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양들의 침묵>


영화 <양들의 침묵> ⓒ오라이온 영화사


8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4개 부분(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작품은 단 3개에 불과하다. 일찍이 1934년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1975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리고 1992년 <양들의 침묵>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양들의 침묵>은 절대로 영화화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토머스 해리스'의 원작을 완벽하게 스크린으로 옮겼고, 그에 더해 남녀 주연 배우인 '안소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의 연기가 화룡정점을 찍었다. 이 영화의 수식어로 흔히 붙는 말이 '수준 높은 스릴러'인데, 피가 낭자 하지 않으면서 그 분위기만으로도 보는 이를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먼저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 분). 그는 정신과 의사 출신의 식인을 즐기는 연쇄 살인마이다. 영화는 그의 괴상한 이력에 대한 어떤 이유나 사전 정황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는 여주인공인 FBI 교육생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 분)가 사람의 피부를 벗기고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을 잡으려는 데 조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정신과 의사답게 스탈링의 어린 시절을 파헤치며 '멘토'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 ⓒ오라이온 영화사


FBI 교육생 클라리스 스탈링은 렉터 박사와의 면담을 통해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을 잡는 데 단서를 잡아보라는 상관의 명령에 의해 렉터 박사와 면담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와의 면담을 통해 알게 되는 건 애써 묻혀두었던 어린 시절의 불행.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말해주지 않으면 아예 면담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렉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덕분에 그녀는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성숙해나간다. 그리고 성장해나간다. 


한편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은 변태 성욕자이다. 그는 젊은 여성의 등피부만 수집해 벗긴 후 살해한다. 그리고 그 피부를 옷처럼 만들어 직접 입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즉, 그는 여성이 되고자 한다. 렉터 박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사회가 낳은 괴물'이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원했지만 여러 병원에서 거절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여성이 되고 싶었고 그와 같은 행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사회 병리학적 폐해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 ⓒ오라이온 영화사


영화는 이 세 개의 큰 이야기를 줄기로, 종횡무진하는 스탈링이 이끌어 나간다. 버팔로 빌을 잡을 요량으로 렉터 박사의 말을 듣고 이궁리 저궁리하며 여기저기 돌아 다닌다. 그러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해주되, 정작 렉터 박사 자신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도 잃는다. 이후 친척 농장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양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삼촌이 양을 도축 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녀는 양을 한 마리라도 살릴 요량으로 양 한 마리를 들고 집을 뛰쳐나왔지만, 결국 그 한 마리조차 죽고 만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는커녕, 양 한 마리조차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깊은 곳에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이것을 렉터는 꿰뚫어본다. 


프로이트의 초기작 <과학적 심리학 초고>(1896)에는 프로이트를 찾아가 상담을 하는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옷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는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일찍이 8살 때 상점 주인에게 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성적 분별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기억에서 은폐 되었다. 그런데 12살 때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다. 어떤 상점에서 점원들이 자신의 옷을 보고 웃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폐 되었던 8살 때의 기억이 환기되었고, 이 두 사건이 인자가 되어 '트라우마'로 탄생 되었다. 


이 영화는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렉터 박사를 프로이트 박사로 비유할 수 있고, 스탈링과 버팔로 빌은 상당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이를 좋게 발전시켰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나쁜 쪽으로 가고 말았다. 그리고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 분명한 렉터 박사의 트라우마는 <한니발>과 <레드 드래곤>으로 표현된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 ⓒ오라이온 영화사

영화의 결말에서 렉터 박사가 스탈링에게 하는 질문 "양의 울음소리는 그쳤는가?"에 스탈링은 답하지 못한다. 그건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트라우마를 해결하려는 행동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스탈링을 잡아 피부를 벗기려는 버팔로 빌을 죽인 그녀. 그로 인해 그녀는 살면서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다. 


인생에서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영화에서처럼 양을 그 사건과 사고들이라 한다면, 양들이 침묵할 때는 영원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스탈링은 비록 한 단계 성숙하고 성장했지만, 양의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 사건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야말로 진짜 성숙이고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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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그랜 토리노>


영화 <그랜 토리노> ⓒ워너브라더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본래의 의미에서 상당히 빗겨나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과 북으로 갈려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모든 것을 규정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인데, 보수와 진보라는 거대한 가치가 한국에서는 이데올로기에 먹혀버린 듯한 형상이다. 


보수와 진보는 사실 철학적인 용어로, 각각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 그리고 전통적 가치나 정책·체제 등에 반하여 새로운 가치나 정책의 창조를 주장하는 사상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그래서 이들은 그 자체가 지니는 악이나 선의 개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조직마다, 나라마다 견지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그들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추구하는 것 뿐이다. 


전통을 중요시하고 지킬 게 많아지면 자연스레 보수가 되기도 하고, 변화를 중요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면 진보가 되기도 한다. 한편 이 둘을 혼합할 수도 있다. 필자도 어느 면에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면을 강조하고 추구하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완전한 진보적 가치를 견지하기도 한다. 그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역사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를 것이다. 


영화 <그랜 토리노>는 이 중에서 '보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보수의 본래 의미인,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를 완벽히 수행하는 한 노인의 모습을 그린다. 월트 코왈스키 노인(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현재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한적한 동네에서 애완견과 함께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그들은 코왈스키의 보수적인 태도를 못 마땅히 여기며 조롱하기만 할 뿐이다. 


한편 그에게는 1972년산 '그랜 토리노' 자동차 한 대가 있다. 포드 자동차에서 50여년을 일한 그에게 그 차는 보물과도 같은 것으로, 매일 같이 관리하고 지켜보고 있다. 지켜야 할 절대적 '선(善)'인 것이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더 있다. 바로 그의 작은 집과 앞마당.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장총을 서슴없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겨눌 수 있다.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는 아마도 자신이 보수주의자인 걸 딱히 인지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지 '나의 것'을 지키고 가꾸고 보존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또한 그에게는 과거에 겪은 크나큰 사건이 그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이 과거를 청산하고 동시에 조금은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할 기회가 그에게 찾아온다. 


그의 옆집에는 흐몽족(베트남 남부의 소수 민족)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 '타오'라는 아이가 있는데, 같은 흐몽족 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곤 한다. 갱들이 와서 자신들과 함께 깽판을 치며 놀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대상은 바로 옆집 코왈스키 소유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는 것. 하지만 코왈스키의 방어 때문에 실패한 타오는 도망친다. 어느 날 다시 찾아온 갱들, 그들끼리 벌어지는 실랑이, 코왈스키 내 앞마당까지 침범해 벌어지는 실랑이, 장총을 들고 와 방어하는 코왈스키, 엄청난 카리스마에 도망치고 마는 흐몽족 갱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영웅이 된 코왈스키. 그렇게 영웅이 된 코왈스키는 옆집과 점점 더 친해지며 특히 타오와 친해진다.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런데 코왈스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타오의 누나인 수가 길에서 흑인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 코왈스키가 나서서 구해준 것이다. 참으로 카리스마 있는 코왈스키의 모습에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짜고짜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모습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과장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에서 '세계 경찰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흐몽족 수가 말해주는 종족의 역사를 생각하면 더더욱. 왜 베트남 사람이 미국까지 와서 지내고 있느냐는 말에, 수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공산당이 흐몽족을 학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흐몽족이 미국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영화의 의도를 조금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왈스키는 타오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갱들을 찾아가 두들겨 패 놓았다. 그는 왜 자신의 것을 넘어 자신을 영웅이라 떠받드는 사람을 지키려 했는가?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하지만 이 영화를 드라마로, 과거의 망령에 사로 잡혀 현재를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한 노인의 투쟁이라는 시선을 본다면, 감동적이기 그지 없다. 그는 언제고 거기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는데, 누가 보아도 위대하게 그리고 감동적이게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갱들이 다시금 찾아와 타오네 집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수는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에 코왈스키는 오랜 생각 끝에 갱들의 집으로 쳐들어 간다. 그 전에 타오가 오지 못하게 지하실에 가둬 둔다. 그러며 그는 타오에게 말한다. 


"사람 죽일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지? 그래, 완전 죽이는 기분이지. 한 가지 안 좋은 건, 어린 애들 죽이고 받은 훈장이지. 항복하려는 애들을 말이야. 너처럼 어린 병사들이 겁에 질려 있었어. 나는 그런 아이들 면전에 대고 라이플을 갈겼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 생각 안 나게 돼. 넌 그러면 안 돼. 난 이미 손에 피를 묻혔으니까. 난 이미 더럽혀 졌으니까. 그게 바로 내가 혼자 가는 이유다. 이제 넌 네 인생을 살아라. 난 끝내야 할 것이 있어. 그래서 혼자 가야 하는 거다."


착하고 순수한 청년 타오에게 자신과 같은 후회의 삶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게 악(惡)을 박멸 하려는 의도까지도. 그러며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싶었을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결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선택으로, 위대한 미래를 창조하는 데 쓰이게 될 것이다. 


지극히 드라마적인 요소와 캐릭터의 힘 만으로 끌고 가는 이 영화는 어떤 극적인 장면이나 분위기, 반전이 없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큰 웃음이 터져 나오곤 하는데, 의도치 않았겠지만 대놓고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보다 더 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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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블랙 호크 다운>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소니/콜롬비아


실제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극적인 사건들은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콘텐츠화 되곤 한다. 다분히 극적이진 않더라도, 내러티브가 있고 어느 정도의 감동이 있으면 충분하다. 거기에 창작자가 극적 장면과 호기심 일게 하는 스토리 얼개와 개성 강한 캐릭터를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를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은 2000년 <글래디에이터>로 세계적 명장의 반열에 올라선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01년에 <한니발>에 이어 호기롭게 만든 영화로, 실제 했던 사건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사실 '리들리 스콧'하면 일찍이 1970~80년대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으로 SF의 전설로 자기매김한 인물이다. 여기에 제작자는 그 유명한 '제리 브룩하이머'. 일찍이 만난 적이 없던 이들 간의 시너지가 어떻게 터져 나올지 기대가 되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제1차 모가디슈 전투'. 1992년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무법천지였다.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대통령을 축출한 뒤 소말리아는 정치적 혼란에 빠졌고 거기에 최악의 가뭄까지 겹쳐 30만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에 미군을 위시한 유엔 평화유지군은 소말리아에 전투부대를 파병하고 아이디드 체포를 최우선적인 목표로 잡는다. '베트남 전쟁'으로 역사적인 망신을 당한 미국이 '걸프전'으로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금 세계 곳곳에 손을 뻗고 있는 시기였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그러던 1993년 어느 날 미군은 아이디드 최측근의 위치를 파악하고 체포를 위해 레인저 부대, 델타포스 부대, 블랙 호크 헬기가 포함된 특수전 항공연대를 출동 시킨다. 비록 더 이상의 지원 없이 적지 한 가운데로 투입되는 위험천만한 작전이었지만, 작전 예상 시간은 불과 30분에 불과한 비교적 간단한 작전이었다. 델타 부대는 최고의 전력 답게 아주 간단히 아이디드 최측근들을 체포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 최강 '블랙 호크'가 연달아 추락하면서 발생한다. 이에 사령관은 생존자 구출을 위해 추락 지점으로 대다수 부대들을 급파한다. 하지만 추락 지점으로 가는 도중, 추락 지점에서 많은 수의 대원들이 다치고 죽고 고립되고 만다. 과연 이들은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제목이자 '블랙 호크'가 추락할 때 파일럿이 외치는 보고인 '블랙 호크 다운'은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고의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을 자랑하고 세계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미국의 입지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제1차 모가디슈 전투'에서 유엔 다국적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립된 대원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미국의 무모함과 무력감을 아주 약하게 깔면서, 그 대신 '전우애'와 '휴머니즘'을 듬뿍 투입 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작전 예상 시간이 불과 30분에 불과한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무모한' 작전에 대해서는 단지 이 작전을 지상에서 이끌 소령과 몇몇 부하들의 불평·불만으로 어물쩍 넘어가고 있다. 반면 전우들 간의 진한 '전우애'와 '휴머니즘'은 블랙 호크 헬기가 추락한 뒤 사령관이 절대적으로 시행할 것을 명령한 '모든 대원들의 귀환'과 그 명령을 행할 때 보이는 대원들 간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통해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영화 자체로는 더 없이 훌륭한 명작이라 칭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을 볼 때 위와 같은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주지했듯 영화 자체로는 소위 '명작'이라 칭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전쟁 영화 중에서 현대전을 다룬 최고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거의 이 영화의 '극사실주의' 연출에 있다. 기존 전쟁 영화가 가지는 리얼리티의 특징인, '피 튀기는 현실감' 대신 장면 자체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실제 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배우들은 실전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고, 1993년 모가디슈 전투에 실제 투입된 기체들을 가져와 사용했으며, 이후 다양한 전쟁 영화에서 차용한 탁월한 촬영 기법으로 전투의 세세한 장면들을 굉장히 미시적으로 접근해 현실감을 극대화 시켰다. 이 밖에도 영화 곳곳에서 리들리 스콧이 리얼리티 구축을 위해 쏟은 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극도의 리얼리티에만 있지만 않다. 만약 그랬다면 아주 훌륭한 다큐멘터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대중을 겨냥한 상업 영화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들리 스콧은 극도의 리얼리티 말고 또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그것은 위에서 말한 '전우애'와 '휴머니즘'에서 기인한다. 비록 영화 외적으로 볼 때 많은 논란을 낳을 여지가 있지만, 영화 내적으로 볼 때 이는 굉장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그리 개성적이지는 않지만 캐릭터들이 틈틈이 보여주는 행동과 속내는 이 영화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특히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전우를 구하려다 오히려 총에 맞아 결국 죽고 마는 장면은, 비록 굉장히 진부하지만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대원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 하는 레인저 부대 분대장과 이 모습을 보며 너의 잘못이 아니며 전쟁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하는 델타 부대 장교의 대조 되는 모습도 은은한 감동을 자아낸다. 전투가 끝난 뒤 곧바로 다시 전투에 투입되는 델타 부대 장교가, 이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레인저 부대 분대장에게 하는 말은 결정타이다. 


"대원들이 남아 있어. 고향 사람들이 묻더군. '그 짓을 왜 해, 후트?' '전쟁이 그리 좋아?' 

난 대꾸 안 해. 왜냐하면 이해를 못 하거든. 우리가 싸우는 건 바로 전우애 때문이란 걸 말이야. 

바로 그거야. 그게 전쟁이지."


보는 이의 성향에 따라서 이 영화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단, 이 영화를 '명작'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또는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은 한 가지를 명심하고 있거나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볼 때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른 누구의 입장도 아닌 다분히 미국의 입장에서 서술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런 다음, 영화가 보여주는 극도의 리얼리티 속에 푹 빠지면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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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터미널>


영화 <터미널> ⓒ드림웍스



해외 여행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제 미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연고지 하나 없는 곳에서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비행기를 놓친 상황에서 수중에 돈은 없고 카드도 없고 핸드폰 배터리까지 나가버린 상황이라면? 결정적으로 어딘지 모를 그곳에서는 우리나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면? (물론 어떻게 해서든 집과 연락이 되어서 도움을 청하면 지금 시대에서 불가능한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럴 때의 당황스러움, 불안감,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공항'은 이런 부정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곳은 언제나 설렘과 기대감, 행복한 긴장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헤어짐과 떠남이 있지만 만남이 있고, 아련함과 애잔함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행복과 환희와 행복한 기다림이 있다. 즉, 그곳에서는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신기한 곳이다. 


최소한의 재미를 보장하는 공항에서의 흥미로운 설정


영화 <터미널>은 바로 이 공항에서의 흥미로운 설정과 감독(스티븐 스필버그)과 주연(톰 행크스)에 대한 믿음으로 최소한의 재미와 감동을 보장해줄 것 같은 영화이다. 그래서 인지 이 영화는 여러 장르가 조금씩 뒤섞여 있다. 정치, 공포, 코미디, 사회 비판, 드라마, 성장, 우정, 사랑, 상징, 감동까지. 


영화의 초중반까지, 이 영화는 이런 장르를 적절히 섞어 보여주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선사한다. 공항이란 이런 곳이구나, 공항이 마냥 재밌고 신기한 곳은 아닌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일터일 수도 있구나, 그리고 이곳은 바깥 세상과는 완연히 다른 또 다른 곳이구나.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 분)는 동유럽의 작은 국가 '크로코지아' 사람으로 뉴욕에 가기 위해 JFK 공항에 입국 심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미국으로 오던 도중 '크로코지아'가 반군에 의한 쿠데타로 인해 유령 국가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는 말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마냥 저냥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고국의 형편이 정리되어 다시금 국가로 인정을 받아 미국의 비자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는 67번 게이트를 집으로 삼고 그곳에서 살아간다.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 ⓒ드림웍스


그런데 항공 관리국 이사 프랭크 딕슨(스탠리 투치 분)은 이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동유럽 출신이라는 점과, 그가 이곳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그를 주시하며 계속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만간 국장 자리에 임명되게 되는데, 어떠한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 완벽주의자인 그의 눈에 빅터 나보스키는 불필요한 존재이다. 


한편 빅터 나보스키는 공항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전혀 모르던 영어를 독학하고, 카트를 이용한 돈벌이에 나서며, 공항 내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또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공항 내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인간애'가 있다. 그 인간애로 그는 규정에 묶여 비참한 상황에 빠진 한 러시아인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는 영웅이 되기에 이른다. 그는 한편 여러 사람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고 사랑의 메신저 역할도 하며 직접 어느 승무원과 로맨스를 펼치기도 한다. 


초중반과 정반대인 중반 이후의 삐걱거림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가 영웅이 된 후부터 말이다. 국적 불명의 거지와 다름 없던 그가 믿을 수 없는 기지를 발휘해 단번에 영웅이 되어 명사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빅터 나보스키는 러시아 인과 러시아 말로 대화를 했는데, 영화 초반에 당연히 공항에 있었을 러시아 통역관과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제일 좋은 초중반 부분의 공황 공포, 성장, 우정, 그리고 사랑은 아예 나타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억지로 꿰어 맞춘 스토리가 끝까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달려 가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영화는 중반이 넘어서부터 줄곧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억지로라도 표현하려고 발버둥 친다. 기본적으로 빅터 나보스키의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기다림, 그리고 빅터 나보스키의 또 다른 기다림, 빅터 나보스키의 로맨스 상대인 아멜리아 워렌(캐서린 제타 존스 분)의 불륜 상대에 대한 기다림, 빅터 나보스키의 친구들의 사연들, 공항 관리 이사 프랭크 딕슨의 국장 영전의 기다림까지.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 ⓒ드림웍스


결정적으로 빅터 나보스키가 뉴욕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장면에서 영화는 진부함의 끝(혹자는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는 장면이라 할지도 모르겠다.)을 보여준다. 빅터 나보스키의 아버지는 재즈의 광팬이었는데, 57명의 유명 재즈리스트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56명의 사인은 받았는데, 단 한 명의 사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빅터 나보스키는 그 한 장의 사인을 받기 위해 뉴욕까지 왔고, 전쟁이 끝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돌아가지 않고 무조건 뉴욕으로 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필 이 상황에서 사랑이 끼어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예 로맨스로 가던지, 아니면 감동 코드로 가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공항 관리자들과의 대결 쪽으로 가서 제대로 된 코미디를 보여주던지. 도대체 몇 개의 영화가 이 한 영화에 모여 있는지 모를 정도이다. 모든 걸 담으려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담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뽑을 만 할 정도의 영화라 하겠다. 차라리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 단, 이 재미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영화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하려 하지 말고 오로지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에 집중해야 한다. 소소한 웃음이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감동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와 같이 부분에 집중한다면 아주 소소한 감동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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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디센던트>


<디센던트> ⓒ폭스 서치라이트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증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12살 어느 날과 마주쳤다. 일기를 읽어보니 가관도 아니다. 글 재주는 둘째 치고, 증조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재밌다니? 어린 나에게 집안 어른의 장례는 재밌게 다가왔나 보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친척들이 모두 다 모이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호상(好喪)이셨기 때문에,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첫 번째 집안 어른 장례식이다. 


작년에는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몇 달 간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 하셨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친척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좋았고, 왠지 모르게 우리 가족들 사이가 전에 없이 밀착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하염없이 우시는 어머니와 어머니 형제 분들의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가족애까지 느끼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산(遺産) 아닌 유산이었다.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 <디센던트>는 ‘자손’ 또는 ‘유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맷 킹(조지 클루니 분)은 하와이에서 제일가는 땅을 소유한 가문의 상속자이다. 법률 변호사이기도 그는, 이 땅을 어떻게 하면 잘 팔았다는 말을 들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 땅을 파는 건 오로지 그의 결정에 의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그의 수많은 친척들과 함께 할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모터 보트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소에는 너무나 바빠서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그이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곁을 지켜야만 한다. 그에게는 망나니 같이 행동하는 두 딸이 있는데, 그의 잘못이 크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딸들과 함께 아내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영화는 이처럼 두 개의 큰 맥락으로 진행된다. 땅을 떠나보내면서 돈벼락을 맞고,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가족이 재결합하고.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50년 간 이어 내려온 땅을, 자신들이 그 땅을 위해서 한 일은 한 가지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이익 만을 위해 팔려고 하는 것이다. 그를 아는 다른 모든 주민들은 그 일을 반대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건, 리조트나 호텔 따위 뿐이다. 


또 하나, 아내를 떠나보내는 건 더더욱 어렵다. 특히 10년 만에 아이들과 붙어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두렵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첫째 딸에게서 황당무계하고 어이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너무나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그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미안했다.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는 그날로 아내가 바람 핀 상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에 딸들이 동행하면서, 비로소 그들은 가족이 된다. 아이러니컬한 상황이지만, 그의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 아닌 유산은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으면서 한편으로는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이러니컬한 상황은 ‘하와이’라는 배경 자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하와이를 생각할 때 ‘지상 낙원’이 그려질 것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접근해보면 보통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손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해체와 거기에서 파생된 불륜, 사소한 사고에 의한 죽음, 속물근성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 재개발에 관련된 반응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상 낙원’에서 벌어지는 매우 ‘지상’적인 느낌의 일들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사실 영화의 결말은 이미 나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아내의 죽음 덕분에 맷 킹의 가족은 재결합할 수 있었다. 맷 킹은 남은 두 딸에게 헌신적인 아빠가 될 것이었고, 망나니 같던 두 딸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다시 들어와 잘 자랄 것이었다. 


또한 그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인 땅은 결국 팔지 않을 것이었다.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인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맷 킹이, 조상들의 유산을 팔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가족들의 추억이 새겨져 있는 그곳을. 비록 수많은 친척들의 압박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의 삶은 아내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를 잃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감정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슬픔과 허무는 우리를 사정 없이 덮쳐올 것이다. 그런데 그때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으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 변화를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승화 시키는 것이 어떨까. 이 변화의 컨트롤을 위해 굳이 연습을 하거나 계획을 세워둘 필요는 없다. 잃게 되는 무언가가 남기고 갈 유산이 변화를 이끌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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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칠드런 오브 맨>


<칠드런 오브 맨> ⓒUPI


전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전쟁의 폐해이자 전쟁으로 인한 절망을 상징한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의 전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이와는 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희망'.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피 튀기는 전장의 모든 소음이 일순간 멈추는 기적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은 어떤 특정한 서사적 줄거리를 갖추지 않은 채 오직 마지막 남은 '희망'인 아이의 구제를 위한 방향으로 따라가기만 한다.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과 영화의 스토리와 심지어 카메라 워킹까지 그 아이에게 시선을 두는 것이다. 이는 감독의 철저한 연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알폰소 쿠아론'이다. <그래비티>로 2014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포함해 7관왕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그래비티>에서 보여준 연출은 상당 부분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암울한 상황 설정, 스토리보다 캐릭터에게 초점을 맞추는 설정, 비록 영화는 전체적으로 정적이지만 순간적으로 굉장한 동적 연출을 시행하는 설정, 그리고 '희망'에 모든 것을 거는 설정까지. 그래서 <칠드런 오브 맨>은 알폰소 쿠아론에게도 터닝포인트이자 하나의 희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전장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울음 소리. ⓒUPI



특히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던 장면이 있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들이 전투에 말려 들어간 장면이다. 이 씬에서 카메라는 주인공 테오를 따라가면서 '핸드헬드 촬영 기법'(카메라가 기계적 안전 장치에 부착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음)을 이용해 찍고 있다. 전투의 한 가운데에 있어 두렵지만 반드시 행해야 하는 바가 있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가 아이가 울자 모든 전투가 멈추고 소음이 멎으며 한 마음으로 아이의 안녕을 바랄 때는 카메라의 워킹이 안정을 찾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집약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던 장면이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영국 런던이다. 이 세계에는 '희망'이 없다. 인류는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아 있던 18세의 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은 인류를 재앙과 자멸의 시대로 인도했다.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은 폭력으로 국가를 질책하며, 도처에 불법 이민자들이 넘처난다. 사람들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 자살약을 섭취하곤 한다.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하는 재앙과 자멸의 시대. ⓒUPI



이런 와중에 테오(클라이브 오웬 분)는 관료주의자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옛 여인 줄리엔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줄리엔은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로, 런던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녀가 테오를 찾아온 이유는, 테오의 고위직 사촌의 힘을 이용해 한 소녀의 여행증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테오는 여행증을 구해주었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소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테오는 이 사실을 알고 '희망'의 안전한 운반을 위해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한다. 그녀가 흑인이든, 불법이민자든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항이었다. 과 자신과 줄리엔의 아이가 죽어갔던 전력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사회운동가 출신이기 때문일까. 둘 다 아닐 것이다. 영화는 테오의 선택이 모든 이들의 바람이자 선택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를 영화화한 존 힐코트 감독의 <더 로드>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야"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남을 것이라 생각되는) 이들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운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죽고 아들이 살아남아 '희망'의 운반은 성공한다. <칠드런 오브 맨>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상자를 선물하며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말한다. 이에 판도라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고 만다. 그곳에서 나온 수많은 끔찍한 재앙들. 그녀는 황급히 상자를 닫는다. 그 때문에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희망'이었다. 


혹자는 희망이 있어 절망 속에서도 살아간다고 하고, 혹자는 희망때문에 헛된 기대를 품고 결국 실망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전자에 해당된다. 후자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희망이 나중에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영화는 단지 그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이 지독하게 절망적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마지막 희망이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도 뚜렷하고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아이'.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잉태하다. ⓒUPI



"아이를 지켜. 무슨 일이 있던 남들이 뭐라 하던, 아이를 지켜"


한편, 이 영화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027년이라는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린 것도 그렇지만, 영화의 세계에서 보여지는 면면들은 지금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테러, 폭력, 불법, 전쟁, 기아, 바이러스 등. 그리고 무엇보다 출산율 저하는 3포 세대(취업, 결혼, 출산 포기)로 일컬어지는 현재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가다보면 2027년쯤 영화 속 세계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누구나 직감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아마 여러 정답 중 하나는, 공존공생의 길이 아닐까 싶다. 그 방법론까지 논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그 공존공생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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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세븐>


영화 <세븐> ⓒ뉴라인



할리우드 감독 데이빗 핀처와 배우 브래드 피트는 각별한 사이라고 할 만하다. 데이빗 핀처의 두 번째 작품인 <세븐>(1995년 작)을 함께 했고, 1999년에는 <파이트 클럽>을 함께 했다. 또한 2008년에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까지 함께 하였다. 


여기서 각별한 사이라고 칭한 이유는, 편수가 아닌 작품의 질에 있다. 세 편 모두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며 감독과 배우 모두에게 영광을 안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며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논쟁거리를 던졌으니,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그 중에서 이들이 처음 함께 한 작품인 <세븐>은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흔히들 ‘스릴러·범죄 영화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을 정도이다. 거기에 흥행까지 성공했으니, 여러 의미에서 성공작인 것이다. 데뷔작 <에일리언 3>(1992년 작)으로 기존 에일리언 시리즈와는 완연히 다른 종류의 액션 스릴러 공포물을 선사한 데이빗 핀처 감독은, 과연 <세븐>으로 어떤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을까? 자고로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보든 하나부터 열까지 그 의미를 살피며 자세히 보든, 재미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삭막하고 무관심이 판치는 동네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미리 밝혀두지만, 이 영화의 정확한 장소와 때는 알 수 없다. 다만 비가 자주 내리고 그래서 하늘이 항상 어두컴컴하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으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네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세븐>의 한 장면. ⓒ뉴라인



그곳에서 은퇴를 정확히 일주일 앞둔 고참 형사 서머셋(모건 프리먼 분)이 월요일 아침부터 일어난 살인사건 때문에 조사를 나왔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근무하다가 사건다운 사건을 맡기 위해 자원해서 온 밀스 형사(브래드 피트 분)가 있다. 이들은 매일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도중, 이 사건이 연쇄 살인 사건임을 간파한다. 정확히는 서머셋 형사가. 


하지만 서머셋 형사는 이 사건을 맡기 싫어한다. 그는 이 삭막하고 무관심이 판을 치는 동네에서 더 이상 형사질을 해먹기가 역겨웠던 것이다. 강간이 일어나면 아무도 도와주지도 관심도 갖지 않지만, 불이 났다고 하면 관심을 갖고 도망치려 하는 이 동네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사건의 본질을 간파해 밀스 형사에게 도움을 주는 정도로만으로 대체한다. 


7대 죄악을 근거로 한 살인


그런데 이 연쇄살인범의 살인방법과 이유가 그로 하여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연쇄살인범(케빈 스페이시 분)은 총 5명을 무참히 살해하거나 또는 죽기 직전의 상태로 만드는데, 그 이유가 7대 죄악에 있었다. 7대 죄악이라 하면, 단테의 <신곡>과 밀턴의 <실락원>과 초서의 <캔터베리 서사시> 등에 나오는 탐식(Gluttony), 탐욕(Greed), 나태(Sloth), 정욕(Lust), 교만(Pride), 시기(Envy), 분노(Wrath)이다. 살인범은 이 7대 죄악을 근거로 서머셋 형사의 은퇴 7일 전부터 하루에 한 명씩 살인을 행한 것이다. 



<세븐>의 한 장면. ⓒ뉴라인



그런 도중 살인범과 대치하는 서머셋과 밀스. 살인범은 교묘한 술수로 밀스 형사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살인범은 밀스를 살려준다. 그리고 며칠 뒤에 스스로 경찰서로 찾아와 자수하는 살인범. 그러며 그는 남는 2명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한다. 단, 서머셋과 밀스만을 대동한 채 말이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과연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곳에서 벌어질 일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일로, 이 영화에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에 버금가는 최고의 반전 영화 타이틀을 달아준다. (물론 이건 순전히 필자의 기준이다.) 결국은 7대 죄악에 정확히 맞춘 7명의 ‘죄인’을 살인범이 살해했다는 것만 알아두시길.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스토리와 캐릭터에만 집중해 보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다. 분위기와 사건 전개와 캐릭터가 훌륭히 조합되어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반전을 맛본다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감독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건 주로 배우들의 생각과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축소판과 같은 이 동네이다. 


"죄악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릴 찾고 있어, 본보기가 필요하지"


서머셋은 연쇄살인범이 그저 평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무관심이 미덕이 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고 역설한다. 반면 밀스는 연쇄살인범을 미치광이 내지 악마로 취급하면서 그를 이기고 그를 잡고 싶어 안달이다. 그리고 그는 정신적 미성숙이 문제가 아니라 미치광이 살인마가 문제라고 말한다. 


이건 얼핏 이 영화의 사건 줄기인 연쇄살인과는 동떨어진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생각과 대화이다. 그건 바로 연쇄살인범의 살해 동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의 말은 서머셋의 생각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어 보인다. 


“죄가 없다고? 정말 웃기는 말이군... 그런 사람들을 죄 없는 무고한 인간이라 할 수 있나? 엄청난 죄악이 온 거리마다 가정마다 뿌리를 내리고 있어. 흔하다는 이유로 그걸 눈감아 주고 있고 일상이 되어 버렸지. 죄악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릴 찾고 있어. 더 이상은 안 돼. 본보기가 필요하지.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한 일을 기억하며 연구하고 교훈으로 삼게 될 거야, 영원히.”



<세븐>의 한 장면. ⓒ뉴라인



단지 서머셋은 사랑과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고, 살인범은 아예 삭제해버림으로써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밀스의 생각에 있다. 그는 무관심이 편하다고 말한다. 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사실 그에게 있어 ‘왜’는 필요 없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요즘 들어 연배가 있으신 어른들께 그런 말을 많이 듣는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에 관심도 없고 용기도 없어. 그냥 자기 밥그릇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젊었을 때는 그러지 않았었는데...” 이를 세대 전체로 귀결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대체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는 다는 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의 또 다른 면이 보인다. 연쇄살인범이 행하려 했던 7대 죄악에 근거한 살인을 두 형사가 파헤쳤다면, 우리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면을 파헤칠 필요가 있다. 7대 죄악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의미의 죄악이라고 한다면, ‘무관심’은 새로운 시대의 죄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서머셋 형사의 말은 둘째 치고, 연쇄살인범의 말에 자꾸 눈이 가는 이유는 뭘까? 그의 방법론에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의 문제의식에는 반박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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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장이머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


영화 <집으로 가는 길> ⓒsony classics



대학생 때 ‘중국 현대 문학과 영화’라는 수업을 들었다. 기억나는 몇몇 영화들. <붉은 수수밭>, <인생>, <홍등>... 기억나는 영화들이 하나같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작품이다. 이들 영화는 감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작품임과 동시에, 원작자들의 활동에서도 정점을 찍게 해준 작품들이다. 각각 현대 중국 문학계의 거목인 모옌, 위화, 수퉁의 작품들이다.


장이머우는 위의 작품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영화들은 감상주의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얻기도 했다. 훌륭한 문학 작품을 스크린으로 훌륭하게 옮겨놓았지만, 자신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어 감상주의가 섬세한 표현과 터치로 바뀌어갔다.


시점은 현재인데, 흑백인 이유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그 정점에 이른 작품들이 1999년에 나온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화려함에만 천착해 예전의 감상주의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장쯔이의 주연 데뷔작으로 훗날 더욱 더 유명해졌다. 또한 장이머우의 작품 세계에서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어 중요하게 여겨진다.


영화는 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루오 유셩(순홍레이 분)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시골로 돌아오는 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시점은 현재인데, 특이하게도 흑백이다. 시골의 겨울이 배경이기 때문에, 흑백까지 더하니 1950~60년대 같이 보인다. 하지만 벽에 <타이타닉>의 포스터가 떡 하니 붙여져 있는 걸 보니 최소한 1997년 이후가 분명하다. 이에는 분명 어떤 의도 및 장치가 숨겨져 있다.


유셩의 어머니 쟈오 디는 한사코 남편의 장례를 전통적으로 치르려고 한다.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들고 걸어서 오기 위해서였다. 그 길은 그들 부부에게 아주 특별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마을에는 젊은 사람이 없고 옆 마을에서 돈을 주고 사람을 사야 했다. 처음에 유셩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길에 얽힌 옛 이야기를 알게 된 후 많은 돈을 지불하고 전통 장례를 치르게 한다. 40년 전의 옛 이야기는 현재의 흑백을 벗고 화사한 색깔의 옷을 입는다.


통속적이지만 아름다운, 담백한 이들의 사랑이야기


때는 1958년, 오지 마을에 사건 아닌 사건이 터진다. 도시에서 선생님 한 분이 오셔서 마을 유일의 선생님으로 부임한 것이다. 창위라는 이름의 젊은 선생님으로, 마을로 오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싸며 관심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쟈오 디의 관심은 특별했다. 이성적인 끌림에 의한 관심이랄까.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하고,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먹이려고 노력하고, 일부러 그가 참여해서 만들고 있는 학교 주변으로 물을 길러가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하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같이 가는 길에서 기다렸다가 그를 보려고 한다. 노력과 기다림과 설렘과 기쁨의 연속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한 장면. ⓒsony classics



하지만 어김없이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급한 일이 생겨서 창위가 도시로 잠시 가 있어야만 했다. 창위는 쟈오 디에게 예쁜 머리핀을 선물하며, 겨울 방학 전에 온다고 말한다. 쟈오 디는 그를 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같이 도시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서 기다린다. 그렇지만 창위는 한겨울이 도래했는데도 오지 않는다. 쟈오 디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눈보라가 치는 한 겨울에 몸소 만두를 들고 도시로 떠난다. 연약한 몸으로 가당치도 않은 발걸음은 얼마 못가 멈추고 만다.


다행히도 지나가는 사람 덕분에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쟈오 디. 하지만 창위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녀는 또 다시 그를 찾으러 갈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창위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쟈오 디의 소식을 듣고, 쟈오 디만을 위해서, 몰래 도망쳐 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넘어져가며, 그러나 깃털같이 가벼운 발걸음을 학교로 옮긴다.


창위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쟈오 디는 마냥 기다렸다. 이후 2년여 동안 창위는 쟈오 디의 얼굴을 잠깐 보러 마을로 오고 도시로 가길 반복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한 뒤 이들은 절대 헤어지지 않았다. 통속적이지만 아름다운, 감상주의에 빠질 법하지만 담백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다시 현실의 칙칙한 흑백으로 돌아온 영화는 쟈오 디, 그리고 아들 유셩의 바람대로 전통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과거 창위의 제자였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앞 다투어 와주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들 중 단 한 사람도 돈을 받지 않고 장례 집행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창위의 제자가 아닌 일용 노무자까지도 말이다. 전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한 장면. ⓒsony classics



영화의 다양한 상징성들


극 중의 창위는 과거 만인의 존경을 받던 ‘중국’이라는 나라 또는 중국대륙을 상징한다. 중국은 1800년대 들어 외세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예전의 위상을 뒤찾지 못하였다가 2000년대 들어서 다시금 세계 강대국의 위상을 찾게 된다. 감독은 이를 만인의 존경을 받던 창위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감독은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1978년 중국은 전격적으로 개혁과 개방의 기치를 들고 자본주의를 거침없이 받아들인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완벽한 시장경제체제를 이룩하였다. 중국 경제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세계적인 부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역효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빈부격차 문제가 가장 심할 것이다. 그리고 빈부격차의 핵심에는 도시와 농촌이 있다.


주지했듯이 이 영화는 현재를 흑백으로, 과거를 화려한 색깔로 처리한다. 이는 자본주의 현재의 농촌 마을을 흑백으로 처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역효과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40년 전의 같은 농촌 마을을 화려한 색깔로 처리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들어오기 전의 마을 공동체를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온 마을 남자들이 같이 학교를 만들고, 온 마을 여자들이 음식을 만들어 남자들을 챙기는 모습. 누구 한 명이 다치거나 아프면 마을 사람들이 와 안부를 묻고 챙겨주는 모습. 존경하는 선생님을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점심을 챙겨주는 모습. 그리고 현재로 넘어와 존경하는 선생님의 장례를 위해 아무도 돈을 받지 않고 손수 운구 행렬에 참여하는 모습까지. 감독은 중국이 진정한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아닌 과거의 방식이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58년 당시 중국은 노동력 산업의 추진을 위한 경제성장운동인 대약진운동이 한창이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에게 관심을 보이고 존경하는 모습을 비춤으로써, 교육의 중요성을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선생님이 와서 가르치는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손수 제작한 책으로, 그 안에는 중국 전통 교육의 핵심이 들어 있다.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 '감성'


하지만 이 영화의 가치가 이런 삭막한 ‘해석’에 기인한 것 만이라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가치는 화면과 연기에서 보이는 ‘감성’에 있다. 산골 마을의 대지(大地)는 광활함보다는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배우들의 연기는 세련되고 정형화되어 있다기보다는 어딘지 어색하지만 사람냄새를 느끼게 한다. 또한 그런 어색함은 연기라고 생각했을 때 느껴지는 것이지, 사실 연기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연기이다. 스토리는 사실 굉장히 진부하지만, 오히려 화면과 연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고도의 연출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옛날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다. 자칫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로 도피하는 몰지각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설사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안에서는 곪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현실이 힘듦에도 막을 치고 힘들지 않다고 강제하고 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에서 훌륭히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꼭 유형의 무엇인 것만은 아니다. 그때 그 시절의 풋풋함,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사람냄새 나는 순박함 등의 무형 감성도 포함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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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일본 영화 <13인의 자객>


일본 하드코어 액션 무비 <13인의 자객> ⓒ 미디어소프트(주)/알토미디어(주)


1950년대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인 '구로사와 아키라'. 그의 중기 1954년작 <7인의 사무라이>. 이 영화는 산적들의 행패에 맞서는 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를 그렸다.

 

2007년 개봉해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수많은 패러디까지 양산했던 영화 <300>.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에 저항하는 스파르타의 300명 소수 정예의 싸움을 스타일리시하게 그려냈다.

 

다수에 대항하는 소수의 싸움은 숭고함과 비장미를 선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별것 아닌 장면에서도 숭고함에 감동을 받으며, 극도의 비장미를 위해 실제보다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자기희생으로 최후를 맞이한다거나 잔인해진다거나 하는 것이다. 위의 두 영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이런 소재의 영화에서는 소수가 다수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가 확실하고 또 이유가 합당하다. 아니, 그래야 한다. 다수는 다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이유, 즉 평화의 논리가 있는 반면, 소수는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논리가 합당하지 않는 다면 이 소수 대 다수의 싸움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질적으로 다른 '하드코어 액션' 무비

 

2010년에 개봉한 일본 사무라이 액션 영화 <13인의 자객>의 경우, 위의 논리가 확립돼 상당히 잘 표현돼 있다. 일단 이 영화가 외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하드코어 액션'이다. 여타 B급 사무라이 영화에서 나오는 저급의 하드코어, 즉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가 잘리고 피가 난무하는 액션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하드코어의 정교함과 사실성의 질이 다르다. 또한 난무보다 절제를 선택해 오히려 더 섬뜩하다.

 

이는 영화 <300>에서 보여주는, 소수의 비장미를 표현하는 하드코어 액션의 성질과는 다르다. 애초에 그 비장미의 성질이 다른 것이다. <300>100만 대군을 고작 300명이서 무슨 수를 쓰던 막아야 한다는 설정이라면 <13인의 자객>은 겉으로는 '대의를 위해서'이지만 속으로는 사무라이로서 존재가치가 말살된 태평성대에 자신을 찾고자 마지막 길을 간다는 설정이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파트에서는 13인의 사무라이가 모이게 되는 배경을 설명한다. 때는 막부 말기인 1800년대 후반. 태평성대의 시대에 쇼군의 동생이자 포악한 영주 나리츠구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무료함을 달랜다. 이를 보다 못한 쇼군의 최측근 도이는 사무라이의 절대 임무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를 어기고, "대의를 위해서" 나리츠구 척결을 결심하고 신자에몬에게 부탁을 한다.

 

이에 신자에몬은 태평성대에 사무라이로서 쓰임을 받음에 손이 떨릴 정도의 쾌감을 느끼고 일생일대의 도박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 도박에 동참하는 12인의 자객. 그렇게 13인의 자객이 나리츠구 암살 작전에 돌입한다. 만약 이 파트에서 13인 자객을 일일이 비춰주며 도박 출정 동기에 대해 설명했으면, 상당히 모양새가 웃길 뻔했다. 마치 만화 <외인구단>이나 영화 <소림축구>처럼 말이다. 그 작품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에는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대신 주인공격인 신자에몬과 그의 조카 신로쿠로의 동기를 대표로 보여주고 있다. 신자에몬이나 신로쿠로나 검술실력은 매우 출중하다. 하지만 때는 태평성대, 그 검술실력을 내보일 때가 없다. 그러던 중 "대의를 위한" 일에 가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손이 떨릴 정도의 쾌감. 오랜만에 맛보는 살과 뼈의 감촉. 그들은 사무라이로서 죽을 것을 각오한다.


<13인의 자객>의 한 장면. 영화는 하드코어 액션의 진수를 보여준다. ⓒ 미디어소프트(주)/알토미디어(주)


영화는 두 번째 파트로 넘어간다. 13인의 자객은 치밀한 전략과 토론, 정확한 예측으로 나리츠구의 200명 대군의 손발을 묶고 선제 타격을 가하는 데 성공한다. 그 다음에는 13인 개개인의 능력에 맡겨야 한다. 최소 115의 싸움, 실력이 아무리 좋다지만 체력이 관건. 하나 둘 죽어가는 13인의 자객. 마지막에 남는 나리츠구와 그의 심복 한베이, 그리고 신자에몬과 그의 조카 신로쿠로. 그들의 마지막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나리츠구의 심복 한베이는 신자에몬과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하지만 한베이는 '무사도'의 절대 원칙인 "주군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를 맹목적으로 지키는 이다. 그의 삶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도 이 절대 원칙에 위에 선 것은 없다. 그의 군대는 대군이지만, 그의 생각은 소수에 속한다.

 

반면 신자에몬은 "대의를 위해서" , 일반 백성 및 보편적 이성에 의해 움직인다. 그에게 있어서 절대 원칙이란 없다. 그가 이끄는 13인의 자객이 훈련을 할 때, "무사도를 버려라! 칼이 없으면 막대기로, 막대기가 없으면 돌로, 돌이 없으면 손발을 써서 상대를 죽여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의 군대는 소수이지만, 그의 생각은 다수를 대변한다.

 

하지만 그도 마지막에는 자결을 택하며, 주군에 대한 절대 원칙을 고수한다. 주군에 반기를 든 그가 없어짐에 따라, 주군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존재가 없어진 것이다. 이 또한 어찌 보면 주군뿐 아니라, 주군을 따르는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보는 즐거움과 생각하는 즐거움 주는 무비

 

<13인의 자객>의 한 장면. 그들은 왜 그 같은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 미디어소프트(주)/알토미디어(주)


이처럼 이 영화는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스토리의 안정감을 주고 강렬한 액션으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소수 대 다수의 싸움이지만, 동시에 소수가 다수로, 다수가 소수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 그 안에는 보편과 특수의 관계도 보인다. 이를 영화 내적으로 말하자면, 무사도에 대한 해석이 될 것이다.

 

더 거시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평화시대에 대한 고찰이다. 폭군 나리츠구나 13인의 자객들은 모두 평화시대의 산물이다. "누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며 극도의 '심심함(?)'을 표출하는 나리츠구. 그는 마지막에 죽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날이 오늘이었다."라는 말까지 남긴다.

 

신자에몬의 경우 주지했듯이 손이 떨릴 정도의 쾌감을 느꼈다. 나로쿠로는 매일같이 술과 도박 여자에 빠져 살다가 어느 날 5~6명의 건달들을 해치운 후 '시시함'을 느꼈다. 그들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은 오직 검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태평성대에 살고 있을까, 난세에 살고 있을까. 태평성대에 살고 있다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야 할지도 모른다. 반면 난세에 살고 있다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 '반란''혁명'이 되고, '반동분자''영웅'이 되기 일쑤다.

 

지금 시대는 한 번 영웅은 영원히 영웅이고, 한 번 반동분자면 영원한 반동분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태평성대의 시대라는 것인데, 이리도 암울한 태평성대가 어디 있을까? 새삼 13인의 자객들이 부러워진다. 자신들이 가야할 길, 있어야 할 곳,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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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이드웨이>

 

영화 <사이드웨이> ⓒ폭스서치라이트


살다보면 숱한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절망하고 아파하곤 한다. 그럴 때면 주위에서 여행을 가보라고 한다. 쳇바퀴 돌 듯 계속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일종의 일탈을 선물해보라는 조언일 것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일탈 뒤에 밀려올 또 다시 시작되는 일상에의 압박, 여행이 아니라 도망을 치고 있는 것 같다는 죄책감 등.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를 위로하기 위한 여행, 내가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한 여행 등. 이런 여행이라면 슬쩍 끼어서 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 <사이드웨이>의 주인공 마일즈(폴 지아마티 분)20년 친구인 잭(토마스 헤이든 처치)의 총각파티를 이유로 일주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사실 그도 많이 지쳐있던 상태. 친구를 빌미로 삼아, 친구를 여행의 주인공이라고 치켜세우며 자신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달콤 쌉싸름한 와인과 함께 하는 여행

 

특별할 것 없는 외모, 보통보다 작은 것 같은 키,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하는 머리, 무료하기 짝이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영어교사를 가지고 있는 남자 마일즈이다. 그에겐 누구보다 자신 있는 취미인 와인과 누구한테고 자랑하고 싶지만 이뤄지지 않는 특기인 소설이 있다. 왠지 취미와 특기가 바뀐 것 같다. 그의 인생도 이번 여행에서 바뀔 수 있을까? 친구인 잭, 그리고 와인과 함께 하는 이 여행에서.

 

반면 잭은 내주 토요일에 결혼식을 앞두고 일요일에 마일즈와 함께 와인여행을 표방한 총각파티 여행을 떠난다. 그에게 이번 여행은 총각의 마지막을 불사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서 총각파티라하면 저질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 <행오버> 시리즈를 생각하면 되겠다. 한물 간 배우이자 지금은 광고로 먹고 사는 잭. 그는 스스로가 말하길 본능 없으면 시체인 사람이다.


영화 <사이드웨이>. 마일즈와 잭, 잭의 와인여행을 표방한 총각파티 여행을 떠나다. ⓒ폭스서치라이트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들은 각자 여자를 만나게 된다. 마일즈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웨이트리스 마야(버지니아 매드센 분). 잭은 와인 시음실에서 일하는 자유분방한 스테파니(산드라 오 분). 이들은 와인과 함께 둘이 또는 넷이 어울려 좋은 시간을 보낸다. 잭과 스테파니가 몸으로 대화하는 사이, 마일즈는 마야와 와인으로 대화한다. 이들의 대화가 일품이다. 마일즈와 마야는 각자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자칫 진부할지 모르는 이들의 대화는 이 영화의 풍미를 한껏 높여주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와인도 마시고 싶어지게 만들고.

 

마일즈 : (피노는) 재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껍질은 얇지만 성장이 빠르고, 아무 환경에서나 못 자라서 끊임없이 보살펴줘야 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만 잘 자라고, 인내심 없인 재배가 불가능한 품종이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줘야만 포도알이 굵어지고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줘요.”

 

마야 : 전 와인의 삶을 찬미해요. 한 생명체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모습. 비가 내리고 따사한 햇살이 내려쬐고. 와인이 만들어지고 숙성되는 오랜 세월동안 죽어간 사람들. 또 와인은 변화무쌍하죠. 따는 시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잖아요. 생명력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죠. 제 맛을 한껏 뽐내곤 삶을 마감하죠.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에.”

 

별다를 것 없는 우리네 인생

 

누구나 특별한 인생을 꿈꾼다. 하지만 특별할 것 같은 인생의 내면을 들여다봐도 보통의 인생의 내면을 들여다봐도, 비슷비슷하다. 딱히 별다를 것 없는 인생들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주는 특별함에 매료되어 떠나지만 별다를 것이 없다. 어딜 가도 사는 게 비슷비슷하니까.

 

마일즈와 잭의 여행은 어땠을까? 그들은 여행에서 특별한 인연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문뜩 일상이 생각난다. 일상이 놔주지 않는다. 마일즈에게는 이혼한 전 부인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신의 소설, 잭에게는 결혼할 아내에게서 오는 연락이 그렇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잭에게 결혼할 아내는 일상과 현실 그 자체이다. 반면 마일즈에게 이혼한 전 부인이 일상이 될 수 있는가? 그에게 전 부인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일상이고, 현실은 보잘 것 없는 영어교사, 지향하는 미래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영화 <사이드웨이>. 마일즈와 잭, 각각 특별한 인연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폭스서치라이트


영화 제목인 사이드웨이는 샛길을 뜻한다. 살아가다보면 의도치 않게 샛길로 빠지기 일쑤인데, 마일즈와 잭도 그렇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별다를 것 없는 우리네 인생. 잘 살든 못 살든 상관없이 그들 나름의 추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샛길로 빠지기 마련이다.

 

마일즈와 잭은 이미 샛길로 빠져본 경험이 있고,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수시로 샛길로 빠진다. 마일즈는 이혼을 했지만 전 부인을 잊지 못한다. 영어교사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소설가로서의 길을 가려하지만 여의치 않다. 전 부인을 애써 잊고 새로운 여인을 맞이하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잭은 한 때 잘 나가는 배우였지만, 지금은 별 볼일 없다. 결혼을 코앞에 두었지만, 다른 여자를 탐하며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하지만 그는 안다. 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마야 또한 이혼을 했고, 스테파니는 아이만 있고 남편은 없다.

 

여행의 전(), (), ()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춰볼 때, 여행은 가기 전의 설렘이 제일이고 현지에서의 여행은 제이이고 다녀온 뒤의 느낌이 제삼이다. 설렘이 점차 허무함으로 변해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이 영화에서는 여행 도중 느끼는 감정이 최악이다. 잭은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을 숨겼다가 들켜 봉변을 당하고, 마일즈는 같이 도매급으로 팔린다. 아울러 그의 소설 또한 사실상 폐기처분된다. 이때 그가 느끼는 감정은 인생은 살아가다 느낄 누군가의 감정과 똑같다.

 

세상은 내 글에 관심이 없다고. 반평생 살고도 내세울 게 없어, 아무것도. 난 창문에 묻은 지문 신세야. 하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갈 똥 묻은 휴지 신세라고.”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분명 설렘으로 가득 차 들떠 있었다. 와인 마시고 골프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총각시절에 작별을 고하는 여행에 대한 기대. 이는 비단 여행뿐이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대한 기대와 동일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영화가 너무 사실적이라서, 연기가 너무 실제와 같아서, 스토리가 너무 나의 얘기와 같아서 꼭 똑같이 되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영화는 일상의 치부를 다루며 모든 인생이 다 비슷비슷하다고 말하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희망이라는 동아줄을 내려준다. 그러며 알게 모르게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잭은 결혼에 성공했고 마일즈는 전 부인과의 대면에서 심정의 변화를 느껴 그동안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1961년산 샤토 슈바 블랑을 하찮은 햄버거와 함께 마신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남겨진 메시지. 마야의 메시지이다. 마일즈에게는 무엇보다 절실한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마일즈, 저 마야예요. 일찍 전화하고 싶었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또 다른 이유는 당신 소설을 다 읽느냐 구요. 단어 선택이 탁월하더군요. 출판 안 되면 어때요? 삶의 회한을 잘 그려냈어요. 이쪽으로 올거면 미리 연락 줘요. 포기하지 말고 글 계속 써요. 잘 지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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