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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제국주의> 동양인이 갖지 못한 서양인의 무엇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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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과학기술과 제국주의>


<과학기술과 제국주의> ⓒ모티브북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의 4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들은 한때 제국주의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우리나라를 짓밟았거나 짓밟으려 했던 적이 있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경제적 이득? 다른 나라 견제? 국가 수반의 개인적 욕망? 국내 혼란 또는 넘치는 힘의 해외 분출? 무역 거점 마련? 문화 또는 종교 전파? 


사실 전세계 어느 나라든 제국주의와 관련이 없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총포를 앞세워 쳐들어간 나라, 총포에 무참히 짓밟힌 나라 모두에게 말이다. 우리는 이 '총포'라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총포는 서양 산업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그대로 서양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 산업기술의 총아를 앞세워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을 짓밟았다. 


또 이 총포는 자국 내에서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곤 했다. 생각나는 사례로, 일본 역사를 바꾼 전투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나가시노 전투'가 있다. 이 전투는 1575년 다케다 가쓰요리 군과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당시 다케다 가쓰요리는 죽은 아버지 다케다 신겐이 이룩해놓은 일본 전국 최강의 기마군대를 앞세워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 맞섰지만, 발빠르게 총포를 수입한 오다의 전략에 막혀 전멸하고 만다. 기술의 완벽한 승리였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3단계와 그에 따른 과학기술 3단계


그렇다면, 제국주의가 앞세운 기술에는 총포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역사학자 대니얼 R. 헤드릭이 약 30여 년 전에 지은 <과학기술과 제국주의>(모티브북)에 의하면 크게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증기선, 키니네, 총포 중에서도 '기관총'. 여기서 키니네라고 하면, 기나나무 껍질에서 얻은 알칼로이드(질소를 함유하는 염기성 유기화합물)로 말라리아의 치료약이다. 저자는 이 3가지가 유례한 상황과 이유, 과정과 결과까지를 아주 미시적으로 접근해 탁월한 심미안으로 주장을 펼쳐나간다. 


저자는 제국이 팽창하던 시기에 초점을 맞춰, 유럽의 제국주의가 식민지들을 만드는 3 단계에 증기선과 키니네와 기관총을 대입시킨다. 책에 따르면 대략 그 3단계는 침투와 탐험, 정복과 통치, 통신과 수송 네트워크 구성으로 나뉜다. 여기서 침투와 탐험을 할 때 증기선과 키니네가 필요하고, 정복과 통치에 기관총이 필요하며, 네트워크 구성에 증기선을 비롯해 운하와 케이블, 철도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 기술 요인들을 주제로 하여, 19세기 당시 기술 요인들이 불러온 변화가 다른 곳보다 더욱 강하게 나타났던 아프리카와 인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유럽 제국주의는 그 곳에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그리고 과학기술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침투와 탐험의 시기 그리고 키니네


침투와 탐험의 시기. 영국에서 발현한 산업혁명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와 맞물리는 이 시기에, 서양 제국주의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침투한다. 하지만 아시아의 경우, 본국과 너무나 먼 거리에 따른 여러 장애 요인이 나타난다. 또한 바다로부터 침투하여 내륙으로 들어가기 위해 알맞은 배가 필요했다. 때마침 발명된 '증기기관'. 이를 이용해 '증기선'이 만들어지고, 빠르고 안전하고 깔끔한 침투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황금의 땅 아프리카의 경우, 다른 문제가 속출했다. 원주민들의 저항, 완벽하지 않은 기술, 본국과의 먼 거리에 따른 보급 문제 등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인 '말라리아'였다. 먼역된 원주민들과는 달리, 유럽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아프리카 점령은 절대 불가능했다. 결국 기나나무 껍질에서 알칼로이드를 뽑아내 말라리아 해결책을 찾아낸다. '키니네'

과학기술 없이 서양 제국주의의 목적은 해결될 수 없었다. 또한 과학기술이 있었기에 목적이 형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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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과 통치의 시기, 그리고 기관총


정복과 통치의 시기. 이 시기는 너무나도 명백한 시기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총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조선을 침투했다'는 상용어구처럼 말이다. 총칼 대신 총포였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기관총'을 핵심으로 뽑았다. 한 번에 많은 수의 적을 비교적 정확하게 맞춰 죽일 수 있고, 이동하기도 편안한 악마의 화기. 산업혁명에 이은 총기혁명, 즉 당시 과학기술의 총아인 총기로 제국주의는 손쉽게 그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통신과 수송 네트워크의 시기, 그리고 증기선 외


통신과 수송 네트워크의 시기. 침투해서 정복하고 통치하는 시기가 지나고, 네트워크를 통해 안정화시키는 시기가 왔다. 이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건 다시금 '증기선'이다. 이 시기의 핵심은 인도. 유럽에서 인도를 가기 위해서, 기존에는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먼 거리. 더구나 본국과 식민지 간에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최대한 왕복 거리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이로 인해 그 유명한 '수에즈 운하'가 탄생한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작용했겠지만, 저자는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빠른 방법에 주안점을 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유일한 곳에 지어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홍해에 들어서면 인도양이 코 앞이고 금방 인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가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거의 동시에 체계적인 철도 시스템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신속한 이동에 그 목적이 있었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먼 거리를 손쉽게 이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해저 케이블'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시 되고 있는 통신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생각지도 못한 혁명이 일어났다. 진정한 IT 혁명은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의 유산


저자는 말한다. 과학기술이야말로 19세기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화된 지역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고 말이다. 그 어떤 사상과 종교와 지식보다도 훨씬 더 깊이 있는 흔적을 남겨,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과학기술'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이 과학기술을 한껏 뽐내고 있을 때 동양인들은 가만히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동양 또한 서양 못지 않은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 사이에 다른 점이 있었다. 서양인들은 동양인이 갖지 못한 유용한 기술 혁신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증기선이든 키니네 예방법이든 기관총이든 한 곳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곳에 빠르게 알려지고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그에 대한 자세한 말은 삼가고 있다. 대신 이런 말로 책을 끝마친다. 


"아프리카인들과 아시아인들에게 제국주의의 유산은 자신들을 정복했던 문명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는데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이 사용했던 기술적 수단은 제국 건설의 동기가 되었던 사상이 남긴 흔적보다도 훨씬 어두운 흔적을 남겨 놓았다. 유럽인들은 짧은 지배 기간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도 기계류와 기술 혁신에 매료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제국주의의 진정한 유산이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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