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pixbay



저는 책을 읽습니다. 매일매일 읽으려고 하고 일주일에 한 권 이상은 읽으려고 합니다. 주로 이동 시간에, 그러니까 출퇴근 시간에 읽습니다. 수원과 서울을 오가서 시간이 많죠. 집에서,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독서실에서 각 잡고 읽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짬이 나는 대로, 되는 대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만듭니다. 작은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단행본 파트를 도맡아 매일매일 만드는 작업을 하고 매달 평균 2권 이상을 만듭니다. 기획과 편집은 물론 디자인과 홍보까지 관여하고 있어 정신이 없는 편이니 만큼, 내가 책을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편집자의 일, 교정교열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력을 들이기 힘들어 스스로 글을 만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글을 씁니다.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영화를 보는데, 읽은 책과 본 영화 그리고 만든 책에 대한 리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오마이뉴스'에 투고합니다. 오마이뉴스에 투고한 지는 6년이 지났으니, 나름 제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게 6년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책을 지금처럼 읽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이고 영화를 지금처럼 보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한 지는 7년이 되었고요.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


나름 글이라는 걸 많이 써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는 리뷰를 말이지요. 800편 넘게 썼는데, 1편 당 평균 A4 1.5장 정도이니 총 A4 1200장 이상 될 것입니다. 원고지로는 A4 1장 당 10매 정도이니 총 원고지 12000매 이상이 되는 것이죠. 단편소설이 A4 10매 내외, 장편소설이 A4 80매 내외일 터이니 단순하게 양으로만 따지면 단편소설 120편 분량, 장편소설 15편 분량입니다. 양으로 따지면 이런 소설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어 합니다. 꺼려하기도 합니다. 절대적 양에 비해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글에 등급을 매긴다고 했을 때 저는 리뷰를 가장 아래라고 매기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창작'이 없고, 대신 소소한 생각과 정보만이 두서 없이 흐르고 후과 없는 비난이 막무가내로 나갈 수 있습니다. 


창작은 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반면 리뷰는 창작된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오래 고착되어진 글쓰기는 나에게로 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니, 영원히 나에게 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쩐지 부끄럽고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두렵습니다.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창작에의 욕심과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요즘엔 리뷰도 아닌 것이 창작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나의 이야기도 아닌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다행이도 재밌습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게 될지 모르지만, 본연은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건 쓰는 사람일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쓰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평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저 옮기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말로 옮기지만 저는 말로 옮기는 게 어렵습니다. 대신 글로 옮길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글보다 말이 더 어렵고 또 두렵지 않을까요.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치고 지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말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어려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어 보입니다. 


반면 쓰는 것에는 정반대의 입장에 처합니다. 고치고 지우고를 수십 수백 번 해도 시원찮은가 봅니다. 그 기저에는 말보다 글을 훨씬 더 우위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도 글처럼 남길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글은 남기는 걸 기본 전제로 하며 영원히 눈에 보인 채로 존재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저는 쓰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편입니다. 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상대적 반목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쓰는 것에 대한 재미 때문입니다. 점점 쓰는 게 재밌습니다.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창구로 이보다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글을 숭배할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글은 그저 창구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그저 쓰고자 합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낡은 문구가 있습니다. 비록 오래되고 낡은 문구이지만, 이 문구가 진실하다면 창작을 하기 위해선 남의 글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이겠죠. 책을 읽고 만들고 또한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콘텐츠가 된 영화를 보면 이젠 나만의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평론가로 이름 높은 김형수 작가는 '작가수업' 시리즈로 글쓰는 순서(?)를 소개합니다. 우선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저는 선생의 말씀을 계속 쓰다 보면, 계속 쓰려고 하다 보면 언젠가 창작의 순간이 온다는 걸로 알아들었습니다. 


이어 선생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글쓰기를 내보입니다. 온몸으로 밀고 들어가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이제는 본격적인 글쓰기라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에 천착할 듯합니다. 저는 아직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만끽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열망하고 있고 꾸준히 무언가를 쓰다 보면 그 순간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저는 그저 쓰고자 합니다. 위에서 글에 급이 있다고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쓰는 사람은 그저 계속 쓸 뿐이지요.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남긴 작가도 써야 하고, 누구 하나 읽지 않는 소품도 남기지 못한 작가도 써야 합니다. 저는 우선 그 깨달음부터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 깨달음이야말로 모든 쓰는 사람의 본류이자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진리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5년 전쯤, 일명 '글쓰기 열풍'이 불었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스마트폰 열풍'이 전국, 아니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인데 사람들이 글쓰기처럼 아날로그적인 행동을 하니 신기하면서 한편 이해가 되고 한편 이해가 도무지 안 되었던 기억이 난다. 난 그 모습이 반대급부적 성질의 것이라기보다 필요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한없이 스마트해지고 그에 따라 인간도 스마트해진다고 생각들 하지만 편해질 뿐 스마트해지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인간이 진정 스마트해지기 위해선 직접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이나 글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쓰기야말로 가장 적합한 활동이다. 더불어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글은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점점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글쓰기 능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필요성. 


이런 글쓰기의 필요성은 일면 책쓰기까지 뻗어나갔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작가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작가가 되어 책을 냈다. 하지만 이 현상이 엘리트화되지는 못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순 있지만 누구나 이름을 날리진 못한다. 즉,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그들과 계속 가야할 이유는 없다. 자비출판 이미지만 배가되어 하등 좋을 게 없다. 그래서인지 당시 활개를 치던, 글쓰기가 아닌 책쓰기와 작가되기 책을 쏟아내던 이들이 언젠가 단번에 사라졌다. 시대에 편승했던 이들은 시대의 종말과 함께 사라지는 법이다. 


독립출판 시대를 열다




여기, 시대에 편승하는 이들이 아닌 시대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자비출판은 거의 출판사를 통해 진행되었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게 아닌,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가 출판사에 돈을 지불하던가 책을 일정 정도 산다는 전제 하에 책을 내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출판사가 이러진 않았고 대부분의 출판사의 경우 종종 그랬고 몇몇 출판사가 전문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다가 출판사를 끼지 않고 직접 제작해 유통하는 방식이 전자책에서 본격 시행되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지나 누구나 출판사 사장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전자책 시장 자체가 죽어버렸고 어쩔 수 없이 출판사 사장이 되는 건 종이책이어야 하게 되었다. 


자비출판 아닌 독립출판, 사실 우린 누구나 독립출판을 해본 기억이 있다. '문학 소녀' '문학 소년'이 아니더라도 끄적거린 것들을 모아 간단히 제본해 하다 못해 가족들에게라도 보여준 적이 있지 않은가? 독립출판은 그런, 출판사는커녕 중앙도서관을 통해 정식으로 ISBN을 받지도 않은 정식 '책'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중에는 작정하고 작가로서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작가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뒤로 하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말 아닌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사람이 많다. 전자보다 후자가 출판계의 현실에서도 훨씬 많을 것이다. 


이기주 작가와 백세희 작가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는 전자에 속한다. 얼마전 100만 부를 돌파했다는 이 책의 출판사 사장이 이기주이고, 지은이가 이기주이다. 즉, 독립출판이라는 얘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자 출신의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인 그는 이 책의 성공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출간 후 몇 개월 동안 전국의 서점을 순회하며 서점 직원과 잠재적 독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어필했다고. 


사실, 지금 불고 있는 독립출판 열풍에 이기주 작가는 들어 있지 않다. 그는 독립출판 열풍의 일환이 아닌 해마다 한 권 정도는 신이 선택하는 케이스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반해 최근 절대적인 인기의 유시민 <역사의 역사>를 밀어내고 종합 1위에 올라섰다는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현재 독립출판 열풍의 선두주자이자 지난 10년 독립출판계가 낳은 가장 기록적 흥행의 결과물이다. 


그야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텀블벅을 통해 자비로 책을 냈다는 그녀, 많은 인기를 끌자 1인 출판사 사장이 빠르게 컨택했고 정식 출판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1인 출판이 독립출판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시작은 완벽한 독립출판의 모습을 띄고 있다. 


많은 독자들은 왜 이 책을 선택한 것일까. 수없이 많은 보증된 출판사의 보증된 작가들의 책들이 아니고. 바로 그 점 때문이 아닐까. 5년 전에 불었던 글쓰기 열풍이 작가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듯이 말이다. 백세희 작가가 쓴 자전적 에세이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백세희 작가가 선택한 독립출판 방식 자체가 신선함과 함께 보편적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여기에서 주체는 단연코 '나'이다. 


독립출판 열풍의 핵심




독립출판 축제가 있다고 한다. 2009년에 온라인, 2010년에 오프라인으로 서점을 열고 독립출판물과 아트북을 위주로 판매하는 1세대 독립서점의 상징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가 그것이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하는 이 축제는 최소 1만 명 넘게 찾아오는 인기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야말로 독립출판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이 축제에 열광하는가. 거기에 독립출판의 현재와 미래가 있고, 독립출판 열풍의 핵심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생각해본다. 독립영화와 비교해보자. 독립영화는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감독, 스텝, 배우가 자체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만들 수 있나? 거의 불가능하다. 장벽이 높다. 그 장벽은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아닌 영상 정도에서 비벼볼 수 있겠다. 


반면 독립출판은 글 좀 쓰고 돈 좀 있으면 된다. 글이야 어떤 식으로든 평생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그저 소소하게 주위에 돌리는 식이라면 그 어떤 글이든 가능하다. 출판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해외여행 한두 번 갈 돈이면 될 듯하다. 누구나 작가가 되는 걸 넘어서 누구나 책을 내는 시대인 것이다. 거기엔 이 시대가 낳은 성향이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채널 '책'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수많은 SNS 채널을 통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인다. 개중에 소수의 사람들이 조회수, 광고 등의 일차적 수익과 책, 방송 등의 이차적 수익으로 먹고 산다. 대다수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남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걸로 만족한다. 


개방되어질대로 개방되어져 포화 상태에 있는 SNS 채널은 더 이상 이전까지의 메리트를 선사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소회되었던 '책'이라는 아날로그적인 개념이 독립출판이라는 양식과 만나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즉, 그들에게 책은 또 하나의 채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품질 좋은 채널인 것이다. 


아무리 '누구나'가 앞에 붙지만 여전히 책에는 엘리트적인 면모가 있다. 최소한의 인정을 받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것이다. 이는 채널로서 아주 크나큰 메리트를 지닌다. 출판사 관계자들이나 책 관련 종사자들은 그저 추상적으로 이 열풍을 바라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은 이들이 많아졌고(독립출판의 작가), 적게 벌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독립출판의 사장)는 정도로. 


나도 출판사 관계자이거니와 책 관련 종사자이기도 한 바, 이 정도의 시각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책은 완전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앞에 '누구나' '나도' '한 번쯤'이 붙는다. 더 이상 책은 출판계와 작가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아니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폐쇄 아닌 개방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금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책을 사지 않는 시대는 아니다. 책에 내재되어 있는 텍스트나 그림, 사진, 도표 등의 지식을 인터넷이 대체하고, 책만이 줄 수 있는 지혜가 점점 그 효용성을 상실하고 있기에 책이 필요없어지는 것이리라. 반면 책이라는 물성은 팬시상품화되어 그 가치를 달리하고 있다. 


인터넷이 책을 죽였지만, 인터넷이야말로 책을 다시 살리는 가장 큰 통로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바라보는, 대하는 태도의 완전한 반전 또는 대대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우린 그동안 책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왔다. 책 자체는 사실 필요없고 책의 텍스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구텐베르크가 안긴 인쇄혁명이 기나긴 시간 동안 인류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21세기에는 그에 필적한 혁명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그리고 혁명과 혁명의 기간이 빨라졌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혁명도 선택한다. 모든 혁명이 인간의 삶을 바꿔왔지만 이젠 인간이 혁명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없이 느린 책 읽기, 그에 반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 텍스트는 멀어져가고 책만 남는다. 


책의 텍스트 vs 책의 물성




쓴도쿠, 일본어로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는 일을 말하는데 왠만큼 책 사서 읽는 사람치고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당연히 나도 여기에 속하고, 그 양은 점점 속절없이 많아질 뿐이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비율을 7대3으로 유지하려 하지만, 결국엔 그 반대가 되고 말 것이다. 


쓴도쿠는 책의 텍스트를 중요시하는 사람보다 책의 물성을 좋아라하는 사람의 전유물일 가능성이 크다. 예전 직장의 대표가 작가를 겸직했는데 당연히 그도 쓴도쿠적 기질이 있었다. 수많은 책들이 있었고 계속해서 수많은 책들을 사들였다. 그런데 그는 항상 "책은 중요하지 않아. 책에 담긴 게 중요한 거지."라고 말했다. 


나와는 상당히 다른 책에 대한 견해였는데,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내 아내는 책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지만 그 어떤 책을 대하든 태도가 참으로 깍듯하다. 책을 읽을 때면 아주 살짝만 펼치는데 넓게 펼치면 책꼴이 우스워진다나. 잘 아는 번역가 선생님 한 분은 정말 엄청난 양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모든 책을 하나하나 고급투명비닐로 정성스럽게 싸서 절대적으로 완벽한 보관상태를 유지한다. 


그에 비해 나는 책을 험하게 다루는 편이다. 장서가를 표방하지만 애서가는 아닌 것이다. 여기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 보인다. 책의 텍스트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장서가나 애서가가 되어야 하는지,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장서가나 애서가가 되어야 하는지 말이다. 


쓸 데 없는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날이 상승곡선에 있는 책의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나는 책의 물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또한 책의 물성이 그나마 책이 계속 다루어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구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이다. 


우위에 선 책의 물성




수많은 SNS 채널을 통해 책 사진과 리뷰를 올리며 '힙한' 지식의 최전선을 과시하는 것이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CEO는 '있어 보이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참으로 '없어 보인다고' 하겠지만 그런 이들이 좌초하고 있는 '책 배'를 떠받들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또는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책 이용 방법이지만, 전통적인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도 사실일 것이다. 책을 텍스트로 보는 이들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책의 외형에, 즉 디자인에 신경쓰는 나라도 없다. 외국의 책들은 애초에 소장용 양장본과 일회용 페이퍼백이 동시 출간되곤 한다. 디자인에 목숨 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책이 과시용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지 않고 말이다. 


텍스트가 중요한 사람들은 아마도 일반적인 장서가, 애서가보다는 연구자일 것이다. 연구를 위해 텍스트를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모으는 경우 말이다. 그런 그들이 연구의 결과물로 책을 출판하는 것일 텐데, 책이 가지는 전통적인 측면에서 그들이야말로 책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장서가가 되는 경우, 그 책의 물질적 아닌 텍스트적 가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녕 위대한 텍스트들,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을 테고 책이 아닌 형태의 것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진정한 독서가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우린 모두 그러니까 책을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하는 우리 모두는 단순한 애서가가 아닌 텍스트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마도 그건 쉽지 않을 거다. 텍스트를 중요시 하다 보면, 보다 월등한 텍스트의 바다인 인터넷에 시선이 돌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의 책상은 점점 비워지고 그 자리를 컴퓨터나 태블릿 PC가 대체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위대한 텍스트들,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텍스트들은, 결국 그 텍스트가 가지는 위대함이 아닌 그 물성이 가지는 위대함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 이상 그 텍스트들은 그들만의 것도,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지도 않게 되기 때문일 것이기에. 자, 그럼 진정한 장서가는, 애서가는, 독서가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현실적으로,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이들이 책에 내재되어 있는 텍스트의 가치를 알아보아야만 하겠다. 그게 끝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죽어가는 책의 시대에, 책을 살리는 많지 않은 대안 중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다름 아닌 나부터 실행에 옮겨야 할 텐데, 단순히 서평을 쓰며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건 책에 대해서만 말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닌가. 


책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낭독을 하고 더 깊은 생각들을 공유하고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책을 사랑하는 것, 책이 많다는 것, 좋은 책들을 선별하는 것이 다는 아닌 것이다.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만민독서야말로 답이다. 독서가가 해야 할 일이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기획] 출판사 편집자의 눈으로 본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도서관보다 서점을 더 좋아했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살 수 있었으니까. 서점에서 책을 다 읽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처럼 서점에서 책을 읽었다. 도서관보다 서점에 책이 많고, 서점에서는 도서관처럼 반드시 조용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  


온라인 서점이 생긴 후로는 오프라인 서점으로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가더라도 구입까진 가지 않고 미리보기용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온라인 서점의 파격적인 할인과 적립금, 굿즈 증정 이벤트 등으로 오프라인 서점은 설 자리를 잃었다. 나부터가 그랬다. 책은 '당연히' 온라인에서 구입해야 하는 것이었다.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동일하게 10% 이상의 할인이 금지되었다. 이제 다시 오프라인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을까? 아니, 책을 사는 구입률 자체가 폭락했다. 반값에 사던 책이 할인이 되지 않으니 터무니 없이 비싸게 느껴졌다. 싼 맛에 책을 사던 독자들이 떨어져 나갔다. 


온라인 서점은 굿즈와 리커버 등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사정이 더 안 좋은 오프라인 서점은 중고서점 오픈, 독서공간 마련, 서점의 멀티플렉스화 등으로 시장 확대 쪽에 주안점을 두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논란이 일었다. 리커버는 예전부터 해왔던 '구간 표지 갈이'의 다른 말에 불과했고, 중고서점은 소형 헌책방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작된 독서공간은 출판사의 반발이 있었다. 


교보문고 대형 테이블 소식


나는 크지 않은, 아니 작디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한다. 마케터나 영업자, 혹은 홍보 담당자를 따로 두지 못하는 형편이기에 오프라인 서점을 관리하지 못한다. 아주 가끔 가장 큰 지점 위주로 방문할 뿐이다. 담당 MD 1인이면 모든 업무가 가능한 온라인 서점과 주로 거래하는 편이다. 비단 우리 출판사뿐만 아닐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에는 우리 출판사 책이 많이 깔려 있지 않다. 신간 출간으로 지점별로 0~10부 정도를 깔아도 베스트셀러를 만들지 못하면 2주 정도 후에 1부 정도는 벽면에 넣어지고 나머지는 모조리 반품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반품에 매우 민감하다. 한번 출판사 손을 떠난 책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제대로 된 것들을 찾기 힘들다. 어찌저찌해 주문을 줄 때 그 책으로 다시 보낸다고 해도 또다시 돌아올 확률도 높거니와 그렇게까지 만드는 데 드는 품이 너무 많다. 


그 와중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위시한 '대형서점 테이블' 소식이 들려왔다. 이른바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대형서점에 걸맞는 대형 테이블을 서점 내에 들여놓고 방문객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근처에 있을 카페에서 마실 것을 들고와서는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착석,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읽는다. 


서점 입장에서는 오프라인 서점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려는 훌륭한 전략이겠다. 서점에 와서 책을 구입하기는커녕 서점에 오지도 않으니 일단 서점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제는 대형서점에 가면, 서점보다 더 클 것 같은 팬시문구쇼핑몰과 카페가 함께 있다. 예전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전과 비교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제는 그곳에 공간이 생긴 것이다. 


출판사의 입장


출판계에는 서점뿐만 아니라 출판사도 있다. 물론 저자도 있지만 이 문제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다 하겠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대형서점의 도서관화'가 심히 못마땅하다. 비록 오프라인 서점을 온라인 서점보다 훨씬 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다름 아닌 반품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과의 계약은 주로 위탁이다. 책을 보내서 진열시켜 놓긴 하되 팔리는 대로 수금되는 형식이다. 한편 그렇게 보내진 책들 중 팔리지 않은 책은 반품으로 돌아온다. 물론 상품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채로. 와중에 테이블에서 자유롭게 책을 보는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는 상품가치가 이전보다 더 떨어진 책의 반품 확률이 이전보다 더 높아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오프라인 서점에서의 책 구입 확률이 더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집에서 읽는 사람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대형서점 안에 도서관을 차려놓으면 당연히 이전보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즉, 오프라인 서점으로 사람들을 끌어오되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구입하게 하는 건 오히려 꺼려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이 과도기일지 모른다. 인터넷, 스마트폰 혁명 이후 책을 읽는 사람은커녕 책을 집어드는 사람도 점점 없어지는 상황에서, 그래도 책이 있는 서점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려는 고육지책. (출판사의) 희생 없이는 (출판계의) 발전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그 본질적 문제


'서캉스'라는 게 있단다. '서점+바캉스'의 줄임말인데, 더위가 유독 맹위를 떨친 올 여름 무수히 많은 '-캉스'들이 사람들을 매혹했다. 홈캉스, 몰캉스, 호캉스, 백캉스, 숲캉스... 서점도 여기에 껴 있다니, 책을 좋아하고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신기하거니와 대견(?)하기도 하다. 


소소하다면 소소한 문제들이 생기는가 보다. 자유로운 공간이 생기니, 우리나라 특유의 '자리' 개념이 생겨, 마치 도서관에서 자리를 골라 맡듯이 하는가 보다. 더욱이 이건 오래 점유하지 말라는 권유만 있을 뿐 시간 규제가 없기에 사실상 무제한으로 자리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어느 때보다 많이 몰라다 보니 그런 점들에서 오는 불편함들이 보이는 것 같다. 


진짜 문제는, 본질적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책 읽을 시간 없는, 즉 저녁과 여가가 없는 사회.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회. 지구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율이 가장 높은 사회. 책을 읽는 게 여러 모로 손해일 수 있는 사회...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데, 그저 '책 좀 읽으세요!' '도대체 사람들은 왜 책을 안 읽지'라고 권유하고 질문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더군다나 출판사의 절대적 파트너인 서점도 저리 빨리 변해가고 있다. '갑'(서점)이 변하면 '을'(출판사)도 변해야 하는 게 생존법칙이겠다. 출판사도 누군가는 이미 변하고 있고 누군가는 빨리 변해야 한다. 


출판계 전체를 위한 대안


그럼에도, 지금 당장, 저런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을 논할 때, 작디 작은 출판계가 더욱 작아지고 있는 와중에, 대형서점의 독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행태는 출판사 입장에서 납득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누가 봐도 '출판계 살리기'가 아닌 '서점 살리기'의 행태로 비춰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단기적이고 구체적으로, 출판사는 장기적이고 추상적으로 접근하는 게 대안일 듯하다. 현 출판계에서 대형서점이 변화를 이끌고 실행에 옮겼으니, 출판사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변화로 인해 더욱 많아질 반품,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 구매율, 살려야 한다고 몇 년째 울부짖고 있는 도서관의 무용지물화... 출판계 내에서만 논의되고 논란되고 있는 사안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출판사는 양질 콘텐츠 제작, 콘텐츠 다각화, 자체 채널 확보, 단순 모임 형식의 협회 아닌 실질적 협동 협약의 조합 시작 등의 추상적이고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접근이 선행되지 않는 단기간의 베스트셀러에 목 메는 데 급급하다면 머지 않아 낭떠러지를 만날 것이다. 


서점과 출판사 간의 긴밀한 '이인삼각'이 필요하다. 서로 가감없이 단기와 장기, 구체적인 사안과 추상적인 비전을 주고 받으며 눈앞의 현실을 수정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 중심엔 단연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여야 한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나의 책장. 절반가량이 '읽지 않은 책'이다. ⓒ김형욱


난 초등학생이 된 8살 때까지 한글을 떼지 못했다. 지금은 물론 당시로서도 상상하기 힘든 나이인데, 그런 내가 지금은 일주일에 적어도 2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출판사에서 편집자로도 일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당연한듯 이렇게 살고 있지만, 돌아보면 상상하기 힘든 생활 모습이고 직업 형태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졸랐나 동생이 졸랐나, 아니면 아빠가 당신의 의지로 사주셨나 기억 못하지만 처음으로 '책'이라는 걸 샀다. 한국 및 세계 위인전 세트. 정말 맹렬히 읽었다. 뭔가 읽는다는 것의 재미를 그때 처음 느낀 듯. 지금 보면 표지에 스티커가 붙여 있는데, 다 읽은 책에 표시를 해둔 거다. 그것도 '먼저' 읽은 책에. 


그렇다. 나와 동생은 경쟁적으로 위인전을 읽었다. 좋아하는 위인을 점찍어 두고는 먼저 읽고 스티커를 붙여 표시를 했다.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건 스티커 주인이 아닌 이는 볼 수 없었다. 피튀기는(?) 질주 끝에 남은 건 내가 어떤 위인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자가성찰이었다. 대신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책은 그렇게 나에겐 내용이나 콘텐츠보다 겉모양이나 물성으로 처음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책을 볼 때 내실보다 외양을 훨씬 더 보는 편이다. 책을 '상품'으로 '판매'해야 하는 입장인 출판사 직원의 입장도 입장이지만, 10여 년 전에 교보문고 인수처에서 일하며 하루에도 수백 수천 권의 책을 다뤄본 경험도 이런 나의 특이점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누군가는 책에서 텍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에 외양은 필요 없고 내실이 중요하다고 한다. 책이라는 건 읽는 게 우선이고 그럼으로써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책은 책 자체로 전부였고 전부이며 전부일 것이다. 


쓴도쿠


'읽지 않은 책'의 대표 1 ⓒ김형욱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내 돈으로 직접 책을 샀다. 내 돈이 아닌 부모님 돈이긴 하지만, 여하튼 서점에 가서 한 권 한 권 보고 싶은 책을 내 돈 주고 사는 맛은 지금도 기억날 정도이다. 짜릿했다. 그때는 호흡이 긴 책만 샀다. 위인전으로 첫경험을 해서 그런지 역사소설이 다수를 이루었다. 


동시에 그때가 시작이었다. 호기롭게 사고는 보지 않게 된 책이 속출한 건. 처음엔 그저 책이 좋아서,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재미있어 보이는 책만 구입했다. 다가가면 갈수록 무지막지해지는 게 책 세상이었다. 끊임없이 방대해졌지만 알지 못하는 게 너무 많았기에, 계속 살 수밖에 없었다.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거나, 반드시 읽어야 할 리스트에 올랐거나, 좋아하게 된 작가가 생겼거나 하면 책을 모았다. '책 사는 데 돈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셨던 부모님의 전폭적 지원으로. 그러다가 욕심도 생기도, 조바심도 났다. 어디가서 '책 좀 읽는다'고 하려면 누가 지은 무슨 책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가. 본격적 책 읽기를 늦게 시작했다고 느낀 만큼 남보다 더 빨리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싶었다. 


지금도 비단 책뿐만 아니라, 나는 접하는 대다수 콘텐츠를 단순 정보로 접하고 습득하고 외우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책은, 그 시작이 위인전 빨리 읽기였으니 오죽하겠나. 단순 정보로는 모자라니 약간의 추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눈앞에 항상 보이는 게 가장 좋다. 책은 그렇게 내 눈앞에 쌓여 갔다. 


사실, 이런 모습은 심하게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컵을 모아 전시하고 누구는 신발을 모아 전시하고 누구는 인형이나 프라모델을 모아 전시한다. 다. 컵은 물을 담는 목적이 있고,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목적이 있으며, 인형이나 프라모델은 갖고 놀아야 하는 목적이 있다. 책에도 읽어야 하는 목적이 있다지만 전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다. 


일본어로 '쓴도쿠(つんどく)'라고,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는 일'의 속어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딱 봐도 나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그리 좋지만은 않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 속이 좀 상한다. 그런 한편 나말고 그런 사람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해 안심이 된다. 여하튼,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안 읽는 책을 사고 있다고. 


난 읽지 않는 책을 산다


'읽지 않은 책'의 대표 2 ⓒ김형욱



결혼해서 사는 곳을 옮기기 전, 내 방은 책의 무덤 같았다. 보기 안쓰럽게 쌓여있었는데, 보다 못한 부모님이 꽤나 큰 책장을 사주셨다. 책들은 얼추 제자리를 찾았는데 그 책장마저도 금방 차버렸다. 나는 책들을 팔기 시작했다. 버리기엔 아까우니까. 추리고 추리고 추려서 팔고는 가차없이 다른 책들을 사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수백 권을 팔았지만 그보다 많은 수백 권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 


결혼해 이사를 하면서 문학 책들 위주로 들어왔다. 작디 작은 집의 거실 태반을 책장이 차지했고 이제 그 책장도 모든 자리를 책들이 채워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수백 권을 팔았지만 그보다 많은 수백 권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요즘은 책을 사는 걸 이전보다 많이 줄이는 편이다.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 살 책들을 장바구니에 수십 수백 권씩 모셔 놓고서. 


여전히 사는 책의 절반 가까이는 읽지 않는 책이다. '앞으로 영원히 절대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도 있고 '언젠가 한 번은 읽을 것 같은 책'도 있다. 이 책들은 안타깝게도 책의 목적인 '읽기'가 아닌 '관상'용으로 내 서재에 들어앉아있다. 그렇지만 나에게서 그 어떤 책들보다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상하게도 난 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에 더 시선이 가고 손이 간다. 심지어 어떤 기대와 설렘까지 느낀다. 


앞으로도 난 '읽지 않는 책'을 살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떤 '소설 쓰기'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어떤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산 책의 70%만 읽고 30%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난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 문구를 생각했고 생각하고 생각할 거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야밤의 공대생 만화>


<야밤의 공대생 만화> 표지 ⓒ뿌리와이파리



자타공인 2017년 최고의 책으로 손꼽는 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뿌리와이파리). 해가 넘은 지금에서야 접했다. '과알못', 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아도 재미있고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한 책이 분명하다. 저자는 태블릿 펜을 산 겸으로 '만화나 그려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는데, 책에서 소개한 몇몇 인물들의 위대한 발견의 이면과 맞닿아 있어 흥미롭다. 


나는 문과생으로, 명명백백한 과알못이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화학, 물리, 생물, 지구과학에서 기억나는 건 '칼카나마알아철니주납수구수인백금' 주기율표 정도이다. 문제는 주기율표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칼카나마~'가 어떤 것의 줄임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알못의 고백은 이쯤에서 접는다. 


대신, 역사와 위인 이야기는 좋아한다. 고로 과학사도 좋아라 한다. 정작 중요한 그들의 업적이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의 이야기는 좋아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만화 또한 좋아한다. 소년만화도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교양만화에 눈길이 많이 갔고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 완벽히 부합한다. 과학을 알지 못해도 심지어 싫어해도, 만화를 좋아한다면 역사를 좋아한다면(?) 이 책은 맞다.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는 현재진행형의 다양한 개그코드와 저자의 과학을 향한 애정(또는 애증일까)을 맛보고 엿볼 수 있다. 엄선된 댓글을 읽는 건 큰 즐거움이다. 


과학기인 또는 과학천재 열전


책은 과학인물사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과학기인열전 또는 과학천재열전에 가깝다. 고로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례들이 가득하다. 그중 단연코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 아이작 뉴턴이다. 그는 최단강하곡선을 하룻저녁에 풀어버렸고 미적분을 가장 먼저 발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새로운 화폐를 만들기도 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뉴턴의 생소한 일화들이 재밌다. 


한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이야기는 자못 심금을 울린다. 그의 업적은 너무나도 어마어마한데, 그 업적들 중 상당수가 그가 눈이 먼 이후에 올린 것들이라고 한다. 라플라스의 "오일러를 읽으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고 그의 위대함이 묻어난다. 


여기, 역사상 최고의 천재 존 폰 노이만이 있다. 그는 7살 때 8자릿수끼리 나누기가 가능했고 9살 때 미적분을 마스터했으며, 15년 전에 읽은 책을 모두 암송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20대가 되자 한 달에 한 편꼴로 논문을 썼다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컴퓨터와의 계산 배틀에서 싱겁게 이겨버렸다는 실화 전설이 내려온다. 


과학계의 천재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알버트 아인슈타인 정도가 떠오를 텐데 이 책 덕분에 수많은 숨겨진 천재를 알게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혹은 슬픔. 물론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로 칭송받지만 생전에 주목을 받지 못한 천재들도 존재하거니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으니 마냥 절망(?)에 빠지는 결과만 낳는 건 아니다. 


<야공만>이 시사하는 것들


<야밤의 공대생 만화>는 참으로 많은 걸 시사하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런 식의 콘텐츠여야만, 즉 현재진행형의 수많은 인터넷 드립과 패러디로 중무장한 콘텐츠여야만 관심을 갖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이런 식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게 어렵고 지루한 지식들을 전달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큰 축을 이룬다. 


책을 접하기 전에는 앞엣것의 마음이 주를 이루었다면, 책의 첫 페이지를 보는 순간 뒤엣것의 마음으로 급격히 옮겨 갔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는 것, 더 읽다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저런 마음 같은 건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 책을 다 읽고 덮은 지금 드는 생각은 어서 빨리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 뿐.


한편, 저자는 마치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자신의 작업을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하고 만화가가 꿈이기까지 했다는 말은 결코 그 '끄적거림'이 그저 끄적거림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 책을 다 본 즉시 '나도 뭔가 해볼까?'하고 생각해봤는데, 그 '뭔가'가 나에겐 없다는 슬픈 자책만 돌아올 뿐이었다. 저자가 챕터를 끝낼 때마다 올리는 교훈을 나도 써 볼까?


아니, 쓰지 않을 테다. 생각나는 게 하나같이 우울하고 슬픈 것들이다... 황새 따라 하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가 되긴 싫다는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교훈일까. 여하튼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과알못', 아니 '만알못', 아니 '책알못' 한테도 과감히 맹목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 읽으면 좋아질 것이다. 과학도, 만화도, 책도.


야밤의 공대생 만화 - 10점
맹기완 지음/뿌리와이파리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서평 쓰는 법>


<서평 쓰는 법> 표지 ⓒ유유


서평이랍시고 책 읽고 글 쓴지 4년이 넘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지라, '내가 만든 책 내가 홍보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체계적으로 제대로 방법을 배우지 않은 채 엉겹결에 시작한 서평, 그 수가 족히 4백 편 가까이 된다. 이젠 매너리즘의 시기를 지나, 퇴행의 시기가 온 것 같다. 슬슬 힘에 부치는 게 아닐까. 


다른 분들의 서평을 두루 살펴왔다. 각기 다른 스타일, 거기에 정답은 없었다. 나에게 맞은 옷을 찾기란 힘들었다.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라며 내 식대로 밀어 붙였다. 쓰면 쓸수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잘 쓰고 있는 게 맞는지, 한 번쯤 제대로 된 방법을 연구해봐야 하는 게 아닌지 자문했다. 그렇지만 나름 베테랑(?)이라 자부하는 바, 다른 누구의 지도편달을 받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계속 뒷걸음칠 치는 것 같은 느낌이 한없이 들었다. 그동안 '황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우연에 우연이 겹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책 읽기와 서평 쓰기의 방법론을 이번에는 집고 넘어가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이원석 작가의 <서평 쓰는 법>(유유)을 들었다. 


서평은 무엇이고, 서평을 왜 쓰는가


이 책에서 어떤 빛나는 깨달음을 얻고자 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제목처럼 '서평 쓰는 방법' 즉, 기술을 얻고자 한 것도 아니다. '진짜' 서평가는 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의 내 서평을 진단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 서평은 형편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저자에 따르면 애초에 내 서평은 서평보다 독후감에 가깝다. 매우 정서적이고 내향적이며 일방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초장부터 자괴감을 들게 만드는 저자의 단호함이 짧디짧은 이 책의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 어렵게 만들었다. 차근차근 일게 되었다. 본질을 건드리니 머리와 가슴이 모두 반응하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건 서평보다 독후감 쪽에 가깝다고 진단한 나의 서평들이다. 


서평이 무엇인지만큼 중요한,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서평을 왜 써야하는지일 것이다. 저자 또한 동의하는 분위기인데, '자아 성찰'과 '삶을 통한 해석이자 실천'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진부하지만 지극히 올바른 논의를 끄집어 낸다. 매우 공감하는 바다. 서평을 쓰고자 마음 먹었을 때 목적을 정했는데, '책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모토였다. 저자한테 칭찬 좀 들을 것 같다. 


저자는 독후감과 서평 구분에 책 소개와 서평을 엄격히 구분하고자 하는데, 역시 한 발 빼고 다시 최후 변론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독후감과 서평이 궁극적으로 서로 통하는 것처럼, 책 소개와 서평도 서로 통한다는 것. 제대로 된 서평이 되려면 논리에 입각한 서평가의 목소리가 존재해야 하겠다. 서평쓰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이었나, 싶다. 난 단지,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목적 하에 독자에게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소개해주면 왜 그 책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 말하고자 했다. 문제는 그 초심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 초심으로 돌아간 나를 보여주고 싶다. 


서평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딱 알맞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줍잖게나마도 서평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해두고 꾸준히 상당량의 서평을 써왔지만, 제대로 체계를 세우진 않은 사람에게 말이다. 반면, 제목만 믿고 초보자가 덤벼들었다간 시작도 못한 채 끝맺음을 할 수도 있겠다. 실용적 기술보다 본질적 기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데, 초보자는 이 책을 읽을 바에 차라리 좋은 서평을 찾아 읽고 그 구성을 따라해보는 게 좋을지 모른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에서도 여전히 실용보단 본질에 가까운 설을 풀어내고 있는 저자는, 깊고 다양한 책 읽기와 양가적 태도 장착을 전제로 요약과 평가라는 핵심을 가장 길게 펼쳐놓는다. 그러곤 10개도 채 되지 않는 '서평의 방법'을 짧게 설명하고 있으니, 누군가는 '낚였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반면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자리하고 있는 '평가'는, 저자가 몇 번이고 언급하고 강조하는 '서평'의 '평'에 해당하는 바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다른 건 건너 뛰고 이 부분만 잘 살펴도 이 책에 충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거니와 더불어 저자와 내공까지 짐작할 수 있다. 


서평의 핵심인 평가, 평가의 핵심은 맥락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맥락화를 잘 해왔는가? 그렇지 못했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책 한 권 읽고 그 책에 대한 요약과 평가를 하는 데도 벅찼으니까. 일전에 아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데, 내 서평에 없는 게 있다면 다름 아닌 맥락화라고 말이다. 맥락화가 기본이 되는 (석사)논문을 기똥차게 잘 쓴 아내가 한 말이었으니 맞는 말일 텐데 애써 무시하고 지금까지 왔다. 지금에라도 나는 제대로 된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책 읽는 모두가 서평을 쓰자


'책으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모토는 아직 변함 없고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평으로 세상을 바꾸자'일 텐데, 그것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책도 읽지 않는데, 서평은 무슨 서평... 물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의 서평 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했고, 이제 막 글도 좋아지기 시작했으니까. 


아마 혼자서는 아무리 수천 편의 좋은 서평을 써도 세상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라면 어떨까? 우리 모두 좋은 서평을 쓰고자 한다면? 그래, 좋다. 한 발 물러나 우리 모두 서평을 쓰고자 한다면 어떨까? 저자도 말했듯이, 저자와 독자 사이의 위계가 사라지고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는 분명 '사회를 번혁하고 세상을 바꾸는' 혁명에 다름 아니다. 


내가 꿈꾸는 게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그려왔던 '바뀐 세상'의 모습 말이다. 내가 이 얇지만 강한 책에서 발견한 가장 빛나는 생각은 서평이 무엇인지, 서평을 왜 써야 하는지,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아닌 '서평이 가야할 길'이다. 이 책은 나에게 '모두가 서평을 쓰는 그 날까지 난 서평을 쓰겠다'는 일념을 새롭게 심어준 것이다. 정녕 열심히 쓸 것을 약속한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중쇄 미정>


<중쇄 미정> 표지 ⓒ그리조아



지난해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대대적인 인기를 얻은 드라마 <중쇄를 찍자!>, 일본 만화 매거진 업계 2위를 달리는 대형 출판사에 입사해 고군분투를 마다 않고 성장해가는 신입 편집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로서는 알 길 없는 일본만화계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편집자'라는 더더욱 알 길 없는 직업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어, 그 새로움이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문학계간지와 단행본을 양립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지라, 접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새로움보다 일종의 동료로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며 한편으론 자괴감이나 자격지심도 느꼈으니... 나는 출판계의 99%를 차지하는 소형출판사의 일원이고, <중쇄를 찍자!>의 주인공는 굴지의 대형출판사의 일원이 아니겠는가. 재미와 공감과는 별개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편집자의 소소하지만 피말리는 일상


이런 99%의 사정을 눈치챘는지 출판계의 99%를 차지하는 소형출판사의 이야기가 만화로 나왔다. 제목은 '중쇄를 찍을지 정하지 못했다'라는 뜻의 <중쇄 미정>(그리조아). <중쇄를 찍자!> 원작이 만화이거니와 중쇄를 찍자는 얘기이니, 다분히 노리고 나온 작품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만화는 굉장히 얇은 분량에 대사도 거의 없고 배경도 거의 없으며 스토리라 할 것도 없다시피 하다. 대신 소형출판사의 막내 편집자가 겪는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거의 없는 대사도 거의 출판계에서만 쓰는 전문 용어이기에, 초반엔 각주만 읽으며 지나간다. 그 자체로 편집자의 소소하지만 피말리는 일상이다. 


책 한 권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편집자의 일, 말그대로 피말린다. 잘 팔릴 것 같은 책 기획, 밤새 작업해도 마감에 맞추기 힘든 일상, 3번이나 꼼꼼히 살펴도 보이지 않던 오자는 꼭 인쇄가 마무리되어 책으로 나와야 보이고, 서점이나 유통업체는 절대 굽히지 않을 고압적인 자세로 자존감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고민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책은 팔리지 않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중쇄 미정>에 나오는 표류출판사보다 더더욱 작은 출판사에서 온갖 잡일부터 시작해 대형 진행까지 도맡아 한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3교'를 볼 시간도, 저자 관리나 서점 관리를 할 시간도, 오자 하나에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자문도 할 시간이 없다. 그렇지만 공통적인 게 있다면, '팔리지 않는 책'에 대한 고민은 항상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책 팔아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는 씁쓸하고 충격적인 깨달음


만화에 나오는 표류출판사는 지난 한 해 '중쇄'를 찍은 책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중쇄를 찍는다는 건 비로소 '본전 치기'를 했다는 뜻(중쇄를 찍으면서도 돈이 들기에 완전한 본전은 한참 멀었지만). 초판 1쇄를 찍을 때 총제작비에 맞춰 부수를 산정하기 때문인데, 사실 99%의 출판사들이 중쇄 찍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시간이 갈수록 초반 부수가 적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2000부를 찍으면 많이 찍은 거라고 봐야할 정도이다. 그 수치는 앞으로 점점 더 작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제는 중쇄를 찍어도 본전이 아닌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소형출판사의 앞날에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일까. 


표류출판사의 편집장은 참으로 멋지다. 아니면 의지가 박약하거나 내려놓았거나. 주인공인 막내 편집자에게 조언하길, '천 권만 팔리는 책도 만들어야 해. 만 권이 팔리는 책의 독자는 천 권만 팔리는 책을 안 볼 테니까. 우리는 그런 독자들이 책을 보게 해야 할 의무가 있어.' 혹자에겐 자본주의 시대에 적자만 늘어나는 소형출판사 편집장이 늘어놓는 궤변이자 자기 위안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공감이 가는 건 사실이다. 


자력으론 절대적으로 만 권 팔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애초에 천 권만 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젠 '책 팔아 돈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깨달음, 책을 펴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는 사명감밖에 안 남았다는 깨달음. 이 쓸씁하고 충격적인 깨달음을 만화는 담담하게 전한다. 심지어 아기자기까지 하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출판이란 무엇인가


매일 매순간에 편집자의 일에 대한 자괴감이 따라온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뒤따른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사명감으로도 지탱할 수 없을 때가 올 텐데. 표류출판사의 사장처럼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 텐데. 그때 회사 식구들은? 내 가족들은? 우리 출판계는? 독자는?


경력이 조금 쌓인 지금은 덜하지만, 혼자 끙끙대며 밤새 두려움에 떨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초판 부수를 만 단위로 고민하는 출판사의 이야기인 <중쇄를 찍자!>는 이런 나의 고민과 두려움에 절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줄 수 없었다. 반면 <중쇄 미정>은 비록 고민과 두려움을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오게 했지만 상당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심지어 강 건너 일본에서도 하는구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열심히 책을 만들고 어떻게든 팔아보겠다고 이것저것 해보는 수밖에. 하지만 그건 모든 출판사에서 나보다 훨씬 열심히 치열하게 하고 있을 일이다. 그러니 어쩌면 '버틴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지 모른다. 지극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의 일이니. 그저 '나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게 맞는 말 같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이다. 요즘 들어 책에 관한 책이나 출판사에 관한 책, 편집자에 관한 책에 전보다 많아진 것도 그 일환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망의 표출이 아닌가. '저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창'에 불과한 편집자, 책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편집자의 이야기를 말이다. 여기까지 왔다. 아니,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에 여기까지 온 게 당연할지 모른다. 


이 책은 '소형출판사'의 편집자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소형출판사의 '편집자' 이야기이기도 하다. 출판사 관계자는 물론, 일반 독자분들도 한번 보시면 좋을 듯하다. 이 책 또한 작디작은 출판사에서 홀로 옮기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영업하고, 펴낸 이가 작업한 책이니만큼, 보는 것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은근 재밌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표지 ⓒ문학동네



삼십오 년째 폐지 속에서 살아가는 한탸. 폐지압축공인 그는 지하실에서 수많은 폐지에 둘러싸여 압축기 한 대와 씨름하며 고독하게 일한다. 엄청난 양의 교양을 뜻하지 않게 쌓아가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힘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신다. 덕분에 그는 매일매일 머릿속으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고 그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구하고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건 곧 행복이다. 


그는 5년 후 압축기 한 대와 함께 은퇴해 집으로 가져와 하루에 한 꾸러미씩만 꾸릴 생각을 하고 있다. 그 한 꾸러미가 한 점의 예술작품이 되기를, 그 안에 그의 젊은 시절 품었던 모든 환상과 지식, 삼십오 년간 배운 것들을 모조리 담을 생각이다. 참으로 멋진 계획! 그 때문에 온갖 수모와 비정상적인 일의 연속을 버틸 수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고독 속에서 일하는 한 남자 한탸를 그린 짧은 소설이다. 그곳엔 오직 그와 압축기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폐지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은 너무 시끄럽다. 폐지들, 그 중에 있는 '진정한 책'이 선사하는 이야기들이 한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한탸는 매일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위대한 일'을 하는 '하찮아 보이는' 사람


한탸가 매일 같이 행하는 건 '파괴 행위',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숭배하기 마지않는 것들을 파괴하는 행위. 그는 그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그 아름다움은 한탸의 앎이 전제되어 있다. 진정한 책들의 위대함을 알면서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처지. 한탸에겐 인생을 건 싸움이다. 


책의 위대함을 안 이상 파괴만 할 순 없다. 그는 2톤이나 되는 양의 책들을 집으로 가져 왔고, 매일 같이 몰래 책을 빼돌려 가치를 알아주는 이에게 팔아넘긴다. 그렇게 그는 책들을 최대한 구출하려 한다. 책으로 구현되어 있는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지키려는 행위와 다름 없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한탸가 대변하는 이들은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꼭 책과 같은 인간의 정신과 문화의 상징과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우리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꼭 필요한 일을 어딘가에서 하고 있는 분들. TV에서 꾸준히 알려지고 있지만, 그들을 '희귀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책이 떠나는 여정의 마지막은 독자의 손이어야 할 테지만, 사실 폐지가 되어 종이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소설은 그와 같은 또 다른 책의 종착점을 보여주면서, 그곳에서 '위대한' 일을 하는 '하찮아 보이는' 사람을 조명한다. 


인간을 위해,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뒤로 하는 아이러니


어느 날, 한탸는 부브니에 엄청난 크기의 수압 압축기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고는 직접 찾아가본다. 그는 일전에 느껴본 적 없는 충격을 받는다. 그에겐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서적을 발견하는 그 순간이 축제나 다름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매력에 마음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책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가다가 으스러진 후 커다란 용기 속으로 밀려들어가 파괴되었다. 


아무도 책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 아무도 책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최후의 순간에 지킬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걸 의미한다. 반면 전에 없이 월등한 능력의 압축기는 현대 사회가 갖는 더할 나위 없는 효율적 일처리를 의미한다. 인간을 위해,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뒤로 하는 아이러니. 


더불어 한탸를 비롯해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그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사고 방식이 달라졌고, 일 방식이 달라졌다. 새 인간, 새 방식, 새 시대! 한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새 시대에 맞게 그도 오로지 일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책은 거들떠도 안 보고 파괴 행위에 몰입할 것인가? 아니면 도태되어 밀려나 '쓸모 없는' 인간이 될 것인가?


그가 하는 일은 생각에 따라 방식에 따라 인간에 따라 정녕 위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가 하는 일은 '파괴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문제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탸와 같은 일종의 의무를 반드시 지녀야 하는가? 이다. 아무도 강요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세상은 그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위대한' 한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인간성,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가? 


도처에 '사라져가는 것' '사라진 것'들이 많다. 거기엔 어김 없이 우리를 우리이게 한 기억들이 있다. 골목길, 구멍가게, 동네서점, 손편지, LP와 CD 등. 그것들이 사라지고 난 후 대체한 것들은 하나 같이 비인간적인 것들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구시대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생각일 수 있다. 결국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인데 말이다. 


좋다, 한 발 양보해 적어도 한탸의 위대한 생각을 발현하는 폐지압축공이 사라지는 건 비인간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인간성 상실로의 길. 한탸가 아니고서 다른 누군가가 그와 같은 생각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한다는 걸 바랄 수는 없다. 그 지점이 한탸와 함께 사라질 인간성에 대한 안타까운 부분이다. 


인간을 위한다는 건 '진보'를 의미할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 이보다 더 좋은 말도 찾기 힘들다. 나 또한 일면 진보를 옹호하고 외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퇴보적 진보도 존재하지 않을까. 소설에서 한탸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부분인데, 일면을 위해 진보적 길을 택하지만 그 길이 일면 퇴보적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시대적 사명을 뒤로한 채 진보적 보수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한탸의 생각이 발현된 폐지압축공이 사라져선 안 된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가. 인간성 상실로의 필연적 길을 목도함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직시하고서도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소설은 말한다. 한탸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끝까지 지니고 있던 인간성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말이다. 우린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아니 발견해야 한다. 그가 지녔던 인간성을, 그 아름다움을, 그 강인한 믿음을.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2007년 모를 사람이 없을 유명한 사진 잡지 <라이프>가 폐간되었다. '신문 및 광고시장의 침체'가 이유였다. 즉,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의 범람으로 잡지를 구독하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광고 수익도 하락하여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 아직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지 않은 당시에도, 인터넷 때문에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70년 역사의 <라이프>가 폐간한 것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2010년 이후는 어떨까. 





얼마 전, 영국의 유명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전격적으로 종이 신문 폐간을 결정했다고 한다. 온라인으로만 운영을 한다고. 한때 40만 명의 구독자를 자랑했지만, 5만 명으로 떨어졌고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한다. 잘 나갔던 만큼 고꾸라지는 건 한순간이고, 그만큼 여력은 더 없을 것이다. 자그만치 30년 역사의 신문이었다. 다른 매체들이라고 다를까. 


우리나라로 머리를 돌려보자. 그 중에서도 출판사로. 지난 4월 22일자 한국일보 기사 '새 도서정가제발 출판 '빅뱅'... 대형 업체가 흔들린다'를 보면, 대형 출판사들의 매출이 그야말로 곤두박질친 것으로 나왔다. 새 도서정가제로 인한 결과라고 하는데, 근 10년 간은 매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외쳐댈 정도로 출판이 내리막길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거기에 새 도서정가제로 구간을 구입량이 현저히 떨어져, 사실 구간 스테디셀러로 먹고사는 전통적 대형 출판사들의 매출이 급감한 것이다. 


문제는 새 도서정가제때문에 대형 출판사들의 매출이 급감하고 출판업계가 이대로 주저앉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종이 매체가 폐간하고, 종이책으로 주된 수익을 창출하는 출판사의 매출이 급감하는 데에 목을 매고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의 경우 온라인판으로 이미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수요의 방향과 방법이 달라진 것 뿐이다. 반면, 우리나라 출판사의 경우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같은 출판 매체이지만, 종이책으로도 전자책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수요의 방향과 방법이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인디펜던트>처럼 종이 대신 인터넷으로 읽는 게 아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으로 옮겨 갔다는 것.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 범람으로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지만, 반대로 정보 범람으로 인해 제대로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엄선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지혜의 집합체인 책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읽기'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볼 때 책을 읽든 인터넷을 보든 똑같은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읽기' 대신 '보기'로 콘텐츠 소비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이다. 블로그의 시대가 지나고 인스타그램, 유투브의 시대가 온 것이다. 


영상 매체를 접하며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건, 활자 매체를 접하며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제작 기술과 능력이 알맞게 갖춰졌고, 수요는 원래 존재하고 있었으며, 유통까지 실행 가능하게 되었으니, 빅뱅과도 같은 변화가 당연히 일어날 것이었다. 그때가 지금이다. 


이제와서 종이책을 대체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인터넷 기반으로만 찾으면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답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니다. 중요한 건 영상 매체에 대항할 수 있는 콘텐츠의 개발이다. 사람들이 '읽기'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게 답이고, 그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그걸 모르는 것 같다. 


종이냐 인터넷이냐 하는 분쟁이 나무라면 읽기냐 보기냐, 활자냐 영상이냐 하는 분쟁은 숲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나무도 보되 숲도 보는 안목을 기르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지고자 한다. '바보야, 문제는 읽기야'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