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주토피아>


<주토피아>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930년대 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월트 디즈니 살아생전 황금기를 보냈지만 1960년대 중반 그의 사후 오랫동안 부침을 겪는다. 1990년대 들어 완벽한 부활, 그야말로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르네상스를 구축한다. 그 시기에 나온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고전이자 명작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2000년대 들어 암흑기가 부활, 2006년 픽사와 합병하여 존 라세터가 돌아와 디즈니를 진두지휘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존 라세터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뻗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완벽하게 부활한 것도 모자라 제2의 르네상스를 연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하면 픽사였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할까. 연일 고전 명작에 오를 만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주토피아>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최소한 디즈니의 두 번째 암흑기와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최고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주토피아>는 현 시대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스로에게 던지는 우화로, 애니메이션으로서의 기술적 측면과 스토리와 장르와 캐릭터성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 그리고 최소한 청소년 이상은 되어야지만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마음가짐이나마 가질 만한 수준높은 주제의식까지 두루 갖춘 잡식성 완벽함을 자랑한다.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에게 주어진 임무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토끼 주디 홉스는 부모님은 물론 아는 모든 동물들에게서 반대와 멸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되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게 꿈이다. 그는 3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위대한 도시 '주토피아'로 향한다. 그곳은 동물들의 이상향으로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도시이다. 주디는 우여곡절 끝에 주토피아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전선 제1구역에 배치된다. 


주디에게 떨어진 임무는 고작 주차 단속. 그가 아무리 경찰 학교 수석이라지만, 그는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였다. 그럼에도 주디는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여 참으로 많은 주차 딱지를 끊는다. 어느 날 수달 오터톤 부인이 남편 실종 건으로 찾아온다.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닌데, 실종된 지 열흘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주디는 선뜻 나선다. 서장은 그에게 48시간 동안 찾을 것을 명령하고 그렇지 못할 시 주디에게 경찰복을 벗으라고 한다. 주디는 곧 단서를 찾아내는데, 하필 그 단서의 시작점이 되는 주인공이 일전에 안면 있는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였다. 주디는 닉에게 당한 뒤통수 치기를 이용해 꼬득여 수사를 진행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장르물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해석의 여지가 필요 없이 훌륭한 장르물이다. 초짜 경찰이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사건을 아무런 지원 없이 홀로 맞서게 되고, 콤비를 이루는 게 경찰이 아닌 범죄자라는 점이 콤비 범죄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콘셉트인 것이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위화감 없이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퀘스트를 완료하듯 하나 하나 실마리를 풀어내는 진행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화적 재미라는 한 마리 토끼를 이쯤에서 완전히 손에 쥔 격이라 하겠다. 여기에 주인공들이 사람 아닌 동물이라는 게 화룡정점이다. 애니메이션으로서, 장르물로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캐릭터성을 동물보다 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특히 양육강식 동물 세계에서 최하층에 속하면서 동물로서의 귀여움은 최상급에 속하는 토끼가 동물들의 낙원인 주토피아를 지키는 경찰이 된다는 설정은, 영화적 해석 즉 영화가 줄 수 있는 영화 외적인 교훈이나 감동 또는 깨달음적인 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토끼의 성장 또는 좌충우돌이 기대되는 것이다. 


토끼와 콤비를 이루는 동물은 하필 여우다. 토끼와 상극이랄 수 있는 여우는 늑대나 하이에나 등과 더불어 가장 미움을 받는 동물 또는 가장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다. 영화에서 토끼가 상식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여우는 편견 그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주토피아>가 주는 영화적 해석은 바로 그들, 토끼와 여우에게서 비롯된다. 


차별과 편견에 대한 우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명백한 우화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선사함에도 캐릭터와 배경과 대사 모두 인간 세계에 대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린 이 영화가 다른 손으로 완전히 쥔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 멍청하고 약한 토끼와 비열하고 믿을 수 없는 여우. 그들은 각자의 타율적 시선을 이유로 세상을 지키고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 일을 할 수 없다. 


차별 이전에 편견이 존재한다. 인간 세상에서 전통적으로 약자라고 통칭되는 노인, 아이,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닌 타율적으로 한계가 정해져 버린다. 오랜 시간 고착해 되어온 그 한계는 편견이라는 상대적으로 여지가 있는 두루뭉술한 개념에서 머물지 않고 명백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차별로 나아간다. 돌이키기 쉽지 않다. 


영화는 여기에서도 한 발 더 나아가, 약자에의 편견과 차별만이 아닌 강자에의 편견과 차별 즉, 역차별까지도 다루는 광폭 행보를 보인다. 사실, 여우를 투 톱 중 하나로 내세운 것에서 엿보이는 부분인데 여우에의 편견과 차별이 분명 존재하지만 여우가 동물 세계에서 약자에 속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약자에의 편견과 차별' 또한 그 자체로 편견과 차별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에 대응하는 개념이 평등이라고 한다면, 평등을 약자에 대응하는 개념인 강자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너무나도 훌륭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선 동물 세계에의 우화로서 너무 많이 간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 세계에서는 강자가 강자로서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게 당연하다. 인간은 어떤가? 당연하지 않은 게 정설이지만, 당연해졌다. 


동물이나 인간 세계가 똑같다. 완벽한 우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건 동물 세계에서 역차별이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태초부터 강자인 상황에서 강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약자로부터 어떤 조치를 당하는 건 강자가 주체가 되는 차별의 차원이 아닌 약자가 주체가 되는 생존의 차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류의 고찰이 직선적이고 일차원적이었던 점이 살짝 아쉬웠던 <주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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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