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돼지의 왕>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 ⓒ KT&G 상상마당

15년여 전 중학교 3학년 시절, 그곳엔 엄연히 '계급'이 존재했었다. 계급은 힘의 논리로 나뉘어졌다. 그건 부모님의 재력이나 권력일 수도 있었고, 스스로의 힘(power) 일 수도 있었다. 학교였기에 공부도 월등하면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진 이가 제일 위에 군림하였다. 나는 셋 중 어느 하나도 월등하지 못했기에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서, 아니 낮다고 말할 수 있는 곳에서 생활하였다.

그들은 모든 이들에게 시비를 붙여보며, 전투력와 담력 등을 시험했다. 전투력보다 담력을 중시하였던 것 같다. 전투력은 담력없이 발휘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덩치도 왠만큼 컸고 공부도 잘하는 편에 속했지만, 결정적으로 담력이 부족했다. 이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기억하기 싫은 그때 그 시절이다.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른다. 다 치고박고 하면서 크는 거라고. 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한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해자'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이 시대의 가해자로 군림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것도 합법적 가해자라면 말이다.

이건 더 이상 교실의 모습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은 15년만에 만난 두 친구 경민과 종석이 옛 추억을 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그 '추억'이라는 게 자못 심각하다. 그때 그 시절 중학교 교실이 '계급사회'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 다지 높지 못한 계급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로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그러던 중 어김없이 '정의의 사도' 철이가 나타나 어린 양들을 구해준다. 그러며 또한 어김없이 말한다. 정의의 사도이지만 힘을 숭배하는 캐릭터. 학교 폭력의 전형적인 스토리 아닌가.

"우리가 힘을 가지려면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악을 가져야돼.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야 해."

그렇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현재 팽배해있는 학창 시절의 폭력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영화는 진일보한 '일진'의 정체를 정의하며, 학교의 배경을 빌려 이 시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사도 철이는 무식하게 힘만 쎌 뿐, 실질적인 힘이 없다. 즉, 기득권층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층이자 가해자 학생들은 공부 잘하고, 싸움 잘하고, 부모님의 재력까지 갖춰 완벽하다. 철이는 철지난 싸움꾼일 뿐이다. 예전의 순수한 시절에서는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 그 또한 희생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그다지 위치가 높지 않은 계급의 왕일 뿐이었다. 돼지의 왕.

괴물이 되고자하는 돼지의 왕. 그리고 달갑지 않지만, 그를 따르는 경민과 종석. 그 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개들. 결정적으로 소수 돼지들의 투쟁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조용히 개들을 따르는 다수 돼지들. 이건 더 이상 교실의 모습이 아니다. 무한 양육강식의 세계 그 자체인 것이다.

차가운 세상에서의 잔혹한 스릴러

영화는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최초의 잔혹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어린 중학생들의 이야기가 어찌 잔혹할 수 있겠냐만은,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다. 진짜 잔혹한 것은 중학교 때의 끔찍한 일들이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힌다는 사실이다. 끔찍한 일들은 돼지들에게만 일어났다. 누군가는 그때 죽었고, 누군가는 지금 죽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죽였고, 서로를 죽이려 한다. 공포에 떨며 아주 비참하게.

그렇다면 그들은? 높은 곳에서 군림하던 그들은? 훗날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비참하게 살고 있는 과거 낮은 계급이었던 이들의 모습만 보여준다.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서운 광경을 눈 앞에서 보여주겠다는" 철이의 계획이 성공하였음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계급은 바뀌지 않는다는 차가운 사실에 더해, 무슨 짓을 하든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잔혹함을 선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철이의 말처럼 힘을 가지려면 악을 가져야 할까? 아니면 외려 착하게 살아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기저기 할퀴고 찢겨도 조용히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해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해주지 못한다. 악을 가져도 바뀔 수 없고, 착하게 살려해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인가. 바꿀 수 없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전학와서 윗계급에 도전해보려다가 호되게 당해 마음을 완전히 돌려 먹은 손석응의 말을 옮겨본다. 그의 담담한 고백이 무엇보다 잔혹하게 다가온다.

"내가 뭐 바꿀 수 있겠나. 야, 이 개새끼들아, 응 그러면서 저주라도 하면서 뒤지뿔까? 흐흐.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수를 써도 금마들 이길 방법은 없다. 맘 상하는 데 이건 뭐 당연한 거 아니겠나."


"오마이뉴스" 2013.5.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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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이자 세계 최고의 자원의 보고다. 이를 알았던 서구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일찍이 아프리카 전 대륙을 케잌 자르듯 분할 통치했다. 20세기 들어서 사실상 모든 나라가 독립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몇몇 나라들은 내전에 휩싸였다. 소말리아·수단·콩고·에티오피아·시에라리온 등... 차라리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를 찾는 게 쉬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시에라리온 내전은 애초의 '독재체제'에 반대하는 혁명연합전선(RUF)과 정부군의 전쟁이 점차 '다이아몬드 광산'의 이권을 차지하는 전쟁으로 변해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의 사망은 물론이고,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가 고통을 받았다. 소년들은 잔인한 소년병이 되고, 어른 남자는 광산으로 끌려갔으며, 어른 여자는 노리개가 됐다. 그밖에 사람들은 무차별 살인을 당했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간략한 브리핑이자,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이다. 

피의 다이아몬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1999년 내전이 한창인 시에라리온의 어느 마을에서, 솔로몬 밴디(디몬 하운수 분)가 아들과 함께 한적한 시간을 즐기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혁명연합전선(아래 RUF) 일당이 마을을 습격한다. 밴디는 가족들을 살려 도망쳐 보내지만, 자신은 잡혀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어마어마하게 큰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이를 땅에 묻어 숨긴다. RUF 사령관에게 들키려는 찰나, 정부군의 습격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제 밴디는 가족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발견한 피의 다이아몬드를 다시 찾아와야 했다.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일급 용병 출신으로, 다이아몬드 브로커다. RUF에게 무기를 대주고 다이아몬드를 밀수하는 것이다. 그는 다이아몬드를 밀수하다가 걸려서 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 밴디가 엄청난 다이아몬드를 숨겨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에게 같이 찾으러 갈 것을 제안한다. 대신 가족들을 찾아주겠다고.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내(백인)가 없이는 넌(흑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는 이 지긋지긋한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위해 그 피의 다이아몬드가 필요했다. 또한 아처는 과거 몸담았던 용병 집단의 우두머리와 거래했는데, 그만 밀수 도중에 다이아몬드를 압수당하고 말았으니 그 우두머리는 대신 그 피의 다이아몬드를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영화는 아프리카 그리고 시에라리온에 대한 거시적 접근과 솔로몬 밴디·대니 아처에 대한 미시적 접근을 자유자재로 펼치며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매개체가 바로 '피의 다이아몬드'다. 수많은 사람들을 피 흘리게 한 다이아몬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하려 하고 지키려고 하는 다이아몬드. 기자 역할로 나오는 여주인공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 분)의 말과 행동·사진을 통해 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생산된 다이아몬드는 세계로 팔려나가 가공돼 엄청나게 비싼 돈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속사정을 취재하는 그녀의 속마음 또한 타들어간다. 

이런 속사정이 있는 물품은 비단 다이아몬드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표적으로 '커피'가 있다. 커피 원두는 대부분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가난한 지역에서 생산된다. 세계 유수의 커피 브랜드들은 그곳에 마치 과거 노예 농장처럼 거대한 농장을 꾸리고 상상도 안 되는 싼값에 그곳 사람들을 이용해 원두를 채취한다. 그리고 엄청난 가격을 매겨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주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This is Africa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가족을 되찾기 위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야 하는 밴디, 거래를 위해서 그리고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위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야 하는 아처, 그리고 이 모든 실상을 카메라에 담고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는 매디. 이 셋은 얼떨결에 함께 모험 아닌 모험을 떠난다. 먼저 밴디의 가족들을 찾아주고, 이후 밴디와 아처만이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 하지만 밴디는 RUF에 잡혀간 아들을 찾아야 했다. 죽어도 꼭 찾아야겠다는 밴디를 보고 아처는 마지못해 이를 수락한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가는 도중 밴디와 아들을 발견하지만 아들은 이미 혁명전사가 돼 있다. 그로 인해 밴디는 그만 RUF에게 잡히고 만다. 영화는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소년들이 어떻게 혁명전사라 칭하는 무자비한 소년병이 돼가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란 '민족해방'이지만, 실상의 목적은 다이아몬드를 통해 '아프리카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반군 사령관의 사리사욕에 불과하다. 훈련을 빙자한 폭력으로 인한 복종과 '혁명전사'란 미명하에 덜 성숙한 소년들의 폭력성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어린 소년들이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불에 태워진 철물을 둘러싸 노래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습을 보니, 소설 <파리대왕>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어린 나이에 볼 수 있는 극한의 비극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것이 아프리카의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처가 대니에게 고백하는 자신의 과거 또한 아프리카의 현실 그 자체다. 그는 백인이지만 아프리카 태생인데, 어릴 때 어머니는 강간을 당한 후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는 테러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그는 용병단에 들어가 수많은 반군을 죽였는데, 지금은 반군에게 무기를 대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 여러 사람이 툭툭 던지는 대사인 'T.I.A' 즉, 'This is Africa'. 이곳은 아프리카이니 어떤 것이든 할 수 있고 당할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이 한마디에 포함돼 있는 그 가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처가 하는 말을 들어본다. 

"가끔은 궁금해져. 우리가 하는 일을 신이 용서하실지... 하지만 금세 깨닫곤 하지... 신이 오래 전에 이곳을 떠났다는 걸..."

한편, 아처는 사전에 용병단에게 반군에 대한 폭격을 요청한 바 있어 폭격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해 한다. 이윽고 폭격이 시작되고 그는 아수라장이 된 반군 집결지에서 밴디의 아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이제는 아처와 밴디·밴디의 아들·용병단의 우두머리와 부하들이 피의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 그곳에서 아처와 밴디는 솜씨 좋게 용병단을 무찌르고 빠져 나가려 한다. 하지만 아처는 총에 맞고 말았다. 미리 요청해둔 경비행기의 착륙 지점이 코앞이었지만 아처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밴디와 그의 아들만이 탈출에 성공한다. 무사히 탈출한 그들은 매디의 도움을 받아 다이아몬드를 팔게 됐고,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영화가 끝나며 2003년부터 '킴벌리 협약(Kimberly Process)'가 발효됐다는 자막이 나온다. 이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생산과 유통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자정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는 그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밴디와 매디 그리고 아처가 지목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지대한 역할을 한 아처가 비록 백인이지만 아프리카 태생으로 나온 것은 영화의 신뢰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흔하디흔한 백인 우월주의 또는 영웅주의의 영화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감독 에드워즈 즈윅의 <라스트 사무라이>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오마이뉴스" 2013.4.22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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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굿' 바이 : Good&Bye>한달여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믿기지가 않았다. 비록 1년 전부터 많이 안 좋아지셨긴 했지만, 내 기억 속 외할아버지는 건강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말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봐주실 줄 알았는데, 너무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웃음꽃이 피어났던 장례식

어렸을 때 겪었던 죽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경험이었다. 한편으론 신기한 경험이었다. 장례식장에 '울음'의 행렬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웃음' 꽃이 피어날 줄은 몰랐다. 또 하나의 귀중하고 신기한 경험은 납관의식이었다. 손자 세대 중에 나만 유일하게 그 의식에 동행할 수 있었다.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에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시간이었지만, 의식이 끝나고 어른들이 하신 말씀들이 뇌리에 남는다. 




"아버지 잘 생기지 않았니?"
"정말 잘 가신 것 같아."
"평온해 보이시니 너무 좋다." 

'시신'에 대한 말씀치고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내가 느끼기에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평온했고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는 내 머릿속에서 '납관'이라는 불쾌한 단어가 비로소 밝은 빛을 발하게 해주었다. 더 이상 불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영화 <굿' 바이 : Good&Bye> ⓒ 네이버

외할아버지도 아름다우셨지만, 납관의식 자체가 무척 아름다웠다.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죽은 이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 속에서 의식은 거행되었고, 납관사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아름답게 포장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고 나서 단번에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비밀> <음양사> 등으로 유명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2008년도 작품. < 굿' 바이 : Good&Bye >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여행가이드

영화는 전도유망한 첼리스트 다이고가 속한 악단이 해체되면서 시작된다. 백수가 된 다이고는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 파격적인 조건의 여행가이드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은 단번에 합격! 그러나 그가 하게 된 일은 일반적인 여행가이드가 아니었다. 인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여행가이드, 즉 '전문 납관사'였던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다이고였지만, 먹고 살아야 했기에 일단 납관 일에 착수한다. 하지만 매일 같이 죽음을 마주한다는 건 누구나 에게도 쉽지 않은 일. 방황하는 다이고이지만, 사장이자 베테랑 납관사인 이쿠에이의 정성스럽고 진실된 납관의식을 참관하고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도 비로소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존재의 일반적임과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이쿠에이의 납관의식을 접하고 감동을 받는 다이고 ⓒ 쇼치쿠 KD미디어


하지만 그의 아내, 그의 친구, 그의 고객들은 그의 직업을 불결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다이고에게 한마디씩 한다. 이는 다이고에게 또 하나의 큰 시련으로 다가온다. 
"다가오지마! 불결해..."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일을..."
(고객이 저주를 퍼붓는 대상에게) "너는 나중에 저 사람(다이고)처럼 살게 될 거야!"

다이고를 향한 일련의 말들을 '죽음'을 향한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은 불결한 것이고, 죽음에 관련된 일은 천하디 천할 뿐만 아니라 천하에 할 일이 없어도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다이고는 진리가 담긴 말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모두가 죽어, 당신도 나도. 그런 죽음이 일반적인 게 아니면 뭐가 일반적인 건데?"

다이고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다. 죽음과 관련된 일이, 죽음이 결코 불쾌하거나 불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그들 앞에서 죽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말이 아닌 진심을 담은 행동으로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다이고는 엄연한 납관사가 되었다. ⓒ 쇼치쿠 KD미디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굿' 바이다이고의 가슴엔 큰 멍울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의 빈자리.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아버지가 혼자 쓸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해 드리는 것. 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훌륭한 삶을 사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잘 가세요."

'Good&Bye'에는 이런 뜻이 있는 것이다. 훌륭한(Good) 삶을 사셨어요. 잘 가세요(Bye). 그리고 이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마지막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 납관사(&).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훌륭한 삶을 사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잘 가세요.” ⓒ 쇼치쿠 KD미디어

영화는 죽음을 다루지만 코믹스러운 연기나 상황 설정이 가미되어 있어 결코 우울하거나 어둡지 않다. 그렇다고 죽음을 우습게 다루고 있지도 않는다. 그 변화도는 이렇다. 초반의 죽음은 엄숙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즉 죽음도 결코 엄숙하다고만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본래 Good Bye라는 단어를 죽음이라는 뜻과 완전히 겹치게 해버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단정 지어 버린 것을, 가운데 &을 넣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이다. 세상에 단 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개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일 것이다. 죽음으로의 길은 누구나가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나도 가야하고 가족들도 가야하고 친구들도 가야하고 지인들도 가야한다. 이왕 가는 길이라면, 보내는 이에겐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보내지는 이에겐 아름다운 여정길이 되어야지.


"오마이뉴스" 2013.3.2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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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슬럼독 밀리어네어>

자말 말릭은 퀴즈쇼에서 상금 6억 원이 걸려있는 최종 단계에 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A: 속임수로 / B: 운이 좋아서 / C: 천재라서 / D: It is written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영화가 시작하며 나오는 이 물음에서 'D: It is writte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문구는 영화가 끝나면서도 나온다. 동일한 문구이지만 시작과 끝의 의미는 다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운명이다' 또는 '소설이다'라고 완전히 다르게 해석이 가능하고, 그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 또한 달라진다. 이를 감안하시길. 


ⓒ cj 엔터테인먼트(주)

2009년 영화계를 독식하시피한 이 영화. 평단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수상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내더니 결국은 흥행까지. 당시 모든 부분에서 다른 영화들을 압도했다. 5년 만에 다시 봤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빈민가 백만장자라는 뜻인데 제목만 봐서는 빈민가 출신의 주인공이 백만장자가 된다는 이야기. 

최근에 나온 영화 <파이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다시 보게 된 영화인데, 이유를 생각해보니 무명에 가까운 주연 배우와 유명한 감독 그리고 베스트셀러 원작이었다. 영화는 (주연)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이 크게 좌우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는 걸 보여준 두 영화였다. 명품 배우가 아닌 명품 감독과 탄탄한 스토리만 갖춰지면 명작이 탄생하는 게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감독 얘기를 해야겠다. 대니 보일 감독. 굉장히 스타일리쉬한 영화들을 연출했다. 일례로 <트레인스포팅>이 있다. 이 영화는 20년 가까이 된 영화지만, 지금 봐도 신선하다.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 <비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맞아 큰 화제를 낳았지만 많이 아쉬웠던 영화였다. 좀비 영화의 신세계, <28일 후> <28주 후>도 있다.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좀비를 내세워, 분노한 세상을 꼬집었다. 감독의 연혁 얘기는 여기까지.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면,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크게 세 가지 파트로 진행된다. 누군가에게 한 청년이 고문을 받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그 청년이 '백만장자 퀴즈쇼'라는 프로그램에 출현하는 장면으로 옮겨간다. 고문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청년이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고문을 하던 사람들이 경찰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퀴즈쇼 도중 주인공인 청년의 어렸을 때의 장면들이 나온다. 

기막힌 연출과 몰입

이렇게 세 파트가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경찰에게 퀴즈쇼에서 속임수를 쓰지 않고 어떻게 정답을 맞추게 됐는지 진술을 하고 그 진술은 바로 어린 시절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핵심은 아마도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 cj 엔터테인먼트(주)


주인공의 이름은 자말 말릭. 그는 형인 살림과 엄마와 함께 빈민가에서 살았다. 어느 날 라마신교들의 침입으로 이슬람 교도였던 빈민가 주민들은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하고 그중에는 그들의 엄마도 있었다. 결국 알 수 없는 곳으로 도망을 가게 되면서 그들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된다. 그 사이에 알게 된 이는 바로 라티카. 

어떤 영화든지 그 안에 너무 많은 주제를 내포해서 모든 걸 보여주려 하다보면 어느 것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끝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꽤나 많은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제들을 깔끔한 스토리 안에서 하나하나 잘 풀어내고 있다. 쉽지 않은 작업을 훌륭히 해냈기에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빈민가에서 자란 그들은 긴 여정의 초반에서 착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구걸을 하며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 착한 남자의 사기 행각을 알아챈 주인공 형제. 탈출에 성공하지만 라티카를 놓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라티카를 찾기 위한 여정.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

여기서 한 가지 주제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착한 남자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해서 잘 부르면 돈을 잘 벌게 해준다고 거짓말을 한 후 눈을 멀게 해서 수준 높은 앵벌이 노릇을 하게 만든다. 너무 비약적일지는 모르지만 그 남자는 인도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cj 엔터테인먼트(주)


현재의 인도의 경제는 중국과 같이 지칠 줄 모르고 급성장하고 있다(몰론 세계 경제 한파로 어려운 건 사실). 하지만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수많은 빈민가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인도에만 존재한다는 그 천민일 것이다. 형제를 속이려 한 그 남자도 겉으로는 경제력 있고 마음씨 좋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검게 썩어있다. 

영화의 종반부에서는 주인공들은 청년이 되고 빈민가들은 모두 빌딩으로 대체된다. 인도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인도의 중심이 예전엔 빈민가였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이건 비단 인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 주제가 이 영화의 제1주제가 아닐까.

또 하나의 주제는 돈 그리고 의리일 것이다. 주인공 형제 중 형인 살림. 그는 어릴 때부터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했다. 그런 그도 동생에 대한 의리는 있었다. 그 남자에 의해서 눈을 잃을 위기에 처한 동생을 데리고 탈출했던 형. 나중에 라티카를 찾으러 다시 찾은 빈민가에서 그런 의리 있던 형은 그 남자를 죽이고 동생인 자말을 내쫓은 뒤에 빈민가의 실력자인 자비드의 밑으로 들어간다. 자말이 그토록 찾았던 라티카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결국 형인 살림은 동생과의 의리를 지켜서 라티카를 놓아주고 자신은 자비드를 죽인 뒤 살해된다. 그는 죽음을 각오한 뒤 욕조에 돈다발을 풀어놓고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태생부터 돈에 대해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 그의 둘도 없는 동생이자 평생의 동반자인 자말에 대한 의리. 돈과 의리. 공존할 수 없는 이 둘. 그는 의리를 선택했고 돈다발 속에서 죽어갔다. 

이 영화가 말하려 하는 건 따로 있을지 모른다. 진부해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바로  '운명적 사랑'이다. 주인공인 자말은 시종일관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 불만족스러운 표정, 허무한 표정 등 부정적인 표정으로 일관한다. 아직 라티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어렸을 적에 그 남자에게서 리티카를 탈출시키지 못했다. 그 이후 그의 삶의 목적은 리티카인 것이다. 몇 번이고 리티카를 찾아내지만 그의 형에 의해 재지를 당한다. 그럼에도 결국은 그들의 사랑은 이뤄진다. 

자말의 백만장자 퀴즈쇼 출현도 라티카에게로 가기위한 여정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자말이 라티카를 알고 난 이후부터의 모든 여정은 그가 그녀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은 재회한 자말과 라티카. 이 여정과 마지막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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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도, 숨 막히는 두뇌싸움도, 액션도 없다. 반면에 여러 가지 진지한 주제와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멜로·범죄·드라마·로맨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이 영화만의 매력이 있다. 필자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영화였지만 시대의 영화 흐름에 맞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평을 내리고 싶다. 영화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 것 같은데 조악하지 않게 제자리를 잘 잡은 것 같다. 스타 배우 하나 없이 비록 할리우드 영화이지만 생소한 인도 배경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자주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해줬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에 대해 누구나 꿈꿔본 운명적 사랑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줬고, 크게 봐서 인도만의 문제일 수 없는 경제의 급성장 뒤에 숨겨진 진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줬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 영화. 지금 봐도 전혀 거리감이 없다.



"오마이뉴스" 2013.2.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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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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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개방 정책에 힘입어 책과 노래, 영화, 애니매니션을 비롯한 수많은 일본의 문화 콘텐츠들이 한국에 들어왔다. 개중에는 공교롭게도 당년에 죽음을 맞이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작품들도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누구인가? 일찍이 1950년대에 <라쇼몽>과 <7인의 사무라이>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으며, 이후로도 베를린 영화제, 칸 영화제, 미국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 등에서 수상을 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 중, 1980년에 나온 <카게무샤>를 소개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영화 외적으로 간략히 소개해 보자면, 이 영화는 20세기폭스사에서 배급을 맡아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가 세계에 배급한 최초의 일본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구로사와 감독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조지 루카스의 도움으로 20세기폭스사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다고 한다.

작품성 면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는데, 1980년 칸영화제의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1981년 영국 아카데미상의 감독상과 의상상, 프랑스 세자르상의 최우수 외국어 작품상, 이탈리아영화비평가상의 감독상, 휴스턴영화제의 감독상 등을 받았다.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돋보인 명작이라는 평이었다. 

16세기 일본 전국시대. 풍림화산의 기치를 건 다케다 신겐은 전국 통일을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투 중, 총에 맞아 결국 숨을 거두고 그의 카게무샤(그림자 무사)가 대신하여 신겐 진형을 이끌게 된다.

개인적으로 '다케다 신겐'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필자의 아이디가 'singenv'인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들 일본 전국시대하면 세 사람을 떠올린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런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고 숭배까지 했던 무장이 바로 다케다 신겐이다.

그는 대단한 지략가이자 전략가로 전국 통일의 시작점인 교토 입성을 얼마 남기지 않고 오다 노부나가와 대치하게 되는데, 적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게 된다. 그 이후 그의 그림자 무사를 통해 이 영화는 전개된다. 사실에 충실히 입각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겠다.

카게무샤는 일본 전국시대 당시에 영주들이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적을 기만하는 일종의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실체가 있어야 그림자인 법. 영화를 보면 한때 카게무샤였던 다케다 신겐의 동생인 다케다 노부카도는 "그림자는 실체가 있어야 그림자인데 지금 형님이 계시지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그렇다. 신겐이 죽고 난 후 죽음을 숨기기 위해 그의 카게무샤는 신겐이 되어 시동과 시종, 처첩들 심지어 손자까지도 속여넘기게 된다. 하지만 원래는 천한 도둑이었던 그. 또한 그의 실체였던 다케다 신겐은 이미 죽고 없다. 그가 꿈을 꾸는 대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죽었던 신겐이 다시 살아 돌아와 자신을 쫒는 꿈을 꾸는 카게무샤. 그는 방황한다. 자신의 실체인 신겐이 죽고 방황하는 그림자인 카게무샤를 표현하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그는 견디지 못하고 보물을 훔쳐 달아나려 하기도 한다. 내 인생에서 나는 과연 실체일까 그림자일까. 

2012년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인 <광해>도 일종의 카게무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때 수많은 암살 위험에 처해 있던 영주처럼, 조선시대 광해군도 수많은 암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인 독살이나 암살 대신 약에 의한 살인을 노렸다. 이에 광해는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본래 광해군의 파트타임 대역에 불과했던 시정잡배 논다니는 자그만치 보름 동안 대역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카게무샤>에서는 카케무샤인 도둑과 카케무샤였던 다케다 노부카도. 그리고 또 다른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의 아들(서자)인 스와 가쓰요리. 그는 뛰어난 장수였지만 다혈질이고 서자라는 사실에 굉장한 딜레마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스와 가쓰요리가 독단으로 전투를 치르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어느새 나타나 그의 뒤에 산처럼 버티고 있는 신겐. 이미 죽고 없지만 여전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은 후에 다케다가의 영주가 된 후 독단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일본 전국시대의 판도를 바꾸는 나가시노 전투에서 전멸을 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비극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지 않았을까.

위에서 언급한 나가시노 전투를 끝으로 다케다 신겐의 신화는 끝을 맺는다. 당시 전국 최강을 자랑하는 풍림화산의 기마대는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의 총포 앞에 맥없이 무너진다. 이 허무함은 영화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 광활한 아시아 대륙을 점령한 칭기스칸이나 동서에 걸쳐 엄청난 영토를 굴복시킨 위대한 고대의 알렉산더 대왕. 하지만 그들이 죽고 나서 그들이 세운 제국은 급속도로 무너진다. 이 얼마나 허무한가. 

이 영화는 분명히 전쟁 영화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전투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마지막 전투 장면인 나가시노 전투신에서 다케다가의 기마대들은 돌격하고 총포에 맞고 전멸한다. 하지만 그 장면들은 나오지 않고 스와 가쓰요리와 가문 중신들의 표정으로 대변한다. 그 후에 보여주는 널부러진 시체들. 직접적인 전투 장면 없이도 충분히 박진감 넘치고 긴장된다. 그건 감독의 역량이 출중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한편 카게무샤는 어느 날, 신겐밖에 다룰 수 없는 난폭한 말을 타게 되고 결국은 낙마하게 된다. 그로 인해 처첩들에게 그에게 신겐이 전투에서 다친 상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차없이 쫒겨나게 된다. 다시 부랑자 신세가 된 그. 하지만 그는 이미 신겐의 그림자가 되어 그의 곁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나가시노 전투에 나타난 그는 다케다가의 기마대가 전멸한 후 풍림화산의 깃발을 들고 무작정 뛰어가지만 총포에 맞고 죽고 만다.

이 장면 역시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케다 신겐의 상징인 풍림화산의 깃발을 들고 뛰어나간 그. 그림자인 그는 진정으로 실체인 신겐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 희망은 속절없이 죽음으로써 꺾여지고 만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과 풍림화산의 깃발 그리고 핏물이 바다로 흘러간다. 인생의 허무함 나아가 가문 역사의 허무함. 또한 전쟁의 허무함을 통해 역사의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는듯하다.

허무함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자 무사를 통해 자기정체성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서구 문명에 우리나라는 일본을 통한 기형적인 서구 문명에 근대화를 열어젖힌다. 세계 수많은 나라들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과연 이런 가운데 우리의 진정한 자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또한 전쟁을 통한 강함의 종말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 것이 아닐까.

특히 자국인 일본. 고대의 일본은 하찮은 섬나라에 불과했지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이후 조선을 침략하고 몇 백년 후에 메이지 유신을 통해 발빠르게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결과 제국주의를 앞세워 동아시아를 공포에 물들이게 하는 강대국이 된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결국은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 빠르게 무너진다. 그중의 한 단면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오마이뉴스" 2013.02.1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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