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


<말할 수 없는 비밀>로 대표되는 대만 청춘영화 최신판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 ⓒ(주)해머픽쳐스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안다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청춘영화'의 대명사로 사랑과 음악과 시간여행과 반전이 조화를 이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어느 나라 태생인지 아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동양인 것만은 분명한데, 한국은 당연히 아니고 일본도 아니거니와 중국도 아닌 것 같다. 홍콩인 듯 태국인 듯하지만, 정답은 대만이다. 대만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주걸륜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으니 사실 알 만도 하다. 


지난해 혜성처럼 개봉해 '왕대륙 신드롬'을 일으키며 소위 대박을 낸 <나의 소녀시대> 또한 대만에서 날아온 청춘영화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가지고 있던 대만영화 최고 흥행 스코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새로운 전설이 된 작품인데,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리 모르게 많은 대만 청춘영화들이 방문했다. 거의 매년 찾아왔는데, 그래도 이름 한 번 들어본 영화는 2, 3년에 하나 정도는 된다. 


<청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정도는 한 번쯤 들어봤음직하다. 가장 최신에 우리를 찾아온 대만 청춘영화는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라는 제목의 작품인데, <나의 소녀시대> 히로인 송운화의 데뷔작이다. <나의 소녀시대>가 대만에서 대박을 내고 한국에 상륙해 역시 대박을 내니까 비슷한 느낌의 데뷔작을 늦게나마 들여온 것이겠다. 


대만 청춘영화의 최신판 


판타지와 병맛 같은 면모 아래 의외로 슬픔이 깔려 있다. ⓒ(주)해머픽쳐스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는 진중하다 못해 진지하기까지 한 제목과는 다르게 코믹이 작품 전체를 아우른다. 나아가 판타지적인 면모도 선사하는 바, 그 면모가 '병맛'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판타지로맨스를 기본 장착하고, 그 뒤로 나온 대만 청춘영화의 면면들을 두루두루 차용한 듯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재밌었다.


리 쓰잉(송운화 분)은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에 입학한다. 어느 날 차에 치일 뻔한 일을 당했을 때 손을 내밀어준 이 택우가 있다. 쓰잉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마음에 둔다. 한편, 학교에 이상한 남학생이 있다고 한다. 비키니를 입고 배추를 들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출몰한다. 쓰잉은 그를 두둔하고 그들은 종종 만나면서 친해진다. 


쓰잉이 일하는 카페엔 사연이 있는 듯한 사람들 투성이다. 그녀가 마음에 두고 있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택우와 비키니를 입고 배추를 들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아토우(브루스 분)를 비롯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카페사장과 여자임이 분명하지만 남자처럼 행세하는 선임 아르바이트생까지. 그 둘은 모두 말수가 적고 음침하기까지 하다. 혹시 이 네 명이 서로 얽혀 있는 게 아닐까?


쓰잉을 통해 우리는 네 명의 사연을 하나하나 들어볼 수 있다. 서로 연관이 있었지만 지금은 끊기고 앞으로도 없을 관계이지만, 조금 다르다. 중요한 건 현재 아토우가 쓰잉을 좋아한다는 것. 하지만 쓰잉의 눈은 택우를 향해 있기에, 병맛 같이 느껴지기까지 한 이들의 알콩달콩 사랑놀음은 그저 웃기기만 하진 않다. 의외로 슬픔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지나간 청춘의 시간을 되돌려 지금의 우리 앞에 놓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지나간 청춘의 시간을 불러내는 데 성공한 한국에 <나의 소녀시대>에 이어 상륙했다. ⓒ(주)해머픽쳐스



아토우가 쓰잉을 좋아하지만 쓰잉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중 짝사랑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스토리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지만 슬픔은 거기에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토우가 이상한 차림으로 다니게 된 이유에도 슬픈 사랑이 있고, 쓰잉이 좋아하는 카페 남자가 항상 그 자리에 앉는 이유에도 슬픈 사랑이 있으며, 카페 사장이 가끔 멍하게 있는 이유에도 슬픈 사랑이 있다. 심지어 선임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남자처럼 행세하는 이유에도 슬픈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 소소하게 지나갈 청춘의 통과의례와 같은 사랑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무엇 하나 같은 사연이 없고 같은 기분이 없고 같은 아픔이 없다. 소소할지 모르고 보편적일지 모르나 각자에겐 아주 특별한 사랑의 형태다. 비록 영화에서는 '카페'라는 공간에 모여 있지만 말이다.  


이 영화,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가 대만 청춘영화의 한 계보를 이을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나간 청춘의 시간을 되돌려 지금의 우리 앞에 놓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이미 청춘의 시간을 받아들인 바 있는 우리는, 그 시간의 다양한 변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비록 여러 사정으로 이 영화가 큰 인기를 끌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본 사람이라면 실망을 하진 않을 것이다. 대만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어느 부분을 건드린다. 아마도 청춘하면 가장 먼저 생각 날 '첫사랑'이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해석과 영화의 재미


청춘의 시간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을 달 수 있지만, 그저 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재밌다. ⓒ(주)해머픽쳐스



한편으론 '청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과거로 눈을 돌린다는 건, 그것이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려 하는 노력이 아닌 이상 도피 성격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화라는 콘텐츠 성격상 있는 그대로의 청춘을 보여주진 못할 것이다. 어느 부분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려 함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대만 청춘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또 많은 인기를 끄는 이유에는 현재의 척박함이 반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그런 영화들이 한국에도 건너와 어김 없이 많은 관심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의 한 면이다. 그런 모습이 슬플 것까진 없지만 씁쓸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런저런 해석 없이 그저 보고 재밌으면 그만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지극히 현실에 발을 디딛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판타지적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위에서 '병맛'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말이다. 그게 B급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의도했다면 충분히 제 몫을 다한 것 같다. 몇몇 장면은 로맨틱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바,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듯하다. 


이참에 명품 청춘영화들 몇 편을 다시 찾아 봐야겠다. 어느 것은 슬프고 어느 것은 아련하고 어느 것은 아름다울 것이다. 이 영화는 어느 편에 속하게 될까? 아마 새로운 챕터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결코 '명품'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 영화일 듯하다. 그 기억에는 언제나 웃음이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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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


<족구왕>의 히트로 <걷기왕>이 개봉했는데, 이젠 <장기왕>까지 나왔다. 독립영화계의 한 지류를 담당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과연? ⓒ하준사


2014년 <족구왕>의 성공으로 2016년 <걷기왕>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그리고 2017년 초 급기야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이상 '장기왕')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독립영화계의 한 축을 이루는 듯하다. 비단 제목뿐만 아니라,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코미디 요소를 듬뿍 품은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은 우중충하고 직설적으로 사회 고발을 하는 기존의 독립 영화와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장기'와 '가락시장'과 '레볼루션'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나열이 이 영화의 제목을 이루는데, 아마 그대로 영화를 구성할 듯하다. 아마 주인공은 장기를 엄청나게 잘 둘 것이고, 배경은 가락시장일 것이며, 일상의 소소한 혁명을 이루며 끝날 것이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엔 일단 성공, 끝까지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인듯


가락시장에서 장기왕을 꿈꾸는 한 젊은이로부터 시작해 여러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각자의 피곤한 이야기들이 있다. 잘 만든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좋은 영화인듯? ⓒ하준사



내년이면 서른인 두수는 가락시장에서 일한다. 밤 12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10시에 출근하는 고된 일이지만, 이 시대에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냐 하는 고마움과 왠만한 중소기업보다 많은 급여를 받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명언을 간직하고 있다. 


두수가 일하는 청과물 가게의 사장이 어느 날 가게에서 내기 장기를 두고 있었다. 훈수를 두는 두수, 이를 고깝게 본 사장은 두수와 장기 한 판을 둔다. 손쉽게 사장을 이겨버린 두수, 이때부터 두수의 장기왕 레이스가 시작된다. 가락동 일대를 제압, 탑골공원에 진출한다. 그는 불가능한 꿈을 장기로 이룰 수 있을까.


한편 그에겐 누나가 한 명 있다. 힘들게 일하고 매일 같이 성추행을 당하지만 이도저도 할 수 없는... 그에겐 친한 친구도 한 명 있다. 배우지망생으로 열심히 데뷔를 준비하지만 여의치 않아 중국집 배달을 하고 있는... 그에겐 짝사랑하던 첫사랑 친구도 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지만 휴가로 한국에 와서 노숙자들을 돕고 있다는... 이 불완전한 청춘들은 한데 뭉쳐 꿈을 이루려 한다. 


두서가 없는듯 이야기들이 파편화되어 여기저기 흩어진듯, 그렇지만 '장기'라는 소재를 끝까지 밀고나가며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들추려는 노력이 예쁘다. 엄밀히 말해서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인 것 맞다. 잘 만들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 영화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흩어져 있는 작은 힘들이 모여 소소한 혁명을 일으킨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티끌 모아 태산?' 다만, 극을 잘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것뿐. 그래도 가능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준사



'장기'는 바둑이나 체스, 하다 못해 오목보다도 더 비주류의 보드게임이다. 당연히 더 비활성화가 되어 있고, 손쉽게 다가가기도 힘들며, 주위에서 흔히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장기'를 주요 소재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창 잘 나가는 바둑을 소재로 차용해 '바둑왕'이라 했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을 텐데 말이다. 


장기가 가진 비주류적이고 소외된 이미지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락시장이라는, 젊은이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곳에서 일하는 주인공 두수. 회사에서의 상사에 의한 추행이라는, 어디 가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는 짓을 당하지만 회사를 다닌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누나 두희. 언젠가 반드시 영화에 출현해 배우로 성공하고자 하지만, 현실은 중국집 배달원인 주인공의 친구 낙훈. 소외당하고 보호받지도 못할 노숙자들을 데리고 연극을 준비하려는 주인공의 여자친구 민주. 그리고 그들이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돕고자 하는 노숙자들까지. 


공통적으로 '소외'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이들끼리 뭉쳐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주인공이 '장기'로 여는 것이다. 이 영화의 핵심적 메타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적절하게 쓰인 것 같진 않다. 영화 초반에 흥미로운 소재로 등장해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장기는, 후반부엔 그 빛을 급격히 잃는다. 대신 주인공의 여자친구 민주의 급작스러운 등장과 함께, 역시 급작스러운 등장인물들의 결합이 장기를 대신해 '레볼루션'을 향해 간다. 장기보단 연극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해 보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은 힘들이 모여 소소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 것이다. 그 구심점이자 소재로 장기를 택한 것이고. 하지만 그 연결고리가 그리 매끄럽지는 않았다. 영화 <족구왕>이 준 스토리적 감동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러닝타임이 90분이 채 되지 않는데, 연결고리에 시간을 더 할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니면 등장인물들의 흩어진 이야기들을 조금 더 빨리 주워담았으면 어땠을까. 


감동 대신 재미, 감동 대신 씁쓸함


분명 감동을 추구했을 텐데, 감동이 없다. 아니 애초에 감동이 없을 수도 있었겠다. 대신 재미가 있고, 씁쓸함이 있다. 매력도 있고. ⓒ하준사



감동을 받을 만한 주제임에도 감동을 받을 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흩뿌려 놓았을 뿐이기 때문인데, 대신 적정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순 있었다. 그건 순수하게 연기에서 비롯된 바, 특히 주인공 두수와 주인공의 친구 낙훈의 천연덕스러움은 발군이었다. 이 시대가 낳은 불행한 청춘들의 상징과도 같은 그들이지만, 주눅들지 않고 한껏 유쾌함을 발산하는 모습에 슬픈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애드리브가 상당했을 것 같다. 


얼핏 어설퍼 보이지만 능력껏 발휘한 영화적 스킬도 재미의 한 요소였다. 기본적으로 장기두는 모습이 상당히 나오기 때문에 그 모습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만화 <고스트 바둑왕>의 장면들이 연상케 했다. 오마주이자 패러디인듯, 귀엽게까지 느껴져 영화를 매력있게 보이는 데 한몫했다. 


어쩌면 애초에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영화였을지 모른다. 그들의 소소한 혁명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꾸기는커녕 현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처절한 좌절을 겪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그래서, 두수는 가락시장을 벗어났을까? 두희는 회사를 잘 다니고 있을까? 낙훈은 영화배우가 되었을까? 민주와 노숙자들은?


과연 바뀐 게 있을지? 그들의 소소한 혁명은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었을지? 물론 최소한의 변화는 있을 것이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변화에서 감동을 받는다. 내 인생에서 결코 오지 않을 크나큰 변화를 말이다. 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소소한 변화조차 꿈꾸기 힘든 세상이라고, 그 정도로도 위대한 진척이라고. 그들의 코믹한 모습을 보니 왠지 더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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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쓰이 아스타카의 <모나드의 영역>


소설 <모나드의 영역> 표지 ⓒ은행나무



독자가 책을 접할 때 출판사의 홍보 마케팅 전략 바깥에 있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상품이 그러지 않겠냐마는 책은 다르다. '책'이라는 단일 상품군 안에 샐 수 없이 많은 상품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별한 상품이자 특별한 사업 생태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거기엔 정녕 수많은 '최고'들이 존재한다. 


'책', 그 중에서도 '소설'은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읽을 거리와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보는 주지 못하고 읽는 데에 방점을 둔 '소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에서 '일본 소설'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북유럽 소설의 인기가 수직 상승 중이지만 한계가 분명한 반면, 일본 소설은 꾸준히 인기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은 그들의 거의 모든 소설이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일본 소설만이 갖는 정서가 작금의 한국 독자에게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일본 SF 거장 '쓰쓰이 야스타카'의 소설도 그 성격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SF적 상상력에 기반한 블랙유머와 넌센스는 얼핏 난해하지만, 인간사회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내포되어 있다. 


쓰쓰이 야스타카는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유명한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파프리카>의 원작자로 유명한데, 80세가 훌쩍 넘은 고령임에도 장편소설을 써냈다. 제목도 다분히 쓰쓰이스러운 <모나드의 영역>(은행나무). 마지막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쓰쓰이 야스타카의 50년 작품 세계의 집대성'이라는 홍보문구가 눈에 띈다. 


쓰쓰이 야스타카만의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상상력


개인적으로 쓰쓰이의 작품을 매우 오랜만에 접하는 바, 이번에도 그 특유의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발휘했을지 기대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숙하게 발휘했다고 할 수 있겠다. 미스터리와 SF의 결합, 그리고 인간 세계를 재조명하는 각종 지식들의 총집합이 자못 흥미롭게 진행된다. 


어느 날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성의 한쪽 팔, 수사를 맡은 꽃미남 형사 신이치는 '아주 커다란 어떤 사태의 시작처럼 느껴진다는' 상사의 말에 조심히 수사를 한다. 한편 역 앞 로터리 상가에 위치한 빵집 두 곳 중 하나 '아트베이커리', 미대생 알바를 둔 덕분에 평소 동물 모양의 빵을 팔고 있다. 갑자기 휴가를 신청하는 알바 둘, 자기들보다 실력이 더 좋은 친구를 알아봐뒀다고 호언장담한다. 


실력이 더 좋다는 친구 구리모토, 어딘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과연 실력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여성의 한쪽 팔과 똑같은 모양의 빵을 만든 게 아닌가? 자기도 모르게 만들었다는 그, 그 와중에 단골 손님인 미대 유이노 교수가 그 빵을 본다. 그 정교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는 칼럼에 개재한다. 곧 팔 모양 빵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고 방송도 탄다. 


구리모토 때문에 잘리게 된 알바 둘과 망하게 생긴 맞은 편 빵집 주인은 이 상황을 보고, 그 빵 모양이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성의 한쪽 팔과 완전히 똑같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신이치는 빵집으로 향하지만, 구리모토는 찾을 수 없고 어딘지 이상한 미대 유이노 교수를 만나게 된다. 곧 유이노 교수는 공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을 거듭하는데...


'신'의 말을 빌려 해명하는 쓰쓰이의 50년 기행적 소설 쓰기


소설은 여느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시작된다. 여성의 한쪽 팔에 이어 한쪽 다리까지 발견된 상황, 그런데 그와 똑같이 생긴 빵을 만드는 빵집이 있다? 그 와중에 기이한 행동으로 의심을 받고 또 사람들의 이목도 끄는 미대 학생 구리모토와 미대 교수 유이노까지. 다 갖춰진 느낌이다. 그런데 사건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쓰쓰이 야스타카만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즉 일상생활을 파괴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아니 일상생활은 그대로 둔 채 그를 둘러싸고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지극히 마니아적이라고 하겠는데, 그만의 세계가 하나뿐이 아니고 참으로 다채로워 그 층위가 높고 넓다. 


단도직입적으로 소설은 '신의 강림'이라는 소재를 주요 위치에 두었다. 신은 세상의 비밀을 무참히 폭로한다. 그 방법은 다분히 인간적인데, 마지막 장편 소설까지 참 쓰쓰이답다. 상해죄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끌려나온 'GOD', 신은 인간의 말을 빌려 신과 인간세계를 말하고, 그 말들은 조목조목 쓰쓰이가 지난 50년 동안 계속 해온 기행적인(?) 소설 쓰기의 변명 또는 해명처럼 들린다. 그 중심에는 '다중우주'가 있다. 


말인즉슨,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수많은 '가능세계'가 존재하고, 그 각각이 각각의 세계로 존재하며, 신은 이 세계의 근본 원리인 '모나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은 모든 것들을 '사랑'함으로. 신은 쓰쓰이 야스타카의 현현이다. 쓰쓰이가 만든 확고한 세계, 참으로 다양한 그 확고한 세계. 그는 '다중우주' 또는 '다중세계'를 문학 세계 전체에 걸쳐 만들어냈지만, 작품마다 소재로 종종 써 왔다. 그는 '작품의 조물주가 신'이라는 명제를 가장 잘 구현해냈다. 


소설의 '읽는 재미'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


이 소설을 진정 '집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점에 있다. 작가가 신이라는 개체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문학 세계를 돌아보고 또 인간 세계를 다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굳이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리지 않고 훨씬 더 잘 표현해낼 수 있었겠지만, 그가 굳이 소설을 이용한 건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쓰쓰이 야스타카이기 때문이다. 


초를 치는 것 같지만 말해두지 않을 수 있다. 흥미를 끄는 초반의 사건, 그러곤 갑자기 신이 강림하는 그 연계점이 상당히 부실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후반부에서 이를 신다운 명철함으로 훌륭히 봉합하지만, 그때까지 꺼림칙함을 벗어버릴 수 없을 거다. 이 또한 그의 대단함으로 치환할 수 있는 바, 이밖에도 여러 점들이 눈에 띄어 상당히 괴롭히지만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달을 보고 있지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 알면서도 여유작작하게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작가다. 


'이 소설을 보고 쓰쓰이의 전작들에 눈길이 갈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데, 그리 가능성이 높진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이 소설 자체로만 본다면 말이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실망으로 다가올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열광할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린 이 얇은 소설에서 천재적인 상상력이 선사하는 인류적 반전을 맛볼 수 있을 테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선사했던 따뜻함의 업그레이드 버젼을 받을 수 있을 테며, 일본 소설의 한 축을 단 번에 흡수하는 황홀감을 얻을 수 있을 테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무너져 가는 '소설'의 자존심인 '읽는 재미'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을 게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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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레이디 수잔>


다분히 '제인 오스틴' 사후 200주년(2017년)을 기해서 나온 듯한 영화 <레이디 수잔>. 더군다나 제인 오스틴의 미발표 첫 번째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했다. ⓒ㈜수키픽쳐스



2017년 사후 200주년을 맞는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들은 정전으로 추대되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거의 접해보지 않았다. 18~19세기 영국 귀족의 청춘 연애담을 위주로 하기에 성향 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일 테지만, 그게 하나의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을 테다. 왠지 그렇고 그런 연애 이야기일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당연히 그녀의 작품을 영화한 것들도 거의 접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살아생전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고 많은 인기를 끌었거나 좋은 평을 듣지도 않았다. 20세기 들어서야 대대적으로 재조명 되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그녀의 작품뿐 아니라 <비커밍 제인>처럼 그녀의 인생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정도임에도 거의 접하지 않았다는 건 어지간히도 관심이 없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와중에 최근 나왔다는 영화 <레이디 수잔>을 접했다. 제인 오스틴이 채 20살도 되지 않은 때에 지은 미완성·미발표 단편 습작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 제인 오스틴의 여타 소설들의 여주인공과는 다르게 당차고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고 도덕적이지 않기까지 하다는 점 등에 눈길이 갔다. 


레이디 수잔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사랑 방식


기존의 제인 오스틴 작품과는 달리 여성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사랑 방식을 중심으로 영국 귀족 사회의 연애담을 폭로한다. 거기엔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커녕 사랑 자체가 없다. ⓒ㈜수키픽쳐스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레이디 수잔, 그녀는 맨워링 경과 연애를 시도한다. 하지만 맨워링 부인의 반대에 부딪혀 뜻대로 되지 않자 급히 선회, 레지널드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는 다름 아닌 사별한 남편의 남동생의 부인의 남동생, 즉 동서의 남동생이다. 사돈이라는 얘기. 


하지만 레이디 수잔이 워낙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은 바, 레이디 수잔의 동서인 캐서린은 남동생을 그녀에게 장가가는 걸 싫어한다. 대신 그녀의 딸인 프레데리카와 잘 이어지길 바란다. 그건 캐서린과 레지널드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가문의 수치'라며 레지널드를 나무란다. 그래봤자 레지널드에겐 소 귀에 경 읽기. 그는 레이디 수잔에게 푹 빠졌다. 예쁘고 지적이고 품격 높은 레이디 수잔이 아닌가. 


영화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의 영국 귀족 사회로 예상되는 배경에 걸맞지 않게(?) 경쾌하다. 그 중심엔 레이디 수잔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인생 지침 하의 사랑 방식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다들 그런 그녀를 비방하고 조롱하지만 정작 그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는 다 잘 되자고 그러는 거지 다 못 되자고 그러는 게 아니다. 새드 엔딩이 아닌 해피 엔딩이 그녀가 바라는 바다. 그런 그녀를 악녀라 치부하며 미워할 수가 있을까? 없다. 


더불어 영화 자체가, 즉 감독이 추구하는 바가 굉장히 유머스럽다. 영화 초반부에 주요 인물들을 각각 몇 초간 보여주며 자막으로 이름과 함께 유머스럽고 풍자적으로 설명해주는 게 매우 알맞게 재밌다.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제임스 경'이라는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성격 좋고 활달한 귀족의 원맨쇼가 영화의 품격을 높인다. 품격 높은 코미디라고 할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몇 있는데, 왠지 감독이 일부러 그가 출현하는 코믹한 장면을 더 넣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극 전체와 크게 부합되지 않는 장면이자 인물임에도 많은 분량을 소화한다. 


제임스 경이 프레데리카가 있는 '처칠'에 와서 하는 말, "여기 교회(처치)와 언덕(힐)이 어디 있나요? 아, 이곳 이름이 처칠이었나요. 저는 처치힐인줄 알았지요. 하하하." "12계명이 아니라 10계명이라고요? 그럼 12개 중 2개를 버려야 하는데, 뭘로 하면 좋을까요? '살인을 하지 마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하느님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어차피 하면 안 되는 거고 하지 않을 건데. 하하하." 실제로 보면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여성에게 요리조리 휘둘리는 남성들


여타 제인 오스틴 작품과 같은 점은, 여성이 주가 되어 남성을 요리조리 휘두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영화는 이 점을 아주 잘 살려냈다. ⓒ㈜수키픽쳐스



한편, 레이디 수잔은 딸 프레데리카가 돈 많고 가문 좋고 성격 좋지만 나이가 좀 있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제임스 경에게 시집가길 원한다. 미망인인 자신이 딸을 언제까지 보살펴 줄 수도 없거니와, 딸이 잘 살길 바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딸의 꿈을 무참히 꺾어버리면서, 바보에게 시집가길 중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원하면, 나이도 비슷하게 자신이 제임스 경에게 시집을 가고 딸과 레지널드가 이어지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녀는 이 모든 걸 머리에 넣고 판을 짜서 자신의 의중대로 되게끔 조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지휘가 땅을 뚫고 들어가는 당시, 여성이 남성을 조종하며 변화시키기까지 하는 모습이 신선하지 않은가. 


영화는 어김없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영화한 작품)답게 당대 귀족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그려냈다. 사실 레이디 수잔을 비롯해 그녀를 둘러싼 지난한 연애담 자체가 그러할 텐데, 전 세계를 제 집 앞마당에 가듯 드나들면서 온갖 나쁜 짓을 다 했던 대영제국의 한복판이 당시이다. 또한 그 중심에 귀족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고작 얼토당토하고 어이 없는 연애나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엔 사랑이 없다. 


적어도 이 작품엔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에는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물론 그것도 귀족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될 수 있지만, 이정도로 신랄하진 않을 거다. 


한편, 남성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부가 되어 여성에게 요리조리 휘둘리는 모습들은 속이 시원할 뿐 불편하지 않다. 심지어 제임스 경으로 대표되는 천하의 멍청이도 남성이고, 레이디 수잔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차이는 허당 레지널드도 남성이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멍청이고 허당이다. 재밌게 느껴졌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는 없을 듯


연기와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이, 음악, 의상도 최상위급이다. 분위기가 워낙 코믹스러워 소품 정도로 치부하기 쉽지만, 웬만큼 이상의 꼼꼼함이 묻어난다. 결정적으로 '재밌다' ⓒ㈜수키픽쳐스



영화에는 클래식 음악이 상당히 나오는데 잘은 모르지만, 바흐보다는 헨델과 비발디, 베토벤보다는 모차르트 풍의 음악이었던 것 같다. 진중하고 고뇌에 찬 느낌이 아닌 발랄하고 사교적인 느낌. 영화의 느낌을 잘 살리는 동시에 그 자체로 빛이 났는 바, 모든 걸 떠나서 영화를 아주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모든 시대극에서 빛이 나는 건 뭐니뭐니 해도 당시를 재현한 스타일일 것이다. 당시 스타일의 풍광이나 풍미도 그렇지만, 의상이 가장 빛난다. 그건 동서양이 모두 그렇다. 이 작품도 그것에 굉장히 공을 들인 듯, 기존의 제인 오스틴 영화들에게 보여주었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을 선보인다. 초기작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실제 시간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때쯤 입었을 만한 의상 스타일을 차용한 게 아닌, 꼼꼼한 조사가 뒷받침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거의 처음으로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를, 참으로 오랜만에 서양 시대극을, 그것도 진중하지 않은 코믹한 느낌으로 보게 되어 색다른 경험을 재미있게 했다. 솔직히 이 작품을 계기로 제인 오스틴 원작의 다른 영화를 볼 것 같진 않다. 이 영화보다 '좋은' 영화겠지만 적어도 '재미'있진 않을 것이기에. 재미를 찾는 게 조금 황당할지 모르지만 어쩌랴. 그녀의 작품으로 정녕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이가 여기 있고, 나는 그 작품을 입문작으로 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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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나간 책 다시읽기] 최고의 데뷔작 <13계단>


최고의 데뷔작 <13계단> 표지 ⓒ황금가지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 국가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형 판결은 내려지고 있는 바, 유형철, 강호순, 조두순, 김길태 등 최악의 흉악 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사형 제도 존폐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때문이다. 첨예한 대립 속에서 집행을 하지도 폐지를 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판결은 내리고 집행을 하지 않는 양상이 20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그 와중에 가까운 나라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도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2012년 아베의 재집권 이후 17명의 사형수에게 사형 집행을 내렸다. 당연히 첨예한 논란과 대립이 있지만,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가해자의 인권보다 사회 정의 발현 목소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겠다. 


개인적으로 사형 집행을 찬성하는 바,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살인 이상의 흉악 범죄를 저지른 '인간 이하'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로서니,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사형 판결이 아닌 '사형 집행'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집행'(또는 판결)을 한 후에 누명인 게 밝혀지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고의가 아닌 살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살인을 저지르고는 회개하고 뉘우치며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하는 경우엔? 유족이 받아들인다면?


사형 제도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과 논란을 소설적 재미로


일본의 유명 추리 소설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최고의 데뷔작이자 문제작 <13계단>은 사형 제도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 속에서 펼쳐지는 기가 막힌 이야기를 담았다. 그 이야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은 물론이거니와, 사형 집행 실행자, 그리고 사형 집행 명령 절차가 출현한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는 다양한 유형의 가해자, 즉 사형수가 있다. 고의에 의한 흉악 살인, 합당한(?) 이유에 의한 살인, 미심쩍은 살인, 정당방위 살인, 살인 누명 등이다. '사형 집행'이 필요하되, 반드시 철저한 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편 소설 자체는 극강의 재미를 선사한다. 첨예한 대립과 논란이 될 만한 요소를 가져와 소설적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데 쓰이게 한다. 주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과 그들이 행하는 바를 들여다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13계단>은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피말리는 모습을 그리며 시작된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간수의 발자국 소리, 그 저승사자가 멈추는 그곳에 헤아리기 힘든 죽음의 공포가 스며드는 것이다. 이 짧은 프롤로그로 독자는 이미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다른 이의 목숨을 앗아간 이들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를 통해 '죽음'이란 무엇인지 '사형'이란 무엇인지 뼈져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어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 명은 교도관 난고. 오랫동안 이어온 교도관 생활을 청산하고 가족과 재회해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거금이 필요한대 우연히도 때마침 의뢰가 들어온다. 사건 당시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형수 사카키바라 료의 무죄를 입증하라는 것. 몇몇 석연치 않은 점들과 그가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점, 그리고 최근 우연히 돌아온 기억 속의 '계단'이 전부다. 


다른 한 명의 주인공은 전과자 준이치. 다툼 도중에 상대방을 죽이게 해 상해 치사죄로 2년을 복역하다 얼마 전에 출소했다. 그는 부모님이 엄청난 거금을 피해자 유족에게 지불해 어려움에 처한 걸 알고는, 난고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거금을 받으며 난고가 하려는 일을 도우라는 것. 료의 무죄를 입증하고 진범을 찾아내 바로 그를 사형에 처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3개월 남짓. 그 이후엔 료의 사형 집행이 거의 확실시된다.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속출하는 다양한 유형의 피해자들


기억을 잃은, 즉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 수조차 없는 이가 사형 판결을 받아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다. 당연히 그에게서는 잘못을 뉘우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사형 집행은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거나 다름 없다. 사형 제도의 첨예한 논쟁 속에서,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게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죽어도 괜찮은가. 


최근 '삼례3인조' 사건의 사법피해자들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17년 만에 누명을 벗은 것이다. 그에 이어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었고, 진범으로 추정되는 이가 잡혔다. 16년 만에 누명을 벗은 것이다. 소설 속에서 사형수 료는 7년 째 복역 중이며 사형 집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이야기의 정황 상 그의 무죄가 드러날 텐데, 그 억울함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그 무죄가 드러나기 전까지, 그 억울함과는 별개로 피해자 유족의 억울함은 어떠한가. 가해자가 사형을 당한다 해도 피해당사자가 살아돌아오지 못한다. 평생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겐 그나마 가해자의 사형이 유일한 안식일지 모른다. 어느 누가 그들을 욕하랴? 어느 모로 보나 가해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 와중에 또 다른 피해자가 존재한다. '사형'은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행태의 하나지만, 사형을 집행하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살인'에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테다. 누군가는 손으로 직접 행해야 하는. 그야말로 가해자 아닌 가해자, 피해자 아닌 피해자로서, 경계에 서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비록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지만, 누가 그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을 것인가. 


피해자는 속출한다. 실질적으로 가해를 행한 이들 중에도 피해자가 있다. 아니, 있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순 없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명을 쓴 이들은 제쳐두고,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이유가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다. 이 또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한대,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그렇지만 아마 직접적으로 의견을 입 밖에 내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이리라. 


무엇보다 공분을 살 '사형 집행 절차'의 황당함


<13계단>에서 무엇보다 공분을 살 내용은 '사형 집행 절차'에 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절차.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여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형 제도 찬반 논쟁은 여기서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거대하고 그칠 줄 모르는 그 논쟁 속에 존재하는 실질적이고 문제 많고 가려진 문제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더 중요할 수 있다. 


"160번은 법이 지켜야 할 이익, 법익을 침해했기에 처형당한다. 난고는 유족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이 여성은 가족을 모두 살해당하고도 피고인의 사형을 원치 않는다. 내일의 처형은 누구를 위해 진행되는가. 피해자 유족의 의지와는 달리 범죄자에게 절대 응보를 과하는 것은 더 더욱 범죄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아닐까." (본문 186~187쪽 중에서)


"난고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얄궃은 미소를 띠었다. 같은 해에 체포된 사키카바라 료가 이미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 오하라는 아직 확정도 되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재판 제도가 지닌 문제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을 범한 경우,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죽인 쪽이 심의 과정이 지체되면서 오래 살 수 있다." (본문 215~216쪽 중에서)


"역대 법무 장관 중에는 자신이 믿는 종교를 방패 삼아 사형 집행 명령을 거부한 장관이 있었다. 또한 이유를 명언하지 않더라도 명령서에 서명하지 않은 장관도 몇이나 있다. 그러한 행동은 사형 제도 반대론자들에게는 환영받을지 몰라도 명확한 직무 유기였다. 집행 명령이 법률에 장관의 직무로 규정된 이상, 그게 싫으면 장관 취임을 거절해야 마땅하다. 법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권력의 자리에만 앉으려 하는 것은 법무 당무에 있는 자로서 납득할 수 없다." (본문 240쪽 중에서)


"누가 이것을 보상해 줄까요. 민사 재판이 성사되었더라도, 위자료라는 이름의 푼돈으로 유리의 마음을 다시 사 들일 수는 없습니다. 육체의 상처에만 상해죄가 적용되고, 망가진 사람의 마음은 방치되는 것입니다.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본문 367쪽 중에서)


추리소설과 사회파 소설의 조합 그 이상


<13계단>은 추리 소설다운 서스펜스와 사회파 소설이 가지는 문제제기가 굉장히 훌륭하게 버무러져 있는 소설이다. 거기에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영화를 보는 듯한 전개, 그리고 정녕 관련 논문 이상 가는 정보와 이론과 주장과 실제는 환상적이라 할 만하다. 사형 제도와 관련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서술 또한 이 소설이 단순한 추리 소설 이상가는 소설이라는 점을 입증해주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지금은 그의 또 다른 걸작이자 대작 <제노사이드>를 읽고 있다고 살포시 고백한다. 일반 대중을 위시한 재미, 평단 제위를 위시한 메시지와 소설다움, 그 사이 어딘가를 위시한 '있어 보이는, 실제로 뭔가 있는' 소설로서의 매력까지 두루 갖춘 소설을 본 후인 만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들은 모조리 가해자다. 그런 면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라 할 수 있는데, 또 그들은 모조리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인데, 모든 인간이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아니 반드시 느껴야 한다. 


살인을 하여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자가 사회를 위해 다른 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게끔 허락해야 하는가? 그들은 교화의 대상인가, 응보의 대상인가. '가해를 위한 가해'는 애초에 생각의 대상이 아니다. 여지가 없다. 반면 가해와 피해의 경계에서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가해 쪽으로 발을 딛게 된 이들은 대상이 되지 않을까. 여지는 있지 않을까. 알 수 없다. 내 곁에 그런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극 중에서 사키카바라 료가 무죄로 방면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막힘 없이 대답하는 친구의 대답이 일품이다. 


"그때는 또 녀석과 함께 열심히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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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의 두 번째 타자로, '멀티 버스'의 시작을 알린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다. 엄청난 기대감을 오롯이 받을 텐데, 그에 부응할까?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몇 년 전에 이미 개봉일이 잡혀 체계적으로 사전 마케팅을 해오며 기대감을 한층 부풀어 올렸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가 대망의 막을 올렸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포문을 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3'의 두 번째 타자로, 2016년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다. MCU의 14번째 영화이기도 한 바, 현재 22번째까지 예정되어 있는 MCU의 주요 연결고리이자 새로운 세계관의 시작이기도 하다. 즉, '멀티 버스'의 시작이다. 


어벤져스와는 다른 차원의 적에 대항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은 현실에서 온 '마법사'다. 그렇다는 건 누구나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영화는 거기까지 제대로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신, 아이들이라면 정녕 넋을 놓고 황홀하게 바라볼 장면들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키포인트이자 사실상 전부가 바로 그 장면들이다. 더불어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여러 비쥬얼 쇼크들이다. 


전형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이 영화는 '전형적'이다. 전형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이다. 결과가 보여주는 바, 여기에서의 '전형적'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비춰질 수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항상 세계관과 속편과 (시리즈) 후속편을 염두에 두는 MCU 영화답게 진행된다. 또한 새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의 시작을 알려야 하는 영화이다 보니,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상당히 늦다. 모든 걸 다 보여주려 하지 않고, 군데군데 그리고 마지막까지 여지를 남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MCU 영화다. MCU 영화라는 단어가 생긴 것과 더불어 어느새 '전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이다. 이 수식어가 시리즈 자체에 악영향이 아니라 선영향을 끼칠 것 같다. 


천재 신경외과의 스티븐 스트레인지,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쿨하다. 가히 그 천재적인 솜씨로 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지만, 동료 의사를 거의 묻어버리다시피 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실력으로 똘똘뭉친 오만방자함 그 자체인 것이다. 비오는 어느 날, 여지 없이 비싼 것들을 걸치고는 비싼 차를 끌고 미친 듯한 속도로 길을 떠난다. 당연한듯 사고를 당해 하필 두 손만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는 스트레인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온갖 방법으로 손을 고치려 한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수술을 해보기도 하고, 엄청난 노력으로 물리치료를 해보기도 한다. 다 부질 없다. 그 와중에 찾아낸 어느 환자의 기록. 그 환자는 예전 절대 가망없을 거라 판단하고 수술을 거부했던 환자였다. 지금 그는 살아있는 건 당연하고 걸어다닐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스트레인지는 그를 찾아가 비법을 묻는다. 그가 가르쳐준 건, 네팔의 카마르-타지였다. 스트레인지는 당장 그곳으로 떠난다. 그의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별 것 없는 스토리, 말할 게 없는 연기, 공감할 만한 유머


마블의 히어로 영화가 갖는 여러 요소를 갖추었다. 정작 들여다보면 별 게 없는 이야기, 캐릭터가 워낙 강해 연기랄 게 없는 하고, 중심에 선 인물의 유머는 빛을 발한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토리는 더 이상 알려드릴 게 없다. 스트레인지는 그렇게 '단시간'에 엄청난 능력을, 마블 히어로 최강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역시 마블 히어로 최강 최악의 빌런을 그만의 방식으로 물리친다. 그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아가모토의 눈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절정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지구를 지키는 소서러 슈프림인 '에이션트 원'을 배신하고 떠나 다크 디멘션의 힘을 업고 그들을 치려는 케실리우스의 주장이다. 그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적이기 때문에, 영원한 시간을 약속하는 다크 디멘션이야말로 우리들이 따라야할 진정한 '선'이라고 말한다. 그 앞에서 한낫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은 맥이 풀릴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어렴풋이 내비치려 하지만, 거기서 끝나고 만다. 스트레인지는 그에 반대하고, 영화는 다시 비쥬얼 쇼크를 준비한다. 


연기도 뭐라 말할 게 없다. 캐릭터에 배우들이 완벽하게 이입했다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함 그 이상인데, 수없이 많은 상을 타며 압도적인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찌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연기' 경력에서만큼은 흠으로 남을 수 있는 배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무리 없이 오로지 캐릭터에 맞춰져야 하는, 연기력이 출중한 이들에겐 힘들 수 있는 역할을 하나 같이 잘 해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레이철 맥아담스, 틸다 스윈튼, 매즈 미켈슨, 치웨텔 에지오포가 그들이다. 


반면 베네딕트 컴배비치만이 할 수 있는 유머는 영화의 격을 높이는 데 크게 한몫했다. 비록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생각나게 하는데, 한층 더 대중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만한 유머라는 말이다. 스트레인지 역할에 베네딕트 컴배비치보다 적절한 배우가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오직 비쥬얼 쇼크, 그리고 적재적소의 묘미


전에 없는 비쥬얼 쇼크를 선보인다. 가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 여파가 오래가진 않는다. 이제까지 봐왔던 여러 영화들에서 봐왔기에. 다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묘미를 선보였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비쥬얼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것밖에 남는 게 없고, 그것이 단연 압권이다. 사정없이 뒤틀리는 시공간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하는데, <인셉션>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물론 훨씬 정교해지고 스케일이 커졌다. 이런 류의 시공간의 뒤틀림은 영화의 액션 장면에 도맡아 출현한다.


스트레인지가 손을 치료하기 위해 네팔로 찾아가 에이션트 원에게 수련을 받는 장면은 단연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한다. 물론 액션 영화에서 동서양의 만남이 종종 있어 왔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닥터 스트레인지>와 <매트릭스>만큼은 따로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그뿐인가? 오만방자한 스트레인지에게 에이션트 원이 세계의 진면목을 알려주기 위해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장면은 <인터스텔라>가, 영화의 숨은 조연 '리비테이션 망토'는 <해리포터>가 연상된다. 이처럼 대놓고 따라하는 영화는, 패러디 영화를 제외하곤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건 '재미' 덕분이다. 여기저기에서 가져온 것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느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치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게 재미의 요소인 것이다. 이는 MCU 영화가 추구하며 보여주는 퍼즐 맞추기 느낌과 궤를 같이한다. 찾아보는 재미와 함께, 얼마나 더 멋지고 화려하게 재탄생시켜 구현해냈는지 구경하는 재미를 보장한다. 비쥬얼의 신세계나 신기원을 열어젖히진 못했을지라도, 그동안 봐왔던 비쥬얼의 집대성, 그리고 한층 발전한 비쥬얼 쇼크나 향연을 질릴 만큼 보여주기에 그 자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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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낮술>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 여러 모로 보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때론 너무 웃겨서, 때론 너무 답답해서, 때론 너무 불쌍해서, 때론 너무 나 같아서. ⓒ영화사 진진



실연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혁진을 위로 하기 위해 친구들이 뭉쳤다. 의미 없는 말이 오가고 혁진은 여전히 실의에 빠져 있다. 기상이가 제안을 하나 한다. 내일 당장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 아는 형이 폔션을 하고 있으니 몸만 가면 된다는 것. 마침 장날이기도 하단다. 폔션 잡고 놀다가 강릉 해수욕장에 가서 겨울바다를 마주하며 컵라면에 소주 한잔 들이키자는 것. 술김에 생각할 것도 없이 모두 승낙한다. 


혁진은 홀로 정선에 도착한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장은 어제 끝났다고 한다. 혁진은 점심을 먹는다. 기상한테 전화가 왔는데 서울이란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일모레나 갈 수 있다고 한다. 혁진은 기상을 욕하며 반주를 한다. 기상이가 계속 전화를 건다. 이왕 거기까지 간 거 폔션에 가서 쉬라고, 내일 모레 가겠다고. 혁진의 모험 아닌 모험이 시작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은 <조난자들>의 노영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두 작품으로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상도 많이 탔다. 비록 두 작품이지만 그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본격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이다 보니 흥행하기가 쉽지 않고 영화를 계속 만들기도 쉽지 않다. 


주인공 혁진은 술을 엄청 좋아하는, 그런 이는 아니다. 다만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으니, '술 잘 마시네~'. 그럴 때마다 혁진은 좋아하며 더 마신다. 우리 모든 남자의 자화상. ⓒ영화사 진진



영화는 내가 보아 온 여타 '주류' 독립영화와는 다르다. 독립영화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이 주를 이루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문제를 건드리곤 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 <가시꽃> <마돈나> <4등>이 그랬다. <낮술>은 장르부터가 '코미디'이고 '술'이 주요 소재인 만큼 이들과는 멀 수밖에 없을 거다. 


영화에서 술 마시는 장면만 열 장면 이상이다. 장면당 5분씩만 해도 영화의 절반에 해당한다. 거기엔 어김 없이 주인공 혁진이 있는데, 술을 향한 폭주는 아니다. 그는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가, 누군가가 무슨 이유를 대서 술을 권하면 때론 즐겁게 때론 억지로 술을 마신다. 빠지지 않는 말이 있으니 "이야, 술 잘 마시네~" 


정말 찌질하지 않나. 왜 그러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런데 혁진에게서 내 모습이 보인다. 나 뿐만이랴? 여러 남자들이 보인다. 대다수이지 않나 싶다. 딱 저 한마디면 된다. 그러면 아마 대다수 남자들은 술을 거절하지 못할 거다. 술 마시는 장면만 나오면 손발이 오그라 들면서, 웃기고 슬프다가, 우울해지고, 술 진탕 마신 것처럼 허탈해진다. 그걸 의도한 거라면 정녕 잘 해냈다. 


홍상수표와는 또 다른 '진리'


남자 입장에서 술이 있는 자리에 여자가 빠질 수 없다. 혁진은 술이라면 거절을 못하는데, 또 여자도 거절 못한다. 혁진은 며칠의 여행 아닌 여행 동안 온갖 처참한 꼴을 당하는데, 온전히 술과 여자 때문이다. 애초에 실연을 당하고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정선에 가게 된 거 아닌가. 또 폔션에서 옆방 여자에게 들이대려다가, 옆방 여자의 유혹에 못 이겨 그리 된 게 아닌가. 


홍상수표 영화인듯 아닌듯, 가장 먼저 홍상수표 영화가 생각나지만 또 다르다. 또 다른 '찌질'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사 진진



술과 여자, 술자리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홍상수표 영화'. 그의 영화에 빠짐 없이 등장한다. 그의 영화에, 특히 술자리에서 꼭 등장하는 게 있으니, 허세 가득한 술자리 비평들이다. 다 상대방을 꼬시려는 수작이다. 그게 너무 눈에 드러나는데, 그래서 너무 찌질해 온몸이 가려울 정도인데, 너무 나와 똑같아서 무섭기까지 하다. 


반면 <낮술>에는 술자리 비평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고작 하는 얘기가 술에 관한 거다. '술 한잔 하러 가실까요' '술 한잔 쭈욱 들이키시죠' '술 잘 마시네' '주량이 어느 정도세요?' '거국적으로 건배' '원샷입니다' 등. 정녕 아무 의미 없는 말이 오간다. 홍상수표 술자리와는 또 다른, '진리'에 가까운 모습이다. 


'재미'의 향연, 그 뒤엔 여지없이 '술'로 인한 씁쓸함


한편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어른 남자의 로드 무비로도 읽힌다. 생각나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최고의 성장소설 중 하나로, 아이지만 스스로가 어른 같다고 자부하는 홀든 콜필드가 학교를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흘 동안 겪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다뤘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는 한편 천사 같은 이들도 만난다. 진정한 천사인 여동생 피비를 만나며 콜필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술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저 혁진의 여정에 포커스를 맞춰도 좋다. 일종의 폭소 로드 무비랄까. 그저 재밌고 재밌다. 또 보고 또 봐도 마찬가지. 단, 남자한테만 그럴듯? ⓒ영화사 진진



혁진은 어땠을까. 변태도 만나 당할 뻔하고 호의를 갖은 척 접근한 이들에게 제대로 털리기도 한다. 이상한 말을 해대는 못생긴 여자에게 명확한 거절의 뜻을 내비치니 쌍욕을 해대지 않나, 알고 보니 그 여자가 기상이의 아는 형의 사촌 여동생이라지 않나... 정말 되는 게 하나 없는, 콜필드의 여정 못지 않는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콜필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콜필드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 여정을 택한 거고 혁진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다.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너무 재밌고 생각하며 봐도 역시 너무 재밌다. 박장대소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몇몇 등장한다. 조금은 예상이 되지만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 앞에 여지 없이 '술'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일 년에 한 번은 꼭 술 때문에 인생에 남을 만한 사고를 치곤 한다. 차마 말 할 수 없는 그런 정도로 말이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술을 진탕 먹고 사고를 치곤 하는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다. 혁진이도, 아니 술을 마시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컵라면에 소주 한 잔',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환상적이다. 춥긴 너무 추울 텐데, 뜨거운 컵라면에, 속 깊이 지져주는 소주까지. 혁진이 직접 해보고 친구한테 말해줬다. "야, 너무 춥기만 하더라. (너무 추워서 컵라면하고 소주를 먹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그렇다. 술은 항상 핑계가 있다. 핑계는 핑계로만 끝나지 않고 술도 술로만 끝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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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레스트 검프>


내 인생, 최초의 '제대로' 된 영화 <포레스트 검프>. 그전까지 영화가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이나 다름 없었던 내게, 이후로 '영화 세계'가 열렸다. ⓒ파라마운트



영화를 몰랐던 10대 시절에 우연히 주옥 같은 영화들을 만났다. 중학교 3학년 음악 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아마데우스>,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쉬며 TV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한 <와호장룡>. 그들은 아마 영원히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재로 작동할 것이다. 


'넌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니?'라고 누군가 물어 왔을 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는 따로 있다. 때는 중학교 2학년 어느 주말이었던 것 같다. 큰 이모네가 놀러 왔다. 큰 이모 내외는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영화나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다. 큰 이모부가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도서·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너네 혹시 이 영화 봤니? 안 봤으면 오늘 빌려가서 꼭 봐야해"라며 건네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였다. 


20여 년 전의 장면이지만 아직도 생생한 건 그 이후로 내게 '영화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전까진 아예 존재하지 않던 세계였다. 큰 이모부의 추천 덕분이었는지, 영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영화라는 건 그저 보기만 하는 거였다. 가타부타 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할 말도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에게 영화는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이나 다름 없었다. 


달리기로 달라지는 인생


<포레스트 검프>는 1994년에 개봉했고 22년 만에 재개봉한다. 명장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에 명배우 톰 행크스가 열연했다. 대대적인 흥행과 대대적인 호평, 그리고 대대적인 상복이 뒤따랐다. 명실상부한 9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영화로 '영화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으니, 나는 참 복 받은 것 같다. 22년만에 재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많은 이들에게도 이 영화가 특별했으면 좋겠다. 


선천적으로 걸을 수조차 없었던 포레스트 검프, 제니의 한마디 "달려! 포레스트!"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후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파라마운트



IQ 75에 척추가 활처럼 휘어 걷지 못하는 아이 '포레스트 검프', "넌 남들과 다르지 않아, 명심하렴"을 주문처럼 아이에게 말해주는 엄마 덕분에 보통 학교에 들어간다. 등교 첫날, 스쿨 버스에서 아무도 자리를 함께 하려 하지 않을 때 "앉고 싶으면 앉아도 돼"라는 '제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후 포레스트와 제니는 실과 바늘처럼 언제나 함께 다닌다. 


어느 날, 여지 없이 포레스트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나타나 돌멩이를 던진다. 그때 포레스트의 인생을 바꾼 제니의 한마디가 울려퍼진다. "달려! 포레스트, 달려!" 포레스트는 자전거를 타고 쫓아 오는 아이들을 따돌리려 사력을 다한다. 불편한 다리는 어느 순간 불편하지 않게 되고, 자전거를 훨씬 능가하는 속도로 도망간다. 이후 달리기는 포레스트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달리기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 기관차'라 불리는 에밀 자토펙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라고 했다. 인간은 달리도록 태어났다는 거다. 포레스트의 우여곡절 인생역전은 달리기로 점철되어 있다. 더군다나 그는 원래 걸을 수 없었는데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 있게 되었으니, 가장 인간답지 못한 삶에서 그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닌가. 그것은 포레스트의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포레스트가 개척한 운명일까. 


정해진 운명과 운명의 개척, 어떤 게 맞을까


포레스트 검프의 삶은 마치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흘러간다. 그러면서도 그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즉 운명을 개척했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맞을까? ⓒ파라마운트



포레스트는 평생 엄마의 말씀들을 숙지하고 실행에 옮기며 산다. 그중에서도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단다. 어떤 걸 집어 들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으니, 어떤 기대나 실망 없이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던진 게 아닐까 싶다. 영화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이 의미하는 바다. 


한편 포레스트의 삶은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흘러간다. 달리기를 너무 잘해 우연히 미식축구를 '하게 되고' 전미미식축구팀에도 뽑혀 스타가 되고 군대에 들어가게 '되고' 베트남전쟁에 출전해 달리기 덕분에 큰 공을 세워 훈장을 받아 영웅이 되고 우연히 탁구를 접해 탁구의 신처럼 '되고' 죽은 동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우배 선장이 '되어' 백만장자가 된다. 


제니와의 만남과 헤어짐은 '운명'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포레스트는 첫만남 이후 그 어느 순간에라도 제니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또한 만날 때마다 변해 있는 제니에게 실망을 한 적도 없다. 첫만남 때의 기억과 느낌과 사랑을 간직하고 전한다. 정해진 운명에 순종하는 삶의 자세도 엿보이는 것이다. 


과연 어떤 게 맞는 걸까. 포레스트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둘 다 맞는 거라고. 정해진 운명과 개척하는 운명이 공존하는 거라고. 나의 생각도 같다. 이 세상을 생각해보면, 자연이 선택한 대로 만들어지고 진화해온 한편 신의 개입 없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포레스트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거다. 


확실한 재미와 희열을 보장한다


마치 한 자리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포레스트 검프와 케네디 대통령. 이것이 1990년대 초반의 CG란다. 엄청나다. 영화를 보면 믿을 수 없는 엄청난 CG들이 계속 나온다. 확실한 재미를 보장한다. ⓒ파라마운트



영화는 몇 번을 봐도 확실한 재미와 희열을 보장한다. 그런 부분들이 있다. 포레스트의 인생역전 그 자체. 어쩜 그리 인생이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 우여곡절로 점철될 수 있는가.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포레스트, 결코 우연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 우리의 삶도 그처럼 '재미' 있을까, 아니면 우리의 삶이 아닌 그의 삶이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일까. 막상 그처럼 살아보면 재밌다고 느낄 수 있을지?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유명인들이 함께 한다. 모두 실존 인물들인데, 엘비스 프레슬리, 케네디를 비롯한 네댓 명의 미대통령들, 존 레논 등 60~8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그의 인생에 종종 얼굴을 내민다. 하지만 그는 잘 모르는 듯, 그 간극에서 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 삶도 잘 복기해보면 그런 순간들이 종종 눈에 띄지 않을까?


무엇보다 '특수효과의 거장'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의 손에 탄생한 CG들이 압권이다. 그저 서사에 압도되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느끼기 힘든 부분들인데, 모든 CG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1994년에 개봉했다고는 믿기 힘든 만큼 완벽한대, 60~70년대 활동했던 실존 인물들과 94년 당시 현재 인물을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듯 효과를 낸 것이다. 차라리 실존 인물들인 것처럼 분장을 했다는 걸 믿고 싶을 만큼 완벽하다. 다만, 그가 <백 투 더 퓨쳐>를 연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수긍이 간다. 뿐만 아니라 <아바타> 이전에 이미 3D 혁명을 이룬 로버트 저메스키다. 


볼 때마다 감동은 줄어드는 것 같다. 아는 게 많아지니까. 포레스트의 제니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답답하다. 그에 더해 필요할 때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제니의 행동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포레스트의 사랑에서 유발되는 감동이 사라지진 않을 거다. 반면 재미는 더해지는 것 같다. 역시 아는 게 많아지니까. 웃음 포인트들이 눈에 더 많이 띈다. 


적절한 고전 음악 OST들과 여전히 황홀한 풍경들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절대 지나치지 못할 것이니, 넋 놓고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미국 60~80년대 서사와 포레스트라는 한 인간의 서사가 훌륭히 어우러져 생각지 못한 감동을 줄 것이다. 최소한 이 감동은 줄어들지 않는다. <포레스트 검프>, 언젠가 반드시 무조건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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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머니 몬스터>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 월 스트리트를 좌지우지 하는 버라이어티 경제쇼 '머니 몬스터'. 그곳에 괴한이 출현해 진행자를 위협하는데... ⓒUPI코리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 월 스트리트를 좌지우지 하는 버라이어티 경제쇼 '머니 몬스터'. 머니 몬스터는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TV 프로그램이다. 진행자 리 게이츠는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진 않지만, 진행 하나는 최고다. 현장을 완벽히 컨트롤 하는 프로듀서 패티 펜이 있기 때문. 


그날도 어김 없이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택배 기사로 보이는 남성이 카메라에 잡힌다. 생방송의 묘미를 살려 남성을 이용해 보려는 리와 패티. 하지만 남성은 다자고짜 총을 꺼내 들고는 천장으로 쏘며 진행자를 위협한다. 그러며 하룻밤 만에 8억 달러를 날려 버린 'IBIS'의 진실을 폭로하고 회장이 사과하는 걸 요구한다. 


새로울 게 없는 설정, 아쉽다


어디서 본 듯한 설정, 2013년에 개봉한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가 스친다. 생방송 도중에 걸려온 장난 전화, 하지만 장난이 실제가 되면서 이야기는 급박하게 흘러간다. 그 모든 걸 생중계하여 시청률을 올려보겠다는 심산까지. <머니 몬스터>와 <더 테러 라이브>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다만, <머니 몬스터>가 조금 더 스케일이 크다. 보여지는 건 <더 테러 라이브>가 더 화려하고 스펙터클하고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 텐데, <머니 몬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크다. 다만, 하룻밤 만에 증발해버린 유망 기업의 주식 8억 달러의 실체를 밝혀라. 사실 그 뿐이다. 다양한 면에서 잘 살리지 못했다. 발만 담궜을 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 여기저기에서 많은 접해온 클리셰다. 새로울 게 없는 설정이다. 그걸 뛰어넘는 무엇이 있을까? ⓒUPI코리아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할 수밖에 없는 상황, 불쌍한 가해자를 이해하고 진정한 가해자를 응징하는 데 힘을 보태는 피해자, 그렇지만 그 피해자 또한 가해자와 동조해 왔으니 가해자다. 거기에 또 다른 넓은 의미의 가해자도 있다. 우린 이런 류의 클리셰를 많은 영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접해 왔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설정이다. 이 중 한 개라도 집중해 치명적인 딜레마와 안타까운 파국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영화 같은 영화, 재미는 어디로?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 이후 할리우드에서 경제 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위기 당시를 생각나게 하는 '주가 조작' 영화가 자주 출몰한다. 얼핏 기억나는 영화만 해도 <월 스트리트> <인사이드 잡> <마진 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빅 쇼트> 등, 일 년에 최소 한 편 이상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와중에 <머니 몬스터>는 별종이다. 위엣것들이 현실 그 자체를 그렸다면, 이 영화는 영화 같은 영화다. 


문제는 재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큐멘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극히 진지하게, 지극히 풍자적으로 심각한 상황을 전했었다. 이 영화는 어떤가? 조금 더 다층적으로 접근한다. 하룻밤 만에 어마어마한 돈이 증발해버리는 영화 같은 상황에, 생방송 도중 괴한이 침입해 총과 폭탄을 들고 진행자를 위협한다는 영화 같은 설정을 넣은 것이다. 초첨을 어디에 맞추는 지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이 영화의 괴한은 어수룩하다. 그는 일종의 딜레마를 상징한다. 죽음도 없고 영웅도 없다. 재미는 있을까? ⓒUPI코리아



90년대 스타일이라면 괴한이 두뇌 회전이 빠르고 눈치도 빠르고 잔혹하고 만반의 준비까지 한 인물일 것이다. 몇 명이 죽을 것이고, 심장은 한 없이 쫄깃해질 것이고, 영웅 한 명이 어떤 수를 써서든 괴한을 무찌를 것이다. 반면 이 영화는? 괴한이 어수룩하다. 왜? 그도 원래는 피해자니까. 일종의 하소연을 하러 온 거니까. 요즘 나오는 많은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딜레마. 죽음도 없고 쫄깃도 없고 영웅도 없다. 재미도 없다. 


예전 스타일처럼 만들 게 아니라면, 또는 비주얼적으로 뭔가 보여줄 만한 게 조금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재미가 있을 것처럼 시작만 했을 뿐, 가면 갈수록 당최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재미가 없지 않은가. 다층적이고 색다른, 현대적인 접근이 오히려 내용도, 재미도, 감동도 담보하지 못했다. 


시종일관 짙게 묻어나는 아쉬움


1990년대 최고의 탑스타 조지 클루니와 줄리아 로버츠, 거기에 떠오르는 신성 잭 오코넬, 그리고 조디 포스터 감독. 이들은 꿍짝이 잘 맞았을까? ⓒUPI코리아



미덕을 찾아보자. 주연 3인방,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잭 오코넬의 이름값. 안타깝지만 눈요기 감도 안 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조지 클루니는 2010년대 이후 <디센던트>에서 정점을 찍고 한 없이 추락하는 중이고, 줄리아 로버츠는 굳이 필로그래피를 언급하지 않아도 극 중에서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잭 오코넬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연상시키는 만큼 지질한, 즉 괜찮은 연기를 펼쳤지만 극 중 역할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지 않았다. 아쉽지만 영화와 배우가 꿍짝이 잘 맞지 않았다. 


까메오나 단역, 조연의 역할이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때가 많다. 이 영화에도 감초 같은 조연이 나오는데, 이 심각한 국면에서 코믹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잘 들어 맞았다면 영화의 급 자체를 끌어 올렸을지 모른다. 진중함과 코믹함을 자유자재로 옮겨가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아쉽게도 그 역할이 영화 내내 헛돌았다. 전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나름 진중한 분위기에 쉬어가는 페이지가 아니라 찬물을 쫙 끼얹는 느낌이랄까. 그리 생각하니 다양한 느낌을 형성하는 역할들이 곳곳에 자리 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다 해야 할까. 


10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닝 타임이 미덕이라면 미덕일까. 마음 놓고 킬링타임 용으로 즐길 만한 영화가 안 되는지라, 그것조차 미덕이 아닐 수 있다는 게 정말 너무나도 안타깝다. 차라리 여타 영화보다 조금이라도 더 길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었으면 어땠을까... 나름 전달하는 메시지에 의미 부여를 하고 미덕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조차 너무 식상하지 않나 싶다. 끝까지 아쉬움만 남는다. 미덕을 찾아보는 재미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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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오피스 닌자>


<오피스 닌자> 표지 ⓒ현대문학



회사 중간 관리자 한 명이 사라졌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관심도 없다. 어딘가에서 주어진 업무를 하고 있을 테고,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아파 며칠 쉬고 있을지도 모르고. 솔직히 말해서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내 일만 하면 되는 거다. 


옌스 얀센은 스웨덴의 중견 헬멧 수출 기업 '헬멧 테크'에서 9년 동안 일해온 브랜드 매니저다. 중간 관리자급이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12년 동안 사귀어온 여자 친구와는 얼마전 헤어졌다. 그가 요즘 가장 두려워 하는 게 무엇일까? 승진이다. 


승진이 두려워 사라지길 결심하다


<오피스 닌자>(현대문학)는 승진이 두려워 사라지는 걸 택한 옌스 얀센의 처절한 이야기다. 승진이 두려워 사라진다는 게 말이 되나 싶을 거다.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그는 더 이상 경쟁력 있는 승리자, 타인을 밀어젖히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온갖 구조 개편을 극복했다. 기대를 충족시키긴 하지만 꼭 높은 직책을 맡겨야 할 정도는 아닌 사람으로, 팀장 정도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끔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더 버틸 요량이 없는 것이다. 꼼짝 없이 권력과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그런 건 죽기보다 싫다. 그래서 선택했다. 죽고 싶진 않으니 사라지는 걸로. 어떻게?


비단 옌스 얀센 뿐이랴? 사라지고 싶은 사람이 한둘은 아닐 거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아무리 사라지고 싶어 사라진다고 해도 그게 어디 사라지는 것일까. 모든 곳에 CCTV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데,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닐 거다. 어떻게 사라져야 할까? 영화 <김씨 표류기>처럼 도시 한복판 어딘가에 있을 무인도를 찾아가야 할까. 옌스 얀센이 생각해낸 건 다름 아닌 회사 안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발상이 재미있고 과정은 조마조마하며 실행은 탁월하다. 취직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수많은 청년들에게는 전혀 먹혀들 것 같지 않지만, 회사에서 밤낮 없이 착취당하는 수많은 청년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설정이다. 물론 지켜야 할 게 아무 것도 없는 회사원들에게만. 옌스 얀센에게는 부모님도 아내도 자식도 없다. 


소설은 부조리한 회사 생활과 사라지는 발상과 과정, 그리고 처절한 생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딜레마적인 상황을 생략한 것 같다. 개인 문제로 수렴하기 보다 전체를 대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딜레마와 그에 따른 고민은 없고, 대신 혁명적 생각과 방향 그리고 실행이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재미있는 발상, 그러나 공감은?


소설의 재미는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재미를 느낄 만한 요소가 많다. 소설  내용적으로는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 회사에 있는 직원들 군상 등의 풍자를 볼 수 있고, 소설 외적으로는 짧막짧막하게 진행되는 스토리, 전 세계 유명 회사의 광고 문구를 차용한 챕터 제목들이 그렇다. 무엇보다 '닌자'라는 단어에서 오는 궁금증이 꽤나 크게 다가온다. 


닌자라고 하면, 일본 전국시대의 특수 전투 집단으로 첩보, 파괴, 친투, 암살 등의 임무를 행했던 자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그림자가 떠오르는데, 소설에서는 그런 느낌을 살린 것 같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과연 실생활에 도움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회사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옌스 얀센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창고를 택한다. 그 창고는 다름 아닌 천장에 있었다. 설마 하니 천장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딨을까? '등잔 밑에 어둡다'는 속담이 통하는 경우가 여기 또 있다. 그는 직원들이 일하는 낮에 자고 모두 퇴근하고 없는 밤에 기어 나와 활동한다.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까?


발상과 소재의 재미가 확실하다면, 주제만 잘 잡아주면 된다. 공감하지 못할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띄지만 괜찮은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통 알기 힘들다. 평생 그곳에서 살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고, 결국 언젠가는 들킬 것이고 제자리로 돌아올 텐데, 그 사이에 뭔가 깨닫거나 완전히 다른 무엇을 이룩해내야 할 것이다. 옌스 얀센은 누군가와 함께 완전히 다른 무엇을 해내고자 하지만, 심히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달갑지만은 않은 주인공의 '외도', 아직 시기 상조다


최근 북유럽 소설이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아울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베라는 남자> <소피의 세계> 등의 대박이 이어졌다. <오피스 닌자> 또한 북유럽 소설 특유의 캐릭터를 내세운 웃픈 이야기를 내세워 그에 편승해 성공을 노려본 듯하다. 아쉽게도 캐릭터가 잘 살지 못했고,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가 어중간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 미덕이 있다면,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나의 시간과 능력을 투자해 회사로 하여금 돈을 벌게 해주는 시스템에 대해서. 어느 누가 승진하기 싫어 사라지려고 생각해봤는가 말이다. 그것도 아이러니하게도 하필이면 회사 안으로. 그 이면에 무엇이 있든 탁월한 발상 전환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 회사에서의 일에 대해서 그만큼 '심오'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갈 길이 멀고 주위를 살필 기력이나 기회는 많지 않으며 밀려날까봐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옌스 얀센의 '외도'가 달갑지 않게 다가왔다. 한편으론 내가 영원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행동을 실천에 옮겼으니 일면 영웅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직 시기상조다. 


조금은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현재를 거부하고 바뀌길 원하는 건 지금의 나에겐, 그리고 수많은 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렇게 되어 버린 게 슬프고 한심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경향이 있는 거다. 나도 모르게 시대에 편승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뭐라하랴. 그렇게 옌스 얀센의 혁명적인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리지 못한 채 잊혀질 듯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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