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톰 포드의 <녹터널 애니멀스>


<싱글맨>으로 엄청난 데뷔를 한 디자이너 출신 감독 톰 포드의 두 번째 작품 <녹터널 애니멀스>. 이번엔 어떤 영화를 선보였을까? ⓒUPI 코리아



호화스러운 레스토랑에서 호화스러운 옷을 입고 홀로 앉아 있는 수잔(에이미 아담스 분), 계속해서 입을 축이고 출입구만 바라볼 뿐이다.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지만 그 누군가는 오지 않는 것 같다. 레스토랑은 점점 비고, 수잔의 눈도 점점 공허해진다. 그녀는 누구를, 왜 기다리는 것일까. 


이어지는 상상초월 비만 체형 여자들의 나체쇼, 그리고 전시. 아트디렉터인 수잔의 작품이다. 그녀는 자타공인 모든 걸 다 가진 여자, 하지만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 연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전남편 에드워드가 감수해달라고 그녀를 생각하면서 지었다는 소설 한 편을 보내온다.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 '야행성 동물'이다. 


소설은 세 가족이 텍사스로 휴가를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밤새도록 달리는 차, 그들 앞을 두 개의 차가 가로막는다. 대항하는 토니, 실랑이가 시작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들이 엄청난 파국을 일으킨다. 수잔은 이 폭력적이지만 슬픈 이야기를 읽으며 에드워드를, 그리고 에드워드와의 과거를 떠올린다. 그녀의 현재, 그녀와 에드워드와의 과거, 소설은 무슨 관계일까?


여러모로 완벽한 영화 


영화는 여러모로 완벽한 모습을 선보인다. 원작의 완벽한 플래쉬백을 중심으로 색감, 배경, 음악, 연기까지 완벽한다. 미장셴? 물론 완벽하다. ⓒUPI 코리아



'퀴어 영화'라는 장치로 '상실'의 무서움을 관능적인 색감으로 표현해 낸 데뷔작 <싱글맨>으로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으며 대가의 길을 걷게 된 '톰 포드'의 두 번째 장편 <녹터널 애니멀스>다. 오스틴 라이트의 1993년 작 <토니와 수잔>을 원작으로, 본래 지닌 색감의 장점에 더해 원작이 가진 자연스럽기도 하면서 지극히 상징적인 플래쉬백, 액자 구성을 완벽하게 조화시켰다. 거기에 배경과 음악과 연기까지 완벽했다. 얼마나?


영화는 세 곳의 배경을 오간다. 수잔의 현재 LA, 수잔이 회상하는 에드워드와의 과거 뉴욕, 에드워드의 소설 속 텍사스. 세 곳의 질감은 물론 색감은 완전히 다르다. LA는 겉으로는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속으로는 공허하기 짝이 없는 수잔의 삶을 대변한다. 뉴욕은 에드워드와의 핑크빛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어 눈발이 날리는 중에도 따뜻하게 보인다. 텍사스는... 수잔으로부터 에드워드가 느꼈던 치욕을 생각나게 한다. 


배경에 따라 음악과 연기 또한 그 결이 완전히 다르다. 말 없이 허공만을 응시하며 소설을 읽는 수잔은 왠지 굉장히 늙어 보이고 배경에 깔리는 음악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뉴욕에서의 수잔과 에드워드는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사랑이 있을 뿐.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텍사스의 토니는 끔찍하고 처참한 상황을 겪었기에 세상을 다 산 느낌이다. 하지만 그는 약해빠졌다. 음악은 우울하고 날카롭고 괴롭고 허허롭다.


굴지의 디자이너 출신 감독 톰 포드의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전작에서 보여준 미장셴은 스케일이 훨씬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밀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미시적인 미장셴과 더불어 거시적인 미장셴도 선보일 수 있으니, 정녕 영화 미장셴 거장의 진정한 탄생이다. 불과 두 편만에 말이다. 


치가 떨리는 메타포, '치명적 복수'


영화 속 소설 제목이 <녹터널 애니멀스>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치가 떨리는 메타포이자 수잔을 향한 에드워드의 치명적 복수다. ⓒUPI 코리아



본래, 소설 속 소설이었을 영화 속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는 그 자체로 완벽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지녔다. 수잔도 읽고 빠져들었는데, 나 또한 빠져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소설이다. 사실, 스토리는 별다를 게 없는데 그 분위기가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 것 같다. 야밤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 날새고 밝혀진 참혹한 현장, 시간이 흐를 수록 소설 외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바로 소설 속 토니와 수잔과의 연관점이다. 


토니는 사실 에드워드의 분신인 바, 소설은 에드워드가 '수잔을 위해' 쓴 것이다. 정확히는 '수잔을 향해' 날리는 치명적인 복수라고 해야 할까. 이토록 치가 떨리는 메타포는 소설, 영화를 통틀어 정녕 오랜만에 느껴본다. 일찍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느껴보았는데, 그보다 더한 과격함을 느꼈다. 


그렇다, 과격. 수잔이 읽게 된 소설, 수잔을 향한 복수의 칼, "네가 한 짓으로 내가 받은 상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나의 분신 토니가 받은 지독한 상처보다 더 한 것이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녀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햇길래? 사랑하는 사람끼리 줄 수 있는 최악의 상처가 무엇일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에드워드에게 수잔이 준 상처의 수위는 높지 않다. 아마도 원작에는 자세히 나와 있을 건데, 영화에서는 극도의 편집술을 동원해 살짝씩 보여주며 그 치명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 모든 걸 뒤로 한 채 '사랑'을 택한 그들, 하지만 수잔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그 '사랑'을 뒤로 한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는 사소한 걸로도 절망을 맛볼 수 있다


사랑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가. 하지만 그만큼 치명적이고 절망적일 수 있다. 사소한 걸로도 말이다. 이 영화는 그 면모를 잘 보여준다. ⓒUPI 코리아



'사랑이 전부다.' '사랑은 수단일 뿐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명제가 정답일까. '정답은 없다'는 명제가 정답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거 하나만은 맞다. '사랑'이 없으면 삶 또한 없다고 말이다. 전부건 수단이건 아무것도 아니건, 우린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사랑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언젠가 있었을 사랑의 배신 때문에,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무관심 때문에 그리 생각할 것이다. 


사랑만큼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도 드물다.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아프고 활기차고 억울하고, 거의 모든 감정들이 누가 봐도 알만큼 겉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있지 않은가. 무심코 냇물에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큰 상처를 입거나 죽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구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돌멩이를 던진 이는 알 수가 없다. 


말 한 마디, 동작 하나, 표정 하나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당사자는 절대 모를, 아니 당사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곤 한다. 수잔은 에드워드가 보내준 소설을 읽으며, 과거 그녀가 그에게 한 짓들을 되새긴다. 그전까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카메라의 구도, 전체적인 분위기, 특유의 오프닝과 엔딩은 전작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걸 알게 한다. 미장셴과 스케일의 확장, 조금 더 심도 있게 짜맞춘 스토리라인 등은 그가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지만, 앞엣것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확장하고 깊숙이 들어갈 것들은 그리하고, 전작의 영향을 너무 짙게 받을 수 있을 요소들은 옅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하겠다. 가히 후속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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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김지운식' 스타일에 정점에 오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달콤한 인생>. 주연배우 이병헌도 이 영화로 해외진출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



1998년 <조용한 가족>으로 열렬한 찬사와 지지를 받으며 데뷔한 김지운 감독. 이어서 2000년 <반칙왕>과 2003년 <장화, 홍련>으로 필모 정점을 찍는다. 동시에 '김지운식 영화'가 완성되었다. 장르 영화의 대가. 장르가 가지는 강렬함에 파묻히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의 스타일에 장르를 끼워맞추는 솜씨를 선보인다. 그 완성에 가장 가까이 간 작품은 아마도 2005년 작 <달콤한 인생>일 것이다. 


<달콤한 인생>은 이병헌이 '해외에 나를 알릴 수 있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작으로 뽑는 바,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고가로 해외(일본)에 팔렸다. 그건 김지운 감독 영화의 특징 아닌 특징이기도 한데, 국내도 국내지만 해외에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이미지가 좋게 비치는 것 같다. 그렇게 할리우드에 진출하기도 했다. 비록 참패를 면치 못해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지만. 


김지운 감독다운, 김지운식 누와르 


'거기에 누와르가 있었을 뿐,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로 영화를 또 다르게 요약할 수 있겠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은, '김지운'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대가의 절정기이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누와르'라는 장르적 성격이 지극히 강한 장르를 표방하지만, 역시 김지운 감독답게 자신의 스타일을 앞세운다. 한 해 뒤에 개봉하는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가 한국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정통 누와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영화 중 하나라고 한다면,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그저 김지운 감독의 영화다. 이번에 그가 택한 게 '누와르'였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누와르에서 흔히 보이는 조직의 본모습, 치열한 뒷공작, 당연한 우정과 배신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완벽하게 짜여진 미장셴과 기가 막힌 연기와 대사 신공, 숨겨진 상징들이 보인다. 결코 싫어하기 힘들다. 


선우(이병헌 분)는 강사장(김영철 분)의 신임을 얻어 '호텔 크라운'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룰을 어기면 피도 눈물도 없이 처단해버리는 냉혈한이다. 바로 그런 점이 강사장의 선우를 향한 믿음의 결정체일 것이다. 어느 날, 강사장이 상하이로 삼일간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러며 선우에게 긴히 한 가지 일을 맡긴다. 


어린 애인이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그녀가 바람을 피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선우에게 삼일 동안 감시하면서 사실로 드러나면 즉시 자신에게 전화를 하거나 알아서 처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언제나 그랬듯이 선우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불철주야 희수(신민아 분)를 감시한다. 


결국 희수가 바람을 피는 게 사실로 드러나고 선우는 당장 그녀와 그를 잡고 강사장에게 전화를 걸려 한다. 그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선우는 짧은 기간 희수에게서 느낀 감정에 흔들린다. 그녀와 눈맞힌 찰나의 순간, 그녀의 귀와 입과 손과 어깨. 그 달콤한 순간들이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든다. 선우는 강사장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그들을 살려준다. 강사장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선우를 향해 무시무시한 죽음의 칼날을 드리미는데...


'사랑'과 '믿음'이라는 김지운식 콤비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든 이 역정이 고작 그 순간의 '사랑' 때문이었나. (사실 사랑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믿음'을 저버렸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서도 '믿음'이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테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특별할 만한 게 없다. 한 인간의 특별한 인생역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달콤한 순간의 '사랑'이 있고, 그 특별할 것 없는 사랑으로 속절없이 깨지는 오랜 기간 숙성된 '믿음'이 있다. 누와르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어둠의 범죄와 폭력을 다룬다는 점에서 누와르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서는 '믿음'이라는, 인간 행동의 가장 강력한 동인(動因)이 사랑이라 말하기 모호한 순간의 '달콤함'에 속절없이 배신당하는 게 누와르랑 가장 근접해 보인다. 김지운식 누와르. 


'사랑'과 '믿음'이라는, 누와르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김지운에게는 딱 들어 맞는 신기한 콤비는,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희대의 대사로 표현할 수 있다. 선우의 '저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물음에, 강사장이 대답한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 얼마나 치졸하고 치명적인 대답인가, 이 얼마나 유머러스한 대답인가. 이 대답 하나가 영화를 전복시켜버릴 만하다. 


영화 뿐이랴? 인간을 전복시킬 수도 있는 말이다. 겨우 그깟 이유로 한 사람의 인생,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사라지다니. 그러면서도 '그게 바로 인간이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뭐 별 거 있겠어 하고 말이다. 그들의 대화가 주는 허무함, 그 허무함으로 말미암은 유머적 감성이 만들어낸 수많은 패러디만으로 이 대사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엔 참으로 많은 것들이, 높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호불호의 연기, 완벽한 미장셴, 그리고 즐기는 영화


감독의 의도가 완벽하게 구현된 화면, 자신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 미장셴에 어울리게 연기하기란 정말 어려울 거다. 이러니 김지운 영화는 즐기기에 정말 최고다. ⓒCJ엔터테인먼트



상상을 초월한 상징도 상징이지만, 연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병헌의 액션, 김영철의 카리스마, 황정민의 메소드. 누와르 장르답게 보고도 믿지 못할 액션이 아닌 지극히 리얼한 액션을 선보인 이병헌. 액션은커녕 움직임도 별로 없지만 눈빛과 목소리와 분위기로 누구보다 압도적인 면모를 선보인 김영철. 그리고 어디서 양아치를 데려와서 연기 수업을 시킨듯한 느낌을 받게 한 황정민. 감독의 완벽주의적 작업 스타일이 영화 곳곳에서 나타나는 바, 연기에도 그 스타일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 


하지만 영화의 홍일점 신민아의 연기는 아쉬운 정도를 넘어섰다. 그녀의 아름다움이야 정평이 나 있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 두 남자가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한 채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여자는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다름 아닌 신민아의 연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내용상 팜므 파탈의 모습을 선보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바엔 지극히 위험하게 사랑스럽기라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에릭의 출현은 아직도 의문이다. 앞으로도 의문으로 남을 예정이다. 그 앞에 어떤 이유가 붙더라도 말이다. 


미장셴을 빼놓으면 섭하다.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간단히라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김지운의 미장셴은 아무래도 멈춰진 화면에 있을 거다. 카메라 워킹이 화려하지 않는 반면, 멈춰진 화면에 완벽하게 짜여진 소품들과 인물의 배치가 인상적이다. 그 프레임 안에서 최대한 역동적인 모습을 선보인다면, 그 모순이 주는 쾌감이 굉장할 것이다. 김지운이 추구하는 미장셴은 그런 게 아닐까. 


한편 <달콤한 인생>에서 선보이는 미장셴은 <장화, 홍련>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명암의 확실한 대비에서 오는 또 다른 모순의 쾌감이 그것이다. 영화의 대부분을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하얗과 빨강이 주는 아름다움. 김지운 감독은 그 대비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장치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보는 이유가 적지 않을 거다. 교훈, 힐링 등을 '얻기' 위해, 화려한 액션이나 미장셴을 '즐기기' 위해, 시대상이나 영화 자체를 '연구'하기 위해. <달콤한 인생>은 어디에 포함될까. 단연 '즐기기' 위함이 아닐까. 아마 김지운 감독이 추구하는 바일 것이다. 그 안에 다양한 것들, 이를 테면 상징, 연기, 캐릭터, 미장셴, 액션 등을 넣으니, 이 영화는 보고 또 봐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를 참으로 '잘' 만든다. <달콤한 인생>은 참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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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의 두 번째 타자로, '멀티 버스'의 시작을 알린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다. 엄청난 기대감을 오롯이 받을 텐데, 그에 부응할까?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몇 년 전에 이미 개봉일이 잡혀 체계적으로 사전 마케팅을 해오며 기대감을 한층 부풀어 올렸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가 대망의 막을 올렸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포문을 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3'의 두 번째 타자로, 2016년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다. MCU의 14번째 영화이기도 한 바, 현재 22번째까지 예정되어 있는 MCU의 주요 연결고리이자 새로운 세계관의 시작이기도 하다. 즉, '멀티 버스'의 시작이다. 


어벤져스와는 다른 차원의 적에 대항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은 현실에서 온 '마법사'다. 그렇다는 건 누구나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영화는 거기까지 제대로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신, 아이들이라면 정녕 넋을 놓고 황홀하게 바라볼 장면들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키포인트이자 사실상 전부가 바로 그 장면들이다. 더불어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여러 비쥬얼 쇼크들이다. 


전형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이 영화는 '전형적'이다. 전형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이다. 결과가 보여주는 바, 여기에서의 '전형적'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비춰질 수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항상 세계관과 속편과 (시리즈) 후속편을 염두에 두는 MCU 영화답게 진행된다. 또한 새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의 시작을 알려야 하는 영화이다 보니,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상당히 늦다. 모든 걸 다 보여주려 하지 않고, 군데군데 그리고 마지막까지 여지를 남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MCU 영화다. MCU 영화라는 단어가 생긴 것과 더불어 어느새 '전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이다. 이 수식어가 시리즈 자체에 악영향이 아니라 선영향을 끼칠 것 같다. 


천재 신경외과의 스티븐 스트레인지,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쿨하다. 가히 그 천재적인 솜씨로 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지만, 동료 의사를 거의 묻어버리다시피 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실력으로 똘똘뭉친 오만방자함 그 자체인 것이다. 비오는 어느 날, 여지 없이 비싼 것들을 걸치고는 비싼 차를 끌고 미친 듯한 속도로 길을 떠난다. 당연한듯 사고를 당해 하필 두 손만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는 스트레인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온갖 방법으로 손을 고치려 한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수술을 해보기도 하고, 엄청난 노력으로 물리치료를 해보기도 한다. 다 부질 없다. 그 와중에 찾아낸 어느 환자의 기록. 그 환자는 예전 절대 가망없을 거라 판단하고 수술을 거부했던 환자였다. 지금 그는 살아있는 건 당연하고 걸어다닐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스트레인지는 그를 찾아가 비법을 묻는다. 그가 가르쳐준 건, 네팔의 카마르-타지였다. 스트레인지는 당장 그곳으로 떠난다. 그의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별 것 없는 스토리, 말할 게 없는 연기, 공감할 만한 유머


마블의 히어로 영화가 갖는 여러 요소를 갖추었다. 정작 들여다보면 별 게 없는 이야기, 캐릭터가 워낙 강해 연기랄 게 없는 하고, 중심에 선 인물의 유머는 빛을 발한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토리는 더 이상 알려드릴 게 없다. 스트레인지는 그렇게 '단시간'에 엄청난 능력을, 마블 히어로 최강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역시 마블 히어로 최강 최악의 빌런을 그만의 방식으로 물리친다. 그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아가모토의 눈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절정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지구를 지키는 소서러 슈프림인 '에이션트 원'을 배신하고 떠나 다크 디멘션의 힘을 업고 그들을 치려는 케실리우스의 주장이다. 그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적이기 때문에, 영원한 시간을 약속하는 다크 디멘션이야말로 우리들이 따라야할 진정한 '선'이라고 말한다. 그 앞에서 한낫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은 맥이 풀릴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어렴풋이 내비치려 하지만, 거기서 끝나고 만다. 스트레인지는 그에 반대하고, 영화는 다시 비쥬얼 쇼크를 준비한다. 


연기도 뭐라 말할 게 없다. 캐릭터에 배우들이 완벽하게 이입했다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함 그 이상인데, 수없이 많은 상을 타며 압도적인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찌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연기' 경력에서만큼은 흠으로 남을 수 있는 배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무리 없이 오로지 캐릭터에 맞춰져야 하는, 연기력이 출중한 이들에겐 힘들 수 있는 역할을 하나 같이 잘 해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레이철 맥아담스, 틸다 스윈튼, 매즈 미켈슨, 치웨텔 에지오포가 그들이다. 


반면 베네딕트 컴배비치만이 할 수 있는 유머는 영화의 격을 높이는 데 크게 한몫했다. 비록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생각나게 하는데, 한층 더 대중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만한 유머라는 말이다. 스트레인지 역할에 베네딕트 컴배비치보다 적절한 배우가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오직 비쥬얼 쇼크, 그리고 적재적소의 묘미


전에 없는 비쥬얼 쇼크를 선보인다. 가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 여파가 오래가진 않는다. 이제까지 봐왔던 여러 영화들에서 봐왔기에. 다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묘미를 선보였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비쥬얼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것밖에 남는 게 없고, 그것이 단연 압권이다. 사정없이 뒤틀리는 시공간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하는데, <인셉션>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물론 훨씬 정교해지고 스케일이 커졌다. 이런 류의 시공간의 뒤틀림은 영화의 액션 장면에 도맡아 출현한다.


스트레인지가 손을 치료하기 위해 네팔로 찾아가 에이션트 원에게 수련을 받는 장면은 단연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한다. 물론 액션 영화에서 동서양의 만남이 종종 있어 왔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닥터 스트레인지>와 <매트릭스>만큼은 따로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그뿐인가? 오만방자한 스트레인지에게 에이션트 원이 세계의 진면목을 알려주기 위해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장면은 <인터스텔라>가, 영화의 숨은 조연 '리비테이션 망토'는 <해리포터>가 연상된다. 이처럼 대놓고 따라하는 영화는, 패러디 영화를 제외하곤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건 '재미' 덕분이다. 여기저기에서 가져온 것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느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치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게 재미의 요소인 것이다. 이는 MCU 영화가 추구하며 보여주는 퍼즐 맞추기 느낌과 궤를 같이한다. 찾아보는 재미와 함께, 얼마나 더 멋지고 화려하게 재탄생시켜 구현해냈는지 구경하는 재미를 보장한다. 비쥬얼의 신세계나 신기원을 열어젖히진 못했을지라도, 그동안 봐왔던 비쥬얼의 집대성, 그리고 한층 발전한 비쥬얼 쇼크나 향연을 질릴 만큼 보여주기에 그 자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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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말죽거리 잔혹사>


검증이 안 된 신세대 스타를 앞세운 유하 감독의 차기작은 어땠을까?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도 대부분 신인을 벗어나지 못했다. 감독의 의도일까? ⓒ싸이더스



2004년 당시 데뷔 3년이 채 안 된 두 신세대 스타를 앞세운 영화가 개봉한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권상우, 여고 시절 KBS 도전 골든벨 출연 후 단번에 CF를 찍고 드라마 주연을 꿰차며 스타 반열에 오른 한가인이 그들이었다. 거기에 90년대 후반 패션모델로 데뷔한 후 연기자의 길을 꾸준히 걸으며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얼굴을 보인 이정진이 주연의 중심을 잡았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캐스팅이라 하겠다. 


조연의 면면도 비슷했다. 나름 잔뼈가 굵은 김인권을 제외하고는 이종혁, 박효준 등 경력은 물론 인지도에서도 거의 신인과 다름 없었다. 지금은 충무로 대세 배우 중 한 명인 조진웅은 이 영화에서 대사 한마디를 날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감독의 의도였을까, 제작비 등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화려하기 그지 없는 현재의 영화 캐스팅 수준과 비교를 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경력을 떠나 인기나 연기 면에서 이 영화처럼 확실한 인지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독립영화라면 모를까 엄연한 상업영화에서 말이다. 


곤혹스러울 정도의 연기가 아쉽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두 주연배우의 연기는,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영화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당시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싸이더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랜만에 충무로에 돌아와 괜찮은 흥행과 비평에 성공한 유하 감독은 차기작으로 학교, 추억, 폭력의 앙상블 영화를 기획한다. 거리 3부작의 시작이기도 한 <말죽거리 잔혹사>다. 유하 감독은 학창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는데, '남자'라면 누구나 꿈꿔봤음직한 그때 그 시절을 깔끔하게 보여준다. 


전남 보성에서 강남 말죽거리로 이사온 모범생 현수(권상우 분), 태권도장을 하는 아버지의 폭압적인 가르침 덕분에 공부도 곧잘하고 달리기나 농구도 곧잘하는 평범하지만 여러 모로 평균 이상의 학생이다. 그 덕분인지 학년 전체를 주름잡는 싸움꾼 우식(이정진 분)의 눈에 띄어 친구가 된다. 


그는 오지랍이 넓은 건지 태권도 정신에서 비롯된 정의감이 투철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나서지 말았으면 하는 데에 나서서 일을 자초하곤 한다. 그 와중에 천눈에 반한 은주(한가인 분)를 구해주려다가 일 아닌 일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녀를 향한 사랑은 현수뿐만 아니라 우식이에게도 있었다. 결국 사귀게 된 건 우식과 은주, 소심하기만 한 현수는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고, 신인들을 내세웠다지만, 아무리 봐도 형편 없는 연기는 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그 중심에는 현수와 은주, 즉 권상우와 한가인이 있다. 현수는 후반에서의 싸움 시작과 끝에서만 톤이 올라갈 뿐 시종일관 힘 없고 우울한 톤을 한 음으로 유지하고, 은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시 힘 없고 우울한 톤을 한 음으로 유지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의도된 연기인가?


7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만큼 목소리에 있어서 당시의 느낌을 살리려 했을 지도 모른다. 당시 영화들을 보면 굉장히 연극톤이지 않은가. 그런 걸 의도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다른 이들의 연기는 너무 다르다. 지극히 현대적이다. 이 두 주연배우의 연기, 특히 연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발성이 터무니 없이 형편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에는 이 둘만 등장하는 장면이 꽤 있는데,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눈과 귀를 둘 곳이 없다. 그들도 곤혹스러워하는 게 느껴질 정도다. 감독은 왜 그런 연기를 그 정도로 넘어갔을까. 의문이다. 


이런 식의 교육은 폭력 이상의 악질이다


교육이 아닌 교화를 하는 학교. 모든 학생이 똑같을 순 없는데, 똑같으라고 강요하는 학교. 지금도 여전할까? 그때는 참으로 잔혹했다. ⓒ싸이더스



영화는 현수의 성장 스토리로 읽힐 수 있다. 평범한 학생이 일진을 모조리 깨부수고 퇴학까지 당하는 처지가 되니까 말이다. 이게 도대체 왜 성장이냐고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학교폭력을 미화하는 게 아니냐고 되받아칠 만하다. 하지만 당시 시대를 본다면, 당시 국가상을 들여다본다면, 그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통제했는지 듣는다면, 현수의 그와 같은 행동을 성장으로 해석할 수 있음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때는 1978년, 박정희의 친위 쿠데타 이후의 유신 시대 한복판이다. 학생들은 등교하면서 선도부에게 '충성'을 외치고, 학교에는 학생 교화를 이유로 군인이 상주했다. 학생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며, 국가가, 학교가 원하는 인간이 되길 바랐다. 그렇지 않을 때엔 가차 없는 폭력이 날아왔다. 


그 폭력에는 육체적 폭력, 정신적 폭력, 성적 폭력, 언어 폭력, 인권 유린 폭력 등 모든 종류가 망라되어 있었다. 차라리 단순무식한 육체적 폭력이 가장 낮은 수위의 폭력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해보고 싶음직한 행동을, 학교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폭력으로 교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엇나가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현수의 성장 스토리는 더 이상 성장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엇나감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런 폭력을 당하는데 당연히 움츠려들며 더욱더 국가가, 학교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하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인간이 되어 갔다. 어떤 인간으로 되어 갔든 그들의 잘못도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도 아니었다는 게 중요하다. 


반면 현수는 최소한 자발적인 선택을 했다. 반항심과 함께 체력을 키워 가며 반발했다. 그렇다고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싸움에 휘말렸고 약간의 다툼을 했다. 그리고 성적이 떨어졌다. 학교는 그를 잡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악질'이라고 몰아세울 뿐이었다. 그가 퇴학을 당하는 대형 사건을 저지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학교의 책임이 아닌가. 최소한 '너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제스추어는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이거 악질이네. 안 되겠어. 혼 좀 나야겠다' 하고 끝나면 그게 무슨 교육인가. 


잔혹의 시대를 살아간 청춘을 위로하다


한 시대가 저무는 1978~9년. 그들이 헤쳐온 잔혹의 시대도 저무는가. 이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청춘을 위로해준다. 하지만 그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을 듯하다. ⓒ싸이더스



영화는 이소룡으로 시작해 이소룡 대 성룡으로 끝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영화의 시작이 이소룡 영화를 좋아해 빠져들듯 보는 현수의 어린 시절이었고, 영화의 끝이 영화관에 이소룡 영화와 성룡 영화가 동시에 걸렸을 때 현수의 이소룡 옹호와 흉내, 그리고 친구 햄버거의 성룡 옹호와 흉내가 대결하는 장면이었다. 


성룡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게 영화 <취권>이었는데 1978년에 나와 우리나라에는 1979년에 들어 왔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배경이 되는 1978~9년과 정확히 일치하는데, 그때까지도 아직 이소룡의 인기가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렇지만 곧 성룡의 전성 시대가 열리는 바,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떠오른다는 말이겠다. 


박정희 유신시대도 1979년에 비극적으로 종말을 고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또한 그건 곧 현수와 친구들의 '말죽거리 잔혹사'도 비로소 끝났다는 게 아닐까.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열리는 건 시원섭섭하고 슬프고 흥분되고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건 그렇고 어떤 건 그렇지 않을 테다. 


이소룡의 시대가 저물고 성룡의 시대가 오는 건 그럴 테지만, 그들의 잔혹의 시대가 가는 건 조금은 다른 차원이다.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사랑과 우정과 청춘의 학창 시절을 자기 손으로 지워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찢어진 마음을 보상해줄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을 이해조차 하지 않을 이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영화는 그런 시대를 살아간 모든 청춘들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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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


어렸을 때 재밌게 본 만화이자 중국 고전 중 하나인 <봉신연의>. 영화로 나왔다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세계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참으로 오랫동안 미국의 '할리우드'가 있었다. 영화라는 게 유럽에서 생기고, 세계 3대 영화제(베를린, 칸, 베니스)가 전부 유럽에 있음에도 말이다. 거기엔 역시 '돈'이 작용했을 거다. 한편 인도의 '발리우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양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또다른 독보적인 위치에 위치해 있다. 일 년에 1000편 이상을 제작하며, 전 세계 영화의 1/4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그 뒤에도 역시 '돈'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다름 아닌 '황사머니' 중국의 출현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2008년에 있었던 미국 발 금융위기 때가 아닌가 싶다. 미국 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으며 반대급부로 중국이 전에 없는 막강한 머니파워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그에 힘입어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 2위로 급부상했으며,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인도, 미국에 이어 3위(일 년에 500편 이상)로 올라섰다. 급기야 미국 할리우드의 유수 영화들에 손을 뻗치고 있다. 북미에서 망해도 중국에서 성공해 차기작의 발판을 마련한 영화들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그 반대도 있다. 


올해 두드러졌는데, '엑스맨' 시리즈 최고의 흥행작이자 엄청난 호평을 받은 수작 <데드풀>은 중국에서 개봉을 하지 못해 8억 불의 고지를 밟지 못했다. 여타 히어로 영화들의 중국 흥행 역사를 볼 때 10억 불 돌파도 가능했을 거다. 한편 북미에서 5천만 불도 찍지 못한 망작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중국에서만 2억 불을 넘게 벌어 월드와이드 4억 불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중국이 향후 수 년 안에 세계 영화 시장 1위에 오를 거라는 전망은 기정사실화된 거나 다름 없다. 


대수롭지 않은 영화, 어마어마한 제작비


영화는 중국영화사에도 길이 남을 제작비가 들었다고 하는데, 장면 장면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중국영화에 부는 황사머니는 제작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데, 역대 최고 제작비 5위가 약 8000만 불이라고 한다. 지난 2008년에 개봉했던 <적벽대전>의 제작비가 약 7000만 불로, 당시 아시아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기록했는데 절묘하게 미국 발 금융위기 즈음이었다. 우리나라는 역대 1위가 <설국열차>의 약 4000만 불 정도이다. 참고로 중국 역대 1위는 2억 불이 넘는다고 한다. 


올해 개봉한, 개봉할 영화 중 두 편이 중국영화 역대 제작비 순위를 흔들었고 흔들 예정이다. 그 중 하나가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이다. 자그마치 8000만 불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흥행은 잘 되었는지? 시작은 좋았으나 급격하게 하락하며 채 3억 위안을 벌어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900억 가까이 들여 만들어, 채 500억을 벌지 못한 것이다. 왠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인지?


영화는 그 자체로도 참으로 대수롭지 않다. 많은 이들이 중국 4대 기서(<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 혹은 <홍루몽>)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발치에도 가지 못하는 <봉신연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거다. 만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꽤 익숙할 텐데, 대히트작 일본 만화 <봉신연의>가 떠오른다. 아마 그 만화를 재밌게 본 이라면 이 영화 또한 일말의 기대를 안고 봤을 테다. 


때는 기원전 1100년 경 상나라 말의 주왕 시대다. 본래 현명하고 참된 황제였던 주왕은 요물 달기(판빙빙 분)로 인해 주지육림에 빠진다. 그 자신 또한 어릴 때 흑룡과의 불온한 계약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주나라 희창의 태공망은 그들을 저지하고자 덤볐지만 주술에 걸려 간신히 도망쳤을 뿐이다. 이내 봉신계획을 발동하며 뇌진자, 나타, 양전으로 하여금 흑룡과 달기에 맞설 수 있는 '광명의 검'을 찾게 한다. 과연 그들은 광명의 검을 찾아 인간계에 광명을 찾아줄 수 있을까? 한편 주술에 걸린 태공망은 어떻게 될까?


이 영화, 무엇이 문제일까?


이연걸이 태공망 역을 맡았다. 판빙빙이 달기 역을 맡았다. 안젤라 베이비까지. 중국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캐스팅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이 영화.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영화는 그야말로 '돈지랄' 한 티가 한 장면도 빠짐 없이 팍팍 난다. 과장이 아니고, 사람이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CG가 차지하는 비중이 족히 90%는 될 것이다. 물론 그런 류의 중국영화는 이 영화 뿐이 아니다. 중국 역대급 흥행돌풍을 일으킨 <미인어> <몽키킹>도 거의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들은 이 영화만큼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았으면서 이 영화보다 훨씬 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들에 비해서 캐스팅이 별로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연걸, 판빙빙, 안젤라 베이비, 고천락, 향좌 등 중국이 자랑하는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캐스팅으로만 본다면 앞엣것들을 앞선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영화는 <봉신연의>라는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를,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동안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대중에게 알리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을 거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이 <봉신연의>라고만 하면 되는 수준인 것이다. 중국에선 여전히 인기가 많은 고전, 역사, 무협 이야기이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중국에선 역대급 흥행 성적을 올려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배우들의 연기가 심각한 수준이었나?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불과한 영화에서 어떻게 배우들의 연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들 손발이 오그라드는 분장을 하고 나와 CG에 몸을 맡기는 판국에 말이다. 아마 아무도 그들의 연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면 남는 건 내용이다. 도무지 봐줄 수 없는 내용이라 여긴 게 아닐까. 그리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CG의 수준도. 


주인공이 뜬금없는데, 그 주인공이 매력이 없기도 하다. 또한 '영웅의 귀환'이니만큼 귀환하기까지의 모험이 재밌어야 하는데, 모험이랄 것까지도 없는 황당한 일들의 연속이다. 가장 재밌어야 할 게 가장 지루하고 만 것이다. 그 부분만 신경 써서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이렇게까지 실망할 영화는 아니었을 거다. 러닝타임을 좀 더 늘리며 쓸 데 없이 코믹한 장면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진지한 생각과 상념에 젖을 만한 장면을 추가했어야 했다. 


이도저도 아닌 것의 절정


이런 류의 중국영화를 볼 때면 항상 기대하는 '느낌'이 있다. 다름 아닌 중국풍인데, 역시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을 벗어나지도 못한, 이도저도 아닌 느낌일 뿐이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촉산전>으로 기억한다. 15년 정도 됐으려나, 중국풍 액션에 CG가 가미된 최초의 '아름다운' 기억 말이다. 그 전에도 <풍운>이니 <중화영웅>이니 하는 영화가 있었다. 다만 스타일이 조금 달랐고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 있진 않다. <촉산전>은 달랐다. 분명 <봉신연의> 버금가는 CG가 화면을 뒤덮었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천지를 진동하는 액션에서 피어난 연인의 슬픈 사랑, 모든 걸 버리고 둘만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마음, 그에 어울리는 화면을 구성한 CG와 OST, 화면은 화려한 원색과 파스텔 톤이 조화를 이룬다. 


아마도 <봉신연의>에서 <촉산전>의 느낌을 기대했었는지 모른다. 아니, 이런 류의 중국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그 느낌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중화주의 색채를 지우고 보편적인 색채를 입히고자 하는 노력인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중국풍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니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리고 만다. <봉신연의>는 이도저도 아닌 것의 절정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무리일 거다. 여전히 거의 중국 내수 시장으로만 흥행하는 중국영화이니 만큼 세계로 뻗어나가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와호장룡>처럼 지극히 중국적인 중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끈 사례가 있다. 그렇지만 그 또한 2000년대 초반의 일이거니와, 결정적으로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영화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적인 중국영화의 세계 진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것 같은 <봉신연의>. 2부 예고편 같은 쿠키 영상까지 있는데, 과연 후속편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흥행도 참패를 한 게 아닌가. 물론 그렇게까지 돈이 들어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영화에, 그토록 엄청난 돈이 들어간 걸 보니 투자 여력이 엄청난 것 같다. 그래도, 2편은 사양이다. 그래도 나오면 혹시 보게 될려나? <촉산전>의 그 느낌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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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최악의 하루>


현 남친과 전 남친을 한 자리에서 보게 되는, 진심을 전할 여력조차 마련되지 않은 '최악의 하루' ⓒCGV 아트하우스



"긴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 거예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다 솔직했는걸요. 커피, 좋아해요? 전 좋아해요.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는."


연기를 하는듯, 넋두리를 하는듯, 어쩌다가 홀로 남겨진 은희는 정체모를 말을 내뱉는다. 그녀에겐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였다. 현 남친과 전 남친을 한 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하루를 시작할 때는 괜찮았었는데. 우연히 길을 헤매는 일본인 소설가를 만나 아무 꺼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어쩌다가 그녀는 최악의 하루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비단 그 하루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연인과 초면을 향한 연기, 생각과는 반대의 아이러니


연기 못하는 연기지망생 은희(한예리 분). 수업을 마치고 나와 우연히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난다. 은희는 일본말을 못하고, 료헤이는 한국말을 못한다. 둘 다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은희는 설명하기가 어려워 직접 함께 료헤이가 찾는 곳으로 간다. 시간이 남아 카페로 향한 그들. 물 흐르듯이 이어지지는 않지만 보기에 풋풋하고 설레기까지 한 듯한 대화가 이어진다. 왠지 편해보인다. 


은희의 '최악의 하루'에서 유일하게 최악이지 않은 때가 바로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 료헤이를 만나는 때다. ⓒCGV 아트하우스



<최악의 하루>에서 은희가 유일하게 하루 중 '최악'이지 않은 때가 바로 료헤이를 만나는 때이다. 말도 안 통하니 속마음을 제대로 얘기할 수도 없고, 모르는 사람이니 내 본 모습을 마음대로 드러낼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가 편할 수 있다. 연기 못하는 은희는 아이러니하게 일상 생활에선, 즉 사랑의 대상에겐 연기를 잘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 즉 처음 보는 사람에겐 연기를 잘 못하니 그 모습이 부담 없이 다가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연기를 하지 않은가. 


사람은 연기자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연기를 한다. 그건 주로 만나는 사람마다 달라진다. 처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건 연기보다 본능에 가깝다. 초면, 연인, 가족, 상사, 동료, 후배, 친구 등. 여기서 가장 마음 쓰이는, 즉 가장 많은 연기를 필요로 하는 이는 누굴까? 연인이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하면, 아니 사실 가장 마음이 덜 쓰이는 이는 처음 보는 사람일 것이다. 굳이 연기를 하면서까지 잘 보이거나 자신을 감추고 그에게 맞는 모습을 보이려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은희가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태도


은희는 료헤이와의 대화 중에 온 남자친구 현오(권율 분)의 메시지를 받고 서촌에서 남산으로 향한다. 현오는 아침드라마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모자,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나타났다.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은희가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 게 오버하고 있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 아주 꼴 보기 싫다. 다만 그는 아주 잘 생겼기에, 그런 모습이 꼴 보기 싫다는 거지 본판은 아주 좋아라 한다. 은희를 밤 상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현오, 언제나처럼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다 선글라스를 뺏어 도망가려는 은희를 향해 한마디 한다. "유경아!" 은희는 선글라스를 밟아 부셔버리고 산을 내려간다. 


현오와 있을 때면 은희는 장난꾸러기가 된다. 여느 커플처럼 그와 티격태격하며 귀엽게 지낸다. 아니, 그렇게 지내고 싶은데 현오는 그렇지 않다. 꼴에 티비에 나온다고 유세떠는 것 같다. 그리고 몇 마디 안 가 은희의 과거를 들춘다. 잠시 현오가 옆에 없을 때 유부남과 바람을 핀 은희, 사실 은희는 현오와 함께 있을 때면 너무 힘들다. 우울했다가 즐거웠다가, 왔다갔다 하는 게 눈에 보인다. 물론 현오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현오도 현오 자신이 병신같다고 한탄한다. 이 커플, 답이 없다. 


은희는 현오가 너무 좋으면서 너무 싫다. 마음이 떠난 것 같은데,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한 끈만 존재하는 것 같은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그렇지 않나 보다. ⓒCGV 아트하우스



씩씩거리며 산에서 내려오는 도중 서서 아래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익숙한 남자 하나가 오는 게 아닌가. 다름 아닌 은희가 바람 핀 유부남 운철(이희준 분)이다. 아까 현오를 만나러 가는 도중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고 왔댄다. 대단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은희와 운철은 커피 한 잔 하며 근황을 묻고 답한다. "진심이 어떻게 진실을 이겨요?"라며, 행복하지 않으려 헤어진 아내와 합한다는 운철. 은희는 어이가 없어서인지 슬퍼서인지 모를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갈 길을 간다. 


운철과 있을 때면 은희는 비련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당신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우린 이루어질 수 없나 봐요. 우리 다신 만나지 마요. 또 만나면 나도 나를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으니까..." 같은 대사를 읊을 것만 같다. 그건 운철도 마찬가지다. 말인지 방귄지 모를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60년대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을 대사를 읊는 게 아닌가. 그들은 마치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아니, 연기를 하는 게 맞다. 그럼으로써 좀 더 현실적인 나를 위로할 수 있다. 절대 할 수 없는 걸 그(그녀)를 만나며 할 수 있으니까. 


얄궃게도 거짓 위에서라야 전해지는 진심


이들 삼각 관계는 지구상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적어도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서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관계 설정 중 하나다. '리얼리티하다'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현실적이긴 하니 그런 말을 붙일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이렇게 연극적인지? 왜 이렇게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운철과 있을 때면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는 은희. 연기 연습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또한 은희에게 있는 여러 '진심' 중 하나일 것이다. ⓒCGV 아트하우스



연기는 거짓말과 다름 없다. 내가 아닌 사람을, 내가 처하지 않은 상황을 연기하는 것과 "연기하고 있네"할 때의 그 연기도 모두 그렇다. 그건 엄연히 '진실'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진심'을 전하고자 한다. 진심을 전하고자, 소통다운 소통을 하고자, 진실을 숨기는 게 아닌가. 만약 진실을 전하게 되면 진심과 소통은 쓰레기가 될 뿐이다. 운철이 은희에게 말한 궤변이 생각난다. "진심이 어떻게 진실을 이겨요?" 아마 진실이 갖는 힘이 훨씬 셀 것이다. 하지만 진심이 이기길 바라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연애를 하다 보면, 진실을 숨겨야 할 때가 수없이 생긴다. 얄궃게도 그래야만 진심이 전해진다. 진실을 숨긴 거짓 위에서라야 진심이 전해지는 것이다. <최악의 하루>에 나오는 모든 이들이 거짓 위에서 춤춘다. 거짓 위에서 진심을 전하고자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 딱 한 커플만 빼고. 다름 아닌 은희와 료헤이다. 그들은 비록 소설가와 연기자라는 거짓 위에서 진심을 전하는 걸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이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거짓이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 참으로 안타깝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절대적으로 진심을 위한 거짓이 존재해야 하는 건가. 


감독의 의도도 훌륭하지만 그에 맞춤복인 듯한 배우들의 열연도 최고였다. 은희, 료헤이, 현오, 운철. 3명의 각기 다른 매력과 찌질함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 그리고 그에 맞춰 마치 다른 인격인 양 변하는 은희. 은희와 현오와 운철이 한데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데, 심장이 쪼그라드는데 발가락도 쪼그라드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될 거다. 연기 속의 연기가 서로 출동하면서 일어나는, 난감함, 찌질함, 억울함, 코믹함, 시원함 등의 온갖 감정들의 폭발이다. 그 복잡미묘함을 투박한듯 보이게, 즉 아주 섬세하게 연기를 해냈다. 이런 영화라면,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겠다. 파도 파도 또다른 의미를 받으면서, 지루하지 않은 코믹함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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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룸>



영화 <룸> 포스터 ⓒA24 필름스


영화가 시작되고 엄마와 아이는 잠에서 깨어 눈을 뜬다.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 같이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초도 없이. 아이는 초를 달라고 떼쓰지만 안타깝게도 엄마는 초를 줄 수 없다. 초라니 언감생심이다. 초는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게 아니니까. 좁디 좁은 방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초 따위는 필요 없다. 엄마는 미안하다며 아이를 달랜다. 


그렇다. 엄마 조이와 아이 잭은 좁은 방에 갇혀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사실을 말해준다. 7년 전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에게 납치 당해 이곳, 헛간으로 끌려 왔고 2년 뒤에 아이를 낳아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정황 상 아이는 납치범 닉의 아이로 보인다. 


잭은 계속 조이에게 묻는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천장으로 보이는 하늘로 미루어 보아 이곳과는 다른 곳이 존재할 텐데, 그곳은 어떤지. 그렇지만 잭은 그 좁은 방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다른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한 채 5년을 지냈으니, 그곳이 곧 세상의 전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조이는 잭에게 벽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말한다. 납치 당하기 전, 자신이 속했던 세상을 말한다. 그렇게 탈출 시도가 시작된다. 함께 탈출할 수 없으니 잭을 탈출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잭이 아프다는 구실로, 마지막으로는 잭이 죽었다는 구실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잭은 탈출에 성공하고, 조이도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영화 <룸>의 한 장면 ⓒA24 필름스



7년 만에 방에서 탈출, 형벌과도 같은 바깥 생활


영화 <룸>의 초중반부 스토리이다. 이게 초중반부라고? 방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주된 것이 아니었던가? 영화를 보기 전엔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7년 동안의 감금을 현실적이고 강렬하게 그리면서, 안에서의 성찰과 깨달음, 그리고 극적인 탈출을 보여줄 거라고 말이다. 그 이후에는 행복한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무인도에 불시착하는 과정과 무인도에서의 삶과 성찰, 그리고 탈출의 경위를 아주 자세히 보여주고 난 후 돌아와서의 삶은 상대적으로 짧게 처리하는 것과는 다르다. 척 놀랜드(톰 행크스 분)가 십자가 모양의 사거리의 한복판에 서 있는 모습으로 처리했다. 굉장히 의미 있고 함축적인 장면이다. 


반면 <룸>은 어떤가. 초중반부에서 이미 탈출에 성공한 모자(母子)는 어찌 보면 훨씬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 미디어의 과도한 액션, 잭을 둘러싼 조이와 부모님들 간의 갈등. 그들은 다시금 방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적어도 전의 그 방에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엄마와 아이와의 갈등 이외엔 어느 갈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조이는 닉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닉은 조이와 잭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과연 어떤 '방'이 더 좋을까. 잭은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다음의 한마디를 건넨다. 할머니의 가슴을 후벼 파는 한마디이면서, 보는 이의 가슴도 한껏 때리는 한마디이다. 


"가끔 그 방이 그리워요."



영화 <룸>의 한 장면 ⓒA24 필름스


얼마나 바깥 세상이 불편하고 싫었으면, 5년이나 한 발자국조차 내딛지 못했던 그 작은 방이 그리워질까. 한편으론 오직 엄마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던 그곳이 그립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그곳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잭은 더 이상 엄마하고만 지낼 수 없게 되었다. 혼자서, 엄마 아닌 다른 누군가와, 엄마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건 잭에게 있어 최악의 형벌과 다름없었다. 


극악무도한 사건 대신 한 아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영화의 배경은 분명 극악무도한 사건이다. 누구라도 그 사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영화 안에서 모자를 보는 이들이나, 영화 밖에서 모자를 보이는 이들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자체는 그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잭의 시선과 심리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작은 방 안에서의 세상에 대한 생각과 상상, 세상으로 나왔을 때 비춰지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한 심정을 곳곳에 독백으로 처리했다. 그렇게 하니 사건은 가려지고 대신 한 아이의 성장이 자리 잡았다. 


문제는 어쩌면 바로 그 부분에 있다 하겠다. 시종일관 아이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려 한 건 잘한 것 같지만, 사건도 사건이거니와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이가 아이만 있지 않다는 걸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만큼 중요한 이가 엄마 조이다. 그리고 조이의 부모님. 초점은 아이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모자가 세상에 나온 뒤에는 영화가 조금은 어수선해진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고, 조이와 부모님이 갈등을 빚는 요소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 답답했다. 



영화 <룸>의 한 장면 ⓒA24 필름스



이 모든 걸 커버하는 요소가 있는데, 배우들의 연기다. 이 영화로 2016년 무수히 많은 유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조이 역의 브리 라슨, 더불어 생애 두 번째 영화임에도 만만치 않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잭 역의 제이콥 트렘블레이, 그리고 조이의 엄마 역의 조안 알렌. 이들은 각자 역할 그 자체였다. 특히 특별한 배경의 캐릭터가 영화 내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준 데에는 여지없이 찬사를 보내고 싶다. 영화는 안 보고 이들만 봤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그랬고. 배우는 살고 영화는 죽은 그런 사례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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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영화 <레버넌트>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거짓말 같은 실화'에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으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얼핏 생각나는 작품도 몇 가지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애비에이터>,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그리고 <타이타닉>도 있다. 이 밖에도 여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했다. 


아무래도 기막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연이면 모든 포커스가 그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그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약관의 나이 때부터 꽃미남의 원 톱 주연으로 수많은 조명을 받아 왔기에, 어느 정도에 이르러서는 중압감을 넘어서 오히려 원 톱 주연 영화에만 출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물론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의 존재감은 월등했다. 


글래스의 피츠제럴드를 향한 기나긴 복수의 여정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 또한 그에게 지극히 어울리는 그런 영화다. 엄연히 이 영화의 주연은 4명, 아무리 좁혀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 2명이다. 하지만 포스터에 오로지 디카프리오 얼굴만 나온 걸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디카프리오 원 톱 주연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더욱이 <레버넌트>는 '거짓말 같은 실화'이다. 디카프리오가 벼르고 벼른 느낌이다. 


영화는 스토리보다 연기와 연출, 촬영에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은 이 추운 겨울에 봐도 더할 나위 없는 추위가 느껴지는 개척 시대 이전의 19세기 초중반 아메리카 대륙 서부이다.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아들 호크와 함께 모피 회사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인디언 족의 습격을 받아 큰 타격을 받고 도망 다니던 중, 글래스는 회색곰에게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받는다. 


그 타격으로 인해 글래스는 말도 할 수 없고 앉을 수도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멀지 않아 죽을 거라고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대장 헨리(돔놀 글리슨 분)은 남은 인원들이 힘을 합쳐 그를 이송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지형이 나타나자 피츠제럴드(톰 하디 분)와 브리저(윌 폴터 분)에게 그를 잘 돌보고 장례식을 잘 치러줄 것을 명하고 자리를 뜬다. 


피츠제럴드와 브리저, 호크 그리고 글래스. 피츠제럴드는 글래스와 호크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글래스에게는 빨리 죽음을 맞이할 것을, 인디언 엄마에게서 난 자식인 호크에게는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었다. 결국 피츠제럴드는 글래스가 보는 앞에서 호크를 죽이고 글래스를 생매장 시킨다. 브리저에게는 인디언 습격 때문에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 후 급히 자리를 뜬다. 영화가 비로소 시작되는 느낌이다. 글래스의 피츠제럴드를 향한 기나긴 복수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레버넌트>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레버넌트>를 만들어낸, 연출과 촬영과 연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전작 <버드맨>으로 아카데미를 거머쥐었다. 또한 <버드맨>의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은 <그래비티>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아카데미를 거머쥐었다. <레버넌트>는 이 둘이 다시금 뭉쳐 1년 만에 돌아왔다. 현재 아카데미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랜 숙원(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풀어줌과 동시에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2회 연속 감독상 수상과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의 3회 연속 촬영상 수상이라는 대업적의 신화를 가시화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 세 명이, 이 세 부분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하겠다. 연출과 촬영과 연기. 이 영화가 추구하는 극사실주의를 위해 오로지 자연조명과 불빛 만을 사용했다는 후문은 이미 전설이다. 당연히 인공조명이 수없이 투입되었다고 알고 있고, 현대 영화 제작에서 그건 너무나 당연하면서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런데 그것 제한했다는 건 하나의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도전은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이들의 도전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촬영 기법은 어떠한가. <버드맨>으로 가공할 만한 롱테이크 기법을 선보인 바 있는 그들이 이번에도 동일한 기법을 들고 왔다. 예를 들어, 말하는 인물이 바뀌어 카메라를 비추어야 할 때면 화면이 바뀌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인물이 바뀌어 카메라를 비추어야 할 때면 카메라가 움직이곤 했다. <버드맨>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롱테이크를 구사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지만, 광활하고 탁 트인 곳에서 롱테이크를 구사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눈으로 보고서도 그 동선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영화 <레버넌트>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화룡정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 영화에서 연기야말로 가장 빛나는 화룡정점이라고 생각한다. 회색곰에게 온몸을 찢기는 장면은 두고두고 보고 싶지만, 한편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장면이다. 유일하게 CG로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그토록 완벽한 장면을 만들어 냈으니 회색곰에게도 영예를 안기고 싶은 심정이다. 그 한 장면으로도 특수 효과의 최고봉을 맛보았다. 난 그렇게 탄생한 회색곰도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마지막으로 올리는 건 그에 대한 예의 표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혹자는 톰 하디의 연기,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매드 맥스>에서 얼굴을 가리고 나왔음에도 보여줬던 그의 눈빛 연기를 높게 쳐주고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볼 때 그는 그런 연기에만 특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영화는 디카프리오를 위한 무대였다. 


목을 다쳐 소리를 내지 못하고 온몸이 묶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의 앞에서 아들이 죽어갈 때 보여준 극도의 분노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관자놀이가 터질 것 같고 이를 악 다물고 손톱으로 피가 날 정도로 손을 꽉 쥐게 만들었다. 그가 조금씩 기력을 되찾으면서도 계속해서 위기에 봉착하고 다시 살아나고를 반복할 때면, 죽지 말고 반드시 살아나 아들의 복수를 할 것을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꼼짝 없이 죽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함께 한 말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모두 꺼낸 후 발가벗은 채로 그 안에 들어가 체온을 보존해 죽지 않은 장면을 봤을 때는, 실제로 몸이 바르르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히며 손이 차가워지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쳐 어떤 카타르시스 비슷한 걸 맛보게 해주었다. 디카프리오의 팬이 되었다. 그의 연기가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 적이 몇몇 있었는데, 이 영화 또한 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왠지 앞으로도 더더욱 정진된 연기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영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 것 같다. 인간이 생존과 복수라는 본능에 충실할 때, 저리도 위대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간의 고뇌를 얘기하는 영화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작금의 할리우드에서 이런 영화가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니, 감사하다고 할까? 이성의 극단 세계에서 본 본성의 극단은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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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명실공히 유아인의 한 해라고 부를 만합니다.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분야인 정치, 스포츠,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 책 등에서 단적으로 제일 막강한 파워를 보이는 것이 현재로선 영화라고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름값으로만 본다면 손흥민이 그를 넘어설 수도 있겠지만, 수치상으로는 유아인이 우위에 설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2015년 내로만 본다면요. 





그렇게 볼 때(영화에 한정해서 볼 때, 그렇지만 영화의 파워를 생각하면 사실상 전 분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2013년은 단연코 송강호의 한 해였습니다. 그해 8월, 9월, 12월에 개봉했던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이 900만 이상을 동원했죠. 그 중에 <변호인>은 1100만 명을 돌파했죠. 그 전으로 올라가 볼까요? 2012년은 류승룡의 한 해였죠. 2011년 <최종병기 활>을 시작으로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그리고 2013년 <7번방의 선물>까지 홈런을 날립니다. 2014년에도 활약은 계속되었고요. 2009년은 이병헌의 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지 아이 조>와 한국 드라마 <아이리스>로 충분해 보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오달수는 매 해마다 그의 한 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2015년부터 역순으로 <베테랑> <암살> <조선명탐정 2> <국제시장> <슬로우 비디오> <해적> <변호인> <파파로티> <7번방의 선물>까지 2013년과 2014년 그리고 2015년 영화계를 지배했습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영화에서 주연 또는 주연에 준하는 조연으로 열연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도둑들> <조선명탐정> <괴물> 등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에서 1000만 명 관객을 돌파한 영화 15편 중 그가 7편에 출연했죠. 괴물입니다. 


유아인은 2003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합니다. 그 드라마 참 오래했죠. 2005년까지요. 그리고 2007년에 영화 2 작품을 찍으며 얼굴을 많이 알립니다. 이후 그저 그런 행보를 보이다가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2011년 영화 <완득이>로 전성기급 시절을 보내죠. 하지만 2012년 드라마 <패션왕>의 폭망과 2013년의 영화 <깡철이>의 그저 그런 평가로 다시 평범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2014년 드라마 <밀회>로 다시금 눈도장을 확실히 찍더니, 2015년을 드디어 완전히 그의 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유아인은 전성기급 시절을 보낸 직후 2012년 경에 김수현, 이승기, 송중기와 함께 4대 천왕이라 불린 적이 있습니다. 20대 꽃미남 중에서도 스타성과 연기력을 갖춘 이들을 일컬어 그렇게 불렀죠. 지금은 단연 원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그동안 스타성은 이미 충분했지만 스타들에게 결여 되어 있는 연기력에서는 합격점을 받기 힘들었었죠. 그걸 2015년에 완벽히 상쇄 시킨 것이죠. 





도대체 2015년에 유아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시작은 영화 <베테랑>입니다. 이 영화에서 '조태호'라는 그야말로 금수저 양아치를 제대로 연기했습니다. 일종의 금수저 신드롬까지 다시 양산하게 했죠. 사실 먼저 개봉했던 <암살>에게 더 많은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는데, <베테랑>이 영화적 재미를 한껏 내세우며 관객수에서 앞질러 버렸습니다. 거기에 <베테랑>은 1300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급 행보를 보였죠. 유아인은 거기에 크게 한 몫 했습니다. 함께 한 황정민 등에 뒤지지 않죠. 


<베테랑>의 인기가 아직 식지 않은 시점에 또 다른 유아인의 영화가 개봉합니다. 1000만 영화 두 개를 가지고 있는 송강호와 함께 한 <사도>.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사도세자를 연기합니다. 작년 이맘때 SBS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드라마 <비밀의 문>이 폭망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을 텐데, 영화의 행보는 괜찮아 보입니다. 1000만 동원은 조금 어려울 듯하지만, 최근 사극의 연속 폭망의 모습을 비춰볼 때 가히 좋은 행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또한 유아인은 송강호에 뒤지지 않는 믿고 보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황정민, 송강호 등의 대배우와 함께 하면, 자연스레 꽃미남 출신 배우들은 들러리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투입된 이미지이죠. 유아인도 그렇게 이미지 메이킹 되어 있었죠. 하지만 정녕 피나는 연습을 했는지, <베테랑> <사도>에서 전혀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극을 지배하고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여기서 그치면 조금 섭하겠죠? 그는 내친김에 마침표를 찍을 작정인 것 같습니다. 10월 5일 시작되는 SBS 창사 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 역을 맡았죠. 함께 한 이들은 김명민, 신세경, 변요한, 윤균상, 천호진 등입니다. 2011년에 대박을 쳤던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이라고 하는데, 작년 대 참패 했던 <비밀의 문>의 치욕을 씻고자 벼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김명민 정말 좋아하는데 반갑기도 하고요.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MBC <화려한 유혹>, SBS <발칙하게 고고>가 시작되는데요. 이 중에서 <화려한 유혹>이 <육룡이 나르샤>와 같이 50부작이라니 진검 승부네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육룡이 나르샤>가 기본만 해줘도 상대가 되지 않을 듯합니다. 


<육룡이 나르샤>에 믿음이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극본에 있는데요. 김영현 작가는 <뿌리깊은 나무> <선덕여왕> <대장금> 등의 작가로 사극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같이 하는 박상연 작가는 <뿌리깊은 나무> <선덕여왕>을 김영현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이 두 작가는 이 밖에도 대부분의 작품을 함께 하며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 바 있죠. 





올해로 우리나라 나이 30세가 된 유아인. 남자는 30세부터 라는 속설을 정확히 그리고 완벽히 실행에 옮겼네요.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육룡이 나르샤>로 내년 중반까지 계속 할 것 같은데, 그 이후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그의 진가는 그 이후가 되겠죠. 반짝 스타로 지나가느냐, 꾸준한 모습을 보이느냐. 당연히 꾸준한 모습을 기대합니다. 그게 그를 위해서 이기도 그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서 이기도 하니까요. 잘해보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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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틸 앨리스>



영화 <스틸 앨리스> 포스터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알츠하이머병. 각종 콘텐츠의 단골 손님이다. 2004년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같은 해 같은 달에 개봉해 진검 승부를 벌였던 영화 <노트북>, 2013년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그리고 작년 2014년 장예모와 공리의 재결합 <5일의 마중>까지. 이 밖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기억의 소멸'은 그 자체로도 깊은 슬픔을 안겨준다. 


알츠하이머병 못지 않게 루게릭병 또한 단골 손님인데, 알츠하이머병이 정신적으로 기억이 쇠퇴해 소멸되어 가는 거라면 루게릭병은 육체적으로 세포가 쇠퇴해 소멸해 가는 것이다. 20세기 공전의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대표적이다. 이 병이 무서운 건 거의 무조건 사망에 이른 다는 점이다. 


'기억의 소멸'과 '육체의 소멸'. 우열을 가릴 수 없겠지만, 인간으로서 기억의 소멸이 더욱 치명적일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다는 게 너무 끔찍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딱히 어떤 고통이 수반되지 않으니 당사자한테는 괜찮을까? 영화 <스틸 앨리스>가 그리는 알츠하이머병은 어떨까. 


과장되지 않게 편하면서도 빛나는 연기


앨리스(줄리안 무어 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자그마치 콜럼비아 대학교 교수이다. 그녀는 이제 50대에 진입해 그야말로 절정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찾아온 불행. 다름 아닌 희귀성 알츠하이머병. 누구보다도 똑똑한 언어학자가 서서히 언어를 잃어버리게 된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하고, 그녀는 미래의 '나' 한테 메시지를 남겨 자살을 중용한다. 


그녀에겐 듬직한 남편과 4 남매가 있지만, 일찍이 10대 때 보낸 엄마와 여동생이 그립다. 그 기억이 그녀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한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지워버렸다. 그는 알콜 중독으로 죽었다. 앨리스와는 달리 일찍 아내와 딸을 보내고 남은 세월을 술에 의지했을 것이다. 기억의 파편들이 그녀를 괴롭힌다. 



영화 <스틸 앨리스>의 한 장면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영화는 주인공 앨리스 역을 맡은 줄리안 무어에 의해 흘러간다.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를 모두 석권하고 아카데미까지 접수한 그녀, 작년 말에 개봉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줄리엣 비노쉬'를 생각나게 한다. 명성이나 실력으로 영화를 거의 혼자 이끌고 가다시피 하는 원톱 여자 배우로서, 과장되지 않게 편하면서도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의 옆에 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 그녀는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으로 2013년 최악의 여우주연상을 탈 때와는 너무나 다른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1990년 생의 현재 할리우드의 제일 핫한 여배우인 그녀가, 마치 지난 날의 방종을 뉘우치고 다시 태어나고자 대배우들에게 사사받는 느낌인 것이다. 그녀의 행보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어


한편 앨리스는 알츠하이머병 확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에 더해 그녀가 앓는 병이 희귀하게도 가족력이 있어 자식들과 그 자식들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좌절한다. 자식들에게 알릴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자신을 힐책한다. 바보가 되어가는 것도 모자라 직접적인 피해까지 주다니. 남편에게는 이런 말도 서슴지 않는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부끄럽지는 않잖아."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언어 능력이 쇠퇴하는 도중 담당 의사의 주선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신해 연설을 하기도 한다. 길지 않은 원고를 작성하는 데만 3일이 걸렸다는 그녀. 아마 이 작업은 그녀가 그녀일 수 있을 때 할 수 있었던 최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이 연설은 영화의 끝에 나옴 직 하지만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했다. 



영화 <스틸 앨리스>의 한 장면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연기, 그리고 연기


영화에서 앨리스는 크게 보아 3단 변신을 한다. 초반의 똑똑하고 지적인 언어학자이자 교수로서의 모습. 중반의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이 쇠퇴하고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없게 되어 가는 모습. 후반의 모든 기억을 잃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완연한 환자의 모습. 표정과 행동, 무엇보다 눈빛의 변화가 완벽하다. 


한편 100분의 짧은 듯한 러닝 타임이 조금 애매했다.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앨리스의 알츠하이머병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지나치듯 말하는 대사로 유추할 뿐이었다. 대략 몇 년의 시간이 지난 걸로 나오는 데, 체감 상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듯하다. 영화 자체가 너무 연기와 분위기에 치우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놓친 혹은 포기한 부분이리라. 


영화는 반전 없이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앨리스는 점차 기억을 잃어 가면서도 옛날 엄마와 여동생이 살아 있을 때는 거의 끝까지 잊지 않는다. 오랫동안 남편(알렉 본드윈 분)이 그녀를 간호해 왔지만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었고 그 자리를 막내 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이 대신한다. 그녀는 엄마 앨리스가 제일 걱정하고 또 제일 못 미더운 딸이었는데, 아이러니다. 


사랑, 그리고 가족


이 영화는 결국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고의 언어학자지만 다른 무엇보다 사랑한 가족들의 기억을 끝까지 끌어안고자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만이 끝까지 그녀가 그녀일 수 있게 해주었으며, 끝까지 옆을 지켰다. 그녀는 기억을 모두 잃고 서도 '사랑'을 느꼈을까? 리디아는 앨리스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글을 읽어준다. 그리고 앨리스에게 묻는다. 이 글이 무엇에 대한 것이냐고. 앨리스는 답한다. '사랑'. 모든 걸 잊어도 사랑은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앨리스의 연설 중 한 소절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영화에서는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 중 한 부분이 위에서 말한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어.'이고 다른 한 부분이 바로 이 연설이다. 


"우린 우스꽝스럽고, 무능하고, 웃겨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일 뿐이지요. 저는 살아 있습니다.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 인생에 행복한 날들과 즐거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가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억은 사라질 거예요. 내일이면 잊을지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제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에 매료되어 굉장히 열정적이었던 옛날의 제 자신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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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