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고등학교 때, 언제나처럼 공부에 매진(?)하던 와중에 시간이 나 TV를 켰다.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고 어느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버튼 누루기를 멈췄다. 당시는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생각하든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시절이었지만, 이 한 편의 영화가 내 마음에 확 와닿게 된다. 비록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서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음에도. 제목은 <와호장룡>.  


<와호장룡> ⓒ소니 픽쳐스 클래식


마침 한창 무예를 겨루고 있던 장면이어서, 머리도 식힐 겸 넋을 놓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끝이 난 영화. 나는 엔딩 크레딧 장면이 끝날때까지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무예의 화려함과 정교함으로 인해 정말 대단한 무협영화라 생각해서?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해서? 스토리가 정말 황홀할 정도라서? 아니었다.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슬픔의 '여운' 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니 음악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무협을 기반으로 한 완벽한 동양 영화에 울려퍼지는 구슬픈 '첼로' 소리와 이와 적절히 짝을 맞추는 '북' 소리. 특히나 첼로 소리는 이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그 여운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사랑 앞에서는 영웅도 어쩔 수 없는 법이란다


사랑 앞에서는 영웅도 어쩔 수 없는 법. ⓒ소니 픽쳐스 클래식


영화는 무당파의 실질적 수장이자 강호의 영웅 이묵백(저우룬파(주윤발) 분)이 득도 수행을 파계하고 돌아와 사숙인 수련(량쯔충(양자경) 분)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묵백은 수련에게 그의 몸과도 같은 절대신검인 '청명검'을 베이징에 있는 사부의 친구인 철 대인에게 맡길 것을 부탁한다. 사실 이묵백이 득도 수행을 파계하고 돌아온 이유는 수련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강호를 떠나려 했고, 그 상징적 의미로 청명검을 떠나보내려 한 것이다. 


수련이 철 대인에게 청명검을 맞긴 당일, 누군가가 청명검을 훔쳐 달아난다. 이를 쫓아가는데 실패한 수련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철 대인의 집에 투숙 중이던 고위 관리 옥 대인의 딸인 소룡(장쯔이(장자이) 분)을 의심한다. 


어느 날 이묵백이 친히 수련을 찾아온다. 수련은 이묵백이 청명검 도난 사건때문에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묵백은 수련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하자고 말하고자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실패하고 만다. 


한편, 이묵백과 수련은 소룡의 정체를 눈치채게 되고 그녀를 교화하려 애쓴다. 알고 보니 그녀는 푸른 여우의 제자였던 것이다. 이묵백에게 푸른 여우는 사부인 강남학을 죽인 원수였다. 이묵백은 푸른 여우를 죽이고 그의 제자인 소룡을 교화시켜 제자로 삼은 뒤 수련에게 고백하려 한다. 그에게 청명검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소룡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돌려받아야만 했다. 


전 소설 속의 영웅처럼 살고 싶어요


소설 속 영웅처럼 살고 싶은 소룡. ⓒ소니 픽쳐스 클래식


소룡은 고급 관리의 딸로, 자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성 밖의 강호를 동경해 왔고 그 삶이 진정한 자신의 삶이자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몰래 하녀(푸른 여우)로부터 무예를 배워왔던 그녀. 그녀는 정략 결혼이 뻔한 혼인을 앞에 두고 청명검을 훔치게 되고 만다. 그녀가 해왔던 고민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 영웅처럼 살고 싶다는 그녀.  


스승과 함께 도망쳐 강호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 것인가. 그렇지만 소룡은 이미 예전에 스승의 무예 실력을 월등히 앞서고 말았다. 그녀에겐 더 강한 스승이나 멘토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예전 소호(장첸(장진) 분)와의 자유로운 사막 생활로 돌아갈 것인가. 이 또한 자유로운 강호가 아니다. 단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행동이 될 공산이 크다. 현실과 다를 바 없이 자유가 업악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다. 


이제 그녀의 길은 사실상 이묵백의 의도대로 무당파의 제자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련의 반대에도 계속되는 이묵백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원했던 것일까? 수련이 말했던 "며칠씩 목욕도 못하고 벼룩과 벗하며 잔다는 등등"의 소설 속 강호인의 모습을?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소룡은 모든 걸 뿌리치고 청명검만을 지닌 채 홀로 강호를 유랑하기로 한다. 이묵백과 수련은 그 뒤를 쫓는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강호의 유명한 고수들이 그녀의 검에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건 그녀가 바랐던 소설 속의 자유, 모험, 영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렇게 소룡의 강호 생활은 짧게 끝나고, 그녀는 수련의 표국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소룡은 수련과 이묵백을 차례로 상대하게 된다. 


이후 나타난 푸른 여우가 수련을 납치해가고 죽이려 하고, 이 함정에 걸려든 이묵백은 푸른 여우를 죽이면서 복수를 마치지만 푸른 여우가 쏜 독침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룡은 이묵백을 도우려 하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만다. 수련의 배려로 무당산으로 가 소호를 만나게 된 소룡. 그러나 소룡은 산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소룡, 그녀가 한 선택은? ⓒ소니 픽쳐스 클래식


<와호장룡>이 중국에서 실패한 이유


이묵백의 시선과 소룡의 시선으로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줄거리를 설명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진행에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꼼꼼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캐릭터들의 인과 관계와 선택 이유 등이 그 사이에 다 설명이 되어 지는 것이다.


그만큼 스토리에 신경을 썼다는 것인데, 이 영화는 1930~40년도에 중국에서 활동했던 왕두루의 청강만리(철기은병)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와호장룡'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감독은 2006년과 2013년에 각각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바 있는 '이안'. 


이 작품 역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타임>에서 2000년도 최고의 영화로 선정하였으며, 2001년에는 아카데미에서 4개(외국어영화상, 촬영상, 음악상,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북미에서 역대 최고의 외국어 영화 흥행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북미에서만 1억 3천 만불에 육박하는 성적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나 <영웅>의 거의 3배에 이르고 있다. 


정말 의외인 사실은, 본토인 중국에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를 맛보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000년 당시까지도 중국인이 생각하는 무협이란 <와호장룡> 같은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의 머릿 속 무협은 <동방불패>, <천녀유혼>, <신용문객잔> 등의 스타일이었던 것이 아닐까. 굉장히 '동적'인 무협영화들이다. 반면 <와호장룡>은 무협을 빙자한 '멜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거기에 굉장히 '정적'인 면이 부각되어 있다. 


<와호장룡> 같은 작품이 다시금 나올 수 있을까?


자,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와호장룡> 같은 작품이 다시금 나올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와호장룡>이 나왔던 2000년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정신 없이 휘몰아치는 액션이 주를 이루는 영화들이 판을 치는 지금 또는 이후에서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와호장룡>과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2년에 <영웅>을 필두로, 2004년 <연인>, 2006년 <야연> 등. 모두다 <와호장룡>의 히로인 '장쯔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정적인 무협영화들임과 동시에 멜로를 표방했다. 거기에 음악과 미술에서 그 화려함과 정교함을 더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영웅>까지만 했어야 했다. 나머지는 <와호장룡>의 아류작인 것만 같은 느낌으로, 오히려 그 느낌을 퇴색하게 만들었다. <와호장룡> 같은 영화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아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나온 <일대종사>가 최소한 왕조위의 위신을 높이는 데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라도, 계속적으로 비슷한 류의 것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와중에 소식이 들려왔다. 내년에 <와호장룡 2>가 개봉할 것이라는 소식. 감독은 <와호장룡>의 무술감독이었던 위안허핑(원화평). 주연은 량쯔츙과 견자단에 장쯔이가 합류했다는 소식이다. 기대가 되는 만큼 걱정이 따라온다. 혹여나 무협이라는 한계를 넘어 '위대한' 영화의 범주에 합류했다고 생각되는 <와호장룡>의 누를 끼치게 되지나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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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영화 <큐브>


영화 <큐브> ⓒ라이온스 게이트


오락적 성격이 강한 SF 영화에 인문학적 함의가 포함된 경우가 생각 외로 상당히 많다. 흔히들 SF 3대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위대한 선구자 ‘필립 K. 딕’의 소설들은 거의 모두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서 인류학적 고민을 선사해준다. 그리고 또한 이들의 소설의 상당수가 영화화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유명한 <스타쉽 트루퍼스>(폴 버호벤 감독, 1997년 작),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스탠리 큐브릭 감독, 1969년 작), <바이센테니얼 맨>(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1999년 작),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감독, 1982년 작)가 이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작품들로, SF 장르로서의 기본적인 재미와 함께 인문학적 생각 거리를 주고 있다.(감독만의 해석이 불러온 패착 <스타쉽 트루퍼스>는 제외하고)


영화 <큐브>(빈센조 나탈리 감독, 1997년 작)도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벗어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는 SF, 공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철학 영화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생각 거리를 주된 테마로 하는 (소설 원작의) 여타 다른 영화는, 서사가 있고 상반된 주장을 하는 캐릭터가 있고 고민 끝에 내는 선택의 순간이 있고 논란이 있고 결말이 있다. 작가나 감독의 생각이 깊숙이 관여하는 영화도 있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도 있다.


철저히 상징성으로 무장되어 있는 영화 <큐브>


반면 <큐브>는 서사가 없고 상반된 주장이 아닌 각자의 의견을 내는 캐릭터가 있고 예정되어진 선택이 있고 논란이 있고 결말이 있다. 언뜻 봐선 다를 바 없지만,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철학적 상징의 완벽한 발현이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해석할 거리를 주고 있다.


영화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하게 스토리만을 음미하며 즐기는 방법, 스토리에 덧씌워진 내러티브를 분석하는 방법, 캐릭터를 파고드는 방법, 영화사적 관점에서 보는 방법 등. 그런 면에서 볼 때, 영화 <큐브>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캐릭터를 파고드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캐릭터 분석 방법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여느 캐릭터를 해석할 때 그 이면에 기반 되어 있는 상징성을 주목하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캐릭터는 상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처한 공간배경 또한 마찬가지이다. 철저히 상징성으로 무장되어 있다. 18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와 비슷한 면이 상당 부분 있다. 이 소설 또한 캐릭터, 배경, 상황 등이 철저히 철학적 상징성들로 무장되어 있다.


영화 <큐브>의 배경 및 캐릭터, 그들이 처한 상황 등을 간단히 살펴보자. 영화는 시종일관 정사각형의 방을 공간배경으로 진행된다. 반면 상황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대신 그곳에 갇힌 6명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측하는 말들로 대신한다.


어느 날 갑자기 큐브에 갇힌 사람들 ⓒ라이온스 게이트


탈옥범, 경찰, 의사, 건축가, 수학자, (천재) 자폐아가 바로 그들. 이들은 이곳에 오게 된 6하 원칙을 알지 못한다. 즉, 누가 그들을 이곳에 데려 왔는지, 언제 오게 되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등.


그 상태에서 각 캐릭터들은 자신의 의견들을 발설하며 누군가는 행동에 옮기기 시작한다. 탈옥범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빠져나가려 한다. 왜 오게 되었는지, 여기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여길 탈출할 것인지가 중요할 뿐. 그는 탈출이라는 행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경찰은 바깥에 아이가 세 명 있다. 비록 아내와는 이혼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출해야 한다. 그는 목적 지향성 인물이다. 수학자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가, 경찰의 강력한 목적의식에 떠밀려 탈출의 키를 쥐게 되는 인물이다. 타고난 수학 실력으로, 이 공간이 정사각형의 방 17,576개로 되어 진 큐브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암호를 이용해 탈출을 주도한다.


의사는 여기에 왜 오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러며 정부나 거대 기업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을 이곳에 가둘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 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좌절하다가도 무섭게 몰아붙이곤 한다. 현상보다 본질을 추구한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는 이 큐브의 외형을 디자인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며 자신들이 이곳에 갇히게 된 이유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현상을 직시하지도, 목적을 지향하지도, 본질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현실에 안주할 뿐이다.


그리고 천재 자폐아가 있다. 그는 수학자도 풀지 못한 암호의 정답을 천재적으로 풀어서 사람들을 탈출 직전까지 인도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그야말로 큐브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영화 <큐브>에서 큐브란?


자, 영화 <큐브>에서 큐브란 무엇일까? 중간에 수학자가 힌트를 준다. 큐브는 가로 세로 높이 26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26x26x26=17,576개이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게 바로 26개의 알파벳이다. 이 또한 상징인데, 인간은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가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런 이유 없이 던져진 존재라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탈출을 꿈꾸고 목적을 갖고 살아가며 본질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이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걸 뜻한다.


결국 순진무구한 자폐아 한 명만 탈출한다. ⓒ라이온스 게이트

결국 그들 6명 중 살아남는 사람은 이 틀의 존재조차 모르는 순진무구한 자폐아 한 명 뿐이다. 나머지 5명은 함정 때문에 죽어서, 서로가 서로를 죽여서, 이 틀에서 탈출하기가 무서워서, 탈출하지 못한다. 여기서 큐브라는 것은 공간으로는 우주, 지구, 나라, 동네, 집까지 인간이 알고 있는 개념일 테고, 지각으로는 차원과 시공간 개념일 테다. 또한 인간의 언어 체계는 알파벳 26개(언어를 상징함)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제일 공감 가는 인물은 건축가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대략 알고 있고 관여도 한 인물로, 그 안에서 안주하길 즐긴다. 그것이 제일 편하고 안전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누구든지 그와 같은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어떻게 해서 탈출할 수 있는 순간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탈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이 영화는 밀폐된 공간에서 함정까지 설치된 곳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자체로 공포를 선사하고,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을 보며 치를 떨게 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는 너무나도 광범위하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철학의 진면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명확한 알레고리를 알고 보는 것도, 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영화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재미있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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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장예모 감독의 <영웅>1961년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8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1인 독재로 한국을 이끌었다. 1972년 10월에는 유신체제를 선포함으로써 비민주주의적 모순이 극에 달했고 결국 197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오면서 그 동안의 정치·경제적 모순들이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이외에 1978년도와 1979년도는 정치적으로 무수히 많은 악재를 낳았다. 특히 1978년에 치러진 10대 총선에서 야당이 여당에 이김으로써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민심은 바닥을 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하는 '부마사태'가 벌어지고, 박정희 대통령은 경호실장 차지철의 입장을 수용해 강경진압을 채택한다. 그러자 차지철의 견제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퇴진위기에 몰리게 된다. 결국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의 만찬 도중 김재규는 박정희와 차지철을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김재규는 최후 진술에서 10.26의 목적 5가지를 말한다. 그 중 두 번째 이유가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행한 일을 '혁명'이라 칭했지만 한 나라의 수반을 죽였기에 '반역'의 굴레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최근 재조명이 되었고, <의사 김재규>(매직하우스)라는 책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그는 '대의'에 기반한 일을 한 것인가? 박정희의 5.16이 '혁명'에서 '쿠데타'로 격하되었으니 김재규의 '반역'은 '혁명'으로 격상되어야 하는가? 그가 한 행동이 다른 무엇도 아닌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면 다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의(大義)'와 '사익(私益)'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된다. 

계속되는 '사익'에 의한 사건

10·26으로 박정희가 암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 갈등이 인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모종의 음모론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한다. 한편 전두환은 부하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태는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허가 없이 이루어졌다.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정승화 연행 허락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참모총장 연행을 허락하게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정승화의 연행을 허락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2.12 쿠데타의 전말이다. 

국민의 열망을 업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전말이 밝혀지니, 이 명분은 대의가 아닌 사익이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시작은 순수한 권력욕에 의한 정권찬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익에 의한 사건은 계속된다. 

10·26과 12.12로 민주화 일정이 지연되자 광주시내 대학생들은 5월 14일부터 도청으로 진출, 16일에는 시국성토대회를 가진 뒤 횃불시위를 감행했다. 5·17비상계엄확대조치로 교내 출입이 차단된 전남대생들은 18일 오전 교문 앞에서 무장공수단과의 충돌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도심지에서 시위를 확산시켰으나 공수부대에 의해 곤봉과 대검으로 무자비하게 살상 당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간략한 전말이다. 신군부세력은 반공의 국시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이들의 민주화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이들 뒤에 북한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는 이처럼 가짜 '대의명분'을 내세운 '사익'으로 점철되었다. 이들의 가짜 대의명분 아래에서 당시 다른 진짜 대의명분은 모조리 사익이 되어 버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왜곡없이 밝혀졌지만(여전히 계속되는 왜곡은 근절되어야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대의'는 이런 것

영화 <영웅> 포스터 ⓒ 코리아픽처스



중국 영화 <영웅>을 보면 파검이 사막에 글자를 쓰며 자신의 생각을 무명에게 전하는 장면이나온다. '天下'.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영화의 배경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중 전국시대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으로, 중국대륙은 진, 제, 초, 연, 한, 조, 위 7개의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 제일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나라는 진나라였다.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는 후에 시황제가 될 '영정'이라는 군주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기어코 중국을 거의 통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그도 두려워하는 이들이(나라가 아니다) 있었다. 바로 전설의 검객 '은모장천'(견자단 분)과 '파검(양조위 분)', 그리고 '비설(장만옥 분)'이 그들이다. 그들은 호시탐탐 '영정'의 목을 노린다. '영정'은 1만의 호위병을 두고, 자신의 백보 안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단지 7명의 친위대만 머물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명(이연걸)'이라는 이름의 무명검사가 찾아온다. 자신이 영정을 위협하는 3명의 검객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영정'은 그 3명을 죽인 자는 자신의 십보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영정의 십보 안까지 들어간 '무명'. 그는 영정에게 3인을 어떻게 죽였는지 고한다. 

먼저 은모장천을 7명의 친위대으로 하여금 기운을 빠지게 한 다음 죽였다고 하였고, 파검과 비설은 연인 사이인데 그들의 제자인 월(장쯔이 분)이 파검과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을 비설이 보아 비설이 파검을 죽이고 무명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영정은 거짓말임을 간파한다. 

결국 무명은 인정하고 진짜 이야기를 한다. 전말은 이렇다. 은모장천은 무명이 엄청난 고수임을 간파하고 져준다. 그리고 파검과 비설 역시 져준다. 그때 파검이 사막에 '天下'라는 글자를 쓰며 무명에게 그 뜻을 말해준다.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영정의 군대에게 모든 것을 잃고 이렇게 검객이 되었다. 오직 그를 죽일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영정이 중국을 통일하는 것이 나의 사사로운 복수보다 더 중요하므로 난 복수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너도 '천하'라는 '대의'를 위해 그렇게 해라"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은 전란 속에 희생당하는 백성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사로운 것이다. 또한 연나라와 진나라의 원한도 천하라는 대의 아래에서는 사사로운 것이다. 비설은 이 같은 파검의 생각을 반대하다가 결국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일련의 사건들과 그에 얽힌 생각들을 알게 된 영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탄식한다. 

"생각지도 못했다, 과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정녕 과인이 수배했던 자객이란 말인가!"

이게 저의 결정입니다. 죽은 자들은 전하께서 최고의 경지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 코리아픽쳐스


무명의 생각 또한 파검과 같았고, 그 또한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한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희생. 

"이게 저의 결정입니다. 이렇게 검을 찌르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겠지요. 하지만 전하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전하께서 최고의 경지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와 기막힌 색채의 대조에서 오는 상징의 오묘함, 중후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감독 장예모는 이 영화로 전미비평가협회 감독상과 베를린 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세계적인 감독으로의 발판을 마련해 준 영화로, 연출력 또한 뛰어나기 그지없다. 이는 그 중심에 대의를 위해서 과감히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별도로, 화려한 볼거리와 기막힌 색채의 대조에서 오는 상징의 오묘함을 선사한다. ⓒ 코리아픽쳐스


이 영화는 이에 대해 많은 논쟁을 낳았다. 천하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 중화주의, 힘과 승자의 논리, 목적을 위한 모든 수단의 정당화 등. 난 이 모든 것에 앞서 개인의 신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천하도 개인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사익' 또는 '사의'는 당사자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그들에게 '대의'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둘 다 각자의 신념에 속한다. 그 신념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디를 향하는지가 중요한 잣대이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신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대의'의 탈을 뒤집어 쓴 '사익'의 화신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야 하겠다. 엉뚱한 곳에서 그 기준을 내세우지 말고, 여기에야말로 옳다 그르다의 기준이 확고히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2013.5.2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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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지난 2011년 MBC 예능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버킹엄 궁전과 백악관 등을 사기로 팔았던 '희대의 사기꾼' 아서 퍼거슨의 일대기가 방영된 적이 있다. 본래 스코틀랜드의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는, 어느 날 프랑스의 에펠탑을 보다가 외국인에게 사기를 쳐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영국으로 가 버킹엄 궁전과 빅 벤, 넬슨 기념주 등을 팔았고 결국은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그는 기막히게 변장을 하였기에, 경찰들은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활동을 하다가 교묘하게 미국으로 빠져나간 아서 퍼거슨은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인다. 이번엔 미국의 백안관 임대 사기를 쳤고 이를 성공시킨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사기 행각이 될 자유의 여신상 판매 사기. 그는 호주의 부유한 관광객에게 이를 팔려고 하다가 붙잡히고 만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아이디어'로 세상을 주무른 아서 퍼거슨. 분명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할 만한 점은 그의 행각을 보고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그가 봉이 김선달처럼 범죄자라기보다 괴짜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불쾌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를 수놓았던 재즈풍의 낭만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모리스 르블랑이 만든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도둑 '아르센 뤼팽(괴도 루팡)'이 생각나게 한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 드림웍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또한 희대의 사기꾼이라 칭할 수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집을 나온 뒤 힘겹게 살아간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후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밑바닥에서 열심히 살아 자수성가를 할 것인가. 너무나도 힘든 현실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옳지 못한 쪽으로 빠질 것인가. 평생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갈 것인가 등. 여기에서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전혀 다른 인생을 개척(?)한다. 돈 많은 사기꾼으로의 인생을. 

그는 천재였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어느 때보다도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때 그렇지 못했다. 또한 그의 우상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기를 쳐 돈과 명예를 차지하려 했다. 그는 애초에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고, 불행이 그에게 들이닥친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던 만큼, 그 행복이 달아났을 때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중산층의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다. 그러던 10대 중반에 가세가 기울고 급기야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모든 것이 파탄난다. 프랭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고, 그의 머리는 오로지 옛날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을 다시 모이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비상한 머리로 온갖 사기를 치고 때에 맞춰 조종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의사가 된다. 이 모든 걸 10대가 가기 전에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오로지 가족의 결합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미 재혼을 했고, 예전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들의 유쾌한 숨바꼭질 게임, 가볍게 또는 무겁게

그를 쫓아다니는 FBI요원이 한 명 있다. 21년 경력의 최고 베테랑 칼 핸러티(톰 행크스 분). 칼은 천신만고 끝에 프랭크와 대면하지만 프랭크의 귀신같은 연기 솜씨로 인해 놓치고 만다. 기필코 잡고 말겠다는 칼과 잡아볼 테면 잡아보라는 식으로 대담하게 움직이는 프랭크. 

유머러스하고 자유분방한 프랭크와 재미없고 고지식한 칼의 대조가 볼만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긴장되는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결코 심각하지 않고 외려 유쾌하기 까지 하다. 희대의 사기꾼 아서 퍼거슨이 범죄자라기보다 괴짜에 가까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통 큰 도둑 아르센 뤼팽이 매력적인 것처럼, 프랭크와 칼의 유쾌한 숨바꼭질 게임을 보고 있으니 이들이 범죄에 관련되었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실제 인물의 캐릭터가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매력적인 인물로 재탄생시켰다고 보여진다. 엄연히 새로운 인물인 것이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한 장면. 베테랑 FBI 요원 칼과 미성년자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의 첫 대면. ⓒ 드림웍스


프랭크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비단 그의 외모와 괴짜 이미지, 그리고 유쾌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자유분방한 생각과 천재적인 브레인, 그럼에도 완벽하지 않은 그의 인생이 어필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이다. 이는 현대인의 욕망과 상충하고 결함과 대면한다. 온갖 규칙에 의해 경직된 현대인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을 끌어오르게 한다. 동시에 누구나 한 가지 이상씩은 가지고 있는 결함을 그 또한 가지고 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그만이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다.

'정신적' 행복을 위하여

프랭크의 사기행각의 윤리성을 따지기보다 왜 사기행각을 하기 되었는지의 이유와 어떻게 사기행각을 펼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베테랑 칼이 어떻게 프랭크에게 당하는 지도 흥미요소이다. 영화는 분명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을 미화하고 있지만, 결코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이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력과 1960년의 분위기가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당방위, 정상참작이라는 용어가 있다. 프랭크의 사기행각이 정당방위에 의한 것이라고, 그의 사기행각이 정상참작이 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미성년자였으며,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그가 행한 일만 보고 그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물질적' 풍요를 위한 사기행각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신적' 풍요에 목적이 있었다.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현재까지도 기업인으로 잘 살아가고 있고, 가족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과의 '정신적' 행복을 되찾았으니, 더 이상 사기행각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또한 그는 사기행각을 벌였을 당시 칼에 의해 붙잡혔는데, 칼의 중용으로 FBI 위조지폐 감식반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정상참작의 개념이 아니었을지. 

시대의 분위기를 살려 주인공의 사기행각 미화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은 연출력,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감정을 훌륭하게 연기한 주인공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고독하고 외롭고 힘없는 한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해쳐나가는지에 대한 통찰력, 범죄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던 점도 돋보였다. 가볍게 때론 무겁게, 미시적으로 또는 거시적으로 보아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오마이뉴스" 2013.5.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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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돼지의 왕>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 ⓒ KT&G 상상마당

15년여 전 중학교 3학년 시절, 그곳엔 엄연히 '계급'이 존재했었다. 계급은 힘의 논리로 나뉘어졌다. 그건 부모님의 재력이나 권력일 수도 있었고, 스스로의 힘(power) 일 수도 있었다. 학교였기에 공부도 월등하면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진 이가 제일 위에 군림하였다. 나는 셋 중 어느 하나도 월등하지 못했기에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서, 아니 낮다고 말할 수 있는 곳에서 생활하였다.

그들은 모든 이들에게 시비를 붙여보며, 전투력와 담력 등을 시험했다. 전투력보다 담력을 중시하였던 것 같다. 전투력은 담력없이 발휘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덩치도 왠만큼 컸고 공부도 잘하는 편에 속했지만, 결정적으로 담력이 부족했다. 이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기억하기 싫은 그때 그 시절이다.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른다. 다 치고박고 하면서 크는 거라고. 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한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해자'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이 시대의 가해자로 군림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것도 합법적 가해자라면 말이다.

이건 더 이상 교실의 모습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은 15년만에 만난 두 친구 경민과 종석이 옛 추억을 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그 '추억'이라는 게 자못 심각하다. 그때 그 시절 중학교 교실이 '계급사회'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 다지 높지 못한 계급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로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그러던 중 어김없이 '정의의 사도' 철이가 나타나 어린 양들을 구해준다. 그러며 또한 어김없이 말한다. 정의의 사도이지만 힘을 숭배하는 캐릭터. 학교 폭력의 전형적인 스토리 아닌가.

"우리가 힘을 가지려면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악을 가져야돼.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야 해."

그렇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현재 팽배해있는 학창 시절의 폭력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영화는 진일보한 '일진'의 정체를 정의하며, 학교의 배경을 빌려 이 시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사도 철이는 무식하게 힘만 쎌 뿐, 실질적인 힘이 없다. 즉, 기득권층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층이자 가해자 학생들은 공부 잘하고, 싸움 잘하고, 부모님의 재력까지 갖춰 완벽하다. 철이는 철지난 싸움꾼일 뿐이다. 예전의 순수한 시절에서는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 그 또한 희생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그다지 위치가 높지 않은 계급의 왕일 뿐이었다. 돼지의 왕.

괴물이 되고자하는 돼지의 왕. 그리고 달갑지 않지만, 그를 따르는 경민과 종석. 그 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개들. 결정적으로 소수 돼지들의 투쟁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조용히 개들을 따르는 다수 돼지들. 이건 더 이상 교실의 모습이 아니다. 무한 양육강식의 세계 그 자체인 것이다.

차가운 세상에서의 잔혹한 스릴러

영화는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최초의 잔혹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어린 중학생들의 이야기가 어찌 잔혹할 수 있겠냐만은,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다. 진짜 잔혹한 것은 중학교 때의 끔찍한 일들이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힌다는 사실이다. 끔찍한 일들은 돼지들에게만 일어났다. 누군가는 그때 죽었고, 누군가는 지금 죽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죽였고, 서로를 죽이려 한다. 공포에 떨며 아주 비참하게.

그렇다면 그들은? 높은 곳에서 군림하던 그들은? 훗날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비참하게 살고 있는 과거 낮은 계급이었던 이들의 모습만 보여준다.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서운 광경을 눈 앞에서 보여주겠다는" 철이의 계획이 성공하였음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계급은 바뀌지 않는다는 차가운 사실에 더해, 무슨 짓을 하든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잔혹함을 선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철이의 말처럼 힘을 가지려면 악을 가져야 할까? 아니면 외려 착하게 살아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기저기 할퀴고 찢겨도 조용히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해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해주지 못한다. 악을 가져도 바뀔 수 없고, 착하게 살려해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인가. 바꿀 수 없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전학와서 윗계급에 도전해보려다가 호되게 당해 마음을 완전히 돌려 먹은 손석응의 말을 옮겨본다. 그의 담담한 고백이 무엇보다 잔혹하게 다가온다.

"내가 뭐 바꿀 수 있겠나. 야, 이 개새끼들아, 응 그러면서 저주라도 하면서 뒤지뿔까? 흐흐.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수를 써도 금마들 이길 방법은 없다. 맘 상하는 데 이건 뭐 당연한 거 아니겠나."


"오마이뉴스" 2013.5.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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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이자 세계 최고의 자원의 보고다. 이를 알았던 서구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일찍이 아프리카 전 대륙을 케잌 자르듯 분할 통치했다. 20세기 들어서 사실상 모든 나라가 독립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몇몇 나라들은 내전에 휩싸였다. 소말리아·수단·콩고·에티오피아·시에라리온 등... 차라리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를 찾는 게 쉬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시에라리온 내전은 애초의 '독재체제'에 반대하는 혁명연합전선(RUF)과 정부군의 전쟁이 점차 '다이아몬드 광산'의 이권을 차지하는 전쟁으로 변해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의 사망은 물론이고,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가 고통을 받았다. 소년들은 잔인한 소년병이 되고, 어른 남자는 광산으로 끌려갔으며, 어른 여자는 노리개가 됐다. 그밖에 사람들은 무차별 살인을 당했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간략한 브리핑이자,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이다. 

피의 다이아몬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1999년 내전이 한창인 시에라리온의 어느 마을에서, 솔로몬 밴디(디몬 하운수 분)가 아들과 함께 한적한 시간을 즐기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혁명연합전선(아래 RUF) 일당이 마을을 습격한다. 밴디는 가족들을 살려 도망쳐 보내지만, 자신은 잡혀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어마어마하게 큰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이를 땅에 묻어 숨긴다. RUF 사령관에게 들키려는 찰나, 정부군의 습격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제 밴디는 가족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발견한 피의 다이아몬드를 다시 찾아와야 했다.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일급 용병 출신으로, 다이아몬드 브로커다. RUF에게 무기를 대주고 다이아몬드를 밀수하는 것이다. 그는 다이아몬드를 밀수하다가 걸려서 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 밴디가 엄청난 다이아몬드를 숨겨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에게 같이 찾으러 갈 것을 제안한다. 대신 가족들을 찾아주겠다고.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내(백인)가 없이는 넌(흑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는 이 지긋지긋한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위해 그 피의 다이아몬드가 필요했다. 또한 아처는 과거 몸담았던 용병 집단의 우두머리와 거래했는데, 그만 밀수 도중에 다이아몬드를 압수당하고 말았으니 그 우두머리는 대신 그 피의 다이아몬드를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영화는 아프리카 그리고 시에라리온에 대한 거시적 접근과 솔로몬 밴디·대니 아처에 대한 미시적 접근을 자유자재로 펼치며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매개체가 바로 '피의 다이아몬드'다. 수많은 사람들을 피 흘리게 한 다이아몬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하려 하고 지키려고 하는 다이아몬드. 기자 역할로 나오는 여주인공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 분)의 말과 행동·사진을 통해 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생산된 다이아몬드는 세계로 팔려나가 가공돼 엄청나게 비싼 돈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속사정을 취재하는 그녀의 속마음 또한 타들어간다. 

이런 속사정이 있는 물품은 비단 다이아몬드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표적으로 '커피'가 있다. 커피 원두는 대부분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가난한 지역에서 생산된다. 세계 유수의 커피 브랜드들은 그곳에 마치 과거 노예 농장처럼 거대한 농장을 꾸리고 상상도 안 되는 싼값에 그곳 사람들을 이용해 원두를 채취한다. 그리고 엄청난 가격을 매겨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주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This is Africa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가족을 되찾기 위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야 하는 밴디, 거래를 위해서 그리고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위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야 하는 아처, 그리고 이 모든 실상을 카메라에 담고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는 매디. 이 셋은 얼떨결에 함께 모험 아닌 모험을 떠난다. 먼저 밴디의 가족들을 찾아주고, 이후 밴디와 아처만이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 하지만 밴디는 RUF에 잡혀간 아들을 찾아야 했다. 죽어도 꼭 찾아야겠다는 밴디를 보고 아처는 마지못해 이를 수락한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가는 도중 밴디와 아들을 발견하지만 아들은 이미 혁명전사가 돼 있다. 그로 인해 밴디는 그만 RUF에게 잡히고 만다. 영화는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소년들이 어떻게 혁명전사라 칭하는 무자비한 소년병이 돼가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란 '민족해방'이지만, 실상의 목적은 다이아몬드를 통해 '아프리카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반군 사령관의 사리사욕에 불과하다. 훈련을 빙자한 폭력으로 인한 복종과 '혁명전사'란 미명하에 덜 성숙한 소년들의 폭력성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어린 소년들이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불에 태워진 철물을 둘러싸 노래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습을 보니, 소설 <파리대왕>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어린 나이에 볼 수 있는 극한의 비극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것이 아프리카의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처가 대니에게 고백하는 자신의 과거 또한 아프리카의 현실 그 자체다. 그는 백인이지만 아프리카 태생인데, 어릴 때 어머니는 강간을 당한 후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는 테러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그는 용병단에 들어가 수많은 반군을 죽였는데, 지금은 반군에게 무기를 대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 여러 사람이 툭툭 던지는 대사인 'T.I.A' 즉, 'This is Africa'. 이곳은 아프리카이니 어떤 것이든 할 수 있고 당할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이 한마디에 포함돼 있는 그 가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처가 하는 말을 들어본다. 

"가끔은 궁금해져. 우리가 하는 일을 신이 용서하실지... 하지만 금세 깨닫곤 하지... 신이 오래 전에 이곳을 떠났다는 걸..."

한편, 아처는 사전에 용병단에게 반군에 대한 폭격을 요청한 바 있어 폭격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해 한다. 이윽고 폭격이 시작되고 그는 아수라장이 된 반군 집결지에서 밴디의 아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이제는 아처와 밴디·밴디의 아들·용병단의 우두머리와 부하들이 피의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 그곳에서 아처와 밴디는 솜씨 좋게 용병단을 무찌르고 빠져 나가려 한다. 하지만 아처는 총에 맞고 말았다. 미리 요청해둔 경비행기의 착륙 지점이 코앞이었지만 아처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밴디와 그의 아들만이 탈출에 성공한다. 무사히 탈출한 그들은 매디의 도움을 받아 다이아몬드를 팔게 됐고,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영화가 끝나며 2003년부터 '킴벌리 협약(Kimberly Process)'가 발효됐다는 자막이 나온다. 이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생산과 유통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자정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는 그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밴디와 매디 그리고 아처가 지목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지대한 역할을 한 아처가 비록 백인이지만 아프리카 태생으로 나온 것은 영화의 신뢰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흔하디흔한 백인 우월주의 또는 영웅주의의 영화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감독 에드워즈 즈윅의 <라스트 사무라이>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오마이뉴스" 2013.4.22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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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굿' 바이 : Good&Bye>한달여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믿기지가 않았다. 비록 1년 전부터 많이 안 좋아지셨긴 했지만, 내 기억 속 외할아버지는 건강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말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봐주실 줄 알았는데, 너무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웃음꽃이 피어났던 장례식

어렸을 때 겪었던 죽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경험이었다. 한편으론 신기한 경험이었다. 장례식장에 '울음'의 행렬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웃음' 꽃이 피어날 줄은 몰랐다. 또 하나의 귀중하고 신기한 경험은 납관의식이었다. 손자 세대 중에 나만 유일하게 그 의식에 동행할 수 있었다.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에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시간이었지만, 의식이 끝나고 어른들이 하신 말씀들이 뇌리에 남는다. 




"아버지 잘 생기지 않았니?"
"정말 잘 가신 것 같아."
"평온해 보이시니 너무 좋다." 

'시신'에 대한 말씀치고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내가 느끼기에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평온했고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는 내 머릿속에서 '납관'이라는 불쾌한 단어가 비로소 밝은 빛을 발하게 해주었다. 더 이상 불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영화 <굿' 바이 : Good&Bye> ⓒ 네이버

외할아버지도 아름다우셨지만, 납관의식 자체가 무척 아름다웠다.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죽은 이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 속에서 의식은 거행되었고, 납관사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아름답게 포장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고 나서 단번에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비밀> <음양사> 등으로 유명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2008년도 작품. < 굿' 바이 : Good&Bye >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여행가이드

영화는 전도유망한 첼리스트 다이고가 속한 악단이 해체되면서 시작된다. 백수가 된 다이고는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 파격적인 조건의 여행가이드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은 단번에 합격! 그러나 그가 하게 된 일은 일반적인 여행가이드가 아니었다. 인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여행가이드, 즉 '전문 납관사'였던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다이고였지만, 먹고 살아야 했기에 일단 납관 일에 착수한다. 하지만 매일 같이 죽음을 마주한다는 건 누구나 에게도 쉽지 않은 일. 방황하는 다이고이지만, 사장이자 베테랑 납관사인 이쿠에이의 정성스럽고 진실된 납관의식을 참관하고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도 비로소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존재의 일반적임과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이쿠에이의 납관의식을 접하고 감동을 받는 다이고 ⓒ 쇼치쿠 KD미디어


하지만 그의 아내, 그의 친구, 그의 고객들은 그의 직업을 불결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다이고에게 한마디씩 한다. 이는 다이고에게 또 하나의 큰 시련으로 다가온다. 
"다가오지마! 불결해..."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일을..."
(고객이 저주를 퍼붓는 대상에게) "너는 나중에 저 사람(다이고)처럼 살게 될 거야!"

다이고를 향한 일련의 말들을 '죽음'을 향한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은 불결한 것이고, 죽음에 관련된 일은 천하디 천할 뿐만 아니라 천하에 할 일이 없어도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다이고는 진리가 담긴 말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모두가 죽어, 당신도 나도. 그런 죽음이 일반적인 게 아니면 뭐가 일반적인 건데?"

다이고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다. 죽음과 관련된 일이, 죽음이 결코 불쾌하거나 불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그들 앞에서 죽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말이 아닌 진심을 담은 행동으로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다이고는 엄연한 납관사가 되었다. ⓒ 쇼치쿠 KD미디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굿' 바이다이고의 가슴엔 큰 멍울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의 빈자리.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아버지가 혼자 쓸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해 드리는 것. 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훌륭한 삶을 사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잘 가세요."

'Good&Bye'에는 이런 뜻이 있는 것이다. 훌륭한(Good) 삶을 사셨어요. 잘 가세요(Bye). 그리고 이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마지막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 납관사(&).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훌륭한 삶을 사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잘 가세요.” ⓒ 쇼치쿠 KD미디어

영화는 죽음을 다루지만 코믹스러운 연기나 상황 설정이 가미되어 있어 결코 우울하거나 어둡지 않다. 그렇다고 죽음을 우습게 다루고 있지도 않는다. 그 변화도는 이렇다. 초반의 죽음은 엄숙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즉 죽음도 결코 엄숙하다고만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본래 Good Bye라는 단어를 죽음이라는 뜻과 완전히 겹치게 해버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단정 지어 버린 것을, 가운데 &을 넣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이다. 세상에 단 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개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일 것이다. 죽음으로의 길은 누구나가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나도 가야하고 가족들도 가야하고 친구들도 가야하고 지인들도 가야한다. 이왕 가는 길이라면, 보내는 이에겐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보내지는 이에겐 아름다운 여정길이 되어야지.


"오마이뉴스" 2013.3.2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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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슬럼독 밀리어네어>

자말 말릭은 퀴즈쇼에서 상금 6억 원이 걸려있는 최종 단계에 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A: 속임수로 / B: 운이 좋아서 / C: 천재라서 / D: It is written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영화가 시작하며 나오는 이 물음에서 'D: It is writte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문구는 영화가 끝나면서도 나온다. 동일한 문구이지만 시작과 끝의 의미는 다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운명이다' 또는 '소설이다'라고 완전히 다르게 해석이 가능하고, 그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 또한 달라진다. 이를 감안하시길. 


ⓒ cj 엔터테인먼트(주)

2009년 영화계를 독식하시피한 이 영화. 평단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수상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내더니 결국은 흥행까지. 당시 모든 부분에서 다른 영화들을 압도했다. 5년 만에 다시 봤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빈민가 백만장자라는 뜻인데 제목만 봐서는 빈민가 출신의 주인공이 백만장자가 된다는 이야기. 

최근에 나온 영화 <파이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다시 보게 된 영화인데, 이유를 생각해보니 무명에 가까운 주연 배우와 유명한 감독 그리고 베스트셀러 원작이었다. 영화는 (주연)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이 크게 좌우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는 걸 보여준 두 영화였다. 명품 배우가 아닌 명품 감독과 탄탄한 스토리만 갖춰지면 명작이 탄생하는 게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감독 얘기를 해야겠다. 대니 보일 감독. 굉장히 스타일리쉬한 영화들을 연출했다. 일례로 <트레인스포팅>이 있다. 이 영화는 20년 가까이 된 영화지만, 지금 봐도 신선하다.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 <비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맞아 큰 화제를 낳았지만 많이 아쉬웠던 영화였다. 좀비 영화의 신세계, <28일 후> <28주 후>도 있다.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좀비를 내세워, 분노한 세상을 꼬집었다. 감독의 연혁 얘기는 여기까지.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면,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크게 세 가지 파트로 진행된다. 누군가에게 한 청년이 고문을 받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그 청년이 '백만장자 퀴즈쇼'라는 프로그램에 출현하는 장면으로 옮겨간다. 고문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청년이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고문을 하던 사람들이 경찰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퀴즈쇼 도중 주인공인 청년의 어렸을 때의 장면들이 나온다. 

기막힌 연출과 몰입

이렇게 세 파트가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경찰에게 퀴즈쇼에서 속임수를 쓰지 않고 어떻게 정답을 맞추게 됐는지 진술을 하고 그 진술은 바로 어린 시절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핵심은 아마도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 cj 엔터테인먼트(주)


주인공의 이름은 자말 말릭. 그는 형인 살림과 엄마와 함께 빈민가에서 살았다. 어느 날 라마신교들의 침입으로 이슬람 교도였던 빈민가 주민들은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하고 그중에는 그들의 엄마도 있었다. 결국 알 수 없는 곳으로 도망을 가게 되면서 그들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된다. 그 사이에 알게 된 이는 바로 라티카. 

어떤 영화든지 그 안에 너무 많은 주제를 내포해서 모든 걸 보여주려 하다보면 어느 것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끝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꽤나 많은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제들을 깔끔한 스토리 안에서 하나하나 잘 풀어내고 있다. 쉽지 않은 작업을 훌륭히 해냈기에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빈민가에서 자란 그들은 긴 여정의 초반에서 착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구걸을 하며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 착한 남자의 사기 행각을 알아챈 주인공 형제. 탈출에 성공하지만 라티카를 놓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라티카를 찾기 위한 여정.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

여기서 한 가지 주제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착한 남자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해서 잘 부르면 돈을 잘 벌게 해준다고 거짓말을 한 후 눈을 멀게 해서 수준 높은 앵벌이 노릇을 하게 만든다. 너무 비약적일지는 모르지만 그 남자는 인도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cj 엔터테인먼트(주)


현재의 인도의 경제는 중국과 같이 지칠 줄 모르고 급성장하고 있다(몰론 세계 경제 한파로 어려운 건 사실). 하지만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수많은 빈민가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인도에만 존재한다는 그 천민일 것이다. 형제를 속이려 한 그 남자도 겉으로는 경제력 있고 마음씨 좋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검게 썩어있다. 

영화의 종반부에서는 주인공들은 청년이 되고 빈민가들은 모두 빌딩으로 대체된다. 인도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인도의 중심이 예전엔 빈민가였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이건 비단 인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 주제가 이 영화의 제1주제가 아닐까.

또 하나의 주제는 돈 그리고 의리일 것이다. 주인공 형제 중 형인 살림. 그는 어릴 때부터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했다. 그런 그도 동생에 대한 의리는 있었다. 그 남자에 의해서 눈을 잃을 위기에 처한 동생을 데리고 탈출했던 형. 나중에 라티카를 찾으러 다시 찾은 빈민가에서 그런 의리 있던 형은 그 남자를 죽이고 동생인 자말을 내쫓은 뒤에 빈민가의 실력자인 자비드의 밑으로 들어간다. 자말이 그토록 찾았던 라티카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결국 형인 살림은 동생과의 의리를 지켜서 라티카를 놓아주고 자신은 자비드를 죽인 뒤 살해된다. 그는 죽음을 각오한 뒤 욕조에 돈다발을 풀어놓고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태생부터 돈에 대해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 그의 둘도 없는 동생이자 평생의 동반자인 자말에 대한 의리. 돈과 의리. 공존할 수 없는 이 둘. 그는 의리를 선택했고 돈다발 속에서 죽어갔다. 

이 영화가 말하려 하는 건 따로 있을지 모른다. 진부해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바로  '운명적 사랑'이다. 주인공인 자말은 시종일관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 불만족스러운 표정, 허무한 표정 등 부정적인 표정으로 일관한다. 아직 라티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어렸을 적에 그 남자에게서 리티카를 탈출시키지 못했다. 그 이후 그의 삶의 목적은 리티카인 것이다. 몇 번이고 리티카를 찾아내지만 그의 형에 의해 재지를 당한다. 그럼에도 결국은 그들의 사랑은 이뤄진다. 

자말의 백만장자 퀴즈쇼 출현도 라티카에게로 가기위한 여정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자말이 라티카를 알고 난 이후부터의 모든 여정은 그가 그녀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은 재회한 자말과 라티카. 이 여정과 마지막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 cj 엔터테인먼트(주)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도, 숨 막히는 두뇌싸움도, 액션도 없다. 반면에 여러 가지 진지한 주제와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멜로·범죄·드라마·로맨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이 영화만의 매력이 있다. 필자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영화였지만 시대의 영화 흐름에 맞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평을 내리고 싶다. 영화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 것 같은데 조악하지 않게 제자리를 잘 잡은 것 같다. 스타 배우 하나 없이 비록 할리우드 영화이지만 생소한 인도 배경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자주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해줬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에 대해 누구나 꿈꿔본 운명적 사랑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줬고, 크게 봐서 인도만의 문제일 수 없는 경제의 급성장 뒤에 숨겨진 진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줬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 영화. 지금 봐도 전혀 거리감이 없다.



"오마이뉴스" 2013.2.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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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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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개방 정책에 힘입어 책과 노래, 영화, 애니매니션을 비롯한 수많은 일본의 문화 콘텐츠들이 한국에 들어왔다. 개중에는 공교롭게도 당년에 죽음을 맞이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작품들도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누구인가? 일찍이 1950년대에 <라쇼몽>과 <7인의 사무라이>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으며, 이후로도 베를린 영화제, 칸 영화제, 미국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 등에서 수상을 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 중, 1980년에 나온 <카게무샤>를 소개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영화 외적으로 간략히 소개해 보자면, 이 영화는 20세기폭스사에서 배급을 맡아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가 세계에 배급한 최초의 일본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구로사와 감독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조지 루카스의 도움으로 20세기폭스사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다고 한다.

작품성 면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는데, 1980년 칸영화제의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1981년 영국 아카데미상의 감독상과 의상상, 프랑스 세자르상의 최우수 외국어 작품상, 이탈리아영화비평가상의 감독상, 휴스턴영화제의 감독상 등을 받았다.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돋보인 명작이라는 평이었다. 

16세기 일본 전국시대. 풍림화산의 기치를 건 다케다 신겐은 전국 통일을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투 중, 총에 맞아 결국 숨을 거두고 그의 카게무샤(그림자 무사)가 대신하여 신겐 진형을 이끌게 된다.

개인적으로 '다케다 신겐'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필자의 아이디가 'singenv'인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들 일본 전국시대하면 세 사람을 떠올린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런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고 숭배까지 했던 무장이 바로 다케다 신겐이다.

그는 대단한 지략가이자 전략가로 전국 통일의 시작점인 교토 입성을 얼마 남기지 않고 오다 노부나가와 대치하게 되는데, 적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게 된다. 그 이후 그의 그림자 무사를 통해 이 영화는 전개된다. 사실에 충실히 입각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겠다.

카게무샤는 일본 전국시대 당시에 영주들이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적을 기만하는 일종의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실체가 있어야 그림자인 법. 영화를 보면 한때 카게무샤였던 다케다 신겐의 동생인 다케다 노부카도는 "그림자는 실체가 있어야 그림자인데 지금 형님이 계시지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그렇다. 신겐이 죽고 난 후 죽음을 숨기기 위해 그의 카게무샤는 신겐이 되어 시동과 시종, 처첩들 심지어 손자까지도 속여넘기게 된다. 하지만 원래는 천한 도둑이었던 그. 또한 그의 실체였던 다케다 신겐은 이미 죽고 없다. 그가 꿈을 꾸는 대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죽었던 신겐이 다시 살아 돌아와 자신을 쫒는 꿈을 꾸는 카게무샤. 그는 방황한다. 자신의 실체인 신겐이 죽고 방황하는 그림자인 카게무샤를 표현하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그는 견디지 못하고 보물을 훔쳐 달아나려 하기도 한다. 내 인생에서 나는 과연 실체일까 그림자일까. 

2012년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인 <광해>도 일종의 카게무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때 수많은 암살 위험에 처해 있던 영주처럼, 조선시대 광해군도 수많은 암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인 독살이나 암살 대신 약에 의한 살인을 노렸다. 이에 광해는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본래 광해군의 파트타임 대역에 불과했던 시정잡배 논다니는 자그만치 보름 동안 대역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카게무샤>에서는 카케무샤인 도둑과 카케무샤였던 다케다 노부카도. 그리고 또 다른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의 아들(서자)인 스와 가쓰요리. 그는 뛰어난 장수였지만 다혈질이고 서자라는 사실에 굉장한 딜레마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스와 가쓰요리가 독단으로 전투를 치르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어느새 나타나 그의 뒤에 산처럼 버티고 있는 신겐. 이미 죽고 없지만 여전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은 후에 다케다가의 영주가 된 후 독단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일본 전국시대의 판도를 바꾸는 나가시노 전투에서 전멸을 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비극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지 않았을까.

위에서 언급한 나가시노 전투를 끝으로 다케다 신겐의 신화는 끝을 맺는다. 당시 전국 최강을 자랑하는 풍림화산의 기마대는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의 총포 앞에 맥없이 무너진다. 이 허무함은 영화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 광활한 아시아 대륙을 점령한 칭기스칸이나 동서에 걸쳐 엄청난 영토를 굴복시킨 위대한 고대의 알렉산더 대왕. 하지만 그들이 죽고 나서 그들이 세운 제국은 급속도로 무너진다. 이 얼마나 허무한가. 

이 영화는 분명히 전쟁 영화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전투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마지막 전투 장면인 나가시노 전투신에서 다케다가의 기마대들은 돌격하고 총포에 맞고 전멸한다. 하지만 그 장면들은 나오지 않고 스와 가쓰요리와 가문 중신들의 표정으로 대변한다. 그 후에 보여주는 널부러진 시체들. 직접적인 전투 장면 없이도 충분히 박진감 넘치고 긴장된다. 그건 감독의 역량이 출중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한편 카게무샤는 어느 날, 신겐밖에 다룰 수 없는 난폭한 말을 타게 되고 결국은 낙마하게 된다. 그로 인해 처첩들에게 그에게 신겐이 전투에서 다친 상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차없이 쫒겨나게 된다. 다시 부랑자 신세가 된 그. 하지만 그는 이미 신겐의 그림자가 되어 그의 곁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나가시노 전투에 나타난 그는 다케다가의 기마대가 전멸한 후 풍림화산의 깃발을 들고 무작정 뛰어가지만 총포에 맞고 죽고 만다.

이 장면 역시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케다 신겐의 상징인 풍림화산의 깃발을 들고 뛰어나간 그. 그림자인 그는 진정으로 실체인 신겐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 희망은 속절없이 죽음으로써 꺾여지고 만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과 풍림화산의 깃발 그리고 핏물이 바다로 흘러간다. 인생의 허무함 나아가 가문 역사의 허무함. 또한 전쟁의 허무함을 통해 역사의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는듯하다.

허무함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자 무사를 통해 자기정체성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서구 문명에 우리나라는 일본을 통한 기형적인 서구 문명에 근대화를 열어젖힌다. 세계 수많은 나라들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과연 이런 가운데 우리의 진정한 자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또한 전쟁을 통한 강함의 종말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 것이 아닐까.

특히 자국인 일본. 고대의 일본은 하찮은 섬나라에 불과했지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이후 조선을 침략하고 몇 백년 후에 메이지 유신을 통해 발빠르게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결과 제국주의를 앞세워 동아시아를 공포에 물들이게 하는 강대국이 된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결국은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 빠르게 무너진다. 그중의 한 단면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오마이뉴스" 2013.02.1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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