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표지 ⓒ서해문집



어느 한 나라의 역사는 결코 그 한 나라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계사적 역사의 흐름에만 맞물려 혹은 휩쓸려 흘러가지도 않는다. 세계는 모든 나라들 구석구석에 영향을 주고, 반대로 모든 나라들의 내부적 목소리가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역사를 대하는 또다른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아주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이는 결코 과거, 현재의 한 때만을 빌어 당시 혹은 다른 시대의 역사를 규정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역사는 모든 순간, 모든 곳, 모든 이들과 연관되어 있거니와 연관하여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가 가토 요코는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서해문집)를 통해 세계사적 흐름과 내부적 목소리가 맞물리고 현재과 과거과 대화하는 역사 해석을 선보인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중심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일본이 나아간 전쟁의 길이 있다. 


저자는 그 일례로 2001년 9.11테러와 1937년 중일전쟁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는데, 전쟁에서 이긴다는 자세보다 악독한 범죄자를 잡는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한편 중일전쟁 당시 일본은 전쟁이 아닌 '보상을 위한 군사행동'이라 규정하며 '일종의 토비전'이라 보았다. 즉, 이 두 전쟁을 상대가 나쁜 짓을 했으니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무력행사를 마치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전쟁에 대한 보다 폭넓은 관점과 시각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 한반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1894년 청일전쟁으로 근대 들어 강대국과 처음으로 전쟁을 치르고 정확히 10년 후 1904년 러일전쟁을 치른다. 한편, 러일전쟁의 이면에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러시아와 맞서면서도 서구 열강을 향해서는 만주의 문호 개방을 위해 러시아와 맞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하튼 일본은 중화질서에서 벗어났고 서구의 지배에서도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세계1차대전 발발 후 일본은 '영일동맹 협약의 예상할 수 있는 전반적인 이익을 방호한다'는 명목으로 독일에 최후통첩을 하고는 전쟁에 뛰어들어 독일령 산둥반도를 점령한다. 엄연히 같은 연합국이지만, 일본의 행동은 미국과 영국에게 비판을 받았고 그에 따라 일본도 미국과 영국에 반감이 싹텄다. 


1930년대 '만주사변' '상하이사변' '러허작전' 그리고 '중일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광폭 행보와 1940년대 중일전쟁이 여전히 계속되는 와중에 선택한 '태평양전쟁'까지, 일본은 외부로는 미국, 영국, 소련이 중국을 원조하며 정치적, 경제적 압박과 내부로는 일면 명확한 이유이지만 또 일면으론 의문스럽기 짝이 없는 이유로 진행된다. 


저자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일본이 걸어간 전쟁의 길을 일본만의 또는 일본만을 생각하는 관점이 아닌 중국과 서구의 관점까지 추가해 세계사적 통합 관점과 흐름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 지역 및 사회와 국가에 미친 영향과 변화도 명확하게 밝혀주어 전쟁에 대한 보다 폭넓은 생각에 도움을 준다. 


사실, 그리고 진실을 대하는 자세


역사는 때로 몇몇 인물에 의해 속절없이 흘러가기도 한다. 몇몇 인물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의견을 제시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1930년대 초 만주사변과 상하이사변 직후 급기야 만주국이 탄생한다. 당시 외상인 우치다 야스야는 강경론을 밀어붙이며 '나라를 초토화하는 한이 있어도' 만주 문제 양보는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국민정부의 대일유화파가 일본과의 직접 협상에 나올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육군이 전격적으로 러허작전에 돌입, 국면은 일본이 어쩔 수 없이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는 상황으로까지 진행된다. 


중일전쟁 발발 후 주미 대사가 된 후스의 주장은 탁월하다. 그는 중일전쟁이 시작되기 전 일본의 침공을 예견했는데, 그때 중국이 취해야 할 태도로 극단적 선택을 중용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정면으로 버티면서 2~3년간 계속 패배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는 '일본의 할복, 할복을 도와주는 중국'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일본이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통한의 박력이다. 


책은, 마지막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저자의 명확한 식견이 반영된 한 문장은 '비판적인 시각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 이 두 가지 자세를 함께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역사를 지극히 일방적인 시각 또는 선입관으로 대할 게 아니라 정확한 자료에 입각한 사실, 사실과 사실 사이의 진실 혹은 이면을 두루 살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전쟁에의 길', 특히 섬밖으로 향하는 길에의 애정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남달랐다. 지정학적 특수성인지, 민족적 특수성인지, 정치적 특수성인지, 모든 게 복합적으로 적용된 것인지. 온 세계가 반전으로의 길을 가고자 오랫동안 노력해왔고 더욱이 일본에게는 평화헌법이라는 명확한 반전에의 법이 존재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행동을 대외적으로 허락받고자 분주하다. 


일본 입장에서는 북한이라는 명확한 적, 중국과 러시아라는 사실상의 적을 겨냥한 움직임일테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어찌 이리도 똑같은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와중에 책에서는 다뤄지지 않다시피 하는 우리나라의 길이 궁금하다. 우리나라가 선택해야 할 건 전쟁 따위도 복속 따위도 아니다, 바로 캐스팅보트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오직 사랑뿐>


영화 <오직 사랑뿐>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러브스토리는 인간 역사에서 만고불변의 중심축이다. 당연히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콘텐츠에서도 가장 많이 다뤄진다. 심지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에서도 단연 중심이 되는 게 다름 아닌 사랑인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울고,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웃는, 그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영국 최초 개봉 2년여만에 한국에 소개되는 영화 <오직 사랑뿐>은 사랑 하나로 모든 걸 헤쳐나가는 두 남녀의 실화를 다루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전쟁의 시대는 끝났지만 차별의 시대는 여전한 그때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사랑에 빠졌다. 문제는, 흑인 남자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 백인 여자는 퍼스트 레이디가 된다는 것. 


영화는 달달하지만 때론 끔찍한 사랑의 모습만으로 스크린을 채우진 않는다. 대신 두 사람의 꿋꿋한 사랑으로 수많은 갈등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사실 그들이 사랑하는 것 자체가 그 시대에서는 '위험'과 '위대함'이 수반되는 행위였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을 지금에 와서 다시 들여다보는 건 사랑이라는 식상함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랑과 맞물리는 시대를 엿보는 것. 


사랑 하나로 모든 걸 헤쳐나가다


영화 <오직 사랑뿐>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1947년 전후의 영국, 세레체 카마(데이빗 오예로워 분)와 루스 윌리엄스(로자먼드 파이크 분)는 어느 댄스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은 흑인과 백인, 사방에서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더욱이 세레체는 당시 영국보호령이었던 베추아날란드의 왕자,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루스는 세레체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그들의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시련 또한 시작된다. 인종분리정책을 앞세운 영국, 베추아날란드를 호시탐탐 노리는 남아프리카연방, 그리고 세레체 카마의 삼촌 즉, 베추아날란드까지. 전 세계가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이 가야할 곳은, 정착해야 할 곳은 영국이 아닌 베추아날란드. 


그들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았다. 삼촌을 비롯한 가족, 베추아날란드 국민, 영국과 남아프리카연방, 언론, 루스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아프리카까지. 오직 사랑 하나로 헤쳐나가기엔 너무나도 험했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오직 사랑 하나로 모든 걸 헤쳐나간다. 사랑이 삶이 되고 삶이 사상이 되고 사상이 세상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한편으론 정치적, 한편으론 로맨틱·드라마틱


영화 <오직 사랑뿐>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멜로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오간다. <셀마>에서 위대한 마틴 루터 킹 목사로 열연했던 데이빗 오예로워가 이성과 감성을 울리는 연설과 한없이 달달한 눈빛으로 또 다른 위대함을 선보였고, <나를 찾아줘>에서 그야말로 무서운 아내로 열연했던 로자먼드 파이크가 한없이 여려 보이지만 한없이 강한 아프리카 최초의 백인 퍼스트 레이디의 파란만장함을 선보였다. 


한국 개봉 제목인 <오직 사랑뿐>이 멜로에 중점을 두었다면, 원제인 <A United Kingdom>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화의 중심에는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이 위치하지만, 그 이면에 복잡하기 그지 없는 국내외 정치 정세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종국에 말하고자 하는 건 '베추아날란드'라는 나라가 아닌가. 영화는 이 두 마리 혹은 수십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느낌이다. 


그건 세레체와 루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들의 개인적 사랑과 나라의 공인적 독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기 때문이다. 폭압적 시대를 빗겨가려는 또는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들의 선택들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게 맞물려 있는 건 참으로 정치적이지만 한편으론 한없이 로맨틱하고 드라마틱하다. 


세계사적 흐름과 내부 및 개인의 선택


영화 <오직 사랑뿐>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들의 이야기 또한 역사의 한 부분, 역사를 들여다봄에 있어 중요한 건 세계사적 흐름과 내부 및 개인의 선택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꽤나 탁월한 조망을 보여준다. '사랑'으로 대표되는 멜로를 끝까지 놓지 않은 채 그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를 촘촘히 채워나가는 것이다. 


나중에 보츠와나 공화국이 되는 베추아날란드의 면면, 보츠와나 공화국 초대 대통령과 초대 퍼스트 레이디가 되는 세레체와 루스의 면면, 거기에 영국 내부에서도 격렬히 또는 점잖게 오가는 정치적·인도적 차원의 입장에 따른 공방까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와중에 격정을 토로하고 감성적인 와중에 대단한 이성을 구축하는 한 인간, 나아가 한 나라의 모습 그 자체를 그려내는 것 같다. 


결국 돌고 돌아 사랑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사랑인 것 같다. 세레체와 루스였기에 그 모든 것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지만, 세레체와 루스가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이 점이 이 영화를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으면서도, 일면 '세기의 로맨스'처럼 가십거리로 봐도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는 부분이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코코>


<코코>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사, 디즈니, 혹은 픽사&디즈니는 거의 매해 우리를 찾아와 거의 실망을 안기지 않았다. 세상이 점점 디지털화 되어가는 만큼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나날이 완벽해가는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동시에, 살아가는 데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지극한 아날로그적 가치를 선보인다. 그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픽사&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와닿는 연유가 역설적으로 거기에 있다 하겠다. 조금이라도 더 어른일수록 조금이라도 더 아날로그적인 습성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 그걸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다. 영화 <코코>의 기본은 '가족' '사랑' '우정' '화해' '기억' 등의 가치이다. 


<코코>는 멕시코라는 이질적이라면 이질적이고 친숙하다면 친숙한 곳의 '죽은 자의 날'이라는 멕시코 전통 명절을 배경으로, 현실과 비현실이 만나고 삶과 죽음이 모이며 흩어진 가족과 멀어진 사랑이 다시 만난다. 그 가장 중요한 키를 '코코'가 지니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이들은 따로 있다.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의 모험 아닌 모험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의 모험 아닌 모험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빠가 음악가인 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아빠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을 뒤로 하고는 떠나버린다. 홀로 남은 엄마는 살기 위해 신발을 만든다. 그녀는 신발 만드는 법을 온가족에게 퍼뜨리고 집안 자체가 신발 만드는 기업이 된다. 여기 그 아빠와 엄마를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로 둔 미구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좋아라 한다...


미구엘의 고조할아버지 때문에 멕시코에서 유일하다시피 음악을 멀리하게 된 미구엘의 집안, 그럼에도 그는 멕시코 최고의 음악가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의 '기회를 잡아라'라는 말을 듣고는 꼭 음악가 광장에서 연주를 하려고 한다. 할머니가 부셔버린 기타 대신 그가 택한 기타는 델라 크루즈 납골당에 전시해놓은 기타. 


하필 그 날은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은 그 기타를 훔쳐 한번 튕기는 순간, 죽은 자의 세계로 가버리고 만다. 미구엘은 다시 산 사람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이멜다 고조할머니는 음악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그의 저주를 풀어주고자 한다. 하지만 미구엘은 그런 조건이라면 사절!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라고 믿게된 델라 크루즈에게 축복을 받고자 길을 떠난다. 


기억, 사랑, 통섭...


기억, 사랑, 통섭...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죽은 자의 날'은 스페인의 침략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멕시코의 전통 명절이다. 해골과 뼈 모양의 조형물이나 사탕을 만들고, 죽은 사람의 사진과 이름을 제단에 올리고는, 여러 종류의 축제를 연다. 이승과 저승이 이때만큼은 한 곳에 모여 어울리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비치는 바, 제단에 사진과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으면 저승에 있는 이가 이승으로 갈 수 없다. '기억'의 소중함...


멕시코에서 음악은 곧 삶이다. 멕시코인들은 비록 고단한 삶이지만 와중에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치며 스페인 등의 풍습과 문화가 혼합된 특유의 낭만과 열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음악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인 것이다. 한편 잘 드러내려고 하진 않지만 이면에 항상 있는 슬픔 또한 음악만큼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미구엘의 가족이 음악으로 흩어졌다지만 반드시 음악으로 다시 뭉칠 수밖에 없을 거다. 


<코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픽사&디즈니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통섭'이 아닐까 한다. 서로 소통하고, 전체 또는 부분들을 하나로 잇는 것 말이다. 미구엘과 그의 강아지 친구 단테는 참으로 꼬이고 꼬여 대대로 끊어져버린 태초의 끈을, 음악이라는 그 끈을 다름 아닌 음악으로 잇고자 한다. 그 와중에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화해가 있고 기억이 있다. 그 작업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시간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시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가족이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전통적이기 짝이 없는 케케묵은 가족 개념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 살아생전 얼마나 잘 살았냐에 따라 죽어서도 계급이 나뉘어 지는 듯한 모습 등 말이다. 보편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전하기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조금 더 신경 써 주었으면 하는 부분들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급기야 20년이 넘은 기억부터 5년 전 기억까지 불러낸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건 희미해져 한 장면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고, 어떤 건 여전히 생생하기 그지 없어 가슴이 아리고 쓰린 그 기억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들이 기억하는 게 그들로 하여금 저승에서조차 사라지지 않게 한다는 영화 속 깨달음. 


한편, 충격이라면 충격일 수 있지만 따뜻하기 그지 없게 다가온 부분도 거기에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장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삶과 죽음 모든 것들을 축복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너무나도 먼, 무섭고 두려운 무엇이 아닌가. 우리도 제사를 지내며 조상님을 모시지만 그건 굉장히 엄숙한 자리가 아닌가. 멕시코가 부러워지는 것이다, 이 영화 한 편으로.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유발 하라리의 <대담한 작전>


<대담한 작전> 표지 ⓒ프시케의숲



<사피엔스>로 단번에 세계적인 지식인 반열에 오른 유발 하라리, '역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통섭 인문학을 선보였다. 세계적인 석학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1998년작 <총.균.쇠.>를 연상케 하는 인류역사학의 대작이다. 인간이 가장 관심있는 건 역시 '인간'임을 이런 책들은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유발 하라리의 전공은 '중세 역사'와 '전쟁 역사'라고 한다. 박사학위도 '중세 전쟁사'로 받았다고 하는데, 굉장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겸비한 그의 전쟁 이야기가 어떤 재미를 선사할지 궁금하다. 학문적 고증과 저자의 행실은 둘째치고,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대중 인문 교양서인 시오노 나나미의 다양한 중세 전쟁사 이야기 책들이 생각나게 할까. 유발 하라리의 지금이 있게 한 원류의 책이 나왔다. 


<대담한 작전>(프시케의숲)은 유발 하라리의 전공을 제대로 살린, 그야말로 가장 그다운 지식과 스토리텔링의 향연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특수작전', 그것도 서구 중세 시대의 아무도 자세히 알지 못할 특수작전에 대해 다룬다. 1장은 중세시대, 즉 기사도 정신의 시대의 특수작전에 대한 전반적 해설이고, 2장부터 7장까진 개별적인 특수작전들을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선보인다. 


명확한 자료에 입각한 팩트, 상상력과 추측에 입각한 픽션의 아슬아슬한 경계 혹은 균형이 개개의 이야기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곧 딱딱한 역사 따위는 저멀리 던져버리고 한없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선사하는 것이다. 한 편 한 편의 특수작전 이야기들은 차라리 한 편의 영화이다. 우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 액션 드라마 영화를 보고 있는 거다. 


암살과 납치, 니자리파의 특수작전


특수작전에 암살이 빠지면 섭하다. 서구 중세시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점과 최고지휘관이었다. 그것들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정통적 공성전의 정규작전만이 답이었는데, 특수작전 즉 암살과 납치야말로 지극히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 책은 기사도 정신의 중세에 암살과 납치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책에서 보여지는 특수작전들의 행태를 보면 맞는 말이다. 


니자리파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비밀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암살' 'assassin(아사신)'이 다름 아닌 이 조직에서 유래했다. 이 조직은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과격파 집단 중에서도 극닥전인 파였다. 그들은 유럽 전역에 그 악명을 떨치며 여러 지역에 독자적인 근거지를 확립했다. 


그들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것은 몬페라토 후작 콘라트가 예루살렘 왕 대관식을 앞둔 때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탈라아 북부의 가장 중요한 귀족가문 중 하나인 몬페라토의 후작 콘라트는 살라딘에 의해 망해가는 예루살렘 왕국에 도착해 착실히 기반을 늘려간다.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 왕관을 쓰게된 그다. 


대관식으로 분주하던 차, 콘라트는 수도사로 변장해 있던 니자리파의 두 암살자에 의해 말 위에서 혹은 성당 안에서 살해당한다. 배후 없이 니자리파 수장에 의한 직접적 암살이었는지, 애초에 콘라트를 지지하지 않았던 잉글랜드 왕 리처드가 배후였는지 잘 나가던 차에 걸림돌이 된 콘라트를 암살할 필요가 있던 살라딘이 배후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로 인해 니자리파의 명성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차라리 역사소설에 영화 한 편


이밖에도 다양한 특수작전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로 공성전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공격측에 의한 기습인데, 그 방법이 대부분 매수이다. 충성심이 투철하지 않은 책임자 중 한 명이라도 꿰어내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돈으로 유혹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역공을 당한 사례도 있다. 그 사실을 사전에 알고 함정을 파놓은 것.


15세기쯤 되면 유럽이 봉건시대의 절정기, 수많은 가문들의 이합집산이 혼란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 와중에 독살로 수렴되는 암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행해졌다. 물론 그 죽음이 누구에 의한 암살인지, 암살이 맞긴 한 것인지 정확히 알려진 건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누군가에 의한 특수작전일 터다.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서구 중세시대 특수작전 이야기는 비단 특수작전만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적어도 그 전후로 50~100년은 훑어야 하는 바, 사실상 1000~1500년대까지 유럽 역사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대하역사소설 내지 서구 중세시대 역사 이야기에 특수작전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 한 편을 얹어놓은 느낌이다. 


한편, 고상하고 고고한 명예에 입각한 기사도 정신의 이중적 성격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람의 인생과 나라의 운명이 달린 전쟁에 무슨 명예 따위가 설 자리가 있을 것인지 생각하면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수히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정규작전보다 특수작전이야말로 전쟁에서 그나마 가장 '좋은' 개념이 아닐까. 비록 소수의 생명은 어쩔 수 없이 버려질 지라도. 


특수작전이라는 특수한 주제에 대한 특이한 주장이 이리도 스무스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는 건 전적으로 저자의 몫이겠다. 그 가치와 쟁점 등의 연구적 목적을 제처두고서라도 이 책은 참으로 재미있게 잘 읽힌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연구서로서는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이미 이름높은 유발 하라리이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저작물들을 더 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대담한 작전 - 10점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프시케의숲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이 영화 안 본 눈 삽니다] <빅토리아 & 압둘>


영화 <빅토리아 & 압둘> 포스터 ⓒ유니버셜픽처스



여러 가지 면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는 절대 없는, 아니 어느 면에서는 수준급의 모양새를 보이는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는 참으로 애매하다. 하지만 그 영화가 그 모양새를 앞세워 사실을 보여주되 진실을 오도하려 할 때는 더 이상 애매하지 않다. 철저히 까발리고 진실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모양새 좋은 영화야말로 영화의 본연, 즉 '보여주기'에 충실한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건 요즘 영화에서 어찌 보면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옳은 말도 아니다. 결국 알맹이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스토리텔링 말이다. 


스토리텔링은 그저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다. 거기엔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가 담겨져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메시지에 최소한의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메시지 또한 겉모양이 아닌 알맹이, 그 너머와 그 이면을 살펴야 한다. 영화 <빅토리아 & 압둘>은 그런 면에서 단언컨대 최악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모양새는 훌륭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과 메시지는 곤란하다, 아니 옳지 않다. 


판타지 로맨스에나 나올 법한 우정의 실화


영화 <빅토리아 & 압둘> 한 장면 ⓒ유니버셜픽처스



1887년 인도의 아그라, 감옥에서 일하는 인도인 카림 압둘(알리 파잘 분)은 키가 가장 크다는 이유로 빅토리아 여왕 폐하(주디 덴치 분) 50년제에 맞춰 모후르(인도 금화)를 운송해 보내주는 임무를 맡는다. 그는 이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길을 나선다. 한편 그와 함께 가게된 모하메드는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자들한테 줄 빌어먹을 선물 때문에 수천 마일을 가야 한다며 분개한다. 


모후르 수여식에서 빅토리아는 압둘의 잘생긴 외모에 반하고 급기야 곁에 두고자 한다. 그렇지 않아도 여왕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낸 압둘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며 빅토리아의 환심을 더더욱 사게 된다. 압둘 덕분에 인도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고 인도에 지대한 관심을 쏟게 되는 빅토리아. 압둘은 그야말로 승승장구, 빅토리아의 개인 비서이자 스승이자 가족과 같은 급에 이른다. 


하지만 일개 식민지 인도인의 평민 따위가 왕실의 일족처럼 취급받는 걸 원하는 사람은커녕 그저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당연히 온갖 시샘과 협박과 음모가 이어진다. 전 세계 1/4를 차지하고 10억 명의 백성이 있는 빅토리아 여왕과 그저 수십억 명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식민지 백성 중 하나일 뿐인 카림 압둘은 과연 그 특별한 우정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을까? 


영화 <빅토리아 & 압둘>은 자못 흥미로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아니, 판타지 로맨스에서나 다룰 법한 내용이지만 엄연히 실화이기에 어쩔 수 없는 궁금증이 인다고 하는 게 맞겠다. 빅토리아 여왕과 식민지 인도인 평민 카림 압둘은 어떤 연유로 모든 걸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게 되었는가?


이들의 특별한 우정,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


영화 <빅토리아 & 압둘> 한 장면 ⓒ유니버셜픽처스



압둘의 빅토리아를 향한 무한한 애정부터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애정의 사연과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출세에 눈 먼 평범한 청년인가. 차라리 그렇게 그려졌다면 최소한 이해는 되겠지만, 영화는 그를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빅토리아를 향한 인간적 애정이 한껏 묻어나오는 것이다. 


빅토리아의 압둘을 향한 총애는, 압둘이 잘 생겼다는 것, 그녀를 둘러싼 암투와 격식과 시샘 등 온갖 것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순수함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명목상의 통치자일 뿐 정작 가본 적 없는 인도에 대한 동경 등이 함축되어 있다. 압둘의 애정과는 달리 빅토리아의 애정엔 최소한의 이해는 가지만, 반면 이해하기 싫은 측면이 있다. 


다름 아닌 여기에, 이 영화가 내세우는 특별한 우정에 함정이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빅토리아 여왕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인 19세기를 온전히 통치해온 자다. 그녀는 제국의 수장으로, 뼛속깊이 제국주의가 들어찬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그녀를 마치 반제국주의자, 반인종차별주의자이자 수많은 파렴치한들에 둘러싸여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으로 그린다. 


한편 빅토리아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명제로 유명하다. 유럽 대부분이 혁명으로 왕권제 자체가 사라지는 와중에 영국은 수상을 중심으로 하는 내각에 정치권력 대부분을 내어주는 대신 상징성만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권은 행사했으며, 정치에서도 수상들을 통해 의견을 관철시켰다. 말하자면, 그녀는 명백한 제국의 수장이었고 고로 수많은 나라와 백성과 전통을 없애버린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영화 <빅토리아 & 압둘>은 균형감을 완전히 상실한 잡종에 불과하다. 


빅토리아 여왕, 대영제국의 치졸하고 무서운 술수


영화 <빅토리아 & 압둘> 한 장면 ⓒ유니버셜픽처스



영화는 말년의 빅토리아 여왕을 완벽하리만치 연기한 주디 덴치를 앞세워 19세기 영국 왕실을 역시 완벽하리만치 재현해냈다. 의상과 분장면에서 위화감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 겉모양과 겉치레를 앞세운 영국 왕실을 빅토리아 여왕이 셀프 디스(?)하며 자잘하게 균형을 맞추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압둘과 같이 오게된 모하메드가 죽으면서까지 영국의 추악한 면모를 가멸차게 비판하는 장면 또한 자잘한 균형 맞추기의 일환이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애써 끼워맞추기 내지는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술수로 보이는 건 비단 나뿐 만이 아닐 것이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의, 대영제국의 치졸하고 무서운 술수와 다름 없다. 


일제강점기, 문화통치시기가 그러했다. 겉으로는 전에 없이 조선인의 자유를 묵인했지만 실상 조선을 일본의 완전한 속국으로 만드려는 잔인한 술수였지 않은가. 그 기반엔 '당연함'의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빅토리아가 영화 내내 '인도의 여제' 운운하는 것도, 모든 이들의 위에 군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수많은 나라와 백성과 전통들이 사라지는 아픔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집합체이다. 


우리로서는 조금만 시선을 돌려 생각해보면 될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천황과 천황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조선인 평민이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영화가 천황을 반제국주의자이자 반인종차별주의자로 그리며, 천황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불만 등 때문에 매우 불쌍한 사람인 것처럼 그려내면 어떠하겠는가. 이건 명백한 진실 오도와 잘못된 망상이 아닌가. 더욱이 그것이 실화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면...


이 영화 때문에 우정이 갖는 순수함과 그 어떤 것도 초월할 수 있는 우정의 무한함이 퇴색되어버린 느낌마저 든다. 물론 빅토리아와 압둘의 우정은 특별했다. 그 자체로 신분과 인종과 나이를 초월한 순수함과 무한함이 엿보였다. 그러나, 영화는 그 너머까지 특히 빅토리아를 중심으로 나아갔고 무참히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영화의 만듦새 때문에 한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 만듦새가 진실을 오도하는 데 앞장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빅토리아 & 압둘> 안 본 눈을 사고 싶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굿타임>


영화 <굿타임> 포스터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생 닉과 그의 형 코니(로버트 패틴슨 분)는 뉴욕 탈출의 꿈을 꾸며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턴다. 똑똑한 코니의 기지로 큰 소란 없이 무난하게 성공하는 듯했지만, 은행원의 기지로 엉망이 된다. 이내 닉은 경찰에 잡혀 구치소로 향하고, 코니는 닉을 꺼내오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의 돈 많고 나이 많은 여자친구에게서 돈을 뜯어내 동생을 가석방시키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동생이 구치소에서 심하게 구타당해 병원에 있다는 걸 알고는 몰래 빼돌리려다가 실패한다. 그야말로 실패의 연속, 그는 이 실패의 굴레에서 탈출해 성공에 안착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코니는 어쩌다가 유대인 범죄자, 마약쟁이 미성년자와 동행한다. 그들은 하는 짓과는 다르게 허세조차 느껴지지 않은 찌질함을 풍기는데, 차라리 코니가 가장 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코니는 끝까지 그만의 기지를 발휘해 난관을 타개하려 해보지만, 역시나 실패만 거듭할 뿐이다. 그는 실패에서뿐만 아니라 뉴욕을 탈출할 수 있을까.


탈출


영화 <굿타임>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화 <굿타임>은 쉴 새 없이 달린다. 단 하룻밤의 짧은 시간이거니와 천지를 뒤흔들 사건 따윈 없지만, 주인공에겐 충분히 일생을 뒤흔들 사건들의 연속이다. 코니에겐 최종 지상과제는 동생과 함께 뉴욕 탈출. 그런데 동생이 잡혀 갔으니 동생을 탈출 시키는 게 우선이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기는커녕 지지부진하고 자잘하다. 


코니가 발휘하는 기지들은 참으로 소소하다. 대담하고 영악한듯 보이지만 굉장히 소심하고 착해보이기까지 하다. 그의 기지에 누군가는 직접적 피해를 받고 누군가는 도구로 쓰이고 버려진다. 그럴 때마다 코니의 눈빛은 흔들리고 심히 미안해 하는 듯하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주눅든 그라는 존재의 발현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을 어떻게든 탈출시켜 함께 가려는 행동으로도 코니의 천성을 알 수 있다. 그는 누가 봐도 충분히 착한 사람인 것이다. 비록 행색은 부랑자 또는 동네 양아치와 다름 없지만 말이다. 그는, 그들은 도시가 만들어낸 찌꺼기인 것인가. 그들은 탈출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이러니


영화 <굿타임>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유색 인종이 유독 자주 나온다. 주요 등장인물 중에 닉과 코니만이 백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코니를 받아주고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이 모두 유색 인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에서 벌어지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이런 류의 분위기를 담은 영화들이 충분히 존재했을 줄 안다. 여러 면에서 '스타일리쉬'를 기본 바탕에 두고, 한 인간으로선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거대한 무엇의 압박, 그리고 예견된 비극으로의 길. <굿타임>은 그 전통을 충실히 따르되 개인에게 더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다 보니 속도감이 더 붙는다. 


일렉트로니컬한 사운드트랙과 조명이 한 몫, 아니 큰 몫을 한다. 별 일 아닌 듯해보이는 사건사고들도 사운드트랙이 엄청나게 쫄깃하게, 힘겹게,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역시, 강렬한 원색 조명은 별 일 아닌 일을 당한 주인공이 엄청나게 크고 급한 일을 당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별 일이든 큰 일이든 상관없지 않은가. 충분히 즐겼다. 


로버트 패틴슨


영화 <굿타임>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사실상 단독 주연이라 할 만한 코니 역의 로버트 패틴슨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겠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너무나 큰 존재감을 선보였던 그는, 사실 그 와중에도 다른 종류의 존재감을 선보였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의 외모가 좀 특별히 튀기에 그의 배역 존재감은 곧 로버트 패틴슨에 가려버리곤 했던 것이다. 


반면 <굿타임>에서는 최대한 버리려, 자신을 버리려 한 것 같다. 지난해 개봉한 <잃어버린 도시 Z>에 이어 당당히 배역으로서의 존재감을 인식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충분히 찬사를 불러일으킬 만한 연기를 해냈다. 그건 또한 이 영화의 감독들의 스타일과도 잘 맞아 떨어진 결과라 하겠다. 


그들은 다름 아닌 조슈아 사프디와 베니 사프디 형제다. 베니 사프디는 이 영화의 닉으로 분하기도 했는데, 지적 장애를 가진 극중 인물을 완벽히 연기해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그들의 영화를 이젠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스타일리쉬의 새로운 장을 연, 아니 새로운 재능을 선보인 그들이다. 주인공들에게 절대 '굿타임'은 될 수 없었던 100분이지만, 관객들에겐 절대적인 '굿타임'을 선사한 <굿타임>이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야밤의 공대생 만화>


<야밤의 공대생 만화> 표지 ⓒ뿌리와이파리



자타공인 2017년 최고의 책으로 손꼽는 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뿌리와이파리). 해가 넘은 지금에서야 접했다. '과알못', 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아도 재미있고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한 책이 분명하다. 저자는 태블릿 펜을 산 겸으로 '만화나 그려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는데, 책에서 소개한 몇몇 인물들의 위대한 발견의 이면과 맞닿아 있어 흥미롭다. 


나는 문과생으로, 명명백백한 과알못이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화학, 물리, 생물, 지구과학에서 기억나는 건 '칼카나마알아철니주납수구수인백금' 주기율표 정도이다. 문제는 주기율표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칼카나마~'가 어떤 것의 줄임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알못의 고백은 이쯤에서 접는다. 


대신, 역사와 위인 이야기는 좋아한다. 고로 과학사도 좋아라 한다. 정작 중요한 그들의 업적이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의 이야기는 좋아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만화 또한 좋아한다. 소년만화도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교양만화에 눈길이 많이 갔고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 완벽히 부합한다. 과학을 알지 못해도 심지어 싫어해도, 만화를 좋아한다면 역사를 좋아한다면(?) 이 책은 맞다.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는 현재진행형의 다양한 개그코드와 저자의 과학을 향한 애정(또는 애증일까)을 맛보고 엿볼 수 있다. 엄선된 댓글을 읽는 건 큰 즐거움이다. 


과학기인 또는 과학천재 열전


책은 과학인물사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과학기인열전 또는 과학천재열전에 가깝다. 고로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례들이 가득하다. 그중 단연코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 아이작 뉴턴이다. 그는 최단강하곡선을 하룻저녁에 풀어버렸고 미적분을 가장 먼저 발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새로운 화폐를 만들기도 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뉴턴의 생소한 일화들이 재밌다. 


한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이야기는 자못 심금을 울린다. 그의 업적은 너무나도 어마어마한데, 그 업적들 중 상당수가 그가 눈이 먼 이후에 올린 것들이라고 한다. 라플라스의 "오일러를 읽으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고 그의 위대함이 묻어난다. 


여기, 역사상 최고의 천재 존 폰 노이만이 있다. 그는 7살 때 8자릿수끼리 나누기가 가능했고 9살 때 미적분을 마스터했으며, 15년 전에 읽은 책을 모두 암송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20대가 되자 한 달에 한 편꼴로 논문을 썼다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컴퓨터와의 계산 배틀에서 싱겁게 이겨버렸다는 실화 전설이 내려온다. 


과학계의 천재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알버트 아인슈타인 정도가 떠오를 텐데 이 책 덕분에 수많은 숨겨진 천재를 알게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혹은 슬픔. 물론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로 칭송받지만 생전에 주목을 받지 못한 천재들도 존재하거니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으니 마냥 절망(?)에 빠지는 결과만 낳는 건 아니다. 


<야공만>이 시사하는 것들


<야밤의 공대생 만화>는 참으로 많은 걸 시사하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런 식의 콘텐츠여야만, 즉 현재진행형의 수많은 인터넷 드립과 패러디로 중무장한 콘텐츠여야만 관심을 갖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이런 식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게 어렵고 지루한 지식들을 전달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큰 축을 이룬다. 


책을 접하기 전에는 앞엣것의 마음이 주를 이루었다면, 책의 첫 페이지를 보는 순간 뒤엣것의 마음으로 급격히 옮겨 갔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는 것, 더 읽다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저런 마음 같은 건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 책을 다 읽고 덮은 지금 드는 생각은 어서 빨리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 뿐.


한편, 저자는 마치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자신의 작업을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하고 만화가가 꿈이기까지 했다는 말은 결코 그 '끄적거림'이 그저 끄적거림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 책을 다 본 즉시 '나도 뭔가 해볼까?'하고 생각해봤는데, 그 '뭔가'가 나에겐 없다는 슬픈 자책만 돌아올 뿐이었다. 저자가 챕터를 끝낼 때마다 올리는 교훈을 나도 써 볼까?


아니, 쓰지 않을 테다. 생각나는 게 하나같이 우울하고 슬픈 것들이다... 황새 따라 하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가 되긴 싫다는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교훈일까. 여하튼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과알못', 아니 '만알못', 아니 '책알못' 한테도 과감히 맹목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 읽으면 좋아질 것이다. 과학도, 만화도, 책도.


야밤의 공대생 만화 - 10점
맹기완 지음/뿌리와이파리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초행>


2017년 마지막을 장식한 독립영화 <초행>. ⓒ㈜인디플러그


결혼한 지 만 2년에 다가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꿈꾸던 결혼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아, 당연하게 생각되어지기 시작한 이 생활에서 때때로 신기함을 느낀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남자'라는 것, 내가 아닌 남자가 꿈꾸던 결혼생활에 가깝다는 건 여자에겐 정반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린 연애 7년 차에 결혼에 다다랐다. 나는 결혼이라는 걸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항상 옆에 있고 싶었다. 무엇을 하든 함께 하고 싶었다. 부부인 건 물론,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또 하나의 나였다. 그러나 쉽지 않은 게 있다. 모든 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말이다. 


영화 <초행>은 연애 7년 차에 접어든 30대 커플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선 자연스러운 일일까, 이 정도 시간 동안 만난 30대 커플이면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까, 이들의 관계에 있어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다. 


모든 삶의 길은 초행길이고 또한 가시밭길이기에...


모든 길이 초행길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 가시밭길일 것이다. ⓒ㈜인디플러그



연애 7년 차 커플 수현(조현철 분)과 지영(김새벽 분), 그들은 동거 중이고 지영이 생리 끊긴 지 2주째라 걱정하고 있다. 임신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수현은 좋아하는 반응도 걱정하는 반응도 없이 그저 '진짜로?'만 되풀이하며 더 이상의 생각을 하기 싫어하는 눈치다. 자연스레 걱정은 지영에게로 집약된다. 


수현과 지영은 인천에 있는 지영네 집과 강원도 삼척에 있는 수현네 집을 차례로 방문한다. 편안하고 무난한 지영네 집에서의 일일, 다만 엄마가 지영이에게 결혼 압박을 가한다. 남들처럼 결혼한 딸 자랑도 하며 손주 또는 손녀도 돌보고 싶다는 것이다. 지영은 이 집에서 내 의견은 없다며 반발한다. 


한편, 수현 아버지 환갑 잔치 겸사 처음 수현네 집에 방문하는 그들. 지영은 곧바로 수현 엄마와 일을 하고 수현은 하릴없이 돌아다닌다. 저녁이 되어서 수현 엄마가 운영하는 횟집에 모이는 일가족. 말 한 마디 없던 수현 아빠가 취하더니 돌변하고 만다. 그렇게 잔치 아닌 잔치를 파하고 만다. 


어느 집을 가도 마음 편할 길 없는 수현과 지영, 더군다나 그들은 각각 좌절의 미술 강사이고 불안의 방송국 계약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보살펴주는 것만으로는 온전하기 힘든 삶의 양태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 또한 삶, 모든 삶의 길들은 누구나에게 초행길이기에 또한 가시밭길이기에 누구에게 묻기도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초행길의 어려움에, 현실의 부정적 작태


영화는 현실의 부정적 작태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인디플러그



영화에서 단연 중요한 모티브는 제목과 같은 '초행길'이다. 수현과 지영이 연애에서 결혼으로 가는 길이나, 서로의 집으로 찾아가서 생전 처음보는 어른들과 너무나도 깊은 인생의 선택을 종용받는 일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 길을 따라 내비게이션 없는 차를 타고 간다. 길을 잃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는 건 당연한 일. 


여기서 왜 내비게이션도 없이 길을 나서는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나서는 건 참으로 위험하고 고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하는구나 하는 상황 자체가 중요하다. 아니,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적 장치. 그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길을 헤매지 않는 법이 없다. 


영화는 참으로 현실적이다.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건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연기 같지 않다는 것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수현과 지영이 투영하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에 있다. 단 한 장면만으로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 수 있는데, 수현이 지영네 집에 갔을 때 가장 처음 한 건 안마의자에 앉아보는 일이었고 지영이 수현네 집에 갔을 때 가장 처음 한 건 수현 엄마와 함께 수현 아빠 환갑 잔치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주장할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접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이밖에도 이 영화에서만 수없이 많은 장면을 근거로 댈 수 있거니와, 굳이 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이 실생활에서 몇몇 장면들만 생각해보아도 훨씬 더 다양하고 적확한 근거를 댈 수 있지 않겠는가. 잔잔하고 오밀조밀하게 초행길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와중에, 세심한 날카로움으로 현실의 부정적 작태를 보여주니 감복할 따름이다. 


이 시대, 청춘의 길이란


결국, 이 시대를 조망하는 영화이다. 청춘의 길이란 무얼까. ⓒ㈜인디플러그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시대상이다. 그중에서도 이 시대의 청춘. 행복하지 않았던 과거, 좌절하는 현재, 불안한 미래를 떠앉고 살아가는 청춘의 길이란, 그게 초행길이라서 힘들고 헤매는 것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이다. 거기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이 영화가 집중하는 건 '지영'일 텐데,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2016년 말에 나와서 지난해 초유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나게 하는 이름으로, 청춘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힘듦을 지나 다음 '단계'에 진입하려 할 때 그녀에게만 짓누르는 엄청난 압박들. 그 압박에는 가장 힘이 되어주어야 할 수현의 압박 또한 있으며 그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그들이 어떤 길로 나아가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는 모른다. 헤어질 수도 결혼할 수도, 아기를 낳을 수도 낳지 않을 수도, 그들의 직장에서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때론 좌절하고 때론 불안에 떨 수도 뭔가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갈 수도,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자, 우린 이 영화로 충분하고도 넘치는 공감을 받는다. 저건 내 이야기니까. 그렇다면 위로는 받을 수 있을까, 좋은 방법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본래 공감과 위로는 함께 따라오는 법인데, 이번 경우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저런 수많은 어려움이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올 거라는 확신만 생길 뿐이다. 


영화는 더할 나위 잘 만들어진,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다. 군더더기 없지만, 수많은 생각들이 들게 만들며 아련한 여운까지 남긴다.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지루함 없이 헤아릴 요소들을 이러저리 굴려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말의 판타지적 요소를 찾을 수 없는 칙칙한 현실에 씁쓸해지는 걸 막을 길 없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박시백의 <35년>


<35년> 1~3권 세트 ⓒ비아북



고우영 화백의 지극한 작가주의 대하역사만화는 1970~90년대 만화계를 넘어 문화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십팔사략>이 가장 이름이 드높은 듯한데, <삼국지>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과 개입이 돋보인다. 그 덕분에 우린 한국사와 중국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다. 


박시백 화백은 고우영 화백 이후 끊겼던 대하역사만화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인데, 무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서술 와중에 자신만의 시선을 유지하였다. 어찌 보면, 철저한 고증과 전달이야말로 진정 견지해야 할 '시선'이 아닐지. 


그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후 4년 여만에 들고 온 만화는 다름 아닌 <35년>(비아북)이다. 1910년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린 후 1945년까지 35년 간 이어진 일제강점기를 다루었다. 박시백 화백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하고자 하는 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를 실천한 결과물이겠다.


우리는 이 책에서 멀지 않은 과거, 혹은 현재까지 고스란히 이어지는 과거, 또는 현재로서의 과거를 볼 수 있다. 이번엔 1, 2, 3권의 일제강점기 초반 15년이 출간되었는데, 임시정부 100주년인 2019년까지 7권 완간을 예정하고 있다 한다. 아마도 그는 이후 6.25전쟁사 또는 한국 현대사를 그려내지 않을까 싶다. 


3.1혁명의 발견


내가 아는 일제강점기는 여전히 '3.1운동'에 머물러 있다.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에의 이사와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린 바로 그 날 말이다. 일제강점기 시기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중 가장 중요한 날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진정한 가치와 영향을 잘 모른다. 다만 많이 들어 봤을 뿐. 


우린 <35년>을 통해 '3.1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을 뿐더러, 운동이 아닌 혁명이 된 3.1혁명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비록 이날 독립을 이룩하진 못했지만, 더욱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지만, 일제의 간담을 충분히 서늘하게 하고 이후 독립운동의 양상까지 바꾸었다. 그로 인해 같은 해 임시정부도 세워진다. 이를 단순히 운동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결정적으로 3.1혁명을 일구어낸 이들은 다름 아닌 민중이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게 되었고, 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의 요구가 잇따랐다고 한다. 비로소 우리 민중은 근대인으로서 한 발 나아가게 된다.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게 아닌가. 


'촛불시위' 따위가 아닌 '촛불혁명'이라 불려야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미시적으로, 그 현상 자체만 놓고 읽는 게 아닌 거시적으로 역사적으로 상황과 맥락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35년>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 심미안과 역사적 맥락 읽기를 보여준다. 3.1혁명의 발견 하나로도 충분하다. 


균형잡힌 항일과 친일 소개


책은 항일과 친일 모두를 균형잡히게 소개한다. 일제의 만행 이상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만행, 그리고 그 만행 덕분에 어둠의 시대에 빛의 나날을 보내는 모습까지. 우린 그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기시감을 느낀다. 모든 시대에는 빛나는 존재들 때문에 어둠이 드리우는 때가 있는 것이다. 


반면, 어둠의 시대에 진정한 빛을 내는 이들이 있다. 모든 걸 바쳐 일제와 친일의 만행에 항전하고 독립에의 올곧은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내는 빛은 결코 어둠을 드리우지 않는다. 다만, 어두울수록 빛을 더 낼 뿐이다. 빛을 내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한없이 태워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가장 뇌리에 남는 이들은 '의열단'이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이 혁명의 대본영이고 폭력이 혁명의 유일한 무기라며 모든 걸 내던지고 폭력 투쟁에의 길을 갔던 그들. 우린 영화 <아나키스트> <암살> <밀정> 등과 책 <아리랑>을 통해 이들을 접해왔다. <35년>에서 의열단은 가장 중요한 투쟁을 이끈다. 


이밖에 나의 마음을 끌어당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다 열거하지 못해 아쉽다. 책을 보면 소상하게 알려줄 것이고, 부록을 통해 훨씬 더 자세히 설명해줄 것이다. 내년이면 '파리강화회의' '고종 황제 승하' '2.8독립선언' '3.1혁명'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이 책은 그때를 맞춰 완간 예정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란 무엇인지, 일제강점기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하는 콘텐츠가 되길 바란다. 


35년 1~3권 세트 - 전3권 - 10점
박시백 지음/비아북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고스트 스토리>


2017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극찬 받는 <고스트 스토리>. ⓒ리틀빅픽쳐스



한적한 교외의 작은 집에서 단란하게 둘이 살아가는 작곡가 C와 M. 어느 날 집 앞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뜬 C. 그는 영안실에서 유령이 되어 깨어나 돌아다닌다. 그러곤 당연한듯 집으로 향하고 M을 지켜본다. M은 C, 그리고 C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견뎌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M은 새로운 사랑을 하고 그 사랑 역시 상실한다. 급기야 M은 집을 떠나고 C는 홀로 남는다. 집은 계속해서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도 C는 계속 그 집을 지킨다. 아니, 그 집에서 M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모르는 걸까. 한번 떠난 집에 그녀는 결코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녀는 올 수 없다는 걸. 그럼에도 그는 그 집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지극히 한정된 말과 몸으로만 표현해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랑일까, 시간일까, 공간일까. 


'유령' '이야기'


영화는 '유령'의 '이야기'다. 유령도 중요하고 이야기도 중요하다. ⓒ리틀빅픽쳐스



2018년 해가 뜬 지도 열흘이 되었지만, 2017년에서 완전히 헤어나올 수 없는 건 2017년 말에 나온 좋은 영화들 때문이겠다. <고스트 스토리>도 나의 발목을 잡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별 내용 없이 온전히 '감각'으로만 영화를 채우는 솜씨가 기막히다. 그 감각은 사랑과 시간과 공간이라는 큰 개념들을 아우른다. 


'유령 이야기'라는 상투적이고 예측가능한 제목은 이 영화의 노림수이자 전체적인 주제 및 느낌 등과 부합한다. 화려하고 예측불가능한 건 눈길을 가게 만들지만 몰입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진 못한다. 반면, 전형적인 건 신경이 사방으로 뻗지 않고 한 곳으로 모이는 결과를 도출한다. 이 영화는 그걸 실현시킨다.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령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유령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가 '유령'이어야 한다. 일념을 가진 채, 영원불변한 존재여야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고 우리가 그 이야기를 통해 여러가지를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독특하게 눈에 띄는 것들


화면비율이나 롱테이크와 같은 감각적 영화 기술이 눈에 띈다. ⓒ리틀빅픽쳐스



이 영화를 두고 '독특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도 같다. 초반부터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우선 화면 비율이다. 1.33:1 비율이라는데, 네 모서리가 둥그스름하게 처리되어 있다. 의식하지 못하게 클래식한 느낌을 전하며 시간이라는 개념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집요한 무동(無動) 롱테이크와 절제된 대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롱테이크의 대가라 하면, 알폰소 쿠아론이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등을 뽑는다. 그들은 완벽한 동선에 따라 인물의 움직임에 맞춰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롱테이크로 유명하다. 대단한 기술과 연기에 감탄을 보낸다. 


반면 이 영화의 롱테이크는 가만히 있는 카메라가 기본이다. 거기에 일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 영화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장면이 길게 등장한다. 어떨 때는 정물화를 찍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절제된 대사와 함께 조만간 행해질 움직임과 대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한편, 유령답게(?) 한순간 시공간을 뛰어넘는 전개는 앞엣것들과 대조를 이루며 또다른 몰입을 불러온다. 


이렇게 완성된 몰입과 집중은 감독이 내보인 감각의 결과이며 감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감각이란 무엇일까. 여러 예술 콘텐츠 중에서 영화만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고스트 스토리>의 대다수 장면들은 영화가 아닌 다른 콘텐츠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사랑, 그리고 시공간의 덧없음


사랑과 더불어 시공간의 덧없음이 영화의 주를 이루고 맥을 형성한다. ⓒ리틀빅픽쳐스



고스트가 된 C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M에게 말을 건넬 수도 M의 몸을 만질 수도 M의 머릿속이나 꿈을 통해서 표현할 수도 없다.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기다릴 뿐이다. 그는 그저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대로는 이별다운 이별이 될 수 없지 않은가. C는 M에게서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C는 M이 남기고 간 쪽지를 봐야 한다. 


시간의 덧없음은 사랑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라 할 수 있다.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고스트 C, 그에게 시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는 정반대로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이 아닌 인간사 나아가 최초와 최후의 역사로 보면 또한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결국 최후에는 모든 게 사라질 운명이라면 말이다. 무한의 시간을 가진 고스트도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의 집이 수없이 다른 무엇으로 변하는 것도 시간의 덧없음과 일맥상통한다. 사랑도 시간도 공간도 다 부질없는 것인가. 그 와중에 고스트 C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을 이어나간다. 그게 사랑이 아니고 무언가. 오직 사랑뿐이다. 


영화는 엄청난 여백을 자랑한다. 더불어 많은 궁금증을, 영화가 끝나도 풀어지지 않는 궁금증들을 남겨두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시공간의 덧없음을 이겨내는 무모하고 절절한 사랑'이라는 필자의 해석은 아주 협소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랑의 힘을 믿는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