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기와 나>


이제 갓 제대한 도일 앞에 있는 건 아기 예준, 그리고 아내가 될 순영. 갑자기 순영이 사라졌다? ⓒCGV아트하우스



군대 전역을 앞두고 말년 휴가를 나온 도일, 엄마와 아내가 될 순영과 이제 갓 세상에 나온 아기 예준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고아 출신인 순영이 엄마와 모녀지간처럼 지내는 건 좋은데, 합세해서 날라오는 잔소리는 듣기 힘들다. 도일은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 가장인 것이다. 


엄마와 순영이 일을 나간 사이 예준이가 아파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예준이의 혈액형이 자신과 순영 사이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일은 이 사실을 순영에게 차마 얘기하지 못하지만, 운은 뗀다. 다음날 갑자기 순영이 사라졌다. 전화도 안 되는 건 물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까지 모른댄다. 


아는 사람들한테 부탁을 해 예준이를 하루이틀씩 맡기고 도일은 순영을 찾아 삼만리를 감행한다. 순영이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알게 되고, 마음은 조금씩 차가워진다. 예준이를 보는 스킬은 늘어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이대로 계속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도 한다. 도일은 순영이를 찾을 수 있을까? 예준이는?


아기를 통해 성장해가는 나


세상에 갓 나온 아기, 역시 세상에 갓 나온 얼마전까지 군인이었던 나. 이 조합은? ⓒCGV아트하우스



영화 <아기와 나>는 단편영화계에서 인정 받은 손태겸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엄마 뱃속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그리고 역시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조합이 의미심장하고 또 자못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10여 년 전쯤 나온 장근석 주연의 아기와의 명량동거를 다룬 영화 <아기와 나>, 20여 년 전쯤 나온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이 아기인 동생을 돌보며 일어나는 그린 애니메이션 <아기와 나>가 자연스레 생각나기에, 말 그대로 세상에 아기와 나뿐만 남은 암울한 와중에 현실을 헤쳐나가는 코믹&드라마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영화는 아기와 '함께'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기보다 아기를 '통해'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이제 갓 군대를 전역한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을 자신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 아니, 그건 엄혹한 게 아니다. 세상에 나온 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지만, 그 이후부턴 수많은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현실은 그 선택과 결과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최악의 상황,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한 결혼, 출산, 육아의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CGV아트하우스



영화의 포커스는, 감독의 시선은 도일에게로 맞춰져 있다. 특히 제목과 조금 맞지 않는듯한, 그래서 으레 그러려니 했던 식상한 기대와는 달리, 도일이 사라진 순영을 찾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그 사이에, 그 와중에 예준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게 사실이다. 결국 도일은 예준이를 택하게 될 거라는 결말이 눈에 선하고 말이다. 


흔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직접 길러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할까. 그만큼 결혼과 출산과 육아가 인간에게 가장 무게감 있게 다가오고 가장 막중한 부담감으로 짓눌려 오거니와 가장 처절하게 힘든 순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어른이 되는 방법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영화는 그 힘든 통과의례를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어른아이 한 명이 어떻게 헤처나갈 것인지 함께 기대하고 절망하고 응원하고 답답해 하며 보여준다. 확실한 감정이입을 선사하는 동시에, 절대 주인공처럼은 되기 싫거니와 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도 선사한다. 


아기가 없더라도 살아가기 힘든 막막한 현실, 앞날이 창창한 청춘이기에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청춘이기에 무섭지 않은 게 없기도 하다. 그 옆에 아기란 차라리 판타지의 영역이다. 자신을 버리고 아기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진정 아기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손에서 떠나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또다른 냉혹한 현실 앞에서 치를 떨며 무릎을 꿇는다.


수작은 아닐지언정 기대감은 들게 한다


기대감을 들게 하는 게 수작이라고 인정받는 것보다 좋을지도? ⓒCGV아트하우스



저예산 독립영화 중에 유난히 수작이라고 평가맞는 것들이 많다. 지극히 감각적이고 시대와 소통하는 작가와 연출자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일 테다. <아기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길이남을 수작, 한 해 또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수작 독립영화라 말할 순 없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감독이나 배우들에게 기대감을 들게 한다. 수많은 감독들과 배우들이 길이남을 명작 한 작품만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반해, 이들은 앞으로도 자주 또는 종종 모습을 드러내 이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 같은 기대를 주는 것이다. 그런 기대감을 가장 확실하게 심어준 장면이 마지막 장면인데, 그 프로페셔널한 롱테이크가 기억에 남는다. 


인생에 길이남을 큰일로 세상을 이제 막 경험한 이들의 마지막 장면은, 그 뒤에 이어질 수없이 많은 질곡들을 암시한다. 개인적으로 얼마전에 큰일을 저질렀고 누군가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간신히 저지할 수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엄청난 압박이었는데, 실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배운 게 많다. 


누구나 이렇게 살아간다. 겪고 겪고 또 겪으면서. 그 와중에 뭐라도 얻으면 좋으련만 대부분 남는 건 상처 뿐이다. 그래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건, 그 자체가 성장의 일면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수작(秀作)이 아니라도 좋다. 이 영화는 나에게 손수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해보지 못할 경험을 건네준 수작(手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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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안생과 칠월, 두 소녀의 14년 우정의 나날을 그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안생과 칠월, 열세 살에 우정이 시작된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칠월과 달리 집안은 잘 살지만 외로움에 떨며 빗나가기 일쑤인 안생이다. 그래서 안생은 칠월의 집에 자주 놀러가고 칠월의 엄마 아빠는 안생을 친딸처럼 생각한다. 3년이 지나 칠월은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안생은 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그들의 인생이 갈린다. 그리고 열일곱에 칠월은 가명에게 첫사랑을 느낀다. 그들은 곧 사귄다. 


하지만 모범생 가명은 모범생 칠월보다 자유분방하고 털털한 안생에게 끌린다. 이성으로서 끌리는 것인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자유와 행할 수 없는 분방함을 향한 열망인지는 알 수 없다. 스무살이 되어 안생이 고향을 떠나 북경으로, 밖으로 향할 때 칠월은 알게된 듯하다. 칠월과 가명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4년을 떨어져 지낸다. 서로 자신들의 현재를 자랑하다가 지루해 하다가 낙심하다가 절망에 빠진다.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난다. 가명이 칠월을 떠나고, 안생이 칠월에게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성인,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의 삶이 너무나 달랐던 걸, 그래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면서 상대방을 비하하기 쉬워졌다. 소울메이트의 비참한 말로인가, 다들 그렇게 되는 것인가.


두 소녀의 아름다운 연대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국영화로는 믿기 힘든 포스를 뿜는다.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도둑들>에서 조니 역을 맡는 등 많은 작품에서 얼굴을 선보여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한 배우 증국상의 연출작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두 소녀의 아름다운 연대기다.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증지위의 아들로도 유명한 증국상의 이 작품은, 중국영화로 믿기지 않는 포스를 시종일관 내뿜는다. 


특히 인물들 간의 미묘한 심리 표현, 복잡한듯 중심 잡힌 각본, 세련된 촬영 등에서 빛이 발하는데, 캐나다 유학파 출신의 감독과 현존 중국 최고의 청춘 작가의 원작에 두 여주인공의 상반된 삶을 대변하기 위해 투입된 4명의 여성작가들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담보된 대중성에, 최대치로 끌어올리고자 한 작품성이 더해진 것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은 수의 인물들(조연)이 출연하는 이 작품에 두 주인공 안생과 칠월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데, 그 둘만으로도 영화가 전혀 비어 보이지 않는 건, 허전해 보이지 않는 건 그 자체로도 대단하다. 나름 남주인공 가명이 이 둘 간에 일어날 사건사고들의 도구나 소품처럼 쓰이고 있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시종일관 세련된 멋을 풍기는 화면이 때론 더 빛나고 때론 그 힘을 캐릭터와 스토리에 실어준다. 그들의 대단한듯 별거 아닌듯 청춘의 순간순간들이 이 멋스러운 화면과 함께 하는 것이다. 서양 영화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을 다분히 풍기지만, 조악한 측면은 없고 잘 배워 잘 따라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진정한 여성주의


정반대의 삶과 생각을 가진 듯한 안생과 칠월. 진정한 여성주의는 그 둘의 합이 아닐까.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다분히 여성주의적이다. 영화의 핵심인 두 주인공이 여성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우며 고전적인 여성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사실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소울메이트로 굉장히 입체적이고 변화무쌍하다. 


칠월은 중산층의 안정적인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며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으로 자란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 지극히 고전적인 여성상을 지닌 채 말이다. 반면, 안생은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며 어딘가 삐뚤어진, 그러나 생각이 깊은 이로 자란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 자신의 손과 발로 모든 걸 체험한다. 그녀에겐 남성, 여성의 나눔이 불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얼핏 칠월의 인생이 재미없고 지루해 별볼일 없을 정도로 느껴진다. 반면, 안생의 인생은 스펙터클하고 화려해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삶을 부러워한다. 우리네 인생은 그들 사이의 어디쯤엔가 일 텐데, 영화가 이처럼 양극단을 보여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진정한 여성주의란 안생이나 칠월의 양극단에 있지 않다. 그들이 한몸과 같은 소울메이트인 것처럼, 여성주의란 여성으로서의 모든 삶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옳고 그름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때 반드시 맞게될 파국은 안생과 칠월만의 것이 아닌 모든 여성의 것이다. 


여성의 인생, 그 한 단면을 그리다


영화는 안생과 칠월을 통해 여성의 인생, 그 한 단면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단순한 로맨스 영화도, 치밀한 심리 영화도, 루즈한 인생 연대기 영화도, 청춘의 아름다운 한때를 그린 영화도 아닌, 수많은 여성의 인생 그 한 단면을 현실적으로 그러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려낸 영화가 이 영화이다. 누구도 안생과 칠월, 그들의 인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청춘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시작되고 그들의 청춘 끝자락에서 끝난다. 어쨌든 외형은 청춘영화일 수밖에 없다는 점, 그 이후의 인생을 알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그들의 청춘을 아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이 고마웠다. 청춘은 완성되지 못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의 모습은 그 절정이었다. 


누구에게나 눈부시게 찬란했던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영원하진 못하는 법, 빛 한 점 느끼지 못할 만큼 처절하게 힘들었던 날도 있다. 인생은 그런 날들의 무한반복이다. 그래서 인생이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닐까. 멈춰 있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나아가니까. 그러면서도 멈춰서 주위를 살피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니까. 더할 나위 없다. 


안생과 칠월은 서로를 부러워하지만, 난 안생과 칠월이 부럽다.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분신으로, 서로 자신을 온전히 줄 수 있지 않은가. 온전히 마음을 나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온전히 자신을 버릴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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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중경삼림>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영화이다. . 영화 <중경삼림> 포스터. ⓒ엔드플러스



왕가위 감독을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르게 한 영화 중 하나인 <중경삼림>. 제목을 이야기하지 않고 영화를 이야기하기 힘들다. 중경삼림을 영어로 바꾸면 'Chungking Express'이다. 홍콩에 가면 Chungking Mansion(重慶大廈: 중경대하)이 있다고 하는데,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고급 아파트였던 것이 현대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는 소란스럽고 낡은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은 그곳을 중심으로 <중경삼림>을 찍었다.


또 하나, Express는 영화에서 주된 장소로 등장하는 패스트푸드점의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머무르지 않고 떠나곤 하는 곳이다. '급행의' '신속한' '속달'의 의미를 지닌 Express와 일맥상통한다. 영화에서는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찾아와 외로움과 고독을 놓고 가곤 한다. 그러며 그곳에서 또다른 사랑을 찾는다. 


<중경삼림>은 이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은유와 상징이 상당한, 그래서 난해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면, 그건 스포일러 등의 방해가 아닌 도움이 될 것이다. <중경삼림>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홍콩이 반환되기 3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 시기 만들어진 많은 홍콩영화가 그렇듯이 홍콩 사회의 불안과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 영화에 그런 점이 없다고 할 순 없다. 다분히 있다. 반환을 앞두고 불안과 혼란에 빠진 홍콩사회를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분명 너무도 뻔한 도식이다. 애초에 실화도 아니고 사회를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사복경찰 223(금성무 분)은 매일 Chungking Express에서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헤어진 옛 애인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들이며 자신의 생일이자 이별 한 달 째가 되는 5월 1일까지 연락이 안 오면 그녀를 잊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그녀한테서 연락은 오지 않고 223은 파인애플 통조림 30개를 모조리 먹어치우며 그녀를 잊는다. 비로소 이별이다.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곧 223과 옛 애인 간의 사랑의 유통기한이다. 그가 매일 사들인 유통기한 5월 1일자 파인애플 통조림을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다 먹어치운 이유는, 자신의 사랑이 쓰레기 취급 받기 싫어서 라는 순수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수함은 비웃음을 사는 게 아닌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는 무작정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이(임청하 분)와의 하룻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23의 순수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가 왜 사랑을 잃었는지 왠지 수긍이 가게 되는 장면이지만, 세상은 그런 이의 사랑이 있기에 청량하고 아름답다. 급기야 그는 그 스쳐지나간 사람의 생일 축하한다는 한 마디에 "난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고 독백한다. 


특별한 공간 '집', 그녀의 사랑 방식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공간에 다른 이가 들어온 걸 견디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집을 꾸며주고 사랑으로 다친 상처를 치유해주려는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정복경찰 663(양조위 분)은 223처럼 매일 Chungking Express에서 애인이 좋아하는 샐러드를 사간다. 하지만 애인은 곧 이별을 고하고 Chungking Express 점원 페이(왕페이 분)에게 편지와 열쇠를 건넨다. 663은 실의에 빠진다. 밖에서는 멀쩡해보이지만, 집에서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느낌이다. 물이 떨어지는 수건에 자신을 이입해 울지말라고 위로하고, 인형이나 비누를 붙잡고 하소연한다. 


한편 페이는 매일 663의 집에 몰래 가 663의 옛 애인의 흔적을 지워나간다. 그렇게 663이 자신도 모르게 이별을 해나가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며 자신도 그곳에서 힐링을 받는다. 663이 받아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것이 페이의 사랑 방식이다. 


언젠가는 663이 애인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달려 들어온다. 그런데 잡그지 않은 수돗물이 넘쳐 집이 물바다가 된 게 아닌가. 663은 집을 치우며 "이 집은 점점 감정을 가진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며 급기야 집에 자신을 이입한다. 그녀와의 특별한 공간인 집이 우는 건 아직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런 집에 페이가 몰래 침입한 사실을 알게 된 663은 어떤 마음일까. 가택침입죄를 물어 감방에 쳐 넣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특별한 공간에 다른 이가 들어온 걸 견디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집을 꾸며주고 사랑으로 다친 상처를 치유해주려는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혹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


<중경삼림>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때가 과거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현재화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주제로 한다. 그렇다면 223과 663의 이야기가 각각 시간과 공간에 관한 것일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볼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223과 663의 이야기 모두 시간과 공간을 말하고 있다. 두 이야기에 공통으로 나오는 Chungking Express라는 공간, 223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사랑의 유통기한', 663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특별한 공간, 집'과 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혹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 그것이다. 


이 영화를 이렇게 한 마디로 정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모순적으로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가위 감독의 비서사적이면서 상징과 은유로 꽉 찬, 그러며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영상미가 그러하다. '감성의 자유로운 표현이나 놀이의 요소를 도입한 사고 방식이나 표현 수법'이라는 뜻의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대가 양가위의 대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꿰뚫는 무엇을 말하라면 단연 'California Dreaming'을 들겠다. 극 중에서 페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황금빛 낙원 캘리포니아를 근심 있고 우울한 감정선으로 처리했다. 그건 곧 <중경삼림>과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순수함과 불안이 공존하고 시종일관 우울한 듯하지만, 결국 해피엔딩을 이룬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이들(남자 주인공)의 도시 홍콩은 이들에게 불안과 혼란을 주지만, 불안과 혼란에서만 잉태되는 설렘과 꿈을 청춘에게만 허용되는 방황을 준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중경삼림>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때가 과거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현재화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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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돈의 팔촌>


영화 <사돈의 팔촌> 포스터 ⓒ서울독립영화제



영화는 종종 금기시된 사랑을 건드린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사랑, 이성이 아닌 동성 간의 사랑, (알고 보니) 이복형제 간의 사랑, 결혼한 이들 간의 사랑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이들 간의 사랑, 친구 엄마 또는 아빠와의 사랑, 죽은 이와의 사랑까지. 이밖에도 수많은 금기된 사랑들이 있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이니, 사랑은 참 하기 힘든 것 같다. 


영화 <사돈의 팔촌>은 금기시된, 아니 금지된 사랑을 다룬다. 친척이지만 남이나 다름 없는 관계를 뜻하는 '사돈의 팔촌'은, 주인공들이 원하는 그들 간의 관계이다. 그들은 사돈의 팔촌이 아니라 사촌 사이이기 때문이다. '사촌 간의 사랑', 많은 금지된 사랑이 조금씩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랑이다. 


서정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청춘 멜로 드라마


<사돈의 팔촌>은 다분히 에로틱한 제목을 뒤로 하고 다분히 서정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청춘 멜로 드라마다. 농밀하고 숨겨둔 욕망을 자극할 수 있기에 에로영화에나 쓰일 만한 소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래서 더욱더 이 영화가 주는 감성이 좋다.


독립영화라고 하면 짙은 사회성을 띄게 마련이다. 투철한 작가정신이 투입되어 이 시대와 사회가 갖고 있는 온갖 추함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본으로 독립한 영화가 갖는 유일하다시피 한 존재가치처럼 되었다. 오랫동안 독립영화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로서, 독립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키는 한국사회의 치부와 아픔을 천착해왔다. 그래서 이 영화 또한 그런 식으로 흘러갈 줄 알았다. 


영화 <사돈의 팔촌>의 한 장면 ⓒ서울독립영화제



예상해보면 이렇다. 사촌 간에 특별한 감정이 싹튼다. 곧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쪽은 그 사실을 모른다. 한 쪽만 알고 있다. 알고보니 한 쪽의 음모였다. 한 쪽의 윗세대가 다른 한 쪽의 윗세대를 파멸로 이끈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교묘히. 깊이 사랑한 끝에 그들이 사촌 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고, 그것이 곧 이 사회의 치부와 아픔을 드러내는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돈의 팔촌>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는 사촌 간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같다.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특별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 가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복잡한 게 인생이고 사랑이지만, 또 간단하다면 간단한 게 인생이고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복잡하지만 간단하잖아. 사랑하고, 사랑받고. 끝."


보편적인 사랑조차 포기해야 하는 청춘을 위해


만약 영화가 그들의 금지된 사랑을 애뜻하고 특별하고 농밀하게 그려냈다면, 자칫 '역겹다'고 느낄 수도 있었으리라.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코 좋은 의미로 다가갈 수 없는 종류이니까 말이다. 영화가 청춘 멜로의 스타일로 그들의 금지된 사랑을 풀어낸 건 가히 신의 한수라 할 만하다. 전혀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상당 부분 '금지'를 희석시켰다. 그냥 보편적인 사랑을 본 것 같다. 가슴 애이고, 아프고, 설레고, 초조하고, 기분 좋고, 즐겁고, 비로소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여느 사랑과 다를 바 없다. 


영화 <사돈의 팔촌>의 한 장면 ⓒ서울독립영화제



이 영화가 주는 감성의 대부분은 특유의 색채 그리고 카메라 워킹이 큰 몫을 차지했다. 봄이 생각나게 하는 색채는, 영화 <어바웃 타임>이나 <캐롤>을 연상시킨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소소하지도 않은, 파스텔 계열의 색이 흩뿌려진 듯했다. 주인공의 시선을 쫓으며 주인공의 모습을 포착해낸 카메라 워킹은, 주인공이 갖는 복잡한 사랑의 감정을 잘 드러낼 수 있게 했다. 


독립영화는 시종 일관 불편하게 진행되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끝맺곤 한다. 최근 들어 그러지 않은 독립영화를 봤는데, <족구왕>이었다. 많이 회자되고 어지간한 성공을 거둔 그 영화 역시 풋풋한 감성의 청춘 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도 그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청춘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것 같다. 사회의 치부와 아픔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사회를 이끌어야 할 청춘들이 사랑을 포함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하는 이 시대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게 아닐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라, 이 시대의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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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시간을 달리는 소녀> 포스터 ⓒTHE픽쳐스



일본 애니메이션과 타임리프(시간여행)의 만남은 어떨까. 시간여행 소재는 흔하다. 얼핏 생각나는 것도 한국 영화 <동감> <시월애>, 헐리우드 영화 <나비효과>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 <시간 여행자의 아내>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에 달한다. 반면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만남은 기억에 없어 기대에 부푼다. 실사로는 표현하기 힘든 화려하고 웅장하며 다분히 판타지적인 느낌을 표현해줄 것 같다. 


그 주인공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판타지적이지도 않았다. 굉장히 소소하고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기대를 져버렸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접한 타임리프 소재 콘텐츠 중 감히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일상에 뿌리를 두고 사랑과 우정, 성장의 곁가지를 보기 좋고 튼튼하게 훌륭하게 조화 시켰다. 


소소하게 일상을 그려내 타임리프의 장점을 살릴 수 있었다


여고생 마코토는 남고생 치아키, 코스케와 단짝이다. 셋은 같은 학교 같은 반으로 매일 방과 후에 야구를 하곤 한다. 코스케는 듬직하고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다. 의대에 갈 생각이다. 치아키는 코스케의 반대라고 보면 된다. 마코토는? 치아키랑 비슷하다. 뭐 하나 잘하는 게 없고 천방지축이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오히려 코스케가 비정상이고 치아키와 마코토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도 그런 우연이 없게 마코토는 타임리프의 능력을 얻는다. 얼마 후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 나 기차에 치는 사고를 당한다. 그 순간 마코토는 과거로 타임리프 한다. 사고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는 어찌 대처해서 살아난다. 능력을 알아채고 방법도 알아낸 마코토는 그야말로 남발하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일을 당하면 과거로 돌아가 좋게 되돌리곤 하는 것이다. 그녀는 맛있는 것도 먹고 공부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천방지축이지 않은 마코토가 되어 있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 장면 ⓒTHE픽쳐스



극 중 타임리프의 대상은 순수하게 일상이다. 남발한다고 하지만 전부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그녀만 조금 좋아졌을 뿐이다. 이 일상의 반복은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와 이 영화가 그리는 이미지와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 메시지는 뒤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고 먼저 이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영화의 이미지는 굉장히 소소하다. 반면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디테일하다. 캐릭터의 동작이 과장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정의 급격한 변화 대신 동작에 힘을 실은 것 같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되 미세하게 바뀌는 부분이 있어야 타임리프의 장점을 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코토는 자신의 타임리프 경험을 이모에게 털어놓는다.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모(원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는 자기도 여고생 때 그런 적이 있다며 마코토에게 "네가 그런 이익을 보게 되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하고 충고 한 마디를 한다. 그 한 마디에 마코토는 뭔가 깨달았을까? 


한편 마코토는 치아키에게 뜻하지 않은 고백을 받는다. 이 불편한 감정을 어찌할 바 모르고 계속해서 타임리프를 시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치아키를 계속 피해 다니는 것이다. 갈림길에 서 있는 마코토. 어떤 선택이 맞는 것일까? 계속해서 마코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이모의 한 마디가 실제가 되어 마코토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결국 치아키는 다른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는다. 마코토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른이 되어도 '사랑'으로만 성장하면 좋겠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청춘 성장 애니메이션이다. 시작할 때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마코토는 영화가 끝날 때 맑은 눈으로 창공을 바라본다. 하고 싶은 게 생긴 것이다. 치아키도 마찬가지다. 시작할 때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당황해 평소엔 잘 받기만 하던 야구공을 잡지 못했던 치아키가, 영화가 끝날 때쯤 훌쩍 유학을 떠나버린다. 그 사이 이들에게는 타임리프에 관련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 장면 ⓒTHE픽쳐스



마코토는 타임리프를 시전 하고자 할 때마다 어딘가 뛰어가 점프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다. 마코토는 지금까지 뛰어가 점프를 한 적이 없다. 그런 시도를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장차 무엇을 해야 할지 반드시 알고 전진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미래가, 그녀의 성장이 '사랑'으로만 치환되는 게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그녀의 사랑과 성장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게 되는 건 '공감' 덕분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거쳐가는 사랑의 열병. 사랑의 열병은 사람을 때론 절망에 빠지게 만들고 때론 절대 할 수 없는 것들도 하게 만든다. 마코토는 사랑으로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미래를 꿈꾸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여운이 참 은은하게 남는다. 짙게 남지도 않고 먹먹하게 남지도 않으며 삭막하게 남지도 않는다. 마코토는 분명 어른이 되는 큰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고서 라도 계속 '사랑'으로만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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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골에서 로큰롤>


<시골에서 로큰롤> 표지 ⓒ은행나무


학창 시절, 겉으로는 한없이 조용해 보였던 나는 속으로는 사실 굉장히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시험 때 반짝 공부를 해서 점수가 곧잘 나오곤 했는데, 그게 다 우리 '김경호' 형님 덕분이었다. 누구보다 시끄러운 내면을 간직한 나였기에, 시험 공부도 시끄러운 환경에서만 가능했다. 심지어 오락실에서도 시험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완벽한 소음 안에서만 완벽한 고요를 느낄 수 있었던 걸까. 지금은 많이 무뎌졌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시험 공부를 할 때면 어김 없이 김경호 형님을 찾았다. 그의 노래가 아니면 절대 시험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설령 했다고 해도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10여년 간 내 시험의 수호신이었다. 


시끄러운 음악이나 김경호나 생각나는 건 '록'이다. 물론 '시끄러운 음악=록'의 명제는 굉장히 편협된 생각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나도 이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록은 나에게 시끄러운 음악이다. 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시끄러운 음악. 새삼스레 고마움을 전한다. 그때 그 시절, 힘든 시험 공부 시간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록과 김경호 형님. 고마워요, 김경호. 


한편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음악을 대할 때도 역사적으로 대했다. 서양 클래식을 대할 때면 어김 없이 바흐, 헨델, 비발디,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등 역사적인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며 그들의 업적을 찬양하곤 했다. 록도 마찬가지다. 비틀스, 롤링스톤스, 더 후,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블랙 사바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퀸 등등. 이 역시도 역사적인 밴드 또는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며 업적을 찬양했다. 특히 장르적으로 굉장히 협소하다는 걸 알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서 마니아가 될 수 없었을지도. 


그렇게 나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는 록을 일본의 인기 작가이자 최고의 이야기꾼 오쿠다 히데오는 엄청나게 알고 있다. 그 결과물이 <시골에서 로큰롤>(은행나무)이라는 책인데, 1959년 생인 그(오쿠다 소년)의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의 록 마니아 시절을 다룬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그야말로 록의 전성기 중의 전성기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중 비틀스를 제외한 모두가 이 시대에 활동했다. 록의 전설 중의 전설들이 동시에 활동한 시대인 것이다. 


오쿠다 소년의 학창 시절은 정확히 록의 전성기와 겹친다.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그의 록 마니아 시절도 정확하게 겹친다. 나의 학창 시절(주요 시험 공부 시간)=김경호인 것처럼, 오쿠다 소년의 학창 시절=록 마니아 시절인 것이다. 그는 대도시도, 그냥 도시도 아닌 시골에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자랐다고 한다. 시골 사람이라 무던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지극히 반체제적이었던 그가 록에 빠지게 된 건 인지상정.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체제와는 반대편에 서고 싶다. 소수파로 있고 싶다. 모두가 오른쪽을 보고 있을 때 나만은 왼쪽을 보고 싶다." (본문 중에서)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던 오쿠다 소년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성적이 곤두박칠 친다. 비행 청소년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록에도 점점 빠져들었는데, 바로 이 록이 그의 위태위태한 학창 시절을 그나마 버티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확실하게 말하는데, 록 덕분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의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분위기가 다름 아닌 '록 스피릿'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오쿠다 소년의 록 마니아 시절은 여느 록 마니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라디오, LP, 앨범, 잡지, 공연에 있는 돈과 시간과 열정 그리고 없는 돈을 모조리 끌어 모아 열중했고 충성했다. 다만 그의 록 스타일은 눈에 띄게 바뀌었는데, 그야말로 록 장르의 거의 모든 걸 섭렵했다. 그 전에는 팝송, 아이돌에 매진한 적도 있고.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청춘이라면 누구나 지나갈 그리고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다. 


사실 난 그런 통과의례를 지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청춘을 다 바쳐 무엇에 열중해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이다. 오로지 청춘 만이 할 수 있을 텐데. 청춘이 완전히 가버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현실에 굳건히 발 붙여야 할 시기에 이미 와 버렸기에 아쉽다. 그런 면에서 <시골에서 로큰롤>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때 그 시절의 풋풋함과 감성을 느끼며 힐링하는 시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쿠다 소년에게 고마웠다. 그 시절을 복원해준 오쿠다 히데오에게도 고마웠고. 지금에라도 청춘의 통과의례를 경험했으니까. 물론 소설이나 영화로 수많은 청춘들의 통과의례를 대신 경험했었다. 하지만 청춘은 영원한 것처럼 그들의 통과의례 경험이 주는 카타르시스 또한 영원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온 직후에 학부모 면담이 있었는데, 담임선생이 "오쿠다는 장래 뭐가 되고 싶지?"하고 물었다. 나는 록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지식이 부족해 어떤 직업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설명하기도 귀찮고, 옆에 어머니가 있기도 하고 해서 '학교 선생이 되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때 담임선생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야 오쿠다. 좀 더 뜻을 크게 품지 그러냐?

지금 같으면 웃음을 터뜨렸을 장면이다. 어른들이 이따금 보이는 인간미를 조금씩 접하는 것 또한 중학교 3학년인지도 모르겠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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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의 예술, 만화] <어쨌거나, 청춘> 



<어쨌거나, 청춘> 표지 ⓒ교보문고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경제가 폭삭 주저 앉고 너나 할 것 없이 힘들었던 시기, 특히 취업이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려워져 아르바이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 수많은 청춘들이 있었다. 그들의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위로한다며 나온 책이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는데, 우주 대폭발 급의 공감을 얻으며 기록적인 흥행 성적을 보였다.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이 책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기란 힘들었다. 모든 걸 다 이루다시피 한 서울대 교수의 메시지라는 점도 그렇지만, 제목에서 오는 패배주의적인 느낌이 싫었다. 청춘이 청춘이지, 왜 청춘은 아파야만 하지? 기가 막힌 제목인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공감이 되면서도, 아픈 곳을 또 때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이 책은 나에게 가치 없는 책이 되었다. 


아파도 슬퍼도 외로워도 어쨌거나 청춘은 청춘이다


그런 와중에 '청춘'에 관한 책을 하나 접했는데 웹툰이었다. 빵빵한 스토리와 블록버스터 급 액션을 선보이며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빼앗는 웹툰들이 수두룩한데, 이 웹툰에 눈길이 간 건 작가의 추종자인 지인의 추천도 있었지만 그 소소함에 있었다. 더군다나 센치해지기 쉬운 청춘 관련 콘텐츠가 소소하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할 진데, 이 책은 얼핏 내공이 고고한 것 같지도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출간 1년 후에 나와 그 신드롬을 이어가려는 듯하지만 다시 보면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제목인 <어쨌거나, 청춘>. '아파도 슬퍼도 외로워도 어쨌거나 청춘은 청춘이다'라는 메시지가 보인다. 앞의 책이 청춘을 아파도 슬퍼도 외로워도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이 책은 그래도 청춘은 아름답고, 지나가면 생각나고 그리워하는 게 청춘이라고 말한다. 거창하지 않은, 오히려 소박하고 소소하고 인터넷 용어로 병맛(?) 같기도 한 그림으로. 


이 책의 등장 인물은 5명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 후 거즌 3년 째 공무원 시험 준비만 하고 있는 주인공 차현정. 차현정의 절친이자 정석적인 삶을 살아온 김대리. 그녀는 고교시절과 대학시절 모두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고교 동창이자 차현정의 전 남자친구 안민규. 그는 차현정과 함께 취업 준비를 하다가 그녀와 헤어졌고 입사했다. 이들은 모두 27살이다. 한편 차현정의 엄마와 차현정이 아르바이트하는 커피샵의 사장님이 등장한다. 


웃기고 슬픈 청춘의 한복판을 그리다


이 책을 보고 있자면, '웃프다'(웃기고 슬프다)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난다. 다름 아닌 주인공 차현정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는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져도 웃으면서 지나갈 정도로 누구보다 쿨하지만, 친구 김대리 앞에서는 자면서도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마음이 가녀리다. 시험에 떨어져도 엄마한테 당당히 만원을 빌리려 해 결국은 이 만원을 뜯어내지만 뒤에 가서는 엄마한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해내며 역시 눈물을 떨어뜨리는 친구이다. 


그런 이 친구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개그 본능이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의 모습이 상당 부분 투영되어 있는 것 같은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정녕 웃기고도 슬픈 이 시대 청춘의 전형이 아닌가. 


그런 와중에 작가는 취업해서 잘 나가고 있는 김대리와 취업에 성공한 안민규까지 출현 시켜 청춘의 바운더리를 넓히려 한다. 이 시대에서 청춘에 대해 다뤄지는 콘텐츠는, 대부분 청춘을 '취업 못하고 빌빌 거리지만 꿈을 꾸고 싶어 하는 20~30대'로만 그리고 있다. 반면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석대로 흘러가지만 그런 인생에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김대리와 사랑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민규를 통해서 말이다. 


꿈을 꾸지만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청춘, 남 부럽지 않은 인생이지만 끊임없이 회의감이 들곤 하는 청춘,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청춘. 이 모른 청춘이 어쨌거나 청춘이라고 말하고 있다. 취업 못하고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처지에 있는 청춘들만이 청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단계를 넘어섰어도 청춘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이 시대는 애써 피하는 듯하다. 


더 이상 청춘을 말할 때 위로를 들이대지 말기를


작가는 그런 이들까지 보듬고 있다. 이 시대의 청춘론에서 피해를 봤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려고 하지 않는 이들을. 작가가 어느 매체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청춘이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10대, 20대, 이제는 30대, 그저 시기별로 그때 그때 겪어야 할, 지나가야 할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온 몸으로 온전히 느끼는 것, 그런 것들을 쌓아나가는 것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다." (bnt 뉴스, 2011-06-17)


그래서 이 책은 취업을 하지 못할 때 봐도 재미가 있고 공감이 가지만, 취업을 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 봐도 여전히 재미가 있고 공감이 간다. 만화라고 우습게 보고, 거창하지 않다고 무시할 지 모르지만 그 진정성이 주는 감정은 어느 콘텐츠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선뜻 보게 되지 않지만, 일단 보게 되면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청춘을 말할 때 위로를 들이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비난을 해달라는 건 아니다. 그저 얘기를 들어주거나 얘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소소하고 소박한 얘기를. 꾸밈 없고 진솔한 얘기를. 그런 얘기라면 훗날 청춘이 지나 청춘을 그리워하게 되었을 때, 그때의 청춘들에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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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장 사소한 구원>


<가장 사소한 구원> ⓒ알마

그다지 끌리지 않는 표지, 유명하다지만 개인적으로는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 저자, 더군다나 노교수와 청춘이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라니... 세대 담론을 앞세워 사회를 진단하고 끝에는 힐링으로 끝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앞서 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 <가장 사소한 구원>(알마)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바로 '구원'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두 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마' 출판사에 대한 믿음도 한 몫 했다.)


'구원'은 굉장히 종교적인 단어인데, 일반적으로는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함'을 뜻하고 기독교적으로는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냄'을 뜻한다. 그래서 인지 일반적으로 아무 때나 쓰지는 않는 듯하다. 뭔가 거룩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금 시대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 구원이다. 


이 시대의 아픈 청춘들은 얼마나 구원을 원하고 있는가. 그런데 들여다보면 엄청난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일을 하고 싶고, 연애를 하고 싶고, 결혼을 하고 싶고, 아이를 낳고 싶고, 집을 갖고 싶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고, 노후에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나열해 보니 너무 많은 걸 원하는 건가? 전혀!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당연히 누리고 싶은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많은 청춘들이 이런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정말 '사소한 구원'을 원한다. 


노교수의 뻔하지 않은 방법으로 구원하다 


<가장 사소한 구원>에서의 구원은 위에서 말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70대 노교수와의 서른 두 통의 편지를 통해 30대 청춘이 받는 지극히 개인적인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녀 개인이 겪었던 아픔과 상처들에 대한 구원 말이다. 그녀 김현진에게 그 아픔과 상처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지독히 괴롭힌 악마 같은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 사랑과 이별, 죽음 등. 그녀의 아픈 이야기는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다. 


"저는 지금 속이 끓는 것 같은 분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때 제 팔의 큰 상처 자국을 보시고 왜 그러냐고 물으신 적이 있지요. 누군가를 죽이고, 저도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제가 목숨 바쳐 죽일 만큼 가치가 없었고, 제 목숨도 그렇게 헐하게 버릴 만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만두었지요. 그런데 제 인생의 숨통을 반쯤 끊어놓은 사람이 희희낙락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고 나니 누군가 심장을 쥐여짜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잔인하고 얼음 같은 손으로 말이죠." (본문 중에서)


그런데 이 아픔과 상처를 70대 노교수인 라종일 교수는 누구나 겪을 수 있다고 말한다. 종류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픔의 강도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외의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세상에 무서운 일은 없고, 우스운 일뿐이다', '이야기된 고통은 더이상 고통이 아니다'와 같은 주옥 같은 문구로 위로하기도 한다. 그만의 뻔하지 않은 위로의 방법이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을 자세히 이야기해주며 역시 그만의 방법으로 공감한다. 


인생을 먼저 살아가며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선배가 후배에게 보내는 따끔하고 현실적이지만 따뜻한 조언이자 위로로 보이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대동해 할아버지가 손녀를 어르고 달래는 장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현진의 말마따라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의 대화로는 보이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만약 남자친구를 선택할 때 '존경'을 제일로 놓는다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그들의 대화는 톡톡 튀고 진득하며 예리하고 두루뭉술하며 따뜻하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듯하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


김현진이 라종일 교수에게 보내는 16번의 편지와 라종일 교수가 김현진에게 보내는 16번의 답장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김현진이 자신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이 시대의 문제를 묻는다. 라종일 교수는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때론 부탁하는 투로, 때론 강압적이기까지 한 태도로 답한다. 책을 다 보면 라종일 교수가 이 시대의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걸 알 수 있다. 김현진은 이 시대의 청춘을 대표해서 그에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답이 뻔하지 않기에, 생산적이기에, 때론 김현진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기에 그 가치가 출중하다. 하나하나 곱씹어 볼 만하다. 


하지만 그의 답이 모두 정답인 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측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현진이 지금 청춘들이 일도, 연애도, 결혼도, 아기도 포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을 때 그는 세계의 모든 나라가 똑같은 아픔을 겪고 있으며 옛날 자신이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그 끝에는 항상 '무슨 도움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하는 자조 섞인 말을 하는 걸 보니, 그도 별 수가 없어 보인다. 


그러며 시종일관 아기에 대한 찬양(?)을 설파 한다. 인구 감소 때문도, 노동력 부족 때문도, 민족 융성 때문도 아니라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을 전하며 아기를 낳아 부부가 함께 양육하면서 겪는 특별한 경험을 말한다. 그에게는 그런 경험이 사람으로서 존재에 매우 중요한, 불가결한 일면이다. 


한편 그는 모든 면을 두루 살피려 한다. 오직 상대적인 면을 강조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스탈린과 히틀러까지 포용한다. 심지어는 일베와 서북청년단까지 끌어 안는다. 가히 충격적인 생각과 발언이라고 생각되지만,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이해가 되는 신기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마치 인간 사회가 굉장히 작아지면서 한 눈에 모든 걸 바라보게 되는 느낌이다. 그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게 없어진다. 적어도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때는 말이다. 신기한 경험이다. 


"현진은 이런 일에 관해 너무 판에 박힌 쉬운 의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는 일베이건 서북청년단이건 좀더 심층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중략)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무리 우리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사람도 아니다' 혹은 '미친놈들'이라고 말하지 말자는 뜻이었어요. 사람으로서 특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본문 중에서)


"이제 아무 걱정 마라, 나는 네 편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들의 대화.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 평생 가져 보지 못했던, 갖기 힘든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생각들을 잘 이끌어 낸 김현진이 대단하다. 라종일 교수는 이 책 하나로 이 시대 청춘들에게 멘토 이상의 버팀목이 될 것 같다. 단적으로 말해, 30대의 나이지만 흔치 않은 슬픔과 상처를 안고 있는 그녀가 낫기 위해 매달릴 만하다. 사소한 구원을 위해서.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속만 상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면 그의 말을 한 번 쯤 들어봄이 어떤가. 마지막으로 라종일 교수가 김현진에게 건네는 세 가지 이야기를 올려 본다. 첫째,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둘째, 나는 네 편이다. 셋째,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느냐?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나는 네 편이다." 책을 덮고 나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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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족구왕>



영화 <족구왕> 포스터 ⓒ 광화문시네마



중학교 2학년 때 족구라는 걸 처음 해봤다. 자발적으로 좋아해서 했던 축구를 제외하곤, 발야구와 피구에 이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축구를 테니스 코트로 옮겨 왔다고 할까? 의외로 재밌었고, 정말 의외로 잘했다. 대회 비슷한 경기였는데, 우승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봤자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었고, 이후 군대에서 하게 될 때까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군대에서 다시 접한 족구.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원래 못했던 건지, 소위 '개발'로 통하게 되었다. 내가 찬 공은 어디로 튈 지 나도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계급이 오르면서 점점 잘 하게 되었다. 그럼 뭐하나? 이제 슬슬 자신감이 붙고 재미있어 지려니 제대를 하게 되었다. 사회에 나오니 아무도 족구를 하지도 찾지도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족구하자고 하면, 백이면 백 비웃을 것이 뻔했다. 복학을 했으면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 취직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왜 하필 족구지? 축구, 농구, 야구, 탁구, 당구 등 할 게 이리도 많고, 그나마 할 사람도 많은데? 족구는 찬밥 신세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족구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족구라는 소재로 풀어낸 복잡다단한 청춘


영화 <족구왕>은 족구라는 소재로 이 복잡다단한 상황과 심리를 풀어냈다. 제대한 복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낭만을 청춘을 애써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남들 이목이 두려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하는' 못난 이들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갓 제대한 만섭은 족구장이 테니스장으로 탈바꿈한 것을 보고 아쉬워하며 친구 창호와 함께 '총장과의 대화'를 통해 총장에게 족구장 건립을 제의한다. 여기서 뜻하지 않게 미래라는 친구가 합류한다. 만섭은 수업 시간에 첫눈에 반한 안나에게 솔직한 감동을 선사해 족구 패밀리로 데려온다. 학교 체육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들은 열심히 대회 준비를 하며 동시에 족구장 건립을 위한 서명 운동까지 벌인다.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한편, 전직 축구 국가대표 출신 강민은 부상으로 꿈을 잃고 방황 중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여자친구 안나에게 보여줄 자신감도 없다. 그런 그의 앞에 만섭이 나타나 안나에게 작업을 거는 것이 아닌가? 강민은 안나에게 모질게 대하고, 이에 만섭은 강민에게 족구 한 판을 제의한다. 별 거 없을 거라고 생각한 강민. 하지만 그는 만섭에게 처참하게 깨진다. 이 영상이 학교 전체에 퍼지며, 학교에 족구 열풍이 분다. 남자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던 걸까. 


직접적인 대사로 주제를 전하다


영화는 족구라는 알레고리를 제외한 어떤 어려운 알레고리 없이 쉽게 말을 전한다. 만섭이 복학 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된 선배는 "족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공부해서 공무원이나 돼."라고 말하고, 만섭과 창호가 족구 연습을 할라 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한 여학생도 "여기서 족구 같은 거 하지 마세요. 남에게 피해를 주잖아요."라고 말한다. 


또 학교 교직원 한 명은 "학교에 족구 열풍이 불면 안 됩니다.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헤치고, 결국엔 취업률이 떨어질 것입니다."라고 열을 낸다. 안나도 족구를 두고, "더러워요. 복학생들이 족구하고 나서 땀내 풀풀 풍기며 강의실에 들어 오잖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족구는 그야말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 연애를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 인생에서 정답을 찾아가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그렇다면 만섭에게는 이런 무시무시한 뜻이 감춰져 있는 족구를 굳이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선배의 물음 "너에게 족구는 뭐냐?"에, 만섭은 "그냥, 재밌잖아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재미라. 주구장창 의미를 부여한 그 어떤 명언보다 명확하고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다. 살인자에게 같은 물음을 던지고 이에 살인자가 재미를 운운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마는, 여기서 중요한 건 족구이다. 영화에서 족구는 많은 사람들 안에 공통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꿈, 열정, 낭만이다. 


유쾌한 분위기와 뻔한 스토리의 시너지


이후의 영화 스토리는 뻔하게 흘러간다. 만섭은 대회 결승을 황홀하게 마무리하고, 만섭을 제외한 이들 모두가 사랑을 찾아간다. 반면 만섭은 바닷길 드라이브로 자신만의 낭만을 즐긴다. 그동안 보아왔던 독립영화, 즉 감독의 의중이 크게 영화를 좌지우지 했던 영화 중에서 가장 뻔한 스토리인 듯하다. 그런데 그 뻔한 스토리가 독이 된 것이 아니라, 득이 되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여타 (필자가 보아온 묵직하고 어둡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독립영화와 다른 유쾌상쾌통쾌함인데, 그 유쾌함이 뻔한 스토리와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본다. 이 유쾌함에 얽히고 설킨 또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를 얹혔으면 굉장히 이상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기분이 우울해 질 때면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다. 현재의 청춘을 다루면서 이리도 우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우리 청춘의 일면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는 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이지 않을까?


언제부터 청춘이 우울했는가? 청춘은 우울하지 않다. 

누가 청춘이 아프다고 했는가? 청춘은 아프지 않다. 

설령 우울하고 아픈 청춘이라 해도, 그조차 부럽기만 한 청춘이다. 

그 어떤 모습도 너무나 아름다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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