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더 헌트>



영화 <더 헌트> ⓒ노르디스크 필름



덴마크의 한적한 마을, 루카스는 그곳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도시에서 결혼해 일하고 있던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한적한 고향 땅에는 친한 친구들도 있어서 마음을 다잡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들 그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의 부담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그의 마음 속에 부담으로 남아 있는 건 아들 마커스다. 이혼한 아내가 쉽게 아들을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아들이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 데도 말이다. 


그런 그에겐 가족 같이 친한 친구 테오가 있다. 테오에겐 딸 클라라가 있는데, 루카스가 유치원에서 보살핀다. 클라라는 걸핏하면 싸우는 테오 부부보다 자상하고 친절한 루카스가 더 좋다. 나이를 떠나 서로 외로운 처지에 있으니 마음이 통했나 보다. 몇 번 같이 유치원에 오가다 보니 클라라에게 어떤 마음이 생겼나 보다. 클라라는 루카스에게 안기고 뽀뽀하고 선물까지 준다. 그런데 루카스는 그 선물을 다른 아이에게 가져다주라고 말한다. 클라라에겐 일생 최초의 고백이었고 최초의 거절이었다. 큰 상처를 받는다. 


말 한 마디 때문에 꼬이는 인생


영화 <더 헌트>의 극 초반 내용이다. 굳이 말하자면 1/10 지점까지 인데, 여기서 영화는 급격하게 선회한다. 큰 상처를 받은 클라라는 유치원 원장에게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을 한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언젠가 오빠가 지나가다 보여준 남자의 성기를 기억해낸 클라라는 확실하지 않은 투로 원장에게 루카스의 성기를 봤다고 말한다. 그러며 루카스에게 준 선물을 루카스가 준 선물이라 거짓말한다. 


이 한 마디 때문에 루카스의 인생이, 그리고 마을 전체가 꼬이기 시작한다. 하룻밤 사이, 루카스에겐 나디아라는 새로운 연인이 생겼고, 마커스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클라라에게도 큰 상처를 준 것이다. 그 한 마디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원장은 이를 루카스에게 알리고 전문가를 불러 클라라와 대질 시킨다. 이제 와서 거짓말이었다고 하면 혼날 것이 불 보듯 뻔하고 원장이 믿지도 않을 것이기에, 어찌 되었든 루카스가 클라라를 성폭행 했다는 건 기정사실화 된 거였다. 작은 마을은 순식간에 루카스와 클라라 사건에 휘말린다. 루카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영화 <더 헌트>의 한 장면 ⓒ노르디스크 필름



영화는 이렇듯 루카스에게 진실이 있고 클라라에게 거짓이 있다는 걸 천명한 채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그 진실이 어떻게 묻히고 거짓이 어떻게 진실로 둔갑하는 지의 과정, 그리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한 이후 피해자의 삶, 이를 타개하려는 피해자의 행동 등이 포인트가 될 것이다. 


진실만큼 약하고 허무맹랑한 게 없다


유치원 원장은 거짓이 진실이 되는 과정에게 제일 가는 공로를 보인, 연결 고리의 핵심이다. 그녀는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본 것을 그대로 말한다' 등의 명제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클라라가 루카스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유치원생들 모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서 루카스가 클라라 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에게 손을 댔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루카스는 하루 아침에 유치원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인간 쓰레기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루카스가 할 일은 해명 밖에 없다. 마을 전체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진실은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는 한 마디에 무너져 버렸다. 진실은 위대하다고 하는데, 진실만큼 약한 게 없다. 누구든 진실을 입에 달고 살아가지만, 진실만큼 허무맹랑한 게 없다. 루카스를 몰아 붙이는 마을 전체가 거짓으로 점철된 진실을 말하지만, 사실 거짓이 아닌가 말이다. 



영화 <더 헌트>의 한 장면 ⓒ노르디스크 필름



영화가 한적하고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서로 서로 모르는 게 없이 모두 아주 각별한 사이인 만큼,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곳을 노리는 집중 또한 엄청난 것이다. 곧 '집단 폭력'이다. 진상은 알지 못한 채 들려온 말 한 마디에 마을 모든 사람들은 루카스에게 전에 없는 폭력을 휘두른다. 


집단은 진실이고 개인은 거짓이 되는 마녀 사냥


여기서 생각나는 게 '마녀 사냥'이다. 과거 백년 전쟁 때 이단으로 몰리고 남장을 했다는 혐의로 처형된 잔 다르크가 대표적이다. 한번 밑 보여 부정적인 말이 퍼지면 곧 치명적인 독으로 변하고 만다. 마녀사냥의 양상은 참으로 다양한데, 전체주의의 산물이자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 그리고 정상이 아닌 것들에 대한 가혹한 처사, 집단의 개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탄압 행위 등이다. 그야말로 개인은 절대로 집단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럴 때 집단은 진실이고, 개인은 거짓이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집단의 광기는 루카스 개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루카스의 제일 친한 친구인 테오보다도, 다른 친구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더 난리를 치니 말이다. 오히려 테오가 말리고 있지 않는가. 집단의 폭력은 테오의 아들 마커스에게도 심지어 반려견에게도 미친다. 과연 진실의 개인은 거짓의 집단에게 대항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실의 개인일 때도, 거짓의 집단에 속해 있을 때도 많을 것이다. 작게는 가정, 학교, 직장 나아가 인터넷 상, 국가, 세계까지. 이 작은 나라에서는 몇 개의 주요 언론이 거짓된 같은 기사를 쓰면 국민 모두가 믿곤 한다. 그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 곧 '빨갱이'의 낙인이 찍힌다. 



영화 <더 헌트>의 한 장면 ⓒ노르디스크 필름



집단은 개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들이 내세우는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속죄하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쫓아내지 않고 같이 살게는 해준다는 것이다. 그럴 때 개인은 대부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휩쓸리고 만다. 자신의 생각이 진실에서 거짓된 진실로 바뀌고, 자신의 입에서 거짓을 진실인 양 말하게 된다. 그리고 곧 집단으로 편입된다. 


거짓된 집단에 대항하는 개인의 방법?


세월호, 밀양 송전탑, 쌍용차 해고, 땅콩회항 사건 등에서 개인의 진실은 쉽게 묻히고 만다. 자본 집단, 권력 집단, 국가 집단의 거짓과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개인의 진실을 압도해 버린다. 그리고 한번 묻힌 진실은 다시 진실의 권위를 찾기 힘들다. 집단의 진실 아닌 진실을 상쇄할 그 무엇을 찾기란 힘들다. 


그래도 루카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이 없는 걸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신이 알고 아들이 알고 가족이 알기에 물러서지 않는다. 대신 그의 방법은 집단 대 개인이 아니다. 사건의 당사자와 개인 대 개인으로 진실을 어필한다. 제일 현명한 방법이자 어쩔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나마 이런 방법이 통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그런 조직에 몸담고 있는가? 그런 가정에서 태어났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진실과 거짓을 올바르게 판명할, 거짓된 집단에서 과감히 몸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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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바람>



영화 <바람> ⓒfilm the days



20대 중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불만이 겹쳐 우울증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누구의 위로도 그 모든 감정들을 추스를 수는 없었다. 단지 현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미래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니 과거로 도망치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갑갑하고 불편한 현실에서 도망쳐 과거로 천착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지금은 20대 중반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당시에는 어떤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몇몇 시절들을 꼽아본다. 대학교 2학년 군대 가기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 3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 때, 유치원 때. 그리고 우울증을 느꼈던 20대 중반의 그때. 이들 시절에는 어김없이 내 옆에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들 또한 이 당시의 친구들이다.

 

지금 내 옆에는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친구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힘들어 한다. 그 친구 덕분에 지금의 이 어려움들을 견디고 있지만 가끔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지금 또한 미래의 나에겐 돌아가고 싶은 과거라는 걸.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시절


영화 <바람>은 한 남자의 돌아가고 싶은 과거인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누구보다 폼 나는 시절이었다. 과연 그는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모티브는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 쓰레기 역 ‘정우’의 실제 이야기이다. 자연스레 영화 <바람>의 주인공은 배우 정우가 맡았다.



영화 <바람>의 한 장면.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시절. ⓒfilm the days


 

짱구(정우 분)는 엄한 집안의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폼 나는 학창시절을 보내게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럼 ‘바람’이 통했는지 집안에서 유일하게 명문고가 아닌 골칫덩이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부산 바닥에서 폭력 학교로 유명한 광춘상고에 진학하게 된 짱구는, 불법폭력써클 ‘몬스터’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 무리들과 함께 하게 된다면, 편한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그토록 바라던 폼 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짱구처럼 폼 나는 바람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를 회고해보면 분명히 짱구의 바람과 똑같은 바람이 존재했었다. 주위에 남학생들만이 존재하는 남고에서, 편안한 학교생활을 넘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싸움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폼 잡으면서 학교를 활보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짱구의 바람은 곧 나의 바람이기도 했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학창시절


하지만 짱구는 신학기 조회 시간에 거행되는 몬스터의 후임 물색 작업에서 ‘간택’되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카리스마를 내뿜으려 해봤지만 타고난 폼이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짱구.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소위 잘 나가고 싸움 잘했던 형이 같은 학교에 있었기에, 학교생활은 편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가 엉겁결에 몬스터와 다른 불법폭력써클 간의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짱구를 비롯한 친구들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고, 이로 인해 몬스터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학교 ‘일진’이 된 짱구. 아무리 봐도 순박하고 착한 짱구인데, 엄연히 폭력써클의 일원이 되었기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 부적절한 합이 얼마나 웃음을 자아내는지.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이 난다.



영화 <바람>.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학창시절. ⓒfilm the days


 

1997년 데뷔한 ‘젝스키스’의 노래 중에 <폼생폼사>라는 노래가 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사나이라면 사랑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인데, 이는 당시 고등학생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사랑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허세’와 ‘폼’을 중요시했던 학창 시절을 대변하는 노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 당시(1997년 당시가 아닌 모든 이들의 학창시절)에는 허세와 폼이 하나의 문화였고 모든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그것만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바람>은 그런 바람을 한 치의 ‘오버’나 ‘부족함’없이 보여주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잘 나가던 짱구. 무서웠던 선배들이 졸업하고 자신이 직접 조회 시간에 후임을 물색하는 위치가 되었다. 세월 참 빠르고 ‘찌질했던’ 옛날이 생각나게 만든다. 그런데 진짜 옛날이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긴급 전화. 당장에 집으로 뛰어간다. 그 뒤를 급하게 뒤쫓는 친구들. 곧 아버지가 간경화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건강에 치명상을 입은 아버지. 시무룩해지고 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짱구. 하지만 아버지가 당장의 급한 상황을 넘기게 되자 짱구는 다시금 돌아가게 된다.

 

나의 진짜 '바람'은 소중한 가족


사람은 정작 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일이 닥쳤을 때의 슬픔과 두려움과 밀려드는 후회를. 짱구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어릴 때 자신을 ‘짱구 박사’라고 부르곤 했던 아버지의 아빠 미소와 다정한 모습을 잊어먹고 있었다. 그렇게 따랐던 아빠였는데. 지금은 왜 그리도 싫은지. 왜 그리도 불편한지.

 

결국 짱구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만다. 그리고 짱구의 학창시절도 끝나고 만다. 허세와 폼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했던 그 학창시절이 말이다.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씁쓸한 기억 뿐. 단, 소중한 친구들과 소중한 가족들이 남았다.

 

학창시절 짱구의 ‘바람’은 폼 나는 폭력써클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폼은 허세의 다른 말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허세도 폼으로 읽혔지만 말이다. 반면 짱구에게 가족은 폼의 반대말이었다. 엄격한 집안에서 유일하게 공부 못하고 촐싹거리기만 하는 막내아들인 짱구가 폼 날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빨리 독립하고 싶고 여차하면 가출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학교생활에서라도 폼 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짱구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곧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슬픈 매개체였다.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였지만, 또 영화로써도 거의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감독이 원래 짰던 시나리오를 던져버리고 완전히 다시 썼다는 것도 수긍이 간다. 그 정도로 학창시절의 ‘바람’은 그 무엇으로도 쉽게 떨쳐낼 수 없던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짱구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꾸며 꿈속에서 말하는 장면이 생생하다.



영화 <바람>의 한 장면. 나의 진짜 '바람'은 소중한 가족. ⓒfilm the days



“아빠...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못했다. 아빠... 아빠... 사랑한다.”

 

그때 그 시절, 참 힘들었다. 매일같이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공부에 매진하고, 그러면서도 양육강식의 남자들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발버둥치고, 점점 멀어져 가는 가족들과의 관계에 괴로워하고, 어김없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고 현재에 대해 불만에 차 있었다. 과연 지금 그때 그 시절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바람’을 갖고서 살아가게 될까. 영화는 그 정답이 ‘가족’이라고 말한다. 반면 나는 대학교 때까지는 ‘공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으로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그 바람은 더욱 더 확고해질 것 같다. 가족(지금의 가족, 앞으로의 가족)만큼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아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이는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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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마이너리티 리포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 20세기 폭스



평소 SF 장르에 관심이 없거나 필립 K. 딕을 모르더라도, 심지어 영화를 잘 보지 않더라도 영화 <매트릭스>, <토탈 리콜> 등을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이 밖에도 <이퀄리브리엄>,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영화까지, 모두 필립 K. 딕의 SF 장·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또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이들 영화는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의 작품들로, 그의 소설은 꾸준히 사랑받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그의 소설들은 SF 장르가 갖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결코 킬링타임 용으로 읽을 수 만은 없다. 생전(1928~1982)에는 마니아층에서만 사랑을 받은 작가에 불과하였다고 전해지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들에게 재평가를 받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대표격이 영화인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또한 그의 단편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2054년 미국 워싱턴. 범죄를 예측해 사전에 막는다는 설정. 이는 세 명의 예지자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프리크라임(precrime)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하다. 존 앤더튼(톰 크루즈 분)은 이 시스템을 관장하는 예방범죄국(프리크라임)의 반장이다. 그는 6년 전 유괴로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수사관이 되었고, 천부적 감각과 능력으로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완벽함에 일조한다.

 

존 앤더튼이 예지자들의 영상을 보며 열심히 작업하고 있을 때 흘러나오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긴박한 넘치는 액션과 스릴의 SF 특성과는 맞지 않을 듯한 클래식 음악이지만, ‘미완성’ 교향곡은 이 영화의 주제에 잘 부합되는 듯하다. 완벽하다고 믿고 신봉하다시피 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미완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어김없이 세 명의 예지자들이 범죄를 예측한 어느 날, 앤더튼은 뜻밖의 예상 범죄자를 본다. 그 예상 범죄자는 바로 그 자신인 존 앤더튼. 그는 믿을 수 없는 사실 앞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도망치기에 이른다. 그의 앞을 막는 연방정보국 수사관 대니 워트워(콜린 파렐 분). 앤더튼은 워트워가 꾸민 함정이라고 굳게 믿고 그의 미래를 위한 여정을 떠난다.

 

앤더튼은 동료였던 수사관들의 끈질긴 추격을 겨우 물리치고,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만든 아이리스 하인먼을 찾아간다. 그녀에게서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실들을 접하고, 예방범죄국 안으로 잠입해 세 예지자 중 한 명인 아가사를 데려와 그녀 안의 내재된 앤더튼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한다.

 

영화는 곳곳에 예상치 못한 웃음 코드를 장착시켜 놓았다.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이디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뜻밖의 행동으로 몇몇 장면에서 웃음이 뿜어져 나왔다. 주로 앤더튼의 행동에서 비롯되는데, 완벽함을 추구하는 앤더튼에게도 불완전한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그래서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완벽함을 믿고 신봉하기까지 했던 앤더튼의 불완전한 모습과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불완전함을 대치 시키려 했던 의도일까. 아니면 SF 특유의 진지함과 무게감을 유머로 풀어보려 했던 것일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 ⓒ 20세기 폭스


 

앤더튼이 아이리스 하인먼에게서 들었던 프리크라임 시스템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재였다. 즉, 하나의 범죄에 대해 세 명의 예지자가 모두 동일한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다른 예측들을 한다는 것이다. 고위층은 이를 알고 있음에도 시스템의 완벽함을 지키기 위해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앤더튼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해보려고 했던 적도 없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영화는 앤더튼이 자신의 미래를 보기 위해서 예지자가 예측한 대로의 범죄 현장까지 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앤더튼의 예상 범죄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6년 전에 잃었던 아들을 유괴했다는 거짓말로 앤더튼으로 하여금 가짜 유괴범을 죽이게끔 한 것이다.

 

이후 영화의 전개는 급변한다. 이때부턴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의 전개를 띠기 시작한다. 또한 원작이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상징하는 ‘소수의 의견’에 더 중점을 둔 반면, 영화는 어느 정도의 액션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적 기법을 차용한 심리 싸움에 치중한다. SF를 위시한 범죄액션스릴러에 가깝다.

 

과연 앤더튼은 무서운 진실에 맞닥뜨려 무릎을 꿇을 것인가. 이겨낼 것인가. 완벽할 것만 같았던 프리크라임 시스템. ‘범죄 없는 세상’을 꿈꾸며 좋은 취지로 시작한 시스템의 추악한 인간의 ‘오류’ 내지 ‘결점’이 침투하여 상처를 내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인가.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더해 더욱 많은 걸 담아내려 했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피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은 조금 과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영화를 보다 보면 생각할 거리들이 너무 많아짐을 느낀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답까지 해야 하고, 액션과 범죄 스릴러의 범위까지 아울러야 했으니, 욕심이 지나쳤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큰 결점 없이 군더더기 없는 전개에,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구나 하는 말이 나온다. 한 번 보고 또 보고 싶어지는, 그리고 또 봐야 이해가 될 것 같은 영화였다.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주연 배우인 톰 크루즈에 있어, 큰 영광도 그렇다고 큰 해악도 끼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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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나의 그리스식 웨딩>



<나의 그리스식 웨딩> 포스터 ⓒIFC



2002년에 개봉해 전세계적으로 3억 6천 만 달러의 기록적인 흥행을 올렸던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이 영화는 단돈(?) 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이렇다 할 스타 배우도 없이, 생소한 소재로 이런 사랑을 받았기에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언제 봐도 유쾌하고 기시감이 없고 희망적이다. 


영화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 '사랑은 국경도 초월한다' 등의 명제와 함께 한다. 그리고 민족과 문화의 차이와 그 차이를 넘어서는 사랑의 힘을 유쾌·상쾌·통쾌하게 보여준다. 자칫 무겁고 또 진부할 수 있는 주제이지만 그것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최근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컬러풀 웨딩즈>는 이 영화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겠다. 


킬링 타임 영화는 맞지만, 확연히 달라


주인공 툴라는 30살의 노처녀(?)이다. 그녀는 미국에 이민을 와 사는 그리스 집안의 딸이다. 가업으로 내려오는 레스토랑 '댄싱 조르바'의 매니저 겸 웨이트리스로 잡일을 도맡아하고 있다. 그녀는 굉장한 촌닭으로 평생 연애 경험 한 번 없어, 온 집안이 그녀의 결혼 성사에 관심을 갖고 매달리는 중이다. 


한편 툴라의 아버지는 그리스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모든 단어의 시작을 그리스어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필사적이다. 심지어 일본어인 '기모노'까지도 그 기원을 그리스어에서 억지로 찾으려 한다. 이민자 집안이기에 역으로 그 자부심이 더욱 커진 것이리라. 거기에 그리스 민족 특유의 공동체(가족, 나라, 민족) 중심적인 문화가 겹쳐져, 절대적으로 그리스인과 결혼을 해야 하고 그리스식 결혼을 해야 하며 아이들도 그리스식으로 교육(예를 들어 그리스 학교에 다녀야 한다.)해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또한 보수적인 측면이 강해서, 여자는 일정 정도 이상의 교육을 받으면 안 되고 빨리 그리스 남자와 결혼해서 그리스 아이를 낳고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 와중에 툴라는 이상형인 남자 이안 밀러를 발견한다. 그러며 자신의 초라한 행색에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그녀는 과감히 새로운 삶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대학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이모의 여행사에 취직을 해 새롭게 시작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자신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그녀 앞에 이상형인 남자가 나타난다. 몰라보게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반한 것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그녀의 변화에서, 그의 변화, 그녀의 가족과 그의 가족의 변화로 까지 이어진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한 장면. ⓒIFC



이 영화는 스토리로 승부를 보지 않는다. 굳이 보지 않아도 스토리 라인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 이해하고 모든 것이 잘 풀리는 해피엔딩. 그래서 연출력과 연기력, 분위기 등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얼마나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가,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적인 스토리에 묻히지 않고 얼마나 영화를 잘 끌고 나갈 수 있는가, 분위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즉 이런 류의 영화는 흔히 말하는 '킬링 타임' 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재미있게 보고 마는 영화. 하지만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여타 '킬링 타임' 용 영화와는 다른 선명한 '주제'가 존재한다. '사랑'이라는 줄기와 '문화'라는 줄기. 영화는 이 두 줄기를 씨줄과 날줄로 탄탄하게 엮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사랑'과 '문화' 그리고 '결혼'


툴라와 이안 밀러는 결혼을 결심하고 양가 부모님을 방문한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 남자 쪽의 별로인 듯한 반응. 여자 쪽의 완강한 반대. 그래도 다행인 건 남자 쪽 부모님은 최소한 반대는 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남자친구 이안 밀러는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위해 일생일대의 결정을 한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그리스식 웨딩'을 말이다. 결정은 결정이지만, 그 결정이 실현되기까지 숱하게 겪을 일들을 이들이 과연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한 장면. ⓒIFC



전혀 다른 두 사람, 두 가족, 두 나라, 두 민족이 하는 결혼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 하는 건 참으로 어렵구나' 하는 명제도 있다. '결혼 하기도 전에 파산하겠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말, 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집 한 채를 주는 모습, 여자 쪽의 수백 명 하객과 남자 쪽의 10여 명의 하객 차이 등. 이 영화의 두 줄기 '사랑'과 '문화'에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반드시 추가 시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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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CJ 엔터테인먼트



문학이든 영화든 어떤 작품의 질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나름대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 콘텐츠 내적으로는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하고, 콘텐츠 외적으로는 '해석의 무한함' 즉, 시간과 장소,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먼저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보는 재미, 듣는 재미, 생각하는 재미에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재미와 감동, 이 둘 중에 어느 하나에 치중되면 밋밋해지기 쉽다. 물론 극단을 추구해 일종의 예술로 승화시킨다면 달라지겠지만, 여전히 나의 판단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석의 무한함은 재미와 감동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가 서로의 선결과제는 아닌 것이다. 이 둘 중에서는 하나만 추구해도 충분하다. 해석이 무한한 콘텐츠는 두고두고 보고 생각할 수 있다. 유행을 타지 않아 시일이 지나도 그때그때 다른 빛을 낸다. 재해석되고 리메이크돼 불명의 명작이 될 공산이 크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극적인 장면도 특별한 줄거리도 없지만, '고도'의 무한한 해석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출간된 지 6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재해석되고 있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단순히 외양만 보자면 화려한 색감이 더해진 무협영화에 불과하지만, 영화의 배경과 캐릭터들의 행동을 조합해 생각하면 상당히 복잡하고 큰 덩어리의 해석이 가능하다. 나의 기준으로 보자면, 좋은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살인마 안톤 시거는 사람을 살리는 산소통을 사람을 죽이는 데 쓴다.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개봉 당시부터 수많은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고, 6년 여가 지난 지금도 활발히 해석되고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우연히 2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얻게 된 모스. 이를 쫓는 살인마 시거. 이 둘을 쫓게 된 보안관 벨. 그리고 모스의 부인과 사적으로 시거를 쫓는 해결사. 결국 모스와 모스의 부인, 해결사는 시거에게 살해당하고, 시거는 큰 사고에도 유유히 살아남았다. 벨은 항상 한 발 늦게 현장에 도착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처럼 너무나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수많은 해석들이 난무하는 건,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의 난해함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살인마 안톤 시거. 영화는 그가 감옥에 끌려갔다가 부보안관을 목 졸라 죽이면서 시작된다. 이후 그는 사람을 살리는 산소통을 사람을 죽이는 살인 무기로 

둔갑 시켜 가지고 다닌다. 그러며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던 중에 어느 주유소에 들어가 늙은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주인이 시거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시거는 이 말을 참을 수 없었다. 동전을 던질 테니 고르라고 말한다. 늙은 주인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골랐고 맞췄다.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운명은 자신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인가. 


모스는 사냥을 나왔다가 우연히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200만 달러도 목격한다. 모스는 이 돈을 가지고 도망간다. 그런데! 현장에 살아있었던 한 사람이 목말라 하던 걸 잊지 못하고 물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그때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시거에게 쫓기게 되고 본격적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한다. 모스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니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부인을 피신시킨다.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지려 하는 것인가? 그를 안톤 시거라는 참혹한 운명의 그림자가 쫓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모스는 우연히 200만 달러를 거머쥐었고, 덕분에 살만자에 쫓겨서 죽고 만다. ⓒ CJ 엔터테인먼트



보안관 벨은 늙었다. 대신 그는 경험과 학식이 풍부하다. 한 발 늦어 현장에 도착하지만, 정황을 정확히 판단해 시거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쩌랴. 파악만 할 뿐 해결할 수는 없다. 너무나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한 벨은 은퇴를 결심하고, 이미 은퇴한 엘리스를 찾아간다. 그가 하는 말 또한 운명에 관해서이다. 


"세월은 막을 수 없는 거야. 너를 기다려주지 않을 거고. 그게 바로 '허무'야."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인을 사는 시거, 정해진 운명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발악해보는 모스, 운명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벨. 그들은 무력한 인간들일 뿐이다. 


시거는 모스의 부인을 죽이면서, 운명론의 결정타를 먹인다. 내가 너를 죽여야 하는 정해진 운명에 거역할 길은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매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에서 선 하나도 지울 수 없어. 당신 뜻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는 없지. 인생의 길은 쉽게 바뀌지 않아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더더욱 없지. 당신이 가야한 길은 처음부터 정해졌어."


그리고 시거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우연에 기인했다고도 할 수 있고,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사건에 어떠한 억울함도 보이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자리에 그가 있었을 뿐이다. 그는 유유히 갈 길을 간다. 운명이 정해준 길을 따라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뛰어난 학식과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이지만, 항상 한 발 늦는 보안관 벨. ⓒ CJ 엔터테인먼트



여전히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굳이 나만의 해석을 하면 이렇다. 이 영화에 강력히 흐르고 있는 '운명론'적 기조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유독 노인들이 많이 나온다. 벨과 앨리스, 모스의 장모, 시거에게 죽임을 당하는 노인들까지. 이들은 운명론에 깊이 천착하지 않는다. 시거처럼 철저히 운명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고, 모스처럼 이에 반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방관할 뿐이다. 즉 이 제목은 '운명을 방관하는 자를 위한 삶은 없다'라고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많은 해석이 뒤따르고 있는 영화이기에 가능한 나만의 해석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물음표와 느낌표를 안겨줬다. 우연이나 운명론을 믿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타이밍 좋게 우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사건·사고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믿게 됐다. '해석의 무한함 =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고정관념이 상당히 깨지게 됐다. 과연 '난해함'으로 무장한 작품의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좋은 작품으로 가는 확실한 길인가?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고만 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석'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베스트셀러? 오랜 세월 살아남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평론가가 만장일치로 손을 들어준, 상 많이 받은 작품? 그 기준이 어쩌면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무엇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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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미저리>


영화 <미저리> ⓒ 콜롬비아 픽쳐스



아서 코난 도일은 1893년 <셜록 홈즈의 회상록> 최종장인 '마지막 사건'을 통해 셜록 홈즈를 폭포 밑으로 떨어뜨려 죽인다. 아서 코난 도일은 이로써 1887년 <주홍색 연구>부터 시작된 '셜록 홈즈' 시리즈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대중소설가에서 진정한 문학가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하지만 셜록 홈즈는 더 이상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팬들의 입장에서 셜록 홈즈는 살아 움직이는 존재였고, 그의 죽음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처럼 팬들의 반대가 계속되었고,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캐릭터가 아닌 소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10 여 년 만에 셜록 홈즈를 살려냈다.


열렬한 미치광이 팬과의 극적 조우


여기서 눈길이 가는 건 셜록 홈즈의 죽음에 대한 팬들의 반응. 영화 <미저리>는 이런 팬의 반응이 극으로 달한 모습을 중심으로 극을 끌고 나간다. '미저리'라는 여주인공을 출현 시킨 미저리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는 작가 폴 쉘던(제임스 칸 분)은 미저리의 죽음으로 시리즈를 완결 짓고 순수문학가로의 전환을 모색하려 한다. 그러며 작품을 짓기 위해 산속 호텔로 향한다. 하지만 갑자기 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벼랑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 그런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다가온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를 도와준 건 그의 열렬한 팬을 자청하는 간호사 출신 애니 윌키스(케시 베이츠 분). 그녀는 산속 산장에서 폴을 열심히 간호한다. 그러면서 팬의 입장에서 숭배하는 작가의 미발간 작품을 제일 먼저 보고 싶은 마음에서 미저리 시리즈 완결편을 보게 된다. 매일같이 조금씩 읽고 감상을 전해주는 애니. 찬양의 찬양을 거듭한다. 하지만 어느 날, 미저리의 죽음을 알게 된 애니는 폴에게 엄청난 분노를 표출한다. 그녀에게 미저리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영화 <미저리>의 한 장면. ⓒ 콜롬비아 픽쳐스



"당신, 이 나쁜 인간. 이럴 수가 있어? 그녀를 죽여선 안돼. 미저리 채스틴은 죽으면 안 돼. 난 미저리를 원해! 당신이 그녀를 죽였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당신은 늙고 더러운 거짓말쟁이야."


이 영화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의 <미저리>(1987년)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따랐고, 큰 예산을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건 영화를 감상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단 한 가지만 봐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바로 애니 윌키스를 연기한 '케시 베이츠'의 연기이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또 극진히 보살피는 천사 같은 연기와 그것이 배신 당했다고 느꼈을 때 나오는 극도의 분노와 광기의 연기, 한 사람한테서 이처럼 양 극단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공포 스릴러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유명 작가


이제 영화는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는 폴이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는 모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애니는 미저리가 죽는 완결편 원고를 폴이 직접 불태우게 한 다음, 미저리가 죽지 않는 원고를 집필하게 강요한다. 책상, 의자, 타자기, 종이 등을 직접 가져다 주고 몇 날 며칠이고 앉아서 쓰게 한 것이다. 폴은 살기 위해서 써야 했다. 



영화 <미저리>의 한 장면. ⓒ 콜롬비아 픽쳐스



"저질 원고를 태웠으니 이제 좋은 작품을 써야죠. 최고의 소설을 새로 쓰는 거예요. 돌아온 미저리. 

그녀를 죽게 한 건 진심이 아니었잖아요. 날 위해 써 줘요. 난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이 세상 모두가 날 부러워할 걸요?"


한편 폴의 저작권 대리인은 폴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이 일을 늙은 보안관이 맞게 되는데, 의외로 명석해서 범위를 점점 좁혀간다. 이 부분에서 강하게 생각나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이 영화에서도 늙은 보안관 한 명이 명석하게 범위를 좁혀 간다. 하지만 그는 항상 한 발자국 느리다. 결국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미저리>에서도 늙은 보안관은 사건 해결의 끝자락에서 실패하고 만다. <노인을 위한...>에서는 이를 운명론에 입각해 해석한다. 과연 <미저리>에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한편 폴과 애니는 나름 좋은(?) 시간을 보낸다. 다만 이것은 폴이 일부러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애니로 하여금 방심하게 해 놓고 탈출의 기회를 엿보려 한 것이다. 그러던 중 폴은 애니의 과거를 알게 된다. 그녀는 정신병자로 간호사 시절 몇 명의 유아를 죽게끔 만들었다. 기어코 폴은 최후의 수단을 이용해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늙은 보안관은 애니의 산장에서 폴의 기척을 듣게 된다. 과연 폴은 탈출에 성공하게 될까?


이 영화를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


이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분위기를 통해 공포스릴러로 감상하며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게 제일 무난한 방법이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열렬한 팬의 죽음의 협박으로 살기 위해 산장에 갇혀 글을 쓰는, 두 다리를 못 쓰는 유명한 작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도 언제 돌변할 지 모르는 미치광이의 극진한 보살핌 아래서. 



영화 <미저리>의 한 장면. ⓒ 콜롬비아 픽쳐스



또 다른 면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작가와 독자, 그리고 작품의 관계이다. 작품의 저작권은 엄연히 작가에게 있다. 작가가 마음대로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아무도 그의 작품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결국 독자에게 맞춰서 써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 스티븐 킹은 작가의 이런 고민을 소설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부러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 없애버리는 장면도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애니의 입김 아래서 완성된 돌아온 미저리가 이례적으로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그려진다. 


무섭게 그려낸 공포 스릴러가 아닌, 정말 재밌게 그려낸 공포 스릴러라 말할 수 있겠다. 이 길지 않은 러닝 타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많지만 결코 중구난방이지 않다. 거의 모든 장면 장면들이 명장면이며, 스토리 라인과 배경이 간결해서 지루할 만 하지만 외려 그것을 장점으로 승화 시킨다. 긴장감을 배가 시키는 데에는 오히려 간결하게 집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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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에일리언 2>



영화 <에일리언 2> 포스터 ⓒ20세기 폭스


영화계에 오래된 격언이 있다. '본편 만한 속편은 없다'라는 말로, '구관이 명관이다'  '형만한 아우 없다'와 일맥상통하는 말이겠다. 그만큼 속편은 전편을 능가하기는커녕 따라가기도 벅차다. 이는 전편이 흥행이나 완성도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나타날 때가 종종 있다. 얼핏 생각나는 영화들이 <대부 2>, <테미네이터 2>, <람보 2>, <캡틴 아메리카 2> 등이다. 이들 영화는 어김없이 전편에 비해 월등한 흥행 성적과 급이 다르다고까지 할 수 있는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위대한 속편'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만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여기 '위대한 속편' 리스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위의 리스트 중에서 <테미네이터2>의 감독이기도 한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 2>이다. 전편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1>도 SF의 위대한 전설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속편은 그것을 능가하는 완벽한 영화라 칭할 수 있겠다. <에일리언 2>는 <에일리언 1>이 가진 장점을 모두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으며, 그밖에 다른 면들에서도 완벽함을 자랑한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 여기에 있다!


전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은 57년이라는 충격적인 시간 동안 우주를 표류하다 아주 운 좋게 우주구조선에 의해 구출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들이닥친 건 편안한 삶이 아니다. 그녀는 딸이 2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57년 전에 있었던 에일리언과의 사투로 인한 우주선 자폭 사고 때문에 청문회를 통해 향해사 자격이 박탈 당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 회사는 그녀가 과거 에일리언과의 악연이 시작된 그곳 LV-426 행성을 이민자들을 통해 식민지화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6~70세대가 가 있다는 것. 리플리는 조만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 올 거라는 직감이 든다. 아니다 다를까 그곳과의 교신이 끊겨 회사에서는 해병대를 투입하게 되고 리플리에게 고문을 맡긴다. 리플리는 결단코 거절하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에일리언 악몽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그곳으로 떠난다. 



영화 <에일리언 2>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영화는 에일리언과의 조우를 위한 단계를 막힘없이 진행한다. 스토리 상으로 초반부터 우연에 우연이 계속되는 경향이 있지만, 세부적 스토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장르 특성 상 큰 차질이 있지는 않다. 에일리언과의 조우, 과정, 끝을 어떻게 보여줄 것 인지가 이 영화의 제 1 목적이다. 즉, 전편에서 부각되었던 '공포'(괴물)에 밀리터리를 입힌 '액션'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액션과 특수효과는 30 여 년 전인 당시에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보여 주고 있고, 거기에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배신',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조롱'도 눈에 띈다. 


리플리와 에일리언 간의 질긴 악연, 그 끝은?


식민지 행성에 도착한 일행.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에일리언도 보이지 않는다. 실험용 쥐와 이민자의 유일한 생존자인 여자아이 뉴트만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던 중 개인 데이터 전송기로 사람들이 있는 위치를 찾아낸다.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향한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에일리언의 숙주였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해병대원들은 거의 전멸의 위기에 처한다. 무능력한 중위 대신 리플리의 결단으로 몇 명 만 겨우 살았을 뿐이다. 이들은 셔틀선을 호출하지만, 이 또한 에일리언의 기습에 당한다. 결국 이들은 식민지 마을(?)로 돌아와 에일리언의 습격에 대비한다. 


그렇지만 결국 방어선이 뚫리고 대원들은 차례로 죽음을 당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뉴트가 잡혀가게 된다. 이에 리플리는 인조 인간 비숍에게 구조선 요청을 맡기고 자신은 중무장을 한 채 뉴트를 구하기 위해 되돌아간다. 과연 그녀는 뉴트를 구할 수 있을까? 그녀와 에일리언 간의 질긴 악연은 어떻게 끝마치게 될까?



영화 <에일리언 2>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SF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메시지


영화는 발단-전개-위기-절정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간다. 리플리가 돌아오자 식민지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곳이 하필 에일리언이 있었던 곳이고 리플리는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리플리의 계속되는 경고를 무시하는 해병대 중위와 자신을 최고라 지칭하며 방심을 밥 먹듯 하는 해병대원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에일리언의 생포를 원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기에 내모는 버크. 그리고 리플리로 하여금 또 다른 절정의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뉴트의 위기 등. 


"내가 최고야. 내가 최고라고. 리플리, 걱정 마요. 우리 해병대가 당신을 보호해 줄게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스토리라고 해도, 이 정도의 라인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외려 화려한 액션과 긴박한 긴장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게 일부러 무대를 만들어 줬다는 느낌이 들게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곳곳에 녹아 있는 조롱은 은근한 재미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무능하고 결단력 없는 상관, 최고라는 자만심과 무시무시한 무기에만 둘러싸여 있을 뿐인 해병대, 회사(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 목숨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직원. 



영화 <에일리언 2>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반면 뉴트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목숨을 던져 보살피려는 리플리의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피가 난무하고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곳에서, 누구보다 약했던 리플리의 여전사로의 변신은 오로지 뉴트를 되찾기 위해서인 것이다. SF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면서 중구난방의 느낌이 전혀 없다시피 한 이 영화에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고 싶다. 혹여 누군가에게 이 영화가 단순히 괴물 영화 또는 SF 액션 영화로 자리하고 있다면,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접해보는 게 어떨까 하고 권하고 싶다. 후회 없는 2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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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소림축구>



<소림축구> ⓒ미라맥스



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 여 앞둔 2001년 언제 즈음. 친구가 기가 막힌 영화가 있다며 꼭 보라고 말한다. 자기는 족히 7번은 계속 돌려 봤다고 한다. 글쎄.. 그 어떤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어떻게 그리 많이 돌려 볼 수 있겠는가? 아무렴 당시에는 영화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바, 기회를 져버리고 말았다. 주성치를 영접할 기회를 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때, 우연히 TV를 통해 보게 되었다. 예전에 친구가 꼭 보라고 소개해 준 그 영화를. 제목은 참으로 정감이 가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딱히 믿음은 안 간다. <소림축구>가 뭔가 말인가. 이 영화를 <쿵푸허슬>을 보고 난 후 접하게 되었는데, 흔히 <쿵푸허슬>을 주성치의 정점이라고 말하고 <소림축구>는 주성치의 한계라고 말한다. 또 <소림축구>는 헛점이 많은 영화라고도 한다. 그런데 재미는 따라갈 수 있는 영화가 없는 것 같다. 


직설의 미덕을 잘 아는 영화 <소림축구>


상업 영화의 전형을 따르는 <소림축구>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소림사 무술로 축구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왕년의 '황금의 오른발'로 불린 스타 플레이어 명봉(오맹달 분)은 승부 조작의 마수에 걸려 들어 지금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그리고 과거 명봉의 실력을 시기해 승부 조작을 계획했고 거기에 다리까지 못쓰게 손을 쓴 강웅은 명봉을 끝까지 궁지로 몰아넣는다. 


명봉은 정처 없이 떠돌던 중 쿵푸를 세상에 알린다는 목적으로 헛소리를 해 대는 씽씽(주성치 분)과 마주친다. 쿵푸에 전혀 관심이 없던 그는 씽씽의 강철 다리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치지만, 오래 있지 않아 다시 만나 그의 진가를 확인한다. 그리고 쿵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씽씽을 돌려 세워 쿵푸로 축구를 하자는 제안을 한다. 이에 씽씽은 자신의 소림사 사제들 5명을 모으기 위해 하나하나 찾아가서 설득하고자 한다. 



<소림축구>의 한 장면. ⓒ미라맥스



밑도 끝도 없이 쿵푸로 축구를 하자는 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런데 이는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 다는 걸 알 수 있다.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알아 차리기 어렵지 않다. 비록 씽씽은 청소부 일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진짜 꿈이 있는 것이다. 그건 바로 명봉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쿵푸를 세상에 알리기'. 그 방법이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소림 쿵푸를 세계에서 발전시키려면 포장을 해야 돼요. 쿵푸에 노래와 춤을 결합하면 어떨까요?"

"언제쯤 정신 차릴래? 화장실 청소부 자리가 비었어. 허망한 꿈 꾸지 말라고."

"사람에게 꿈이 없으면 돼지와 다를 게 뭐 있어요?"

"꿈은 무슨 얼어 죽을 꿈..."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민망하기까지 한 이 대화는 씽씽이 사형 한 명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이다. 꿈을 향한 맹목적인 전진. 진정한 열정을 가진 그의 눈을 보면 잠시 혹 하겠지만, 누구라도 허망한 꿈이라 무시하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하기 쉽다. 아니, 그보다 요즘에는 꿈을 가지라는, 책임지지 못할 말로 포장을 하곤 한다. 그러기에 이 영화의 직설은 미덕이다. 


직설의 미덕은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방식이다. 혹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장치를 단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답이 정해지지 않았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예 없는 영화가 좋지 않은 영화이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돌려서 말하지 않은 영화가 좋지 않은 영화는 아닌 것이다. 


주성치 코미디의 완벽한 계보


씽씽과 명봉이 하나씩 찾아가는 사제들은 모두 과거는 잊어버린 채 현실을 살기에도 바쁘고 힘들다. 직장이 없고, 직장에서 짤릴 위험에 처해 있고, 직장에 안주해 있고, 직장에 만족을 못하며,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과거 소림사 시절의 사진을 보고 동시에 모여 축구 훈련을 시작한다. 이렇게 '소림 축구단'은 상금 100만 달러의 슈퍼컵 우승을 향한다.


명봉은 특훈을 시키고 연습 게임을 치르게 한다. 상대는 동네 양아치들. 그들은 각종 연장을 이용하고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팬다. 이는 명봉이 축구가 장난이 아닌 전쟁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테스트였다. 일방적으로 맞을 뿐 공도 만져 보지 못한 소림 축구단은 명봉의 일갈을 듣고 각성한다. 진정한 소림축구를 보여 주는 것이다. 소림 쿵푸를 이용한 축구!


"이건 테스트야! 이걸 통과 못하면 축구 얘긴 다신 꺼내지 마!"

"축구를 하려고 온 거지 전쟁하러 온 게 아니에요!"

"축구는 전쟁이야, 넌 더 배워야 해! 


드디어 대회가 열리고 어김없이 승승장구해 파죽지세로 결승전에 오르는 소림 축구단. 그들의 앞을 가로 막는 건 역시 어김없이 강웅이다. 그는 미국에서 들여온 신약을 투여한 선수들, 돈으로 매수한 주심과 부심과 축구협회와 축구위원회를 이용해 압박한다. 그들이 집중 공략하는 대상은 골키퍼. 결국 부상으로 골키퍼가 두 명이나 교체 되는데... 과연 이들의 운명은?



<소림축구>의 한 장면. ⓒ미라맥스



이 영화에는 유일하다시피 한 여자가 등장한다. 태극권을 이용해 만두 반죽을 하는 아매(조미 분). 그녀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듯한 흔적이 있어 자신감이 없다. 씽씽은 그녀에게 계속 예쁘다고 말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데, 직설적인 것은 그렇다 치고 어떤 특별한 연결 고리도 이유도 없이 예쁘다고 말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게 조금 걸리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스토리 전개나 배경에 있어 헛점이 많이 노출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덮어주고도 남는 게 바로 '재미'이다. 무표정하게 재미를 유도하고, 반복되는 상황 설정으로 재미를 강요하다시피 한다. 그리고 얼핏 이해하지 못할 애드리브성 행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보여주는 소림축구는 어디 서도 접하지 못할 즐거움을 선사한다. B급 무비성 장면들을 너무 과도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10년도 넘게 이어지는 주성치 코미디의 완벽한 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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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조지 클루니 주연의 <인 디 에어>


영화 <인 디 에어> ⓒCJ 엔터테인먼트



그 수식어도 참으로 생소하고 낯설고 무시무시한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분). 그는 일 년에 322일 동안 지구에서 달보다 먼 거리(최소 38만km 이상)를 출장다닌다. 미국 전역을 다니며 차마 직원들을 해고하지 못하는 고용주를 대신해 좋은 말로 해고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예상했다시피, 해고된 이들에게 온갖 욕을 다 먹고 다니는 그다. 직업적 특성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간관계에 있어 형편없는 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 위에서 보내다 보니, 집은 물론이고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없다. 스치듯 지나가는 단편적인 관계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던 그에게 두 여자가 나타난다. 한 명은 그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인 알렉스. 그녀는 그 못지않게 출장을 많이 다니고 항공 마일리지에 광분하고 단편적이고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한다. 그녀와의 연애 역시 그저 그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한편, 빙햄이 다니는 해고 전문 회사에 신입사원 나탈리가 혜성같이 등장한다. 그녀는 코넬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사장에게 기막힌 해고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른바 '온라인 해고 시스템'. 화상 연결을 이용해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해고를 해버리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해고 전문가의 감정 소비와 출장비 등을 어마어마하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계속되는 해고는 이 회사에 큰 기회이고, 그 수요를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떠돌이 인생의 속사정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여러 용어 중에 '인스턴트'라는 말이 있다. '즉석에서 간편하게 이루어짐' '지금 한 순간'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도 성장기에 탄생한 기존의 자본주의와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통칭하는 '소비사회'의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소비사회에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내보인다. 또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소비를 위해 간편함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간편함은 소비를 넘어 인간 사회 전체에 퍼져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한 인간을 규정하기까지 하게 된다. 


빙햄은 바로 그 인스턴트로 규정할 수 있는 인물이다. 어찌 되었든 결국 혼자다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 그런 그가 두 여성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차츰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또한 예상할 수 있듯이, '인간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신입사원 나탈리 또한 마찬가지다. 빙햄보다 더욱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빙햄과 함께 하는 '직접 대면 해고 체험'을 통해 피해고자들의 좌절과 눈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빙햄이 인간적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은 그의 여동생 결혼식을 통해서이다. 그는 여자친구 알렉스에게 여동생 결혼식에 동행해줄 것을 청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의 모교에 같이 몰래 들어가 옛 추억을 상기하며, 그야말로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 하루 전 날에 결혼을 망설이는 여동생의 남편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로 위로해줘 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한다.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있는 듯하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그렇지만 영화가 이렇게 풀려나가면 재미 없지 않을까? 그(빙햄)는 분명 엄청난 업보(해고당한 사람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를 온 몸으로 받는)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녀(나탈리)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이건 그 업보의 제대로 된 맺음이 되지 않는 것 같단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위기가 찾아온다. 


계속되는 단절의 연속 안에서


그 위기란 다름아니라 계속되는 '단절'이다. 그들은 본래 단절 속에서 살아오다가 차츰 '관계'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나 중국 등은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관계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고 되는 일도 안 되게 할 수 있다. 반면에 관계를 천시여기는 풍조도 있다. 정당한 실력이나 노력 없이 관계만으로 살아가려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비즈니스에서건 사적에서건 적당한 관계는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먼저 당하게 된 이는 나탈리이다. 그녀는 자신이 제시했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극을 맛본다. 남자친구가 문자메시지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을 수도 있지만, 인간 세계에서 제일 기본적인 부분에서 맛본 이 단절의 아픔을 통해 그녀의 시각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빙햄에게는 두 가지 일이 연달아 터진다. 하나는 여자친구 알렉스, 다른 하나는 신입사원 나탈리이다. 주지했다시피 그는 점차 변화하게 되고, 그 변화는 가족에게로 갔다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그는 출장 복귀 후 강의 시간 때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보고 싶다는 일념 하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단숨에 달려간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건 단란한 가정이 있는 알렉스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단절의 충격을 뒤로 하고 복귀해 보니 나탈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피해고자의 자살 소식을 듣고 바로 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빙햄에게 연속된 단절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빙햄은 이미 변화해 있었다. 나탈리가 다른 직장을 알아보며 면접을 볼 때 빙햄의 추천서가 큰 힘이 되주었다. 또한 그는 가정과 친구, 지인, 동료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영화


이 영화는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영화라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2010년 아카데미에서 6개 부문에 노이네이트되었고, 골든 글로브와 LA 비평가 협회 등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각색상과 각본상을 휩쓸었다. 그만큼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다. 환상적인 오프닝부터 시선을 잡아 끌더니 시종일관 지루할 틈 없이 끌고가는 그 힘이 감탄스럽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들추는 시나리오에 예기치 못한 웃음들이 뒤따른다. 개그 코드의 웃음이 아니라 독특함에서 오는 웃음이다. 겉으로는 날카로움을 유지하는지 몰라도 가끔 어리버리하고 여린 모습을 보이는 나탈리. 그런 나탈리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빙햄. 그리고 여러 대화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어이없는 대답과 유머 등. 


마지막으로 하나. 초반과 중반과 종반에 걸쳐 계속 나오는 피해고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피해고자들이 울먹이며 하는 말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이렇게 해고를 당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그때 빙햄은 진실된 목소리를 답해준다. 


그 가족들을 위해 절대로 주저앉지 말라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릴 테니,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본래 꿈을 향해 정진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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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머니볼>


영화 <머니볼> ⓒ소니



2014년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어느새 끝나가고 있다. 9월이면 가을 야구에 출전할 수 있는 팀들이 정해질 것이다. 이 와중에 눈에 띄는 팀이 있다. 지난 2009년부터 (2011년 6위를 제외한)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는 '한화'이다. 한화 팬이 아닌 이도 응원하게 된다는 비참한 행로의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자본은 절대적이다. 많은 자본은 좋은 선수와 감독, 코치진을 영입하고 좋은 시설을 확보하며 좋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곧바로 좋은 성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한화라는 팀은 절대 자본이 부족하지 않다. 이는 자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한편 자본을 뛰어넘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영화 <머니볼>은 자본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그 무엇으로 자본이 상대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팀을 일으켜 세워야 했던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의 실화를 다루었다. 만년 최하위에 그치고 마는 오클랜드를 2000년 이후 매년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강팀으로 변모 시킨 그 무엇은 무엇이었을까?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은 현역 시절 유망주로만 전전하다가 오클랜드에서 현역을 은퇴한 후 단장에 임명된다. 그가 단장이 되었을 때 오클랜드는 만년 최하위에 그치고 마는 팀이었다. 그는 구단주를 찾아가 돈을 요구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우리 팀에는 돈이 없다' 였다. 그는 돈이 없는 구단의 성적을 올려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코치진 및 스카우터들과의 회의는 실망 그 자체였다. 돈이 없어 좋은 선수를 떠나보내고 후임 건을 물색하는 회의랍시고 그들이 하는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덩치도 크고 빠르고 재능도 있고 인물도 좋아. 턱도 멋지지. 스윙도 근사하잖아. 방망이 끝이 공에 맞는 순간 그 경쾌한 파열음이 온 구장에 울려 퍼지지. 타석에 400번만 서면 좋아질 거야. 훈련이 필요하지만 눈 여겨 볼만해. 애인이 못생겼어. 자신감이 없다는 증거지. 아냐, 딱 보기만 해도 카리스마가 물씬 풍긴다고. 인물도 훤하고."


이따위 수다를 듣고 팀의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빌리 빈은 직접 나선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도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 브랜드의 영입이었다. 그는 야구에 경제학을 접목시키기 시작한다. 모든 걸 하나의 숫자로 요약해 그 수치를 오클랜드의 방식으로 해석, 선수의 진짜 가치를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기존의 코치진이 회의를 통해서 다양한 이유로 선수들을 평가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로지 실력에 관한 통계 만으로 평가했다.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소니



영화는 지금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다. 모두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 뻔한 이 시스템을 이용해 좋은 성적을 보여줘야 한다. 반드시 처음에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 단장 빌리 빈이 나서서 팀을 바로 잡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어떻게 새로 찾아온 이 위기를 넘기는 지를 감상하는 게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오래된 스카우터가 그의 혁신적인 전략을 반대하며 떠나는 장면에서 남긴 말은 퍽 인상적이다.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메이저리그는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혁신'이라는 '허황' 아래에서 전략을 짜왔지만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야구가 숫자나 과학이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린 일반인들에겐 없는 우리만의 경험과 직관이 있어. 쟨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우린 야구계에 29년을 몸담아왔어. 쟤 말을 들어선 안 돼. 야구인들만 아는 설명 못 할 뭔가가 있다고! 자넬 포함한 우리 스카우터들이 150년 간 해온 걸 못 믿나?"


팀은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하고 해체되며 빌리 빈도 단장에서 해고되어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추방 당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모든 것을 건 승부가 팀을 믿을 수 없는 연승으로 이끌 것인가? 이 영화는 많은 감동을 준다는 것만 일러둔다.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소니



그리고 그 감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는 역시 빌리 빈이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파격적인 대우의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는 성인이 아니다. 세계 프로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팀의 단장인 것이다. 영화의 극후반부는 그의 고민으로 채워진다. 그때 그의 마음을 흔드는 딸의 노랫소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인생은 미로, 사랑은 수수께끼. 어디로 갈까? 떠나려 해봤지만 혼자서 자신 없어. 왜 그럴까? 난 길을 잃은 작은 소녀. 두려움을 남에게 보이긴 싫어. 인생은 너무 어려워. 그래서 난 우울해. 이제 걱정은 떨쳐버릴래. 그냥 쇼를 즐길 거야. 늦춰야만 해. 멈춰야만 해. 안 그러면 심장이 터질 테니까.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려고 애쓰는 건 너무 힘들어. 나는 사랑에 목마른 바보. 언제나 사랑을 원하고 또 원하지."


이 영화는 야구 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경영에 관한 영화이며 휴먼 드라마이다.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빌리 빈의 혁신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실화와 거의 동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를 그린 <소셜 네트워크>가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머니볼>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스포츠'라는 소재 때문일 것이다. 그건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동일하다. 스포츠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고 결정적으로 스포츠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할 수 있다. 실패와 성공, 오르막과 내리막, 땀과 눈물, 환호와 야유.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짜릿함. <머니볼>은 이런 스포츠의 면면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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