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여러 수작 단편을 쏟아내고는 멋진 장편 데뷔작 <우리들>을 들고온 윤가은 감독이다. ⓒ엣나인필름



두 명이서 가위바위보를 해 함께 하고 싶은 한 명씩을 데려와 편을 가르는 방법을 택한 어느 체육 시간 피구 게임, 선이는 어느 쪽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최후의 일인이 되었다. 왕따는 아닌 듯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외톨이인 듯하다. 키도 크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는 보라는 그런 선이를 이용해 먹기도 한다. 


보라의 부탁으로 방학식 날에 홀로 남아 반 전체를 청소하는 선이, 전학을 왔다는 지아를 우연히 마주친다. 보라의 치졸한 속임수 때문에 다리 위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선이, 다리를 지나던 지아와 우연히 마주친다. 둘은 금새 친해지고 선이는 보라를 주려던 수제팔찌를 지아에게 준다. 둘은 생애 다시 없을 것만 같은 방학 한때를 보낸다. 


지아의 부모님은 지아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이혼을 하셨다. 그 때문인지 선이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살가운 시간을 갖는 모습을 본 후 왠지 모를 적대감이 생기는 지아다. 그래도 그건 금새 풀었다. 하지만 지아가 영어학원을 다니고, 그곳에 다른 누구도 아닌 보라가 있었고, 개학을 하며 지아가 정식으로 전학을 오게 되며, 선이와 지아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다. 지아는 선이를 본 척도 않고 보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후 선이와 지아와 보라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계속되는데...


어른들이 무시했던, 아이들의 무시무시한 세상


누구나 지나왔을 어린 시절, 여러모로 '무시무시'했던 그때를 어린이 되고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엣나인필름



2016년 최고의 수작 중 하나라 할 만한 영화 <우리들>. <손님> <콩나물> 등으로 단편영화계에 신기원을 이룩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독립예술영화계에선 거물로 통할 만한 '엣나인필름'이 배급을 맡아 온전한 '독립영화'라고 할 순 없을 것 같지만, 대신 '예술영화'로 포지션하여 다양성영화의 훌륭한 계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윤 감독은 앞선 두 대표 단편에서 어른이 되기 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우리들>로 그 재능과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무시하곤 한다. 한없이 동물에 가까운 본성을 지닌, 아직 이성적 존재 인간이 덜 된, 생각 따윈 없고 본능을 따를 뿐인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찌들대로 찌들고 죄질대로 진 어른 세상의 해법이 무지의 순수한 아이들에게 있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우린 이 영화에서 아이들의 치명적 관계 유착과 되물림, 권력에의 의지와 빌붙음을 목격할 수 있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세상, 그중에서도 지독하기 그지 없는 막장 인간들의 관계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을 말이다. 차라리 어른들의 세상이 더 유치한 것 같은 이유는, 그만큼 아이들의 세상을 무시했다는 방증이겠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불러온다. 특히 영화에서 선이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안기는 선이의 남동생, 어리디어린 윤이는 너무나도 귀여워 '보는 맛'이 날 정도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무시한 것처럼 선이는 자신보다 어린 윤이를 무시했다. 영화는 올려다보는 깨달음이 아닌 내려다보는 깨달음이라는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예리하고 섬세하고 긴장감 있게 파고드는 '관계'


영화 <우리들>의 첫 번째 주요 키워드는 '관계'다. ⓒ엣나인필름



'관계'라는 미묘하기 짝이 없는 건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평생을 가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어떤 관계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바르지 못한 것인지, 괜찮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오랫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그나마 괜찮은 관계가 무엇인지 모색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관계의, 관계에 의한, 관계를 위한 것이다. <우리들> 또한, 아니 <우리들>야말로 '관계'를 예리하고 섬세하고 긴장감 있게 파고드는데, 지극히 아이들의 시선과 생각과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메리트가 크게 다가온다. 빈 곳 없이 잘 표현해낸 주인공 아이들의 노력 덕분이겠다. 


2011년 최고작 <파수꾼>이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관계에 대한 천착 때문이다. 다만 <파수꾼>이 '관계'가 주인공에 다름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관계에 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필히 비극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파수꾼>, 반면 희극에의 희망이 있는 <우리들>. 개인적으로 손이 가는 영화는 앞엣것이다. 


생애 다시 없을 한때를 보낸 이들에게 파국이 찾아오는 건 한순간이고 그 이유도 하찮기 그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한 번 틀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 그런데, 그러면 누구랑 노나? 친구가 가장 소중할 때에 말이다. 매일 가장 친한 친구랑 티격태격하며 자주 맞고 다니지만, 그 친구가 아니면 누구랑 노냐는 윤이의 말이 가슴 깊숙히 와 닿는다. 


문제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누군가는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관계가 틀어짐에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동등하게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반드시라고 할 만큼 한 명이 자신을 굽히고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따위의 깨달음을 알 것 같진 않고, 아이들이 그런 깨달음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또 하나의 키워드 '권력'


영화 <우리들>의 두 번째 주요 키워드는 '권력'이다. ⓒ엣나인필름



'관계'와 함께 <우리들>의 중요한 키워드는 '권력'이겠다. 관계가 선이와 지아를 천착하는 거라면, 권력은 보라를 중심으로 역시 선이와 지아를 천착하는 것이겠다. 앞서 주지했듯 보라는 한 마디로 모든 걸 가진 아이다. 그리고 모든 걸 가져야만 하는 아이다. 그녀에게 존재감 없는 외톨이 선이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그럼에도 선이는 보라와 보라가 이끄는 소그룹을 선망한다. 


와중에 방학 중 선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개학해 정식으로 전학을 오게 된 지아, 선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걸 숨기고 거짓말로 점철한 채 영어학원을 다니며 친해진 보라와 함께 한다. 아니, 보라가 지아를 자신의 그룹에 끼워준 것이겠다. 지아가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 중에는, 전 학교에서 왕따였다는 것과 엄마가 영국에 계신다는 것과 영국에 가봤다는 것 등이었다. 


선이는 그 모든 걸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폭로한다. 첩첩산중으로, 보라는 이미 자신의 영원한 공부 1등 자리를 뺏어간 지아와 격렬히 대치 중이었다. 자연스레 보라와 선이가 한패가 되고 지아가 외톨이가 되는 형국으로 권력이동이 실시된다. 관계 못지 않게 권력의 속성이란 게 참으로 하찮고 한순간이다. 그런 중에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킬 요량이 많지 않다. 선이, 지아, 보라 중 누가 가능할까. 


영화에서 선이가 자신과 지아에게 물들여준 봉숭아물, 보라의 매니큐어를 따라한 지아의 매니큐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와 권력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건 선이와 지아가 함께 한 봉숭아물일까, 보라와 보라를 따라한 지아의 매니큐어일까. 나는 '당연히' 권력과 관계를 응원한다. 선이와 지아가 함께 한 봉숭아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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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충분한 논란과 충만한 사랑이 공존하는, 직선적인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20세기폭스코리아



얼마 전 국내 주요 언론들에서 BBC 보도를 인용해 '천사의 손' 논란을 다룬 적이 있다. 천사의 손은 대만의 작은 민간 자선단체로, 성욕을 해결하기 힘든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 마디로, 간호 자격을 갖춘 성 도우미가 장애인의 수음을 도와주는 것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름 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를 풀어야 하며, 장애인의 식사와 배설을 도와주는 것처럼 성욕도 해소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매춘 행위와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고,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매춘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테고, 장애인의 성 욕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존재할 것이다. 무엇보다 '봉사'의 의미로 행해지는 성행위를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다. 


이와 다분히 동일선상에서 대할 순 없겠지만, 비슷한 생각과 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소재를 다루는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가 흥미롭게 눈을 잡아끈다. 소아마비로 인해 얼굴 근육을 제외한 온몸이 자유롭지 못한 중증 장애인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그리고 '치유'하기 위해 섹스 테라피스트와 시간을 가진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1988년 미국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중증 장애인 마크의 총각 딱지 떼기


중증 장애인 마크는 총각 딱지 떼기를 실현코자 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는 것. ⓒ20세기폭스코리아



마크 오브라이언(존 혹스 분)은 얼굴 근육을 제외한 온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6살 때 걸린 소아마비 때문인데, 도우미와 호흡을 도와주는 기계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데, 어느 날 '장애인의 섹스'에 대한 칼럼 제의가 들어 온다. 그러고 보니 38살 평생 섹스는커녕 수음도 해보지 못한 그, 섹스 테라피스트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렇게 셰릴 코헨 그린(헬렌 헌트 분)과 마크 오브라이언은 만남을 갖고, 세션 즉 '훈련'에 들어간다. 


자신의 몸을 느끼고, 서로의 몸을 느낀 후, 수음의 단계를 지나, 삽입의 순간 이후, 절정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마크는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셰릴에 의해서만 단계가 이어진다. 쉽지 않다. 마크는 평생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성에 관한 어떤 행동도 취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칼럼 때문이기는 했지만, 마크는 그토록 원하던 '총각 딱지 떼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편, 마크가 어디에 가서도 쉽게 꺼내지 못할 자신의 속 깊은 얘기를 브렌단 신부(윌리암 H. 머시 분)에게 한다. 고해성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신부가 답해주기엔 맞지 않는 것 같은 성 상담이 대부분이다. 그런 와중, 계속 바뀌는 도우미도 문제다. 자신의 상태를 이해해주는 것 이상으로 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도우미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영화는 마크 오브라이언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관계를 이어간다. 처음엔 '중증 장애인' 마크가 보일 것이다. '저런 상태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궁금증이 가장 먼저 인다. 그러다가 어느새 '마크'가 보인다. 그러며 그와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섹스와 논란을 넘어 사랑과 관계로


영화 포스터를 볼 때는 '섹스'에 방점을, 일반적으로는 '논란'에 방점이 찍힐 수 있겠다. 하지만 그 행간에 위치한 사랑과 관계를 들여다보자. ⓒ20세기폭스코리아



별다를 게 없는 소소한 일상을 그리는 이 영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포스터를 보니, 배급사는 '섹스'에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신부님... 하고 싶은 게 죄가 되나요?'가 메인 카피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선정성에 최대한 포커스를 맞췄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영화가 가지는 다양한 초점 중 가장 빗나간 초점일 것이다. 


'섹스'와 비슷한 관점일 텐데, '논란'에 방점을 찍는 게 이 영화를 보는 극히 일반적인 방법이다. 여기엔 두 층위가 있는데, 장애인의 성 욕구와 섹스 테라피스트의 정체다. 장애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의 기반 위에서 장애인이 가지는 성 욕구는 더욱 생각하기 힘들다. '장애인 따위가 성 욕구를 가지고 있겠어?'와 '장애인이 무슨 성 욕구를 해소해?'가 있겠는데, 여하튼 이미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글의 처음 소개한 장애인 성 도우미 논란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섹스 테라피스트의 정체는 사실 혁명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쓴 60년대에 확립되었다고 한다. 섹스보다 테라피스트 즉 치료와 치유에 방점을 둔 것이다. 단지 그 방법론이 섹스에 있는 것이리라. 이는 본인의 확고하고 당당한 신념이 중요할 듯하다. 


나아가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자,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과 '관계'에 있다. 마크를 아는 사람들이 느끼는 오묘한 감정, 그의 인간적인 면에 끌려 진정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의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셰릴처럼 공적인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마크의 진심어린 마음과 역시 인간적인 매력에 끌린 사람도 있으며 모든 걸 떠나 오로지 마크라는 인간에 끌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의 분신과도 같은 친구와 도우미도 있다. 그들은 모두 '장애인' 마크 때문에 관계를 가졌지만, 모두 '마크'와 함께 하는 게 좋아졌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수정해야 할 것들


이 괜찮은 영화를 보고 우리는 더욱 괜찮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20세기폭스코리아



나는, 아니 우린 이 영화를 보며 '수정'해야 할 게 많다. 무엇보다 꽉 막힌 머리와 무관심한 가슴이다. 장애인도 당연히 성 욕구가 있고 원한다면 그 욕구를 풀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할 수 있지만 안 하거나 못 하는 것과, 할 수 없어 안 하거나 못 하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서, 그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을 논해야 한다. 그 방법에는 봉사 또는 치료가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니, 이해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진부하지만 심플한 명답도 함께.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데, 그들은 단지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섹스를 바라보는 시선과 섹스에 대한 생각의 수정이 가장 중요하고 절실할 수도 있겠다. 비록 전라노출과 사실적인 섹스신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누구보다 추천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청소년들인데,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섹스란 불경하고 더럽고 몰래 숨어 즐기는 게 아니라, 이처럼 성스럽고 황홀하고 지적인 대상이다. 더욱이 몰래 숨기는커녕 당당하게 밝히고 응원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내적으로는 완벽한 캐릭터를 부여한데 대해 완벽하게 부합한 연기를 펼친 배우들이 빛났고, 영화 외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이겨낼 필요가 있는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놓고 풀어낸 점이 빛났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을 삶의 아름다움으로 묶어낸 점이 가장 밝게 빛났다. 그 어떤 인간도, 그 어떤 순간에도,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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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클로저>


오랫동안 벼려온 영화 <클로저>. 머리가 커서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었다. ⓒ㈜퍼스트런



10여 년 전, 친구의 추천으로 로맨스 영화 한 편을 봤다. 그냥저냥 흔한 로맨스가 아니라고, '진짜 사랑'이 뭔지 생각하게 해줄 거라고, 했던 것 같다. 당시 영화에 막 빠지기 시작해 주로 대중적인 영화를 많이 봤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화였다. 당연히 재미는 없었고 결국 기억에 남지 않게 되었다. 다만, 뭔지 모를 찜찜한 여운은 남아 있었다. 


10년 전에는 끝까지 보지 못했었는데 몇 년 전에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도 재밌게 보진 못했던 바, 개인적으로 소설 <위대한 개츠비>와 겹친다. 위대한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위대한 개츠비>를 나는, 10년 넘게 3번에 걸쳐 읽어내지 못하고 2~3년 전쯤 일사천리로 읽었다. 머리가 커야 이해하고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인듯, 영화 <클로저>도 나에겐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재개봉 열풍의 끝자락 얼마전 12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클로저>, 삼수 끝에 비로소 이해하며 분석하며 재미있고 의미있게 볼 수 있었다. 30대는 되어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사랑 이야기 <클로저>는, 사실 사랑을 포함한 인간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기 그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른 각도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얄팍한 인간 관계를 사랑으로 들여다보다


겉으로 보기엔, 별 내용 없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삼류 로맨스 영화인 것 같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일류다. ⓒ㈜퍼스트런



수많은 사람들이 출근하는 런던 도심의 아침, 댄(주드 로 분)과 앨리스(나탈리 포트만 분)는 첫눈에 반한다. 앨리스가 댄에게 던진 한 마디 '안녕, 낯선 사람'은 이 운명적인 우연 또는 우연적인 운명의 상징이자 시작이다. 댄은 소설가가 꿈인 신문사 부고 기자이고, 앨리스는 뉴욕에서 온 스트립댄서다. 


앨리스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로 드디어 데뷔를 한 댄, 책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찾은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 분)에게 강렬하게 대쉬한다. 그런 댄이 싫지만은 않은 듯하지만 앨리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멀리하려 한다. 그러곤 그런 안나를 골탕먹이고자 댄이 음란채팅방에서 안나 행세를 해 오프라인 만남까지 성사한 래리(클라이브 오웬 분)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낯선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연 안나, 댄을 초대한다. 당연히 연인 래리와 댄의 연인 앨리스도 함께 있다. 그럼에도 댄과 안나는 이 전시회를 기점으로 내연 관계로 빠져든다. 이후 안나와 래리는 결혼을 했고 댄과 앨리스는 동거를 시작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결국 이들은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되는데...


지극히 우연히 만나 연인 관계, 결혼 관계로까지 발전한 댄과 앨리스, 안나와 래리. 하지만 그만큼 우연히 만나 내연 관계로 발전한 댄과 안나도 있다. 그렇다고 래리와 앨리스도 완전히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건 아니다. <클로저>는 이처럼 우연과 낯섬으로 점철된 얄팍한 인간 관계를 사랑의 관점으로 들여다보았다. '사랑'은 수단이고 '관계'과 목적이라 하겠다. 


현대판 <졸업>, 영화 <클로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졸업>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50년 전에 내놓았다. 우린 <클로저>에서 <졸업>을 느낄 수 있다. ⓒ㈜퍼스트런



<클로저>는 2014년에 작고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살아생전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이다. 그는 자그마치 50년 전 <졸업>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영화를 데뷔 후 불과 두 번째에 찍어냈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청춘의 일탈과 허무를 세련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한 명작으로, 일반적 로맨스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졸업>에서 두 남녀 벤자민과 엘레인이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명장면을 볼 수 있는데, 그 후 버스에서 보이는 두 남녀의 불안과 허무와 걱정과 허탈함이 뒤섞인 표정에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인간 심리의 정면을 볼 수 있다. 35여 년이 흐른 후 우리는 <클로저>에서 어김없이 순간이 주는 사랑의 허무를 엿볼 수 있다. 


<클로저>는 현대판 <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진짜 사랑'일 거라 생각하고 순간의 선택으로 그 상대에 자신을 내던지는 벤자민. 댄, 앨리스, 안나, 래리는 벤자민의 후예와 다름 없다. 과연 그게 진짜 사랑일까? 많은 세월이 흘러 사랑도 진보해야 할 것 같지만, 이들의 행태를 들여다보면 사랑은 퇴보한 게 분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인간은 '미지(未知)'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가장 알 수 없는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한편, '미지'에게 끌리는 습성도 있다. 호기심의 발동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낯선 사람'에게 끌리는 인간의 천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그러며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남는 게 뭐지? 계속 낯선 사람에게 옮겨다닐 것인가? 


로맨스 영화의 탈을 쓴, 인간 심리와 관계의 명작


이 영화가 명작인 이유는 로맨스와 사랑에 있지 않다. 그걸 수단으로 하는 인간 관계와 심리에 있다. ⓒ㈜퍼스트런



나라고 이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가깝고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며 한없이 머무르고 싶어 하는 습성도, 멀고 낯선 것에 희열을 느끼며 한없이 떠나고 싶어 하는 습성도, 인간은 모두 다 지니고 있다.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고자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없이 흘러가는 물은 무한정의 좋은 점만 가지고 있는가? <클로저>는 그래서 고인 물을 찬성하고 흘러가는 물을 비난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물이 고일 때 썩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러면 흘러가게 놔둬야 할까. 영화는 그 또한 무자비한 거짓만이 판치는 혼란이 있을 거라 말한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다. 영화를 보고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조금 짜증도 난다. 로맨스 영화의 탈을 쓰고 인간 천성의 낱낱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놓고는 그 어느 쪽도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지독한 인간 심리와 관계의 명작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알지 못하겠다. 


<졸업>을 보고 느낀 찜찜함과 내지른 탄성이 <클로저>를 보고도 느껴지고 내질러진다. 내 안에도 이들의 가벼움이 있겠지만, 이들처럼 가볍게 살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영화만을 볼 때 희대의 명작이라 해도 과찬이 아닐 듯하다. 문제는,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욕을 하지 않고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는 보고 싶은 않은 네 주인공이지만, 주기적으로 다시 보고 싶어질 것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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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지니어스>


'편집자'와 '천재 작가'라니, 개인적으로 너무 기대되는 영화 <지니어스>. ⓒ라이크콘텐츠



난 출판편집자다. 주로 소설을 많이 다루었는데, 결코 '잘 나가는' 편집자가 되진 못한다. 내가 만든 책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해 출판사와 저자를 기쁘게 해준 적이 없다. '유능한' 편집자라고 묻는다면,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괜찮은 책조차 되지 않을 형편 없는 원고를, 괜찮은 책으로는 만들어낸 경험이 다수 있으니까. 


그럼 '좋은' 편집자라면? 답하기가 어렵다. 먼저 좋은 편집자가 뭔지 아직 잘 모르니까 말이다. 당장 생각나는 건, 저자의 삶과 나아가 세상까지 옳은 방향으로 바꾸는 원고(책)을 발굴해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게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편집자. 유명한 저자와 함께 하면서도, 무명의 저자를 들여다볼 줄 아는 편집자. 무엇보다 독자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편집자. 


영화 <지니어스>는 20세기 초 미국 뉴욕 굴지의 출판사 스카라이브너스의 유명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 분)의 이야기다. 그는 미국 문학 역사를 수놓은 수많은 문인 중에서도 압도적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책을 편집한 이다. 영화는 그런 그에게 뉴욕 전역의 출판사에서 거절 당한 토마스 울프(주드 로 분)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맥스는 울프의 원고를 읽고는 바로 울프와 계약한다. 


'유명 편집자'의 삶은?


유명한 베테랑 편집자가 우리 시대엔 존재할까? 20세기 초 미국이라면 가능하겠다.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라이크콘텐츠



유명 소설가의 삶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소설가가 있다면 반드시 편집자가 있어야 하는 법, 그런데 '유명 편집자'의 삶은? 아니, 편집자가 애초에 유명해질 수가 있나 싶다. 여기서 '유명'은 출판계 내부가 아닌 대중적으로 그러냐는 말이다. 창작만큼 코디와 편집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이 시기에, 여러 콘텐츠를 통해 편집자가 소개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도 그에 하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열정과 능력은 출중하지만 엄연히 초짜 소설가인 울프를 베테랑 편집자 맥스가 다잡아 나간다. 과한 열정이 불러일으킨, 또는 개인적 스타일일 수도 있는 과도한 수사를 과감히 쳐내 독자들에게 읽힐 만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울프는 그대로 따르고 책은 대박이 난다. 하지만, 맥스의 아내 루이스(로라 리니 분)와 울프의 연인 엘린(니콜 키드먼 분)는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맥스와 울프를 느낀다. 


상당한 분량의 첫 책, 그리고 대성공. 울프는 톨스토이라도 되어볼 심상인지 자그마치 5000매 짜리 두 번째 책의 원고를 들고 나타난다. 이대로는 절대 책으로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한 맥스는, 울프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가멸차고 냉정한 편집을 가한다. 엄청난 시간과 공력이 들더라도 좋은 책이 될 게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더욱 일에 열정을 퍼부으면서 그들 곁에 있는 여인들은, 특히 엘린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울프의 도를 넘은 과도한 열정은 파멸적 비극을 예견하고, 냉정하지만 사려깊은 맥스의 마음과 자주 충돌하며 불안감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맥스가 울프를 자신에게서 빼앗아 갔다고 느끼는 엘린은 도무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는다. 한편, 맥스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충실하다. 그렇지만, 그런 그도 가족과는 가깝지 못한다. 


조화롭기 힘든 조합의 기막힌 조


냉철하고 대쪽 같은 베테랑 편집자와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초보 소설가의 조합은, 설렘을 주기에 충분하다. ⓒ라이크콘텐츠



맥스의 대사를 통해 형상화되는 진정한 편집자의 자세는 대체로 정석적이다. '나는 이 글이 좋아. 하지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 독자들이 읽었을 때 좋아야 해.' '편집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뒤에서 조력할 뿐이야.' 등. 반면 울프는 열정적인 예술가의 표본이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쓰지 못하면 더 이상 소설가가 아니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모를 거야.' 등. 


맥스와 울프의 조합은 현실과 이상의 기막힌 조화를 상기시킨다. 물과 불, 진보와 보수만큼 조화롭기 힘든 조합 아닌가. 그래서 우린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일종의 '완벽함'을 보고 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편집자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걸 뒤로 한 채 남은 작가와 편집자, 편집자와 작가.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영화는 아쉽게도 이 둘의 행복한 시절만을 그리진 않는다. 그들은 각자 혼자가 아니었기에, 그 대상들이 감수해야 할 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울프의 연인 엘린이 그 표상인 바, 그러나 영화에 긴장을 조성하기 위함으로만 껴넣은 인물인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녀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영화의 만듦새까지 좋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천착한 영화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꼭 들어가야 할 인물이자 표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편집자와 소설가의 비즈니스적 측면이 강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사랑에 죽고 못 사는 감정적이고 퍼스널한 관계를 대비시켰으니 핀트가 잘 맞지 않는 게 당연하겠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행해야 할 스텝


'편집자란 이래야 한다'고 말하며, 동시에 '출판사란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라이크콘텐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주인공이 황홀해 마지 않는 시대 1920년대 프랑스 파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당대를 넘어 역사상 길이 남을 예술가들을 본다.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거투루드 스타인, 피카소까지. 보는 관객 또한 황홀해 마지 않았을 면면들. 우린 <지니어스>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29년 미국 뉴욕이라면, 대공황의 한가운데일 터. 모든 출판사들이 경제, 사회 서적을 앞다투어 펴냈을 것이다. 즉, 돈이 될 만한 책 말이다. 문학은 뒷전일 수밖에 없을 테고, 울프 같은 초짜에 과도한 열정을 책에 고스란히 옮기는 예술가 나부랭이는 안중에도 없었을 터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또 한 번의 방점을 찍는다. 일종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고 할까. 


유명 작가들의 책을 낸 편집자와 출판사는 부지기수다. 돈 뿐만 아니라 그게 편집자와 출판사의 명망을 높이는 일이라고 믿기도 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진정 명망을 높이는 일은 아무도 찾지 않고 거들떠도 보지 않지만 분명 보석인 게 분명한 이를 발굴해 제대로 키워내는 것일 테다. 거기엔 말 못할 정도의 노력이 들 것이다. 그렇지만,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 아닌가?


안주와 모험은, 하나가 시작되면 하나가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니다. 동시에 하는 게 불가능할지라도 서로를 보고 의식하며 발 맞추어 나가야 하는 동지다. 이 영화는 여러 관계에서 우리가 행해야 할 스텝을 일깨우고 알려준다. 베테랑 편집자 맥스는 천재 소설가 울프를 끌어올린 천재 편집자가 아닌, 그릇이 넓은 관계의 천재였던 것이다. 모든 편집자의 롤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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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서게 한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에겐 이 작품이 정녕 '백만 불짜리 아기' 같지 않을까. ⓒ㈜노바미디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다. 연출과 주연은 물론 제작과 음악까지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아카데미가 두 번째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겼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힐러리 스웽크에게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모건 프리먼에게 첫 번째(!) 남우조연상을 안겼다는 것도 굉장한 이야기거리다.

 

이외에도 뜬금없을 수 있는 복싱 소재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굉장히 '전형적인' 라인의 '여자' 복싱이라는 점이 보기도 전에 분위기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또한 영화가 나오기도 전부터 큰 논란을 일으킨 '안락사' 논란, 가족은 더 이상 '천륜'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일면에 대한 논란은 이 영화가 뚫고 나가야 할 큰 난관이었다. 

 

논란거리로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방법은 하나,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선사한다. 복싱일까? 죽음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선사하는 놀랍도록 진심 어리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복싱 영화, 아니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

 

영화는 다분히 복싱 영화의 정석을 따른다. 그렇지만 우린 이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굉장한 영화 기술이다. ⓒ㈜노바미디어



한때 잘 나갔던 지혈사라던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딸과 의절한 상태에서 돈도 안 되는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8년째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빅 윌리, 프랭키한테서 모든 것을 배우고는 잘 나가는 매니저에게로 떠난다. 프랭키가 그를 너무 아껴 절대 챔피언전에 내보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가 된 그에게 매기 피츠제랄드(힐러리 스웽크 분)라는 서른 넘은 여자가 매일 같이 찾아와 운동하면서 자기를 키워주라고 조른다. 거들떠도 보지 않는 프랭키, 하지만 그녀의 진심에 두 손 두 발 들고 만다.

 

훈련만 시켜주고 매니저는 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매니저를 소개시켜 주지만, 그의 행태를 보고 직접 매니저로 나선다. 그러곤 그녀에게 '모쿠슈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출중한 실력을 뽐내는 매기, 유럽을 휩쓸고 미국에 돌아와 천하에 이름을 떨친다. 급기야 현 챔피언과 맞붙는 챔피언전을 진행한다. 빅 윌리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매기...

 

복싱 영화는 누구나 생각할 만한 전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복싱 실력만큼 피와 땀으로 이뤄낸 게 없다는 걸 차용해,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사각 링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각 링에는 오직 적과 나 뿐이라는 점을 차용해, 사각 링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일하게 기댈 사람인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을 보여주며, 복싱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는 굳이 말하자면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매니저와 선수의 만남이 참으로 극적이고, 선수의 훈련보다 매니저와 선수의 일상이 더 매력적이며, 선수의 파격적인 승전보보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매니저와 선수의 모습이 더 감동적이다. 이쯤 되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더 이상 복싱 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겠다.

 

복싱으로 맺어진 가족, 영화는 똑똑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부재->복싱으로 맺어진 인연->가족이 된 그들. ⓒ㈜노바미디어


우정일까, 사랑일까, 복잡한 감정일까. 그전에 들여다봐야 할 게 프랭키와 매기의 가족 관계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듯한 프랭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체육관과 선수들이다. 매기는 어떨까. 그녀는 가장이다. 아버지를 여의고는 그녀가 아픈 엄마, 여동생과 남동생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문제인 것 같다. 필사적인 매기의 노력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기를 더 못 부려먹어서 안달이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프랭키와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그보다 못한 가족 관계를 영위하고 있는 그녀다. 그렇게 프랭키와 매기는 가족에 대한 뼛속 깊은 그리움을 안고 살아 간다.

 

그러면서 프랭키는 선수를 키우고 싶어 하고 매기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하니, 이보다 완벽한 궁합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선수와 매니저가 되기로 한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서로는 이미 '가족'이 되어 있다. 영화는 그 과정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결정적 사건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복싱'의 과정으로 보여줄 뿐이다.

 

참으로 똑똑한 영화 문법이다. 그러면 왜 하필 복싱이냐고 할 수 있다. 그건, 복싱이 가지는 특수성이 작용한다. 선수와 매니저의 그 어떤 스포츠보다 끈끈한 관계도 관계지만, 선수가 느끼는 최고의 희열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한 명의 승리자에게 열광한다.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올라선 '외로운' 사각 링에서 이긴 승리자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물론 또 다른 문법이 있지만.

 

영화가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 당신은 어떤 의견인가?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천륜이 아닌 인연이라 말한다. 또한 안락사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묻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노바미디어



눈물 콧물을 모조리 쏟아내는 감동을 유발하는 드라마를 신파라고 한다. 신파 자체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신파가 너무나 활개를 치기에 부담감을 넘어 심적으로 멀리하게 된 게 사실이다. 신파는 사람을 무장해제시켜 제대로 된 관람을 방해할 때도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도 분명 신파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 요소를 극대화 시키면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신파적 눈물과 콧물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질질 끌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밖으로 폭발하는 감동 대신 안으로 삭히는 절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아 또 느껴보고 싶은 그런 감동이다. 삭막하지 않은, 슬프지만 행복한 감동이다. 사막, 가뭄을 연상시키는 마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활짝 웃을 때나 한 줄기 눈물을 흘릴 때 느낄 수 있는 충격과 의외의 감동이기도 하다.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기에 그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이다.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현실에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할 순 없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닌 인간이 선택해 만든 인연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게 사랑의 차원을 넘어선 '도덕과 윤리'의 차원일 때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도 어딘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도덕과 윤리의 잣대만을 들이대 그대로만 따를 수 있다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절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이 영화가 은근히 또는 파격적으로 드러내며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들은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계속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이에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 생전 처음 보는 이를 '백만 불짜리 아기'라고 말하며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의 한 축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영화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나는 상당한 동의의 표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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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한대를 본 남자>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천재' 영화. 이번에는 어떤 천재를 그려낼까? 그에게서 천재말고 어떤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을까? ⓒ판씨네마(주)



천재에 관한 영화를 꽤 봐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아마데우스>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 관한 영화이고, 주기적으로 다시 보는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도>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천재 영화이다. 재작년과 작년과 올해에도 천재 영화를 봤는데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이미테이션 게임> <세기의 매치>가 그것이다. 역시 모두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 


2016년이 저무는 지금, 또 하나의 천재 영화가 나왔다.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의 삶을 옮긴 <무한대를 본 남자>.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알아준 '하디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라마누잔은 다름 아닌 영국에 의해 점령당한 식민지 인도 출신인 것이다. 반면 하디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 교수이자 왕립학회 회원이고. 정녕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둘은 라마누잔과 하디였지만, 누군가에겐 '식민지 유색인종'과 '영국의 저명인사'였다. 


빈민가에서 죽어갔을지 모를 '천재' 라마누잔



역사에 길이남을 수학 천재 중 한 명인 '라마누잔'. 그는 인도 빈민가에서 평생 지내다 그렇게 죽어갈 운명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리고 수학계와 인류에게 빛이 되는 존재가 있으니, 대영제국의 하디 교수다. ⓒ판씨네마(주)



영화는 '천재' 라마누잔의 삶을 엿보며,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의 특별한 관계를 조명한다. 당대 수학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라마누잔, 그는 하디 교수가 아니었으면 식민지 인도의 어느 빈민가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한편, 하디 교수 또한 라마누잔을 발견해내 따로 또 같이 연구함으로써 세계 수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였다. 


라마누잔은 인도 마드라스의 빈민가에서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숫자에 관해선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실력을 갖춘 그는 회계 일을 하고 싶어했고,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거절을 당한 끝에 우체국 회계과에서 일을 한다. 그곳에서 만난 인도인 상사는 그의 천재적인 수학 실력을 알아채고 더 큰 세계인 영국으로 떠날 것을 중용한다. 누구 한 사람만 알아주라는 기대로, 수없이 많은 편지를 날리는 라마누잔. 그 편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하디 교수한테까지 전해진다. 


단번에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알아챈 하디 교수는 동료 교수와 합심해 라마누잔을 데려온다. 라마누잔은 머릿속에서 춤추는 수많은 수학 공식과 숫자들을 뿜어내기 위해 갓 새신부와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영국으로 간다. 그는 매일 하디 교수의 집무실로 찾아가 개인 교습, 토론, 연구를 계속한다.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이라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다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편 라마누잔은 유색인종, 종교로 괴롭힘을 당하고, 집과 가족이 너무 그리워 앓기도 하는 와중에도 열심히 정진하지만, 급기야 결핵에 걸리고 마는데...


라마누잔를 발견해낸 하디 교수


대영제국의 왕립협회 회원이자 저명한 교수인 하디 교수. 그는 식민지 인도의 일개 회계원의 천재성을 간파하고 그를 영국으로 불러와 함께 수학의 차원을 몇 단계 올리는 일에 매진한다. ⓒ판씨네마(주)



거의 매년 만들어다시피 하는 천재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천재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러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천재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일반인이 천재가 아니기 때문일 텐데, 그들에게 천재란 '특별'하고 '다른' 삶일 것이다. 평생 직접 겪어볼 수 없기에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보고 싶은 게 아닐까. 그래서 천재 이야기는 오락성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천재 이야기는 많은 경우 실화이고, 실화는 오락성을 표출하기에 한계가 있기에 정극으로 가곤 한다. 그럼에도 천재의 삶이 대부분 평범하지 않고 우여곡절이 많기에, 그 자체로도 극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무한대를 본 남자>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천재라는 사실을 감안하고서라도 라마누잔의 삶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기 힘든 경험이 주를 이룬다. 


그렇지만 영화가 '천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천재' 라마누잔과 그를 알아준 하디 교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천재 '라마누잔'과 '그를 알아준' 하디 교수의 이야기인 것이다.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바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재미는 많이 퇴색되고, 감동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이 괜찮은 선택이었는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할 듯하다. 


개인적으론 무난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수학' 천재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진 않을 거다. 음악, 미술, 건축과는 달리 오직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함이나 그의 위대함이 제대로 비춰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럴 바엔 그 부분을 줄이는 게 좋을지 모른다. 반면, 천재만의 특별하고 다른 세상을 제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은 건 또 그런 영화만이 가지는 장점을 퇴색시켜버린 게 된다. 그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잘 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난했다는 건 경계선을 많이 침범하곤 했다는 의미이다.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의 특별한 관계 이야기


수학계를 몇 단계 끌어올린 라마누잔의 천재성은 역사가 보증한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준 하디 교수야말로 정녕 위대한 인물이다. 그런 그들의 특별한 관계는 아름답다. ⓒ판씨네마(주)



이 영화가 승부를 본 건 다름 아닌 '관계'이다.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의,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관계 말이다. 첫째로 그들은 제국 영국인과 식민지 인도인 사이다. 둘째로 왕립협회 회원의 교수와 무명인 사이다. 셋째로 그들은 절대적 무신론자와 독실한 종교인 사이다. 당시로선 그야말로 하늘과 땅 사이보다 더 먼 사이인 것이다. 그런 그들 사이에 '관계'라는 말이 들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 기적은 라마누잔의 천재성보단 하디 교수의 태도에 기인한다.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가 만나면서 영화는 '천재' 이야기에서 '관계' 이야기로 무게의 중심이 옮겨진다. 여기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영화로 소개되지 않았던 또 다른 천재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특별한 관계의 세계로 들어온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하디 교수의 라마누잔을 향한 관심과 애정은 지극히 사적인 것 같지만 사실 지극히 공적이다. 천재인 그를 총애해 그를 향해서만 애정을 쏟으며 자신의 시간과 공력을 투자해 가르치고 그의 공식이 공신력을 얻을 수 있게 발벗고 나선다. 라마누잔에겐 기적과도 같은 이런 상황을, 어째서 하디 교수는 정력적으로 만들게 되었을까. 그건 라마누잔으로 하여금 수학계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게 하려는 의도의 발현이다. 그것이 아니고는 하디 교수의 라마누잔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설명할 다른 도리가 없다. 돈? 명예? 권력? 모두 아니다. 


한편 라마누잔은 어떨까. 그는 머릿속에서 춤추는 무한대의 숫자와 공식들을 밖으로 보여내기 위해 하디 교수를 찾았다. 말그대로 그의 머릿속엔 수학 말고는 다른 무엇이 들어 있지 않았다. 가족도 뒤로 한 채, 자신의 나라를 식민지로 둔 제국의 한복판으로 오지 않았는가. 그때 이미 결정이 난 것이리라. 그의 인생에서 다른 무엇도 필요 없다는 것을. 그 부분에서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는 일치단결했다. 


올바른 관계 설정은 정말 어렵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 아닌가. 어려울 때 도와준 이에게 평생 감사하며 은혜를 베푸는 게 또 인간의 도리 아니겠는가.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지만, 공이라는 게 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진짜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아닐 거다. 우리는 알고 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없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지극히 잘 알고 있는 그 선을 지키며 나아가는 게 어려울까. 관계 설정은 어려울지 모르나, 설정이 끝난 뒤 선을 긋는 건 '선(善)'과 '악(惡)'의 차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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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족 쇼크> 저자 김광호 PD


2014년 말에 아홉 차례에 걸쳐 방영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 <EBS 다큐프라임-가족쇼크>. 지금의 사회에서 가져야 할 가족의 의미를 긍정적 방향으로 재해석하고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가족의 모습을 고찰했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이며, 가족이 주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물었다. 이 다큐멘터리로 '제27회 한국피디대상-교양정보부분 작품상', '2015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사회문화부분 우수상' '제42회 방송대상-사회공익부문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이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다큐를 접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수단일 터. 책 <가족 쇼크>의 대표 저자이자, <EBS 다큐프라임-가족쇼크>의 책임 프로듀서인 김광호 PD를 인터뷰했다. 1995년에 입사해 20년 째 EBS에 몸을 담고 있는 베테랑 PD. 장학 퀴즈, 어린이 프로그램을 거쳐 2005<60분 부모>를 시작으로 부모와 아이, 가족에 천착했다. 자타공인 부모교육 전문가다. 그와의 인터뷰는 마치 강연을 듣는 듯했다. 확고한 신념이 곳곳에 묻어 났다. 


많은 콘텐츠 중에서 '가족'에 천착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큰아이가 2001년에 태어났어요.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우리 윗세대가 그랬으니까요. 그냥 돈 열심히 버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나를 찾지 않는 거예요. 나는 아이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때 <60분 부모>를 하게 되었어요. 2005년이었죠. 아이도 발달을 하고 아이에게도 속마음이 있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줘야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난다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실제적인 부분을 알게 된 거예요. 좋은 아빠가 되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가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죠. <60분 부모>를 하는 와중에 부모들이 흔히 겪는 오류를 발견했어요. 요즘 부모는 how를 먼저 배워요. 말투를 어떻게 해야지,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지. 저 역시도 <60분 부모> 당시 how에 포커스를 두었지요. 덕분에 아이와는 친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작용이 생기더라고요. 관계는 금방 좋아졌는데 훈육이 되지 않아요. 이런 나도 이러는데 일반 부모들은 어떨까. 안 되겠다. 이런 것들을 더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마침 다큐 프라임이 생겼어요. 2007년 즈음이에요. 풍속화로 시작했는데, 아이의 심리에 대한 다큐를 하게 되었어요. 문제는 아이가 아니더라고요. 부모가 훨씬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후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게 아이와 부모, 가족으로 넘어갔죠



다른 가족 콘텐츠에 반해 <가족 쇼크>가 갖는 차별점은?

처음에는 가족 내부에서 부모를 말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가족을 바라보는 지표가, 우리 사회의 지표가, 우리나라의 수준을 집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단어잖아요. 가족이라는 단어로 대한민국을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 사회는 가족을 어떻게 존중하고 있지, 어떻게 바라보고 있지, 외국인 노동자 가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생각했어요. 가족이라는 단어로 한정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사람을 대하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포함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족 내부에 대한 이야기 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외부의 시선까지 담아내려 했어요. 그것이 바로 <가족 쇼크>의 가장 커다란 차별점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다른 가족 콘텐츠는 내부로만 천착해 있잖아요.


가족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는데, PD님의 가족은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지요?

저희도 똑같이 싸우고 고민하고 넘어지고 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저희는 고민이 생기거나 넘어졌을 때 조금은 자유롭고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에요. 100점이 아니라 80점인데, 80점으로도 만족하는 그런 여유죠. 아이들은 한 번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다음 문제를 주지 않는 존재가 아니에요. 계속해서 아이들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 부모들의 입장이지요. 그런 문제들이 생겼을 때 예전 같으면 아노미에 빠졌죠. 그런데 지금은, 물론 저도 화가 날 때도 있고 허둥지둥 할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거죠. 그리고 그 문제를 풀 때 100점을 맞아야지 하는 게 아니라, 80점이라도 아이가 행복해지는 데 그 정도면 훌륭하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머니께서 예전에 가족은 천륜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면 가족에 있어서 '관계'를 우선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관계예요. 10여 년 동안 가족 관련 프로그램을 하면서 느낀 게 뭐냐 하면요. 가족이 천륜이다’ ‘혈연이다라고 믿게 되면 가족 관계에 본능되물림이 들어와요. 그러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나를 돌아보는 노력과 의식을 하지 않게 돼죠. 그 관계를 본능이 지배하게 됩니다. ‘내가 아이를 낳았으니, 내가 아이를 보호해야 돼라고 천륜, 혈연으로 생각하는 게 바로 본능이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에게도 삶이 있어요. 아이의 삶이 한 발 발전하기 위해선 부모가 한 발 물러나는 게 역할이야, 우리가 관계를 전제로 했을 땐 이런 것들을 학습하고 배우는데, 천륜, 혈연이 지배하면 생각할 수 없어요. 관계라는 키워드를 인식하게 되면 노력하고 학습하게 돼요. 반면 천륜과 혈연으로 인식하면 노력과 학습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만 있을 뿐이에요. 그러면 불행해지기 쉬워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요.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바뀌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에는 엄연히 집단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요.

정확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존재예요. 비록 1인 가구 형태가 되었더라도 그들은 어떤 집단에 소속하고자 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욕망이 틀림없이 있다고 봐요. 그러면 1인 시대와 관계에 대한 욕구가 어떻게 접점을 찾느냐,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가 확대되면 충분히 그걸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1인 가족이라고 했을 때 단순히 한 사람 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한 욕구까지도 담는 단어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요즘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청춘들의 아픔이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취직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가족의 의미가 퇴색할까요?

저의 경우,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아이가 정말 커다란 역할을 했어요. 백지에 가까운 아이 눈에 내가 어떻게 비쳐질지 생각하면 말이죠. 그런 면에서 아이가 없다면 그런 계기를 갖지 못하니 아쉬움이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없으면 가족으로서 온전하지 않거나 행복하지 않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1인 가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다만 저한테 아이를 낳는 것과 낳지 않는 것 중 추천을 하라고 하면 한 명이라고 낳아서 기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그건 선택이죠.





결국 공동체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 공동체에 대해 말씀 부탁 드립니다.

1인 가족 형태는 생길 수밖에 없고 증가할 수밖에 없어요. 이미 가족 형태 중에 1인 가족이 가장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죠. 그럼 1인 가족들을 어떻게 해야겠어요? 어떻게 관계를 구축해주고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 이런 부분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제시하고 실험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에게만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옆을 돌아보지 않아요. 1인 가족들의 행복은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대비를 하지 않죠. 1인 가족들이 된 건 그분들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구조적 문제를 탓하며 그냥 손 놓고 있어야 하나요? 우린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공동체키워드를 통해 제시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걸 묶을 수 있는 게 바로 관계라고 생각해요.


육아 인터넷 카페 보면, 어마어마하게 활성화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도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공동체로서 충분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공동체냐 아니냐가 아니라 폐해가 훨씬 크다는 점이에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경험이 아닌 지식으로 키우는데, 육아 인터넷 카페가 바로 지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봐요. 다른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정보를, 그대로 나의 아이에게 접목 시키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정보들이 나와 아이 관계를 100% 규정할 수 없거든요.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나와 아이 관계에 맞지 않으면 그건 아닌 거예요. 육아 인터넷 카페가 그런 종류의 폐해를, 경험으로 나와 아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일정 정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봐요. 그리고 무엇보다 육아 인터넷 카페는 불안을 자극해요. 최대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서로 정보를 교류하며 그 중에 나에게 맞을 것 같은 정보를 취하게 되면 기대치가 생겨요. 내가 이 정보로 100% 아이를 보살펴줄 수 있다는 기대치요. 그런데 실제로 그 아이에게는 다른 조건이 있을 거예요. 그 조건을 무시한 채 한 부분만 취해서 나의 아이에게 적용해보면 맞지 않는 거예요. 맞지 않으면 좌절해요. 좌절하면 불안해지죠.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닌가봐라면서카페는 하되 내 아이에 맞는 방식을, 정보들을, 선별하라는 거예요. 거기에 휘둘리지 말고요. 아이들은 정보나 지식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키우는 거예요.


비 중인 다음 작품이 있는지요? '가족' 나아가 관계행복에 대한 콘텐츠인가요?

이번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정확히는 감정인데요. ‘왜 불안하지?’의 해답을 찾아보려 해요. 가족으로 대한민국을 들여다봤다면, 이번엔 감정으로 대한민국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거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관련 자료가 많지 않더라고요. 올 연말 즈음에 방송으로 나갈 것 같아요. 머리가 복잡합니다. 큰 틀 안에서는 관계와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그것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크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다만 관점을 다르게 하는 것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가족 내부로 보면 좋은 가족이란 뭐지, 내가 지금 같이 생활하는 가족들의 관계는 어떻지, 앞으로 어떤 부분들을 가족 내부 관계 속에서 고민해야 하지, 이런 관점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보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어 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하나 있다면, 가족 외부의 시선, 가족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수준을 아울러 생각하면 좋겠어요.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을 어떻게 보고 있지,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지, 이런 관점까지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나를 포함해 우리 구성원들이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이런 걸 정리하고 나면 이제 앞으로 어떤 걸 고민해야 할지 보일 것 같아요. 가족 내부와 외부를 같이 고민하면서 이 책을 보면 좋겠어요.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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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가족 쇼크>



<가족 쇼크> 표지 ⓒ월북


우리 가족은 일반적이지 않다. 아버지는 회사를 다니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일을 해오셨다. 일하는 날짜나 시간,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다. 반면 어머니는 큰 마트에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 까지 일주일 내내 일을 하신다. 동생은 외국에 나가 있고, 나는 평범하게 회사에 다닌다. 


내가 퇴근하면 언제나 아버지는 주무시고 있고 내가 잠자리에 들 때 즈음 어머니가 퇴근하신다. 나는 그 모습을 견디기 힘들다. 가장이라면 제일 힘들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왜 어머니가 제일 힘들 게 일을 하는 거지? 아이러니 한 건, 그럼에도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어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밤늦게 까지 일을 하다 보니 아버지가 집안일을 어느 정도 도와준다. 밥, 설거지, 빨래 등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체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나이가 들고 머리가 커져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지만, 이런저런 모습들은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난 아버지 다운 아버지를 존경하고 싶고, 어머니 다운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다. 잘못된 생각인가?


가족, 혈연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이루어진 형태로, 아버지는 돈을 잘 벌어와야 하고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잘하면서 남편을 보필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며, 아이들은 부모님 말에 순종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모습을 당연한 듯이 봐왔다. 나도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에 대해, 즉 가족에 대해 <가족 쇼크>(윌북)는 혈연이라는 당위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할과 서열이 강조되는 혈연 관계 대신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들과 솔직하고 다정하게 함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게 곧 가족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족'에 대한 충격적인 선언이다. 어머니가 언젠가 말씀하셨던 '천륜'은 더 이상 가족의 필수 조건이 아니게 된 것인가. 가족 간에 천륜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인가. 책은 그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게 무엇일까. 


한국의 부모는 아이들을 주어진 자기 삶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로 보지 않는다. 대신 미래까지 통제할 수 있는 존재, 나아가 자신의 확장된 자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생겨나 평생 계속된다. 부모는 부모이고, 자식은 자식이다. 그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권리도 있을 것이다. 


반면 프랑스 부모에게 아이는 가르치고 이끌고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부담을 안겨주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작고 어린 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아이가 선택한 것에 응원을 보낼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역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존재인 개인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가족은 그런 개인들의 공동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새로운 관계 성립이 결코 말처럼 쉽진 않을 것이다.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문화는 확연히 다르다. 그 나라에 맞는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가족 쇼크>가 가족의 재정립을 말하고 있는 건, 시대의 변화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그에 따라 가족의 개념이나 형태도 변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건, 변화는 변화고 가족의 본질과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본질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해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다. 


이 시대 최대 쟁점 중 하나, 1인 가구


1인 가구는 이 시대의 최대 쟁점 중에 하나이다. 당연히 <가족 쇼크>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가족의 해체와 탄생.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1인 가구가 많은데, 그런 경우 고독사 등 상당히 많은 문제가 노출된다. 그렇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만이 고독사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1인 가구와는 별개로, 유난히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라는 점이 고독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가족 내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고 느낄 때 그 안에 머물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가장이 그렇다. 사회 내 모든 개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생활 방식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혈연은커녕 일생 한 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실험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들을 모아 8주 동안 매주 한 번씩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게 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새로운 가족'의 핵심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실험이자 중요한 한 걸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가족이라 불릴 만한 관계가 되었다. 진짜 어려울 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든든한 이웃이 생겼다. 


가족에서 공동체로


기능적 역할이 축소된 가족은 이제 온전히 관계로 남게 된 것이다. 결혼이 사랑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듯이, 가족 역시 권위와 역할이 아니라 정서적 결속감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나를 타자로 구분하는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가족 실험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일깨웠다. 혈연으로 연결된 구성원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으며 가족이라는 명분을 지키면서 사는 건 더 이상 가족의 삶이 아니다. 가족끼리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를 존중하고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키리위나의 오카이보마 마을엔 약 5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핏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되, 소통을 통해 공존한다. <가족 쇼크>에서 말한, 가족이 지향해야 할 공동체로서의 미래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함께 생산하고 자유롭게 사랑한다. 모든 일은 함께 의논하며 선함의 순환을 믿는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교육을 함께한다. 가족이 처음 만들어질 때의 기본 가치를 이곳에서 배울 수 있다. 그들은 혈연을 중심으로 뭉친 배타적인 집단이 아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를 돌보고 돕는 가족이다. 


'가족'은 자연스레 '공동체'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예전과 같은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핏줄'이 아닌 '관계'이다. 한 집에 사는 것 만으로 가족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가족은 이제 서로의 인생을 지지해주는 공동체인 것이다. 새로운 가족은, 역할에만 충실하면서 서로 의존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개체성을 인정하며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이다. 머잖아 새로운 가족이 올 것이다. 나부터 새로운 가족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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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김씨 표류기>




한강 다리에서 떨어져 내려 자살하려는 한 남자 김씨가 있다. 뛰어 내린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대신 밤섬에 표류 된다. 죽었다 살아난 김씨는 이곳을 떠나 살던 곳으로 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 섬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들락거리지 않는다. 즉,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는 눈앞에 고층 빌딩이 보이는 이곳에서 꼼짝 없이 살아야 한다. 


영화 <김씨 표류기>는 얼핏 <캐스트 어웨이>를 생각나게 한다. 설정 상 어쩔 수 없이 그럴 진대, 실상은 완전히 다른 영화이다. <캐스트 어웨이>가 생존과 인생, 방황과 고독에 관한 이야기라면 <김씨 표류기>는 행복과 아픔, 관계와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자가 공감을 일으킨다면, 후자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버림받은 존재, 고독으로 다시 태어나다


먼저 김씨가 자살하려 했던 이유를 보자. 그는 뭘 해도 안 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이다. 누가 보기엔 하찮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에겐 큰 이유이다. 그렇게 그는 버림받았고 자살을 통해 이번엔 자신이 세상을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아무도 없는 섬에 표류 됨으로써 다시 한 번 버림 받는다. 눈 앞에 보이는 도시를 향해 아무리 소리치고 울고 불고 난리 쳐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금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생리 현상이 발생한다. 그는 대변을 봤고, 목이 너무 말랐기에 또 하필 그 앞에 있던 꽃으로 목을 축인다. 그는 형용할 수 없는 복합적 감정 때문에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다. 그는 그렇게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제 그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심심함도 맛본다. 서서히 아무도 없는 완벽한 고독에 적응되어 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라는 싯말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적합한 구절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섬에서 더 이상 나가기 힘들어 할 것이다. 섬에서 나가 그 사람에게로 가게 되었을 때 일으켜지는 반작용은 온갖 것들의 집합이다. 마냥 좋을 수도 마냥 싫을 수도 있다. 그 온갖 것들의 집합 자체로도 충분히 힘들다.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다. 차라리 섬에서 나가기 싫다.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는 그런 반작용을 병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김씨 표류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가 밤섬에 홀로 표류 되어 있는 것처럼, 자신의 방에 표류 되어 있다. 엄밀히 말해 그녀는 표류 되어 있는 게 아니라 표류한 것이리라. 그래서 그녀는 그곳에서 나갈 마음이 전혀 없다. 남자 김씨는 나가려 하고 여자 김씨는 나가지 않으려 한다. 홀로 섬에 갇혀 있는 건 같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독에서 나와 소통을 원하다 


여자 김씨가 유일하게 하는 건 인터넷을 통한 가상 현실 체험인데, 그곳에서 그녀는 아주 멋지고 예쁜 여성이다.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실제와 달리, 그곳에서 여자 김씨는 완벽한 인기인이다. 그녀에게는 취미가 하나 있는데, 밤에 달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방위 훈련이 시작되어 아무도 없는 공간을 관찰하고 사진 찍는 취미도 있다. 그녀는 정녕 완벽한 고독의 세계를 원하는 것일까. 


그러던 중 우연히 남자 김씨를 발견한다. 변태 같고 이상하기 짝이 없는 알 수 없는 남자. 그녀는 점차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궁금해졌고, 그동안 지켜왔던 고독의 세계에 조금씩 금이 가는 걸 발견한다. 그녀는 그와의 소통을 갈망하게 된다. 인간이 완벽한 고독의 세계를 갈망하면서도 누군가와의 소통을 꿈꾸는, 아이러니이자 딜레마다. 정답이 없기에 끊임없이 방황한다.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아픔을 느낀다. 


인간 관계에 있어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연인 관계, 친구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상사와 부하 관계 등.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또 서로를 극도로 증오하기도 한다.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러면서 서로를 누구보다 경멸하고 아프게 한다. <김씨 표류기>에서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도 그렇다. 서로를 알아감에 있어 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알고자 한다. 자신도 모르게 고독에서 나와 소통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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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아우름

2014년 9월,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빠뜨린 사고가 일어났다. 데뷔 2년 차로 인지도를 점점 올리고 있던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그동안 걸그룹, 보이그룹을 막론하고 자동차 사고가 참 많이 났었는데, 이번에는 얘기가 달랐다. 5명의 멤버 중에서 2명이 사망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매니저의 과속으로 인한 바퀴 손실이었다. 전날 대구에서의 녹화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고 한다. 이미 매니저에게 과실을 물어 선고가 된 상황에서 진짜 원인을 찾아봐야 무슨 소용이겠냐 마는, 빡빡하다 못해 살인적인 스케줄이 소녀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걸그룹은 감당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다. 비록 그 자신들이 그 길을 선택했다고 해도.


대한민국 걸그룹의 민낯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문학동네, 이하 '걸그룹'>은 대한민국 걸그룹의 민낯을 다룬다. 신문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저자 이학준이 1년 동안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매니저로 자처하면서 그 속살을 적나라하게 들어내려 한다. 왜? 케이팝의 신화, 그 뒤에 감춰진 속살을 보기 위해서 란다. 그리고 십대에 불과한 아이들이 인생을 모두 이해한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그런 아이돌 스타들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서 라고 한다. 그는 이것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요량이었다. 


일단 물질적인 결과물은 훌륭하게 보여준 듯하다.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이라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세계 유수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이렇게 책으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영상과 텍스트, 감독이자 기자인 저자가 이루고자 했던 바를 완벽하게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 그가 보고자 했던 '케이팝 신화의 감춰진 속살'을 봤을까? 단순히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힘들고 아프고 치열하고 처량하다 못해 지옥 같다는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동안 YG를 위시해 많은 아이돌이 데뷔도 하기 전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속살을 드러냈다. 물론 상당 부분 만들어진 모습일 테고 진짜 모습이 아닐 터다. 그래도 그들의 아픔과 힘듦은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보자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어디서 많이 보고 들었던 걸 재탕하는 느낌이랄까? 책을 보는 중간 중간 의식한 듯한 말을 많이 하는데, 아무리 진짜 속살을 보려고 해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이상 완벽하게 진짜 민낯을 보긴 힘들 거라는 점을 돌려서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책은 이 다큐멘터리는 나올 이유가 없다. 애초에 기획부터 잘못 된 것이다. 뭔가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게 뭘까. 


관계에 주목해 민낯의 다른 면을 보다


그래서 저자는 그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9명이나 되는 멤버들이고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그룹이다 보니 그 안에서 치열한 경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나인뮤지스'라는 그룹은 모델돌이라는 호칭을 붙일 만큼 반 수 이상이 모델 출신이어서, 모델파와 비모델파의 경쟁과 대립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졸업'이라는 시스템으로 기수를 나누어 경쟁을 부추겼다. 회사 입장에서는 '나' 아니면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기에 그 경쟁은 멤버들의 피를 말리게 했다. 


나인뮤지스는 2010년에 데뷔해서 2015년으로 데뷔 6년 차를 맞이하는 중견 걸그룹이다. 미쓰에이, 시스타, 걸스데이 등과 같은 년에 데뷔했다. 이 중에 미쓰에이 같은 경우는 데뷔와 동시에 특급 속도로 최고의 반열에 올라갔지만 나인뮤지스는 상당 기간 동안 정상을 맛보지 못했다. 데뷔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명이 탈퇴했는데, 그녀는 교통 사고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이였다. 또한 좋지 않은 계기로 리더가 바뀌는 사태도 있었다. 그녀는 잘 이겨냈지만 결국 탈퇴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관계는 멤버와 회사 간에도 존재한다. 더 들어가서는 매니저들이다. 안무, 음악, 스타일 등 수많은 매니저들이 존재하는데 그들과 멤버들 간의 관계란 참으로 묘하다. 매니저들도 피고용인의 입장이지만, 사실상 회사를 대변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멤버들에게 살갑게 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은 언제든 경쟁에서 도태되어 다시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확실한 차별 요소를 가지고 촬영에 임했고, 그걸 영상과 책으로 옮겼다. 


책을 읽고 남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걸그룹의 뒷모습,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진짜 모습을 왜 봐야 하는지? 치열하거나 힘듦 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기에, 그들의 치열하고 힘든 데뷔까지의 삶을 보고는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는다. 차라리 탐사보도를 해 그야말로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추악한 모습을 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어정쩡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제일 거슬리는 건 윤문을 심하게 한듯한, 도무지 저자 본인의 글이라고 믿기 힘든 문체이다. 특히 장을 새롭게 들어갈 때마다 계속되는 감성적이고 매끈한 묘사들. 이 묘사들이야말로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 제일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저자가 최소한의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이 보여 읽는 내내 불쾌하진 않았다. 멤버들, 매니저들, 회사, 대중, 언론을 차별하지 않고 두루두루 까면서(?) 걸그룹 띄어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저자의 기막힌 기획과 실행력,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잔잔한 연민에게 소소한 박수를 보내며 더 이상은 이런 종류의 콘텐츠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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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