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상식 밖의 무리를 이끄는 부자(父子)의 여러모로 필수적인 듯보인다. 자신처럼 되었으면 아들, 그리고 아들은 그 아들이 자신처럼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린나래미디어(주)



여기 상식 밖의 무리가 있다. 그들은 외곽에서 캠핑카에 생활하며 국가와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채 그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다. 그 한 가운데에는 콜비(브렌단 글리슨 분)가 있다. 모든 걸 부정한 채 오로지 아버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마치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행동한다. 모두들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거니와 그곳이 아닌 곳에선 살 수 없다. 


콜비가 이 무리의 정신적 지주라면, 그의 아들 채드(마이클 패스벤더 분)는 이 무리의 실질적 리더다. 비록 그 또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그래서 글조차 모르지만, 예의 타고난 카리스마와 대범함은 이 무리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 도움이란 다름 아닌 절도 행각이다. 콜비에 의해서 '우리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기 위한 대항 행위'라고 명명된 그 범죄는, 실상 이 무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적 정신적 버팀목이다.


채드는 이제 그 짓거리를 그만두고 싶다. 콜비가 차기 리더로 키우고 싶어하는 그의 손자이자 채드의 아들 타이슨의 미래를 위해서이다. 비록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타이슨이지만, 콜비의 '교육'으로 채드의 뒤를 잇기에 충분한 몸과 마음을 지니고 있는 중이다. 즉, 미래의 범죄자 말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채드는, 비록 경찰에게 잡혀가지 않지만 범죄를 계속 저지른다. 배운 게 그것 뿐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사면초가. 타이슨만은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범죄밖에 없기에 타이슨이 배우는 건 자연스레 범죄일 수밖에 없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비극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그가 잡혀들어가는 수밖에 없지만, 그는 범죄의 프로이기 때문에 절대 잡혀들어가지 않는다. 그것 또한 그가 뼛속 깊이 배운 것. 그는 '잘못된' 교육과 본능을 이겨낼 수 있을까? 


몽상가적이고 감성적인 고민


이 영화를 보며 평소 하기 힘든 고민들을 해보았다. 굉장히 비현실적인 것들 같아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현실적이다.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은 아버지와 아들, 시스템, 교육, 권리, 가족, 부정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우리가 저 멀리 놓아두곤 하는 몽상가적이고 감성적인 고민을 여기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현실이 끼어들 자리는 일말도 없어 보이지만, 현실에 찌들수록 생각하게 되는 것들인 걸 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 같기도 하다. 


우린 누구나 꿈꾸지 않는가? 히피, 집시의 생활을, 영원히 자유로울 것 같은 그들의 환상적인 일상을,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세계를 돌아다니는 노마드의 기적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점점 속박되어 지는 자유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런 삶은 정녕 꿈이다. 


한편, 영화는 할리우드의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노튼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철저함을 자랑하는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으로도 충분한 믿음을 준다. 연기를 빼면 왠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그의 모습이, 범죄 행각을 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드를 누구보다 잘 표현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의 조직 보스와 같은 포스와 표정과 리더로서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할 줄 아는 브렌단 글리슨의 출현은 영화의 중심을 잡아줌은 물론 영화로 자연스레 들어가게 만든다. 패스벤더가 정말 열심히 연기한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 글리슨은 거기에 원래부터 있었던 듯하다. 


줄기 하나, 가족의 독립


가족에서 또 다른 가족이 탄생해 독립하는 건 숙명이다. 이 영화는 그 숙명을 따르려는 자와 거스르려는 자의 대결이기도 하다. ⓒ그린나래미디어(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묘하디 묘하다. 아들이 가장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대상이 다름 아닌 아버지이지만, 아들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새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꺼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들이라면, 아버지라면 최소한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모성애 못지 않게 부성애 또한 인류의 가장 숭고한 사랑의 종류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 이 관계가 지니는 파워는 절대적이다. 세상을 등진 채 한 무리를 이끌며 아버지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따르고 콜비, 자연스레 무리에게 강요하고 무엇보다 아들 채드와 손자 타이슨에게 강요한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 아이러니는 아니다. 여기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채드는 자신의 삶이 제대로이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타이슨은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이 아닌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하고 고로 아버지를 부정하고 증오하는 아이러니. 정녕 위대하다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독립영화 <똥파리>가 겹쳐진다. 끝없이 이어질 고리를 끊기 위해, <똥파리>는 영화적 차원에서 희생을 보여주었고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은 영화 속에서 희생을 택했다. 여기서 줄기 하나는 '가족'으로 빠진다. 


무리에 속한다는 건 독립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가족을 이루어 독립해 살아야 한다. 콜비가 세상을 등진 채 '독립'해 무리를 이끌며 살아가듯이, 채드도 무리를 등지고 '독립'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엔 갈등과 문제가 뒤따른다. 채드는 물론 타이슨도 마찬가지다. 채드는 이 모든 고리를 끊고 타이슨에게 가족을, 독립을, 삶을 선사한다. 


줄기 둘, 시스템과 교육


현 시대 문명을 지탱하는 시스템과 교육이 반드시 올바른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콜비가 행하는 반시스템과 반교육적 방법도 결코 옳지 않다.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의 줄기는 시스템과 교육으로도 이어진다. 시스템의 중요성을 말하진 않지만,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 무리는 거대 시스템을 부정하고 반하면서도 '잘' 살아간다. 채드는 수없이 많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절대 잡히지 않는 것이다. 시스템이 가진 반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해 머릿속에 인지시키고 시스템이 가진 맹점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반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육체적 훈련이 완벽한 것이다. 


그렇지만 교육은 그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가 보다. 콜비가 아버지의 말씀이라며 무리를 이끄는 절대적 규범을 세우고, 되도 않는 기독교적 지식들을 버무려 사이비종교처럼 만들어 세뇌시키지만, 그건 절대로 교육이 될 수 없다. 거기엔 기본도 없고 도리도 없고 이성도 없고 기준도 없다. 채드가 그걸 깨달은 건 기적에 가깝다. 


영화 <캡틴 판타스틱>에서 가족 무리를 이끄는 아버지이자 '캡틴' 벤은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혹독한 교육을 실시한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앞서는 듯 보인다. 물론 반시스템적이지만 말이다. 우린 그 방법론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벤은 결국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그의 교육은 방과 후에. 


반면 콜비 무리에겐 교육 이전에 철학 비스무리한 것도 없다. 우린 거기에서 그 어떤 긍정적인 면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을 반시스템, 반교육적 생각의 틀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기까지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반시스템, 반교육을 외치면 외칠수록 말이다. 


이들 무리는, 무리의 수장 콜비는 자신들을 침범하는 것들이 다름 아닌 이 국가, 이 사회, 이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고 채드는 그들(자신들)을 침범하는 것들이 다름 아닌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고? 남에게 강요하고 피해를 주는 행위가 그 기준이다. 그 행위의 결과는 다른 어디도 아닌 자신들에게 돌아온다. 결국 내가 나를 침범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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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에브리바디 올라잇>


이 영화는 '복잡미묘'하지만, 결코 '섹시 코믹 스캔들'은 아니다. ⓒ(주)화천공사



의사 닉(아네트 버닝 분)과 조경사 줄스(줄리안 무어 분)는 각각 낳은 아이들 조니(미아 바쉬이코브스카 분), 레이저(조쉬 허처슨 분)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렇다, 그들은 레즈비언 부부이다. 큰딸 조니는 일찍 철이 든 케이스로 엄마들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녀는 똑똑하다. 반면 작은 아들 레이저는 사춘기의 한복판에 있어서인지 몰라도 의문과 함께 위화감을 지니고 있다. 그는 운동을 좋아한다. 


조니와 레이저는 아빠를 찾고자 한다. 그들은 누군가가 정자은행에 제공한 정자로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닉과 줄스는 한 명의 정자를 받아 임신해 그들을 낳았다. 생물학적 아빠 폴(마크 러팔로 분)을 찾은 그들, 조니는 좋은 느낌을 받은 반면 레이저는 그리 좋은 느낌을 받진 못했다. 이후 조니와 레이저는 번갈아 가면서 혹은 함께 폴과 시간을 보낸다. 서로가 끌리는 걸 그들이 막을 도리는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닉과 줄스의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다. 함께 식사자리도 마련하는 등 노력하지만, 가장의 역할을 떠맡은 닉은 더욱 노심초사할 뿐이다. 그 와중에 줄스는 오랜만에 조경사 일이 들어오는데, 다름 아닌 폴의 의뢰였다. 급기야 줄스는 자신의 성정체성까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데... 


'평범한' 동성결혼 가족


동성결혼 가족이라는, 한국에는 법적으로 없는 가족 형태. 이 영화는 극히 평범하게 그려낸다. ⓒ(주)화천공사



수많은 영화를 통해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 형태를 많이 봐왔는데, 영화 <에브리바디 올라잇>이 보여준 가족 형태는 또 새롭다. 특히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선 어설픈 상상은 가능하지만 실제에 기반한 현실적인 상상은 불가능하다. 그러하기에 허구에 기반한 영화에서도 비춰지기 힘들다. 


반면 이 영화에서 동성결혼에 의한 가족 구성은 아주 평범하게 보인다. 전혀 위화감이 없고 편안하다. 작은 아들 레이저가 지니는 의문과 위화감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감성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아마 거기엔 레즈비언 부부를 연기한 두 베테랑 줄리안 무어와 아네트 버닝의 연기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도 조금의 제약은 따른다.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보호막은 예전에 쳤을 테지만, 아이들 특히 레이저에겐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하다. 남들과 다른 가족 형태는 물론 남들과 다른 섹스 라이프까지도.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 할 정도로 모든 사생활을 남김없이 말해주어야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이 영화의 이 가족을 보며 하등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단, 생물학적 아빠 폴을 만나기 전까지. 두 아이들의 아빠 폴이 등장하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이를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즉 지극히 생물학적인 시선으로만 보자면 일부이처가 아닌가? 여기서 이처가 부부인 건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이처 중 하나가 일부와 다시 그렇고 그런 관계를 형성시킨다면... 모든 게 이상해지는 것이다. 


특수한 경우를 헤쳐나온 이들의 삐걱거림


특수한 경우를 수도 없이, 즉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에게도 삐걱거림이 존재한다. ⓒ(주)화천공사



사실 이 영화는 초반 20분도 채 되지 않아 1막이 끝난 느낌을 들게 한다. 레즈비언 부부의 두 아이들이 생물학적 아빠를 만나 어색한 인사와 대화를 마무리하고 헤어진다. 더 이상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2막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생물학적 아빠를 계속 만나는 것이다. 그런 한편 닉과 줄스는 뭔가 삐걱대는 것 같다. 


여기서 주목할 건 아이들이 생물학적 아빠를 계속 만나는 게 아니라 닉과 줄스의 삐걱거림이다.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레즈비언 부부라는 특수한 경우를 함께 헤쳐나온 이들이라면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리고 둘 다 여자이니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부부보다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들에게 삐걱거림이라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똑같은 삐걱거림이 존재한다. 18년 동안 함께 한 닉과 줄스에게도 당연히 각자의 역할이 생겼을 것이고 완연히 다른 성격이 존재할 것이다. 그에 따른 갈등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 모습에서 우린 역으로 올라가 레즈비언 부부의 평범함과 비(非)이질성을 감지한다. 그들은 레즈비언 이전에 부부다. 


이 영화에선 닉이 더 돈을 잘 벌고 더 괄괄하며 더 가부장적이다. 반면 줄스는 일을 거의 안 하는 반면 아이들과 집안을 책임지다시피 한다. 그들이 합의 하에 정한 역할일 테지만, 여느 부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2막에서 아이들이 폴과 가까워지는 모습이 아닌, 눈여겨 보아야 할 닉과 줄스의 삐걱거림에는 이런 연유가 있다.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듯, 이 가족


다른 누구도 아닌 이들의 삐걱거림은, 이들이 지극히 평범한 존재들이라는 반증이다. ⓒ(주)화천공사



영화의 3막 시작은 폴의 의뢰에 의해 줄스가 오랜만에 조경 디자인을 하게 되는 장면이다. 이내 그들은 어이 없게 한 몸이 된다. 그러며 닉과 줄스의 삐걱거림은 더 심해지고 그럴수록 줄스의 외도도 더 심해진다. 한편 아이들과 폴의 관계도 더 진전되어 어색함은 사라지고 의미있는 관계로 발전되는 기미가 보인다. 


결국 들킬 것이 분명한 폴과 줄스의 밀회, 이 황당하고 어이 없는 관계보다 우리가 이 3막에서 눈여겨 봐야 할 건 이 가족이다. 2막에서 닉과 줄스의 삐걱거림으로 이 레즈비언 부부의 평범함을 역설했듯이, 3막에서는 폴과 줄스의 밀회로 터져버린 네 가족의 삐걱거림으로 이 가족의 평범함을 역설한다. 


백 번 양보해 일반적이라고 할 순 없는 이 가족이, 거기에 폴이라는 생물학적 아빠의 출현으로 꼬여버린 듯한 이 가족이, 평범하다는 걸 역설하기 위해서 황당한 일을 겪었을 때 평범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린 생각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이라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을 겪었을 때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을 대처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일반적으로 대처한다. 당사자들을 욕하고 배척하고 몰아세운다. 누군가는 비뚤어진다. 그럼에도 진심어린 사과와 속죄, 받아들임과 시작이 이어진다. 그게 가족이다. 그리고 이 가족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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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열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망해 가는' 일본 영화의 버팀목,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긴 역사, 엄청난 제작 편수와 관객수, 질 높은 작품성까지 겸비한 '일본 영화', 하지만 급격한 쇠락의 길로 접어든 지 꽤 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질보다 흥행에 더 초점을 맞춘 결과라 하겠다. 그래도 일본인들의 일본 영화 사랑은 높다. 단, 여기서 말하는 일본 영화는 여전히 일본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만화 원작 위주다. 일례로, 그나마 일본이 자랑하는 현대 일본 영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특급작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러브라이브> 극장판에 밀려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렇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현대 일본 실사 영화의 마지막 보루 같은 느낌을 준다. 모든 일본 영화인들이 그만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바다 건너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지난 20년 넘게 그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 물론 부침이 없지 않았다. 스타일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은근히 욕을 먹기도 했을 테다. 여하튼 그는 일본 영화의 버팀목이다. 


충격적 데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충격적 데뷔작 <환상의 빛>. ⓒ씨네룩스



우린 영화 감독들의 충격적인 데뷔를 많이 접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창동의 <초록 물고기>,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 등. 1970~90년대인데,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이후엔 많이 접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이 있다. 1995년작으로, 자그마치 20년이 넘었다. 그는 명문 와세대학 문학부를 나온 문학수재인데, TV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다가 이 작품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한다. 그래서인지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였고 다큐멘터리적 작풍이 다분하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그보다 정적인 구도에 따른 미장셴에 집착했던 것 같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케무샤>가 보여주었던 구도가 일면 엿보인다. 거기에 상실과 기억의 소재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 유미코는 계속되는 상실을 겪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 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상실 전의 기억들이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의 국제영화제상 수집은 이미 데뷔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환상의 빛>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 제52회 촬영상을 수상한다. 이후 불과 수 개의 영화에서 족히 수백 개는 될 듯한 상들을 수집한다. 세계 3대 영화제 진출만 보아도, 제5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디스턴스>, 제5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아무도 모른다>, 제6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진출 <공기인형>,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경쟁부문 진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제6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바닷마을 다이어리>,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진출 <태풍이 지나가고>. 즉, 그의 필모그래피 절반 이상이다. 


'가족'에 천착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최근까지 계속 이어가고 있는 '가족' 천착의 진정한 시작 <걸어도 걸어도>. ⓒ영화사 진진



그의 영화가 조금 바뀌게 되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일면 이해가 가는 <하나>부터이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 이력 중 가장 범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사무라이의 복수극을 통해 '가족'을 말하고자 한다. 물론 소소하고 잔잔하게 행복을 이야기한 무난한 이 작품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닌 이가 만들었다면 충분한 호평을 받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는 이후 10여 년 동안 가족에 천착한다. <하나> 이후에 나와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대표하는 확실한 가족 영화로 자리매김한 <걸어도 걸어도>를 필두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까지 쭉 이어졌다. 그 사이에 <공기인형> 정도가 튀는데, 아마 가족이 아닌 소재를 새롭게 시작하려다가 실패한 케이스라 하겠다. 


그의 필모 상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이 이 부분이다. 계속되는 천착은 그만의 세계를 확고히 하며 그에 걸맞는 거장의 칭호를 그에게 안겨주는 등 좋은 결과을 낳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을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모두가 아는 시기가 왔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나온 <태풍이 지나가고>가 그 분기점이어야 하고,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든다. 


밝은 소소함에 날카롭고 서늘한 게 깃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타일을 규정하는 '밝은 소소함과 날카롭고 서늘함의 조화와 공존', 그걸 잘 볼 수 있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티캐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20년 넘게 천착하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이건 아마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을 그만의 것인데, 밝은듯 쓸쓸한듯 유쾌한듯 서늘한듯 한 분위기이다. 대체로 그의 영화 분위기는 밝고 유쾌한 것에 가깝다. 소소하고 잔잔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내재되어 있는 혹은 드러내지 않는 사건사고는 가히 인생을 흔들 만하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영화일수록 이 구도가 극에 달하는 것 같다.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의 필모 전반에 걸쳐 있다. 기억에 남는 건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공기인형>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 밝은 소소함엔 특별하고 날카롭고 서늘한 것이 있다. 그게 인생이라는 걸까? 그게 인간이 가진 면모들이라는 걸까? 이 기조는 그가 지난 10여 년간 천착하는 '가족'이라는 키워드와는 달리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도 무방할 것 같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보편성이 담보되지 않는 특별함이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이 나오면 주저 없이 보고 악착 같이 평할 준비가 되어 있다. 1~2년에 한 편씩 꾸준히 신작을 내고 있는 걸 보면, 내년 안에는 차기작이 나올 것 같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수상 후보에 오르고 무수한 호평이 쏟아질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도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그의 변화를. 비록 그동안 실패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덕분에 더 나은 길을 걸어올 수 있지 않았나 반추해본다. 자기 혁신적 모습의 일환이라면, 무엇이라도 괜찮다. 기대와 설렘과 불안의 삼중주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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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컴, 투게더>


최소 2017년 상반기 최고의 독립영화 <컴, 투게더>. ⓒ비아신픽처스



오랜만에 한국 독립영화를 본다. 세상을 보는 온전한 하나의 눈, 상대적으로나마 누군가의 입맛에 종속되거나 손질되지 않은 날것의 묘미, 그 안에서 일관된 무엇을 발견할 때의 희열, 모두들 거기가 문제라고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자 하지만 결국 보여지는 건 다르게 손질되고 마는구나 생각할 때의 씁쓸함. 나는 그런 독립영화를 사랑한다. 


일찍이 그 맛을 알아 독립영화의 맥을 짚어 보려 노력했고 그중에서 괜찮은 작품을 골라 소개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는 이전보다 저조했다. 독립영화 자체가 저조했던 건지, 나의 관심과 반응이 저조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2월에 <장기왕> 정도를 소개했을 뿐이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최악의 하루> <여고생> <혼자> 신작 영화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저조했던 게 아닌가 하는 반문으로 위로해본다. 


그럼에도, 올해 상반기에 독립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소개도 하지 않았음에도 <컴, 투게더>는 올해 상반기에 발견한 최고의 독립영화로 평할 만하다. 6개월이 지나 올해가 끝나도 여전히 최고의 독립영화로 남아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쪽에선 잔뼈가 굵은 신동일 감독이 8년 만에 연출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가족 개개인의 말 못할 고군분투


가족으로부터 시작되는 사회 문제의 연장선을 이 영화는 탈피한다. ⓒ비아신픽처스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 범구(임형국 분)는 18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잘려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집에서 쉬다가 윗층의 층간소음 때문에 인연을 맺게된 호준, 그가 쿵쿵대는 건 천장에 머리를 닿고자 하는 행위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닿았는데 언젠가부터 닿지 못했다는 것. 그런데 그 차이가 아주 조금이란다. 


어머니 미영(이혜은 분)은 각종 편법을 써 가며 힘들게 실적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창립 8주년을 기념해 실적 1위에게 주어지는 태국 가족 여행 티켓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고객이 변심해 취소하고 동료가 가로채가고 편법이 상부에 걸린다. 그래도 계속 해야지 어쩌겠는가. 


딸 한나(채빈 분)는 재수로 고려대학교를 들어가고자 하지만 예비번호 18번에 머물러 있다. 최종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래도 한 명씩 빠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더 피를 말리게 한다. 그런 와중에 예비번호 8번 후배 소식을 듣게 되고 만난다. 그러고는 은연중 진심을 내비친다. "내 앞 예비번호 누구라도 죽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영화는 한나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가족 한 명 한 명의 현 상황을 보여주고는 식사 자리에 둘러 앉은 가족의 모습을 비춘다. 예비번호 18번에 머물러 있는 한나로 인해 큰소리가 오가는 식사 자리, 그리고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말 못할 일들을 겪는다. 그래서 가족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개개인의 고군분투 이야기다. 


개인과 가족과 사회 문제는 하나다


영화는 개인, 가족, 사회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비아신픽처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가족을 돌아본다. 결혼하고 분가한 후로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닌 듯 연락도 거의 하지 않지만, 문제는 한 지붕 아래 살았을 때조차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화목하지 않거나 문제가 있거나 했던 건 아니다. 그런 모습에서 유추하는 문제의식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는 척 위하는 척 가면을 쓰고 대하는 게 문제가 아닌가. 


여하튼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유기적인 인과 관계에서 유추하는 문제를 향한 비판 형식을 취하는 여타 영화와는 다른 결을 보인다.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문제가 한 눈에 보인다. 한 쪽에서 촉발한 문제가 다른 문제로 번지거나 원인이 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통합적인 문제다.


범구가 실업자가 된 건 이 사회의 가장 극심한 문제 중 하나이자 한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자 개인적으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유발의 문제이다. 미영이 신용불량자임에도 아둥바둥 신용카드를 파는 것도, 한나가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서 알아주는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한 곳에서만 촉발한 문제도 아니고, 어느 한 곳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어느 한 곳에서만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감독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그 시작을 가족으로 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까 싶다. 한편, 이들 세 명은 각자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방식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연을 맺는다. 그런데 연을 이어가기가 너무 어렵고, 그들과의 꼬인 실타래를 풀기가 너무 힘들다. 그들이 없어졌으면 하기도 하지만, 막상 없어지면 울부짖으며 찾기도 한다. 반대로 함께 하고 싶지만, 없어져버리기도 한다. 


다시 모여 다시 시작하자


극단적 비극으로 문제의식을 극단적으로 전달해 파급력을 실현시키려는 여타 독립영화와는 다른 희망적인 결이다. ⓒ비아신픽처스



적어도 내가 봐 왔던 독립영화의 결은 두 가지였다. 젋은 세대이 암울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내거나, 사회에 만연한 가해불가역성을 피해자에게 투영하여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내는 사회를 묵직하고 날카롭고 아프게 그려내거나.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도 완연히 다른 결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한다.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텐데' 또는 자신이 자신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괴롭히는 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내가 아는 독립영화의 결이라면, 어쩔 수 없이 '저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러고는 속죄하고 도망가고 괴롭힘 당하고 피폐해지고 결국 자신 또한 죽고 만다. 이 사회가 만든 거대한 덫이자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자 끝없이 되풀이되는 굴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빈 손으로 다시 모인다. 


그 아래에는 감독이 촘촘히 구성해 놓은 구조가 있다. 비록 아프고 힘들고 비참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을 만한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컴팩트하게 시작한다. 그러곤 지뢰를 하나씩 심어놓는다. 더 큰 무엇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자 복선이고, 하이라이트를 향한 전개 방식이다. 그러곤 각자 겪게 되는 극치의 경험과 한 데 뭉쳐 겪게 되는 최악의 경험을 동반한다. 이 지점에서 끝낼 것인가, 다시 시작할 것인가 하는 건 감독의 몫일 것이다. 영화는 후자를 선택했다. 일장일단이 있을 텐데, 영화의 구조적인 면에서는 올바른 선택이지만 영화의 파급력 면에선 조금 아쉬울 수 있다. 


<컴, 투게더>는 영화를 보고 공감하고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힘이 느껴졌다. 각본의 힘이자, 연출의 힘이자, 연기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역설적으로 이 사회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을 하게 만든, 주인공들의 모습을 봐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 사회 말이다. 밝디 밝은 영화를 봐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볼 맛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날은 언제일까. 그럼에도 그런 사회가 오고 있다는 걸 믿는다. 함께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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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버지와 이토씨>


전형적인 일본영화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이토씨>. 그렇다고 만만히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와이드 릴리즈㈜



34세 미혼 여성으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아야(우에노 주리 분), 54세 돌싱 남성으로 초등학교에서 급식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토(릴리 프랭키 분)와 동거한다. 그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함께 일한 '패배자'인데, 한 번 두 번 여러 번 먹었고 어쩌다 보니 같이 살게 되었다. 누가 봐도 이상하게 보겠지만 당사자들은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듯하다. 


그들 앞에 74세 홀몸으로 꼬장꼬장하기 이를 데 없는 아야 아버지(후지 타츠야 분)가 나타난다. 오빠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쌍둥이 아이들의 중학교 입학 시험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고 새언니 정신 상태가 이상해서 아야 네로 오게 되었다. 아버지를 보더니 기겁 하고 토를 하고 소리도 지르는 새언니 상태를 보니 다른 문제가 있는 듯도 하다. 여하튼 20살씩 차이가 나는 아야와 이토와 아야 아버지는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영화 <아버지와 이토씨>는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는 조합의 가족이 동거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조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족 형태는 아니다. 먼저 34세 미혼 여성과 54세 돌싱 남성의 동거부터 비상싱적으로 비추기 쉬운데, 거기에 74세 아버지가 느닷없이 끼어든 꼴이라니. 더욱이 그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즉,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윗대까지 거들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최선은 고사하고 최악에 가깝다. 


일본 사회를 들여다본다


잔잔한 와중에 일본 사회를 들여다본다. 주로 문제점들만을 들여다보기에 날카롭게 다가올 수 있겠다. ⓒ와이드 릴리즈㈜



영화는 일본 사회의 여러 부분을 건드린다. 30대, 심지어 50대까지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은 일본에서 특별하다고만 할 수 없을 정도다. 정규직이냐고 묻는 아버지의 질문에 아야는 '당연히' 아르바이트라고 말하는 것이다. 30대 중반임에도 당연히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다는 건 앞으로도 계속 아르바이트로 살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거기에 50대인 이토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는 건, 그것도 아무런 자괴감 없이 당연한 듯 생각하는 건, 차라리 충격에 가깝다. 


동양 보편적 문제 중 하나인 노부모 봉양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다. 일본은 초고령사회에 접어든지 이미 오래, 사회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필수 요소이다. 특히 홀몸이 된 부모, 그중에서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없다고 여겨지는) 홀아버지가 문제다. 여기에 아르바이트로 자기 한몸 겨우 건사하는 자식이 있다면 방법을 찾기란 너무 힘들다. 그렇지만 그 상황이 점점 당연하게 되어 가기에 걱정이다.


이제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단절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각자 자신 한몸이나마 건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어찌 저찌 살아가는 아야와 이토와 아야 아버지인 듯하지만, 아야와 이토는 아야 아버지와 계속 같이 사는 게 곤란하다. 그렇다고 다시 오빠 네로 가는 것도 여의치 않다. 급기야 아버지는 가출하는데, 옛집으로 가 있는 아버지를 일가족이 찾아가 회유해도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자식들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둘 다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혼자 살 게 할 수도 없다. 누구도 나서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는데, 이토가 나서서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싸늘하게 말하며 어서 결론을 내라고 다그친다. 그러는 한편 그는 아야를 달래 아야 아버지와 함께 살 준비도 한다. 그의 정체가 뭔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만드는 결정이 아닌가. 


폐쇄적인 가족을 이토가 돕다


폐쇄적인 가족, 이방인의 터치를 받지 않으려 하지만 곪아가고 있다. 그런 가족을 이토가 도우려 정리한다. ⓒ와이드 릴리즈㈜



영화에서 이토가 차지하는 비중은 하염 없이 낮을 수 있다. 아야 아버지 봉양 문제가 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가족이 아닌 이토가 할 수 있는 건 없다시피 하다. 나서서 조언이라도 할라 치면 '니가 뭔데 나서냐' '남의 일이라고 아무말 하냐' 하며 무안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 상태와 상황이 너무 하다. 내부에서 누구라도 나서서 정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외부에서라도 나서야 하는 것일까. 


이토는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나서서 조금씩 정리한다. 아야 아버지와 공통의 관심거리로 친해지고, 아야에게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조언하고 아야의 의문과 걱정을 덜어준다. 40살 차이가 나는 구세대 아버지와 신세대 딸의 불협화음을 가운데에서 적절히 맞추고 때론 바깥에서 지휘한다. 


'가족'이라 하면 사실 굉장히 폐쇄적일 수 있다. 그런 만큼 당사자들은 모르는 폐해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럴 때 가족 아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걸 생각할 수 없다. 영화는 그렇지만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방인처럼 보이는 이토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또 비중이 높은 이유다. 


이토는 50대로 경륜은 굉장할지 모르지만 보기에 굉장히 허름하고 또 아르바이트로 연명할 정도로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와 사귀기 전에 아야가 '패배자'로 명명한 것도 당연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지만, 그런 존재의 '은은함'과 '강하지 않음'이야말로 오히려 폐쇄적인 가족의 단단함을 뚫고 잘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영화의 잔잔함과 엽기


잔잔한 와중에 특별함을 선사한 영화로 기억에 은은히 남을 것 같다. ⓒ와이드 릴리즈㈜



내가 생각하는 일본 영화의 특징이 있는데, 잔잔함과 엽기 또는 특이함을 공존시킨다는 것이다. 별 갈등 없이 흐르다가 갑자기 쉬이 생각하기 힘든 장면이나 대사가 튀어나오거나 특정 캐릭터성이 발현되는데, 이 영화도 그런 특성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잔잔함은 영화 내내 계속되었고, 엽기 또는 특이함은 제목대로 아야 아버지와 이토에게서 발현되었다. 


아야 아버지의 차마 말로 하기 힘든 비밀과 영화 마지막에서의 특별한 결정, 그리고 이토의 막말 비슷하지만 아야네 가족 나아가 영화 전체의 분기점이 되는 대사 한 방.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 34세 미혼 여성 아르바이트생과 54세 돌싱 남성 아르바이트생의 동거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엽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 모습이 결코 엽기적이지만은 않은, 아니 평범하다고 할 만하게 되었다. 


아야 역의 우에노 주리와 아야 아버지 역의 후지 타츠야는 세대를 대표하는 국민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더욱이 역할 자체에 개성이 다분해 충분히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었다. 반면 그 중간에 위치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양쪽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역할을 떠맡은 이토 역의 릴리 프랭키는 비교불가의 고도 연기를 선보여야 했다. 그 결과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그 가장 큰 비결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외모와 완벽히 상충되는 중후한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야말로 믿음이 가는 목소리, 외모와 상충되는 만큼 믿음의 강도가 높아지는 듯하다. 그 덕분에 이 영화가 일본 영화의 특성을 두루 가지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듯하다. 과하지 않은, 그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극중 역할에 충실한 듯한 그의 모습이 한동안 맴돌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 아버지를 향해 뛰는 아야,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토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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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파이터>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2010년대 전성시대 시작을 알리는 작품 <파이터>. ⓒ시너지



21세기 최고의 복싱 경기로 회자되는 미키 워드와 아투로 게티의 WBU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3연전. 긴장감을 유발하거나 청량감을 주는 대신, 처절함을 동반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경기를 보면 스포츠에선 패자는 없고 승자만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승자로 인정한다. 


영화 <파이터>는 다름 아닌 미키 워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아투로 게티와의 챔피언전을 다루진 않았고, 그 이전까지의 인생역전을 다뤘다. 링에는 혼자 올라가지만 링에 올라가기까지는 절대 혼자일 수 없는 법, 영화는 미키 워드와 그의 가족들을 함께 그렸다. 미키 워드의 복싱 인생에서 형 디키와 엄마 앨리스를 비롯해 가족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감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90년대 중반 <스팽킹 더 멍키>로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데이비드 O. 러셀은 1999년 <쓰리 킹즈>로 메이저 무대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이후 오랫동안 부침을 겼었다. 그러다가 2010년 <파이터>로 단숨에 아카데미가 사랑하는 감독이 되었고, 이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까지 성공시키며 대세 감독으로 우뚝 섰다. <엑시덴탈 러브>와 <조이>로 연착륙 했다. 


그의 영화들은 상당히 스타일리쉬한데, 영리한 편집과 파격적인 변신을 앞세운 캐릭터 그리고 영화 전체를 앞서서 끄는 듯한 음악이 키포인트다. 자칫 정신 없이 산만 할 수 있을 텐데(누군가에겐 단연코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 이를 다잡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다. <파이터>는 이런 요소들이 완벽하다 할 만큼 적재적소에 들어차 있다. 


'복싱', 그리고 '가족'과 '아픈 사람들'


영화의 주된 소재는 복싱,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과 아픈 사람들, 그리고 희망. ⓒ시너지



미키 워드(마크 윌버그 분)는 서른 살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백업 선수로 전전하고 있다. 돈을 받고 챔피언의 승률을 높여주는 역할. 그 돈 덕분에 일가족이 먹고 산다. 미키에게 권투의 모든 것을 알려준 전 챔피언인 형 디키 워드(크리스찬 베일 분). 하지만 그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마약에 쩔어 살아 가는 루저다. 심지어 미국 메이저 방송사 HBO에서 그의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의 부활이 아니라 그의 마약 생활을 통해 교훈을 전하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미키의 트레이너다. 한편 그들의 엄마 앨리스 워드는 미키의 매니저다. 


승리의 기회가 찾아 온다. 이번만큼은 백업이 아니라 자신의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상대방이 아프다는 이유로 경기 직전 바뀌는데, 체급 자체가 너무 차이난다. 훨씬 더 높은 체급이었던 거다. 미키는 말도 안 되는 이 경기를 피하려 하지만, 형과 엄마가 미키를 밀어 넣는다. 돈 때문이었다. 돈은 벌어왔지만 또다시 처참하게 진 것이다. 선수로서의 회의, 가족들에 대한 실망으로 방황할 때 살린을 만난다. 그러곤 다시 재기를 꿈꾼다. 가족들과는 좀 거리를 둔 채.


그렇지만 다시 위기에 빠진다. 미키가 자신과 함께 하려면 생활비를 대 주어야 한다는 말에 형 디키가 어이 없는 범죄 행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미키는 경찰에 잡혀 가려는 디키를 보호하려다 경찰에 의해 오른손을 심하게 다친다. 감옥에 가는 디키, 풀려난 미키. 하지만 미키는 더 이상 권투를 할 수 없는 몸이 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미키의 진가를 알아본 에이전시가 제의를 해오는데, 조건이 있었다. 가족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 미키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미키라는 권투선수의 인생역전을 기본 뼈대로 '가족'과 '아픈 사람들'을 주요 요소로 투입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디키 또한 미키 못지 않은 주요 뼈대다. 즉, <파이터>는 미키와 디키 둘 모두를 따로 또 같이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 전부인 미키 워드. 하지만 그건 그의 선택이 아니다. 그의 선택이 가족일 때 비로소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시너지



우린 이 영화에서 '권투'를 잘 느끼기 힘들다. 하다 못해 '권투 선수'를 잘 느끼기도 힘들다. 미키 워드의 권투 또는 권투 선수 미키 워드를 잘 보여주려면, 영화에서 보여준 권투 인생 이후를 보여줬어야 했다. 아투로 게티와의 3연전을 하이라이트 삼아 그때까지의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이다. 대신 <파이터>는 그 외부의 것들을 말하고자 했다. 사실 삶에서는 그것들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신데렐라 맨>이 생각나게 하는데, '영화'로서의 전체적 만듦새는 <파이터>가 더 뛰어난 것 같다. 미키가 미키일 수 있었던 건, 즉 그의 존재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권투는, 그 자신도 말하듯이 100% 형 디키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엄마를 비롯한 많은 수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해당되지 않겠냐만, 그에겐 그의 가족들이 전부다. 그의 권투는 오로지 가족들에 의한 것이니까. 사실 그는 온전한 어른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어른이다. 어른이어야 하는 나이이고 몸이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것들은 연인 살린을 만나면서 뚜렷해진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자신과도 같은 가족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아니, 가족들과 떨어져야만 가족들과 더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가족들은 그가 '선택'하지 않았고 살린은 그가 '선택'했다는 것. 


가족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가족이면 모든 걸 다 용서하고 받아줘야 하는가. 가족이 원하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가. 가족 간에는 모든 게 당연한 것인가. 모든 걸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내가 나일 수 있게 한 가족을 저버리는 새로운 방황의 시작일 수 있다. 즉, 함께 가되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한 바, 영화는 후반부 디키의 변화에 주목한다.  


아픈 이들이 이야기하는 희망


하나 같이 아픈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들이 사는 동네도 아프다. 그런 그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려 한다. 자신을 인정하고 변화하고자 한다. ⓒ시너지



미키는 아프다. 권투 선수로서 미래가 없다. 형처럼 한때나마 잘 나갔던 적도 없다. 결국 손을 크게 다쳐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디키는 어떤가. 한때 챔피언으로 지역 명사가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삶을 누렸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마약에 찌든 폐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보다 아픈 사람을 찾기 힘들다. 미키의 연인 살린도 아프다. 꽤 잘나가는 높이 뛰기 선수였지만 지금은 동네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이젠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미키와 디키 가족은 어떤가? 엄마 앨리스는 이혼한 후 재혼해 살고 있다. 그런데 다 큰 자식들 모두와 함께다. 미키, 디키를 비롯한 자식들은 거의 10명에 육박한다. 또 재혼한 남편도 있다. 그와 자식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앨리스에게 꼼짝도 못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고충도 많다. 이 다 컸지만 능력 없는 자식들을 다 챙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미키에게 매달린다. 돈, 돈, 돈!


심지어 이들이 사는 동네도 아프다. 한때 챔피언이었다가 폐인이 된 디키와 결을 같이한다. 디키가 챔피언이었을 땐 이 동네도 잘 나갔는데, 그가 폐인으로의 삶을 걸어갈 때 이 동네도 함께 침체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국가적 침체의 희생양이 된 것이리라. 동네가 아픈데 가족들이 아프지 않을 수 없고, 가족들이 아픈데 동네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하는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들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곤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을 땐 상대방의 아픔을 조롱하고 하대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 중심엔 디키가 있다. 그렇지만 디키의 변화는 미키와 살린의 선택과 결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맞물려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린 아픈 시대를 살아간다. 자신이 아픈지 모르고 누군가가 아픈지 관심도 없는 시대를 살아간다. 아는 게 오히려 병일 때도 있겠지만, 이럴 땐 아는 게 힘일 수 있겠다. 아픈 걸 치료하려는 게 아니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며, 아프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에는 그런 시대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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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가족의 탄생>


데뷔 20년이 다 되어가는 김태용 감독의 귀한(?) 단독 장편 연출작 중 하나 <가족의 탄생>이다. ⓒ롯데 엔터테인먼트



2015년을 기준, 1인 가구가 27.2%로 전체 가구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인 가구도 자그마치 26.1%로, 1인 가구와 2인 가구를 합치면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 경에는 1인 가구가 30% 이상에 육박할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는데, 기이하지만 당연한 사회현상이겠다. 


이에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어떻게든 1인 가구 시대로의 진입을 막아보려 애썼지만, 이제는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관련 대책을 세우고 관련 사업을 시작하고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저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또는 이미 선행된 '발상의 전환'이 있다. 1인 가구를 '가족'의 한 형태로 받아들였다는 것, 더 근본적으로 '가족'의 형태에 제한을 두지 않게 되었다는 것. 


1인 가구는 얼마 전에 생겨난 개념이 아니다. 인류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존재해왔을 형태다. 그렇지만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적어도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른바 '가족의 탄생'이다. 


가족에 대한 고찰


우린 이 영화를 통해 가족에 대한 고찰을 조금 더 밀고 나갈 수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롯데 엔터테인먼트



1인 가구가 단기간에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는 다름 아닌 2000년대 초반이다. 아마 그때는 심히 우려가 되었을 것이다. 전통의 4인 가구 체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 와중에 영화 하나가 뚝 떨어졌다. <가족의 탄생>. 가족의 형태에 대한 고찰이 한창이었을 시기, 2006년이다.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무시무시한 장편 데뷔를 한 김태용 감독이 참으로 오랜만에 상업 장편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후 2010년에 <만추>를 찍은 게 김태용 감독 필로에서 단독 장편 연출의 전부이니, 참으로 귀한(?) 작품이다. 작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정녕 오랜 고심 끝에 좋은 작품을 내놓은 스타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제는 '탕웨이의 남편'으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가족의 탄생>은 제목이 주는 단조로움과 코미디 요소가 섞인 장르가 주는, 자칫 허술하고 별 볼일 없다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는 달리 매우 심오하다. 시대의 변화를 캐치해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일정 정도 선도하면서 설득까지 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억지 설득이 아닌, 여러 가족의 형태를 그저 보여주며 자연스레 생각이 바뀌게끔 한다. 


다양한 막장 가족을 들여다본 숨겨진 걸작


이 영화에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온다. 하나 같이 '막장'이라 할 만한데, 영화는 그들도 모두 가족이라 말한다. ⓒ롯데 엔터테인먼트



떡볶이 집을 하며 약해보이나 똑부러지게 살아가는 '미라' 앞에 5년 만에 동생 '형철'이 나타난다. 그는 반건달인데, 오갈 데가 없으니 빌붙으려고 찾아온 것 같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족히 20살은 많아 보이는 '무신'이라는 분을 데리고 온 거다. 사랑하는 사이이고 결혼도 했단다. 얼마 안 가 또 다른 충격이 찾아온다. 무신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의 딸이라던가? 이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인지. 형철은 누나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면서 아이를 거둘 것을 강력히 찬성하는데... 과연 이 '가족'의 운명은?


사랑 찾아 이리저리 오갔던 세월이 수십 년인 엄마 '매자' 때문에 인생이 고달픈 '선경'. 더 이상 엄마를 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매자는 선경을 계속 찾는다. 선경뿐이랴? 선경의 남자친구도 찾아와선 매자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이도 낳은 매자다. 어린 아이를 남겨두고 많이 아프다니. 알고 보니 매자의 남자친구는 엄연히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다 큰 자식도 둘이나 있는. 그럼 어린 아이는 어떻게?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된 두 연인, '경석'과 '채현'. 곧잘 만나는 것 같으면서도 잘 싸운다. 채현이 너무 '헤프다는' 이유로 경석이 채근한다. 경석이 보기엔 채현이 자신만을 사랑하지 않거니와 그 사랑의 범위가 너무 넓다. 누구나 각각의 사랑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 둘은 극과극이니만큼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가족'을 들여다보는 것일 테다.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들인 만큼, 얼핏 보면 막장 영화네 하며 지나치기 일쑤이다. 그래서인지 개봉 당시 평단에선 상당한 평가를 받은 반면, 20여 만 명에 불과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망한 거나 다름 없는 수치로, 김태용 감독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게 분명하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설득되지 않아서 일까? 여하튼, 이 영화는 '숨겨진 걸작'이라 하고 싶다. 배우 공효진은 자신의 연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가족의 탄생>을 뽑곤 한다. 


생각지도 못한 가족의 형태


2006년 당시 이 영화의 '실험'은 실패했다. 즉, 영화가 주장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받아들일까? ⓒ롯데 엔터테인먼트



언젠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연히 가족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가족이 뭐지, 가족끼리는 어떻게 해야 해"라는 질문에 어머니께서 대답하셨던 바다. 어머니는 "가족은 천륜으로 만들어진 거야. 가족이라면 죽을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가족'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그때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크게 와 닿았고 가족의 정의로 정립되었다. 가족은 천륜. 


그런데, 머리가 크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 절대적인 정의가 깨졌다. 아마, 지금은 금이 간 정도일 거고 앞으로 언젠가는 완전히 깨질 게 분명하다. '가족은 천륜'이라는, 인류의 오랜 명제가 말이다. <가족의 탄생>에 등장하는 '막장 가족'들은, 분명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족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명제 자체가 틀린 것이라면? 그들은 더이상 막장 가족이 아니라 그냥 '가족'인 것이다. 


3여 년 전쯤 EBS 다큐프라임에서 '가족 쇼크'라는 제목으로 장장 9부작 짜리 다큐가 방영된 적이 있다. 방송 대상 3관왕에 빛나는 역작으로 나중에 책으로도 나왔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쇼크'는 단연 '타인들로 이루어진 가족' 실험이었다. 남녀노소 1인 가구들이 모여 한 가족을 형성한 것이다.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이들이 모여 '가족'이 될 수 있는가? 결론은 '될 수 있다'였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천륜으로 이루어진 가족보다 가족 같은 모습을 보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런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족의 탄생>이 보여주는 황당한 가족의 형태도 또한 '실험'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름의 확실한 공증이 끝나고 누구든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풍만한 상태에서의 실험. 플롯, 연기, 배경 등이 완벽했던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건, 시대를 너무 너무 앞서갔기 때문일 테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에 개봉한 <그래, 가족>이란 영화는, <가족의 탄생>의 아류라고 할지언정 시대에 발맞춰 나가는 모양새를 띠었다. 거기에 한국 최초로 '디즈니'에서 배급을 하면서 기대를 모았는데, 참패를 면치 못했다. 영화가 속절없이 저퀄리티였거나, 아직도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이유일 테다. 


부디 <가족의 탄생>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빛을 보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1인 가구를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했듯, 가족이라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형태도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하는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전환을 만끽할 수도 있겠다. 부디 '가족의 탄생'을 지켜보고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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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서게 한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에겐 이 작품이 정녕 '백만 불짜리 아기' 같지 않을까. ⓒ㈜노바미디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다. 연출과 주연은 물론 제작과 음악까지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아카데미가 두 번째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겼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힐러리 스웽크에게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모건 프리먼에게 첫 번째(!) 남우조연상을 안겼다는 것도 굉장한 이야기거리다.

 

이외에도 뜬금없을 수 있는 복싱 소재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굉장히 '전형적인' 라인의 '여자' 복싱이라는 점이 보기도 전에 분위기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또한 영화가 나오기도 전부터 큰 논란을 일으킨 '안락사' 논란, 가족은 더 이상 '천륜'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일면에 대한 논란은 이 영화가 뚫고 나가야 할 큰 난관이었다. 

 

논란거리로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방법은 하나,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선사한다. 복싱일까? 죽음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선사하는 놀랍도록 진심 어리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복싱 영화, 아니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

 

영화는 다분히 복싱 영화의 정석을 따른다. 그렇지만 우린 이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굉장한 영화 기술이다. ⓒ㈜노바미디어



한때 잘 나갔던 지혈사라던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딸과 의절한 상태에서 돈도 안 되는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8년째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빅 윌리, 프랭키한테서 모든 것을 배우고는 잘 나가는 매니저에게로 떠난다. 프랭키가 그를 너무 아껴 절대 챔피언전에 내보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가 된 그에게 매기 피츠제랄드(힐러리 스웽크 분)라는 서른 넘은 여자가 매일 같이 찾아와 운동하면서 자기를 키워주라고 조른다. 거들떠도 보지 않는 프랭키, 하지만 그녀의 진심에 두 손 두 발 들고 만다.

 

훈련만 시켜주고 매니저는 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매니저를 소개시켜 주지만, 그의 행태를 보고 직접 매니저로 나선다. 그러곤 그녀에게 '모쿠슈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출중한 실력을 뽐내는 매기, 유럽을 휩쓸고 미국에 돌아와 천하에 이름을 떨친다. 급기야 현 챔피언과 맞붙는 챔피언전을 진행한다. 빅 윌리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매기...

 

복싱 영화는 누구나 생각할 만한 전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복싱 실력만큼 피와 땀으로 이뤄낸 게 없다는 걸 차용해,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사각 링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각 링에는 오직 적과 나 뿐이라는 점을 차용해, 사각 링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일하게 기댈 사람인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을 보여주며, 복싱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는 굳이 말하자면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매니저와 선수의 만남이 참으로 극적이고, 선수의 훈련보다 매니저와 선수의 일상이 더 매력적이며, 선수의 파격적인 승전보보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매니저와 선수의 모습이 더 감동적이다. 이쯤 되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더 이상 복싱 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겠다.

 

복싱으로 맺어진 가족, 영화는 똑똑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부재->복싱으로 맺어진 인연->가족이 된 그들. ⓒ㈜노바미디어


우정일까, 사랑일까, 복잡한 감정일까. 그전에 들여다봐야 할 게 프랭키와 매기의 가족 관계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듯한 프랭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체육관과 선수들이다. 매기는 어떨까. 그녀는 가장이다. 아버지를 여의고는 그녀가 아픈 엄마, 여동생과 남동생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문제인 것 같다. 필사적인 매기의 노력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기를 더 못 부려먹어서 안달이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프랭키와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그보다 못한 가족 관계를 영위하고 있는 그녀다. 그렇게 프랭키와 매기는 가족에 대한 뼛속 깊은 그리움을 안고 살아 간다.

 

그러면서 프랭키는 선수를 키우고 싶어 하고 매기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하니, 이보다 완벽한 궁합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선수와 매니저가 되기로 한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서로는 이미 '가족'이 되어 있다. 영화는 그 과정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결정적 사건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복싱'의 과정으로 보여줄 뿐이다.

 

참으로 똑똑한 영화 문법이다. 그러면 왜 하필 복싱이냐고 할 수 있다. 그건, 복싱이 가지는 특수성이 작용한다. 선수와 매니저의 그 어떤 스포츠보다 끈끈한 관계도 관계지만, 선수가 느끼는 최고의 희열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한 명의 승리자에게 열광한다.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올라선 '외로운' 사각 링에서 이긴 승리자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물론 또 다른 문법이 있지만.

 

영화가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 당신은 어떤 의견인가?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천륜이 아닌 인연이라 말한다. 또한 안락사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묻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노바미디어



눈물 콧물을 모조리 쏟아내는 감동을 유발하는 드라마를 신파라고 한다. 신파 자체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신파가 너무나 활개를 치기에 부담감을 넘어 심적으로 멀리하게 된 게 사실이다. 신파는 사람을 무장해제시켜 제대로 된 관람을 방해할 때도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도 분명 신파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 요소를 극대화 시키면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신파적 눈물과 콧물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질질 끌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밖으로 폭발하는 감동 대신 안으로 삭히는 절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아 또 느껴보고 싶은 그런 감동이다. 삭막하지 않은, 슬프지만 행복한 감동이다. 사막, 가뭄을 연상시키는 마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활짝 웃을 때나 한 줄기 눈물을 흘릴 때 느낄 수 있는 충격과 의외의 감동이기도 하다.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기에 그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이다.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현실에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할 순 없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닌 인간이 선택해 만든 인연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게 사랑의 차원을 넘어선 '도덕과 윤리'의 차원일 때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도 어딘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도덕과 윤리의 잣대만을 들이대 그대로만 따를 수 있다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절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이 영화가 은근히 또는 파격적으로 드러내며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들은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계속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이에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 생전 처음 보는 이를 '백만 불짜리 아기'라고 말하며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의 한 축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영화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나는 상당한 동의의 표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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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빌리 엘리어트>


우리는 <빌리 엘리어트>에서 천재 신화의 기본 스토리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뭔가 좀 다르다. 무엇일까? ⓒ팝엔터테인먼트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이가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에 안착하는 이야기, 인류 역사상 가장 자주 되풀이 되는 이야기 구조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라면 꿈도 꾸기 힘들기에, 일종의 대리만족이라 하겠다. 굳이 보지 않고도 대략을 알 수 있다. 


그(또는 그녀)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정작 자신은 모른다. 우연히 눈을 뜨고 그를 이끄는 선생님이 나타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끌려서 시작하고, 점점 더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래지 않아 역경이 닥친다. 태생적으로 불우한 환경, 주위 사람들의 반대, 스스로에 대한 믿음 철회. 


어느새 다시 끌리고 결국엔 모든 역경을 이겨낸다. 결정적으로 그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고 가장 반대했던 주위 사람들이 가장 믿음직한 서포터가 된다. 모두의 기대와 믿음을 한 몸에 받고, 또 자신에 대한 믿음 또한 우뚝, 다시 찾아보기 힘든 성공을 쟁취한다. 우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이 스토리 라인을 정확히 발견할 수 있다. 


'천재'가 아닌 천재를 둘러싼 '환경'을 조명하다


무수히 많은 천재 이야기들, 분명 거기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그래서 계속 양산 되는 듯. 반면 이 영화는 천재가 아닌 천재의 환경에 집중했다. 그곳엔 무수한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팝엔터테인먼트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고 심지어 누구라도 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하지만 유독 이 영화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것엔 분명 다른 무엇이 있을 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린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 엘리어트가 아닌 빌리 엘리어트를 둘러싼 것들을 보아야 한다. 


1984년 영국 탄광촌, 대규모 파업으로 동네는 마비 상태다. 아빠와 형 모두 광부인 빌리 엘리어트네도 마찬가지.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빌리는 춤을 좋아하는데, 아빠의 성화에 못이겨 마지 못해 권투를 배우러 다닌다. 


어느 날 함께 체육관을 쓰게 된 발레수업단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곧 그의 눈은 그곳에 못박혀 움직일 줄 모르고 그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발레 동작을 따라한다. 선생님은 한 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발레를 배울 것을 중용한다. 하지만 그에겐 상남자 아빠와 형이 있었고, 무엇보다 '남자가 발레를 하는 건 잘못된 거다'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당시다. 이후의 스토리는 누구나 익히 알만 할듯. 빌리는 과연?


영화는 '천재'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보다 천재의 성장과 고민, 천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형상화 시키는 요소들, 즉 춤과 행동과 음악들에 집중한다. 그렇게 감독은 지극히 식상한 스토리를 지극히 개념있는 영화적 스토리로 탈바꿈 시킨다. 덕분에 우리는 참으로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를 만끽할 수 있다. 


상승과 하강, 이 영화에서 보고 느껴야 하는 키워드


이 영화의 빛나는 성취가 있다면, 상승과 하강의 기막힌 대비에서 보여지는 천재의 이면이다. 절대적 공감의 끝엔, 천재가 천재일 수 있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팝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다름 아닌 '파업'이다. 정확하게는 파업으로 대변되는 '현실'이겠다. 아직 입증되지 않은 천재는 다분히 망상에 가까운, 희망이라는 말도 꺼내기 힘든 '이상'이 아니겠는가. 천재, 아니 한 아이의 성장 그 이면에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괴리가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능력을 입증하는 것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빌리의 점프 장면이 계속된다. 중반부쯤, 빌리가 멋도 모르게 발레 동작을 따라할 때면 전에 없이 극렬해지는 파업 현장이 비친다. 마지막에 빌리의 점프 장면이 다시 나오는데, 그 직전엔 다시 땅굴로 내려가는 아빠와 형 그리고 엄청난 성공을 한 후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빌리의 모습이 대비된다. 


시종일관 상승과 하강의 연속이다. 당연히 상승은 성공과 이상을 하강은 시련과 현실을 뜻하겠다. 빌리가 이상에 가까이 갈수록 아빠와 형은 현실로 향한다. 빌리의 기막힌 재능이라는 씨앗도 아빠와 형의 헌신이라는 거름 없이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사실. 이토록 극렬한 대비를 이토록 유려하게 표현해내니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이자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와호장룡>에서 아름답고 슬프기까지 한 상승과 하강의 절묘한 대비를 볼 수 있다. 오로지 상승을 목표로 살아왔던 용, 하강이 갖는 부드러운 강함의 경지를 체득한 리무바이. 영화의 마지막, 용이 끝없는 안개 바다로 몸을 던지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선사한다. <빌리 엘리어트>가 선사하는 바가 이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하지만, 충분히 빛나고 빛나는 성취다. 


개천에서 용 안 나는 시대, 엘리어트 가를 응원한다


빌리가 아닌 빌리 엘리어트 가족을 응원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식상하고 진부하고 고루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다. ⓒ팝엔터테인먼트



그래서 빌리가 아닌 빌리의 가족, 엘리어트 가를 응원한다. 그들에게서 우리 윗세대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구어 '개천에서 용 난다'를 가문의 단 하나의 목표로 삼고 될 성 싶은 잎 한 명을 골라 그만을 지원했다. 다른 이들은 현실의 무거운 짐을 일찌감치 지고 평생을 희생했다. 


빌리의 아빠와 형은 파업으로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었지만, 빌리를 위해선 자신이 자신일 수 없었다. 그 소박한 이상조차 버리고 현실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땅굴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윗세대에서 '용'이 된 사람들 대부분이 겪었을 이야기다. 


이제는 희생으로라도 엮어낼 수 있는 이상적인 성공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 꿈도 꿀 수 없는 '천재'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 꿈도 꿀 수 없는 '보통 사람'의 성공 이야기가 된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가 참조한 식상한 이야기는, 그래서 또 다른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더욱더 응원하게 된다. 식상한 이야기의 주인공을. 식상하더라도 좋으니 꼭 성공하라고 말이다. '천재'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성공 이야기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 버릴까봐 두렵다. 부디 많은 이들이 '빌리 엘리어트'를 꿈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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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라우더 댄 밤즈>


'폭탄보다 거대한' 게 과연 무얼까?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라, 충격일까 슬픔일까 둘 다일까. 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린나래미디어


투철한 종군 사진 작가 이자벨, 그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이다. 남편 진은 그녀의 3주기에 맞춰 기념 전시를 열기로 한다.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큰아들 조나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진과 작은 아들 콘래드가 함께 사는 집,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어색하기보다 서먹하고, 서먹하기보다 반목이 존재한다. 이자벨이 죽기 전에도 그랬을까, 이자벨이 죽고 나서일까. 


한편, 이자벨의 동료였던 리차드는 이자벨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죽음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말한다. 그게 도리에 맞거니와 이자벨도 그걸 원했을 거라면서. 조나는 알고 있지만 콘래드는 아직 모르는 그 비밀을, 진은 말하고자 하고 조나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그 와중에 조나는 엄마에 대한 진짜 비밀을 알게 되는데...


영화 <라우더 댄 밤즈>는 북유럽 태생답게 건조하고 싸늘하고 잔잔한 느낌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무채색의 예리한 칼날이 도처에 있어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듯하다. 제목부터가 '폭탄보다 거대한'이 아닌가. 이 제목이 수식하는 단어는, 그 행간에 감춰진 단어는 아마도 '충격'보다는 '슬픔'이 아닐까 예측해본다. 강렬한 제목과 무미건조해 보이는 분위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이자벨, 진, 조나, 콘래드. 이 가족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자, 이 영화의 모든 것일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를 지닌 '문제적 가족'


이 문제적 가족의 균열은 종군 사진 작가 이자벨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직업 특성 상 집에는 거의 있지 못하고 세계 각지의 위험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지 않겠나. 남편도 남편이거니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문제다. 특히 작은 아들은 한창 학창시절을 보내며 사춘기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때인데. 더구나 위험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치기 일쑤이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군 사진 작가'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자벨, 그녀의 죽음. 그녀의 살아생전에도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가족은 문제가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문제들. ⓒ그린나래미디어



그 모든 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가슴앓이를 하는 이는 다름 아닌 남편 진. 그는 '가족'을 위해 연기자 생활을 접었기에 그녀를 보는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 가족을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것이나 다름 없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아주 복잡한 심정이다. 걱정도 되면서 화도 나는, 그녀에 대한 걱정이 곧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자신을 선택과 현재를 보며 그녀의 선택과 현재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소용돌이치는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큰 아들 조나는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러며 엄마 살아생전 아버지와의 이혼을 중용하기도 했던,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무관심보다는 적대감에 가까운, 대면대면한 사이랄까. 한편 그는 이제 갓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그래서 어느 때보다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지만,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내를 자꾸만 피하게 되고, 오히려 옛 연인에게 더 마음이, 그런 자신이 괴롭다. 그 와중에 엄마의 살아생전 비밀을 알게 되니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 그렇지만 엄마를 그렇게 기억하긴 싫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아들 콘래드는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모른다. 살아생전 비밀도 당연히 모른다. 그저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 품이 그리울 뿐이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지만 쳐다보기도 말을 섞기도 싫다. 사춘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엄마가 없기에 더 삐뚫어진 것 같다. 자꾸 대화를 위한 대화를 원하는 아버지가 더 싫어진다. 대신 오랜만에 돌아온 형과 자주 대화한다. 한편 그는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다. 좀 노는 아이인 것 같아 새차게 다다갈 순 없지만 용기를 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이 가족의 문제는 평범한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다 사연이 있을 테니까, 그 사연의 크기와 종류가 다를 뿐이다. ⓒ그린나래미디어



이 가족은 사실 그리 문제적이지는 않다. 평범한 가족일 뿐이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는 그런 가족, 즉 대다수 가족에게서 보이는 문제들을 이들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엄마의 직업이 남달랐었다는 것. 이제는 엄마가 없다는 것. 엄마의 죽음이 특별했다는 것. 무엇보다, 문제를 풀 겨를 없이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엄마가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남은 이들끼리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 3년이나 풀지 못하고 지속되어 왔다는 것. 


가족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뭔가 있어 보인다. 구성, 분위기,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포스가 그동안 많이 접해왔던 할리우드 영화와는 너무 다르다. 치밀한 복선과 꽉 찬 서사, 물 흐르는 듯한 전개, 확실한 기승전결을 이 영화에선 찾기 힘들다. 그래서 자칫 겉만 있어 보이려고 하는 영화로 비치기 십상이다. 별 것 아닌 내용을, 쉽게 보지 못한 것들로 만들어, 신선함만 부여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가족이 지닌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것 같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들의 사적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남은 가족들이 대통합을 이루지도 못한 것은 물론이다. 3년 만에 만나 한순간 대통합을 이룬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오히려 엄마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어 아픔과 슬픔과 당혹감만 커졌을 뿐인 것 같다. 


문제의 해결보다 시급한 건, 문제의 인식. 그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아는 것. 그 존재 자체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 이상은 자연스러운 것. ⓒ그린나래미디어



'그런데'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런데 가족이 무엇인가. 가족 구성원들 서로서로의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해결하는 것이 목적인가? 개개인의 사적 문제를 일일이 알고 같이 고민하며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만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인가? 우린 사실 가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큰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작은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며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지, 아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어떤 생각으로 가족들을 대하게 되는지,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연기자를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다.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먼저 아는 것이다. 공유하는 것이다. 해결하려고 달려들기 전에 일단 알아야 한다. 뭐가 문제야?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네. 자, 해결됐지? 그럼 이제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족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부탁해. 대다수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역할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역할을 등한시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은 지옥이 될 수 있다. 


거기엔 분명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해야할 것들이 있다. 그건 그리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가족을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도우려 하고, 조금 더 생각하면 된다. 집에 가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푹 쉬고 싶고 가족들의 품 안에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싶다. 더불어 가족들을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 딱 그런 마음을 가족들 모두가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가족들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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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