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CJ 엔터테인먼트



문학이든 영화든 어떤 작품의 질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나름대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 콘텐츠 내적으로는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하고, 콘텐츠 외적으로는 '해석의 무한함' 즉, 시간과 장소,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먼저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보는 재미, 듣는 재미, 생각하는 재미에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재미와 감동, 이 둘 중에 어느 하나에 치중되면 밋밋해지기 쉽다. 물론 극단을 추구해 일종의 예술로 승화시킨다면 달라지겠지만, 여전히 나의 판단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석의 무한함은 재미와 감동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가 서로의 선결과제는 아닌 것이다. 이 둘 중에서는 하나만 추구해도 충분하다. 해석이 무한한 콘텐츠는 두고두고 보고 생각할 수 있다. 유행을 타지 않아 시일이 지나도 그때그때 다른 빛을 낸다. 재해석되고 리메이크돼 불명의 명작이 될 공산이 크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극적인 장면도 특별한 줄거리도 없지만, '고도'의 무한한 해석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출간된 지 6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재해석되고 있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단순히 외양만 보자면 화려한 색감이 더해진 무협영화에 불과하지만, 영화의 배경과 캐릭터들의 행동을 조합해 생각하면 상당히 복잡하고 큰 덩어리의 해석이 가능하다. 나의 기준으로 보자면, 좋은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살인마 안톤 시거는 사람을 살리는 산소통을 사람을 죽이는 데 쓴다.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개봉 당시부터 수많은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고, 6년 여가 지난 지금도 활발히 해석되고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우연히 2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얻게 된 모스. 이를 쫓는 살인마 시거. 이 둘을 쫓게 된 보안관 벨. 그리고 모스의 부인과 사적으로 시거를 쫓는 해결사. 결국 모스와 모스의 부인, 해결사는 시거에게 살해당하고, 시거는 큰 사고에도 유유히 살아남았다. 벨은 항상 한 발 늦게 현장에 도착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처럼 너무나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수많은 해석들이 난무하는 건,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의 난해함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살인마 안톤 시거. 영화는 그가 감옥에 끌려갔다가 부보안관을 목 졸라 죽이면서 시작된다. 이후 그는 사람을 살리는 산소통을 사람을 죽이는 살인 무기로 

둔갑 시켜 가지고 다닌다. 그러며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던 중에 어느 주유소에 들어가 늙은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주인이 시거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시거는 이 말을 참을 수 없었다. 동전을 던질 테니 고르라고 말한다. 늙은 주인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골랐고 맞췄다.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운명은 자신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인가. 


모스는 사냥을 나왔다가 우연히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200만 달러도 목격한다. 모스는 이 돈을 가지고 도망간다. 그런데! 현장에 살아있었던 한 사람이 목말라 하던 걸 잊지 못하고 물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그때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시거에게 쫓기게 되고 본격적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한다. 모스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니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부인을 피신시킨다.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지려 하는 것인가? 그를 안톤 시거라는 참혹한 운명의 그림자가 쫓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모스는 우연히 200만 달러를 거머쥐었고, 덕분에 살만자에 쫓겨서 죽고 만다. ⓒ CJ 엔터테인먼트



보안관 벨은 늙었다. 대신 그는 경험과 학식이 풍부하다. 한 발 늦어 현장에 도착하지만, 정황을 정확히 판단해 시거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쩌랴. 파악만 할 뿐 해결할 수는 없다. 너무나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한 벨은 은퇴를 결심하고, 이미 은퇴한 엘리스를 찾아간다. 그가 하는 말 또한 운명에 관해서이다. 


"세월은 막을 수 없는 거야. 너를 기다려주지 않을 거고. 그게 바로 '허무'야."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인을 사는 시거, 정해진 운명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발악해보는 모스, 운명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벨. 그들은 무력한 인간들일 뿐이다. 


시거는 모스의 부인을 죽이면서, 운명론의 결정타를 먹인다. 내가 너를 죽여야 하는 정해진 운명에 거역할 길은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매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에서 선 하나도 지울 수 없어. 당신 뜻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는 없지. 인생의 길은 쉽게 바뀌지 않아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더더욱 없지. 당신이 가야한 길은 처음부터 정해졌어."


그리고 시거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우연에 기인했다고도 할 수 있고,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사건에 어떠한 억울함도 보이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자리에 그가 있었을 뿐이다. 그는 유유히 갈 길을 간다. 운명이 정해준 길을 따라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뛰어난 학식과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이지만, 항상 한 발 늦는 보안관 벨. ⓒ CJ 엔터테인먼트



여전히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굳이 나만의 해석을 하면 이렇다. 이 영화에 강력히 흐르고 있는 '운명론'적 기조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유독 노인들이 많이 나온다. 벨과 앨리스, 모스의 장모, 시거에게 죽임을 당하는 노인들까지. 이들은 운명론에 깊이 천착하지 않는다. 시거처럼 철저히 운명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고, 모스처럼 이에 반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방관할 뿐이다. 즉 이 제목은 '운명을 방관하는 자를 위한 삶은 없다'라고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많은 해석이 뒤따르고 있는 영화이기에 가능한 나만의 해석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물음표와 느낌표를 안겨줬다. 우연이나 운명론을 믿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타이밍 좋게 우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사건·사고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믿게 됐다. '해석의 무한함 =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고정관념이 상당히 깨지게 됐다. 과연 '난해함'으로 무장한 작품의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좋은 작품으로 가는 확실한 길인가?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고만 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석'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베스트셀러? 오랜 세월 살아남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평론가가 만장일치로 손을 들어준, 상 많이 받은 작품? 그 기준이 어쩌면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무엇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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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미저리>


영화 <미저리> ⓒ 콜롬비아 픽쳐스



아서 코난 도일은 1893년 <셜록 홈즈의 회상록> 최종장인 '마지막 사건'을 통해 셜록 홈즈를 폭포 밑으로 떨어뜨려 죽인다. 아서 코난 도일은 이로써 1887년 <주홍색 연구>부터 시작된 '셜록 홈즈' 시리즈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대중소설가에서 진정한 문학가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하지만 셜록 홈즈는 더 이상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팬들의 입장에서 셜록 홈즈는 살아 움직이는 존재였고, 그의 죽음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처럼 팬들의 반대가 계속되었고,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캐릭터가 아닌 소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10 여 년 만에 셜록 홈즈를 살려냈다.


열렬한 미치광이 팬과의 극적 조우


여기서 눈길이 가는 건 셜록 홈즈의 죽음에 대한 팬들의 반응. 영화 <미저리>는 이런 팬의 반응이 극으로 달한 모습을 중심으로 극을 끌고 나간다. '미저리'라는 여주인공을 출현 시킨 미저리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는 작가 폴 쉘던(제임스 칸 분)은 미저리의 죽음으로 시리즈를 완결 짓고 순수문학가로의 전환을 모색하려 한다. 그러며 작품을 짓기 위해 산속 호텔로 향한다. 하지만 갑자기 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벼랑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 그런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다가온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를 도와준 건 그의 열렬한 팬을 자청하는 간호사 출신 애니 윌키스(케시 베이츠 분). 그녀는 산속 산장에서 폴을 열심히 간호한다. 그러면서 팬의 입장에서 숭배하는 작가의 미발간 작품을 제일 먼저 보고 싶은 마음에서 미저리 시리즈 완결편을 보게 된다. 매일같이 조금씩 읽고 감상을 전해주는 애니. 찬양의 찬양을 거듭한다. 하지만 어느 날, 미저리의 죽음을 알게 된 애니는 폴에게 엄청난 분노를 표출한다. 그녀에게 미저리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영화 <미저리>의 한 장면. ⓒ 콜롬비아 픽쳐스



"당신, 이 나쁜 인간. 이럴 수가 있어? 그녀를 죽여선 안돼. 미저리 채스틴은 죽으면 안 돼. 난 미저리를 원해! 당신이 그녀를 죽였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당신은 늙고 더러운 거짓말쟁이야."


이 영화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의 <미저리>(1987년)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따랐고, 큰 예산을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건 영화를 감상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단 한 가지만 봐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바로 애니 윌키스를 연기한 '케시 베이츠'의 연기이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또 극진히 보살피는 천사 같은 연기와 그것이 배신 당했다고 느꼈을 때 나오는 극도의 분노와 광기의 연기, 한 사람한테서 이처럼 양 극단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공포 스릴러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유명 작가


이제 영화는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는 폴이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는 모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애니는 미저리가 죽는 완결편 원고를 폴이 직접 불태우게 한 다음, 미저리가 죽지 않는 원고를 집필하게 강요한다. 책상, 의자, 타자기, 종이 등을 직접 가져다 주고 몇 날 며칠이고 앉아서 쓰게 한 것이다. 폴은 살기 위해서 써야 했다. 



영화 <미저리>의 한 장면. ⓒ 콜롬비아 픽쳐스



"저질 원고를 태웠으니 이제 좋은 작품을 써야죠. 최고의 소설을 새로 쓰는 거예요. 돌아온 미저리. 

그녀를 죽게 한 건 진심이 아니었잖아요. 날 위해 써 줘요. 난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이 세상 모두가 날 부러워할 걸요?"


한편 폴의 저작권 대리인은 폴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이 일을 늙은 보안관이 맞게 되는데, 의외로 명석해서 범위를 점점 좁혀간다. 이 부분에서 강하게 생각나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이 영화에서도 늙은 보안관 한 명이 명석하게 범위를 좁혀 간다. 하지만 그는 항상 한 발자국 느리다. 결국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미저리>에서도 늙은 보안관은 사건 해결의 끝자락에서 실패하고 만다. <노인을 위한...>에서는 이를 운명론에 입각해 해석한다. 과연 <미저리>에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한편 폴과 애니는 나름 좋은(?) 시간을 보낸다. 다만 이것은 폴이 일부러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애니로 하여금 방심하게 해 놓고 탈출의 기회를 엿보려 한 것이다. 그러던 중 폴은 애니의 과거를 알게 된다. 그녀는 정신병자로 간호사 시절 몇 명의 유아를 죽게끔 만들었다. 기어코 폴은 최후의 수단을 이용해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늙은 보안관은 애니의 산장에서 폴의 기척을 듣게 된다. 과연 폴은 탈출에 성공하게 될까?


이 영화를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


이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분위기를 통해 공포스릴러로 감상하며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게 제일 무난한 방법이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열렬한 팬의 죽음의 협박으로 살기 위해 산장에 갇혀 글을 쓰는, 두 다리를 못 쓰는 유명한 작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도 언제 돌변할 지 모르는 미치광이의 극진한 보살핌 아래서. 



영화 <미저리>의 한 장면. ⓒ 콜롬비아 픽쳐스



또 다른 면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작가와 독자, 그리고 작품의 관계이다. 작품의 저작권은 엄연히 작가에게 있다. 작가가 마음대로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아무도 그의 작품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결국 독자에게 맞춰서 써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 스티븐 킹은 작가의 이런 고민을 소설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부러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 없애버리는 장면도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애니의 입김 아래서 완성된 돌아온 미저리가 이례적으로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그려진다. 


무섭게 그려낸 공포 스릴러가 아닌, 정말 재밌게 그려낸 공포 스릴러라 말할 수 있겠다. 이 길지 않은 러닝 타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많지만 결코 중구난방이지 않다. 거의 모든 장면 장면들이 명장면이며, 스토리 라인과 배경이 간결해서 지루할 만 하지만 외려 그것을 장점으로 승화 시킨다. 긴장감을 배가 시키는 데에는 오히려 간결하게 집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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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에일리언 2>



영화 <에일리언 2> 포스터 ⓒ20세기 폭스


영화계에 오래된 격언이 있다. '본편 만한 속편은 없다'라는 말로, '구관이 명관이다'  '형만한 아우 없다'와 일맥상통하는 말이겠다. 그만큼 속편은 전편을 능가하기는커녕 따라가기도 벅차다. 이는 전편이 흥행이나 완성도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나타날 때가 종종 있다. 얼핏 생각나는 영화들이 <대부 2>, <테미네이터 2>, <람보 2>, <캡틴 아메리카 2> 등이다. 이들 영화는 어김없이 전편에 비해 월등한 흥행 성적과 급이 다르다고까지 할 수 있는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위대한 속편'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만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여기 '위대한 속편' 리스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위의 리스트 중에서 <테미네이터2>의 감독이기도 한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 2>이다. 전편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1>도 SF의 위대한 전설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속편은 그것을 능가하는 완벽한 영화라 칭할 수 있겠다. <에일리언 2>는 <에일리언 1>이 가진 장점을 모두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으며, 그밖에 다른 면들에서도 완벽함을 자랑한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 여기에 있다!


전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은 57년이라는 충격적인 시간 동안 우주를 표류하다 아주 운 좋게 우주구조선에 의해 구출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들이닥친 건 편안한 삶이 아니다. 그녀는 딸이 2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57년 전에 있었던 에일리언과의 사투로 인한 우주선 자폭 사고 때문에 청문회를 통해 향해사 자격이 박탈 당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 회사는 그녀가 과거 에일리언과의 악연이 시작된 그곳 LV-426 행성을 이민자들을 통해 식민지화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6~70세대가 가 있다는 것. 리플리는 조만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 올 거라는 직감이 든다. 아니다 다를까 그곳과의 교신이 끊겨 회사에서는 해병대를 투입하게 되고 리플리에게 고문을 맡긴다. 리플리는 결단코 거절하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에일리언 악몽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그곳으로 떠난다. 



영화 <에일리언 2>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영화는 에일리언과의 조우를 위한 단계를 막힘없이 진행한다. 스토리 상으로 초반부터 우연에 우연이 계속되는 경향이 있지만, 세부적 스토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장르 특성 상 큰 차질이 있지는 않다. 에일리언과의 조우, 과정, 끝을 어떻게 보여줄 것 인지가 이 영화의 제 1 목적이다. 즉, 전편에서 부각되었던 '공포'(괴물)에 밀리터리를 입힌 '액션'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액션과 특수효과는 30 여 년 전인 당시에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보여 주고 있고, 거기에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배신',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조롱'도 눈에 띈다. 


리플리와 에일리언 간의 질긴 악연, 그 끝은?


식민지 행성에 도착한 일행.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에일리언도 보이지 않는다. 실험용 쥐와 이민자의 유일한 생존자인 여자아이 뉴트만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던 중 개인 데이터 전송기로 사람들이 있는 위치를 찾아낸다.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향한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에일리언의 숙주였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해병대원들은 거의 전멸의 위기에 처한다. 무능력한 중위 대신 리플리의 결단으로 몇 명 만 겨우 살았을 뿐이다. 이들은 셔틀선을 호출하지만, 이 또한 에일리언의 기습에 당한다. 결국 이들은 식민지 마을(?)로 돌아와 에일리언의 습격에 대비한다. 


그렇지만 결국 방어선이 뚫리고 대원들은 차례로 죽음을 당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뉴트가 잡혀가게 된다. 이에 리플리는 인조 인간 비숍에게 구조선 요청을 맡기고 자신은 중무장을 한 채 뉴트를 구하기 위해 되돌아간다. 과연 그녀는 뉴트를 구할 수 있을까? 그녀와 에일리언 간의 질긴 악연은 어떻게 끝마치게 될까?



영화 <에일리언 2>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SF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메시지


영화는 발단-전개-위기-절정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간다. 리플리가 돌아오자 식민지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곳이 하필 에일리언이 있었던 곳이고 리플리는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리플리의 계속되는 경고를 무시하는 해병대 중위와 자신을 최고라 지칭하며 방심을 밥 먹듯 하는 해병대원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에일리언의 생포를 원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기에 내모는 버크. 그리고 리플리로 하여금 또 다른 절정의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뉴트의 위기 등. 


"내가 최고야. 내가 최고라고. 리플리, 걱정 마요. 우리 해병대가 당신을 보호해 줄게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스토리라고 해도, 이 정도의 라인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외려 화려한 액션과 긴박한 긴장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게 일부러 무대를 만들어 줬다는 느낌이 들게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곳곳에 녹아 있는 조롱은 은근한 재미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무능하고 결단력 없는 상관, 최고라는 자만심과 무시무시한 무기에만 둘러싸여 있을 뿐인 해병대, 회사(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 목숨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직원. 



영화 <에일리언 2>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반면 뉴트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목숨을 던져 보살피려는 리플리의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피가 난무하고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곳에서, 누구보다 약했던 리플리의 여전사로의 변신은 오로지 뉴트를 되찾기 위해서인 것이다. SF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면서 중구난방의 느낌이 전혀 없다시피 한 이 영화에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고 싶다. 혹여 누군가에게 이 영화가 단순히 괴물 영화 또는 SF 액션 영화로 자리하고 있다면,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접해보는 게 어떨까 하고 권하고 싶다. 후회 없는 2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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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소림축구>



<소림축구> ⓒ미라맥스



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 여 앞둔 2001년 언제 즈음. 친구가 기가 막힌 영화가 있다며 꼭 보라고 말한다. 자기는 족히 7번은 계속 돌려 봤다고 한다. 글쎄.. 그 어떤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어떻게 그리 많이 돌려 볼 수 있겠는가? 아무렴 당시에는 영화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바, 기회를 져버리고 말았다. 주성치를 영접할 기회를 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때, 우연히 TV를 통해 보게 되었다. 예전에 친구가 꼭 보라고 소개해 준 그 영화를. 제목은 참으로 정감이 가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딱히 믿음은 안 간다. <소림축구>가 뭔가 말인가. 이 영화를 <쿵푸허슬>을 보고 난 후 접하게 되었는데, 흔히 <쿵푸허슬>을 주성치의 정점이라고 말하고 <소림축구>는 주성치의 한계라고 말한다. 또 <소림축구>는 헛점이 많은 영화라고도 한다. 그런데 재미는 따라갈 수 있는 영화가 없는 것 같다. 


직설의 미덕을 잘 아는 영화 <소림축구>


상업 영화의 전형을 따르는 <소림축구>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소림사 무술로 축구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왕년의 '황금의 오른발'로 불린 스타 플레이어 명봉(오맹달 분)은 승부 조작의 마수에 걸려 들어 지금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그리고 과거 명봉의 실력을 시기해 승부 조작을 계획했고 거기에 다리까지 못쓰게 손을 쓴 강웅은 명봉을 끝까지 궁지로 몰아넣는다. 


명봉은 정처 없이 떠돌던 중 쿵푸를 세상에 알린다는 목적으로 헛소리를 해 대는 씽씽(주성치 분)과 마주친다. 쿵푸에 전혀 관심이 없던 그는 씽씽의 강철 다리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치지만, 오래 있지 않아 다시 만나 그의 진가를 확인한다. 그리고 쿵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씽씽을 돌려 세워 쿵푸로 축구를 하자는 제안을 한다. 이에 씽씽은 자신의 소림사 사제들 5명을 모으기 위해 하나하나 찾아가서 설득하고자 한다. 



<소림축구>의 한 장면. ⓒ미라맥스



밑도 끝도 없이 쿵푸로 축구를 하자는 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런데 이는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 다는 걸 알 수 있다.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알아 차리기 어렵지 않다. 비록 씽씽은 청소부 일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진짜 꿈이 있는 것이다. 그건 바로 명봉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쿵푸를 세상에 알리기'. 그 방법이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소림 쿵푸를 세계에서 발전시키려면 포장을 해야 돼요. 쿵푸에 노래와 춤을 결합하면 어떨까요?"

"언제쯤 정신 차릴래? 화장실 청소부 자리가 비었어. 허망한 꿈 꾸지 말라고."

"사람에게 꿈이 없으면 돼지와 다를 게 뭐 있어요?"

"꿈은 무슨 얼어 죽을 꿈..."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민망하기까지 한 이 대화는 씽씽이 사형 한 명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이다. 꿈을 향한 맹목적인 전진. 진정한 열정을 가진 그의 눈을 보면 잠시 혹 하겠지만, 누구라도 허망한 꿈이라 무시하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하기 쉽다. 아니, 그보다 요즘에는 꿈을 가지라는, 책임지지 못할 말로 포장을 하곤 한다. 그러기에 이 영화의 직설은 미덕이다. 


직설의 미덕은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방식이다. 혹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장치를 단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답이 정해지지 않았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예 없는 영화가 좋지 않은 영화이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돌려서 말하지 않은 영화가 좋지 않은 영화는 아닌 것이다. 


주성치 코미디의 완벽한 계보


씽씽과 명봉이 하나씩 찾아가는 사제들은 모두 과거는 잊어버린 채 현실을 살기에도 바쁘고 힘들다. 직장이 없고, 직장에서 짤릴 위험에 처해 있고, 직장에 안주해 있고, 직장에 만족을 못하며,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과거 소림사 시절의 사진을 보고 동시에 모여 축구 훈련을 시작한다. 이렇게 '소림 축구단'은 상금 100만 달러의 슈퍼컵 우승을 향한다.


명봉은 특훈을 시키고 연습 게임을 치르게 한다. 상대는 동네 양아치들. 그들은 각종 연장을 이용하고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팬다. 이는 명봉이 축구가 장난이 아닌 전쟁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테스트였다. 일방적으로 맞을 뿐 공도 만져 보지 못한 소림 축구단은 명봉의 일갈을 듣고 각성한다. 진정한 소림축구를 보여 주는 것이다. 소림 쿵푸를 이용한 축구!


"이건 테스트야! 이걸 통과 못하면 축구 얘긴 다신 꺼내지 마!"

"축구를 하려고 온 거지 전쟁하러 온 게 아니에요!"

"축구는 전쟁이야, 넌 더 배워야 해! 


드디어 대회가 열리고 어김없이 승승장구해 파죽지세로 결승전에 오르는 소림 축구단. 그들의 앞을 가로 막는 건 역시 어김없이 강웅이다. 그는 미국에서 들여온 신약을 투여한 선수들, 돈으로 매수한 주심과 부심과 축구협회와 축구위원회를 이용해 압박한다. 그들이 집중 공략하는 대상은 골키퍼. 결국 부상으로 골키퍼가 두 명이나 교체 되는데... 과연 이들의 운명은?



<소림축구>의 한 장면. ⓒ미라맥스



이 영화에는 유일하다시피 한 여자가 등장한다. 태극권을 이용해 만두 반죽을 하는 아매(조미 분). 그녀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듯한 흔적이 있어 자신감이 없다. 씽씽은 그녀에게 계속 예쁘다고 말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데, 직설적인 것은 그렇다 치고 어떤 특별한 연결 고리도 이유도 없이 예쁘다고 말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게 조금 걸리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스토리 전개나 배경에 있어 헛점이 많이 노출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덮어주고도 남는 게 바로 '재미'이다. 무표정하게 재미를 유도하고, 반복되는 상황 설정으로 재미를 강요하다시피 한다. 그리고 얼핏 이해하지 못할 애드리브성 행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보여주는 소림축구는 어디 서도 접하지 못할 즐거움을 선사한다. B급 무비성 장면들을 너무 과도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10년도 넘게 이어지는 주성치 코미디의 완벽한 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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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조지 클루니 주연의 <인 디 에어>


영화 <인 디 에어> ⓒCJ 엔터테인먼트



그 수식어도 참으로 생소하고 낯설고 무시무시한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분). 그는 일 년에 322일 동안 지구에서 달보다 먼 거리(최소 38만km 이상)를 출장다닌다. 미국 전역을 다니며 차마 직원들을 해고하지 못하는 고용주를 대신해 좋은 말로 해고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예상했다시피, 해고된 이들에게 온갖 욕을 다 먹고 다니는 그다. 직업적 특성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간관계에 있어 형편없는 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 위에서 보내다 보니, 집은 물론이고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없다. 스치듯 지나가는 단편적인 관계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던 그에게 두 여자가 나타난다. 한 명은 그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인 알렉스. 그녀는 그 못지않게 출장을 많이 다니고 항공 마일리지에 광분하고 단편적이고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한다. 그녀와의 연애 역시 그저 그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한편, 빙햄이 다니는 해고 전문 회사에 신입사원 나탈리가 혜성같이 등장한다. 그녀는 코넬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사장에게 기막힌 해고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른바 '온라인 해고 시스템'. 화상 연결을 이용해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해고를 해버리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해고 전문가의 감정 소비와 출장비 등을 어마어마하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계속되는 해고는 이 회사에 큰 기회이고, 그 수요를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떠돌이 인생의 속사정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여러 용어 중에 '인스턴트'라는 말이 있다. '즉석에서 간편하게 이루어짐' '지금 한 순간'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도 성장기에 탄생한 기존의 자본주의와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통칭하는 '소비사회'의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소비사회에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내보인다. 또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소비를 위해 간편함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간편함은 소비를 넘어 인간 사회 전체에 퍼져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한 인간을 규정하기까지 하게 된다. 


빙햄은 바로 그 인스턴트로 규정할 수 있는 인물이다. 어찌 되었든 결국 혼자다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 그런 그가 두 여성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차츰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또한 예상할 수 있듯이, '인간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신입사원 나탈리 또한 마찬가지다. 빙햄보다 더욱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빙햄과 함께 하는 '직접 대면 해고 체험'을 통해 피해고자들의 좌절과 눈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빙햄이 인간적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은 그의 여동생 결혼식을 통해서이다. 그는 여자친구 알렉스에게 여동생 결혼식에 동행해줄 것을 청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의 모교에 같이 몰래 들어가 옛 추억을 상기하며, 그야말로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 하루 전 날에 결혼을 망설이는 여동생의 남편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로 위로해줘 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한다.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있는 듯하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그렇지만 영화가 이렇게 풀려나가면 재미 없지 않을까? 그(빙햄)는 분명 엄청난 업보(해고당한 사람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를 온 몸으로 받는)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녀(나탈리)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이건 그 업보의 제대로 된 맺음이 되지 않는 것 같단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위기가 찾아온다. 


계속되는 단절의 연속 안에서


그 위기란 다름아니라 계속되는 '단절'이다. 그들은 본래 단절 속에서 살아오다가 차츰 '관계'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나 중국 등은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관계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고 되는 일도 안 되게 할 수 있다. 반면에 관계를 천시여기는 풍조도 있다. 정당한 실력이나 노력 없이 관계만으로 살아가려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비즈니스에서건 사적에서건 적당한 관계는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먼저 당하게 된 이는 나탈리이다. 그녀는 자신이 제시했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극을 맛본다. 남자친구가 문자메시지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을 수도 있지만, 인간 세계에서 제일 기본적인 부분에서 맛본 이 단절의 아픔을 통해 그녀의 시각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빙햄에게는 두 가지 일이 연달아 터진다. 하나는 여자친구 알렉스, 다른 하나는 신입사원 나탈리이다. 주지했다시피 그는 점차 변화하게 되고, 그 변화는 가족에게로 갔다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그는 출장 복귀 후 강의 시간 때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보고 싶다는 일념 하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단숨에 달려간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건 단란한 가정이 있는 알렉스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단절의 충격을 뒤로 하고 복귀해 보니 나탈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피해고자의 자살 소식을 듣고 바로 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빙햄에게 연속된 단절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빙햄은 이미 변화해 있었다. 나탈리가 다른 직장을 알아보며 면접을 볼 때 빙햄의 추천서가 큰 힘이 되주었다. 또한 그는 가정과 친구, 지인, 동료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영화


이 영화는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영화라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2010년 아카데미에서 6개 부문에 노이네이트되었고, 골든 글로브와 LA 비평가 협회 등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각색상과 각본상을 휩쓸었다. 그만큼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다. 환상적인 오프닝부터 시선을 잡아 끌더니 시종일관 지루할 틈 없이 끌고가는 그 힘이 감탄스럽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들추는 시나리오에 예기치 못한 웃음들이 뒤따른다. 개그 코드의 웃음이 아니라 독특함에서 오는 웃음이다. 겉으로는 날카로움을 유지하는지 몰라도 가끔 어리버리하고 여린 모습을 보이는 나탈리. 그런 나탈리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빙햄. 그리고 여러 대화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어이없는 대답과 유머 등. 


마지막으로 하나. 초반과 중반과 종반에 걸쳐 계속 나오는 피해고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피해고자들이 울먹이며 하는 말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이렇게 해고를 당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그때 빙햄은 진실된 목소리를 답해준다. 


그 가족들을 위해 절대로 주저앉지 말라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릴 테니,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본래 꿈을 향해 정진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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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머니볼>


영화 <머니볼> ⓒ소니



2014년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어느새 끝나가고 있다. 9월이면 가을 야구에 출전할 수 있는 팀들이 정해질 것이다. 이 와중에 눈에 띄는 팀이 있다. 지난 2009년부터 (2011년 6위를 제외한)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는 '한화'이다. 한화 팬이 아닌 이도 응원하게 된다는 비참한 행로의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자본은 절대적이다. 많은 자본은 좋은 선수와 감독, 코치진을 영입하고 좋은 시설을 확보하며 좋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곧바로 좋은 성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한화라는 팀은 절대 자본이 부족하지 않다. 이는 자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한편 자본을 뛰어넘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영화 <머니볼>은 자본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그 무엇으로 자본이 상대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팀을 일으켜 세워야 했던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의 실화를 다루었다. 만년 최하위에 그치고 마는 오클랜드를 2000년 이후 매년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강팀으로 변모 시킨 그 무엇은 무엇이었을까?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은 현역 시절 유망주로만 전전하다가 오클랜드에서 현역을 은퇴한 후 단장에 임명된다. 그가 단장이 되었을 때 오클랜드는 만년 최하위에 그치고 마는 팀이었다. 그는 구단주를 찾아가 돈을 요구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우리 팀에는 돈이 없다' 였다. 그는 돈이 없는 구단의 성적을 올려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코치진 및 스카우터들과의 회의는 실망 그 자체였다. 돈이 없어 좋은 선수를 떠나보내고 후임 건을 물색하는 회의랍시고 그들이 하는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덩치도 크고 빠르고 재능도 있고 인물도 좋아. 턱도 멋지지. 스윙도 근사하잖아. 방망이 끝이 공에 맞는 순간 그 경쾌한 파열음이 온 구장에 울려 퍼지지. 타석에 400번만 서면 좋아질 거야. 훈련이 필요하지만 눈 여겨 볼만해. 애인이 못생겼어. 자신감이 없다는 증거지. 아냐, 딱 보기만 해도 카리스마가 물씬 풍긴다고. 인물도 훤하고."


이따위 수다를 듣고 팀의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빌리 빈은 직접 나선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도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 브랜드의 영입이었다. 그는 야구에 경제학을 접목시키기 시작한다. 모든 걸 하나의 숫자로 요약해 그 수치를 오클랜드의 방식으로 해석, 선수의 진짜 가치를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기존의 코치진이 회의를 통해서 다양한 이유로 선수들을 평가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로지 실력에 관한 통계 만으로 평가했다.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소니



영화는 지금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다. 모두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 뻔한 이 시스템을 이용해 좋은 성적을 보여줘야 한다. 반드시 처음에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 단장 빌리 빈이 나서서 팀을 바로 잡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어떻게 새로 찾아온 이 위기를 넘기는 지를 감상하는 게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오래된 스카우터가 그의 혁신적인 전략을 반대하며 떠나는 장면에서 남긴 말은 퍽 인상적이다.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메이저리그는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혁신'이라는 '허황' 아래에서 전략을 짜왔지만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야구가 숫자나 과학이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린 일반인들에겐 없는 우리만의 경험과 직관이 있어. 쟨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우린 야구계에 29년을 몸담아왔어. 쟤 말을 들어선 안 돼. 야구인들만 아는 설명 못 할 뭔가가 있다고! 자넬 포함한 우리 스카우터들이 150년 간 해온 걸 못 믿나?"


팀은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하고 해체되며 빌리 빈도 단장에서 해고되어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추방 당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모든 것을 건 승부가 팀을 믿을 수 없는 연승으로 이끌 것인가? 이 영화는 많은 감동을 준다는 것만 일러둔다.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소니



그리고 그 감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는 역시 빌리 빈이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파격적인 대우의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는 성인이 아니다. 세계 프로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팀의 단장인 것이다. 영화의 극후반부는 그의 고민으로 채워진다. 그때 그의 마음을 흔드는 딸의 노랫소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인생은 미로, 사랑은 수수께끼. 어디로 갈까? 떠나려 해봤지만 혼자서 자신 없어. 왜 그럴까? 난 길을 잃은 작은 소녀. 두려움을 남에게 보이긴 싫어. 인생은 너무 어려워. 그래서 난 우울해. 이제 걱정은 떨쳐버릴래. 그냥 쇼를 즐길 거야. 늦춰야만 해. 멈춰야만 해. 안 그러면 심장이 터질 테니까.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려고 애쓰는 건 너무 힘들어. 나는 사랑에 목마른 바보. 언제나 사랑을 원하고 또 원하지."


이 영화는 야구 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경영에 관한 영화이며 휴먼 드라마이다.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빌리 빈의 혁신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실화와 거의 동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를 그린 <소셜 네트워크>가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머니볼>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스포츠'라는 소재 때문일 것이다. 그건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동일하다. 스포츠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고 결정적으로 스포츠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할 수 있다. 실패와 성공, 오르막과 내리막, 땀과 눈물, 환호와 야유.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짜릿함. <머니볼>은 이런 스포츠의 면면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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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굿 윌 헌팅>



<굿 윌 헌팅> ⓒ미라맥스 필름



옛말에 '한 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 명의 진정한 친구, 그리고 백 권의 좋은 책'을 말할 수 있으면 성공한 삶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인생에서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란 정말 힘든 법이다. 그런데 이 옛말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부모의 존재이다. 부모를 '두 명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의 교육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 


부모라는 최고의 스승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아니 오히려 부모에게서 어마어마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었다면 어떤 인격이 형성될 것인가? 그에게는 진정한 스승과 친구, 그리고 사랑이 누구보다도 필요하다. 영화 <굿 윌 헌팅>은 진정한 스승과 친구, 그리고 사랑을 만난 어느 불운한 천재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미국 보스턴 남부 빈민촌, 그리고 MIT.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둘이 한 청년에 의해 엮어진다.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은 남부 빈민촌에서 살며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게시판에 적어 놓은 수학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 버린다. 사실 그 문제는 수학과 학생들 중에서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였다. 수학과는 발칵 뒤집히고 램보 교수는 그 학생을 찾아낸다. 


헌팅이 천재라는 걸 알게 된 램보는 그를 본격적으로 키워보려 하지만, 헌팅은 그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사고를 치는 건 둘째 치고 너무나 어려운 문제를 너무나 쉽게 풀어버리는 게 문제였다. 헌팅에게는 그 어려운 문제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보다 그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게 먼저였다. 램보는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숀 맥과이어 교수(로빈 윌리엄스 분)를 찾아간다. 


헌팅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어렸을 적 당한 심한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게 되었다. 그와 비슷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있을 뿐이다. 척키 슐리반(벤 애플렉 분)은 진정한 친구이다.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미라맥스 필름



언젠가부터 스승의 개념이 '멘토'라는 개념으로 대체된 것 같다. 스승은 아무래도 다가가기 힘들고 일방적인 가르침의 개념이 있는 반면, 멘토는 상대적으로 동등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개념보다 상담이나 조언에 더 힘이 실린다. 천재 헌팅은 스승보다는 멘토가 필요했던 것 같고, 램보는 헌팅에게 멘토가 될 수 없었다. 과연 맥과이어 교수는 헌팅에게 멘토가 될 수 있을까?


헌팅은 맥과이어를 램보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맹공을 퍼붓는다. 상담 시간에서 자신의 얘기를 해보라는 맥과이어의 말에 천재적 지식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상담은 아무런 진척도 없이 끝나기 마련이고 서로 지쳐간다. 


"너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면서 내 그림을 통해 내 삶을 망쳐버렸어. 너는 고아야. 만약 내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었기 때문에, 고아로서 겪었던 너의 어려움과 고아인 네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떠들면 어떻겠느냐?... 개인적으로, 나는 네가 떠들어 대는 얘기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 그런 얘기들은 엿 같은 책만 들추면 다 나오는 얘기들이니까. 그런 것으로부터는 '너'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어... 나는 '너'를 알고 싶어. 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바로 그런 얘기들이 내 마음을 확 잡아 끌지. 그러나 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아."


맥과이어의 진정한 마음을 알게 된 헌팅은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맥과이어라면 모든 걸 이해해줄 거라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을 인도해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천재 헌팅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결여된 것은 엄청 많았다. 하필 그것들이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라는 것. 사랑, 우정, 믿음, 신의...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미라맥스 필름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내가 너희 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 때야. 안녕이라는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적어도 그 순간 만은 행복할 거야."


헌팅의 진정한 친구 슐리반의 대사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친구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의 덕목이라는 걸 안다고 해도 실행에 옮기는 게 쉬운 일인가? 한편 맥과이어 교수는 헌팅과의 인생 상담을 마무리 지으며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는다.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말이다. 


"그때 말을 걸지 않았으면 난 평생 후회했을 거다. 낸시와의 18년 결혼 생활도, 아내가 아파서 6년이나 일을 관뒀던 것도, 또 병상을 지켰던 2년도 난 후회하지 않아. 그깟 시합 못 본 건 아무 것도 아냐, 후회하지 않아."


헌팅은 사랑, 우정, 믿음, 신의와 같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인생 필수품들을 얻을 수 있을까? 또는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헌팅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자칫 이런 류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오글거림(?)'이 전혀 없다. 진지한 말은 진부하지 않은 명언이 되고,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내게서도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난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떠나보내고 6개월 만에 '로빈 윌리엄스'를 떠나보냈다.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영화 안팎에서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줄 것만 같았던 그가 말이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을 지 몰라도 <익스펜더블>의 오래된 영웅들처럼 언제나 건재함을 과시할 것만 같았는데,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그가 안녕이라는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 버린 지금, 그 순간 만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진짜' 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일까? 안타깝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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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 ⓒ워너브라더스



중학교 음악 수업. 음악 선생님께서 뜬금없이 영화를 보여주신다. 음악 수업 시간에 영화를 보여주는 건 절대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을듯. 아마도 음악 관련된 다큐멘터리 정도가 아닐까? 수업 시간이 한 시간 정도이니 이번 시간과 다음 시간, 그리고 더 시간을 들여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보여준다고 하신다.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일단 다큐멘터리는 아니고 그냥 영화이다. 분위기는 우중충하고 배경은 중세 이후의 서양 같아 보인다. 다 죽어가는 할아버지가 나오고 신부가 그를 면회한다. 그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옛일을 회상한다. 그러기 전에! 그는 능숙한 솜씨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부에게 물어본다. 이 멜로디를 아시는가? 모릅니다. 그럼 이건? 흠... 몰라요. 그래요? 그렇다면 이건! 아...아... 이건 알아요! 앞의 두 개는 내가 작곡한 거라오. 그리고 당신이 아는 그건 이제부터 내가 얘기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가 작곡한 것이라오.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영화 <아마데우스>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4년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이후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음악 관련 영화 중에서 최고로 남아 있다. 15년 전 중학교 음악 수업 시간 때 아무런 사전 정보나 기대 없이 보게 된 이 영화는 나에게는 최고의 영화로 남아 있다. 음악 장르 영화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정말로 좋은 영화이며 완벽한 영화이다. 스토리, 캐릭터, 배경. 그리고 음악까지. 


영화를 이끌어 가는 화자이자 초반의 다 죽어가는 할아버지는 살리에르(머레이 에이브러햄 분)이다. 그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자질,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그 누구보다 노력해 궁중음악장의 위치까지 오른다. 천재는 아니지만 노력 하나로 그 자리에까지 오른 그의 모습은 인간적으로 끌린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에게 찾아오는 위기. 인간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신의 대리인 천재 작곡가 모짜르트(톰 헐스 분)의 출현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전 인류적 천재. 지금까지 인류사에 수많은 방면에서 수많은 천재가 출현했지만 그만큼 유명하며 압도적인 천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모짜르트의 출현으로 살리에르의 위치는 흔들리며 결정적으로 왕의 관심이 그에게로 쏠린다. 요즘 말로 모짜르트는 살리에르에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고나 할까.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런데 살리에르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건, 모짜르트가 음악 외적으로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순수하다는 점 때문이다.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세상물정을 모르며 음악적 재능을 음악 외적으로 끌어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살리에르가 보기엔 그런 모짜르트가 굉장히 오만방자해 보이고, 오히려 가식적으로 보였다. 살리에르는 모짜르트를 증오하고, 신을 증오한다. 


"나는 그때부터 신을 믿지 않았소. 당신의 도구로 그런 오만방자한 녀석을 선택하시고선 나에겐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능력만 줬기 때문입니다. 그건 부당하며 매정해. 맹세코 당신(신)을 매장시키겠소."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매력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음악 영화다운 출중한 음악이다. 이 영화의 OST는 유명한 지휘자인 '네빌 마리너'의 지휘로 완성되었는데,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명반으로 뽑힐 정도이다. 모짜르트에 대한 가장 적확한 해석과 연주를 영화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캐릭터 충돌은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매력 두 번째 요소이다. 신의 대리인이자 신이 낳은 최고의 천재 모짜르트.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가졌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 수가 없다. 반면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재능 살리에르.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짜르트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괴롭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살리에르에게 모짜르트는 그 반대이다. 살리에르는 모짜르트는 미워하되 그의 음악을 미워할 수 없었다. 살리에르는 모짜르트의 음악을 사랑했다. 그의 음악을 갖고 싶었고 계획을 짠다. 그는 어떻게 모짜르트의 음악을 뺏을 것인가? 그의 재능과 반비례하는 가난을 이용하면 될 터였다. 평범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었다. 


"난 평범한 이들의 대변인이라오."


이 영화는 처음 볼 때 영화를 보고, 두 번째는 음악을 듣고, 세 번째는 살리에르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그 이후에는? 계속 곱씹어 보며 우리네 인생을 되돌아 봄이 좋을 것이다. 영화도 인생이라 말하며 음악도 인생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인생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리 인생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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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황후화>


중국은 무협, 역사 영화를 매년 발표해왔다. 1980~90년대에의 무협 영화는 엄연히 ‘홍콩’이 지배해왔고, 홍콩이 반환된 뒤에는 중국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무협 영화들을 탄생시킨다. 홍콩 무협 영화가 스토리와 배우의 액션 위주에 조악한 장치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중국 무협 영화는 역사와 조우하며 ‘대작(大作)’의 면모를 풍겼다. 엄청난 물량 공세 앞에 다른 것이 끼어들 수 없었다.


그 뿌리는 장예모 감독의 2002년 작 <영웅>이라 할 수 있다. 그 전 해인 2001년에 나온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 굉장히 절제되고 섬세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액션 신으로 기존의 무협 영화 스타일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 수준을 월등히 끌어올렸다면, <영웅>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 중국 무협 영화의 정통성 면에서나 스토리, 영화적 측면에서조차 <와호장룡>에 더 높은 평가를 주고 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지나 이런 스타일은 거의 사장(死藏)되어버리다시피 하였다. 반면 <영웅>의 스타일은 무협역사 장르로 개발되어 중국 무협 영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장예모 감독은 2004년에 <인연>으로 자신 만의 스타일을 공고히 한다. 이어 2005년에 첸카이거 감독이 <무극>, 2006년에 펑샤오강 감독이 <야연>을 선보이며 물량공세 무협역사 영화의 힘을 과시했다. 그리고 2006년에 장예모 감독은 450억 원의 <황후花>로 찾아온다. 1000억 원은 우습게 여기는 할리우드에 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당시까지 중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액수였다. 물론 여기에는 주윤발, 공리, 주걸륜 등 초호화 배우들의 몸값이 상당 부분 차지할 것이다. 


초호화 배우와 명장의 만남... 역대 중국 영화 최대 제작비까지


영화 <황후花>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황후花>는 돈을 들인 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때는 당나라 후기, 3년간의 국경 수비를 뒤로 하고 황제(주윤발 분)는 둘째 아들 원걸(주걸륜 분)을 데리고 귀환한다. 이에 황후(공리 분)는 황금빛 찬란한 황제 귀환식으로 맞이하려 한다. 하지만 황제는 급작스러운 귀환에도 모자라 급작스러운 귀환식 취소를 단행한다. 뭔지 모를 위화감과 불안감이 팽배하는 황궁.


한편, 황후는 3년 사이에 첫째 아들 원상(루예 분)과 정을 쌓았다. 외로워서일까. 아니면 황제와의 사이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황제가 황실 주치의에게 명해 황후에게 계속 독약을 먹게 해 죽이려는 한다는 사실에서,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점 미쳐가는 황후와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원걸. 사실 원걸 만이 그녀의 진짜 아들이었다. 다른 두 명의 왕자 원상과 원성에게는 죽은 생모가 있었다.


어느 날, 황후는 밀정에게 시켜 독약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밀정의 사정과 정체를 알게 된다. 그 밀정의 정체는 원상과 원성의 생모였다. 그녀는 황제에게 배신당해 일가가 몰살당하고 자신만 겨우 살아났던 것이다. 이를 덮으려고 그녀를 죽이려는 황제와 그녀를 살리려는 황후.


결국 그녀는 죽고 말지만, 죽기 전에 황제 가족이 모여 있는 9월 9일 중양절 전야 황궁에서 모든 사실을 폭로한다. 이 폭로로 원상과 원성 형제는 각각 원성과 황제에게 죽임을 당하고, 원걸은 사전에 준비했던 반란을 시도한다. 금빛 찬란한 갑옷으로 무장한 반란군은 황후가 열성을 다해 장만한 국화꽃 모양의 스카프(?)를 메고 황궁으로 돌진한다.


황제가 보내는 마지막 경고였던 황제의 깃발을 쓰러뜨리는 원걸. 10만 명의 황금빛 갑옷 반란군은 계속 전진한다. 검정빛 갑옷의 황제군은 성(城)과도 같은 엄청난 크기의 방패로 황궁을 막은 후, 빠져나갈 문을 막고 반란군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병사가 활시위를 당긴다. 그 엄청난 기세는 한 순간에 무너진다. 뭔가를 보여줄 것만 같았던 엄청난 대규모 전투신도 속절없이 끝나버리고 만다. 그리고 영화도 곧 끝난다.


<황후花>는 참으로 허무한 영화다. 계속보고 있으면 질릴 정도로 너무나 화려한 배경에 비해, 막장과도 같은 스토리 그리고 너무나 허무한 결말은 실망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장예모 감독은 <영웅>, <연인>으로 이미 색채와 이미지에서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했다. <영웅>에서는 장면마다 달라지는 갖가지 색깔로 인물의 심리를 표현했고, <연인>은 주로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색의 이미지로 영화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물량공세'밖에 안 보이네... 여운 아닌 아쉬움만 남는 영화


영화 <황후花>의 한 장면. 금빛과 검정의 선명한 대비. ⓒ CJ 엔터테인먼트


<황후花>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한편으로 대단했던 당나라의 화려함을 상징하듯이, 모든 걸 황금으로 칠해놓았다. 반면 황제군과 황제의 비밀암살단은 검정 일색이다. 이는 무너져가는 당나라 말기를 상징한다 하겠다. 막장 대서사시의 끝을 장식한 건 황금색이 아니라 검정색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장예모 감독은 이 모든 걸 계획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허무함을 당나라 말기의 국가적 허무함에 치환시키려는 의도인 듯하다. 그 중심엔 황제의 허무함이 있다. 배신을 하여 황제의 자리에 올랐건만 한 시도 편하지 않은 생활. 다시 돌아온 배신의 칼 끝.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아들. 그 어느 것 한 개도 허무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장예모 감독의 패착이다. 허무함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화려함의 극치를 선보이려 함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어떤 깨달음을 얻기 전에 막장 스토리에 매몰되어 버렸다. 막장 스토리와 더불어, 음악과 연기 등 어느 한 곳에서도 명작의 면모를 풍기지 못했다.


전작과 차별화를 꾀하려 했다는 의도가 보이나 분명 장예모 감독의 스타일에 맞지 않았다. 그의 스타일에 분명 거대한 신과 물량공세적인 면이 있지만, 세밀한 스토리와 색채로 표현되는 그만의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특유의 여운이 아닌 아쉬움 가득한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현재 무협역사 장르의 영화는 비슷한 스타일로 계속 나오고 있지만, 장예모 감독은 <황후花>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찍지 않고, 또는 찍지 못하고 있다. 영화 내용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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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워너브라더스


1965. 일리노이주 박람회가 열렸던 때, 남편과 함께 두 남매가 박람회에 가게 된다. 아내는 4일 간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이들이 어서 떠나주기를 바란다. 너무나 단조로운 아이오와 생활. “조용하고 사람들도 참 착하다.” 이게 전부인 삶이다.

 

그녀가 꿈꿨던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아니다. 교사 일을 하다가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그만두었지만 후회가 밀려온다. 남편은 무뚝뚝의 전형이고, 아들은 엄마의 부탁을 잔소리로 들으며, 딸은 제멋대로다.

 

전설적인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1995년 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부인. 잔잔한 일상에 파문이 일어날 시간이다. 그런데 시간은 4일 밖에 없다. 과연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아이오와에 있는 로즈먼 다리를 향하던 중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 분)의 집에 들렀다가, 길을 묻고는 같이 다리로 향한다. 그들은 돌아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는 여자. 꽃을 꺾어주고 은근슬쩍 스킨십을 하는 남자. 농담을 주고 받으며 마음껏 웃는 남과 여. 운명적 사랑에 빠진 남과 여.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중년의 사랑(불륜)을 옹호하게 된다. 


그 어떤 판단이나 도덕이 개입되지 않아요. 그저 그대로...있는 그대로죠. 정말 아름다워요."

 

그녀는 꼭 이성과의 사랑이 아닌, 변화가 필요 했다. 일종의 일탈을 꿈꾸었다고 할까. 다른 세계의 새로운 사람과의 대면으로 설렌 것이다. 그녀는 그와 대화하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같이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 한 잔 하고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블루스도 추고 키스하고 목욕하고 그의 몸을 탐닉한다. 그녀는 그렇게 한 명의 여자가 된 것이다. 그 두려움이 동반된 설렘과 떨림이 싫지 만은 않다. 


모든 곳이 자신의 집처럼 느낀다는 남자의 말. 이것은 내 것이 여자, 이 남자는 내 것. 그런 경계선이 너무 많죠.” “모든 사람이 가족을 이루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미국의 가족 윤리에 불만이에요. 온 나라가 최면에 걸린 것 같아요.” “자신을 속이지 말아요, 프란체스카. 당신은 단순한 여자가 아니에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죄스러움을 느끼는 여자에게 남자는 "괜찮아요.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에요. 자식들에게 숨길 일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둘 간의 확고한 차이가 발견되는 대화가 계속되지만 그 둘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느낀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남자는 떠난다. 하지만 여자는 참지 못하고 새벽에 로즈먼 다리를 찾아가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겨 찾아오게끔 한다. 이후 그들은 4일 간의 여행을 떠난다. 그 둘 만의 여행. 동네에 있으면 어떤 수모를 당할 지 알 수 없다. 

 

초원과 다리... 낯익은 사람들과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기로. 그 하루가 원하는 곳으로 우릴 데려가게 뒀다.”


여자는 전에 없이 여성스러워진다. 그들은 그 몇 일 간의 휴가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의 모든 걸 알고 싶고 자신 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게 남자는 그걸 구속으로 생각한다. 남자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남자에게 있어 그 여자는 지나 가는 사람에 불과할지 모른다. 


“당신이 떠나고 나면 난 평생 여기 앉아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겠죠. 당신은 또 어디 가서 멋진 친구들과 얘길 하고 있겠죠. 내 얘기까지."


그들은 함께 떠날 것을 결심한다. 남자도 여자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여자는 여행용 짐을 싸고 그 날 밤으로 바로 떠날 준비를 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저녁 식사. 결국 여자는 같이 갈 수 없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삶보다 남편과 아이들, 가족의 삶이 더 중요하다. 그녀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선택한다. 그와 함께 가면 평생 죄를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와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된다. 그를 사랑하기에 보낸다.


다음 날 돌아온 가족들. 아내이자 엄마로 돌아온 여자. 집안일을 하며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낸다. 어느 비 오는 날,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하게 된다. 도중에 남자를 보게 된 여자. 남자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비를 맞고 서 있는 남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여자. 당장이라도 자동차 문을 열고 그에게 가고 싶지만 결국 가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다시 만나지 못할 길을 가고, 평생 추억 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훗날 늙었을 때 남편이 말한다. 


"당신 꿈이 있었다는 거 알아. 그걸 못 이뤄줘서 미안해. 당신을 정말 사랑해."


남편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숨겨온 옛 일을. 안정과 모험. 정착과 방랑.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 확실한 느낌은 일생에 딱 한 번 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느낌을 애써 외면한 채 살아간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서로를 조금만 더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보듬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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