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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역사> 금지조치 당한 책들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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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금서의 역사>


<금서의 역사> ⓒ시공사

시간을 거슬러 중국 진나라 시황제 때로 가보자. 당시 진나라는 상앙과 한비자 등의 법가를 국가 통치 체제의 주된 전략으로 받아들여 우민 정책과 함께 법에 의한 획일적인 사회 통제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중국 대륙에 뿌리내려져 온 유가 학문과 사상은 이 체제를 비판하였다.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진나라의 승상 이사는 정부가 시행하려는 정치를 비판하는 일체의 사적인 학문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관련된 모든 책을 불태우게 하였다. 만약 관련 서적을 소장하고도 신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물론이었다. 


또한 불로장생약을 구한다는 방사가 많은 재물을 사취하는 시황제의 부덕을 비난하며 도망을 치자, 시황제는 유생들 수백명을 체포하여 매장해버리기도 하였다. 이후 한나라에서 '협서율(금서 소지를 금하는 법)'을 폐지할 때까지 유가는 크게 위축되었고 자유롭지 못하였다.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학문과 사상을 철저히 탄압하고 금지시킨 대표적 사례인 '분서갱유'. 그럼에도 그 속에서 유가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책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반체제 탄압과 금지의 사례는 비교적 현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2000년 노벨 문학상을 탄 '가오싱젠'이 있다. 그는 불문과 출신으로, 일찍부터 외국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브레히트, 베케트 등의 영향으로 부조리극에 눈을 뜨게 되어 1인자가 되었다. 때는 문화대혁명 직전이었다. 당연히 그는 정부의 요시찰 인물이었으며, 문화대혁명 당시 가혹한 탄압을 받는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을 놓지 못해 비밀리에 글을 썼다.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그에 대한 탄압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에 가오싱젠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창작욕구를 폭발시켜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글들 대부분이 사회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다시 요시찰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압박이 심해졌다. 더이상 버티지 못한 가오싱젠은 여행을 떠난다는 명목으로 프랑스에 망명 신청을 하였고 결국 망명하게 되었다. 이후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지만, 중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밖에도 금지, 탄압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처럼 금지, 특히 금서의 역사는 깊고도 풍부(?)하다. 우리나라처럼 철저히 이념으로 갈라진 나라의 경우, 그 깊이와 양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도 남을 것이다. 비록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자기검열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금지조치


<금서의 역사>(시공사)는 금지의 역사 중에서도, 금서에 관련된 대표적 사례만을 뽑았다. 고르고 고른 것이겠지만 다루는 책만 해도 자그마치 110여 권에 이른다.(목차에 나온 대표적 책들만 그 정도이고, 책 속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은 책들이 금지조치 당했다.) 그리고 이 목록의 대부분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책들이다. 어떤 책들은 당연히 금지조치를 당했을 거라 예상되고,(<1984>, <로리타>, 

<악마의 시>, <호밀밭의 파수꾼>, <다빈치 코드> 등) 어떤 책은 금지조치를 당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 않다.(<해리포터> 등) 


이를 책의 금지 성향을 나눈 파트만 해도 12가지이다. 그만큼 다양한 이유로 책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질서 유지, 악의 근절, 정신 지배, 권력과 독재, 음란, 허위와 기만 등. 개인적으로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금지는 '자기검열'이다. 대부분 자신이 쓴 글에 대한 부끄러움 내지 자격지심이다. 대표적인 예로 프란츠 카프카의 유언 편지가 있다. 그는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읽지 말고 남김 없이 불태워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막스 브로트는 이 유언을 따르지 않고 원고를 책으로 냈고, 오늘날 너무나도 유명한 몇 편을 구해낼 수 있었다. 


한편 전설적인 베스트셀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미첼과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레마르크는 카프카와는 완연히 다른 이유로 자기 검열을 시도했다. 흔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첼의 유일무이한 단 한 권의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전에 많은 미출간 소설을 지었는데 출간하지 않았고 모든 원고를 없애버렸다. 이후 애국심에 불타는 여성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만 남긴 것이다. 레마르크의 경우, 성공적인 저널리스트였지만 무명에 가까운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대중적 베스트셀러 만들기 전략에 의해 기존의 모든 글들을 스스로 폐기하였다. 실로 자기검열은 가장 강력한 금지조치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서도 계속되는 금서의 역사


금서의 역사는 현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세기의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와 <다빈치 코드>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다빈치 코드>의 경우 예견된 사항이고, <해리 포터>는 의외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21세기 미국 최초의 분서 사건의 주인공으로 <해리 포터>를 가리켰다. 미국 피츠버그에서 '하나님의 성회' 종파의 기독교 신자들이 예배 분서 중에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가 마법을 예찬한다는 이유로 불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바이다. 


<다빈치 코드>의 분서는 너무도 유명한 얘기인데, 작품 속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둘 사이에 자식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라는 이유로 이탈리아 세사노의 지방 정치가 두 사람에게 2006년에 공개적으로 불태워지고 말았다. 또한 2005년에는 터키의 한 지방 정치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모든 서적을 불태워버리라는 지시를 하기도 하였다. 비록 취소되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과 <1984>. 어김없이 금서의 역사에서 한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지금도 한 해에 전세계적으로 30만 권씩 팔린다는 역사적인 베스트셀러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성장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인 이 소설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을 보았다. 주인공 홀든이 음란한 언어를 구사하고 술도 마시고 창녀에게 동정을 잃기도 했다는 걸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은 그들에게 '도덕의 파수꾼'이란 멋진 이름을 붙여주며 조롱하고 있다.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이 미래를 조종한다


책에서는 <1984>가 금지조치를 당했다는 서술을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이 어느 나라에서는 분명 금지조치를 당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조지 오웰은 <1984>를 통해 금지의 역사를 꿰뚫는 말을 남겼다.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은 미래를 조종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진리부'에서 현재 지배하는 정치와 일치하지 않는 과거 문서의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한다. 미래를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과거와 현재의 점유에 있다. 즉 원본을 획득하고 해석을 독점해야 한다. 미래는 이제 정해지지 않는 범위가 아니라 단지 논리 정연한 결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우연적인 미래를 방지한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에서)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우연히 빅브라더를 비난하는 골드슈타인의 금서를 얻어 읽게 된다. 그로 인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니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빅브라더 정부는 과거를 지우고 현재만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반쪽 짜리 진실에 기반한 현재에서. 


우리나라는 국방부에서 모든 책을 검열하고 국가 체제에 반하는 도서들에게 '볼온서적'이라는 낙인을 씌운다. 그러면 시중에 유통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검열을 통해 몇몇 책들에 '19금'의 낙인을 씌운다. 당연히 판매에 큰 타격을 입는다. 이는 비단 도서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금지로 논란이 되었듯이, 영화계에서도 검열이 시행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금지의 역사는 깊고도 넓다. 


언젠가는 반드시 현재도 과거가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든지 지금 금지된 것들은 미래에도 금지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이제 TV에서 술과 담배 광고를 보기가 힘들어졌거나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점차적으로 사회에서 그에 관련된 수요가 적어질 것이다. 자연스레 문학작품에서도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꼭 필요할 환경이 있을 것이 아닌가? 미래의 언젠가 우리는 술과 담배가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은 다른 무수한 요소들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게임중독법'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천천히 교묘하게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금지의 올가미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고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단, 거기에서 살아남아 계속 빛을 발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금지의 역사, 금서의 역사는 곧 투쟁과 생존의 역사이고 존재 발현의 역사이다. 


금서의 역사 - 10점
베르너 풀트 지음, 송소민 옮김/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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