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강철의 연금술사>


<강철의 연금술사> 세트 표지들 ⓒ학산문화사



어릴 때 족히 수천 권을 봤을 일본 만화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니 남는 건 별로 없다. 스마트폰 출시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게 된 만화도 그 피해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도 만화 편력도 그와 함께 변해가는 중일 테고.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서재를 차지하고 있는 만화책들이 있다. 어김없이 매해 다시 본다. 


웹툰책을 제외하고 순수 만화책은 손에 꼽는다.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그리고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가 그것이다. <슬램덩크> 정도 들여놔야 하는데, 솔직히 이제는 예전만큼 재미있지가 않다. <슬램덩크>를 위시해 일명 '소년 만화'들이 이젠 시시하달까?


일본 만화계의 수장 '소년 점프'는 1980년대부터 익히 말 한만 만화들을 쏟아냈는데, 1990년대에 이르러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도 압도적 평정을 한다.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00년대에 이르러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도 도약한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소년 점프'의 두 번째 최전성기 한 가운데에 나왔다. 


배틀물이 최강세인 일본 만화계에서 <강철연>은 일명 '원나블'의 상업적 인기에 미치진 못했지만, '어른들의 소년 만화'를 완벽하게 구현해내어 완결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 연재 당시에도 '상업적' 인기가 아닌 순수 단행본 판매만 비추어볼 땐 <원피스>에 이은 2000년대 최강자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


연금술의 나라 아메스트리스, 에드워드 엘릭과 동생 알폰스 엘릭은 죽은 엄마를 되살리기 위해 연금술로 인체연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 그 자체. 엄마라고 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연성되었다가 바로 죽어버렸고, 에드는 왼쪽 다리를 알은 몸 전체를 잃고 만다. 에드는 오른쪽 팔을 희생하여 겨우 알의 영혼을 갑옷에 정착시킨다. 


에드와 알은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현자의 돌'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그것은 연금술의 기본 법칙인 등가교환을 무시하고 대가 없는 연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전설의 돌이다. 불로불사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지없이 이 나라, 아니 이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다. 


일반 사람이라면 근처에도 다다를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들은 군부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다. 국가 연금술사가 된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과 동생 알폰스 엘릭은 현자의 돌을 찾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소년만화답게 진지한 와중에 '빵' 터지는 유머를 잃지 않으며 판타지 세계는 아니지만 판타지적인 요소가 짙게 스며들어 있다. 전체적으로 배틀 액션이 기본으로 물고 물리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이채롭다. 한편 '어른'의 소년만화답게 낯간지럽지 않은 진지 키워드와 주제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반전(反戰), 종교, 민족, 과학, 신, 도덕, 장애, 여성, 신념 등... 묵직한 개념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극을 이끌어간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훌륭한 조화


<강철연>은 역대급 인기 만화답게 많은 콘텐츠로 재탄생되었다. 만화(책)으로 시작해 애니메이션 2번, 극장판 2번, 실사 영화와 소설과 게임까지. 그러면서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주제와 캐릭터들이 조금씩 바뀌었는데, 바뀌지 않는 건 시작부터 끝까지 탄탄하기 이를 데 없는 스토리이다. 


매주 연재되면서 앙케이드 조사를 통해 등수를 매기는 일본의 만화 시스템 덕분에 더 재미있고 또 독자의 입맛에 맞춰진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경향이 심하다. 많은 인기 만화들이 그렇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반면 이 만화는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세팅되어 있거니와 끝까지 휘둘리지 않고 고수한 듯 스토리가 이어진다. 아마도 메이저 잡지에서가 아니라 중소 규모의 잡지에서 연재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극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큰 주체는 에드와 알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이다. 그 어떤 만화 아니 콘텐츠에서도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이 만화에서 에드와 알의 여정 비중은 갈수록 줄어든다. 상당한 강수이자 모험인데, 결론적으로는 대성공,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자기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낸 것이다. 


임무란 다름 아닌 신념을 바탕으로 한 이상, 협력과 적대와 독주를 하면서도 누구 하나 신념을 잃지 않는다. 신념들이 대립하지만 궁극적이고 모두를 위한 곳으로 모이기도 한다. 가장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한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를 몸소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만화는 두 주인공뿐 아니라 많은 주조연 캐릭터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또 가지게 된다. 거기에 어떤 동정이나 자학 또는 자격지심이 없다. 한없이 슬퍼하면서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여성 캐릭터들의 강함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에드와 알의 스승인 이즈미 커티스, 아메스트리스 최북부를 지키는 브릭스 요새 사령관 올리비에 밀라 암스트롱, 불꽃의 연금술사 로이 머스탱의 부관 리자 호크아이를 비롯 동쪽의 싱에서 온 란팡과 메이 창 등 육체적·정신적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자랑한다. 작품의 핵심에 가까운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강철연>만의 특장점, 진지 키워드


이 '소년만화'만의 특장점이기도 한 진지 키워드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고 보기에도 편안하다. 하지만 콘텐츠 자체로만 이야기될 뿐 콘텐츠에서 파생되는 건 없다시피 할 것이다. 반면 선과 악의 모호한 구도는 만들어 내기도 어렵거니와 즐기기도 편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을 보여주는 진정 위대한 콘텐츠로 오래도록 살아남을 게 분명하다. <강철연>은 후자의, 그런 콘텐츠다. 각자의 신념이 중요하고 우선이며 선과 악은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아메스트리스는 킹 브래드레이의 철권 통치 아래에 있는 군부독재국가이다. 사방에 적이 있거니와 수많은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왔다. 그중에서도 '이슈발 내전'은 가장 큰 내전이었거니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의 핵심에 군(軍)이 있는데, 고증이 철저한 군대 체계와 전쟁 상태, 전투 기술 그럼에도 어둡기 짝이 없거니와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전쟁이 그것이다. 즉, 전쟁 관련 장면이 나오면 나올수록 반전이 기술되어지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슈발 내전의 이유는 종교와 민족이다. 아메스트리스와 명백히 종교와 민족이 다른 것이다. 이슈발인은 유일신을 믿는 반면, 연금술의 나라 아메스트리스는 과학이 우선이다. 합리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의 눈에 종교는 가장 합리적이지 않은 개념일 테지만, 그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진리인지는 절대 확신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만화는 거기에 이어 과학의 도덕성에까지 들어간다. 


만화가 도달한 곳은, 에드와 알이 도달한 곳은, 수많은 캐릭터들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등가교환'에서 출발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만화는 연금술로 등가되는 과학의 갈 길을 생각하고 있는 듯도 하다. 과학의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진지한 고민. 만화는 에드와 엘이 도달한 법칙, 일명 '등가교환을 부정하는 새로운 법칙'으로 대신한다. '10을 받으면 자기의 1을 더 얹어서 11로 만들어 다음 사람에게 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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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명절에 몰아보기 딱 좋은 드라마] <하얀거탑>


명작 드라마 <하얀거탑>. ⓒmbc



2000년대 들어서 한국 드라마는 '전형적인 캐릭터', '개연성이 무시된 이야기', '남녀 주인공의 천편일률적인 짝짓기 놀음' 등으로 점철되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시간 때우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걸 타파하기 위해선 '리얼한 직업 세계의 생생한 현장감'과 '살아있는 인간 이야기' 조합에 따른 드라마 패러다임 재판이 필요하다. 


드라마 <하얀거탑>은 2007년 새해 벽두에 드라마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하는 거창하면서도 명백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주제로 수렴될 이 명작의 기획의도와 방향은 돌이켜보면 참으로 대단한 도전이고 자기확신에 찬 포부였다. 한국 드라마계의 새로운 기준이자 하나의 혁명과 다름아니었다고 본다. 


물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방송 3사의 드라마는 <하얀거탑>이 확언한,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시간 때우기'용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댈 수는 없지만, '드라마'라는 생명체의 시선에서 보면 그른 게 확실하다. 10년 사이에 방송 3사가 아닌 종편과 케이블 채널들이 수없이 생기며 드라마 또한 다양화가 실시되어 <하얀거탑>이 바꾼 드라마의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있는 것 같아 한편 다행인 마음도 든다. 


이 드라마는 빈틈과 군더더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스피디한 전개, 치밀한 복선과 파격적 임기응변이 함께 하는 다양한 장르의 향연,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며 입체적이기까지 한 캐릭터와 자못 드라마틱하고 한편 비인간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의 조화 등이 시작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맞물려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그야말로 한번에 몰아볼 수 있는, 몰아보기에 용의한 드라마라 아니할 수 없다. 


편, MBC 사장이 교체됨과 동시에 드라마의 혁신을 위하여 시간이 필요하던 차에 한국 드라마계 혁신의 대명사 <하얀거탑>을 UHD로 다시 만날 기회를 얻었다. 지난 1월 22일부터 주중 미니시리즈가 시작될 3월초까지 매주 월~목 10시에 만나볼 수 있다. 여러모로 이번 설 연휴가 <하얀거탑> 몰아보기에 적합한 때가 아닐까 싶다. 


인간군상의 집합체 


인간군상의 집합체. <하얀거탑>의 한 장면. ⓒmbc



<하얀거탑>은 온갖 인간군상들의 집합체이다. 이 드라마를 '야망에 불타는 한 천재 외과의의 질주와 파멸'이라 정리해도 될 만큼, 김명민이 분한 장준혁은 지극히 핵심적 인물이다. 그는 흙수저 출신으로 오로지 실력 하나로 국내 굴지의 대학병원 외과 부교수 자리에 올랐거니와 간담췌 분야의 세계적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더 큰 야망이 있으니, 일단 외과 과장이 되는 것이다. 그는 끝없는 질주를 시작한다. 


장준혁과는 학생일 때 과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수재이지만 정반대의 삶의 기조를 지니고 있는 소화기내과의 최도영(이선균 분) 부교수가 있다. 그는 형제 모두가 줄줄이 의사로 있는 의사 집안 출신으로 오로지 환자를 생각할 뿐 자리에 운운하거나 권력에의 의지 또는 야망 따위는 없다. 장준혁에 비해 덜 인간적이고 덜 입체적인 인물이지만, 장준혁의 인물상을 부각시키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 


한편,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입체적이며 동시에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이 있다. 일명 '고매한 성품의 소유자'이자 4대째 의사로 있는 이주완(이정길 분) 외과 과장. 정년퇴임을 앞두고 '휴머니즘이 없는' 장준혁이를 10년 동안 자신을 모셨음에도 후계자로 두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누구보다 위선적이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외과 과장 이주완의 딸이지만 자신의 위치 같은 건 생각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하는 마음과 정신의 소유자 이윤진, 돈이라면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장준혁의 장인어른 민충식 원장, 겉으로는 명분을 내세우고 속으로는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는 진료 부원장이자 소화기 내과 과장 우용길, 절대 타협 불가의 대쪽 같은 성격의 소유자 병리학과 석좌교수 오경환, 장준혁 말이라면 불에라도 뛰어들 외과 의국장 박건하, 장준혁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절대 장준혁처럼 될 수 없는 전임의 염동일 등이 드라마를 탄탄하게 채운다.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 <하얀거탑>의 한 장면. ⓒmbc



이 드라마는 몇 번을 봐도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이중에 누구인가, 또는 누구와 맞대응 되겠는가.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나마 겉과 속이 다른 이주완 과장 또는 비슷한 맥락에서 겉으로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우용길 부원장에 가장 가깝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다른 누군가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인물은 볼 때마다 바뀌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역시 바뀐다. 


그게 이 드라마에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아무래도 장준혁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외과 과장이 되는 험난한 길을 거쳐, 치명적이면서 필연적인 실수로 기나긴 법정 공방을 치르고, 와중에 많은 신호가 오지만서도 무시해버린 결과 돌이킬 수 없는 병 때문에 죽음으로 치닫게 되는... 그의 너무도 치열한 삶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면서도 한숨이 나오는 건 '인생무상'이라는 말 때문이겠다. 


피도 눈물도 없이 모든 걸 뒤로 하고 오로지 앞과 위만 보고 질주하는 것 같은 장준혁이지만, 그에겐 이 세상 누구보다 중요한 어머니가 계시고 속 깊은 모든 얘기를 건네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애인이 있으며 때론 옆도 뒤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친구 최도영이 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게 만드는 비극적 종말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선(최도영 등)과 악(장준혁 등)의 대립과 그에 따른 권선징악의 수순이 그려지고 있는 것 같지만, 애초에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지조차 의문스럽게 만드는 대목과 인물들이 매순간 우리를 찾아온다. 더군다나 장준혁이 법정 공방을 치르게 될 때 보란듯이 합심해 정의 편이 아닌 장준혁 편을 드는 대학병원 의사들의 꼬락서니는 더더욱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얀거탑>의 한 장면. ⓒmbc



인생무상, 선과 악의 모호함과 그에 따른 혼란 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로의 주제로 수렴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로 넘어간다. 한두 번 정도 보는 걸로는 절대 답을 낼 수 없는 만큼, 몇 번이고 그것도 한번에 몰아봐야 약간의 답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 '인간'이라는 한 단어로 이 드라마의 궁극적 물음을 요약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얀거탑>의 진정학 명작화가 시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하얀거탑>은 그저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잘 만든 드라마일 뿐이다. 그 이후 <하얀거탑>은 드라마 따위를 뛰어넘는 시대불문 '명작' 콘텐츠가 된다. 


아직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분들께 드리는 경고(?)는, 이 드라마가 결코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의학은 정치, 법정 공방의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거의 모든 등장 인물이 의사인 이상 의사 세계의 단면을 기가 막히게 그려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하얀거탑>은 의사 세계도 역시 사람 사는 세계라고 말하며 의사들을 하야디 하얀 순백의 탑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는 더 이상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하얀거탑>의 또 다른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우리가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드라마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뛰어넘거나 본연의 임무를 다한 모습이 여기에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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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최동훈 감독의 <타짜>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과는 다른 스타일로 한국 영화를 할리우드에 가깝게 한 최동훈 감독의 정점 <타짜>. ⓒCJ엔터테인먼트



2004년 <범죄의 재구성>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스타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최동훈 감독. 데뷔 13년이 된 현재까지 불과 5편의 작품밖에 내놓지 않았지만 단 한 편도 흥행에서 고배를 마시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 내놓은 두 편 <도둑들>과 <암살>이 1000만 명을 넘으며 윤제균 감독과 더불어 현재까지 유이한 2편의 1000만 이상 관객 동원 감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야구로 치면 홈런왕과 장타율 1위의 최강 거포다. 


그 흥행 이상 가는, 아니 버금 가는 작품들이었을까?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이 던진 웰메이드 충격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세련'된 영화라는 게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감히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과는 다른 스타일로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공교롭게도 한국영화 흥행에 새역사를 쓴 최근 두 작품이 그의 역량을 가장 집약시켰음에도 오히려 그의 역량이 퇴보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한다. '최동훈 스타일'은 확립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각인되었지만, 사실 데뷔작과 두 번째 작품인 <타짜>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었기에 진정 긍정적 진보가 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최동훈의 인생작이자 정점은 <타짜>이다. 


타짜 인생


도박판에서 모든 걸 잃고 나서 타짜로의 길에 들어선 고니. 그에게 타짜 인생은 무엇인가. ⓒCJ엔터테인먼트



허영만·김세영 원작, 전설의 만화 <타짜>의 존재에 최동훈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진행해 안 봐도 100% 충만한 기대감이 용솟음친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며 그런저런 인생을 살아가는 고니(조승우 분)는 우연히 공장 한 편에 차려진 도박판에 낀다. 3년 모은 돈을 한 번에 날리고도 모자라 누나의 이혼 위자료도 모두 날려먹는다. 뒤늦게 모두 타짜들의 짜고 친 판이었다는 걸 알고 그 일행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더이상 잃을 게 없는 고니, 어느 도박판에서 모든 걸 잃고 여지 없이 깽판을 치고 있던 와중 전국 최고의 타짜 평경장(백윤식 분) 눈에 띈다. 고니는 득달같이 달려가 제자로 받아들일 것을 부탁하고 타짜로의 길에 들어선다. 지방원정 중 알게된 설계자 정마담(김혜수 분), 그녀에게로 향하는 욕망과 그녀가 내뿜는 욕망에 끌려 평경장을 떠나 그녀와 함께 하게 된 고니다. 잘나가는 그들, 하지만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순 없다. 


이번에는 경찰 단속을 피하던 와중 만나게 된 소시민적 타짜 고광렬(유해진 분)과 파트너가 되어 전국을 유랑하는 고니,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게 된 화란과 안정적인 삶을 꿈꾸지만 정마담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정마담 뿐이랴? 그를 도박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일당, 평경장, 정마담, 고광렬 등과 얽히고 설킨 모든 이들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이 타짜 인생은 무엇인가. 


순간의 욕망


타짜에게 있어 '순간의 욕망'은 모든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



총 4부로 구성된 만화 <타짜>의 1부인 '지리산 작두'를 영화화한 영화 <타짜>는, 만화와 같이 주인공 고니의 타짜인생을 그렸다. 정확히는 고니가 타짜의 길로 들어선 후 그의 타짜인생 1막 정도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그러하기에 이 영화에서 고니의 타짜인생은 곧 '욕망'이다. 


도박의 길에 한 번 들어서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말, 몸소 겪어봐서 잘 알고 있다. 외국에서 1년 여 살았을 때 일이 끝나면 카지노에 매일 '출근해' 블랙잭을 했다. 매일 지니고 가는 돈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큰 10만 원. 10만 원을 따던지 10만 원을 잃던지. 그러던 중 하던 일을 떼려친 직후인 연말, 하루밤새 100만 원을 잃는다. 수중에 돈이 없는 상황,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위기에 겨우 다시 일을 잡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일을 잡고 돈이 조금씩 생기니 다시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다. 마음잡고 철저한 자기관리 하에 '투 잡'으로서의 블랙잭을 다시 시작하지만, 잘 될 턱이 있나. 고니가 계속해서 파트너를 바꿔 가면서까지 전국 도박판을 유랑하는 이유가 뭔가. 누나에 대한 미안함? 돈을 향한 소유욕? 스승님의 복수? 사랑? 우정? 이 모든 게 조금씩은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 '순간'이다. 수많은 종류와 이유의 욕망이 들끓는 도박판에 자리하고 있는 그 순간 말이다. 승리의 짜릿함과 황홀감, 패배의 쓰라림과 무력감, 그 모든 걸 넘어선 도박판의 흥분. 도박판이야말로 내가 진정 나일 수 있는 유일한 자리라는 느낌과 믿음의 발로다. <타짜>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즉 페이소스를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의 향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놓았다.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


최동훈 감독의 스타일,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 그 최후의 목적은 '재미'가 아닐까. ⓒCJ엔터테인먼트



<타짜>를 보고 가장 와닿는 건 페이소스 이전의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의 향연이다. 서사와 이야기는 고니의 타짜인생역전으로 완성된다. 계속되는 우연의 연속으로 다른 파트너와 다른 인생을 사는 듯하지만, 또 다른 필연의 연속으로 이전의 파트너를 만나고 이전의 파트너와 관련된 이를 만나 내려가고 올라가는 일을 반복한다. 


천부적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는 보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만하다. 마음 놓고 즐기되, 기본 이상의 질적 양적 퀄리티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다. 그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건, 최동훈 스타일의 기반이 되는 캐릭터와 대사에 있다. 


최동훈 감독 작품들이 꽉 차 있다고 느끼는 건 기본적으로 캐릭터들의 빈틈없는 생각과 행동과 대사에 있다. 상당한 숫자의 주연급 조연들이 출연해 각자의 개성을 최대치로 발휘하며 하나같이 영화 스토리라인에 주요하게 기여하는데, 그래서 시종일관 어느 한 장면, 어느 한 캐릭터에도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타짜>는 최동훈 감독의 그런 감각과 역량이 최대한으로 완벽에 가깝게 구현된 영화라 하겠다. 몇 번을 봐도 새로운 게 보이고, 몇 번을 봐도 뒤가 궁금해지고, 몇 번을 봐도 끝나는 게 아쉬운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에게서 '스티븐 킹'의 향기가 스멀스멀 나는 건, <타짜>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비단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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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공공의 적>


벌써 15년이다. <공공의 적>이라는 최고의 범죄액션영화가 나온 지. 강철중이라는 최고의 캐릭터가 나온 지. ⓒ시네마서비스



한국영화 사상 가장 성공한 캐릭터는 누구일까. 여기에 정교한 조사나 연구는 필요없을 듯하다. 단번에 생각나는 이야말로 진정 기억에 남는 캐릭터일 테니. 개인적으로, 아마 영화 좀 본다 하는 많은 분들이 설경구가 분한 <공공의 적>의 '강철중'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캐릭터다. 


2010년대 들어 <이끼>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한 강우석 감독은 1990년대 <투캅스> 시리즈로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바 있다. 그는 1990년대를 코미디로 수놓았고, 2000년대 들어 <공공의 적> 시리즈와 <실미도> 등 드라마, 액션, 범죄로 외연을 넓혀갔다.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는 그 기준 또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설경구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1999년 <박하사탕>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는 그에게 강철중과의 조우는 충무로 최고의 배우로 가는 직행열차나 다름없었다. 이후 강철중에 묻히지 않고 과격한 캐릭터 스펙트럼을 선보인, 여전히 선보이고 있는 설경구의 또 다른 얼굴이자 인생 캐릭터가 아닌가. 


'강철중'만이 할 수 있는 수사


<공공의 적>에서 살인마를 집요하게 쫓는 직감적 수사는 오로지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만이 할 수 있다. ⓒ시네마서비스



비리경찰의 낙인을 가까스로 피한 강철중 경장(설경구 분)은 그럼에도 비리에 발 하나를 걸친 채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직속선배는 자살했고 반장님은 쫓겨났다. 새로 부임한 반장은 가차없이 꼼꼼한 성격이라 아주 귀찮을 것 같다. 한편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조규환(이성재 분)은 집에서는 상냥한 남편이자 아버지이지만 실상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그것도 부모님까지 죽이는...


비오는 날에 잠복근무를 하다 어쩔 수 없이 길가에 급변을 보게 된 강철중, 볼일을 끝낸 찰나 판초우의를 뒤집어쓴 조규환과 마주친다. 그때까지는 서로를 모르는 상태였지만, 조규환은 부모님을 죽이고 나오는 길이었다. 일주일 뒤 엄청난 자상으로 숨진 채 자택에서 발견된 조규환의 부모님, 조규환은 유족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는데...


그때 조규환의 행동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하고는 뒤를 캐는 강철중. 급기야 그가 자신의 부모님을 살해한 살인마라는 직감적 확신을 갖고 뒤를 쫓는 강철중. 하지만 거기엔 어설프지만 동물적 감각의 심증만 있을 뿐 그를 구속할 아무런 물증도 없다. 강철중만 하고 강철중만 할 수 있고 강철중만 해낼 수 있는 수사가 시작된다. 


<공공의 적>은 절대 용서못할 '공공의 적'을 민중의 지팡이이지만 실상 공공의 적에 가까운 경찰 강철중이 쫓아 일망타진하는 스토리라인, 기본골격을 갖고 있다. 여기에 진정한 공공의 적인 조규환을 위시해 강철중과 관련 있는 각종 범죄자들과 경찰 내부 요원들까지, 모두 확고한 개성을 뿜어내는 캐릭터들로 가득 차있다. 


캐릭터로 만들어낸 영화적 재미


강우석 감독이 좇는 '영화적 재미'. 이 영화는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그 최상의 요소로 완벽하게 이용했다. ⓒ시네마서비스



이 영화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보다 더욱 우위에 서 있는 건 '영화적 재미'인 것 같다. 그에 맞게 선택된 요소가 바로 '캐릭터'이고. 강철중이 강철중일 수 있었던 배경에 그런 선택과 집중이 있었던 것이다. 영화가 캐릭터 중심이 아니었다면 강철중은 분명 튀었을 테지만 불운의 캐릭터로 남았을 게 분명하다. 


이에 비견할 만한 영화로 <타짜>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고니와 정 마담의 쌍두마차에 은은한 조연 고광렬과 강력한 조연 아귀까지, 주옥같은 캐릭터들의 나열과 열연이 영화를 그야말로 받들었다. <공공의 적>은 강철중 원탑에 사실상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잊히지 않을 만한 캐릭터성을 선보였다. 


캐릭터가 살기 위해선 절대 평면적이어선 안 된다. 입체적이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아니, 엄청나게 고된 연출과 연기가 필요하다. 이 영화는 웃기지 않은 웃긴 상황연출에, 튀는 듯하면서도 그 연출의 스펙트럼을 벗어나지 않는 계산된 연기가 함께 한다. 허름한듯, 마치 에드리브의 향연인듯 한 느낌이지만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그러며 부모님까지 죽인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엽기적 행각을 보고 있노라면, 상반된 분위기가 동시에 던지는 역설적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마냥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은, 균형 잡힌 연출의 계산된 미학을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캐릭터의 승리이지만, 그 뒤에 연출의 승리가 있다. 


15년 동안 차용하는 '입체적' 캐릭터의 의미


강철중이 가지는 압도적 캐릭터성에 지난 15년 동안 많은 영화들이 기댔다. 이제는 더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시네마서비스



<공공의 적>은 2002년에 나왔다. 자그마치 15년 전의 영화다. 하지만 기시감을 크게 느낄 수 없는 건, 이후 수많은 범죄영화들이 이 영화를 차용한 면이 크다 하겠다. 그건 이 영화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을 보여주는 한편, 한국영화의 질적인 발전이 그만큼 크지 않았다는 반증을 보여주기도 한다. 


'강철중'이라는 캐릭터가 한국영화 캐릭터의 교본과 같을 지라도, 또 다분히 입체적이라고 할지라도, 다시 만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공의 법칙에서 보면 반드시 따라야만 할 테지만, 강철중은 이미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강철중을 위시한, 이 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 유형 또한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평면적인 인물로의 회귀도 필요해 보인다. 계속되는 입체적 인물로의 강행군은 더 이상 입체적 인물의 입체를 입체로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아무 특징 없는 것 같은 일반적 인물도 사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행동과 경험이 함께 해왔을 것인가.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연출과 시나리오와 연기에 있지 캐릭터 자체에 있지 않다.


이제는 시대와 조우하고 관객과 소통하고 자본과 협상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오로지 영화적 재미만 보고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공의 적>과 같은 영화 시리즈, '강철중'과 같은 캐릭터를 또 만나고 싶다. 다시 그런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아가고 회귀하고 다시 나아가고 다시 회귀하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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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


<꿀벌과 천둥> 표지 ⓒ현대문학



중2 음악 시간, 선생님께서 종종 수업 대신으로 영화 한 편을 보여주셨다. 족히 20년은 흐른 지금까지도 개인적인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는 <아마데우스>를 그때 처음 보았고, 여전히 뒷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절정의 영화 <파리넬리>도 그 시간을 통해 처음 보았다. 공교롭게도 둘 다 서양 클래식 음악을 다뤘고 그 덕분인지 몰라도 오랫동안 클래식은 나의 조그마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유독 그때 그 음악 시간은 클래식 음악 숙제가 많았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대표곡들을 듣고 감상문을 써오는 숙제, 직접 오페라 콘서트 실황을 보고 감상문을 써오는 숙제 등. 우리나라 교육의 폐해였을까.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건 리코더나 멜로디언 정도였고, 나머진 사실 글쓰기 과제였던 거다. 


음악 감상의 느낌을 글로 쓰는 건 고역이었다. 머리가 훨씬 큰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예 한 글자도 쓰지 못할 것 같은데, 감정이 팔팔한 그 나이대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묘사가 태반을 차지한다는 걸 알고 일본 만화에서 참조한 적도 있는 것 같다. 당시 한창 <미스터 초밥왕>을 열독했었는데, 거기엔 무수히 다양한 묘사들이 있었다. 나중에는 <신의 물방울>이 이어받았으려나. 하여튼 일본 음식 만화가 답이었다. 


온다 리쿠 스타일의 절정


일본이 자랑하는 온다 리쿠 작가의 신작 <꿀벌과 천둥>(현대문학)을 보고 있으려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굴지의 피아니스트 콩쿠르 오디션의 전초전 격인 일본의 요시가에 피아노 콩쿠르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일명 온다 리쿠 스타일의 정점이다. 뭐랄까, 오그라들다 못해 민망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아주 진지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랄까.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소설은 일본 소년 성장 만화의 영향을 극단적으로 받았다 못해 낳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슬램덩크>를 필두로 하는 천재와 둔재의 성장과 경쟁의 한 시절, <신의 물방울>을 필두로 하는 민망하지만 헤어나오지 못하는 묘사의 절정이 모두 이 한 소설에 집약되어 있다.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 네 명, 여지없이 모두 천재적이고 구구절절 사연이 있고 확고한 캐릭터성이 있다. 양봉가 아버지를 따라 떠도는 10대 중반의 최연소 천재 소년 가자마 진이 전설적인 음악가 호프만의 추천서와 절대적인 자유로움으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운데 다른 세 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경쟁을 벌인다. 


천재 중 천재로 불렸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무대를 떠났다고 부활의 날개짓을 하는 소녀 에이덴 아야, 완벽 그 자체로 모두를 압도하는 줄리아드 음악원 출신 소년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그리고 어렸을 때 음악을 전공했었지만 악기점 점원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20대 후반의 최고령 다카시마 아카시까지.


피아노 연주를 글로 표현해내는, 이 소설의 백미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작품임에도 헤어나오기 힘든 흡입성을 보이는 건 이미 일본 현지에서 입증되었다. 제156회 나오키상과 제14회 서점대상을 최초로 동시 수상하는 영예를 받은 것. 둘 다 지극히 대중성과 거리가 가까운 상들인데, '읽히는 소설'을 쓰는 온다 리쿠 앞에서 작품성 운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게 된다. 나아가 작품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중간하면, 욕하면서 시간때우기용으로 적당히 볼 것이다. 수많은 콘텐츠들이 그런 취급을 받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런 취급을 받을 줄 알면서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만. 그런데 이 소설 <꿀벌과 천둥>은 그걸 넘어선 듯하다. 피아노라는 예술의 한 면을 다뤄서가 아니라, 이쯤 되는 캐릭터와 묘사에의 열정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분량이 워낙 길기도 했고, 1차 예선이니 2차 예선이니 해서 구분도 되어 있고, 주인공마다 챕터가 확연히 갈라져 있어, 중간 중간 쉬면서 다른 책들도 보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봤음에도 그때마다 주인공들이 확연히 되살아날 정도였다. 굳이 책을 앞에서 다시 일별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머릿속에 그 형상이 잡혀 지워지지 않게 된 것이다. 자칫 가소로워 보이는 캐릭터들을 얼마나 연구했을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글로 표현해낸 부분들이라 하겠다. 몇 쪽에 걸쳐 펼쳐지는 각종 묘사의 향연은 솔직히 한 번 웃지 않고 지나갈 사람 없을 만한 민망함을 깔고 있지만, 작가가 소설을 통해 연주를 표현한 것처럼 '비범하고 환상적이다'. 그때만큼은 '소설의 신'이 내려온 것 같다... 종종 온다 리쿠를 찾을 것 같다. 매일 건강에 좋지만 맛은 그다지 없는 음식만 먹을 순 없으니, 종종 한없이 달콤하고 맛있는 디저트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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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선한 이웃>


<선한 이웃> 표지 ⓒ은행나무



민주화 30주년의 2017년 6월,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시점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올해 6월 참으로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민주화 영령들이 불려 나왔다. 그중엔 당연히 소설도 있는 바, 이정명 작가의 <선한 이웃>(은행나무)도 그중 하나다.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선과 악의 대립 또는 선과 악의 모호함 등의 소재, 이정명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픽션적 뒷이야기들. 


세종의 한글 창제 뒷이야기를 집현전 학자 연쇄살인 사건으로 풀어내고,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과 관계의 뒷이야기를 추리적 기법으로 풀어냈으며, 윤동주와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의 뒷이야기를 검열관 죽음과 미스터리로 풀어내는 등 이정명의 소설은 구미를 당기는 무엇이 있다. 나는 앞의 두 책 <뿌리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은 재밌게 읽었는데, 뒤의 책 <별을 스치는 바람>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주제인 '민주화 운동'과 관련되었다는 이 책 <선한 이웃>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좋던 나쁘던 기존의 이정명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실존 인물을 참조했겠지만, 적어도 실존 인물이 나오진 않는다. 유명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그만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핵심인물들에 천착하는 건 여전하지만, 조금 더 서사에 집중했다는 데서 사건과 인물에 집중했던 이전 작품보다 고전적이 된 것 같다. 고전적 의미로 더욱 소설가다워졌지만, 소설로서는 재미가 많이 반감되었다. 


정교한 시나리오가 몇 겹에 걸쳐 잘 짜인 소설


신출귀몰 용의주도 얼굴 없는 운동가 최민석을 잡기 위해 김기준 팀장을 위시한 정보요원팀이 출동한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추적을 비웃듯 눈앞에서 놓치고, 관리관에 의해 김기준 팀은 해체되고 모두 좌천된다. 한편 극작가 이태주는 <줄리어스 시저>로 화려하게 데뷔하지만 마지막 공연에서 대사가 문제시 되어 정보당국에 잡혀간다. 그를 제외하고 모두 고문을 받고, 극단주와 주연배우는 구속된 반면 그는 풀려난다. 


변절자로 낙인 찍힌 이태주는 삼류 에로극 주연 여배우 김진아와 연인이 된 후 함께 <엘렉트라의 변명>을 힘들게 준비한다. 김진아는 알고 있다, 이태주가 이 연극으로 세상에 맞서려고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를 진정 사랑하기에 망설임 없이 그를 도와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 


좌천당하고서도 여전히 최민석에게 심히 집착하는 김기준, 관리관은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김기준은 여러 후보군을 추려 <엘렉트라의 변명> 연출자 이태주를 최민석으로 점찍고 공작에 들어간다. 그는 이태주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완벽하고 정교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하는데... 


정교한 시나리오가 몇 겹에 걸쳐 등장인물들을 옭아매는지 모를 정도로 잘 짜인 소설 <선한 이웃>.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선과 악의 모호함이 소설의 절정에서 그 절정을 맞이한다. 거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건 없다. 앞으로 계속 생각하게 될, 생각해야 할 개념이 생겼을 뿐이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선한 이의 악


이전 작품보다 서사의 흐름과 상징의 모호함에서 오는 깨달음을 더 절실하게 전하며 새로움을 선사하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정명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특출한 캐릭터성을 엿볼 수 있다. 김기준, 이태주, 김진아 그리고 관리관까지. 이들이 얽히고 설킨, 물리고 물린, 복잡다단한 관계와 자기 신념들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악한 이의 악이 아니라 선한 이웃의 악이다'를 대변한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거기엔 일면의 긍정적인 면은 없고 부정적인 면이 도사린다. 1980년대 서슬퍼런 독재 정권 시대, 어쩔 수 없이 악에 부역하며 그렇지만 자신은 악이 아니라는 신념을 가졌던 이들이 있다. 아주 많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본래 평범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평범하고 힘없는 이가 악을 행하면서 '나는 악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지옥이다. 


사실 이는 식상하기 그지 없는 개념이자 도식이다. 한나 아렌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아이히만의 '나는 맡겨진 일을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라는 말을 빗대어 '악의 평범성' 개념을 만든지 오래다. 이후 수많은 콘텐츠에서 이 개념은 인용되고 변주된다. 이 책의 제목인 '선한 이웃'도 사실 '악의 평범성'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식상한 변주가 있다. 명백한 악을 행하고서도, 심지어 그것이 악인 줄 잘 알면서도, 그걸 행한 자신을 평범하다고 성실하다고 신념화 시킨다면 여지 없이 '악의 평범성' 개념을 꺼내들어 변주해야 한다. 물론 '잘' 해야 한다는 단서는 있다. 그런 면에서 <선한 이웃>은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쉽지 않은 소재와 주제를 풀어나가고자 정공법을 택했는데, 고대 그리스 배경을 위주로 한 연극의 내용을 대대적으로 가져와 비유와 상징으로 쓴 것이다. 연극도 연극이지만, 고대 그리스 배경이 주는 생소함과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인간 자체에 대한 비유와 상징들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잘 뒷받침해준다. 작가가 한탄하는 것처럼 3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만 있지 변한 게 없는 한국 사회와는 달리, 이정명 작가는 달라지는 것 대신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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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천공의 성 라퓨타>


일본이 전 세계에 자랑하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1986년 작이자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 ⓒ대원 C&A 홀딩스



일본이 전 세계에 자랑하는 거장이 많을 텐데, 소설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영화 에서는 고 구라사와 아키라가 있을 거다. 그렇다면 일본이 자랑하는 콘텐츠인 애니메이션에서는 누구나 알 만한 거장에 누가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전 세계인들이 알 만해야 하니, 위 세 명에 논란의 여지는 없을 듯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75세 초로의 노 연출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영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수준을 보여주는 거장이다. 지난 2013년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진짜' 은퇴를 선언했지만 2020년 '애벌레 보로'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 이후 30년 간 5번의 은퇴를 선언했지만 매번 다시 돌아온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그다. 


하야오 세계와 지브리 월드의 시작 <천공의 성 라퓨타>


올해 2016년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있어, 그의 분신과도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에 있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해일 것이다. 1984년에 세운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가 올해 3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1984년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세운 지브리 스튜디오, 첫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의 연이은 성공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하야오 세계, 지브리 월드.


<천공의 성 라퓨타>는 분명 30년 전의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도무지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 않기까지 하다. 현재의 애니메이션이 퇴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옛스러운 느낌이 드는 그림체가 지금 보기엔 조금 부자연스러울 뿐, 기시감을 찾아볼 수 없다.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30년 전'의 애니메이션인 이 작품은, 완벽 그 자체다. 캐릭터, 서사, 메시지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다. ⓒ대원 C&A 홀딩스



가장 눈에 띄는 건 의외로 '캐릭터'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에는 공통적으로 나오는 캐릭터가 있는데, 여기 나오는 '돌라'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다양한 애니메이션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분한다. 여기서는 해적 일당의 대모로 분했는데, 세계적인 만화 <원피스>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보물에 대한 욕망, 그들만의 의리와 어디로 튈지 모를 개성 등이 그들을 구성한다. 정녕 캐릭터다운 캐릭터다. 그들의 좌충우돌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충분하다. 


물흐르듯 전개되는 서사와 더 없이 확실한 메시지는 백미다. 슬픈 눈을 가진 소녀가 군인 집단으로 보이는 이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는 듯 보인다. 거기엔 정부에서 보낸 밀사도 있다. 그때 해적이 출물해 소녀를 노린다. 군인 집단, 정부 밀사, 해적 일당이 노리는 건 다름 아닌 소녀가 간직한 '비행석'이다. 무엇이든 하늘을 날게 해주는 막대한 힘을 지닌 돌.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하늘을 나는 건 인간 근원의 욕망이다.


막간을 노려 탈출을 시도하는 소녀 시타, 비행석의 놀라운 힘으로 천사같은 모습을 하고 탄광에서 일하는 소년 파즈에게 온다. 그들은 곧 친해지는데, 오래지 않아 군인 집단, 정부 밀사, 해적 일당이 일제히 시타를 노리고 쳐들어 온다. 그들끼리 치고박는 틈에 도망가보지만 결국 시타는 군인 집단과 정부 밀사에게 잡히고 만다. 그들은 전설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제압하려 시타의 비행석을 탐냈던 것이다. 그녀는 다름 아닌 라퓨타족의 마지막 공주였다. 그녀를 앞세우려는 수작이다. 


한편 파즈는 해적 일당에게 붙잡히는데, 곧 각자의 원하는 바가 같아 손을 잡고 시타를 구출하러 떠난다. 전과는 완연히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구간으로, 대지에서의 행복하고 단란한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창공에서의 욕망의 뒤엉킴과 불손함이 지배한다. 그렇지만 파즈에게는 라퓨타라는 존재 자체가 아버지를 상징하고 생각나게 하는 가장 큰 것이기에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다. 과연 시타와 파즈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의 앞날엔 어떤 여정이 펼쳐질까? 천공의 성 라퓨타의 운명은?


아무리 강한 무기가 있어도,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특히 신경 쓰는 건 '메시지'다. 전반적으로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이번엔 '자연'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다. ⓒ대원 C&A 홀딩스



캐릭터와 서사를 애니메이션이 갖는 성격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가장 잘 맞게 꾸려 놓고선, 그야말로 확실하고 확고한 메시지를 던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천공의 성 라퓨타>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메시지를 대사를 통해 대놓고 직설적으로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시타가 정부 밀사 무스카의 계략에 휘말려 위기에 처했음에도 강력히 주장한다. 


"아무리 강한 무기가 있어도, 수많은 로보트를 조종해도,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거예요!"


엄청난 힘을 가진 천공의 종족 공주가 '하늘'이 아닌 '대지'를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천공의 종족이 하는 말이라서 더욱 중요하고 깊이 있게 들린다. 일종의 겸손함까지 엿보인다. 이는 대지의 종족인 인간이 천공의 성을 침범해 보물을 훔치고 지배하려 드는 모습과 완벽히 대비된다. 인간의 끝간데 모를 욕망, 그 끝엔 자연이 있다. 다분히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낸 구조겠다. 그들이 침범하는 곳은 결국 자연인 것이다. 


그들은 곧 자연에게 큰 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건 익히 알고 있는 서사 패턴, 하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보여줄지, 어떤 식으로 보여줘야 확실히 각인 되어 잊지 않게 할지는 만드는 이의 선택이자 역량이다. 특히 이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유감없이 그 실력을 발휘한다. 아마도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난 후 풀 한 포기라도 아껴야 겠다, 함부로 재물을 탐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30년 전부터 환경파괴와 환경보호가 애니메이션의 주된 내용으로 부각될 정도이니, 현재는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미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리지나 않았는지... 새삼스레 자연을 보호하자는 교훈을 던지고 싶진 않다.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것이기에 오히려 부작용이 일 수 있다. 그럼에도 후손들을 생각하면 그런 교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 하는 대신 다른 방법이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면 될 것.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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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이펫의 이중생활>



메이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위협하는 은근한 강자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기대작 <마이펫의 이중생활>. 그동안 보여줬던 그들만의 특징을 잘 살려 흥행 신화를 이어갈까?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 포스터 ⓒUPI코리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하면 단연 디즈니가 생각날 테고, 픽사와 드림웍스가 이어질 거다. 그밖에 생각나는 건 두세 개의 유명 시리즈를 내놓은 블루스카이나 메이져 제작사에 속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정도다. 여기에서 알아둬야 할 건, 디즈니와 픽사가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 한 식구가 되었고 드림웍스와 블루스카이가 '20세기 폭스'로 한 식구가 되었다는 거다. 크게 보면, 디즈니와 20세기 폭스의 대결인 것이다. 


양대산맥으로 굳어지다시피 한 판에 2010년 애니메이션 하나가 혜성같이 등장한다. 이름 하야 <슈퍼배드>. 1억 달러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기존 애니메이션들과는 다르게 약 7000만 불의 저렴한(?) 제작비가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5억 달러가 넘는 성공을 거둔다. 같은 해 개봉한 드림웍스의 명작 <드래곤 길들이기>를 제친 성적이었다.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일약 메이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위협하는 다크호스가 된다. 


이후 2010년과 2011년에는 잠시 숨고르기(그렇지만 망했다는 건 아니다)를 하고 2013년 <슈퍼배드 2>와 2015년 <미니언즈>로 역대급 흥행 역사를 이룩한다. 단 5작품으로 3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거다. 사실 이 회사는 20세기 폭스 애니메이션 회장이 퇴사해 독립한 후 유니버셜 아래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여하튼 후속작에 귀추가 주목된 건 당연한 일이겠다. 


역시나 극강의 재미, 시간이 지나면?


후속작에서도 그 특징은 계속될 것인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와 극강의 캐릭터들이 선사하는 재미를 말이다. 하지만 전편인 <미니언즈>가 어마어마한 재미를 선사한 반면 생각할 거리와 여운, 하다못해 교훈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좀 찜찜하다. 픽사 애니메이션으로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의 수준을 채워줄 수 있을까? 


바로 그 후속작인 <마이펫의 이중생활>은 시대를 관통하는 소재인 만큼 생각할 거리와 여운, 교훈 등을 전해줄 요소는 충분해 보였다. 거기에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남겨진 반려동물들은 어떻게 지낼까, 아마 주인한테 보여주는 모습과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소재가 상당히 잘 어울릴 거라 보였다. 결과는 어떨까.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제작사의 신작이라 그런지, 여전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만, 영화 자체가 기억에 남지 않는 듯.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일루미네이션의 작품들은 창립 후 점점 캐릭터를 극도로 밀어붙여 재미를 추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만든다. 그것이 수익을 창출하는 법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작품 자체는 더 잊히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일루미네이션의 작품이라곤 <슈퍼배드> 정도다. 그렇다면, <마이펫의 이중생활>은? 재미와 흥행을 떠나서 시간이 지나면 잊힐 듯하다. 


귀여운 캐릭터와 시대를 관통하는 소재, 과연?


시작부터 정신 없이 몰아치는 캐릭터들의 향연. 너무너무 귀엽고 앙증맞아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개, 고양이, 새, 토끼, 돼지, 도마뱀, 악어, 뱀... 그러나 영화는 점점 마이펫의 '이중생활'에 맞춰진다. 초반의 아기자기함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점점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사랑받으며 평화롭게 지내는 개 맥스네에 유기견이었던 듀크가 들어온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변함 없는 나날을 지내는 개 맥스, 어느 날 듀크라는 커다란 유기견 출신 개가 집으로 온다. 질투를 해보아도 주인은 알지 못한다. 친구 펫들에게 조언을 들은 맥스, 집을 어지르면 유기견 출신인 만큼 듀크가 그런 것처럼 보여질 테니 힘의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듀크도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법, 맥스를 골려주려고 뒷골목 쓰레기통에 쳐박는다. 


그곳은 길고양이 천국이었다. 길고양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목줄을 빼앗기고는, 급기야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온 이들에게 잡혀가고 마는데. 그들을 구해주는 지하세계 조직원들. 인간에게 버림 받고 인간을 없애려는 게 목표인 그들에게 맥스와 듀크는 잘 받아들여질까? 그렇다고 도망치면 유기견 보호소에서 가만히 둘까? 그들은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귀엽기 짝이 없는 캐릭터를 장착해 흥미와 관심을 끄는 소재로 관객을 끌어 모을 듯하다. 동시에 버려진 동물들을 출현시켜 사회 문제를 부각시킬 준비를 마쳤다. 재미와 감동, 교훈과 생각, 여운까지 보따리로 보여줄 수 있어 보인다. 이보다 완벽한 구성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유기견이었던 듀크를 데려온 설정, 또다시 버려질까봐 두려워하는 듀크, 유기견 보호소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듀크, 버려진 동물들이 인간을 해치우기 위해 지하에서 조직을 만든다는 설정 등은 단순히 교훈을 넘어 커다란 사회문제를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다. 


떠나지 않는 웃음, 재미로만 승부를 봐도 좋다



그저 귀엽고 귀여웠으며 귀여웠다. 여타 요즘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속 이런 류로 밀고 나가 확고한 특징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냥 즐거운!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의 한 장면 ⓒUPI코리아



2시간 가까이 정신 못 차리고 본 것 같다. 요즘 애니메이션 답지 않게 울음은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장대소를 유발하지도 않았으니 시종 일관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이개그나 블랙유머도 전혀 없었다.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만큼, 그저 귀엽고 귀여웠으며 귀여웠다. 그거면 되지 않나?


참 애매하다. 그거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가, '내 수준이 있지' 하며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어 진다. 그렇지만, 보는 내내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기분 좋았던 적이 언제였나 생각하니 슬그머니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근래 본 모든 콘텐츠 중에서 가장 걱정 없이 즐길 수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거다. 


물론 기존의 여타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해보면 아쉬운 부분이 없을 수 없다. 충분히 줄 수 있었을 사유나 교훈, 여운을 일부러 없앴나 싶을 만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방면을 이미 픽사가 공고히 다져 놓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강한 개그나 유머도 아니니, 그건 드림웍스가 확고히 다져 놓았기 때문일까. 설립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봐줘야 하는 건가. 아직 그들만의 뚜렷한 색을 찾기 힘들었다. 


디즈니가 오랫 동안 다져 왔던 '꿈과 희망'이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에 깊이 박혀 있음을 부정하진 못할 거다. 나 또한 애니메이션이라면 자고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일루미네이션이 그 틀을 깨고 '재미'로만 승부를 보는 거라면 충분히 응원할 요량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 가능성을 엿본 것 같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건이 있었음에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걸 더욱 더 밀어붙였으니까. 차기작을 기다리며, 어떤 길을 걸어갈지 지켜보겠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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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부산행>


여러모로 '적절한' 영화다. 연상호 감독의 작가주의적 집요함이 블록버스터에 잘 녹아들었고, 이 영화로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놨다. 영화 <부산행> 포스터. ⓒNEW



지난 5월에 <곡성>을 보고는 곡성군은 고사하고 곡성 비슷한 곳도 생각하기 힘들었다. 영상의 힘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3개월도 안 되어 그 힘을 또다시 느꼈다. 공교롭게도 수원에서 <부산행>을 보고 바로 부산행기차를 타야 했는데 도무지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목적지는 대전, 영화에서 중요 키포인트가 되는 지점이다. 결국 한 시간 정도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래도 나름 리뷰에 힘을 싣고자 기차 안에서 글을 쓴다.


좀비의 출현에 맞서는 사람들의 사투

 

영화는 좀비의 출현에 맞서는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다.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왜 부산행 열차를 탔어야 했는가, 적절한 사연이 필요하다. 주인공과 함께 사투를 벌일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모두 사연을 붙여 각각의 캐릭터를 부각시켜야 하나 큰 덩어리에 속해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간 본성의 매개체로 작동하게 해야 하나. 사태의 원인 규명에 시간을 나눌 것인가, 사태 자체에 최대한 시간을 할애할 것인가. 제목이 그러하니 부산에 도착할 건데, 그때까지 누구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부산에 도착한 이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장르 특성 상 후속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영화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그동안 애니메이션만을 연출해왔다. 그의 작품 <돼지의 왕> <> <사이비>를 모두 보았는데, 특유의 집요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인간 내면을 밑바닥까지 핥고 사회 문제를 처절하게 드러냈다. 비현실적인 요소들로 현실을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냈다. 그런 그가 모든 면에서 블록버스터임을 감추지 않는 실사 영화를 들고 나온 건 의외였다.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집요함을 이 큰 영화에 잘 녹여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좀비의 출현이나 그에 따른 대응, 부산으로 가는 길이 아닌 기차라는 공간에 포커스를 맞춘다.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특히 좀비에, 별의별 이유로 출현한 좀비에 포커스를 맞추는 영화는 너무 많이 나왔다.


우리는 내부에서 좀비가 탄생하고 그들과 싸우다가 급기야 우리끼리 싸운다. 진짜 공포는 무엇인가.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NEW


 

좀비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패전에 대한 공포로 태어났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게릴라들의 모습이 흡사 좀비와 닮아 있다. 아니, 연상시킨다. 애초에 연상할 수 있게 만들어졌을 테다. 바야흐로 작금 세계는 테러의 시대, 한국은 지옥의 시대이다. 끝없이 테러를 자행하는 이들을 좀비로 볼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거다. 차라리 속이 시원하겠다. 당면한 적이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한국은? 북한인가, 일본인가, 중국인가, 미국인가, 러시아인가. 유럽의 대 테러 집단을 향한 시선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내부에서 좀비가 탄생하고 그들과 싸우다가 급기야 우리끼리 싸운다.

 

영화가 시작하고 예상보다 일찍 좀비가 출현한다. 이미 조짐은 한참 전에 보인 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중 하나인 서울역에도 나타났고 그 중 단 하나가 부산행 열차에 탔을 뿐이다. 아직 제정신일 때 열차에 탄 그녀는 곧 좀비로 변하고 순식간에 열차 전체를 덮친다. 기차 밖 세계에서는 좀비의 출현을 폭동이라 치부해 열차 내 생존자들을 혼란으로 밀어 넣는다. 오히려 연유를 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덮쳐오는 위협을 피해 도망가야 하기에 혼란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성은 작동을 멈추고 본능만이 살아 움직인다.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의 격렬한 충돌

 

본능은 여러 층으로 갈라져 나와 격렬히 부딪힌다. 살고자 도망친다. 나 혼자 또는 나를 비롯한 이쪽만 살고자 한다. 자칫 이쪽을 위험에 빠뜨릴 행동은 가급적 삼간다. 그러다가 누군가는 또 다른 본능에 눈을 뜬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위험을 무릎 쓰고 구하려는 마음 말이다. 그 마음들이 모여 강한 힘을 발휘한다. 혼자라면, 서로를 생각하지 않은 여럿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과감하고 강력한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성공한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는 여전히 강력하다. 이번엔 이기적 유전자들이 뭉친다. 이타적 유전자들이 뭉친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기적 유전자의 조직이 이타적 유전자의 조직을 완전히 밀어낸다. 자신만 살겠다는 강력한 힘이 발휘한 것이다. 거기엔 맹점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결국엔 자기 자신만 빼고 모두를 절벽으로 밀어 넣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같이 빠져나온 사이일지라도.

 

이타적 유전자들에게도 맹점은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 닥쳤을 때 자신의 차례가 온 걸 알아챈 듯 이 한 몸을 장렬히 던진다. 나머지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로 조직은 약해질 뿐이다. 결국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한 사람이 나서서 희생하기 전에 모두가 달려들어 위기를 타파할 순 없을까.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본능은 여러 층으로 갈라져 나와 격렬히 부딪힌다. 나 혼자 또는 나를 비롯한 ‘이쪽’만 살고자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는 또 다른 본능에 눈을 뜬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위험을 무릎 쓰고 구하려는 마음 말이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NEW


 

결국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 당면한 거대 위협을 피하기 힘들다. 속절없이 죽어가거나 힘겨운 사투 끝에 죽어가거나 겨우겨우 살아남아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 여느 영화에서는 살아남는 이가 겁쟁이, 아이, 엄마, 노인 등인데 <부산행>에서는 어떨까.

 

이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영화의 좀비는 여타 미국 영화의 자기 위안적 좀비와 비할 바가 아니다. 비현실적인 요소들로 가장 리얼한 현실을 보여주는 연상호 감독답게, 그가 만들어낸 좀비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눈에 보이지만 실체를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나 나를 위협하는지 모른다. 설령 알게 되더라도 다름 아닌 또는 우리때문에 생겨난 거란다. 기막힐 노릇이다. 달아날 구멍이 없다.

 

피할 수 없는 신파와 입체적이지 못한 캐릭터


영화는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시종일관 심장을 쥐고 놓지 않을 뿐이다. 기차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만 이뤄지는 인간과 좀비와의 격렬한 맨손 액션은 <에일리언> 시리즈 류의 괴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캐릭터성이 전혀 부과되지 않은 채 한 덩어리가 되어 달려드는 좀비들의 모습은 <월드워 Z>를 생각나게 한다.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많지 않은 인간들만 있음에도 첨예하게 갈라지는 한심하지만 다름 아닌 우리들의 모습은 <설국열차>가 생각나게 한다. ‘작가주의감독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블록버스터로서의 모습을 피하지 않는다.


영화는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시종일관 심장을 쥐고 놓지 않을 뿐이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NEW


 

재난 SF 영화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게 바로 신파인데, 이 영화도 장르가 지향하는 걸 피할 수 없는바 신파적인 요소가 곳곳에 나온다. 다름 아닌 이타적 유전자들의 희생 장면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듯이, ‘신파를 피할 수 없으면 눈물바다로 만들어라가 정답일 것이다. 죽음의 행렬을 다루는 영화에서 이타적 유전자들의 희생은 불가피한바, <부산행>은 완벽에 가깝게 그 고난의 임무를 완료한다. 그 중심에는 아이가 있고, 아이의 마음을 가진 어른과 아이의 마음을 가지게 된 어른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상황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입체적인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에 나오는, 격렬한 대립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인공 같은 인물 말이다. 그나마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영화에서 이기적 유전자의 화신 같은 삼천리 고속 상무라는 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 본능의 한 측면을 충실히 구현했을 뿐, 3의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여주다


<부산행>에는 격렬히 부딪히는 덩어리들이 있을 뿐이다. 혹자는 이들을 인간군상이라 말할지 모르겠는데, 필자가 보기엔 인간군상이라기보다 세력군상 같았다. 그렇게 보니, 이타적 유전자 조직도 완전한 이타를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도 이기적 유전자 조직까지 품에 안기는 힘들지 않는가.

 

그래서 영화는 작금의 한국 사회를 칼로 베어 보여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입체적인 인물이나 생각은 사라지고 오로지 너(너희)와 나(우리)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사회, 그 사이 어딘가 위치한 이들은 아예 대상화조차 되지 않는 사회, ‘회색분자라는 말이 나올 기반조차 없는 사회 말이다. 좀비 대 인간이고, 인간 대 인간이고, 이기적 대 이타적이다.


유일한 희망은 ‘아이’다. 아이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다.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어떤 상황에서도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만든 세상이어야만 한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NEW


 

유일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희망은 아이. 아이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다.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어떤 상황에서도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만든 세상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바엔 영화에서처럼 다 쓸어버리고 그들만 남겨져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다. 과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올바르고 선하게 자라난 본성이 아직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전,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지키며 현실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혹은 그들이 무너뜨릴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갈 수 있는 시대에 도달했지만, 그만큼 시야는 좁아지고 살 길 또한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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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설가의 일>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바야흐로 글쓰기의 시대다. 자기계발, 힐링, 인문학 열풍을 넘어 글쓰기까지 왔다. 글쓰기는 자기계발 요소, 힐링 요소, 인문학 요소까지 포괄한다. 더군다나 열풍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일 수 있으려면 대중을 상대로 해야만 하는데, 그렇다는 건 일반 대중들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책 읽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책을 만들려는 욕구는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다. 


이는 곧 대중들의 시선이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전에는 책에서만 얻을 수 있던 것들을 더 이상 책에서만 얻을 필요가 없어졌고, 이제는 얻은 정보들을 전해주려 한다. 이럴 때 문학과 같은 비실용서는 설 자리를 잃기 십상이다. 소설, 시, 산문 등. 읽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도움을 얻을 수 없는 책들. 그래서 같은 글쓰기지만 '소설 쓰기', '시 쓰기'와 같이 그 자체는 

실용적이지만 비실용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 책은 시장적 가치가 적다. 


산문으로 시작해서 소설 쓰기로 끝나는 글


그런 면에서 김연수 작가의 신작 <소설가의 일>(문학동네)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위에서 말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은 산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가의 일을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자기 비하까지 섞어가며 재밌게 담아냈다. 그런데 이 책의 실제 정체는 '소설 쓰기' 실용서이다. 소설가의 일이란 게 소설 쓰기인 만큼 자연스러운 전개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위치는 애매모호해진다. 짧은 글들이 산문으로 시작했다가 소설 쓰기로 귀결되기 때문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산문이라는 것을, 그 중에서도 에세이라는 것을 수필이라고 했을 때 거기에 어떤 계몽적인 면모가 들어가면 그 가치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고 만다. <소설가의 일>은 자신의 이야기로 자기계발을 시키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소설가는 이런 일들을 합니다.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소설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설은 어떻게 쓰는 지에 대한 정보를 얻으시고, 잔잔한 감동까지 함께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저자는 '펄펄 끓는 얼음에 이르기 위한 5단계' 라는 애매모호하고 오글거리며 다분히 소설가의 문장스러운 장을 통해 소설가의 '쓰기'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설파한다. 그 5단계 제목들만 나열해본다. 이 제목들도 다분히 소설가스럽다. 즉, 에세이답다. 하지만 내용은 자기계발적이고 실용적이다. 


1.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 

2. 쓴다. 토가 나와도 계속 쓴다. 

3. 서술어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토해놓은 걸 치운다. 

4.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면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5.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 세계를 감각하라. 


자기계발인데 계몽적이지 않다, 비호감이 아니다


한편 이런 이유에서 이 책의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자기계발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 시켰지만 전혀 비호감이 아니라는 것. 자기계발적 요소는 분명 계몽적이지만, 이 책에서는 계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20년 소설가의 내공으로 독자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분명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소설가가 될 생각이 꿈에도 없는 사람이 읽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저자는 단지 제목대로 자신이 하는 일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시장적 가치까지 가질 수 있었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한 발을 실용에 걸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시대에 산문의 힘을 보여줬다. 


저자는 소설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세 가지 부분이 있다. 먼저 '열정, 동기, 핍진성', 다음으로 '플롯과 캐릭터', 마지막으로 '문장과 시점'이다. 이 책을 보면 제일 많이 보이는 공식(?)이 있는데,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 +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에 갖은 방해 = 생고생(하는 이야기)'란다. 이것이 저자가 언제나 쓰고자 하는 이야기이고 소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서 꼭 들어가야 할 것이 '핍진성'이다. 핍진성은 뒤에 나오는 플롯과 캐릭터보다 중요한데, 뜻은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소설 창작의 한 방법'이다. 저자는 핀집성이 소설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라고 말한다. 


플롯과 캐릭터 파트에서 제일 중요한 건 '표정, 몸짓, 행동'이다. 저자는 소설가가 하는 일이란 바로 이 표정 및 몸짓과 행동을 알아내는 것이 전부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절망'과 '좌절' 그리고 '회복'을 붙이면 소설의 플롯과 캐릭터가 완성된다. 이때 이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소설은 하고 싶은 말을 '말'로 표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표정과 몸짓과 행동으로 표현해내야 한다. 


문장과 시점, 그 중에서도 문장은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설가의 일 중에 하나다. 자연스레 소설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문장에 대한 건 저자의 말로 대체한다.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내가 쓸 내용 같은 건 없다고. 오직 문장뿐이라고. 그것도 한 번에 하나의 문장뿐이라고. 내용이야 어떻든 쾌감을 주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을 뿐이라고. 끝내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잘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충분하게 많이......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는 사람, 그게 다다." (본문 중에서)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가의 일'


책을 읽어보니 소설가가 하는 일이 참으로 많다. 일반적으로 머릿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소설가의 일이란, 어두침침한 방안에서 부수수한 머리를 헝크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원고지를 수십 장 찢어버리기도 하고 술까지 마시면서 힘들게 힘들게 한 자 한 자 써서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다지 할 일은 많아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힘들어 보일 뿐이다. 


반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소설가의 일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저자는 본래 소설가의 일을 말했을 뿐이다. 저자가 소설가의 일을 쉽고 재밌게 전달했지만 소설가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닐 것이다. 이 책을 보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됐다. 소설가가 어떤 일을 하는 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알게 되었으면 족하다. 소설가가 되는 일에 대한 부분은 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소설가의 일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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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