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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와 술> 모든 인류는 모태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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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계 지도자와 술>


<세계 지도자와 술> ⓒ인물과사상사

'백해무익'이라는 말이 있다. 해롭기만 하고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담배와 술을 든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중독성이 강하다. 하지만 이들도 완전히 해롭기만 한 것을 아닐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술의 경우는 적당히 섭취했을 때 물질대사를 높혀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 또한 혈액 순환 개선이나 스트레스 해소 등의 면에서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오죽하면 서양의 위스키는 그 어원이 '생명의 물'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술을 '약주'라고 부르겠는가. 적당한 양을 지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고 한다. 옛 문헌을 보면,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동물이 먼저 술을 인식했다고 나온다. 과일이 떨어져 웅덩이를 이루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효모에 의해서 발효가 일어나 술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를 모태술꾼으로 봐도 될까?


유명 지도자들도 술을 즐겼다


술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술 하면 자연스레 고주망태의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류에겐 술은 멀리하기엔 너무도 가까운 존재였다. 그건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지도자급, 영웅급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즐겼던 사람들이 꽤나 많다. 

책 <세계 지도자와 술>(인물과사상사)는 유명한 지도자들과 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 간의 은밀한 에피소드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화적 충격과 재미있고 즐거운 스토리텔링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책의 저자가 특이하다. 의외의 인물이다. 다름아닌 현재 의사이다. 의사가 술에 대한 책을 쓴다는 아이러니.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위에서 주지한 말이 증명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담배는 제쳐두고 술만큼은 백해무익하지 않다는 것. 이 책의 저자가 몸소 증명해보이고 있다. 


책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유명한 지도자들의 은밀하고 매혹적인 술에 얽힌 야사(野史)를 기대했는데, 실상은 매우 정직했다. 술보다는 인물에 치중한 느낌이 강했다. 시작하면서 인트로를 두고, 인물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에 얽힌 술 이야기를 짤막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때로는 술에 얽힌 인물의 직접적 에피소드를, 때로는 술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 술의 역사나 술의 종류, 술의 쓰임 등을 언급한다. 그 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불과 몇 년 안 된 에피소드이다. 러시아의 전 대통령 옐친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고주망태가 되어 난리 아닌 난리를 친 것이다. 어느 날 밤 숙소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택시를 잡아타려 하지 않나, 숙소 지하실 근처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질 않나. 또 독일을 방문했을 때는 술에 취해 예정에도 없는 연설을 하는가 하면, 급기야 베를린 시 야외광장에서 열린 환영 음악회에서 갑자기 단상에 올라가 연주 중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을 빼앗은 뒤 연주 음악에 관계없이 지휘를 하는 행동을 보였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영국의 영웅 넬슨의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넬슨이 전쟁 도중 사망하자 그의 유해를 영국까지 부패하지 않게 운반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냉장 보관 시설이 없었다. 이에 임시 방편으로 넬슨의 시신이 든 관 속에 럼주를 가득 채워 보냈다는 것이다. 헌데 영국에 도착해 열어보니 럼이 사라졌다. 알고보니 넬슨의 혼을 닮고 싶은 부하들이 그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생각되는 럼주를 전부 마셔버렸던 것이다.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지도자들의 이름을 딴 술


그리고 의외로 지도자들의 이름을 딴 술이 많이 존재한다. 미국의 전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마티니를 즐겼는데, 그는 직접 마티니를 제조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주 드라이한 이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를 2대 1로 혼합하는 레시피로 '루스벨트 마티니'라고 부른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에피소드에서 넬슨의 시신이 든 관 속에 럼주를 선원들은 '넬슨의 피'라고 불렀다. 


독일의 통일을 이끈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샴페인 같은 발포주와 독일식 흑맥주를 섞은 칵테일을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 오늘날 독일에서는 이 칵테일 이름에 비스마르크의 이름을 붙여 그에 대한 추억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칵테일 비스마르크'


영국의 전 총리 윈스턴 처칠의 이름이 붙은 샴페인도 있다. 그는 프랑스의 유명 샴페인 회사 폴 로제 일가의 오데트와 성과 나이와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을 과시했다. 그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처칠 사후에 폴 로제에서는 회사의 최고급 제품에 '윈스턴 처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프랑스의 나폴레옹,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 관련한 여러 술들이 '황제의' '왕의'의 수식어를 붙여 그 위상을 드높였다. 


치명적 편집 이슈와 아쉬운 점


비록 예상과는 다른 구성과 내용이었지만, 전혀 실망하지 않을 재미를 선사하는 책이었다.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는 하에서 더욱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있어 좋았고, 술에 관한 길지 않은 에피소드들은 재밌고 유익하기까지 했다. 술을 통해 역사와 문화와 인물을 알아보자는 취지가 잘 전달된 것 같다. 하지만 책 자체에서 상당한 문제점들이 눈에 띈다. 


다름 아닌 편집 이슈다. 맞춤법 틀린 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쓰기가 힘들 정도이다. 간략히 외래어의 예만 들어 본다. 같은 페이지에서 쿠데타와 쿠테타를 혼용했다. 정확한 표현은 '쿠데타'이다. 피노누와와 피노 느와를 혼용해 쓰고 있다. 철자뿐만 아니라 띄어쓰기까지 다르다. 정확한 표현으로 '피노 누아'라고 알고 있다. 틀린 건 고사하고 하나로 통일이라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같은 페이지에 판필로와 판빌로를 혼용했다. Panfilo인걸로 보았을 때, '판필로'가 맞는 것 같다. 


이뿐만 아니다. 결정적인 실수가 눈에 띈다. 조지 워싱턴에 관한 파트에서 '프렌치인디언전쟁'을 1954~1963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은 1754~1763이다. 이어서 넬슨에 관한 파트에서는 1771년을 1971년으로 잘못 표기했고, 나폴레옹에 관한 파트에서는 1800년에 벌어진 마렝고 전투를 1880년에 벌어졌다고 잘못 표기했다. 


이 책은 저자가 신문지 상에 연재한 글을 모아 제작했다고 한다. 애초의 잘못은 저자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위에 나열한 것들은 엄연한 편집 이슈라고 생각한다. 해당 인물이나 역사에 대해 알고 있지 않더라도, 앞뒤 문맥만 살펴도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초반부터 눈에 띈 실수들에 의해, 자연스레 책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끝까지 읽으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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