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우리를 찾아온 지 어언 10여 년이 되어가는 이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주)노바미디어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날, 소년이 얼굴을 찌푸리며 숨을 몰아쉬고는 토를 하며 울고 있다. 지나가던 여자가 토사물을 치우고 소년을 토닥인 후 자신의 집으로 이끈다. 그러곤 목욕을 하게끔 한다. 집에 돌아가 진찰해보니 성홍열이란다. 몇 달을 요양하고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여자의 집으로 향한다. 이후에도 계속 찾아간다. 훔쳐본다. 


소년 마이클에게는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여자 한나는? 어느 날 그녀는 마이클에게 일을 시키고는 목욕을 하게끔 한다. 그러고는 전라의 몸으로 그를 유혹한다. "이럴려고 온 거 아니야?" 마이클은 그럴려고 간 거였다. "당신, 정말 아름다워요." 둘은 사랑을 나눈다. 잠깐, 그들이 사랑을 나누기 전에 하는 것이 있다. 일종의 의식처럼 되었는데, '책 읽기'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준다.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오랫동안 다가가기 힘들었다. 30대 여성과 10대 남성의 성관계를 동반한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이유다. 다 보고 나서야 하는 얘기지만, 사랑은 정녕 모든 걸 초월할 수 있다. 사랑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엄청난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에서 그 장애물이라는 건 상상을 초월한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근본'은 변할 수 있는가?


나치 협력자라는 '근본', 변할 수 있을까?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한나의 경우는? 영화는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주)노바미디어



영화는 현재인 1995년에서 마이클이 과거 1950~60년대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나와의 짧지만 강렬한 만남, 마이클에겐 첫경험이기에 그의 자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할 수 없는 근본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근본은 변할 수 있는가?


사무직으로 승진해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한나, 마이클에겐 말도 하지 않고 떠나게 되어 마이클은 충격에 휩싸인다. 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 실습의 일환으로 나치 전범 재판을 참관한다. 그곳에 떡 하니 앉아 있는 한나, 마이클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인다. 그녀가 나치 협력자일 줄은... 하지만 충격은 계속된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마이클의 충격, 그건 모두 한나에 의해서다. 그 이면에는 '나치'가 있다. 한나로 대변되는 나치 협력자, 즉 전쟁 세대와 마이클로 대변되는 전후 세대. 마이클 동료 중 한 명은 재판을 할 필요도 없이 그들을 총으로 쏴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이클은 한나를 사랑했던 바, 그런 식으로 그녀를 대할 수 없다. 사랑 앞에선 나치 범죄도 한낱 과거의 일일 뿐인가?


이제 답해야 한다. 근본은 변할 수 있는가? 나치 협력자라는 근본이 변할 수 있는가? 인류 최악의 범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종류인가? 하지만 한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시키는 대로 충실하게 시행했을 뿐... 악마인가, 충실한 일꾼인가, 의도된 연출인가,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악의 평범성'을 대변하는 인물인가. 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죄'에 대해서


우린 계속 생각해야 한다. '죄'에 대해서 말이다. 영화에서는 나치의 죄다. 힘겹지만 후세가 지니고 가야 할 숙명. ⓒ주)노바미디어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수많은 인종학살, 즉 인종대청소도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다. 나치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역사상 가장 잔인한 인종학살을 일으켰다. 독일인이 가장 월등한 민족이고 유대인이야말로 없어져야 할 민족이라는 명목 하에. 


여기서 '많은 인종학살이 있었는데, 왜 나치만 갖고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나아가 '수많은 악마 같은 이들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데, 왜 한나만 갖고 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그들의 죄를 단 1%도 다시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죄'는 각각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어 다른 어떤 '죄'와도 한통속으로 묶을 수 없는 것이다. 각각의 '죄'는 각각 처벌 받아야 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이것과 일맥상통하진 않는다. 다만, '죄'를 생각할 때, 나치 전범이라는 사상 최악의 죄를 생각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그렇지만 마이클의 동료가 말했듯이, 나치를 모조리 악마로 묘사하며 지상에서 없애버려 독일의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해버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죄'에 대한 심판도 거치지 않고 말이다. 심적으론 100% 동의한다.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다. 


하지만 전후 세대는 야만과 비이성의 시대를 딛고 이성의 시대를 열어 과거 청산에 기치를 내걸었다. 그 와중에 다시 야만과 비이성이 들고 일어선다면, 그들과 우리를 구분짓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상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하나 같이 안타까운 일만 초래했을 뿐이다. 제대로 된 심판이 필요한 바, 하지만 한나 같은 경우는 심히 어렵고 괴로울 수 있겠다. 끊임없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후세가 지니고 가야 할 필연적 숙제이자 사명이다. 


'사랑'과 '죄'의 메시지를 기가 막히게 조화시키다


영화는 '죄'에 대한 무거운 통찰과 함께 '사랑'을 얘기한다.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한다'는 명제가 이를 관통한다. 과연 어떨까? ⓒ주)노바미디어


영화는 파릇파릇 즐거운 짧은 사랑이 지나고, 형용할 수 없는 아이러니와 무너짐의 시련을 지나, 기다림과 참회와 진정한 사랑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지극한 사랑이야기, 그것이 이 영화의 실체라면 실체다.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나치'라는 존재가 워낙 강하기에 그곳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화를 관통하는 한나의 속사정, 그건 '책 읽기'와 관련이 있다. 


사랑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인가. 인류 최악의 범죄보다 더 숨기고 싶은 사실은 무엇인가. 나치 협력이라는 근본은 절대불변의 악마적 소행인가. 내가 마이클이라면, 내가 한나라면? 내가 전쟁 세대라면, 내가 전후 세대라면? 심판하고 심판받고, 용서하고 용서받고, 책임을 나누고 책임을 받아들이고.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고 싫은 것들 뿐이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수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하나 같이 머리 아픈 것들. 그렇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들.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게 답이 아닐까. 이실직고 용서를 구하고, 깨끗하게 심판하고 받아들이고, '나'의 책임은 아니지만 '우리'의 책임으로 인지하고 책임을 나누고, 후대에게 이 모든 걸 거짓 없이 전달하고. 영화는 사랑이야기라는 실체와 더불어 또 다른 실체인 '역사 의식'을 일깨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적으로 각이 지지 않고 유려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말과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한다'라는 말을, 둘이 맞붙을 때 상충되지 않을 수 없는 메시지들을,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조화시켜 놓는다. 한나가 자신의 치욕적 비밀과 최악의 범죄 사이에서 고민하고, 마이클이 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였다. 마이클은 진정 한나를 사랑했고, 한나는 치욕적 비밀을 지킨 끝에 죗값을 받았다. 지극한 사랑, 비밀의 사랑적 승화, 합당한듯 합당하지 않은듯한 죗값. '죄'에 대해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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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문제적 과학책>


<문제적 과학책> 표지 ⓒ윌북



역사, 그중에서도 인물과 사건, 관계와 연도를 좋아하다 보니 어떤 것에 관심을 갖을 때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인다. 음악, 미술, 스포츠, 과학 등. 클래식은 잘 안 들어도 클래식의 역사는 좋아하고, 그림은 잘 못 그려도 미술의 역사는 어느 정도 알며, 운동은 잘 못해도 스포츠의 역사에는 관심이 많다. 과학? 과학은 정말 젬병이라, 한 줄 이해하기도 벅차지만 과학의 역사는 무진장 좋아라 한다. 


책도 좋아하는지라, 해당 분야의 고전들을 많이 알고 있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역시 알고 있을 뿐 정작 읽은 건 많지 않다. 위에 제시한 것 중에서 음악, 미술, 스포츠 등은 굳이 책까지 필요하진 않은 분야들이다. 반면 과학은 조금 다르다. 논문 형태로 이론을 주장하고 전달해야 한다. 논문이 곧 책이 되는지라, 과학사를 대표하는 몇몇 책들을 익히 알고 있다. 물론 소수의 책은 직접 읽기도 했고. 


생각나는 책들을 읊어보자면,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제임스 D. 왓슨의 <이중 나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 은근히 많다. 이중에 읽은 건? 뒷 부분의 2~3권 정도. 


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과학은 잘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역사와 책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인간을 위한 맞춤 도서가 나왔다. <문제적 과학책>(윌북). 정말 짜맞춘 듯한 기획이다. 기원전 몇 백년에 나온 고전 중에 고전부터 불과 30여 년 전에 나온 신고전까지 36권 36인을 중심으로 다뤘다. 인류의 과학사가 그들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을 터, 그 전후로 그보다 많은 이들과 저서도 다룬다. 


이 책은 다분히 비과학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과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한 위대한 이들과 저서를 나열하며 그야말로 과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 이론을 주장, 설파하거나 중구난방 흩어진 과학 이론들을 집대성 하는 '과학적' 작업이 아니라, 지극히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과학의 역사. 과학사. 


역사의 소중함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역사'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아무래도 지나간 것들이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과학의 경우, 지나간 것들 중 상당 부분이 '틀리다'고 판명나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거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틀린 것이고, 뉴턴의 법칙조차 계속해서 도전을 받는다. 오랫동안 절대적 진리로 군림한 베이컨적 사고 방식도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는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깨질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획기적이다. 과학사를 아주 쉽게 빨리 훑을 수 있다. 특히 책을 완전히 다 읽지 않아도, 과학사의 중추에 해당하는 책들과 핵심적인 설명만 보아도 된다는 게 엄청나다. 물론 과학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기본 입문 이상이다. 


'종합' 이론의 전략, 그 앞엔 '기원'이 있었다


책을 보다 보면, '종합'이라는 게 눈에 띈다. 현대로 올수록 그 단어가 갖는 의미가 강렬해지는데, 경영 전략 용어로 '2등 전략'이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흔히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만한 발견을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이라고 하는데, 그런 그조차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견해를 내세운 첫 번째 인물이 아니다. 그는 여기저기 흩어지고 제대로 중심이 잡혀 있지 않은 주장과 이론들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식의 집대성 혹은 종합은 뒤로 갈수록 많아 진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들의 책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이 그렇다. 이밖에도 많지만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충분한 베스트셀러들이다. 20세기 과학사를 대표하는 이들과 저서들은 위대한 선배들의 이론들을 하나의 거대 설명으로 엮어, '말쑥한 제목'과 '유려한 문장'과 '생생한 비유'로 쓰여 대중들을 사로 잡았다. 


우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너무도 잘 알지만, 그가 있기까지 J. B. S 홀데인이나 윌리엄 D. 해밀턴, 조지 로버트 프라이스는 잘 모른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빅뱅 이론뿐만 아니라 과학사, 나아가 책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책이지만, 스티븐 와인버그가 없었으면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훌륭했다는 것이 있지만, '기원'은 아니었던 바 기원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겠다. 접하는 이들도 말이다. 


'앎'에서 오는 행복, 그럼에도 불편한 '과학' 책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비록 과학 그 자체라고 할 순 없지만 과학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내가 과학을 전혀 모르고 그래서 관심도 거의 없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거다. '앎'에서 오는 행복은 특별하고, 모르는 데에서 오는 앎은 더더욱 특별하다. 또한 앎이라는 게 과학과 형제가 아닌가. 


다만, 다분히 서양 중심적이라는 걸 알아야 하겠다. 원제에서 알 수 있는데, 'The Story of Western Science'다. 개인적으로 동양에도 과학이라는 게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동양 과학에 문외한인데, 동양 과학은 전혀 실려 있지 않은 게 아쉬웠다. 어쩌면 함께 싣는 게 불가능했을 거다. 사고 체계가 달랐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원제는 제대로 된 것이고,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책 36권'이 좀 걸린다. 서양만이 과학을 했고, 세상을 바꿨다는 말인지...


책을 읽는 내내 역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비전문가를 위한 과학사 책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전혀 알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던 거다. 지은이와 옮긴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쉽게 풀고 추가적으로 설명했음에도 말이다. 과학 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퍼지고 있는 요즘 딱 알맞은 책이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 책 또한 그 시류와 함께 한계를 빗겨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좋은 시도이고 계속 이어나가야만 하는 시도이고 언젠가는 한계를 뛰어넘을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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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근현대사 5>



<중국근현대사 5> 표지 ⓒ삼천리



2007년에 발발한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극심한 타격을 받고 침몰하는 사이에 중국식 자본주의가 급부상했다. '팍스 로마나'를 빗댄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팍스 시니카'까지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중국은 세계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데, 자본주의라니. 


그래서 그들이 택한 게 바로 정치와 경제의 모순이다. 정치로는 과거 마오쩌둥 시대에 보여줬을 만한 강력한 통제 강화를, 경제로는 과거 어느 시대에서도 보여준 적이 없던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시행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보여주려는 새 시대를 이끌 중국식 자본주의, 즉 중국 모델이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듯이 정치와 경제의 완벽한 모순이다. 


이 모순이 커져 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에 상응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줄 지을 것도 자명하다. 한편으로 당분간은 중국이 세계 경제의 키를 주고 있을 것이다. 현 시대에서 경제의 키를 주고 있다는 건 국력의 크기도 자연스레 상승한다는 얘기다. 즉, 중국은 초강대국의 위치에 다다랐고 앞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한편 과거 200여 년 동안 빼앗겼던 세계 초강대국로서의 위치에 대한 피해자 의식이 여전하다. 중국을 의식한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러시아와의 사이를 진전 시키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의 꿈'을 외친 시진핑의 취임연설은 특별했다.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꿈이라고 했다. 일면 중국의 꿈이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중국의 현대사를 살피며 미래를 말하다


이처럼 중국은 그야말로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정치와 경제의 상반된 행보는 둘째 치고, 모든 국가적 행보에서 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감정적이다.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 행방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중국의 근현대사를 말이다. 1949년 중국의 건설 후 60년이 넘게 일관된 정치 체제를 유지해온 만큼, 그 역사를 살펴보는 게 그 미래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현대사에서 1978년 제11기3중전회를 시대를 나누는 분기점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때를 기점으로 해서 덩샤오핑에 의해 중국에 '개혁개방'이 시작되었고 '개혁개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국 개발주의 시대의 최고 최강의 구호이다. 그런데 <중국근현대사 5>(삼천리)의 저자 다카하라 아키오와 마에다 히로코는 그때가 아닌 1972년을 기점으로 보고 있다. 


1972년이면 아직 마오쩌둥이 집권할 당시로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인데? 어찌 그때가 시대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개혁개방이라는 말 자체가 1980년대 후반에야 정착된 개념이라고 말하며, 1978년 제11기3중전회를 시대를 나누는 분기점이라고 말하는 건 정확한 역사 인식이 결여된 설법이라고 주장한다. 나중에 승리한 자들이 만들어 낸 스토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1972년인가? 저자는 마오쩌둥도 경제를 중시했다고 말하며, 그의 지시로 1971년에 임금을 인상하고 1972년에는 대규모 플랜트 도입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플랜트는 생산 설비 혹은 제조 설비 일체를 말하는 것인데, 문화대혁명이 한창인 시절에 이미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외교정책에도 전환이 있었는데, 1971년에 키신저 미국 대통령 보좌관이 중국을 방문했고, 같은 해에 중국은 유엔에서 대표권을 획득했다. 이어 1972년에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중국은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야말로 경제와 외교에서 전에 없는 '전환'을 선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오쩌둥 이후의 중국현대사


이후 저자들이 말하는 중국현대사는 일반적인 통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한 덩샤오핑을 부활시킨 마오쩌둥, 이어지는 4인방의 저우언라이에 대한 맹렬한 비판, 그리고 4인방에 의해 3번째 실각하는 덩샤오핑, 마오쩌둥의 죽음과 4인방 체포. 그리고 다시 부활한 덩샤오핑. 이렇게 중국현대사의 1세대가 마감한다. 


그리고 열린 덩샤오핑에 의한 중국현대사 2세대 시대. 덩샤오핑은 이후 3세대까지, 즉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덩샤오핑을 말하는 수식어는 상당히 많은 데, 정치적으로는 세 번 실각하고 세 번 부활했다고 하여 '오뚝이'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이다. 그야말로 중국현대사는 그가 열어 젖힌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덩샤오핑을 그렇게만 그리지 않는다. 그가 경제적으로 개혁개방을 어떻게든 견지한 건 맞지만, 정치적으로는 마오쩌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건이 그 유명한 '천안문 사건'이다. 


1989년 4월, 한때 덩샤오핑의 후계자였던 후야오방의 타계를 계기로 학생들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도 활동을 했고 이 움직임이 점차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발전했다. 이에 당은 이 활동을 반당·반사회주의 폭동이라고 단정했고 학생들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다. 당에서도 온화한 해결과 강경한 탄압의 의견으로 나뉘었는데, 결국 강경론자의 승리로 천안문 광장에 대한 계엄령이 발표된다. 계엄군과 시민·학생들이 충돌한 결과 엄청난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이 사건으로 또 다른 덩샤오핑의 후계자인 자오쯔양이 실각한다. 그리고 정치개혁은 정지된다. 


정치개혁이 정지한 상태에서 경제개혁에 더욱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된다. 이 상황에서 덩샤오핑이 택한 수는 그 유명한 '남방담화'. 1992년 초 덩샤오핑은 상하이, 우한 등이 있는 광둥 성 경제특구를 시찰하며 지방 간부들에게 더욱 대담하게 개혁개방을 가속화할 것을 강력히 호소한다. 중앙에서 먹히지 않으니 지방에서 목소리를 키워 중앙으로 가려는 생각이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다. 


그리고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선택된 장쩌민. 그는 큰 탈 없이 적절한 균형을 지키며 국정을 이끈다. 즉, 덩샤오핑의 영향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주룽지 총리 역시 덩샤오핑의 말을 받들어 철저하게 경제개혁을 실시했다. 


완연한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중국, 그리고 미래


완연한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위치에 다가가게 된 2002~2012년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 이 시대는 분명 후진타오가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가 완전한 중앙은 아니었다. 장쩌민이 완전히 은퇴하지 않고 일부분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명 장쩌민계가 정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치열한 권력투쟁이 있을 법 했지만 교묘히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다. 


이 시대는 이른바 '조화로운 사회'를 천명하며 균형적인 발전에 유념했다. 그럼에도 가속화되는 성장에 따라 소득 불균형 또한 가속화되었다. 이 사회 모순은 중국이 짊어져야 할 숙명처럼 된 인상이다. 정치개혁 없이 성장이 가속화될수록 모순 또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지나 시진핑 시대가 도래했다. 시진핑 정권은 가속화되는 사회 모순을 완전히 무시하기라도 한 듯, 전에 없는 정치 규제와 경제 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의 세계 초강대국으로의 진입은 기정사실화되었다. 포브스가 발표한 2015년 세계 기업 순위에서 1~4위를 중국의 4개 은행(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은행)이 싹쓸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말 무서울 정도이다. 


하지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언젠가 반드시 내려올 터인데, 지금 상태로 중국이 경제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다면 이후의 상황이 어찌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인터넷 시대니 만큼, 과거 덩샤오핑처럼 혼자의 힘으로 정국의 방향을 꺾는 시대는 지났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시진핑은 그런 그릇으로 보이진 않는다. 과도기의 인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 시대를 이끌 인물이 필요한 법. 다음 시대에는 어떤 인물이 나올지 궁금하고 한편 걱정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사정을 보니 이웃 나라일지라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혁명 원로의 자손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보수주의·국수주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진핑이라면, 자신의 후계자 역시 비슷한 삶과 생각을 가진 이로 들려고 할 텐데 말이다. 포스트 시진핑 시대에 중국현대사를 결정할 또 다른 큰 분기점이 도래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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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중국근현대사 5' '찌라시의 중국이야기'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삼천리의 '중국근현대사 5'(다카하라 아키오, 마에다 히로코 지음 // 오무송 옮김)

굿플러스북의 '찌라시의 중국이야기'(송명훈 지음)


<중국근현대사 5>는 역사, <찌라시의 중국이야기>는 인문인 것 같네요.


공교롭게도 두 책 모두 '중국'에 관련되었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중국학부 출신이고 또 그것과는 별도로 중국에 관심이 많기도 하구요. 


<중국근현대사 5>보다는 <찌라시의 중국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바로 읽기 시작했지요. 

65쪽까지 보다가 멈췄어요. 신간을 읽다가 멈춘 건 또 엄청 오랜만이네요.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편집이 문제더군요. 인기 팟캐스트를 책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엮은이가 있더군요. 

즉 지은이가 아닌 엮은이가 글을 썼다는 얘기인데, 맞춤법은 그렇다고 해도 문장이 너무 형편 없었어요.

표지도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이고요... 팟캐스트는 재밌던데 책은 왜 이런지ㅠㅠ 안타깝습니다. 


<중국근현대사 5>는 전부 아는 내용이라 읽지 않으려 했는데요. 

조금 읽어보니까 제가 아는 중국 근현대사와 다른 시선이더군요. 

부제가 '개발주의 시대로 1972~2014'인데, 통상적으로 1972년이 아닌 1978년 제11기3중전회를 시대의 분기점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1972년 마오쩌둥의 플랜트 기술 도입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더군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던 부분입니다. 재밌을 것 같아요. 


다음 주 서평은 <중국근현대사 5>로 정했습니다^^

<찌라시의 중국이야기>는 정말 안타깝네요ㅠ


책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로요~

중국근현대사 5

찌라시의 중국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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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정은문고의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나가이 가후 지음, 정수윤 옮김)

메디치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김시덕 지음)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은 에세이,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역사인 것 같아요.

보니까 공교롭게도 둘 다 일본에 관련된 책이네요. 흠흠.


일전에 도쿄를 가본 적이 있는데, 20세기 초 일본 최고의 문학가가 쓴 도쿄 산책기라고 하니 

조금 구미가 당겼어요.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왠지 모르게 귀엽지만 날카로울 것 같군요. 

에세이는 잘 안 읽지만 '도시' 에세이라서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김시덕 교수는 임진왜란 전문가 중 한 분이신데, 

이번에도 역시 임진왜란과 관련된 저서를 출간하셨네요. 아마도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시선이겠죠? 

우리나라 역사의 영원한 숙제인 '임진왜란'을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 지 개인적으로 엄청 기대됩니다. 


다음 주 서평으로 어떤 책을 고를 지 굉장히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겠는데요. 

다음 주에는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다다음 주에는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의 서평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로요~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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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 현대사의 민낯>



<한국 현대사의 민낯> ⓒ철수와영희



어릴 때부터 역사를 워낙 좋아해서 한때 역사학자라는 거창하지만 아주 구체적인 장래의 직업을 상정해 놓고 있었던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람 이름, 사건, 날짜, 지도를 좋아했던 것 같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하며 지나가면 마음 편하겠지만, 마냥 그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에게 역사란 단순히 유명한 사람들의 유명한 사건들 나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왜 그랬는지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마냥 그들이 행했던 무엇을 외우는 게 재미있었던 거다. 커서 어른이 되면 그들처럼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들의 삶과 그 사건이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처럼 재밌게 읽혔던 것 뿐일까? 알고 보면 사실 역사를 좋아한 게 아니었던 걸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유명한 사람들과 유명한 사건들을 좋아하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진짜 모습을 알기가 참으로 힘들다. 이념적 갈등이 너무나 극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역사 시간에 들었던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 민낯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역사에 무지했던 사실이 드러난다. 단적인 예로,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 되었다고 배웠다는 것. 이게 맞는 사실인가?


진실을 규명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독립운동가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인 김상웅과 출판평론가이자 북칼럼니스트인 장동석이 만나 진실을 규명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였는데,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 그 책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한국 현대사의 진짜 모습을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은 책이 또 한 번 단계를 넘어서게 해주었다. 


책을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몇 단계나 넘는 경험을 했다. 나라를 세운 아버지라는 뜻의 '국부' 이승만을 두고 신채호 선생이 한 말 때문이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 미국에 있던 이승만이 미국에 한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시했을 때, 이를 두고 신채호 선생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는데 이승만은 아직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승만을 우리는 국부라고 칭하며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나. 정확히는 그렇게 부르도록 교육을 받은 것이고. 이승만의 파행은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다. 해방 전후, 전쟁 전후 한국의 비극 중 이승만과 연관된 게 부지기수이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가히 괴물 같았던 그는, 한국 초대 헌법 초안이었던 내각책임제조차 대통령제로 바꿔 자신의 권력욕을 산화 시키지 않고 발화 시켰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을 연달아 연출한다. 친일파를 처단할 수 있는 기회였던 반민특위를 해체 시켜 버렸고, 전쟁을 막지 못한 건 둘째 치고 전쟁이 터지자 마자 남쪽으로 도망가며 한강 철교를 폭파 시켜 버린 것이다. 그 북쪽에 있던 사람들, 당시 한강 철교를 건너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리고 남쪽으로 피신을 가서도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해 국회위원을 잡아 들이기까지 하면서 다시 한 번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헌법도 바꾸고, 선거도 불법으로 하는 건 기본이었다. 


인물들과 사건들이 곧 역사를 구성한다


이 책은 이렇듯 짧은 분량에서도 이승만에 대해 많이 다룬다. 그만큼 그의 재조명이 필요하고, 재조명을 할 시 한국 현대사의 민낯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운형, 김구, 조봉암, 장준하 등을 다룬다. 이들은 하나 같이 비극적인 죽음의 주인공들인데, 개인적으로 여운형의 죽음이 제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당시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신망을 받은 정치가로서, 살아서 그 뜻을 올바르게 펼쳤다면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뒷부분에는 이승만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다뤄야 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박정희가 다뤄지는데, 몰랐던 사실이 드러난다. 박정희가 행했던 쿠데타는 1번으로 1961년의 5·16만 알고 있는데, 사실 10 여 년 전인 1952년에 쿠데타 모의가 있었다고 한다. 6·25 전쟁이 한창인 당시, 이승만 정권을 타도할 목적으로 쿠데타를 모의 했는데 수뇌부의 동의를 얻지 못해 좌절되고 말았다. 


박정희 독재 정권 반대의 최선봉에 있었던 장준하 선생. 그의 의문스러운 죽음은, 이전의 여운형, 김구, 조봉암의 죽음과 궤를 같이하는 느낌이다. 배후를 알 수 없는 죽음, 배후는 알지만 미심쩍은 죽음, 이유도 있고 배후도 있고 미심쩍지도 않지만 안타깝기 그지 없는 죽음까지. 한국 현대사에서는 왜 이렇게 안타까운 죽음이 많은지, 왜 이렇게 세상을 바꿀 만한 이들의 석연찮은 죽음이 많은지. 


이들의 죽음, 그 진상만 제대로 밝혀져도 왜곡된 한국 현대사를 어느 정도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또는 이들의 삶이라도 제대로 서술 되어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유명한 인물과 사건들이 곧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내가 역사를 보고 느끼는 방식이 그렇게 잘못된 건 아닐 테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제대로 밝혀야 할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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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더좋은책

고 스티브 잡스가 남긴 명언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인문에 관한 말을 소개해본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말함일까? 바로 '인문'이다. 역사의 길이 남을 최고의 CEO였던 그가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인문'과 바꾸겠다는 것은, 그에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애플은 변함없이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최고의 기술은 인문에서 비롯된다. 바야흐로, 인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문'이란 무엇인가? 한자로 '사람인'과 '글월문'.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학문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이 인문학에 범주에 들어간다. 그런 인문학을 요즘 들어 많이 찾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스펙을 강조했던 기업에서 그 어느 때 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왜 그런 것일까? 인문학에 그들이 원하는 게 있을까?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더좋은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문학은 (줄임)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 코드를 제공해주게 된다. 문화 트렌드와 콘텐츠들을 더욱 잘 이해하고 재생산 해내는 데 있어 과거에 고리타분한 사람들이나 향유하는 것으로 여겼던 인문 지식이야말로 더없이 중요한 문화의 기초공사였던 것이다."(5쪽)


여기에 인문학의 실용성이 많이 강조되면서 특히 기업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에 거는 기대는 단순히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의 본질이 '인문학'에 있다. 


다들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알았다. 그런데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그 방대한 콘텐츠들을 어느 시간에 섭렵해야 하는지 막막함이 밀려올 것이다. 물론 수많은 인문교양서들이 이미 시중에 나와 있다. 그 중엔 기초 상식을 전하는 서적도 있고, 전문적 지식을 전하는 서적도 있다. 


하지만 산발적이거나 한 분야의 지식에 치우쳐 있어, 인문 교양 초심자에게는 맞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에 어느 정도 깊이도 있고, 어렵지도 않으면서 체계적으로 기초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을 냈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6가지 주제로 나눠진다.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 이슈'. 짧게 소개해본다. 


심리학 - 무의식으로 새로운 해석의 차원을 연 프로이트, 심리학의 아버지 분트에서부터 

현대 심리학의 대세인 인지심리학까지. 다양한 관찰 실험법과 심리학 베스트셀러를 소개.

회화 - 각 유파 간의 인과관계를 추적, 인상파부터 현대 회화까지 소개. 빈 분리파도 소개.

신화 - 그리스신화를 다루었다. 올림포스 12신과 전쟁 영웅들만 정리. 계보를 정리했다.

역사 - 유럽사를 중심으로 역사적 인과관계를 다루었다. 원인과 결과가 논리적으로 연결.

철학 - 고대 철학자부터 현대의 거장까지 각 철학의 주요 쟁점들을 이해하기 쉽게 다루었다. 

논쟁이 어려운 철학자들도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덧붙여 소개한다. 

글로벌 이슈 - 세계화, 신자유주의, 환경, 종교 및 지역 분쟁들을 소개해 현대 문제 이해.


인문학의 기본이 되는 지식들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책 속을 들여다본다. 


그렇다면 융이 말한 자기실현이란 무엇인가? 자아가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이를 조정하는 의식이라면, 자기는 의식 또는 자아와 집단 무의식까지를 포함한 무의식 전부를 통합하는 핵심을 말한다. 자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자기실현으로, 인간의 삶은 바로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융의 이런 생각들을 가장 유사하게 담아낸 책을 하나 소개한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될 것이다. - 1장에서


유명한 심리학자 융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이론이다. 저자는 이를 유명한 베스트셀러로 희석시키고 있다. 그 이론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익숙한 텍스트로 이해하고 나서 관련된 이론을 접한다면 한층 알기 쉬울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은 그 이론 자체의 실효성 문제다. 정말 그 이론이 현실에도 잘 반영되느냐 하는 것이다. 일단 래퍼의 곡선은 현실과 다르게 그려졌다. 1980년부터 1984년 사이에 미국은 1인당 평균소득이 4% 증가하였지만 세수는 줄었다. 결국 레이건 정부는 재정 적자와 달러화 강세로 인한 무역 적자가 겹쳐 쌍둥이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은 도산했고, 인수 합병에 대한 규제가 없어지면서 기업의 독점 현상이 늘어났다. 독점 현상을 경계하던 그들이 독점 현상을 키운 꼴이 된 것이다. - 7장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쟁점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다. 역시 단순한 이론 텍스트의 열거 보다는 실례를 들어 알기 쉽게 풀어주고 있다. 


인문의 바다에 푹 빠지기 전, 기초적이지만 필수적인 부분을 알고 싶으신 분들께 알맞은 책이 될 것 같다. 자기계발이나 심리 치유 서적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사람들에게 힘을 지고 치유하고 있지만 정작 돌아서면 남는 게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인문서를 접해보는 게 어떠한가. 최소한 이 정도 인문 지식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인기에 힘입어 2권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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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 가족의 역사>


<내 가족의 역사> 표지 ⓒ북멘토

주말에 아내의 말을 듣고 골동품 시장을 산책하는 한 남자. 마음에 드는 책이 있어 흥정을 하고 있던 도중, 근처에서 상인과 손님이 시비가 붙는다. 상인은 '애국주의의 국보'라는 물건을 너 따위에게 팔 수 없다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시비가 일단락 나고 그 물건에 흥미를 보이는 남자. 상인에게로 가 물으니 그 물건은 일본과 청나라가 싸우는 그림이라고 한다. 급격히 관심을 갖는 남자. 컬러이고 20~30폭을 하나로 합쳐 놓았다는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상인을 따라 후미진 곳으로 따라 나선다. 


그 그림의 제목은 <지나정벌쌍륙도>. 1894년에 그려진 것으로 '청일 전쟁'이 배경이다. 상인은 그림의 값으로 최소 2만 위안(약 360만 원) 이상을 부른다. 남자는 그따위 것이 그리 비쌀 이유가 있냐며 따지지만, 상인은 그 그림이 '일본인들이 중국을 괴롭힌 역사를 그린 것이기에 자손 대대로 남겨 교훈으로 삼아야 할만 한 가치가 있다'며 오히려 남자를 설득한다. 결국 이들은 생각 끝에 260 위안(약 5만 원)에 사흘만 빌리기로 한다. 상인은 남자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고, 남자는 상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 만화 <내 가족의 역사>(북멘토)의 주된 줄거리는 이게 거의 전부다. 사실 여기에서 한 남자는 저자인 리쿤우이고, 아마도 상인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은 사실에 기초했을 것이다. 만화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미덕인 희극적인 요소를 이 만화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에 그림체가 굉장히 거칠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즐길 만한 구석 또한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만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만화를 포기하는 대신 실제 그림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


그 첫 번째 이유는 <지나정벌쌍륙도>이다. 이 그림은 일본인이 그린 것으로, '쌍륙'은 일종의 장기 같은 게임이라고 한다. 즉, 당시 일본인들은 중국과의 전쟁을 게임으로 생각했던 것. 만화에서는 이 20~30폭으로 되어 있는 그림을 실사로 보여준다. 만화를 포기하는 대신 실제 그림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히 전했다. 그림을 똑같이 다시 그리려고 하지 않고, 그림은 그대로 둔 채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면들이 더 믿음이 간다. 저자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느껴진다. 


상인 라오치와 남자는 다시 만난다. 라오치는 믿음이 가는 남자에게 일본의 중국 침략에 관한 옛날 사진을 소개 시켜 주려 한다. 그것도 전부 일본인이 찍은 사진들을. 그 사진들은 라오치의 스승이 오랜 시간 동안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들이었고, 남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만화가 시작할 때 쯤 라오치가 말했던 '애국주의의 국보'를 볼 자격이 남자에게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는 기대 반 불안함 반으로 라오치와 같이 찾아간 라오치 스승의 집에서 다름 아닌 '중일 전쟁'에 관한 옛날 사진 수 백 장을 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밤중까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일본어로 되어 있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사진 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지는 전쟁의 상흔들... 그 사진들은 그 자체로 역사다. 


채 반도 되지 않은 시점부터 책은 더 이상 만화임을 포기한 듯하다. 총 270여 쪽에 달하는 책은 100여 쪽부터 계속해서 '중일 전쟁'에 관한 옛날 사진들을 보여준다. 거기서 이 책이 만화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중간 중간 보이는 말풍선과 카메라 그림, 그리고 그에 관해 말을 주고 받는 장면들 뿐. 하지만 그 장면들조차 이 사진들을 설명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사실상 만화가 가지는 가치나 미덕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만화 외적으로 파격을 시도하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 이 만화가 갖는 두 번째 가치가 있다. <지나정벌쌍륙도>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듯 이 사진들도 있는 그대로를 실었다는 것. 이쯤 되면 단순히 작가가 전하려는 바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함을 넘어, 만화 외적으로 파격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화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간략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할 때, 그 중심을 '이야기'에 두느냐 '그림'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요즘은 '그림'에 월등한 방점을 두고 예쁘고 멋있게 그리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만화 <내 가족의 역사>는 '이야기'를 넘어서 '메시지'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완벽히 하기 위해서 '이야기'와 '그림'이라는 만화의 두 축을 일정 정도 포기한 것이리라.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사진이 정말 질릴 정도로 많이 나오기 때문에, 솔직히 한 번 이상 보기가 힘들다. 그걸 작가도 잘 알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책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렇다면 이 책을 보고 깨달은 게 있어야 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하겠다? 나쁜 일본 놈들을 더욱 증오해야 겠다? 매국노들이 한 짓 또한 잊어서는 안 되겠다? 역사 교육을 다시 제대로 해야 겠다? 이 모든 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작가의 말로 대신한다. 


"해묵은 감정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건드릴 수 없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중국인도 그렇고 일본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에 대한 기억은 현실을 향한 응시이자 미래를 향한 전망입니다. 이 만화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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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쿠쉬완트 싱의 <델리>


<델리> 표지 ⓒ 아시아

행정사회적인 의미인 도(都: 도읍)와 경제적인 의미인 시(市: 저자) 두 가지 의미가 합쳐져 탄생한 '도시'. 많은 소설가들이 도시를 이야기했다. 서울을 이야기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더블린을 이야기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파리를 이야기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파리와 런던을 이야기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등. 


거기엔 도시에 대한 사랑, 증오, 애정, 질투 등 그야말로 애증의 모순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어느새 '삭막함'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도시를 어찌 멀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편 세련되고 매력적인 도시를 어찌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시에는 떨쳐내고 싶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듯하다. 


쿠쉬완트 싱의 <델리> 또한 작가의 델리에 대한 애증의 모순적인 감정이 강력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의 그 감정을 '바그마티'라고 하는 남녀추니를 통해 드러낸다. 남녀추니란 선천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소설 속에서 바그마티는 남녀 모두를 상대하는 창녀로 출현한다. 그녀(그)는 델리라는 도시, 델리의 험난한 역사, 그리고 델리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처했던 상황까지 커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소설로 읽는 충분한 재미


소설은 그런 바그마티에 대한 애증 그리고 델리에 대한 애증을 강하게 표출하는 지식인 화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주업으로 역사 건축물을 안내해주곤 하는데, 그러며 자연스레 시제는 과거로 향한다. 그렇게 델리의 600년 과거와 현재를 단편적으로 오가며 서술되는 소설은 막힘없이 진행되는 가독성이 있다. 물론 거기엔 충분한 재미, 즉 소설로서 읽는 재미가 있다. 


여기서 재미란 여러 가지가 있겠다. 작가의 유머를 한층 가미시킨 재밌는 문장, 과거를 여행할 때마다 계속해서 시선이 바뀌어(황제, 왕자, 환관, 시인, 방랑자, 군인 등) 지루함이 없는 부분, 사랑, 열정, 섹스, 미움, 복수, 폭력 등이 난무하는 리얼리티와 판타지티의 공존, 그리고 그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에서 오는 신기함까지. 소설이 갖춰워야 할 모든 걸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동은 당연히 따라온다. 


하지만 재미만 있는 건 아니다. 대중성만 갖췄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25년 동안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게 해주는 소설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읽기 전에 읽는 동안 읽고 난 후 숨이 턱턱 막힐 수 있겠지만,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그렇게 하게 놔두지 않는다. 독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보여주고 만지고 느끼게 해주며 결국 델리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들게끔 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재미의 한 부분인 '그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과 작가가 25년 동안을 준비한 끝에 내놓은 소설이 보여주는 내공의 깊이가 한 라인에 서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델리의 600년 역사는 그 시선들이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참혹하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민초는 참상과 고된 삶을 이어가고 반역자들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호의호식한다. 그뿐이랴? 그건 현재까지 이어진다. 


"인도 최초의 독립전쟁이라 할 수 있는 세포이 항쟁 이후 국왕은 폐위당해 버마로 쫓겨나고 왕족은 몰살당하고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독립투사들은 대포에 맞아 갈가리 찢겨 죽거나 영국인들의 유흥거리로 전락한 교수형을 당했다. 반면에 영국인들의 개가 되어 첩자 노릇을 했던 간악한 귀족들은 대를 이어 누릴 부귀영화를 보장받았고, 돈에 눈멀어 영국군의 앞잡이가 되었던 무지한 자들은 상류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추악한 델리, 반면 아름답고 경이로운 과거의 델리


여전히 제3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수도 '델리'. 지금 델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작가는 현재의 델리를 여지 없이 보여준다. 떠들썩하고 초라해 보이는 시장과 오두막집들, 정화되지 않은 오수에서 풍겨나는 악취에 구역질이 치밀 수 있는 비좁고 꼬불꼬불한 샛길, 어디에서나 가래와 시뻘건 베텔즙을 밷어내고 변의를 느끼면 아무 데서나 일을 보며 상스러운 욕지거리로 친밀감을 표시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사타구니를 긁적거리는 사람들까지. 


추악한 델리. 반면 작가가 보여주는 과거의 델리는 비록 갈가리 찢겼지만 아름답고 경이롭다. 작가는 이렇게 델리의 과거와 현재 또한 대비 시켜 보여준다. 소설 전체가 수많은 대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은 어떨까? 델리와는 다를까? 답은 '똑같다.' 과거 '이촌향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서울로 올라와서 한평생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서울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한 지 오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빈민과 소외 계층이 다수 존재하고 이들을 짓뭉개 버리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서울은 역사적으로도 찬란한 문화의 꽃임을 자청했고 실로 그러했지만, 꽃이 꽃이게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현재의 서울을 추악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아름답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그런 서울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쿠쉬완트 싱은 델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과연 그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 


델리 - 10점
쿠쉬완트 싱 지음, 황보석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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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소니픽쳐스



이런 말을 자주하는 지인이 있다. “1930년대에 태어나고 싶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거리를 활보했던 그 낭만적인 시대에.” “조선 시대에 태어나고 싶다. 그때 태어났으면 뭐가 되어도 되었을 텐데.” “중세시대 유럽에서 태어나고 싶다. 산 속에서 세상 모르게 소박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끝없이 이어지는 과거 지향적 발언에 두 손 두 발 다 들곤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조금은 다른 의미로 나도 과거 지향적이니까.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 역사 교육의 폐해인지는 몰라도, 연도나 인물 그리고 사건 등의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몇 년도에 누가 어떤 사건을 일으켰거나 휘말렸는지 그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물론 머리가 커짐에 따라, 그 의미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때에 태어나고 싶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유명한 무엇에 대한 갈증이 있나 보다.

 

파리를 사랑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한 남자

 

우디 앨런의 2011년 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를 사랑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3분을 할애해 파리의 아침부터 밤까지의 하루 전경을 달달한 음악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주인공의 파리에 대한 예찬, 예찬, 예찬.

 

끝내주네! 저길 봐! 이런 아름다운 도시는 세상에 다시 없을 거야. 파리에 자주 못 오니까, 비 내리는 이 도시가 얼마나 멋진지 사진 한 장 찍자. 1920년대의 이 도시를 상상해봐. 20년대 파리를. 빗속에 작가들과 화가들을.”

 

전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주인공 길(오웬 윌슨 역)은 파리를 예찬하며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 역)에게 파리에서 살 것을 권한다. 하지만 이네즈는 미국으로 돌아가 살 것을 확고히 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사실 이 첫 장면에서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려하는 길이 못마땅한 이네즈인데, 더군다나 파리라는 이상에 사로잡혀 있다니 말이다. 더욱이 1920년대의 과거를 사랑한다니. 영화의 줄거리는 안 봐도 뻔하고, 이 둘의 끝 또한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 예정된 결말까지의 과정이 너무나도 재미있고 환상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법한 보편적 생각을 끄집어내 이야기에 버무리고 있어 결코 가볍지는 않다. 그 이야기는 길이 현실에 지친 어느 날, 자정이 지난 골목에서 클래식 푸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를 지치게 한 현실이라 하면, 그의 약혼녀 이네즈가 있다. 이네즈는 낭만이라고는 없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이고 속물이다. 또 그녀의 부모는 어떤가? 역시 속물이다. 그리고 그들은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길은 환영해도 소설가 지망생 길은 못마땅해 한다. 여기에 이네즈의 친구들도 가관이다. 그 중에서도 길이 사이비지성인이라 칭하는 폴은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는 아주 재수 없는 녀석이다. 길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무시해 현실에서 도망치려 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건 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과거 지향적이지 않던가.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과거 여행

 

여하튼 길의 비현실적인 과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클래식 푸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느 파티 현장. 그곳에서 길은 스콧 피츠제럴드 연인을 만나고, 헤밍웨이를 만나게 된다. 그 파티는 장 콕토가 주최한 것이었고, 시종일관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는 콜 포터가 피아노치는 소리였다. 그는 꿈에 그리던 1920년대 파리에 와 있던 것이었다. 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는 황홀경에 빠져 이 시간을 즐기고 매일 자정에 어김없이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 파리를 누빈다.

 

가는 곳마다 역시나 전설적인 명사들이 즐비하다. 피카소, 찰스톤, 벨 몬테, 달리, 부뉴엘, 레이, 앨리엇, 거트루드 스타인 등. 이 밖에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명사들이 나온다. , 1920년대 파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이들이 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는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이미 말이 되지 않는 설정 위에서의 설정이므로 웃으면서 흥미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큰 흥미거리 중 하나가 이 전설적인 명사들의 면면인 것이다.

 

그러던 중 길은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 역)을 알게 된다. 당시 그녀는 피카소와 염문을 뿌렸지만, 곧 헤어진 뒤 헤밍웨이와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고 돌아온다.(이는 영화적 설정이 많이 가미된 부분이다. 실존 인물이고 헤밍웨이와 관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시기가 맞지 않고 피카소와의 관계는 없었다.) 길은 아드리아나와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타이밍에 그들은 1890년대로 가는 마차에 오른다.

 

1890년대로 가자 더욱 더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로트렉, 고갱, 드가... 아드리아나는 이 시대를 황금시대라 칭하며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자신이 사는 1920년대는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길은 1920년대야말로 완벽한 황금시대인걸? 그때 불현 듯 깨달음을 얻게 된 길. 그는 아드리아나와의 사랑이 지속될 수 없음을 직감한다. 그러며 미래에서부터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그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을 봐요. 이 사람들의 황금기는 르네상스에요. 이들은 황금시기를 버리고 미켈란젤로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해요. 또 그때 사람들은 쿠빌라이 칸 시기를 동경할걸요?... 아드리아나, 당신이 여기 살면 여기가 현실이 되는 거요. 그럼 당신은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게 돼요. 진짜 황금시기를요... 현실은 그런 거예요. 항상 불만족스럽죠. 인생은 그런 거니까요... 저도 당신처럼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어요. 황금시기로... 하지만 이건 진짜가 아니에요. 내가 진정한 글을 쓰고 싶다면 내 환상을 없애야 해요. 과거가 더 좋았다는 환상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장면. ⓒ소니픽쳐스



이 영화가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음악가이면서 음악애호가이기도 한 우디 앨런 감독의 음악적 취향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리를 가본 적도 없거니와 그 실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파리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극단의 과거 지향적 성향에 대해서는 결국은 비판의 형식을 취하고 말지만, 파리에 대해서는 끝까지 우호적인 감정을 유지한다.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상당히 많다. 우디 앨런 감독에 대해 알고 있는 분이라면 그의 색다른 취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파리의 기막힌 전경을 감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또한 위에서도 주지했듯 수없이 등장하는 전설적인 명사들을 보는 재미가 무엇보다도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현실에서의 도피와 과거에 대한 동경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영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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