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파이터>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2010년대 전성시대 시작을 알리는 작품 <파이터>. ⓒ시너지



21세기 최고의 복싱 경기로 회자되는 미키 워드와 아투로 게티의 WBU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3연전. 긴장감을 유발하거나 청량감을 주는 대신, 처절함을 동반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경기를 보면 스포츠에선 패자는 없고 승자만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승자로 인정한다. 


영화 <파이터>는 다름 아닌 미키 워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아투로 게티와의 챔피언전을 다루진 않았고, 그 이전까지의 인생역전을 다뤘다. 링에는 혼자 올라가지만 링에 올라가기까지는 절대 혼자일 수 없는 법, 영화는 미키 워드와 그의 가족들을 함께 그렸다. 미키 워드의 복싱 인생에서 형 디키와 엄마 앨리스를 비롯해 가족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감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90년대 중반 <스팽킹 더 멍키>로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데이비드 O. 러셀은 1999년 <쓰리 킹즈>로 메이저 무대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이후 오랫동안 부침을 겼었다. 그러다가 2010년 <파이터>로 단숨에 아카데미가 사랑하는 감독이 되었고, 이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까지 성공시키며 대세 감독으로 우뚝 섰다. <엑시덴탈 러브>와 <조이>로 연착륙 했다. 


그의 영화들은 상당히 스타일리쉬한데, 영리한 편집과 파격적인 변신을 앞세운 캐릭터 그리고 영화 전체를 앞서서 끄는 듯한 음악이 키포인트다. 자칫 정신 없이 산만 할 수 있을 텐데(누군가에겐 단연코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 이를 다잡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다. <파이터>는 이런 요소들이 완벽하다 할 만큼 적재적소에 들어차 있다. 


'복싱', 그리고 '가족'과 '아픈 사람들'


영화의 주된 소재는 복싱,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과 아픈 사람들, 그리고 희망. ⓒ시너지



미키 워드(마크 윌버그 분)는 서른 살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백업 선수로 전전하고 있다. 돈을 받고 챔피언의 승률을 높여주는 역할. 그 돈 덕분에 일가족이 먹고 산다. 미키에게 권투의 모든 것을 알려준 전 챔피언인 형 디키 워드(크리스찬 베일 분). 하지만 그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마약에 쩔어 살아 가는 루저다. 심지어 미국 메이저 방송사 HBO에서 그의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의 부활이 아니라 그의 마약 생활을 통해 교훈을 전하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미키의 트레이너다. 한편 그들의 엄마 앨리스 워드는 미키의 매니저다. 


승리의 기회가 찾아 온다. 이번만큼은 백업이 아니라 자신의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상대방이 아프다는 이유로 경기 직전 바뀌는데, 체급 자체가 너무 차이난다. 훨씬 더 높은 체급이었던 거다. 미키는 말도 안 되는 이 경기를 피하려 하지만, 형과 엄마가 미키를 밀어 넣는다. 돈 때문이었다. 돈은 벌어왔지만 또다시 처참하게 진 것이다. 선수로서의 회의, 가족들에 대한 실망으로 방황할 때 살린을 만난다. 그러곤 다시 재기를 꿈꾼다. 가족들과는 좀 거리를 둔 채.


그렇지만 다시 위기에 빠진다. 미키가 자신과 함께 하려면 생활비를 대 주어야 한다는 말에 형 디키가 어이 없는 범죄 행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미키는 경찰에 잡혀 가려는 디키를 보호하려다 경찰에 의해 오른손을 심하게 다친다. 감옥에 가는 디키, 풀려난 미키. 하지만 미키는 더 이상 권투를 할 수 없는 몸이 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미키의 진가를 알아본 에이전시가 제의를 해오는데, 조건이 있었다. 가족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 미키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미키라는 권투선수의 인생역전을 기본 뼈대로 '가족'과 '아픈 사람들'을 주요 요소로 투입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디키 또한 미키 못지 않은 주요 뼈대다. 즉, <파이터>는 미키와 디키 둘 모두를 따로 또 같이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 전부인 미키 워드. 하지만 그건 그의 선택이 아니다. 그의 선택이 가족일 때 비로소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시너지



우린 이 영화에서 '권투'를 잘 느끼기 힘들다. 하다 못해 '권투 선수'를 잘 느끼기도 힘들다. 미키 워드의 권투 또는 권투 선수 미키 워드를 잘 보여주려면, 영화에서 보여준 권투 인생 이후를 보여줬어야 했다. 아투로 게티와의 3연전을 하이라이트 삼아 그때까지의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이다. 대신 <파이터>는 그 외부의 것들을 말하고자 했다. 사실 삶에서는 그것들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신데렐라 맨>이 생각나게 하는데, '영화'로서의 전체적 만듦새는 <파이터>가 더 뛰어난 것 같다. 미키가 미키일 수 있었던 건, 즉 그의 존재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권투는, 그 자신도 말하듯이 100% 형 디키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엄마를 비롯한 많은 수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해당되지 않겠냐만, 그에겐 그의 가족들이 전부다. 그의 권투는 오로지 가족들에 의한 것이니까. 사실 그는 온전한 어른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어른이다. 어른이어야 하는 나이이고 몸이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것들은 연인 살린을 만나면서 뚜렷해진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자신과도 같은 가족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아니, 가족들과 떨어져야만 가족들과 더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가족들은 그가 '선택'하지 않았고 살린은 그가 '선택'했다는 것. 


가족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가족이면 모든 걸 다 용서하고 받아줘야 하는가. 가족이 원하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가. 가족 간에는 모든 게 당연한 것인가. 모든 걸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내가 나일 수 있게 한 가족을 저버리는 새로운 방황의 시작일 수 있다. 즉, 함께 가되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한 바, 영화는 후반부 디키의 변화에 주목한다.  


아픈 이들이 이야기하는 희망


하나 같이 아픈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들이 사는 동네도 아프다. 그런 그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려 한다. 자신을 인정하고 변화하고자 한다. ⓒ시너지



미키는 아프다. 권투 선수로서 미래가 없다. 형처럼 한때나마 잘 나갔던 적도 없다. 결국 손을 크게 다쳐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디키는 어떤가. 한때 챔피언으로 지역 명사가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삶을 누렸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마약에 찌든 폐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보다 아픈 사람을 찾기 힘들다. 미키의 연인 살린도 아프다. 꽤 잘나가는 높이 뛰기 선수였지만 지금은 동네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이젠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미키와 디키 가족은 어떤가? 엄마 앨리스는 이혼한 후 재혼해 살고 있다. 그런데 다 큰 자식들 모두와 함께다. 미키, 디키를 비롯한 자식들은 거의 10명에 육박한다. 또 재혼한 남편도 있다. 그와 자식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앨리스에게 꼼짝도 못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고충도 많다. 이 다 컸지만 능력 없는 자식들을 다 챙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미키에게 매달린다. 돈, 돈, 돈!


심지어 이들이 사는 동네도 아프다. 한때 챔피언이었다가 폐인이 된 디키와 결을 같이한다. 디키가 챔피언이었을 땐 이 동네도 잘 나갔는데, 그가 폐인으로의 삶을 걸어갈 때 이 동네도 함께 침체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국가적 침체의 희생양이 된 것이리라. 동네가 아픈데 가족들이 아프지 않을 수 없고, 가족들이 아픈데 동네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하는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들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곤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을 땐 상대방의 아픔을 조롱하고 하대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 중심엔 디키가 있다. 그렇지만 디키의 변화는 미키와 살린의 선택과 결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맞물려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린 아픈 시대를 살아간다. 자신이 아픈지 모르고 누군가가 아픈지 관심도 없는 시대를 살아간다. 아는 게 오히려 병일 때도 있겠지만, 이럴 땐 아는 게 힘일 수 있겠다. 아픈 걸 치료하려는 게 아니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며, 아프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에는 그런 시대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딥워터 호라이즌>


해양 재난 사고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필이면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가 발생한 달도 4월... 한 번쯤 관심을 갖고 볼 만한 영화인듯. ⓒ메가박스㈜플러스엠



2010년 4월 20일, 미국 멕시코만에서 석유시추시설이 폭발한다. 믿기지 않는 해양 대폭발은 인명 피해와 대량의 원유 유출로 이어진다. 가히 역대 최악의 해양 재난 사고이자 원유 유출 사고로 기록될 만하다. 이른바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 혹은 '딥워터 호라이즌 원유 유출 사고'다. 


영화로 나오지 않으면 이상할 소재이지만, 워낙 많은 재난들이 영화로 만들어졌기에 꺼려졌을지 모른다. 재난 영화의 공식을 피해갈 순 없기에 사고를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고, 사고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둔다면 영화적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은 어느 지점에 방점을 찍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난 영화의 공식을 최대한 간소화하고 사고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 말인즉슨, 재난 영화에 흔히 나오는 '영웅'의 존재를 배제하고 '사고' 자체를 부각시켰다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 들어 모든 위험을 뚫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낸 영웅을 찾는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스펙터클을 기대한다면 큰 실망을 받을 것이다. 대신 느끼는 게 많다. 


완벽한 인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사고는 '인재'다. 자연 재해가 아닌 이상 인재가 아닌 사고가 어디 있겠냐만은, 이런 류의 인재는 정말 안타깝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최악의 사고로 칭송(?) 받고 있는 만큼 사고의 전반적 내용은 쉽게 찾을 수 있다. 43일이나 늦어진 시추 작업, 본사는 닥달하며 제대로 된 안전 검사 없이 작업에 임할 것을 강요한다. 그게 다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에. 베테랑 작업 책임자는 안전 검사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결국 실시되는 안전 검사. 어찌어찌 통과된다. 


사람 몸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바로 턱 밑까지 위험 요소가 곯아 있는 경우가 말이다. 분명 어딘가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무시하고 결국 그 부분을 건드려 한순간에 폭발해버리고 만다.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 또한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한 번 더 검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음에도, 겉으로 보이는 단순한 결과를 보고 진행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누구나 아는 결과, 대폭발. 그동안 쌓이고 쌓인 것이 한순간에 뿜어져 나왔다. 사실 현장에서 이런저런 사고는 자주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번의 경우 그 강도와 횟수 때문에 가스가 유정에 새어들어가 폭발이 발생했다고 한다. 완벽한 '인재(人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가 중점에 둔 바가 바로 이 사고에 있고, 그 중에서도 인재에 있다. 그 뒤에는 누구나 예상할 만한 존재인 '돈'이 있다. 석유는 끌어올리지 않고 계속 검사만 해대니 장사가 되겠는가 말이다. 유서깊은 본사 BP는 2000년 합병으로 세계 2위의 정유회사 로열 더치 쉘을 제치고는 1위 엑슨 모빌을 열심히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최악의 금전적 손실과 이미지 실추로 이어졌지만. 


사실감 충만하게 뽑아낸 초대형 해양 사고


영웅은 배제하고 최대한 사실감에 중점을 두어 뽑아냈다. 초대형 사고인 만큼, 사실감 충만하다는 건 그 자체로 스펙터클이 엄청나다는 것일 테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앞서 스펙터클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해하지 마시라. 그건 다분히 '영웅'의 분투기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의 스펙터클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신 사고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 했다는 말을 생각해보시라. 역대 최악의 사고로 일컬어지는 사고를 어떻게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지. 그 자체가 최고의 스펙터클을 선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세트를 어떻게 구현해냈을까, 그 방대함에 혀를 내두른다. 


피터 버그 감독은 전작 <론 서바이버>로 사실감 충만한 연출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거기에 비록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지만 초대형 규모의 해양 액션 <배틀쉽>을 선보인 바도 있고 말이다. <딥워터 호라이즌>은 피터 버그 감독이 자신의 연출 잠정만 쏙 빼서 초대형 규모의 해양 사고를 사실감 충만하게 연출했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사고가 벌어지면 끝날 때까지 입이 떡 벌어져 다물지 못할 게 분명하다. 


반면 망망대해의 불타는 초대형 시추선에서 그저 도망치기에 급급한 인간들의 모습은 짠하기 그지 없다. 이 부분에서는 또 얼굴이 찌뿌려져 펴질 기미가 안 보일 게 분명한대, 너무나도 명백한 인재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너무나도 거대한 불길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들이 한심하고 또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만만했다. 본사에서 온 사고의 원흉 임원은 물론이거니와,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책임자도 이 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사고는 오래전부터 보내온 위험 신호를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단순히 그 한 번의 검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 거다. 모든 사고의 원인은 하나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안전'보다 '돈'이 우선인가?


정녕 모를까. 계속 되풀이 되어도 정녕 모를까. '돈'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걸. 아니, 사실은 돈과 안전은 한 몸이라는 걸. 사고가 나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는 걸 모를까. ⓒ메가박스㈜플러스엠



세계 2위 정유회사 BP의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 이전에, 세계 1위 정유회사 엑슨 모빌의 1989년 '엑슨 발데즈 원유 유출 사고'가 더 유명하다. 이 역시 최악의 해양 사고로 알려져 있는데, 유조선 엑슨 발데즈호가 암초에 걸려 침몰한 사고다. 그로 인한 피해도 피해지만 내부 관계자가 원유 유출 보고서를 조작해 파장이 컸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랄까, 원유 유출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역사상 수많은 원유 유출 사고에서 유추할 수 있다. 수많은 사고가 일어나지만 원유 유출이 심각한 이유는 완벽하게 복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겠다. 여전히 '안전'보다 '돈'이 우선인가? 정유 산업은 가장 돈에 가까운 산업이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작업이 병행되는데, 안전은 왜 뒷전인지.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든다. 


왠지 도박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사실 이와 같은 대형 사고가 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니 만큼, 우리한테는, 이번에는 사고가 나지 않겠지 하는 마음을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번엔 빨리 작업을 끝내고 다음에 검사를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 말이다. 그들이 그토록 찾는 '신'이 과연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둘지 모르겠다. 


안타까운 인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인재는 계속해서 일어난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인재는, 하지만 금방 잊힌다. 이 형용하기 힘든 모순은 언제 어디서 또 우리를 슬프게 할지 모른다. 슬픔은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잊지 않겠다는 건 대책 수립을 요한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대책 수립'. 인재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슬픔'을 대상화할 뿐 그 안에 내포된 '대책 수립' 요구는 묵살한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속내, 직시하고 수립하고 진행하면 되지 않겠는가. 슬프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현대판 글레디에이터 <너브>


SNS 미션 수행 사이트 '너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0대들의 이야기, 영화 <너브>. 별 생각 없이 봐도 무방하지만, 현대판 글레디에이터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발상이겠다. ⓒBoXoo 엔터테인먼트



시티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에 거주하는 소심한 성격의 비, 대학 입학을 앞두고 고민이다. 엄마와의 소소한 말다툼, 결국 엄마의 말을 듣기로 한다. 학교에서는 럭비 선수들 사진 담당인듯, 선수들 사진을 멋지게 찍어 대지만 정작 짝사랑하는 주장 JP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한다. 친구들이 놀리는 와중에, 시드니가 '너브' 운운하며 비의 소심함을 지적한다. 그러고는 JP에게 가서 비에 대한 감정을 떠보는데, 그 자리에서 비가 자기 스타일이 아님을 말한다. 비는 빈정이 상해 자리를 뜨고, 집으로 가서는 너브에 접속하고는 '플레이어'로 시작하는데...


'너브(Nerve)'에는 여러 뜻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용기 또는 대담성을 뜻하겠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주로 10대들의 비밀 사이트로, 운영자는 미션을 내리고 '플레이어'가 이를 수행하면 일정 정도의 돈을 주며 '왓쳐'는 미션 수행 동영상을 보고는 '좋아요'를 눌러주는 시스템이다. 미션은 단계가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대신 금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미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면 그동안 받았던 돈을 모조리 돌려주어야 하며, 끝까지 남은 최종 2인은 수많은 와쳐들이 모인 경기장에서 죽음의 대결을 벌인다. 그에게는 엄청난 인기와 함께 엄청난 돈이 수여될 것이다. 


영화 <너브>는 SNS를 기반으로 한 비밀 미션 수행 사이트 '너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0대들의 치기 어린 이야기를 담았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10대 대상 저예산 스릴러 영화로, 현실을 그대로 담으려고 하면서 문제제기를 한다. 현대판 글레디에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영화가 길지 않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너브에 접속하면서 사건이 급속도로 제기되며 재미지수 또한 그만큼 올라간다. '시간때우기' 용 이상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영화다. 


영화 속 미션이 주는 적당한 퀄리티와 긴장감


영화는 미션으로 거의 모든 걸 설명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즉 미션의 스토리인 것이다. 고로 미션의 퀄리티가 중요할 텐데 괜찮은 수준이다. ⓒBoXoo 엔터테인먼트


플레이어가 된 비에게 내려진 미션은 처음엔 주로 부끄럽고 민망한 것들이다. 두 눈 꼭 감고 그저 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단계가 올라갈수록 주어지는 미션은 그저 한다고 되는 게 아닌,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비는 1단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안과 함께 미션을 수행한다. 서로가 서로의 미션 수행 대상이 되기도 하고, 미션을 수행함에 있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서로를 향한 좋은 감정이 싹튼다. 비의 경우엔 소심한 자신의 성격에 대한 반발심이 크게 작용했을 거다. 


영화에서 플레이어가 미션 수행하는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아무래도 플레이어가 이 시스템의 한 가운데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보는 다양한 눈이 없다면, 그들도 존재하지 않을 테고 그들의 미션 수행도 재미 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의미도 없을 테고. 그들을 지켜보는 왓쳐들의 시선, 그들 스스로의 미션 수행 장면을 찍는 시선, 외부의 시선, 그리고 그들 모두를 몰래 통제하는 운영자의 시선까지. 이 영화를 '스릴러' 장르로 표현할 수 있는 이유가 다름 아닌 거기에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왓쳐가 되어서 플레이어의 미션 수행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도 들지만 플레이어가 되어서 직접 미션 수행을 하고 있는 느낌도 드는 것이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허접하지도 않은 수준의 퀄리티를 선보였다.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에, 좋다 안 좋다를 논할 수 없을 정도의 무(無)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기승전결'을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 속 미션 수행에 가져다 붙인 것이다. 한 우물을 판 전략이 유용했다고나 할까. 


플레이어인가, 왓쳐인가


직접 미션을 수행하고 인기를 얻고 돈을 받는 '플레이어', 플레이어가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열광하는 '왓쳐'. 무엇이 되고 싶은가? ⓒBoXoo 엔터테인먼트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아프리카 BJ의 자극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끌끌 차며 저게 뭐하는 거냐며 비난하지만 쉽게 나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들의 행동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좋아하고 환호할 만한 요소가 풍부한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고 보여주려 한 것이든,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 제안한 것이든, 서로가 좋아하고 원하는 시스템이니만큼 성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에 대중심리라는 소프트웨어와 SNS라는 하드웨어가 합쳐지니, 그 시너지 효과는 그동안 발전해 왔던 인터넷 문화가 한 정점에 다다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영화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이 어떤지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는다. 그게 나쁘냐 좋으냐 가타부타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의 행동을 보여줄 뿐이다. 선택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테니. 너브에 가입해서 플레이어가 되든 왓쳐가 되든, 너브에 가입하지 않고 지나가다가 가끔 혹해서 몰래 보곤 하는 외부인이 되든. 


나라면 무엇을 선택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너브를 가입할까? 가입하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도 받겠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에 들어와 설명할 도리 없는 욕구를 분출하는 환희를 맛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난 가입할 것 같다. 


플레이어인가, 왓쳐인가. 돈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그 세계에선 신만큼 위대해질 수 있는, 즉 수많은 사람들의 추종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플레이어이다. 물론 그만큼, 그 이상의 위험이 따를 것이다. 반면, 왓쳐는 그저 즐기면 된다. 원하는 것을 꺼리낌 없이 말하고 마음껏 비난하고 욕하고 환호하면 된다. 간편하지만, 그게 끝이다. 그걸 함으로써 돈도 벌 수 없고 인기도 얻을 수 없다. 난 열심히 왓쳐를 하다가 어느 때는 플레이어를 할 것 같다. 


'통제'가 필요한가? '자가해결'이 답인가?


10대들의 위험천만한 미션 수행을 보고 있노라면 계속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통제'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다행히도 영화는 '자가해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비록 미숙하더라도 좋은 모습이다. ⓒBoXoo 엔터테인먼트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다. 이 영화는 한 면만 부각한다. 그저 보여줄 뿐이지만, 그 자체가 자극적이고 대담하고 위험하다는 걸 누구나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TV, 유튜브, 페이스북 라이브까지 퍼져나가는 실시간 동영상 세계, 그 세계도 양면이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소통'의 부재, 이를 타파할 수 있는, 아니 이를 타파하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이 실시간 동영상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 어떤 이들보다 더 많이 소통하고 있으며, 그 하드웨어는 그 어떤 하드웨어보다도 더 쉽게 소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린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문제는, 그 '좋은 세상'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너브>에서 보여지는 '너브'의 세상이 그렇다. 그 세상에 속한 이들은 너무 즐거워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보호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한 곳으로 휩쓸리는 건 한순간이고 그 휩쓸림이 좋지 않은 쪽으로 가는 것도 한순간이며 최악의 결과를 내고서도 모르는 게 다반사다. 그들 서로를 지켜주는 보호장치는 아무 소용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칫 '통제'가 필요하다는 말로 귀결될 요지가 있다. 이 영화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던지는 메시지가 굉장히 크게 다가오는 게 바로 여기에 있는데, 외부의 '통제'가 아닌 순수한 '보호' 또는 '자가해결'이 답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방법까지 보여줄 역량은 못 되었지만,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이 속한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는 건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좋은 세상이 되든, 힘겨운 세상이 되든 말이다. 누군가가 재단하고 제시하고 통제한다면 그 순간 지옥이다. 영화는 플레이어가 될 것인지, 왓쳐가 될 것인지 물어보지만, 그 이면엔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이 있는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프로포즈 대작전(?)은 시작부터 꼬였다. 그렇게 중요한 행사였으면 사전 답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거기부터 이미 문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지도로 보니 지하철역에서 금방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먼 건 둘째치고 엄청난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헥헥 거리며 오르니 바로 옆에 보이는 건물...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다니 야속했다. 


더 큰 문제는 레스토랑의 분위기였다. 그래도 프로포즈를 많이 해봤다고 하니 아늑할 줄 알았는데, 여타 레스토랑과 별 반 다른 게 없었다. 아...아... 사전 답사... 그렇게 숨도 돌릴 틈 없이 2층으로 안내되어 종업원들의 지도(?)를 따랐다. 나름 비밀스럽게 하려고 한 것인데, 방이 몇 개 있더라. 프로포즈 방이 한두 개도 아닌 몇 개가 붙어 있더라. 


어영부영 시작된 프로포즈. 마지 못해 허락한 듯한 여자친구. 말을 들어보니 옆 방에서도 프로포즈가 진행 중인지 이 방과 똑같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더란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음식은 상당히 괜찮았지만, 그 가격이면 여자친구 기분 상하지 않게 훨씬 기억에 남을 만한 프로포즈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여자친구는 소박하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그런 프로포즈를 원했다. 난 나 좋으라고 나 편하라고 그런 상업적인 이벤트에 홀라당 속아넘어간 것이었다...


최악이라면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평생에 한 번 있는 큰 이벤트이다 보니 얼굴을 붉힐 수 만은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여자친구의 진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여자친구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거에 의의를 가지자고. 그래서 다음부터는 돈이 아닌, 진심으로 함께 하자고. 미안하고 고마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다들 아는 사실일 테지만 새삼스럽게 언급하길, 우리나라 평균 노동 시간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현재의 선진국들이 50~70년대 그야말로 한창 경쟁적으로 발전할 시기에 일했던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이 90년대가 되면서 노동 시간을 크게 줄였는데 우리나라는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성실한 나라'가 아닌가. 


엄밀히 말해서 나라가 성실한 게 아니고 나라를 구성하는 이들이 성실하다. '성실'이라는 덕목의 위상이 예전보다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성실은 기본 덕목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에 해당한다. 여유 따위는 배제한 채 정말 열심히 일을 한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보다 더 여유로운 삶을 위해서이다. 여유를 버리고 열심히 일해서 여유롭고자 한다. 과연 뜻대로 될까? 


태반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본 사회에서의 여유는 돈일 텐데, 돈을 아무리 벌어도 한 걸음 또는 몇 걸음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집값, 물가, 세금 등에는 미치지 못한다. 언젠가부터 여유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을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는 도중에 무슨 큰일이라고 일어나면 말짱 도무룩인 건 당연하다. 


성실한 나라 한국의 소시민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성실한 우리나라의 한 기구한 운명의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녀는 여공이 아닌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엘리트'로서의 잘못된 길을 결정하는 바람에 인생이 꼬이고 말았다. 이 꼬임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이자 주제이다. 


수남(이정현 분)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최연소 나이로 최고로 많은 자격증을 보유하며 잘 나갔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그런 사실은 완전히 무시한 채 그녀에게 '여자'로서의 강점을 살려 취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여자로서의 강점을 살려야만 취직을 할 수 있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수많은 자격증을 뒤로 한 채 수남은 공장으로 팔려가다시피 한다. 너무 순진한 게 아닌가... 


그곳에서 청각 장애인 남자를 만나 일사천리로 결혼을 한다. 문제는 수남과 만나 결혼을 약속한 후 그 남자의 귀가 완전히 먹어버렸다는 것. 수남은 2,000만 원을 쾌척해 인공 와우를 달아준다. 하지만 바로 그 인공 와우 때문에 수남의 남편 규정은 손을 잘리는 부상을 입는다. 더욱이 수남의 실수 때문에 잘린 손을 붙이지도 못했다.  규정은 그렇게 10년 동안 일을 하지 못한다. 반면 수남은 규정의 꿈인 '집 장만'을 위해 10년 간 그야말로 미친듯이 일에 매달린다. 결국 집 장만에 성공하지만, 10년 동안 몇 발 빨리 오른 집값 때문에 억 단위의 대출을 해야 했다. 규정이 할 수 있는 건, 아내를 위한 진심 어린 눈물 뿐이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수남을 통해 포기를 점점 늘려가는 현재의 젊은 세대 모습을 반영한다. 특히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사회에 나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이들의 절망적인 모습 말이다. 여공이 아닌 엘리트 코스로의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는 수남의 말은 기막힌 풍자에 해당된다. 그렇게 결국 아르바이트생으로의 길을 걷게 된 수남, 그리고 현재의 젊은 세대들. OECD 국가 최저 수준인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로 도대체 어떤 삶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극 중에서 수남은 하루에만 4개의 아르바이트를 함에도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어 보인다. 


열심히 일하고, 여전히 열심히 일한다


한편 규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에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자살을 결심한다. 너무 오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 수남, 가까스로 규정을 살린다. 하지만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규정. 그 병원비가 상상을 초월한다. 만날 때마다 존엄사를 제안하는 담당 의사. 하지만 수남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저 성실하게 열심히 일할 뿐이다. 


집을 내놓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는 수남. 그런데 뜻하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수남의 집이 재개발 대상 지역에 속해 있다는 것. 재개발 대상이 되면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있다. 그러면 남편의 병원비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수남은 집을 팔지 않고 세를 줬고, 자신은 조그만 고시원에 가서 혼자 생활한다. 여전히 일은 열심히 하고 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그런데 옆 동네에서 퇴역 원사, 구청 소속 심리상담사, 세탁소 주인 등을 주축으로 재개발 반대 시위를 하는 게 아닌가. 자신의 동네가 재개발 대상으로 되지 않아서 였다. 이에 수남은 구청 담당 계장을 찾아가 전말을 듣게 되고, 수남으로 하여금 재개발 동의 서명을 받아오게 한다. 필연적으로 수남은 그들과 한판 붙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실수로 그들 중 한 명을 죽인 수남은, 어쩌다 보니 다른 이들도 죽일 수밖에 없게 된다. 수남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화는 중반 이전까지는 박찬욱 감독의 제자가 아닐까 싶을 만큼 박찬욱 식의 분위기와 연출 방식을 선보인다. 지난 2월에 개봉한 <꿈보다 해몽>의 이광국 감독이 홍상수 감독 밑에서 오랫동안 조연출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안국진 감독은 박찬욱의 수제자라고 하진 않다고 한다. 다만,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이정현의 캐스팅을 도왔다고 하는 후문이다. 박찬욱 식 영화를 좋아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영화 또한 좋아할 게 분명하다. 


소시민끼리 죽고 죽이다


그건 그렇고 수남은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일까. 그 살인은 100% 그녀의 잘못일까? 물론 1%라도 살인에 관여가 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도 100% 잘못한 게 맞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질문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결국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되게끔 한 건 그녀가 아니라 이 사회가 아니란 말인가. 일례로 구청 담당 계장은 그녀로 하여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해 놓고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아예 영화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소시민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해 놓고는 말이다. 


옆 동네 사람들도 하나 같이 소시민이다. 선동하는 퇴역 원사나 구청 소속 심리상담사, 특히 세탁소 주인도 소시민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이다. 그들도 수남처럼 돈이 필요한 것 뿐이다. 결코 나쁜 악당들이 아니다. 재개발이라는 게 갈 곳 없는 사람들한테는 생애를 걸고 막아야 하는 악마일 것이고, 돈을 챙기려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든 추진해야 하는 축복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2015년의 걸출한 독립 영화,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


2015년의 걸출한 독립 영화 중 하나인 이 영화에도 아쉬움이 있다. 영화 설정 상 후반으로 갈수록 수남의 남편 규정의 존재가 조금 억지 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 장면을 일품인데, 그 이면을 생각하면 반감되는 게 바로 규정의 존재이다. 수남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유가 사실은 규정 때문이다. 오로지 규정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남이 규정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를 보여주어야만 하지 않을까. 애초에 수남과 규정이 사랑하게 된 이유가 전혀 보여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를 그렇게 끌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기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규정이 없었으면 수남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을 테니 이 영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감독이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하고, 모르긴 몰라도 석연치 않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와 함께 시종일관 얼굴을 펼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는 일품이다. 그만큼 오글 거리지도 시시하지도 않게 암울한 현실을 잘 그려냈다는 것이다. 이 잔혹 코미디는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팝, 경제를 노래하다>


<팝, 경제를 노래하다> 표지 ⓒ아트북스

예술은 가치는 무엇인가? 먼저 미적 가치가 있다. (위대한) 음악을 들으면, 그림을 보면, 건축물을 감상하면 거기서 느낄 수 있는 미(美)로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 마냥 기분이 좋아지고, 차분해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다음으로 해석 가치가 있다. 예술 작품을 보고 시대적 배경과 맥락을 들여다보고 숨겨진 메시지를 푸는 것이다. 예술의 해석 가치를 더욱 높이 사는 사람들은 예술의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깎아내리곤 한다. 어찌 보면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해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여기서 많이 쓰이는 해석은 시대적 배경과 맥락이다. 그 중에서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경제, 정치 등이 핵심이 아닐까 한다. 


돈에 대한 찬가를 '비틀스'가 노래했다?


현존 최고의 대중음악 평론가라 할 수 있는 임진모 평론가의 신작 <팝, 경제를 노래하다>(아트북스)는 예술의 해석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팝(노래)로 경제(정치와 사회도 포함)를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또는 반대로 경제를 통해 노래를 해석하는 시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책은 일단 팝이 주(主)가 되고 경제가 부(副)가 되는 양상이다. 겉으로 보나 안에서 보나 노래가 원문과 함께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노래의 가사만 읽어봐도 당시의 시대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그만큼 직설적인 노래 가사가 많다. 예를 하나 들어 본다. 


사랑이 나를 설레게 하지만 / 그렇다고 내 청구서를 내주는 것은 아니야 / 내게 돈을 주라구 / 

돈이 내가 원하는 거라구 / 돈이 내가 유일하게 원하는 거야 /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 

물론 돈이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아, 그건 사실이야 / 하지만 돈이 없으면 아예 쓸 수도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라는 제목의 이 직설적인 노래는 누구의 노래일까? 영국 리버풀 출신의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계급의 후손들이자,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모든 방면을 막론하고)인 '비틀스'의 노래이다. 그들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 전후 영국의 오랫동안 계속되는 차가운 경제 현실 속에서 오로지 성공을 위해 내달렸다. 당시 정반대로 호황의 절정에 있었던 미국의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를 동경하면서 말이다. 


임진모 평론가의 대중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 특유의 과도함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 있는 화려한 수식어들, 그리고 손에 잡힐 듯 읽히는 경제까지. 특별하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구성이고 진행이다.  평소 그의 평론에서 보았던 남다른 시각과 지식이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음악과 경제의 균형 잡힌 이야기


책은 그러나 읽다 보면 경제가 주(主)가 된다. '팝을'이 아니라 '팝으로'이기 때문이다. '팝으로' 또는 '팝을 통해서' 경제를 읽는 기획이기 때문에, 사실 경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더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식의 기획은 많은 단행본에서 접할 수 있다. 특히 철학을 주로 영화, 그림 등을 접목 시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진다. 그런 책들을 보면 단연 철학 이론들이 눈에 띈다. 즉, 영화나 그림 등은 어려운 철학 이론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책을 읽다가 얼마 못 읽고 접고 말았다. 시작과 끝은 영화 얘기로 하면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전부 철학으로 채워 놓지 뭔가. 


반면 이 책 <팝, 경제를 노래하다>(아트북스)는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행히(?) 저자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 관련된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지 않고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쉽게 풀어 쓰려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한편 음악 관련해서는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쉽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고 또 쉽게 풀어 쓸 능력도 있다. 


오죽했으면 예술로 까지 경제를 말할까?


하지만 읽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있다. 아쉬움은 반복되는 경제의 순환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부터 시작해 2008년 세계금융위기까지 17개의 파트로 나뉘는 이 책은, 거의 완벽한 순환을 보인다. 무슨 말인고 하면, 경제의 폭락과 폭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과 영국이 번갈아 가면서 말이다. 


대공황의 폭락, 아메리칸 드림의 폭등, 같은 시기 영국의 폭락, 1970년대(베트남 전쟁, 오일 쇼크 등)의 폭락, 레이건과 대처 시대의 폭등,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폭락, 그리고 다시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 시대의 폭등, 이후도 계속되는 폭락과 폭등, 다시 폭락... 이 끝없이 이어지는 폭락과 폭등의 순환은 자연스레 시대를 해석하는 음악들의 지루함으로 이어진다. 즉, 음악은 다르지만 옛날에 했던 말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안타까움은 예술로 까지 경제를 말해야 할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비롯된다. 현재 우리의 상황이 그야말로 '다시는 겪지 못할 것 같은 호황'을 뒤로 한 채 '다시는 겪기 싫은 불황'을 몸소 겪고 있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경제'에 목을 메고 '경제'가 중요해진 시기라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어떤 무엇을 가져다 놓든 전부 경제와 연관 시키게 되는 것일까. 책을 덮고 나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진하게 묻어 나오는 안타까움이 있다. 저자의 마지막 말이 그래서 더욱 쓸쓸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다시 일어서기 위한 버팀목은 분명 희망과 꿈일 것이다." (본문 중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나간 책 다시읽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 열린책들

1988년에 일어났던 일명 '지강헌 사건'은 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일어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샀다. 사건의 대략은 이렇다.

 

당시 전두환의 동생인 전경환은 수십억 원의 사기와 횡령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다. 반면 지강헌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죄질의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10~20년의 형량을 받았다.

 

이에 지강헌을 비롯한 12명의 미결수는 집단으로 탈주해 인질극을 벌이다가 자살하거나 경찰에게 사살당했다. 12명의 미결수 중 마지막 인질범이었던 지강헌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들으면서 깨진 유리로 자기 목을 그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의 총에 맞고 죽었다.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우선은 처먹고 나서야 다음이 도덕이라는 것을"


그의 절규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가 연상된다. 극 중에서 노상강도단의 두목인 매키 메서()'두 번째 서푼짜리 피날레'를 감상해본다.

 

"정직하게 살고 죄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우리를 가르치는 신사 양반들. 우선 우리에게 먹을 걸 줘야지. 그럼 말할 수 있지, 그때부터 시작하라고. 당신들의 배때기와 우리의 정직함을 좋아하는 당신들 이것만은 꼭 알아 두길. 당신들이 아무리 둘러대고 속임수를 쓸지라도 우선은 처먹고 나서야 다음이 도덕이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도 커다란 빵 덩이에서 자기 몫을 얻을 수 있어야지."(본문 중에서)

 

노상강도단 도목 매키 메서()는 거지 떼 두목인 피첨의 딸 폴리를 꾀어내 마구간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너무나 단촐하고 성의 없는 결혼식 같지도 않은 결혼식이지만, 맥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폴리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뒤늦게 폴리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피첨 부부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이혼을 강요하지만, 딸이 말을 듣지 않자 그를 잡아들일 계책을 세운다. 매키 메서가 창녀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업여성들로 하여금 매키 메서를 배신하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사건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피첨 부인 : "내가 어떻게 좀 해보죠. 돈이 세상을 지배하니까요. 곧장 턴브리지로 가서 그곳 아가씨들 좀 만나 봐야겠어요. 그 신사가 지금부터 두 시간 이내에 한 여자를 만난다면 그는 곧장 경찰에 넘어갈 거예요."(본문 속에서)

 

하지만 맥에게는 절친한 '경찰총장' 브라운이 있었다. 그 둘은 젊은 시절부터 친구였고, 직업상 이해관계가 아주 다름에도 진정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맥이 어떤 부탁을 해도 브라운은 거절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 런던 경찰 관청에 맥의 반대 세력은 없고, 고로 맥은 절대 잡힐 일이 없는 것이다. 과연 피첨 부부는 맥을 잡을 수 있을까?

 

"돈이 세상을 지배하니까요"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매우 적나라하게 꼬집고 파헤치는 이 희곡의 초반을,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끼고 이해관계가 완전히 달라도 신의와 우정을 지키는 모습으로 채운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맛보지 못한 이들, 아직 자본주의의 지독한 현실에 발을 담구지 않은 이들을 보여줌으로써, 극의 전체적 스토리 라인을 극적이게 구성하고 극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극명히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어쩌면 당연히 극의 후반부는 전반부와 완전히 반대되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맥을 위시한 노상강도단과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창녀들은 피첨 부부에게 매수되어 맥을 밀고하고 만다. 하지만 다른 창녀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맥이 무사히 도망가길 바라는 브라운과 폴리. 하지만 어이없게도 맥은 또 다른 여자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맥이 도망친 날이 하필이면 여왕의 대관식 일자와 겹치게 된다. 이를 이용해 피첨은 브라운에게 쐬기를 박는 일화를 건넨다. 옛날 어느 나라의 여왕 대관식 때 일어났던 하층민에 의한 소란. 그 때문에 여왕이 경찰 책임자에게 내린 엄중한 벌. 이 말에 브라운은 오랜 세월의 우정과 신의를 한 순간에 져버리고 무조건 맥을 잡아 죽여야 하는,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죽여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안위 때문에, 돈 때문에 행해지는 장인과 장모의 배신, 절친한 친구의 배신, 공생관계에 있던 창녀의 배신 등으로 점철된 맥의 인생. 하지만 이런 인생은 자본주의 하에서 너무나도 자주 일어난다.

 

사건의 시작과 끝은 '돈'


결정적으로 맥이 강도짓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가 바로 돈 때문이 아닌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서푼짜리 오페라>를 관통하는 사건의 시작이 돈이고 끝도 돈인 것이다.

 

맥은 교수형이 확정된 순간, 돈으로 간수를 매수해 위기를 탈출하려 한다.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 1천 파운드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의 노상강도단 부하들은 제 시간에 오지 못하고, 그의 아내 폴리에게는 돈이 없다. 또한 그의 절친한 친구 브라운에게는 오히려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이다.

 

결국 그는 1000파운드를 구하기는커녕 브라운에게 38파운드의 빚을 갚고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대관식을 기념한 여왕의 선처로 구원된다. 비록 실제 인생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여러분은 몰락하는 계층을 대표해서 몰락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낡은 쇠막대로 구멍가게의 니켈 금고나 터는 소시민 수공업자들인데 대기업인들이 우리를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은행들이 버티고 있죠. 주식에 비하면 곁쇠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은행을 설립하는 것에 비하면 은행을 터는 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에 비하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대수입니까?"(본문 중에서)

 

1928년에 쓰인 이 희곡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칼 같이 예리하다. 거즌 100년이 흐른 이야기지만 지금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세상은 돈이 지배하고 있고, 밥을 주지 않고 도덕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대기업은 소상인을 집어 삼키고 있다.

 

더 말해봐야 무엇하랴. 100년 동안 바뀌지 않은 이 거대한 시스템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기에. 그 안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테니. 맥은 죽음의 문턱에서 여왕에게 구원받지만, 현실에서 그럴 일은 없으므로. 현실에서 그 끝은 비참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2013.8.20일자 기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축구]


ⓒ연합뉴스

초등학생, 중학생 때까지 참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즐겼다. 매일같이 축구를 하며, 어떻게하면 더 잘할 수 있을 연구하곤 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가족이 둘러앉아 응원했다. 축구를 못하게 되면 울었을 정도이니, 짐작이 가시리라. 그렇게 어린 시절을 축구와 함께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도 축구는 계속 했다. 다만 예전같이 재미있지가 않았다. 어릴 때의 '재미'를 위한 축구가 점차 퇴색되어 갔기 때문이리라. 머리가 커지다보니, 축구를 함에 있어 어떤 위계 질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축구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과의 명백한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 내지 박탈감이었다. 즉,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축구를 마지막으로 하게 된 군대에서까지 계속된다. 


이후 나의 축구를 향한 관심은 다르게 표출된다. play(경기)에서 watch(TV)가 되고 다시 play(게임)가 되고 지금은 그냥 watch(방관)이 되었다. 직접 경기에 출전해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축구를 하다가,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직접하는 건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는 것마져 지쳐서, 축구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 저것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몸은 굳어져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어디 가서 축구 좀 아는 사람 정도의 지식만을 가진 채 방관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단적인 예로,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을 할 때마다 전 세계 누적 시청수가 몇 백억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그뿐이랴? 유럽선수권대회와 유럽 4대 리그 경기들도 이와 버금가는 인기를 구사한다. 당연히 그곳에서 오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축구는 더이상 '사람들에 의해서' 굴러가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축구'가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지경에 이르렀는가? (나름 추측, 연구, 조사를 해보았다. 이 가운데 추측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자세하고 학문적인 해석을 원하신다면 따로 책을 구입해서 보는 게 좋은 듯.) 


축구의 종주국은 영국이다. 영국은 또한 산업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가? 그렇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와 축구가 시작된 시기는 엇비슷하다. 본래 옛날부터 공을 가지고 하는 놀이나 경기가 있어왔지만, 거기에 정형화된 규칙이 적용되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리게 된다.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에 하릴 없이 노닐다가 공을 발견한다. 그렇게 공놀이를 하게 된다. 이를 본 관리자는 자신이 나서서 규칙을 만들기도 하고, 심판을 보기도 한다. 분별없이 쉬는 시간을 허비하는 노동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여하튼, 걔 중에는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잘하진 못해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다. 그들은 동호회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클럽이 생기기 시작한다. 초창기에 이들은 노동자 생활과 축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영국 전역의 산업혁명 중심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지금의 맨체스터, 리버풀 등은 산업혁명 당시의 중심지였다. 


산업혁명의 열기는 전 세계를 덮기 시작하고, 자연스레 축구의 열기도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다. 점차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어가자, 돈이 몰리고 전업 축구 선수가 출현하고 스타가 탄생한다. 동호회 모임 대회는 도시 대항전이 되고 전국 대회가 되고 급기야는 전 세계 선수권 대회가 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22명의 몸좋은 선수들의 경기에 열광한다. 그 크기에 압도되고,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감동한다. 그리고 압도되고 감동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덩달아 신난다. 비로소 축구는 축제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축구의 본질은 사라진다. 


축구는 사람들 손에서 시작했지만, 곧 그 손을 떠나 세상을 횡행한다. 소설가가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사실 그 캐릭터는 이미 소설가의 손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지만 대중에게 내놓는 순간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축구는 그렇게 사람들 손에서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이제 축구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돈으로 지배하고, 축구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로 지배하고, 결국은 축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정신적 지배. 


사실 축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축구를 피해갈 수 없다. 관련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물질적 이득을 주겠고,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이득을 준다. 그리고 이들의 수는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들은 고립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90% 이상 추측에 의한 해석이니, 재미로만 봐주세요. 

올바른 해석을 알고 계신 분께서는, 가차없는 해체와 비판, 비난, 비평을 해주세요. 


언젠가는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를 올리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