여자. 당장이라도 자동차 문을 열고 그에게 가고 싶지만 결국 가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다시 만나지 못할 길을 가고, 평생 추억 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훗날 늙었을 때 남편이 말한다. 


"당신 꿈이 있었다는 거 알아. 그걸 못 이뤄줘서 미안해. 당신을 정말 사랑해."


남편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숨겨온 옛 일을. 안정과 모험. 정착과 방랑.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 확실한 느낌은 일생에 딱 한 번 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느낌을 애써 외면한 채 살아간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서로를 조금만 더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보듬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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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타인의 삶>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독일 민주 공화국(이하 '동독')은 국가보안부 비밀경찰(이하 '슈타지(stasi)')의 감시 하에 있었다. 이들은 정식 직원만 10만 명에 이르는 대형 조직을 갖췄고,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였다. 사회주의의 적이자 국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해 1600만 명의 동독 시민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목적이었다.


전체주의 하에서의 시민들은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감시와 미행, 도청은 일상이 되었고, 그로인해 누군가는 타인의 삶을 살았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삶을 빼앗겼다. 영화 <타인의 삶>의 배경이다. 



<타인의 삶>의 한 장면. 슈타지는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비즐러는 드라이만 부부를 감시 도청하는 임무를 맡았다. ⓒ SYcomad



"Be human"


비즐러(울리히 뮤흐 분)는 슈타지의 대위이다. 그는 비인간적인 고문의 대가이자 당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신념을 고수하는 냉혈한이다. 그는 장관의 명령을 받은 친구이자 상사인 그루비츠의 명령으로 유명한 극작가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 분)을 감시·도청하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은 드라이만의 아내이자 배우인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 분)을 감시하는 것. 그녀는 장관의 내연녀이기도 했다. 비즐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크리스타는 집으로 오는 길에 장관에게 붙잡혀 성을 상납하고 만다. 장관의 차에서 내리는 크리스타를 보고 비즐러는, 이 사실을 드라이만이 알게 하기 위해 벨을 조작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드라이만은 그녀를 추궁할 수 없었다. 단지 떨고 있는 그녀를 꼭 끌어안아 줄 뿐이었다. 냉혈한 비즐러는 이 모습에 생전 겪어보지 못한 연민을 느낀다. 


드라이만의 스승인 예르스카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을 때, 그 충격을 피아노 연주로 삵히려 한다. 이 슬픈 피아노 소리를 듣고 비즐러는 급기야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후로 그는 차츰 변해간다. "인간적으로" 어느 꼬마와의 대화를 엿들어보자. 그의 변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저씨, 슈타지 맞죠?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슈타지는 나쁜 사람이래요. 막 사람들도 잡아 간대요."

"너네 아…(빠)니, 공 이름이 뭐냐?"

"아저씨 바보예요? 공에 무슨 이름을 붙여요?"

"…." 



<타인의 삶>의 한 장면. "네...공 이름이 뭐니?" 비즐러는 변해가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 SYcomad



영화는 자칫 잘못하면 동독 전체주의의 상징인 슈타지를 옹호하고 있다고 비춰질 수도 있는 내용을, 슈타지 전체가 아닌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춰 잘 피해가고 있다. 그로인해 더욱 극대화되는 감동을 느낄 수 있고 화합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를 떠올려 보자.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는 유태인이 운영하는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되어 온갖 비리를 서슴지 않게 저지른다. 유태인을 노예처럼 부려먹더니 유태인 회계사 스턴을 만나 눈을 뜬다. 온갖 비리를 유태인을 수용소로부터 구해내는 데 쓴 것이다. 나치 당원을 옹호하고 있다고 비춰질 수 있는 내용을,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잘 피해가면서 감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냉혈한 비즐러와 기회주의자 오스카 쉰들러가 변해가는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타인의 삶>의 한 장면. 드라이만은 크리스타를 추궁할 수 없었다. 단지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아줄 수 밖에... ⓒ SYcomad



예술가의 고뇌


드라이만에게는 그를 포함한 반체제 예술가들에게도 스승과도 같은 존재인 예르스카가 있었다. 그는 연출금지를 당해 "밀가루 없는 방앗간처럼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모두들 그를 싫어했다. 그 또한 모두를 싫어했다. 진정한 반체제 예술가라면 자신처럼 연출금지를 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드라이만은 예르스카의 정신을 받들었지만, 예술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는 반체제의 연극을 올리지 않으며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지만, 외려 당당히 서양 서적을 읽으며 의심을 사기도 한다. 


크리스타는 장관과의 내연관계가 지속되지 않는 한 자신이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가적 기질을 믿지 못하고 불법으로 신경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기도 한다. 계속되는 장관과의 관계와 약물 복용으로 지칠 대로 지쳐가는 그녀. 드라이만은 그녀에게 장관과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그와의 관계를 끊더라도 충분히 혼자 힘으로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예르스카와 같은 종말을 원치 않아요, 그리고 저도 원치 않고요. 그리고 그 때문에 지금 전 나가는 거고요."


그녀 앞에 나타난 비즐러. 오랜 시간 그들의 삶을 도청하면서 이미 상당히 동화된 상태였다. 그는 그녀에게 "전 당신의 관객이거든요. 당신의 최고의 예술가예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녀는 장관이 아닌 드라이만에게로 간다. 이 때문에 그녀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예술 자체에 대한 사랑을 견지하는 예술가와 예술의 목적을 탐구하는 예술가가 있다고 하면, 크리스타는 전자에 속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봐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존재했고, 불행하게도 그들은 몇몇은 외부의 압력에 시달렸다. 외국의 침략 속에서, 독재 속에서 그들은 각자의 신념에 맞게 행동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시대를 원망했을 것이다. 예술가의 고뇌가 읽힌다.


휴머니즘은 살아 있다


목숨이 오가는 서슬 퍼런 압재속에서도 휴머니즘을 견지한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비즐러는 급기야 보고서를 조작하고 상관에게 거짓말을 일삼는다. 누군가가 익명으로 반체제를 옹호하는 기사를 써서 동독을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그가 드라이만이라는 의심을 품은 상관이 드라이만의 집을 두 번에 걸쳐 압수수색하자 중요 증거인 타자기를 빼돌리기도 한 것이었다. 대신 그의 경력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한편 크리스타는 계속되는 예술가로써의 고뇌와 남편인 드라이만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 어쩌지 못해하다가 장관에게 불법 약물 복용죄로 붙잡히고 만다. 거기서 크리스타는 비즐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풀려난 것이었다. 이에 비즐러는 자신을 희생해 크리스타를 살리고 동시에 드라이만을 살리려 했다.


그는 드라이만을 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크리스타를 구하지는 못했다. 크리스타는 혼란한 정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쳐나갔다가 차에 치여 죽고 만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또 남편 드라이만을 궁지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녀는 죽었지만 그녀의 휴머니즘은 살아남아 드라이만에게로 전달되었다. 


이 영화의 휴머니즘은 마지막에 그 결실을 맺는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비즐러는 "굴 같은 지하에서 편지들을 증기 다림질하는 일"을 그만두고 편지배달부로 일한다. 반면 드라이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날들이 계속된다. 어느 날 드라이만은 장관을 만나 자신의 집이 완벽하게 감시・도청 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고, 비즐러의 존재를 자각한다. 


비즐러를 만나려 했지만 돌아서는 드라이만. 얼마 후 성공한 작가가 된 드라이만. 길을 가다가 서점에 들어서는 비즐러. 책의 제목은 "선한 이들의 소나타"였다. 예르스카가 선물해준 악보의 제목이자, 드라이만의 연주를 듣고 비즐러가 눈물을 흘렸던 그 소나타였다. 책의 앞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책을 HGW XX/7에게 바칩니다."


HGW XX/7은 비즐러의 프로젝트 코드 명이었다. 그 책은 비즐러를 위한 책이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죽기 전에 준 선물이 누군가를 울렸고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켰고 다시 일어나게 해주는 힘이 되어줬으며 그 선물이 모티브가 되어 책을 지었고 그 책은 누군가와 누군가를 이어주는 휴머니즘의 매개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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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소니픽쳐스



이런 말을 자주하는 지인이 있다. “1930년대에 태어나고 싶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거리를 활보했던 그 낭만적인 시대에.” “조선 시대에 태어나고 싶다. 그때 태어났으면 뭐가 되어도 되었을 텐데.” “중세시대 유럽에서 태어나고 싶다. 산 속에서 세상 모르게 소박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끝없이 이어지는 과거 지향적 발언에 두 손 두 발 다 들곤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조금은 다른 의미로 나도 과거 지향적이니까.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 역사 교육의 폐해인지는 몰라도, 연도나 인물 그리고 사건 등의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몇 년도에 누가 어떤 사건을 일으켰거나 휘말렸는지 그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물론 머리가 커짐에 따라, 그 의미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때에 태어나고 싶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유명한 무엇에 대한 갈증이 있나 보다.

 

파리를 사랑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한 남자

 

우디 앨런의 2011년 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를 사랑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3분을 할애해 파리의 아침부터 밤까지의 하루 전경을 달달한 음악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주인공의 파리에 대한 예찬, 예찬, 예찬.

 

끝내주네! 저길 봐! 이런 아름다운 도시는 세상에 다시 없을 거야. 파리에 자주 못 오니까, 비 내리는 이 도시가 얼마나 멋진지 사진 한 장 찍자. 1920년대의 이 도시를 상상해봐. 20년대 파리를. 빗속에 작가들과 화가들을.”

 

전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주인공 길(오웬 윌슨 역)은 파리를 예찬하며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 역)에게 파리에서 살 것을 권한다. 하지만 이네즈는 미국으로 돌아가 살 것을 확고히 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사실 이 첫 장면에서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려하는 길이 못마땅한 이네즈인데, 더군다나 파리라는 이상에 사로잡혀 있다니 말이다. 더욱이 1920년대의 과거를 사랑한다니. 영화의 줄거리는 안 봐도 뻔하고, 이 둘의 끝 또한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 예정된 결말까지의 과정이 너무나도 재미있고 환상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법한 보편적 생각을 끄집어내 이야기에 버무리고 있어 결코 가볍지는 않다. 그 이야기는 길이 현실에 지친 어느 날, 자정이 지난 골목에서 클래식 푸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를 지치게 한 현실이라 하면, 그의 약혼녀 이네즈가 있다. 이네즈는 낭만이라고는 없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이고 속물이다. 또 그녀의 부모는 어떤가? 역시 속물이다. 그리고 그들은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길은 환영해도 소설가 지망생 길은 못마땅해 한다. 여기에 이네즈의 친구들도 가관이다. 그 중에서도 길이 사이비지성인이라 칭하는 폴은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는 아주 재수 없는 녀석이다. 길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무시해 현실에서 도망치려 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건 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과거 지향적이지 않던가.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과거 여행

 

여하튼 길의 비현실적인 과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클래식 푸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느 파티 현장. 그곳에서 길은 스콧 피츠제럴드 연인을 만나고, 헤밍웨이를 만나게 된다. 그 파티는 장 콕토가 주최한 것이었고, 시종일관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는 콜 포터가 피아노치는 소리였다. 그는 꿈에 그리던 1920년대 파리에 와 있던 것이었다. 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는 황홀경에 빠져 이 시간을 즐기고 매일 자정에 어김없이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 파리를 누빈다.

 

가는 곳마다 역시나 전설적인 명사들이 즐비하다. 피카소, 찰스톤, 벨 몬테, 달리, 부뉴엘, 레이, 앨리엇, 거트루드 스타인 등. 이 밖에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명사들이 나온다. , 1920년대 파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이들이 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는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이미 말이 되지 않는 설정 위에서의 설정이므로 웃으면서 흥미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큰 흥미거리 중 하나가 이 전설적인 명사들의 면면인 것이다.

 

그러던 중 길은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 역)을 알게 된다. 당시 그녀는 피카소와 염문을 뿌렸지만, 곧 헤어진 뒤 헤밍웨이와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고 돌아온다.(이는 영화적 설정이 많이 가미된 부분이다. 실존 인물이고 헤밍웨이와 관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시기가 맞지 않고 피카소와의 관계는 없었다.) 길은 아드리아나와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타이밍에 그들은 1890년대로 가는 마차에 오른다.

 

1890년대로 가자 더욱 더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로트렉, 고갱, 드가... 아드리아나는 이 시대를 황금시대라 칭하며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자신이 사는 1920년대는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길은 1920년대야말로 완벽한 황금시대인걸? 그때 불현 듯 깨달음을 얻게 된 길. 그는 아드리아나와의 사랑이 지속될 수 없음을 직감한다. 그러며 미래에서부터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그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을 봐요. 이 사람들의 황금기는 르네상스에요. 이들은 황금시기를 버리고 미켈란젤로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해요. 또 그때 사람들은 쿠빌라이 칸 시기를 동경할걸요?... 아드리아나, 당신이 여기 살면 여기가 현실이 되는 거요. 그럼 당신은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게 돼요. 진짜 황금시기를요... 현실은 그런 거예요. 항상 불만족스럽죠. 인생은 그런 거니까요... 저도 당신처럼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어요. 황금시기로... 하지만 이건 진짜가 아니에요. 내가 진정한 글을 쓰고 싶다면 내 환상을 없애야 해요. 과거가 더 좋았다는 환상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장면. ⓒ소니픽쳐스



이 영화가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음악가이면서 음악애호가이기도 한 우디 앨런 감독의 음악적 취향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리를 가본 적도 없거니와 그 실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파리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극단의 과거 지향적 성향에 대해서는 결국은 비판의 형식을 취하고 말지만, 파리에 대해서는 끝까지 우호적인 감정을 유지한다.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상당히 많다. 우디 앨런 감독에 대해 알고 있는 분이라면 그의 색다른 취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파리의 기막힌 전경을 감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또한 위에서도 주지했듯 수없이 등장하는 전설적인 명사들을 보는 재미가 무엇보다도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현실에서의 도피와 과거에 대한 동경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영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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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에일리언>


<에일리언> ⓒ21세기폭스



35년 된 영화가 있다. 어릴 때부터 TV에서 수없이 봐왔던 이 영화는 언젠가부터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볼 때마다 느꼈던 건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여러 특성 중 지니고 있는 대표성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분이었던 바,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레 다시 감상한다 한들 그때의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크게 SF 장르로 분류되고 있지만, 자세히 감상해보면 SF를 비롯해 공포, 액션, 스릴러, 어드벤처,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제목은 누구나 익히 들었을 법하다. 에일리언 시리즈의 시초, <에일리언 1>이다. 북미에서는 1979년에 개봉했고, 우리나라에는 1987년에 비로소 개봉한다. 8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생명력이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거니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업용 우주선 노스트로모호는 광석을 싣고 지구로 귀환 중이다. 그런데 어떤 문제 때문에 궤도를 상당히 벗어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외딴 행성에서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온다. 분석 결과, 구조 신호라는 결론을 도출하였고 규정에 의해 행성에 착륙하여 3명의 선원이 탐험에 나선다.


<에일리언>의 한 장면. ⓒ21세기폭스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의 탐험은 필히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것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미지 세계와의 조우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과 열정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위기에 빠뜨리게 하고 만다. 결국 나머지 두 명이 한 명을 부축해서 돌아온다. 그 한 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에게 얼굴을 뒤덮인 채였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사람마다 다른 위기 대처 행동을 살펴 본다. 크게 3가지의 입장을 보인다. 부상 당한 1명을 부축해서 온 2명은 의무실로 어서 빨리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문의 개방을 요구한다. 이에 3등 선임 장교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은 검역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대답한다. 비록 그로 인해 1명이 죽게 될지라도, 자칫 잘못하면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과학 장교 애쉬가 스스로의 판단 하에 문을 열어버린다. 그 역시 1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고 말한다. 모든 비극의 시작점이다.  


이 딜레마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이론과 주장과 사례를 통해 제기되어 왔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영화에서는 하필 1등 장교와 2등 장교가 동시에 탐험을 나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규정을 어겨 놓고도 큰 소리를 치는 이도 이해할 수 없다. 한 사람을 희생해서 모든 이를 '더' 좋은 쪽으로 인도하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억측이라고 생각되지만,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사람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물론 모두가 죽게 되는 결과를 알고 말하는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말이다. 


<에일리언>의 한 장면. ⓒ21세기폭스



영화는 급격히 공포 장르로의 전환을 꾀한다. 부상 당한 1명이 다행히 깨어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외계 생명체(이하 "에일리언")가 배를 뚫고 튀어 나온 것이다. 그는 죽었고, 그 에일리언은 도망간다. 이후 어째서 인지 혼자 남게 되는 선원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에일리언에게 죽고 마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연달아 혼자 처리하려다가 죽게 되는 1등 장교.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 간다.  

사실 이 모든 건 과학 장교 애쉬의 음모였다. 그는 사실 로봇이었고, 프로그램 되어진 바에 따라 엄청난 전투 능력을 자랑하는 에일리언을 지구로 가져가 이용하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이를 간파한 리플리는 그것을 부셔 버리고 탈출을 꾀한다. 하지만 그러는 도중에도 선원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가고 결국은 그녀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된다. 


모두 함께 대처해도 가능할까 말까 인데 왜 혼자서 대응하려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죽임을 당한 선원을 제외하고 아무도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만만히 봤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살인까지 당한 마당에 어떻게 그런 무모하고 어설픈 대응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위기란 실체를 완전히 파악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는 법이다. 위험의 징후를 알아차리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위기나 위험에 대한 시스템은 갖춰져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음에 있지 않을까 싶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른 판단과 기본에 입각한 대처를 실행하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타파할 수 있는 것이다. 


<에일리언>의 한 장면. ⓒ21세기폭스



영화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며 많은 궁금증들을 증폭 시켜 놓은 채 끝난다. 에일리언의 정체와 에일리언이 사는 행성은 무엇인지, 이 에일리언을 이용하려는 조직의 실체는 무엇인지, 과연 리플리는 무사히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 무엇보다 이 강렬한 충격이 시리즈 내내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 


한편 리플리 역의 시고니 위버를 위시해 낯익은 얼굴이 보여 반가웠다. 제일 먼저 죽은 2등 장교 케인은 <설국열차>에서의 '길리엄' 존 허트였고, 과학 장교 로봇 애쉬는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에서의 '빌보' 이안 홈이었다. 가히 명불허전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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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바이센테니얼 맨>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소니/콜럼비아 픽쳐스


리처드 마틴(샘 닐 분)은 가족들을 위한 깜짝 선물로 획기적인 '가전 제품'을 구입해 선보인다. 그 가전 제품은 다름 아닌 '로봇'. 정확한 명칭은 로봇 NDR-114. 말 그대로 가정의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전 제품이다. 그것은 로봇 3 원칙에 입각해,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인간에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가족들의 놀라움을 뒤로 한 채, 그것은 착실히 해야 할 일을 한다. 언제나 '봉사는 저의 기쁨이죠'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그것은 가끔 기계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예를 들어, 인간들이 하는 식사나 체스 게임에 관심을 가진다든지, 인간이 창조한 음악을 듣고 명상에 잠겨 있다든지 하는 행동들 말이다. 


결정적으로 어느 날 그것은 실수로 리처드 마틴의 막내가 제일 아끼던 말 모형 인형을 부수게 된다. 슬퍼하는 막내 아씨의 모습을 보고 그것은 연구를 통해 막내 아씨가 좋아할 만한 목각 인형을 직접 만들어낸다. 모방이 아닌 창조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리처드 마틴은 그것을 '그'로 격상 시킨다. 그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며,  '특별한 로봇'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그는 '앤드류 마틴' (로빈 윌리엄스 분)이 된다. 바야흐로 200년을 살게 되는 <바이센테니얼 맨>의 진정한 시작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소니/콜럼비아 픽쳐스

 


"계획을 세우자. 우선, 하루 몇 시간은 창작에 몰두해. 너무 예술적이면 인간이 시기하니까, 적당한 걸 찾아보자. 시계 같은 걸로. 그리고 저녁 땐 나랑 공부하는 거야. 자네에게 프로그램 되지 않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자네는 특별해. 인간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만 넌 우리와 완전히 달라. 네게 시간은 영원해."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엔지니어의 실수로 신경 계통에 이상이 생겨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로봇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그가 되고, 그는 인간처럼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간의 역사, 적어도 미국의 역사를 의미하는 생각과 행동까지 한다. 


'바이센테니얼'은 200년이라는 뜻이다. 극 중에서 앤드류 마틴(로봇 NDR-114)은 리처드 마틴의 증손녀와 결혼하고 함께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때까지 20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는 인간처럼 죽음을 맞게 될 때까지 투쟁과 쟁취를 계속해왔다. 


최초의 가전 제품에서 앤드류라는 이름을 얻고 리처드 마틴 가족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시계를 판돈으로 돈을 벌어 들였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명령을 받지 않기 위해 '자유'를 원했고 쟁취했다. 이후 자신의 동족(인간이 되고자 하는 불량 로봇)을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자신을 창조한 이의 아들을 만나게 되어 인간의 가죽을 얻게 된다. 그는 '자유'를 원했을 당시 이미 자신이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후의 행동은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소니/콜럼비아 픽쳐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수백 만의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쟁취하려 한 것은, 자유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 만큼... 너무나 소중한 것."


이는 미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한 단면인 '흑인 민권 운동'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1776년 문을 연 미국에서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백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가전 제품과 다를 바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로봇 3 원칙의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조차 해당되지 않는 삶이었다. 


이후 흑인들의 분노와 저항은 1960년대 대규모로 증폭된다. 그 중심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있었다. 그는 1963년 8월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명한 진리의 의미를 깨달으며 살아가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꿈입니다.'로 시작되는 역사적인 연설을 펼친다. 결국 1965년에는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이 인정되어 적어도 정치적 평등이 실현되었고, 2009년에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탄생해 재선까지 성공하였다. 


한편 앤드류는 인간의 피부를 얻었지만, 인간일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인간의 감정이 없었던 것이다. 작은 아씨의 죽음 앞에서 슬퍼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혼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발자국 더 내디딘다. 모든 의학지식을 총동원해 기계를 생명체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실현한다. 


죽지 않는 것만 빼고 완전한 인간이 된 앤드류. 그는 작은 아씨의 손녀인 포샤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법적으로 인간일 수 없었다. 비록 그의 겉모습이 인간이고 그의 마음이 인간이며 인간들도 그와 같이 인공적인 장기를 달고 살아가기에 그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만, 전자 두뇌로 인해 그는 영원히 죽지 않았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소니/콜럼비아 픽쳐스



결국 앤드류는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최후의 도전을 하기에 이른다. 진일보된 기술을 이용해 그에게 유한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처럼 죽을 수 있게 되었다. 과연 그는 법적으로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받게 될까?


"전 항상 모든 걸 이해하고 싶었죠. 저의 존재 이유 같은 거 말입니다. 전 점점 늙어서 쇠약해지고 있어요. 곧 기능이 정지 할 겁니다. 로봇이라면 영원히 살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영원히 기계로 사느니, 인간으로 죽고 싶습니다. 저는 인정받길 원해요. 제가 누구인가에 대해, 있는 그대로. 찬사나 평가가 아니라 단순한 진실을 인정받는 것, 이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전 택했습니다. 고귀하게 죽는 길을."


이 영화를 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앤드류를 통해 단순히 겉모습만 인간이 진정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파한다. 엄청난 논란이 일 수 있는 사안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인간의 기준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와 같이 멀지 않은 미래에 로봇이 인간과 굉장히 가깝게 지내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생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조차 없는 그것을 말이다. 


앞으로는 점차 모든 기준이 철폐되고 정해져 있는 것들이 해체될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변화는 우리네 삶과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바꿀 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 또한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기계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기계의 역사는 '바이센테니얼'이다. 머지않아 기계는 역사는 사라지고 '바이센테니얼 맨'의 역사가 시작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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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양들의 침묵>


영화 <양들의 침묵> ⓒ오라이온 영화사


8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4개 부분(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작품은 단 3개에 불과하다. 일찍이 1934년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1975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리고 1992년 <양들의 침묵>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양들의 침묵>은 절대로 영화화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토머스 해리스'의 원작을 완벽하게 스크린으로 옮겼고, 그에 더해 남녀 주연 배우인 '안소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의 연기가 화룡정점을 찍었다. 이 영화의 수식어로 흔히 붙는 말이 '수준 높은 스릴러'인데, 피가 낭자 하지 않으면서 그 분위기만으로도 보는 이를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먼저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 분). 그는 정신과 의사 출신의 식인을 즐기는 연쇄 살인마이다. 영화는 그의 괴상한 이력에 대한 어떤 이유나 사전 정황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는 여주인공인 FBI 교육생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 분)가 사람의 피부를 벗기고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을 잡으려는 데 조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정신과 의사답게 스탈링의 어린 시절을 파헤치며 '멘토'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 ⓒ오라이온 영화사


FBI 교육생 클라리스 스탈링은 렉터 박사와의 면담을 통해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을 잡는 데 단서를 잡아보라는 상관의 명령에 의해 렉터 박사와 면담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와의 면담을 통해 알게 되는 건 애써 묻혀두었던 어린 시절의 불행.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말해주지 않으면 아예 면담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렉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덕분에 그녀는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성숙해나간다. 그리고 성장해나간다. 


한편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은 변태 성욕자이다. 그는 젊은 여성의 등피부만 수집해 벗긴 후 살해한다. 그리고 그 피부를 옷처럼 만들어 직접 입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즉, 그는 여성이 되고자 한다. 렉터 박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사회가 낳은 괴물'이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원했지만 여러 병원에서 거절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여성이 되고 싶었고 그와 같은 행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사회 병리학적 폐해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 ⓒ오라이온 영화사


영화는 이 세 개의 큰 이야기를 줄기로, 종횡무진하는 스탈링이 이끌어 나간다. 버팔로 빌을 잡을 요량으로 렉터 박사의 말을 듣고 이궁리 저궁리하며 여기저기 돌아 다닌다. 그러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해주되, 정작 렉터 박사 자신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도 잃는다. 이후 친척 농장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양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삼촌이 양을 도축 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녀는 양을 한 마리라도 살릴 요량으로 양 한 마리를 들고 집을 뛰쳐나왔지만, 결국 그 한 마리조차 죽고 만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는커녕, 양 한 마리조차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깊은 곳에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이것을 렉터는 꿰뚫어본다. 


프로이트의 초기작 <과학적 심리학 초고>(1896)에는 프로이트를 찾아가 상담을 하는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옷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는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일찍이 8살 때 상점 주인에게 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성적 분별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기억에서 은폐 되었다. 그런데 12살 때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다. 어떤 상점에서 점원들이 자신의 옷을 보고 웃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폐 되었던 8살 때의 기억이 환기되었고, 이 두 사건이 인자가 되어 '트라우마'로 탄생 되었다. 


이 영화는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렉터 박사를 프로이트 박사로 비유할 수 있고, 스탈링과 버팔로 빌은 상당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이를 좋게 발전시켰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나쁜 쪽으로 가고 말았다. 그리고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 분명한 렉터 박사의 트라우마는 <한니발>과 <레드 드래곤>으로 표현된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 ⓒ오라이온 영화사

영화의 결말에서 렉터 박사가 스탈링에게 하는 질문 "양의 울음소리는 그쳤는가?"에 스탈링은 답하지 못한다. 그건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트라우마를 해결하려는 행동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스탈링을 잡아 피부를 벗기려는 버팔로 빌을 죽인 그녀. 그로 인해 그녀는 살면서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다. 


인생에서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영화에서처럼 양을 그 사건과 사고들이라 한다면, 양들이 침묵할 때는 영원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스탈링은 비록 한 단계 성숙하고 성장했지만, 양의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 사건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야말로 진짜 성숙이고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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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그랜 토리노>


영화 <그랜 토리노> ⓒ워너브라더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본래의 의미에서 상당히 빗겨나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과 북으로 갈려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모든 것을 규정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인데, 보수와 진보라는 거대한 가치가 한국에서는 이데올로기에 먹혀버린 듯한 형상이다. 


보수와 진보는 사실 철학적인 용어로, 각각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 그리고 전통적 가치나 정책·체제 등에 반하여 새로운 가치나 정책의 창조를 주장하는 사상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그래서 이들은 그 자체가 지니는 악이나 선의 개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조직마다, 나라마다 견지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그들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추구하는 것 뿐이다. 


전통을 중요시하고 지킬 게 많아지면 자연스레 보수가 되기도 하고, 변화를 중요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면 진보가 되기도 한다. 한편 이 둘을 혼합할 수도 있다. 필자도 어느 면에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면을 강조하고 추구하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완전한 진보적 가치를 견지하기도 한다. 그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역사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를 것이다. 


영화 <그랜 토리노>는 이 중에서 '보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보수의 본래 의미인,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를 완벽히 수행하는 한 노인의 모습을 그린다. 월트 코왈스키 노인(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현재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한적한 동네에서 애완견과 함께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그들은 코왈스키의 보수적인 태도를 못 마땅히 여기며 조롱하기만 할 뿐이다. 


한편 그에게는 1972년산 '그랜 토리노' 자동차 한 대가 있다. 포드 자동차에서 50여년을 일한 그에게 그 차는 보물과도 같은 것으로, 매일 같이 관리하고 지켜보고 있다. 지켜야 할 절대적 '선(善)'인 것이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더 있다. 바로 그의 작은 집과 앞마당.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장총을 서슴없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겨눌 수 있다.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는 아마도 자신이 보수주의자인 걸 딱히 인지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지 '나의 것'을 지키고 가꾸고 보존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또한 그에게는 과거에 겪은 크나큰 사건이 그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이 과거를 청산하고 동시에 조금은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할 기회가 그에게 찾아온다. 


그의 옆집에는 흐몽족(베트남 남부의 소수 민족)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 '타오'라는 아이가 있는데, 같은 흐몽족 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곤 한다. 갱들이 와서 자신들과 함께 깽판을 치며 놀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대상은 바로 옆집 코왈스키 소유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는 것. 하지만 코왈스키의 방어 때문에 실패한 타오는 도망친다. 어느 날 다시 찾아온 갱들, 그들끼리 벌어지는 실랑이, 코왈스키 내 앞마당까지 침범해 벌어지는 실랑이, 장총을 들고 와 방어하는 코왈스키, 엄청난 카리스마에 도망치고 마는 흐몽족 갱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영웅이 된 코왈스키. 그렇게 영웅이 된 코왈스키는 옆집과 점점 더 친해지며 특히 타오와 친해진다.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런데 코왈스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타오의 누나인 수가 길에서 흑인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 코왈스키가 나서서 구해준 것이다. 참으로 카리스마 있는 코왈스키의 모습에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짜고짜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모습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과장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에서 '세계 경찰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흐몽족 수가 말해주는 종족의 역사를 생각하면 더더욱. 왜 베트남 사람이 미국까지 와서 지내고 있느냐는 말에, 수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공산당이 흐몽족을 학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흐몽족이 미국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영화의 의도를 조금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왈스키는 타오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갱들을 찾아가 두들겨 패 놓았다. 그는 왜 자신의 것을 넘어 자신을 영웅이라 떠받드는 사람을 지키려 했는가?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하지만 이 영화를 드라마로, 과거의 망령에 사로 잡혀 현재를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한 노인의 투쟁이라는 시선을 본다면, 감동적이기 그지 없다. 그는 언제고 거기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는데, 누가 보아도 위대하게 그리고 감동적이게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갱들이 다시금 찾아와 타오네 집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수는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에 코왈스키는 오랜 생각 끝에 갱들의 집으로 쳐들어 간다. 그 전에 타오가 오지 못하게 지하실에 가둬 둔다. 그러며 그는 타오에게 말한다. 


"사람 죽일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지? 그래, 완전 죽이는 기분이지. 한 가지 안 좋은 건, 어린 애들 죽이고 받은 훈장이지. 항복하려는 애들을 말이야. 너처럼 어린 병사들이 겁에 질려 있었어. 나는 그런 아이들 면전에 대고 라이플을 갈겼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 생각 안 나게 돼. 넌 그러면 안 돼. 난 이미 손에 피를 묻혔으니까. 난 이미 더럽혀 졌으니까. 그게 바로 내가 혼자 가는 이유다. 이제 넌 네 인생을 살아라. 난 끝내야 할 것이 있어. 그래서 혼자 가야 하는 거다."


착하고 순수한 청년 타오에게 자신과 같은 후회의 삶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게 악(惡)을 박멸 하려는 의도까지도. 그러며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싶었을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결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선택으로, 위대한 미래를 창조하는 데 쓰이게 될 것이다. 


지극히 드라마적인 요소와 캐릭터의 힘 만으로 끌고 가는 이 영화는 어떤 극적인 장면이나 분위기, 반전이 없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큰 웃음이 터져 나오곤 하는데, 의도치 않았겠지만 대놓고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보다 더 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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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블랙 호크 다운>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소니/콜롬비아


실제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극적인 사건들은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콘텐츠화 되곤 한다. 다분히 극적이진 않더라도, 내러티브가 있고 어느 정도의 감동이 있으면 충분하다. 거기에 창작자가 극적 장면과 호기심 일게 하는 스토리 얼개와 개성 강한 캐릭터를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를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은 2000년 <글래디에이터>로 세계적 명장의 반열에 올라선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01년에 <한니발>에 이어 호기롭게 만든 영화로, 실제 했던 사건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사실 '리들리 스콧'하면 일찍이 1970~80년대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으로 SF의 전설로 자기매김한 인물이다. 여기에 제작자는 그 유명한 '제리 브룩하이머'. 일찍이 만난 적이 없던 이들 간의 시너지가 어떻게 터져 나올지 기대가 되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제1차 모가디슈 전투'. 1992년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무법천지였다.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대통령을 축출한 뒤 소말리아는 정치적 혼란에 빠졌고 거기에 최악의 가뭄까지 겹쳐 30만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에 미군을 위시한 유엔 평화유지군은 소말리아에 전투부대를 파병하고 아이디드 체포를 최우선적인 목표로 잡는다. '베트남 전쟁'으로 역사적인 망신을 당한 미국이 '걸프전'으로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금 세계 곳곳에 손을 뻗고 있는 시기였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그러던 1993년 어느 날 미군은 아이디드 최측근의 위치를 파악하고 체포를 위해 레인저 부대, 델타포스 부대, 블랙 호크 헬기가 포함된 특수전 항공연대를 출동 시킨다. 비록 더 이상의 지원 없이 적지 한 가운데로 투입되는 위험천만한 작전이었지만, 작전 예상 시간은 불과 30분에 불과한 비교적 간단한 작전이었다. 델타 부대는 최고의 전력 답게 아주 간단히 아이디드 최측근들을 체포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 최강 '블랙 호크'가 연달아 추락하면서 발생한다. 이에 사령관은 생존자 구출을 위해 추락 지점으로 대다수 부대들을 급파한다. 하지만 추락 지점으로 가는 도중, 추락 지점에서 많은 수의 대원들이 다치고 죽고 고립되고 만다. 과연 이들은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제목이자 '블랙 호크'가 추락할 때 파일럿이 외치는 보고인 '블랙 호크 다운'은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고의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을 자랑하고 세계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미국의 입지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제1차 모가디슈 전투'에서 유엔 다국적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립된 대원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미국의 무모함과 무력감을 아주 약하게 깔면서, 그 대신 '전우애'와 '휴머니즘'을 듬뿍 투입 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작전 예상 시간이 불과 30분에 불과한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무모한' 작전에 대해서는 단지 이 작전을 지상에서 이끌 소령과 몇몇 부하들의 불평·불만으로 어물쩍 넘어가고 있다. 반면 전우들 간의 진한 '전우애'와 '휴머니즘'은 블랙 호크 헬기가 추락한 뒤 사령관이 절대적으로 시행할 것을 명령한 '모든 대원들의 귀환'과 그 명령을 행할 때 보이는 대원들 간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통해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영화 자체로는 더 없이 훌륭한 명작이라 칭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을 볼 때 위와 같은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주지했듯 영화 자체로는 소위 '명작'이라 칭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전쟁 영화 중에서 현대전을 다룬 최고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거의 이 영화의 '극사실주의' 연출에 있다. 기존 전쟁 영화가 가지는 리얼리티의 특징인, '피 튀기는 현실감' 대신 장면 자체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실제 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배우들은 실전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고, 1993년 모가디슈 전투에 실제 투입된 기체들을 가져와 사용했으며, 이후 다양한 전쟁 영화에서 차용한 탁월한 촬영 기법으로 전투의 세세한 장면들을 굉장히 미시적으로 접근해 현실감을 극대화 시켰다. 이 밖에도 영화 곳곳에서 리들리 스콧이 리얼리티 구축을 위해 쏟은 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극도의 리얼리티에만 있지만 않다. 만약 그랬다면 아주 훌륭한 다큐멘터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대중을 겨냥한 상업 영화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들리 스콧은 극도의 리얼리티 말고 또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그것은 위에서 말한 '전우애'와 '휴머니즘'에서 기인한다. 비록 영화 외적으로 볼 때 많은 논란을 낳을 여지가 있지만, 영화 내적으로 볼 때 이는 굉장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그리 개성적이지는 않지만 캐릭터들이 틈틈이 보여주는 행동과 속내는 이 영화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특히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전우를 구하려다 오히려 총에 맞아 결국 죽고 마는 장면은, 비록 굉장히 진부하지만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대원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 하는 레인저 부대 분대장과 이 모습을 보며 너의 잘못이 아니며 전쟁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하는 델타 부대 장교의 대조 되는 모습도 은은한 감동을 자아낸다. 전투가 끝난 뒤 곧바로 다시 전투에 투입되는 델타 부대 장교가, 이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레인저 부대 분대장에게 하는 말은 결정타이다. 


"대원들이 남아 있어. 고향 사람들이 묻더군. '그 짓을 왜 해, 후트?' '전쟁이 그리 좋아?' 

난 대꾸 안 해. 왜냐하면 이해를 못 하거든. 우리가 싸우는 건 바로 전우애 때문이란 걸 말이야. 

바로 그거야. 그게 전쟁이지."


보는 이의 성향에 따라서 이 영화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단, 이 영화를 '명작'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또는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은 한 가지를 명심하고 있거나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볼 때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른 누구의 입장도 아닌 다분히 미국의 입장에서 서술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런 다음, 영화가 보여주는 극도의 리얼리티 속에 푹 빠지면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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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터미널>


영화 <터미널> ⓒ드림웍스



해외 여행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제 미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연고지 하나 없는 곳에서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비행기를 놓친 상황에서 수중에 돈은 없고 카드도 없고 핸드폰 배터리까지 나가버린 상황이라면? 결정적으로 어딘지 모를 그곳에서는 우리나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면? (물론 어떻게 해서든 집과 연락이 되어서 도움을 청하면 지금 시대에서 불가능한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럴 때의 당황스러움, 불안감,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공항'은 이런 부정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곳은 언제나 설렘과 기대감, 행복한 긴장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헤어짐과 떠남이 있지만 만남이 있고, 아련함과 애잔함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행복과 환희와 행복한 기다림이 있다. 즉, 그곳에서는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신기한 곳이다. 


최소한의 재미를 보장하는 공항에서의 흥미로운 설정


영화 <터미널>은 바로 이 공항에서의 흥미로운 설정과 감독(스티븐 스필버그)과 주연(톰 행크스)에 대한 믿음으로 최소한의 재미와 감동을 보장해줄 것 같은 영화이다. 그래서 인지 이 영화는 여러 장르가 조금씩 뒤섞여 있다. 정치, 공포, 코미디, 사회 비판, 드라마, 성장, 우정, 사랑, 상징, 감동까지. 


영화의 초중반까지, 이 영화는 이런 장르를 적절히 섞어 보여주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선사한다. 공항이란 이런 곳이구나, 공항이 마냥 재밌고 신기한 곳은 아닌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일터일 수도 있구나, 그리고 이곳은 바깥 세상과는 완연히 다른 또 다른 곳이구나.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 분)는 동유럽의 작은 국가 '크로코지아' 사람으로 뉴욕에 가기 위해 JFK 공항에 입국 심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미국으로 오던 도중 '크로코지아'가 반군에 의한 쿠데타로 인해 유령 국가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는 말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마냥 저냥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고국의 형편이 정리되어 다시금 국가로 인정을 받아 미국의 비자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는 67번 게이트를 집으로 삼고 그곳에서 살아간다.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 ⓒ드림웍스


그런데 항공 관리국 이사 프랭크 딕슨(스탠리 투치 분)은 이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동유럽 출신이라는 점과, 그가 이곳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그를 주시하며 계속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만간 국장 자리에 임명되게 되는데, 어떠한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 완벽주의자인 그의 눈에 빅터 나보스키는 불필요한 존재이다. 


한편 빅터 나보스키는 공항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전혀 모르던 영어를 독학하고, 카트를 이용한 돈벌이에 나서며, 공항 내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또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공항 내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인간애'가 있다. 그 인간애로 그는 규정에 묶여 비참한 상황에 빠진 한 러시아인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는 영웅이 되기에 이른다. 그는 한편 여러 사람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고 사랑의 메신저 역할도 하며 직접 어느 승무원과 로맨스를 펼치기도 한다. 


초중반과 정반대인 중반 이후의 삐걱거림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가 영웅이 된 후부터 말이다. 국적 불명의 거지와 다름 없던 그가 믿을 수 없는 기지를 발휘해 단번에 영웅이 되어 명사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빅터 나보스키는 러시아 인과 러시아 말로 대화를 했는데, 영화 초반에 당연히 공항에 있었을 러시아 통역관과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제일 좋은 초중반 부분의 공황 공포, 성장, 우정, 그리고 사랑은 아예 나타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억지로 꿰어 맞춘 스토리가 끝까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달려 가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영화는 중반이 넘어서부터 줄곧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억지로라도 표현하려고 발버둥 친다. 기본적으로 빅터 나보스키의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기다림, 그리고 빅터 나보스키의 또 다른 기다림, 빅터 나보스키의 로맨스 상대인 아멜리아 워렌(캐서린 제타 존스 분)의 불륜 상대에 대한 기다림, 빅터 나보스키의 친구들의 사연들, 공항 관리 이사 프랭크 딕슨의 국장 영전의 기다림까지.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 ⓒ드림웍스


결정적으로 빅터 나보스키가 뉴욕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장면에서 영화는 진부함의 끝(혹자는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는 장면이라 할지도 모르겠다.)을 보여준다. 빅터 나보스키의 아버지는 재즈의 광팬이었는데, 57명의 유명 재즈리스트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56명의 사인은 받았는데, 단 한 명의 사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빅터 나보스키는 그 한 장의 사인을 받기 위해 뉴욕까지 왔고, 전쟁이 끝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돌아가지 않고 무조건 뉴욕으로 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필 이 상황에서 사랑이 끼어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예 로맨스로 가던지, 아니면 감동 코드로 가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공항 관리자들과의 대결 쪽으로 가서 제대로 된 코미디를 보여주던지. 도대체 몇 개의 영화가 이 한 영화에 모여 있는지 모를 정도이다. 모든 걸 담으려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담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뽑을 만 할 정도의 영화라 하겠다. 차라리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 단, 이 재미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영화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하려 하지 말고 오로지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에 집중해야 한다. 소소한 웃음이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감동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와 같이 부분에 집중한다면 아주 소소한 감동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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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디센던트>


<디센던트> ⓒ폭스 서치라이트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증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12살 어느 날과 마주쳤다. 일기를 읽어보니 가관도 아니다. 글 재주는 둘째 치고, 증조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재밌다니? 어린 나에게 집안 어른의 장례는 재밌게 다가왔나 보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친척들이 모두 다 모이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호상(好喪)이셨기 때문에,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첫 번째 집안 어른 장례식이다. 


작년에는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몇 달 간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 하셨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친척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좋았고, 왠지 모르게 우리 가족들 사이가 전에 없이 밀착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하염없이 우시는 어머니와 어머니 형제 분들의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가족애까지 느끼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산(遺産) 아닌 유산이었다.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 <디센던트>는 ‘자손’ 또는 ‘유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맷 킹(조지 클루니 분)은 하와이에서 제일가는 땅을 소유한 가문의 상속자이다. 법률 변호사이기도 그는, 이 땅을 어떻게 하면 잘 팔았다는 말을 들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 땅을 파는 건 오로지 그의 결정에 의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그의 수많은 친척들과 함께 할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모터 보트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소에는 너무나 바빠서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그이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곁을 지켜야만 한다. 그에게는 망나니 같이 행동하는 두 딸이 있는데, 그의 잘못이 크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딸들과 함께 아내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영화는 이처럼 두 개의 큰 맥락으로 진행된다. 땅을 떠나보내면서 돈벼락을 맞고,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가족이 재결합하고.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50년 간 이어 내려온 땅을, 자신들이 그 땅을 위해서 한 일은 한 가지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이익 만을 위해 팔려고 하는 것이다. 그를 아는 다른 모든 주민들은 그 일을 반대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건, 리조트나 호텔 따위 뿐이다. 


또 하나, 아내를 떠나보내는 건 더더욱 어렵다. 특히 10년 만에 아이들과 붙어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두렵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첫째 딸에게서 황당무계하고 어이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너무나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그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미안했다.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는 그날로 아내가 바람 핀 상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에 딸들이 동행하면서, 비로소 그들은 가족이 된다. 아이러니컬한 상황이지만, 그의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 아닌 유산은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으면서 한편으로는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이러니컬한 상황은 ‘하와이’라는 배경 자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하와이를 생각할 때 ‘지상 낙원’이 그려질 것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접근해보면 보통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손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해체와 거기에서 파생된 불륜, 사소한 사고에 의한 죽음, 속물근성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 재개발에 관련된 반응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상 낙원’에서 벌어지는 매우 ‘지상’적인 느낌의 일들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사실 영화의 결말은 이미 나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아내의 죽음 덕분에 맷 킹의 가족은 재결합할 수 있었다. 맷 킹은 남은 두 딸에게 헌신적인 아빠가 될 것이었고, 망나니 같던 두 딸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다시 들어와 잘 자랄 것이었다. 


또한 그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인 땅은 결국 팔지 않을 것이었다.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인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맷 킹이, 조상들의 유산을 팔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가족들의 추억이 새겨져 있는 그곳을. 비록 수많은 친척들의 압박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의 삶은 아내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를 잃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감정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슬픔과 허무는 우리를 사정 없이 덮쳐올 것이다. 그런데 그때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으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 변화를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승화 시키는 것이 어떨까. 이 변화의 컨트롤을 위해 굳이 연습을 하거나 계획을 세워둘 필요는 없다. 잃게 되는 무언가가 남기고 갈 유산이 변화를 이끌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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