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 ⓒ 메디치미디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한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소설가로서 실패한 그는 다양한 문학 활동을 하며 자아를 찾아갔고 1925년에는 노벨문학상을 탔다. 1950년 94세로 죽을 때까지 일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였지만, 묘비명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다.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점, 가난했던 어린 시절, 소설가로서의 실패, 신념을 굽히지 않는 행동에서 오는 비난 등을 생각해보면 버나드 쇼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유머와 위트를 잊지 않았던 그의 생애를 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웃기다가 자빠져 죽고 싶은 여인
"웃기고 자빠졌네."
이번에도 묘비명이다. 전혀 다를 것 같은 버나드 쇼의 묘비명과 묘한 공명을 이룬다. 무엇일까? 죽고나서도 삶의 철학을 새기고 싶은 듯하다. 평생을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살았던 극작가의 묘비명, 평생동안 남을 웃기다가 무대 위에서 자빠져 죽고 싶다는 개그맨의 묘비명. 묘하게 닮아 있다.
'웃기고 자빠졌네'는 사실 '비타민 유머'(미다스북스, 2006)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한 개그우먼이 미리 써놓은 묘비명이라고 소개된 바가 있다. 그때는 그저 웃어 넘겼는데 지금에 와서 이런 놀라움을 선사할 줄이야.
개그맨 김미화의 묘비명이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책 제목이기도 하다.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메디치미디어).
80년대 국민 개그우먼이라 불리며 승승장구하고 개그콘서트를 만들어 신화가 된 그녀. 이후 정든 코미디 분야를 떠나 시사 프로그램에 몸담게 되었고, MB정권 하에서 찾아온 결코 짧지 않은 시련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KBS 블랙리스트'가 그 시작이었다. 세상을 웃기고 싶었던 '희극인'에서 투사 이미지가 박히게 된 '비극인'이 되기까지. 책에는 그녀의 속시원한 고백이 들어있다.
거대 권력 앞의 한낱 개인
"김미화씨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한 가지만 물읍시다! 미화씨는 좌요? 우요?"
"………."
한마디로 벙 쪘다. 이게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이 분 참 깃털처럼 가벼운 양반이라는 생각을 하며 답했다.
"연기자가 좌가 어디 있고 우가 어디 있습니까? 좌도 우도 아니죠!"
놓칠세라 그의 입에서 다시 흘러나온 말은 더욱 가관.
"그렇다면 우쪽으로 좀 더 붙으시고……."
'……. 그래, 진심어린 충고 고맙수!'
개그맨 김미화을 '투사'로 만든 수많은 일화 중 하나이다. 좌냐, 우냐. 구시대적인 이데올로기적 편가르기라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엄연한 현실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거대 권력의 편가르기. 한낱 개인이 거대 언론을 상대로 많은 상처를 남기며 덤볐다. 그녀는 결국 이겨냈고, 다시 돌아왔다.
거대 권력 구조 앞에서의 한낱 개인을 정신 병동의 정신병자로 그려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켄 키지)가 생각나게 한다. 소설 속에서 한낱 개인의 대표격이었던 맥머피는 이기지 못하고 거꾸러지지만, 그로인해 또 다른 개인들은 결국 탈출에 성공해 자유를 차지한다. 개그맨 김미화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다시 돌아와서 웃겨줘요!
책의 내용은 보지 않아도 상당 부분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을 듯하다. 워낙 이슈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상징하고 있는 건 그게 다가 아닐 거라 생각한다. MB 정권을 향한 비판의 신호탄이자, 김미화 개인으로서는 지난 일들을 청산하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선언같은 것일 게다.
'희극인'에서 '비극인'이 되어야 했던 개그맨, 웃기기만 하는 개그맨에서 시사하는 여자로 변신해 새로운 지평을 연 김미화, 거대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고 맞섰던 투사. 이것만이 그녀의 인생을 규정지을 순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투사다운 모습을 보이며 열렬히 활동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남편과 단란히 경기도 용인 구석 시골의 '후조당'에서 산다고 한다. 다시 돌아와 온 국민을 웃음바다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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