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메이즈 러너 시리즈>





십 대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다. 십 대야말로 희망이며 세상을 바꾼다. 영화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 되기 일쑤인 십 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조금은 어설프지만 다이내믹한 파워를 분출해 시선을 잡아 끈다. 중량감에서는 조금 달려 보이지만, <해리포터> <트와일라잇> <헝거게임> 등의 뒤를 잇는 틴에이저 파워 콘텐츠라 할 만하다. 은근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꿀 것인가,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영화는 토마스라는 십 대 소년이 영문도 모른 채 '글레이드'란 곳으로 가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곳엔 토마스와 비슷한 또래의 십 대 소년들이 수십 명 있다. 그들은 이름 외에 아무런 기억이 없이 살아간다. 글레이드 사방엔 어마어마한 높이의 장벽을 자랑하는 미로가 존재하고 그 미로는 매일 변한다. 일명 '러너'들이 매일 아침 문이 열리는 미로 속으로 탐험을 떠나는데, 그곳엔 글리버라는 괴물이 득시글거려 탐험이 결코 쉽지 않다. 자칫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오지 못하면 그는 죽음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토마스는 미로에 남다른 호기심을 보인다. 그러며 어느 누구보다 그곳에서 나가고 싶은 열망을 품는다. 다른 소년들이 적응하며 살아가는 걸 먼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때문에 그는 죽을 뻔하기도 하고, 수장급 러너인 갤리 등에 의해 매도 당하기도 한다. 그의 너무 큰 호기심이 글레이드의 삶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갤리 등은 글레이드의 삶에 이미 적응이 되었고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변화를 매우 두려워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구축해온 것이 소용없어지는 게 싫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정이 싫고 그 이후에 적응하는 것 역시 싫기 때문이다. 두렵기도 하지만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분명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온다.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또한 있기 때문일 텐데,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고 바뀐 세상에서 구 세상은 악으로 폄하 되기 일쑤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 불 보듯 뻔하고, 그만큼 너무 어려운 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갤리 등은 지난 3년 동안 글레이드를 지켜온 건 오직 '룰'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틀리지 않은 말이다. 자신을, 가족을, 집을, 모두를 지키는 방법을 알아내고자 희생을 치르고, 그렇게 얻어낸 필생(必生)의 규칙은 결단코 그들의 목숨을 지켜줄 것이다. 토마스는 그것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기어코 미로를 나가고자 한다. 이 둘의 대립, 선택은 정녕 쉽지 않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당연한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밝혀진다. 태양이 세상을 파괴했다. 모든 게 불타 사라지고 인류는 지하로 내려간다. 더 끔찍한 게 그들을 괴롭혔으니, 플레어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을 일종의 좀비로 만든다. 이에 '위키드'라는 단체가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테스트를 실시한다. 플레어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세대가 태어났는데, 그들의 면역성을 시험에 들게 하고 통과된 이들을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한다. 글레이드에 보내진 이들이 바로 플레어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세대의 대표들인 것이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이 위키드의 신조이다. 그렇게 그들은 끊임없이 면역이 있는 세대들을 테스트하고 통과한 이들로 치료제를 개발한다. 개발에 이용되는 아이들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영원히 있을 것이다. 위키드의 수장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허무맹랑한 것이 아닌 '대의적'이라면, 그 대의에 그들은 들어 있지 않다는 말인가 싶다. 


다수의 의견 때문에 소수의 의견이 깨끗이 무시 당하는 것도 문제 삼아야 할 진데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 당해야 한다니, 어패가 있고 말도 안 되는 신조이다. 그럼에도 이에 관해 완벽한 딜레마에 빠졌을 때는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가 행한 그야말로 완벽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제3차 세계 대전이 불 보듯 뻔 한 상황에서 미국의 거대 도시를 송두리째 날려버림으로써 전쟁이 멈추고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리게 함으로써 전 세계 태반의 인구를 구한 그 행동을 말이다. 이 딜레마를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1편보다 못했던 2편, 3편에 기대를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2편보다 1편에서 훨씬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또한 훨씬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파리대왕>을 생각나게 하는, 성숙하지 않은 십 대들 만의 갇힌 세계가 주는 스릴감이 풍부하다. 나가고자 하는 자와 안주하고자 하는 자의 치열한 정치 싸움이 주는 희열 또한 수준급이다. 다만 액션 영화 치고는 액션이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특히 미로 속에서의 액션은, '미로' 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한 듯하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보여준 미로 액션이 그리웠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미드 <워킹데드 시리즈>를 생각하게 한다. 다른 콘텐츠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워킹데드>만의 질감과 분위기가 있는데, <메이즈 러너>가 상당 부분 닮아 있었다. 고립, 깨달음, 죽음, 진격, 실망, 탈출, 도망, 배신, 전쟁 등. 일련의 과정부터 전체적인 색감까지 꼭 빼닮았다. 개인적으로 다른 틴에이저 콘텐츠보다 더 애착이 가고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이제까지의 모든 틴에이저 콘텐츠처럼 이 시리즈도 마지막 3탄에 가서는 대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괜찮은 1탄과 별로인 2탄을 지나야 한다. 그리고는 3탄에서 모든 게 끝날 텐데 바로 그 점 때문에 걱정이 된다. 1, 2탄을 봤을 때 이 영화는 액션에서 상당한 단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것들을 많이 취했으니, 3탄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액션을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부디 그것이 제작자와 감독의 의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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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원하는 건 뭘까. 참으로 오랫동안 고심해왔다. 고심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흔적의 하나가 변하고자 노력한 거다. 그녀의 바람에 맞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런데 노력을 어필하려 할 때마다 그녀가 하는 말이 있었다. 


"변하려고 노력하지마. 오빠의 본 모습도 사랑해야 진짜 사랑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난 그러려고 하니까. 그녀의 어떤 모습이든 다 사랑스러우니까. 물론 바꼈으면 하는 모습도 있지만, 바뀌면 더 이상 그녀는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니다. 내가 택한 그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어김없이 또 다툼이 생기면 다른 말을 한다. 


"너무 노력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 아냐? 내가 변하지 말랬다고 노력하지 말라는 건 아니잖아. 우리를 위해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


흠... 그녀가 원하는 건 뭘까. 그렇다. 원하는 건 조금 더 나은 '우리'가 분명하다. 나의 본 모습을 사랑하려 하는 것도 더 나은 우리를 위해서이고, 나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더 나은 우리를 위해서일 것이다. 


문제는 반복에 있다. 반복은 지루함을 불러오고 지치게 한다.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걸 솔직히 잘 모르니, '변화'와 '불변' 요구는 반복될 것이고, 그런 반복은 우리 사이를 좀먹을 게 분명하다. 


좀먹지 않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반복을 원천봉쇄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은 모습도, 변한 모습도 적절히 보여주며 그 조화로움에 만족을 느끼게 한다면 성공이다. 


그렇지만 아직 잘 모르는 건 사실이다.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잘 하고 있기는 한 걸까?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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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25년여 만에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본 적이 있어요. 그때가 일요일 저녁에서 밤 사이였는데, 생각도 정리할 겸 산책도 하자는 취지였죠. 그런데 생각이 정리되기는 커녕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이 동네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거죠. 


'우리 동네가 이런 곳이었구나. 이런 분위기였구나. 예쁘다.' 


한 달 정도 후에 한번 더 다녀왔어요. 더 오래 걸려 더 많은 곳을 다녀 봤는데요. 왠지 시들하더라구요. 벌써 지루해진 걸까요? 처음만큼 재미있지가 않았어요. 여자친구한테 말했더니 한번 더 가보라는 거예요. 큰 기대없이 한번 더 다녀왔죠. 같은 장소인데 또 다르더라구요. 제가 변한 건지, 동네가 변한 건지~


저희 관계가 딱 이래요. 2010년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6년차에 접어 들었는데, 우린 우리가 100일된 커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재밌다가, 지루했다가, 다시 재밌다가, 그런 변화가 계속 되다가, 또 정체되었다가. 이 사이클을 크게 보면 그 자체가 끊임없는 변화예요. 지루할 때는 잠시뿐, 사실 지루할 틈이 없는 거죠. 재밌고 즐거워요.


어느새부터인가 우리 동네처럼 당연한듯 정감 있으면서도 새롭게 알게 되는 즐거움을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알게 된 그 사실을 공유해요. 그럴 때면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며 툴툴거리다가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두고 재미있어 하죠. 그러고는 잊어버릴 때도 있어요~ 계속 새롭게 보고 싶어서 일부러 잃어 버린다고 하면 믿지 않겠죠?


시간이 지나면 둘 중 한 명의 환경이 반드시 변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고 좋아해요. 그 주기가 1~2년 정도인데,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취업을 하고 회사를 옮기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그야말로 쉴 틈이 없어요`` 무엇보다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서로를 당연시하고 지루해할 틈이 없다는 거.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환경을 변화시키고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거예요. 단, 서로에 대한 사랑만은 '언제나 100일 처럼' 변함없이 하고 싶어요.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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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정은문고



참으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항상 뛰어다닌다. 걸어다니는 건 열정이 없는 것이고 무능한 것이며 '반역'에 가까운 것이다. 이 시대에서 변화 그리고 빠름이란 진리이자 지상 최대 목표가 되었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며 '빠름, 빠름, 빠름'을 외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런 와중에 '느림'을 말하고 '옛 것'을 입에 올리면 지리멸렬한 보수주의자 딱지를 맞기 십상이다.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건 당연지사이다. 지식인이라면 응당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발맞춰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옛 것이나 전통을 말하고 있나니 한심해 보일 만하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정은문고)에서 보여지는 저자 나가이 가후의 모습이 딱 그렇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그는 20세기 초 어마어마한 속도로 변하는 도쿄를 '어슬렁어슬렁' 산책한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게다(나막신 같이 생겼다)를 신고, 지팡이 대용인지 모를 박쥐우산(우산을 펼치면 박쥐가 날개를 펼친 것 같다)을 든 채. 


당대 최고의 탐미주의 문학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조우하다


나가이 가후는 당대 최고의 탐미주의 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더 유명한 건 화류계 여인을 사랑했다는 이력이다. 예술가의 기질이 다분해서 인지, 미를 탐하는 탐미주의자로서의 모습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단지 그런 모습으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 아쉬운 측면이 있다. 책 한 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책이 지어진 공간적 배경은 주지 했다시피 일본 도쿄이고, 시간적 배경은 1915년 전후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동아시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 수많은 나라들의 역사에서 온갖 치욕으로 깊이 아로새겨질 시기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다시피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역사상 유례 없는 번영과 평화의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1915년을 전후한 도쿄는 철도가 개통되어 넓어졌고, 컬러 영화가 개봉하고 대형 백화점이 개장해 풍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기차역까지 들어섰다. 그야말로 추후 100년 동안 도쿄를 지탱할 것들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변혁의 시기 한복판에 탐미주의 문학가의 최고봉 나가이 가후가 살았다. 그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도쿄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변화하는 도쿄를 비판적으로, 그럼에도 소소한 것들에는 사랑을


먼저 말해두고 싶은 건 100년 전의 위와 같은 변화가 지금의 변화보다 그 폭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지금의 변화, 그 빠르기와 폭이 인류 역사 전체의 변화의 그것보다 더 하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그 변화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상태이다. 반면 19~20세기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나가이 가후도 그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저자는 변화하는 도쿄를 그리 좋게 바라보고 있지 않다. 아니, 비판적으로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장이니 다리니 건물이니 철도니 하는 현대적인 것들. 100년이 지난 지금의 서울에서도 여전히 많은 것들을 지워버리며 현대적인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전선을 잇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길가의 나무를 베고, 사랑받아온 풍광이든 유서 깊은 나무든 전혀 개의치 않고 붉은 벽돌집을 높다랗게 지어버리는 오늘날 작태는 실로 자국의 특색과 예부터 계승해온 문명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난폭한 행위다." (본문 속에서)


그러며 한편으로는 일상의 소소한 측면들을, '훅'하고 지나가 버릴 작고 볼 품 없는 것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당이니 나무니 절이니 골목이니 석양이니 하는 옛 것들. 불과 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던 것들인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어 유적 같이 되어 버렸다. 


"순수하면서도 미천하기 그지없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습관은, 남사당패의 익살스런 탈춤이나 수수께끼 혹은 에마 속 서투른 그림처럼 한없이 내 마음을 위로한다." (본문 속에서)

부디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길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편하게 사는 데에 현대 문명은 거의 모든 면에서 기여했다. 그러하기에 현대 문명을 비난하고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내가 선 이곳의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누워서 침 뱉기 격이 아닌가. 


하지만 어릴 적 소중했던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내 부모님 세대를 형성했던 것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부정하고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려는 것 또한 나를 부정하는 처사가 아닌지? 그렇다면 어느 것 하나 홀대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게 아닌지?


다른 무엇보다 슬프고 공허할 것 같다. 새로움이 뿜어내는 활기와 열정, 그것에 대한 설렘도 크게 다가오지만,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못 견딜 때가 있다. 너무 그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 시선은 그런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며 대변해준다. 부디 따뜻한 감성과 날카로운 이성이,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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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플레전트빌>



영화 <플레전트빌> 포스터 ⓒ뉴라인 시네마



영화 <플레전트빌>은 판타지 동화 같은 분위기와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혼한 편모 슬하에 있는 전혀 다른 성격의 남매 데이빗(토비 맥과이어 분)과 제니퍼(리즈 위더스푼 분). 오빠 데이빗은 '플레전트빌'이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 지내는 자칫 찌질해 보이는 학생이고, 제니퍼는 성적으로 굉장히 개방적이고 괄괄한 성격의 학생이다. 그들은 같은 시간에 다른 TV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싸우다가 리모컨을 고장 낸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다가 들렀다는 수리 기사가 전해주는 마술 리모컨. 설마 하니 그 리모컨은 '플레전트빌' 프로그램 속으로 그들을 데려다 주었다. 암울한 현재와는 다른 1958년을 배경으로 하는 그 프로그램은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완벽한 가정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데이빗에게는 파라다이스, 제니퍼에게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시궁창 같은 현실과는 다른 완벽한 세계


'현시창'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있다. 풀어 쓰면 '현실은 시궁창'이란 뜻인데, 대한민국 청년의 현재를 표현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니 스스로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 요즘 들어 대대적으로 광고도 하는 등 모바일 게임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데, 이것도 일종의 현상일까. 시궁창 같은 현실과는 다른 완벽한 세계, 그리고 언제든 내가 최고가 될 수 있는 세계. 그곳으로 가고 싶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 파괴에서 오는 문제는 비단 IT의 고속 성장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미래는 현재보다 더더욱 암울할 것이라 한다. 경제는 추락하고, 환경은 안 좋아지며, 어떻게 하든 죽을 확률은 계속해서 높아질 것이다. 도망치고 싶은데 어디로 도망칠 수 있을까?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가상현실? 아니면 암울한 현실이나 미래가 아닌 과거? '플레전트빌'은 이 두 개를 충족시킨다. 



영화 <플레전트빌>의 한 장면 ⓒ뉴라인 시네마



데이빗과 제니퍼가 가게 된 가상현실 공간 '플레전트빌'의 시간적 배경은 40년 전 과거인 1958년이다. 미국에게 있어 1950년대는 평화와 번영, 그리고 보수의 시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자 유럽과는 달리 직접적인 피해가 전무했던 미국은, 50년대에 유례 없는 완벽한 시기를 보낸다. 그런 시대에 뚝 떨어진 데이빗과 제니퍼였던 것이다. 


흑백 세계에 나타난 '색깔'


데이빗은 이 세계를 잘 알고 있다. 완벽한 세계.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 흑백 세계. 변화가 전무한 세계. 그래서 그는 이 세계의 변화를 원치 않는다. 이상한 것들 투성이지만 이해하려 한다. 반면 제니퍼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녀는 먼저 남자들에게 섹스의 욕망을 뿌린다. 그것 하나로도 이 세계는 바뀌기 시작한다. 흑백 세계에 '색깔'이 나타난 것이다. 변화는 겉잡을 수 없다. 



영화 <플레전트빌>의 한 장면 ⓒ뉴라인 시네마



"평소처럼 퇴근해서 현관으로 들어가서 외투를 벗고 가방을 내려놓고는 '여보, 나왔어' 라고 외쳤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아내도 없고 불은 꺼져 있었고 저녁도 안 차려 놨더군. 오븐을 열어 봤는데 아무것도 없더군요. 그녀는 사라졌어요. 사방으로 찾았는데 어디에도 없었어요."


영화는 1950년대 나타났던 저항과 반문화를 답습한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영화 <이유 없는 반항> 등으로 대표 되는 이 문화는 당시 한편에서는 전에 없던 열렬한 환호를 받고 한편에서는 최악의 반대에 부딪힌다. 영화에서는 데이빗과 제니퍼가 그 역할을 한다. 데이빗은 내면에 잠재된 진짜 모습을 끄집어 내려 하고, 제니퍼는 잠자고 있던 욕망을 깨우려 한다. 


그렇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메카시즘'으로 대표 되는 좌파 색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순응하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여 철저히 색출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존 아니면 죽음의 시대가 도래한다. 변화는 죽음을, 순응과 불변은 생존을 뜻했다. 선택이 필요했다. 


변화 그리고 선택


영화에서는 변화한 이들은 흑백이었던 몸에 색이 생기고, 불변을 선택한 이들은 여전히 흑백으로 남아 있게 된다. 처음에 그들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한때 어울린다. 다를 뿐이지 틀린 건 아니니까. 하지만 위정자들은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디까지 변할지 알 수 없는 그들을 보고 '가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결과 '유색 인종'들은 폭력을 당하고, 모든 색깔 있는 것들은 파괴 당하며,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책이 보관된 도서관은 폐쇄된다. 유채색 그림은 금지 당하며, 유쾌한 노래만 허락된다. 


"진짜 비가 내리고 있어요. 저절로 치유되는 병균이 아니오. 마을이 변했소. 그 이유는 모두 알겠죠? 결정을 내립시다. 우리가 뭉쳐야만 이 난국을 풀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현실 도피에서 변화의 단계를 넘어 선택의 단계에 다다른다. 변화라는 개념조차 갖춰지지 않은 이들에게 '변화'를 심어줬을 때 비로소 그들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변화냐 불변이냐. 그 대표적인 장면이 데이빗과 제니퍼의 변화, 그리고 선택이다. 



영화 <플레전트빌>의 한 장면 ⓒ뉴라인 시네마



데이빗은 처음엔 '플레전트빌' 세계에 순응하고 세계의 불변을 외치지만 결국엔 변화를 선택하고 그것이 자신의 진짜 모습임을 알게 된다. 반면 제니퍼는 처음엔 앞장서서 '플레전트빌' 세계의 변화를 외치고 그런 모습이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남자에게 관심 없고 오히려 공부에 적성과 소질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보수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진보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헷갈리는 건 제니퍼의 변화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게 진보라 한다면, 초반의 제니퍼는 진보의 선봉과 같았다. 그러던 제니퍼가 진짜 자신의 모습인 보수적이고 순응하는 여인으로 '변화'한다. 진보가 보수로 '변화'했으니 이 또한 진보인 것인지? 진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진보가 보수로 '역행'했으니 이는 보수인 것인지? 


영화는 변화 자체를 진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변화를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으로 치환하고 있다. 진보라고 한다면 그 모든 것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더 좋은 게 많습니다. 어리석고, 섹시하고, 위험하고, 간단한 것들이죠. 이러한 모든 것들은 여러분 모두에게 잠재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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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포스터 ⓒ스폰지 ENT



일본 영화는 잔잔한 드라마가 강한 것 같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죽지 않는다. 갈등이 심화되지 않는 잔잔한 드라마에서 어떻게 등장인물들이 묻히지 않을 수 있을까? 스토리에 과한 조미료를 치지 않고, 영상에 힘을 실으며, 절제된 각본을 통해 여운을 짙게 남기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일본의 모든 드라마 장르 영화가 그렇지는 않다. 그 중에는 작정하고 관객들을 울리는 일명 '최루성 영화' 들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이런 영화가 점점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웃음보다 더한 힐링이 바로 울음이라는 걸 아는 제작자는 최루성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일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최루성 영화도 킬링타임용이라고 생각하는데,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울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잔잔함과 여운으로 승부를 보다


반면 시종일관 지루함을 동반한 잔잔함으로 관객들에게 엄청난 어필을 하지 못하는 영화들은 길고 짙게 남는 여운으로 승부를 본다. 이런 영화들은 거의 필히 2~3번 이상 보게 되는데, 처음 봤을 때는 빨려 들어갈 듯 보지 못했기에 다시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과 대사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2003년 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바로 이런 영화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굉장히 그리고 지극히 잔잔하게 시작하고 그렇게 흘러간다. 심지어 여자의 벗은 모습조차 잔잔하게 보여질 만큼. 밤에는 마작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츠네오는 우연히 조제와 마주친다. 조제는 두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고 할머니와 같이 산다. 할머니는 조제가 산책을 나가고 싶어하면 유모차에 실어 다닐 만큼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며, 조제는 그런 할머니의 영향 탓인지 낯선 사람을 극도로 불신한다. 낯선 사람이 보이면 다짜고짜 칼을 휘두를 만큼. 사람들은 그들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조제를 도와준 츠네오는 그녀의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되어 아주 맛있는 식사를 한다. 집에서 나가지 못하는 대신 남들이 버린 책들을 엄청 주워와 읽은 덕분에 박학다식을 자랑한다. 츠네오는 조제의 그런 모습을 가슴에 담아 두고 종종 찾아간다. 츠네오는 그 와중에도 여자친구와 좋은 시간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찾아가고, 조제가 읽고 싶어하는 책도 구해주고, 복지과에 말해 조제의 집도 고쳐주고, 유모차와 보드를 합쳐 세상 구경도 시켜준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의 한 장면 ⓒ스폰지 ENT



여기까지는 츠네오가 장애인인 조제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조제 또한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츠네오를 그저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장애인과 일반인이 아닌 일반인과 일반인 사이에서도 자주 보이는 관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관계가 사랑이라는 걸 확인 시켜 주는 사건(?)이 생긴다. 복지과에 말해 조제의 집을 고쳐준 뒤, 복지과에서 후속 조치를 취해줄 때였다. 때마침 츠네오의 여자친구가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전공이 복지였기 때문인데, 이 어색한 기류에서 그녀가 츠네오의 여자친구라는 걸 알아챈 조제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후 찾아온 츠네오를 단호히 거절한다. 


하지만 츠네오는 조제가 계속 생각난다. 여자친구와 같이 있어도 생각난다. 조제를 생각나게 하는 결정적인 무엇도 있었다. 그러다가 일전에 복지과 과장과 친해져 면접까지 보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조제의 소식을 듣게 된다.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과 조제가 혼자 살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 츠네오는 그 자리를 박차고 조제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렇게 그들은 1년을 지낸다.


복선과 상징으로 가득 차다


이 영화는 복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츠네오는 영화에서 총 3명의 여자와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즉 그가 언제든지 조제를 떠날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조제는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한 달 후 일 년 후』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거기에 어떤 구절을 읊는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일 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일 년을 함께 보내고 바뀐 모습을 암시한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의 한 장면 ⓒ스폰지 ENT



또한 이 영화는 극명한 상징을 띄고 있기도 하다. 제목에서 볼 수 있는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그것인데, 둘 다 조제의 대사로 유추해볼 수 있다. 먼저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며 말한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남자가 안 생기면 호랑이는 평생 못 봐도 상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 


그녀는 본래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무서워 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이자 보호막인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는 조제를 인간이 아닌 장애인으로 대했다. 조제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조제는 혼자 살아가기가 벅찼다. 그 앞에 나타난 츠네오. 츠네오 덕분에 조제는 인간으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츠네오와 함께 제일 무서워 했던 호랑이, 즉 세상과 조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목에서 보이는 물고기들은 조제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츠네오와의 여행에서 뭔가를 느낀 조제. 그녀는 여관에서 사랑을 나눈 후 츠네오에게 말하는 듯 혼잣말인 듯 말을 한다. 


"깊고 깊은 바닷속, 나는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나는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 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이 또한 츠네오와의 사랑을 통해 얻게 된 인간으로서의 당당한 삶을 의미한다. 장애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천대 받을 걸 두려워해 집안 구석에서만 지내온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 사랑을 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걸까. 언젠가 츠네오가 떠나갈 거라는 걸. 그렇지만 그녀는 이미 변화했다. 온전한 인간으로. 


인간, 사랑, 변화에 대한 충분한 공감


얼핏 보면 장애인과 일반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다고 보이는 이 영화는, 곱씹어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2~3번 다시 보면 더더욱 잘 보일 것이다. 지극히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혼자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랑하는 누군가와 같이 라면 못할 게 없어지는 경험. 그러며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 이건 어느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닌 쌍방의 경험. 단지 이 영화에서는 조제의 변화가 눈에 띄는 것 뿐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의 한 장면 ⓒ스폰지 ENT



물론 이 영화를 '장애인의 떳떳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기'와 같이 보아도 무방하다. 그 단적인 예로서의 장면이 츠네오의 전 여자친구와 조제의 만남인데, 그녀들은 서로 동등하게 뺨을 때린다. 별 것 아닌 장면으로 자신의 남자친구를 뺏어간 여자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해주고자 하는 걸로 단순하게 비춰질 수 있지만, 조제의 당당한 모습은 전과 확연히 다르다. 장애인으로서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래도록 사랑 받는 영화의 조건을 두루 갖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인간에 대해, 사랑에 대해, 변화에 대해 성찰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한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특유의 잔잔한 드라마, 그 진면목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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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100억 명, 어느 날>


<100억 명, 어느 날> ⓒ시공사

올해 여름 7월도 중순이 넘어 가는 지금, 아직 장마 다운 장마를 만나지 못했다. 장마가 늦게 찾아 오려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이 장마 기간이 맞고 '마른 장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장마 기간임에도 홍수가 아닌 가뭄 비상에 걸렸다는데, 언제까지 계속될지 걱정이 앞선다.  


직접적인 원인은 장마전선이 약해져서 그런 것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최근의 한반도 마른 장마의 원인은 바로 지구온난화와 엘니뇨이다. 둘 다 평균 온도의 상승을 뜻하는 용어들이다.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 상승, 수온의 상승. 과연 이 둘의 영향은 '마른 장마'에서 그칠까? 


지구온난화와 엘니뇨가 인류 생존을 위협할 나아가 지구를 위협할 큰 문제로 부각된 지는 이미 오래이다. 꾸준히 증가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메탄 등 각종 온실가스의 양 때문인데, 농업과 토지 이용의 확대 그리고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물건의 생산, 제조 공정, 운송의 결과로 발생한다.(33쪽). 이는 궁극적으로 인구의 증가때문이라고 <100억 명, 어느 날>(시공사)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번 세기가 끝나갈 때쯤에는 지구에 최소한 100억 명 이상의 인류가 존재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각종 혁명을 통해 현재까지의 증가 추이를 봤을 때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파생되어지는 각종 문제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지구온난화와 엘니뇨, 그리고 그 때문에 현재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른 장마'는 여러 (주요한) 문제 중 하나 일 뿐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인구가 늘어날수록 땅, 식량, 물, 에너지 등이 부족할 것이다. 그야말로 인류의 삶에서 절대 없어선 안 되는 것들이다. 


"인구가 늘어나면 물과 식량 수요가 급증하기 마련이다. 더 많은 식량을 얻기 위해 더 넓은 땅에 재배해야 한다. 이로 인해 삼림 파괴가 일어난다. 식량 수요가 늘어나면 식량 생산량과 교통량도 따라서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에너지 수요도 급증한다. 그렇게 되면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다. 그에 따라 기후가 급격히 변화하게 된다. 급격한 기후 변화는 물과 음식 그리고 땅에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본문 안에서)


즉 인구가 증가할수록 모든 면에서 제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이 속출할 것이란 얘기다. 조금 더 지엽적으로 들어가 보면, 다양한 생물종들을 멸종 시킬 것이고 열대 우림과 삼림 지대에 지대한 손실을 입힐 것이다. 


저자는 인구 증가가 불러올 이 많은 문제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이미 우리들이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저 문제를 포기 해야 하고 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포기해야 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인구 증가에 따라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게 되면 그 자체로 기후 변화를 가속화시킨다. 식량 생산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을 만들든지 엄청난 물이 소비된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심지어 1리터짜리 생수 페트병 한 개를 만드는 데 4리터 정도의 물이 쓰인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감이 서질 않는다. 


한편 저자는 교통에도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교통에 관련된 채광, 산업 공정, 운송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오염 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경각심을 일깨우는 자동차의 오염 물질 배출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서는 인구는 증가할 것이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오는 문제들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며 그 문제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있어 풀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을 온갖 데이터들을 동원해 길게 길게 풀고 있다 하겠다. 


여기서 끝나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책이라고 가감 없이 말할 수 있겠다. 대안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이 재앙적인 전환 앞에서 2가지 선택 사항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인류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보나마나 첫 번째는 불가능하다 할 것이고, 두 번째를 진짜 대안으로 내놓을 것이다. 


역시 저자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 이 악몽을 벗어나는 것을 '이성적인 낙관론자'들의 의견이라 치부하며, 다섯 가지 방안인 '녹색 에너지', '원자력', '담수화', '지구공학', '제2의 녹색혁명'을 모두 부정한다. 대부분 지금 당장 방안을 실행해야만 하는데, 그렇게 실행되고 있지 않으며 할 생각도 안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근본적 변화는 무엇인가? 당장 소비를 엄청나게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인들, 산업계가 총동원되어 모든 이의 생활 양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정답이지만, 그만큼 완전히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다. 모든 이들의 행동 양식을 일시에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파시즘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수많은 데이터들을 뒤로 하고, 지극히 평범한 구호 한 마디를 내놓은 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저자 자신만 다 알고 옳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 정작 시행은 남들에게 떠 넘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면서 끝에 가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는 다는 막말을 내놓고 있다. 저자가 책의 끝에서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센세이션은 일으킬지 몰라도 신뢰는 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 생각에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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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디센던트>


<디센던트> ⓒ폭스 서치라이트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증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12살 어느 날과 마주쳤다. 일기를 읽어보니 가관도 아니다. 글 재주는 둘째 치고, 증조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재밌다니? 어린 나에게 집안 어른의 장례는 재밌게 다가왔나 보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친척들이 모두 다 모이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호상(好喪)이셨기 때문에,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첫 번째 집안 어른 장례식이다. 


작년에는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몇 달 간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 하셨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친척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좋았고, 왠지 모르게 우리 가족들 사이가 전에 없이 밀착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하염없이 우시는 어머니와 어머니 형제 분들의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가족애까지 느끼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산(遺産) 아닌 유산이었다.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 <디센던트>는 ‘자손’ 또는 ‘유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맷 킹(조지 클루니 분)은 하와이에서 제일가는 땅을 소유한 가문의 상속자이다. 법률 변호사이기도 그는, 이 땅을 어떻게 하면 잘 팔았다는 말을 들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 땅을 파는 건 오로지 그의 결정에 의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그의 수많은 친척들과 함께 할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모터 보트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소에는 너무나 바빠서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그이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곁을 지켜야만 한다. 그에게는 망나니 같이 행동하는 두 딸이 있는데, 그의 잘못이 크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딸들과 함께 아내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영화는 이처럼 두 개의 큰 맥락으로 진행된다. 땅을 떠나보내면서 돈벼락을 맞고,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가족이 재결합하고.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50년 간 이어 내려온 땅을, 자신들이 그 땅을 위해서 한 일은 한 가지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이익 만을 위해 팔려고 하는 것이다. 그를 아는 다른 모든 주민들은 그 일을 반대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건, 리조트나 호텔 따위 뿐이다. 


또 하나, 아내를 떠나보내는 건 더더욱 어렵다. 특히 10년 만에 아이들과 붙어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두렵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첫째 딸에게서 황당무계하고 어이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너무나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그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미안했다.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는 그날로 아내가 바람 핀 상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에 딸들이 동행하면서, 비로소 그들은 가족이 된다. 아이러니컬한 상황이지만, 그의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 아닌 유산은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으면서 한편으로는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이러니컬한 상황은 ‘하와이’라는 배경 자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하와이를 생각할 때 ‘지상 낙원’이 그려질 것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접근해보면 보통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손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해체와 거기에서 파생된 불륜, 사소한 사고에 의한 죽음, 속물근성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 재개발에 관련된 반응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상 낙원’에서 벌어지는 매우 ‘지상’적인 느낌의 일들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사실 영화의 결말은 이미 나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아내의 죽음 덕분에 맷 킹의 가족은 재결합할 수 있었다. 맷 킹은 남은 두 딸에게 헌신적인 아빠가 될 것이었고, 망나니 같던 두 딸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다시 들어와 잘 자랄 것이었다. 


또한 그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인 땅은 결국 팔지 않을 것이었다.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인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맷 킹이, 조상들의 유산을 팔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가족들의 추억이 새겨져 있는 그곳을. 비록 수많은 친척들의 압박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의 삶은 아내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를 잃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감정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슬픔과 허무는 우리를 사정 없이 덮쳐올 것이다. 그런데 그때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으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 변화를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승화 시키는 것이 어떨까. 이 변화의 컨트롤을 위해 굳이 연습을 하거나 계획을 세워둘 필요는 없다. 잃게 되는 무언가가 남기고 갈 유산이 변화를 이끌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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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개리 해멀의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알키

'혁신'하면 어떤 개념들이 떠오르나요? 변화, 쇄신, 개혁, 혁명 정도가 떠오르실 겁니다. 쉽게 말해,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사전 참조)으로 바뀐다는 개념입니다.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을 뜻합니다. 


'혁신'이 자주 오르내리는 곳이 어디일까요? 아마도 기업에서 일겁니다. 현재 전세계의 혁신 기업이라면 단연 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있습니다. 그의 혁신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고 스티브 잡스는 "혁신이란 1,000가지의 생각을 거절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거절하고, 정말로 뛰어난 제품에 집중해야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의 요체였습니다. 끝없는 시행착오 끝에 탄생하는 단 하나의 최고. 그것이 혁신이라 하였습니다. 


현존하는 수많은 최고의 경영전문가 중에서도 최고로 뽑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리 해멀'. 그는 경영전략에 특화된 경영전문가로 그가 창시한 용어들만 해도 '전략적 의도Strategic Intent', '핵심 역량Core Competence', '산업 혁명Industry Revolution', '경영 혁신Management Competency' 등이 있습니다. 이 용어들은 전세계 기업들의 경영 관행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한 용어가 있습니다. 


'경영 혁신'.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새로운 생각이나 방법으로 기존업무를 다시 계획하고 실천하고 평가하는 것(사전 참조)으로, '새로움'이 요체가 되겠습니다.


경영 혁신에 관련해, 개리 해멀은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2011년 12월호에 '먼저, 관리자들을 모조리 해고하라'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글을 실습니다. 말 뿐인 혁신을 부르짖으며 무너져 내려간 유수의 기업을 보면서 개리 해멀이 내린 해결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고민들이 이어져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알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개리 해멀은 이 책에서 명쾌하고 구체적이고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부제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비즈니스의 5가지 쟁점으로 말이죠. 그가 말하는 혁신은 무엇이며, 지금 중요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개리 해멀은 지금 정말로 중요한 것을 분명히 해야만 하며,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 5가지 쟁점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꼽는 쟁점들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가치- 대규모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하루 빨리 자본주의의 윤리적 기반을 재정립해야 한다. 

혁신-혁신은 이윤 추구라는 처절한 경쟁을 극복하기 위한 방어 활동이자, 음울한 경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적응성-변화가 가속화되는 세계에서 기업은 '성장 과정의 우위'를 차지해야만 한다. 또한 자기 개혁을 가로막는 모든 관성력을 극복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변화보다 앞서 가는 조직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열정-삶에서도 그렇지만 비즈니스에서도 진부함을 떨치고 영감에 불을 붙이는 것이 있다. 바로 열정이다. 평범한이 이내 '경쟁의 부채'가 되어버리는 지금, 인간 정신을 일깨우는 비결을 찾는 조직만이 성공을 이룩할 수 있다. 

이념-오늘날 기업들은 더욱 개선된 경영 방식과 원칙을 필요로 한다. 관료제와 통제의 이념은 끝이 날 때가 되었다. 바야흐로 자율과 자기 결정의 경영 이념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리더십은 한계에 달했고, 조직은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있는 지금, 개리 해멀은 언급한 5가지 쟁점들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문제 극복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 몇가지의 예를 들어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에 다가가 봅니다. 


"원하는 날에 은행 문을 열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직원들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여러분에게 권한을 넘기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셈이니까요." (282쪽)


우리의 리더십 모델은 리더의 역할을 확 뒤집은 것입니다. 우리가 권한을 활용하는 방식은 대다수 조직의 방식과는 꽤 다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리더들이 '리더에 대한 지지'가 동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동료들의 기대와 회사의 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이내 동료들의 지지를 잃는다는 것을 안다는 점입니다.(319쪽)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한 가지는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비윤리적이고 융통성 없고 비인간적인 조직과 함께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숭고한 사명을 추구하는 조직, 모든 창의적 충동을 높이 사는 조직, 시대에 앞서서 변화하는 조직, 관료제를 탈피한 조직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경영 혁신을 위한 지침을 발견했기를 바랍니다. (406쪽)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발견하셨습니까? 이 책을 통해 그는 리더와 조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설파합니다. 수직적이고 융통성 없는 조직으로는 진정한 혁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욕구와 심리'를 그대로 인정하는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화를 말입니다. 왜 개리 해멀이 '먼저, 관리자들을 모조리 해고하라!'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혁명에 가까운 이런 변화가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도 말합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경영 혁신을 위한 지침을 발견했기를 바란다.' 그 어디보다도 수직적인 체제하에서 직원들의 욕망을 컨트롤하고 명령에 대한 복종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 조직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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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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