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배우들의 굴욕 배역


대배우라 일컫는 이들이라면 대작에 참여하는 건 당연한 이치겠다. 유명세를 떨치고 돈과 명예를 얻으며 계속될 차기작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완벽한 영화는 존재하기 힘드니, 이왕이면 괜찮은 수준의 영화에 이왕이면 눈에 띄는 배역에 출연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건 한국&동양 영화이다. 


여기 영화 고르는 안목이 좋기로 소문난 배우가 있다. 필모를 전부 들여다보아도 크게 흠 잡을 영화가 거의 없다. 여기 영화 '캐릭터'의 귀재가 있다. 연기는 물론 잘하고 좋은 영화, 나쁜 영화에 두루두루 출연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맡은 배역은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다. 여기 '세기의 배우'가 있다. 그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기억 저편을 아련하게 헤집는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필모에서 절대 지울 수 없지만 절대 지우고 싶은 영화가 있다. 많은 영화들에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캐릭터를 연기한 그들이, '격'에 맞지 않은 굴욕 배역을 연기했다. 기억하기 싫은 걸 끄집어내려니 찾기도 쉽지 않고 괴롭지만, 반면교사로 삼는 셈 치고 앞으로 그럴 일이 없길 바란다. 



<협녀, 칼의 기억>의 '유백' 역 이병헌과 '월소' 역 전도연




'할리우드 스타' 이병헌과 '칸의 여왕' 전도연은 1999년 영화 <내 마음의 풍금>으로 함께 했다. 당시 이병헌은 아직 뜨기 전이었고, 전도연은 제1의 전성기였다. 그들은 16년 후 <협녀, 칼의 기억>으로 재회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최고의 배우들 자리에 오른 그들이기에, 최고의 영화여야만 했고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 자명했다. 


적어도 2015년 최고의 영화여야 했을 <협녀, 칼의 기억>은 당시는 물론 한국 역사상에서도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많은 이들이 뽑는다. 눈 씻고 찾아야 흑역사 한두 편 겨우 보이는 이병헌과 전도연 두 배우에게 가장 큰 흑역사로 남을 영화가 된 것이다. 




100억짜리 영화가 50만 명도 넘지 못했고, 전체적으로 장이모우 감독의 무협 스타일을 따라하면서 <와호장룡> 느낌을 차용했지만 제대로 따라하지조차 못했으며, 억지 막장과 황당 결말 스토리로 한국 최고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도 이상하게 만들어버렸다. 전도연은 두 차례나 멜로 영화를 찍으며 서로 윈윈했던 좋은 기억 때문에 박흥식 감독의 첫 사극에 의리로 출연한 것일까? 이병헌은 전도연이라는 대배우와 16년 만에 재회해 영광을 함께 하려 출연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게 그나마 이병헌의 연기다. 전도연의 연기조차도 이 엄청난(?) 스토리와 액션에 묻혀버렸다. 그러하기에 더 이해할 수 없고 더 안타깝다. 이병헌은 그 좋은 연기력을 왜 이 영화에 써버렸고, 전도연은 그 좋은 연기력을 왜 이 영화에서 써보지도 못했나. <남한산성> 제작보고회 때 사회가 이병헌에게 말하길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정말 오랜만에 사극으로 돌아왔고 했는데, 이에 이병헌이 중간에 <협녀, 칼의 기억>도 있었다고 말했다는 슬픈 영화...



<은행나무 침대 2 - 단적비연수>의 '적' 역 설경구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설경구는 한국 영화계에 여러 가지 의미로 금자탑을 쌓았다. <박하사탕> <공공의 적> <오아시스>로 한국의 모든 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그야말로 한국 영화 역사상 길이 남을 영화들로 추앙받고 있다. 거기에 설경구가 주연 중의 주연으로 출연한 <실미도>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그뿐이랴? 네 영화의 김영호, 강철중, 홍종두, 강인찬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철중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로 손꼽힌다. 그 사이사이 <송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광복절 특사>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단적비연수>가 왠 말이랴...




<은행나무 침대> 신드롬에 힘입어 강제규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대형 프로젝트로,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단, 적, 비, 연, 수로 캐스팅했다. 차례로 김석훈, 설경구, 최진실, 김윤진, 이미숙. 그들 모두의 흑역사일 테지만, 영화는 은근 흥행에 성공한 축에 속한다. 물론 손익분기점을 따진다면 성공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겠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비슷한 느낌의 한국형 판타지/액션/멜로 <비천무>가 역대 최악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단적비연수>는 그보다 더 못한 평가를 받으며 그보다 훨씬 못한 영향력과 유명세를 발휘했고 발휘하는 중이다. 설경구로서는 수많은 연극 무대에서 갈고 닦은, 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영화판에서 물오른 연기력을 발휘했을 테지만 영화 고르는 안목이 연기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가장 잘 나갔던 시기 바로 직전의 유일한 치명타였지만 그때의 설경구라면 이해가 간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무천도사' 역 주윤발




'드래곤볼' 네 글자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만화이자 가장 유명한 만화임에 분명하다. 일본에서 처음 나온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마니아가 많고 여전히 후속작이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 '주윤발' 세 글자를 들어보지 않은 한국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1980~90년대 최고의 대스타, <와호장룡>이라는 불후의 명작에도 출연했으며, 할리우드에 진출해 좋은 성적도 냈다.


드래곤볼과 주윤발이 만났다.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이다. 다만, 만들어진 시기가 2009년으로 언제적 드래곤볼이고 주윤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인 게 걸렸고 원작이 워낙 유명한 것도 걸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진짜 문제는 영화 그 자체. 그야말로 전 세계 영화 역사상 독보적인 흑역사다. 그런 영화에 주윤발이 주요 역으로 나오다니... 20세기폭스가 배급하고 주성치가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사실도 충격이다. 




사실 주윤발이 이 영화에서 한 건 많지 않다. 다행히도(?) 그저 폼을 잡고 움직임을 가졌을 뿐이다. 물론 대사도 했고. 기자회견에서 말한 아내가 돈 벌어오라고 등 떠밀어서 출연했다는 획기적인 이유가 서글프다. 영화는 모든 면에서 평범한 아마추어 수준 이하의 아동용이라고 해도 욕 먹을 수준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원작 '드래곤볼'에 대한 이미지도 엄청나게 추락했을 것이다.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가 공식적으로 "이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로 생각해달라"라고 말할 정도로 치가 떨릴 만큼 형편없었는데, 주윤발이 2000년대 이후 영화 고르는 행태를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는 <와호장룡>으로 2000년대를 화려하게 열어젖힌 후, 바로 <방탄승>으로 이후 계속될 졸작 대열을 예고했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형편없는 영화에 출연하는 걸 많이 봐왔다. 아마 앞으로도 자주 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그런 영화에서 좋은 연기력을 선보여도 서글프고 막대기처럼 서 있어도 서글프다. 그들만의 이유로 출연하게 되었겠지만, 정작 그들은 개의치 않아 할지도 모르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좋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좋은 배역이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있는가? 가끔은 눈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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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너는 여기에 없었다>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살인 청부업자 조(호아킨 피닉스 분)는 수시로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수시로 시도를 하는데, 봉지로 얼굴을 덮어 숨을 못 쉬게 하거나 칼을 입속으로 넣어 찌르려 하거나 철로에 떨어질 것처럼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하다 못해 칼로 위험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모든 건 무표정 위에 어린 복잡한 심정으로 행한다. 


그가 자살 충동에 시달릴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기억들이 있다. 어린 시절인 듯 학대의 기억들, 전쟁인 듯 당한 기억과 행한 기억들, 그리고 오래 되지 않은 가해의 기억들까지 그를 괴롭힌다. 그런 그가 자살을 할 수 없는 건 늙은 어머니의 존재 때문이다. 인정사정없는 살인 청부업자이지만 어머니한테는 다정다감한 하나뿐인 아들이다. 


그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차기 주지사로 유력한 상원 의원 알버트가 딸 니나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지체없이 소굴로 가 니나를 구출한 조, 하지만 머지 않아 알버트가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곧이어 정체불명의 이들에게 니나를 빼앗긴다. 조는 다시 한 번 니나를 구출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차기 거장 과작 감독의 신작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영국 출신의 여성 감독 린 램지는 1999년 장편 데뷔 후 20여 년 동안 4편밖에 내놓지 않은 과작 감독이다. 내놓는 작품마다 비평 면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며 차기 거장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와중에 2011년 작 <케빈에 대하여>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를 뿌렸다. 사랑할 수 없는 아들과 사랑하기 힘든 엄마의 치명적 심리 스릴러로,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모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비틀기를 시도해 반향을 일으켰다. 


틸다 스윈튼이라는 명배우와 함께 시너지를 냈던 <케빈에 대하여>에 이어 6년 만에 장편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들고 온 린 램지 감독은, 이번에는 명배우 호아킨 피닉스를 낙점했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비틀어 내보인다. 


다만, 전작이 관계와 서사의 심리를 중점에 둔 반면 이번에는 개인과 기억의 은유에 중점을 두어 보다 스타일리시해졌지만 다소 난해가 구석이 많을 수 있겠다. 그런 만큼 관객이 해야 할 게 많아졌다. 


폭력에 대하여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기본적 스토리 라인은 여러 영화들을 생각나게 한다. 뤽 베송의 <레옹>, 토니 스콧의 <맨 온 파이어>, 심지어 한국 영화 <아저씨>까지 연상되는 것이다. 암울한 과거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유령 남자가 여 아이를 구하면서 구원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너는 거기에 없었다>는 이 영화들과 결이 다르다.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와 결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남자 주인공이 여자를 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 여자를 구하는 걸 본인 구원의 상징으로 치환한다. 여자가 구원되는 것도, 여자를 구하는 게 남자를 구원하는 방법의 하나가 되는 것도 된다. 또한 그들의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남자 주인공 내면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을 비롯한 한국 독립영화의 일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조가 니나를 구출하는 장면이 그 한 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영화였으면 얼마나 스타일리시하게 또는 얼마나 잔인하게 죽이는지 신세계적인 액션을 보여주려 하였다면, 이 영화는 망치 하나로 일망타진하는 폭력적인 이야기와 장면을 CCTV 화면과 다분히 편집된 이야기로 보여준다. 영화는 현실에서의 폭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를 꺼려하고 있다. 


또 다른 한 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조가 괴로워하는 플래시백들이다. 현실의 폭력과 폭력 이후를 보여주는 방식과 정반대로, 극히 짧은 시간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플래시백들이 굉장히 직접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날 것의 피가 난무하는 폭력보다 폭력 이후만을 보여준다. 상상하게 만드는 폭력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여기', 그리고 새로운 시작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조는 폭력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어머니라는, 삶의 이유이자 폭력의 굴레에서의 쉼터가 있지만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다. 영화는 조의 이유이자 쉼터를 어머니에서 니나로 옮기는데, 그건 과연 죽음일까 부활일까 구원일까. 이 역시 영화는 판단을 감독의 몫도 배우의 몫도 아닌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결국엔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사라지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하든, 스스로 죽든. 그 지점에서 구원의 양상이 영화마다 제각각인 것이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죽음-부활-구원의 라인을 택한 듯하지만, 아무것도 택하지 않은 ‘새로운 시작’을 택한 것도 같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라는 건 ‘너는 여기에 없어야 한다’로 읽힌다. ‘너’는 조 자신일 수도 있고, 니나일 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다. 심지어 그의 사업 파트너일 수도 있고 그에게 원수진 수많은 이들일 수도 있다. 그를 죽이러 온 이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라는 공간과 시간을 통합하는 철학적 개념이 이 영화를 주되게 관통하기도 한다. 


액션은커녕 말도 거의 없거니와 딱딱 끊기는 OST는 영화를 한없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게 한다. 다름 아닌 주인공 조의 내면과 기억 속으로. 그러면서 특유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이라면 그 암담함과 조용한 긴박감을 견뎌내야 한다. 감히 재미있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감히 참고 견디며 한 번쯤 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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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대관람차>


영화 <대관람차> 포스터. ⓒ무브먼트



오사카에 출장 온 선박회사 대리 우주(강두 분), 출장 마지막 날 낮에는 덴포산 관람차를 타고 저녁에는 일본 쪽 담당자 스즈키와 저녁을 먹는다. 스즈키와 헤어진 후 술에 취한 채로 핸드폰도 팽개치고는 선배인 과장 대정을 닮은 사람을 보고 무작정 쫓아간다. 우주는 선박 사고로 실종된 대정을 대신해 오사카에 출장을 왔었다. 


자전거 탄 사람을 쫓는 건 역시 무리, 놓치고는 근처의 고즈넉한 바 '피어 34'를 찾아들어간다. 이곳은 '대정'이라는 곳이란다. 익숙한 이름이다. 맥주 한 잔을 걸치고 뻗어버린 우주는 다음 날 깨어난다.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시간을 놓쳐버렸다. 주인장의 말 때문인지 평소 생각 때문인지 대정과의 진지한 대화 때문인지 그저 홧김인지, 우주는 회사를 그만둔다. 무작정 피어 34로 찾아가 대정을 찾을 때까지 지내기로 한다. 


대정은 음악을 하고 싶어 했고 우주는 음악을 했었고 피어 34에서 주인장 스노우의 소개로 만나게 된 하루나는 음악을 하고 있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피어 34는 예전엔 공연을 자주 하고 관객도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곳이 되었다. 우주는 한편 대정을 찾는 한편, 부인과 함께 음악을 했었지만 동일본 대지진으로 부인을 잃고 음악을 놓아버렸다는 하루나 아버지의 사정을 듣고 공연을 기획하는데... 


오직 한 명을 위한 음악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영화 <대관람차>는 '더 자두'로 익숙한 강두가 처음으로 영화 주연을 맡은 것, 적지 않은 대사의 90% 이상을 일본어로 선보인 것, 일본 오사카 현지 올로케이션, 한국영화인지 일본영화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감성, 강두의 목소리로 듣는 루시드폴의 음악 등 독립영화로선 상상하기 힘든 즐길 거리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 양국의 21세기 가장 큰 비극인 세월호 참사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음악과 노래로 따로 또 같이 위로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음악 영화를 표방하지만 일반적인 음악 영화와 결이 조금 다르다. 


들어줄 이 없는 개인의 음악은 그 영향력이 본인을 포함해 몇몇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뮤지션들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물론 그것이 정답이고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직 한 명을 위한 음악을 선보이는 데 중점을 둔다. 그 한 명은, 그 한 명이 겪은 아픔은 만인을 대변하는 것이다. 


철학적인 영화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점점 어려워졌다.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음악을 하고 싶어 회사를 때려친 우주의 방황과 나아감과 깨달음을 아픔, 성장, 사랑 등의 키워드와 함께 적절히 접목시킨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철학적이기 그지 없다. 연고 없는 해외에 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미아가 된 우주, 언어유희적으로 '우주 미아'가 된 그는 더욱이 멘토와 같았던 회사 선배 대정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우주는 대정의 실존을 찾는 대신 대정의 꿈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곧 자신의 실존인 것처럼. 


하루나는 어떨까. 본인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두 음악을 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아예 음악을 놔버렸고 하루나는 기타만 칠 뿐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음악을 되찾는 게 곧 자신의 음악을 되찾는 것이고 곧 그들의 실존을 되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고 있더라도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들의 실존을 압도하는 거대한 아픔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피어 34와 주인장 스노우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느낌의 아픔이 있는 것 같다. 피어 34는 한때 수많은 공연과 수많은 관객으로 잘 나갔지만 이제는 동네 단골만 찾는 바가 되었고, 스노우는 멀리 캐나다로 보트를 타고 떠나고 싶지만 보트가 말을 듣지 않는다. 피어 34를 두고 떠날 수 없는 걸까, 피어 34가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걸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게 힘이 쎄다. 우주는 해야 했던 일을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서 훨씬 더 월등한 능력을 선보인다. 그런 우주 덕분에 하루나와 스노우는 본인들 마음속 깊은 곳에 묵혀두었던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일들과의 끈이, 하루나는 아버지 때문에 끊어져 있었거나 보이지 않았고 스노우는 현실에 안주하고 그러면서도 과거를 향수하는 것 때문에 그러했다. 우주야말로 하루나와 스노우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에게 대정이라는 존재는 선구자와 다름 아니었다. 


선구자라는 존재의 부재는 두 가지 극단적인 행동을 수반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그 자리에 다가가려는 수고, 또는 소극적으로 침참하면서 좌절과 자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고수. 


미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게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영화는 알려주려 하지 않고 보여주며 보여주려 하지 않고 들려준다. 잘 알아들을 수 있었고 잘 느낄 수 있었고 잘 간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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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포스터. ⓒ이수C&E



사랑을 표현할 때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글자 그대로 사랑을 하면 능력이 뛰어나지고 훌륭해지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 우리 인류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결정적 이유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좋은 쪽으로 가게 된다면 갈 수 있다면 그 가장 큰 이유가 다름 아닌 사랑 덕분일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기 싫은 사람이 여기 있다. 그(그녀)는 혼자가 아닌 둘 이상이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다. 그럴 땐 '혼자'만 아니면 된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게 될지 모른다. 내가 함께 하는 우리가 아닌 우리에 속한 내가 되는 것이다. 반면 사랑을 하게 되면 전혀 다른 우리가 된다. 


사랑을 할 때 혼자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육체적으로 혼자 있을 때도 정신적으로 함께하고, 정신적으로 혼자 있을 때는 육체적으로 함께할 수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함께하지 않을 때도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는 게 사랑이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너와 내가 함께 우리가 된다.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그런 이야기다. 


긴 항해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한 장면. ⓒ이수C&E



남태평양 한 가운데 타히티섬, 자유로운 영혼 태미(쉐일린 우들리 분)와 바다를 사랑하는 리처드(샘 클라플린 분)가 우연히 만난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는 흔하디 흔한 절차를 따른다. 눈이 가고, 눈에 남고, 밥을 먹고, 서로를 알아가고, 데이트를 하고, 미래를 약속한다. 그리고 바다를 닮고 바다를 사랑하는 이들답게 긴 항해를 시작한다. 


한편, 태미와 리처드가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워 가는 동시에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뒤집히다시피 한 보트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태미가 고군분투하는 표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하지만 그녀 옆에 리처드가 보이지 않는다. 곧 근처에 떠다니는 리처드를 발견하고 건저내지만 그는 이미 심하게 다친 상태이다. 


꿈의 섬 타히티에서의 달달하고 환상적인 로맨스를 즐기는 태미와 리처드, 동시에 어딘지도 알 수 없는 태평양 망망대해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버티고 버티는 태미와 리처드. 영화는 사랑과 생존이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을 것 같은 두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며, 사실은 두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하나라고 말한다. 


사랑과 생존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한 장면. ⓒ이수C&E



생존은 치열하다. 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야만 한다. 평소의 내가 아닌, 그곳엔 다른 내가 또는 진짜 내가 존재한다. 사랑은 어떨까. 사랑도 치열하다. 나보다 네가 더 중요하고, 그런 너를 위해 보다 나은 내가 되려 한다. 역시 그곳엔 평소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존재한다. 너로 인해 더 특별해진 내가 말이다. 


그뿐이랴. 생존의 상황처럼 사랑의 상황도 특별하다. 생존만을 위한 상황에 처하는 건 일생에 있어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 처할 때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말로는 뭘 못하랴 하겠지만, 치열한 생존에의 사투를 이겨 지나오는 것에는 진짜 나를 알게 되는 특별함이 담겨 있을 것이다. 


사랑은 누구나 다 하는 보편적 상황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랑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진짜 사랑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건 진짜 사랑을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와중에 사랑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다면, 단언컨대 그 자체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사랑과 생존에의 치열하고 특별한 모습들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혹자는 교차편집으로 이 영화의 로맨스 깊이가 옅어졌고 산만해졌다고 했지만, 난 다름 아닌 이 교차편집 덕분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과 생존의 수평적 등가 대치가 훌륭히 보여졌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랑은 생존만큼 치열하고 특별하다. 


당당함과 나아감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한 장면. ⓒ이수C&E



교차편집의 한 장면인 로맨스는 다른 장면인 생존 표류에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현실적인 힘을 얻는다. 긴장 어린 가슴 떨림은 설렘으로 수평적이게, 망망대해의 막연함과 외로움은 함께 하는 우리에의 감사한 기억으로 역변적이게 치환된다. 


생존 표류는 로맨스에의 달달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영화적 힘을 얻는다. 추상적이고 전체적인 사랑에의 모양이 아닌, 구체적이고 순간적인 사랑에의 모습들이 생각나 오직 그 기억들로만으로도 살아가게 된다. 


한편 영화는 35년 전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여주인공 태미의 주체적인 모습을 곳곳에 담았다. 자신의 삶을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하고 실천한다. 거기엔 지금은 물론 당시엔 더더욱 여자로서 그런 모습으로 하기 힘들었을 사랑과 생존의 당당함이 있다. 


사랑과 생존은 그 자체로서 수평적 등가의 모습을 주고 받지만, 한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모습으로 다가가서 그녀에 의해서 동일하게 나아간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태미의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생존에의 나아감은 종반의 반전으로 사랑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합일된다. 반전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스릴을 선물하는 대신, 슬프고 가슴 아프고 얼얼하다. 그럼에도 태미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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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른도감>


영화 <어른도감> 포스터. ⓒ㈜영화사 진진



열네 살 경언(이재인 분)은 아빠를 잃고 혼자가 된다. 장례식 때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을 삼촌이라는 하는 재민(엄태구 분), 장례 이후 절차를 하나하나 도와준다. 그러면서 조의금이니 보험금이니 하는 것들을 넌지니 물어본다. 경언은 똑부러지게 대처한다. 경언은 그가 어딘지 못마땅하고 못미덥다. 


미성년의 나이로 혼자가 된 경언, 재민은 후견인이 되어준다는 명목 하에 경언의 집에 들어앉는다. 그러다가 아빠의 죽음으로 남겨진 보험금 8000만원 행방이 재미을 향했다는 걸 알게 되고 끈질긴 추적 끝에 재민을 추궁하지만 이미 어딘가에 몽땅 다 써버린 상태이다. 이에 재민은 우연히 알게 된 경언의 연기력(?)으로 함께 제비 작업을 할 것을 제안하고 경언은 받아들인다. 


작업 대상은 4층 짜리 건물주 싱글 약사 점희(서정연 분), 일명 철벽녀다. 재민은 조심스레 접근해보지만 번번히 막히고 만다. 그런 그녀가 왜인지 '딸' 경언에게는 반응을 보인다. 아빠와 딸로 위장한 재민과 경언은 본격적으로 점희를 공략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한다. 이 아이 같은 어른 재민과 어른 같은 아이 경언의 앞날은 어떨까. 


안정과 편안함을 앞세운 독립영화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오랜만에 폭력 없이 코믹하고 예쁜 독립영화, 신파 없이 감동 어린 영화를 보았다. 탄탄한 기본기에 막무가내로 밀어넣는 사회적 개인적 메시지 없이 자연스레 느끼고 잔잔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의미들의 향연이 신선하고 이채롭다. 


<어른도감>은 영화적 해석을 위해 또는 감탄 어린 영화적 연출이나 각본 감상을 위해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은 영화라기보다 특유의 안정과 편안함을 즐기기 위해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은 영화이다. 


특별할 것 없는 무난함과 별다를 것 없는 익숙함을 앞세운 듯, 뻔함 속에 단백함과 잔잠함 속에 초롱함이 빛을 잃지 않는다. 즐길 만한 게 없을 것 같은 와중에 '잘 봤다'라고 저도 모르게 나온다면 어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 만듦새가 한몫 하는 것이리라. 


여러 단편을 통해 연출과 각본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김인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새삼 특이할 것 없는 당연함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극을 이끄는 세 주인공을 맡은 엄태구, 이재인, 서정연 배우의 안정감과 탄탄함은 완벽에 가깝다. 


외로운 이들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경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서 굴러왔는지 알 수 없는 경언의 삼촌(이라고 하는) 재민 또한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의 이해로 힘을 합쳐 작업을 하려는 점희도 싱글이다.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외로움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 이들을 사연 있는 외톨이로 그려낸다. 이들 셋에겐 공통점인듯 아닌듯 아이와 어른을 오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평범하다고 하는 아이와 어른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경언은 어른 같은 아이다. 아빠를 일찍 여의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어른 같았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빠가 철이 없지 않았을까. 그 아빠에 그 동생이라고, 재민은 아이 같은 어른이다. 형의 장례식 때 십수 년만에 경언 앞에 나타난 모양새부터 어딘가 꺼림직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경언과 재민은 극명하게 갈리는 캐릭터다. 그래서 입체적이진 않다. 반면 점희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첫인상, 재민과 경언의 작업으로 보여지는 허당끼 어린 모습, 경언과 이어지는 아픈 과거까지. 아이 같은 모습과 어른 같은 모습이 공존하는 그녀가 진짜 어른이 아닐까. 


쌓는 작업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진짜 어른'은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그저 시간이 흐르도록 놔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시간을,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드려고 노력해야만 그나마 어른 비슷한 거라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걸 '경험'이라고 부르면 맞을까. 베이컨에 따르면 인간 인식의 원천은 경험에 있다고 하는데, 경험이 쌓이듯 시간이 쌓이듯 무엇이든 쌓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무언가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경언과 재민은 이제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점점 다가갈 것이다. 부득이하게 있게 된 그 자리 말고, 그들이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 그 자리가 비단 '아이 같은 아이' '어른 같은 어른'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어른 같은 아이'보다는 '아이 같은 아이'가, '아이 같은 어른'보다는 '어른 같은 어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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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몰리스 게임>


영화 <몰리스 게임> 포스터. ⓒ영화사 빅



할리우드 천재 각본가의 연출 진출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영화계에 종사하지만 각본과 연출의 결은 엄연히 다르기도 하지만, 많은 천재 각본가가 천재 연출가를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중에 영화 연출로도 진출해 여전한 실력을 자랑한 천재 각본가들이 있다. 찰리 카우프만, 테일러 쉐리던, 아론 소킨이 그들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 <이터널 션사인>의 찰리 카우프만은 2007년에 연출 데뷔를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고 오랜 시간이 흐른 2015년 <아노말리사>로 베니스에서 심사위원대상을 탔다. <시카리오> <로스트 인 더스트>의 테일러 쉐리던은 2016년 연출 데뷔작 <윈드 리버>로 칸에서 감독상을 탔다. 


<어 퓨 굿 맨> <대통령의 연인>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스티브 잡스>의 원조 '천재 각본가' 아론 소킨은 2017년 <몰리스 게임>으로 영화 연출을 데뷔했다. 그는 이미 2012~2013년에 미드 <뉴스룸 1, 2>로 훌륭한 연출 데뷔를 이룩한 바 있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 무한 기대가 가는 <몰리스 게임>이 북미 개봉 1년 여만에 한국에 찾아왔다. 


'포커 프린세스' 몰리 블룸의 실화


영화 <몰리스 게임>의 한 장면. ⓒ영화사 빅



영화는 20대에 할리우드 사설 도박장을 장악한 '포커 프린세스' 몰리 블룸의 실화를 옮긴 책 <몰리 블룸>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이다. 그녀는 엄격한 심리학자 아버지 밑에서 한때 올림픽에도 진출한 스키선수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포기하고 만다. 그녀의 인생 첫 번째 실패, 그리고 어김없이 이겨내는 그녀의 첫 번째 반전은 로스쿨이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술집 알바를 시작하는 몰리, 그녀는 도박장을 운영하는 부동산 거물 딘의 개인비서로도 일하며 투잡을 한다. 유명인들이 드나들며 엄청난 판돈이 오가는 그곳에서 팁만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몰리, 결국 독립해 자신만의 사설 도박장을 열기에 이른다. 두 번째 실패에 이은 두 번째 반전이랄까. 


이쯤 되면 그녀의 세 번째, 네 번째 계획되는 실패와 반전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자릿세를 걷지 않고자 하기에 완전한 불법으로의 길을 걷진 않지만, 사설 도박장 자체가 불법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언제 실패와 좌절을 겪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누가 봐도 눈에 들어오는 출중한 외모와 매력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런 한편 FBI의 급습으로 체포된 그녀의 변호인 찰리와의 설전도 흥미진진하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가. 그녀는 그의 실력을 믿을 수 있는가. 그녀와 그, 그와 그녀는 그녀의 이야기 이면의 진짜 이야기를 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녀에게 '도박'이란? '신뢰'는?


영화 <몰리스 게임>의 한 장면. ⓒ영화사 빅



영화는 2010년 가장 바쁜 여배우 중 하나인 제시카 차스테인이 원톱으로 오롯이 이끈다. <인터스텔라> <마션> 등에서의 2순위 주연의 느낌이 아닌, <제로 다크 서티> <미스 슬로운> 등에서의 신념 어린 카리스마를 선보이는 단독 주연의 당당함을 다시 한 번 선보이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영화 속 몰리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모든 걸 잃을 위기에 빠진 몰리는, 그럼에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게 있다. 자신이 운영했던 불법 도박장을 드나들었던 주요 고객들의 신상명세. 찰리가 원하는 건 당연히 그들의 인생 따위가 아닌 의뢰인 몰리의 인생, 하지만 몰리의 신념을 꺾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몰리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는 제시카 차스테인밖에 없는 것 같다. 


그녀의 길지 않은 삶에서 도박이란 무엇일까. 무엇이길 바란 걸까. 영원한 일등도 영원한 꼴등도 없는 롤러코스터의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삶의 진리? 누구나 선망하고 우러러 보고 닮고 싶은 거물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얻는 삶의 진리? 


그것보다 '신뢰'가 우선이고 제일일까. 도박장 운영자와 도박장 고객 간의 철저한 믿음과 신뢰 하에, 대부분의 고객들은 돈을 쓰며 놀다 가고 어떤 고객들은 인생을 건 게임을 하며 어떤 고객들은 일을 한다. 몰리는 팁을 받고 자릿세를 걷는 대신 책임 지고 그들을 지켜준다. 


완벽하게 직조된 서사와 내러티브


영화 <몰리스 게임>의 한 장면. ⓒ영화사 빅



아론 소킨의 각본과 연출 방식은 굉장히 '영화적'이다. 의미와 메시지보다 사건에 집중하고, 사건보다 캐릭터에 집중하고, 캐릭터보다 대사에 집중하고, 대사보다 흐름에 집중한다. 즉, 내러티브를 가장 위에 두는 것이다. 관객은 눈 돌릴 새도, 생각할 새도 없이 영화에 집중하고 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의 내러티브 방식은 할리우드의 큰 흐름 중 하나를 형성했다.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는 대규모 스케일과 리얼리티, 영원히 남을 캐릭터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영화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직조된 서사와 내러티브 형성을 지향한다. 영화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수렴되는, 보다 원론적인 영화의 모습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몰리스 게임>은 참으로 신통하다. 크나큰 사건 하나가 아닌 자잘한 사건사고가 끝없을 정도로 이어지는 서사의 모양새가 재미와 지루함의 경계에 교묘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장인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직조한 명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꾸역꾸역 끝까지 끌고 가다시피 한 '멱살 캐리'의 불안한 상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재미보다 지루함이 앞섰지만 불안한 상품보다 어중간한 명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한편 어떻게 이런 내러티브를 선사하고 어떻게 이런 대사 집중력을 보일 수 있는지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마치 긴 드라마를 축약해 영화로 만든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아론 소킨은, 각본은 영화만, 연출은 드라마까지도 잘 해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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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표지 ⓒ아시아



영화와 더불어 단언컨대 우리가 가장 많이, 자주 접하는 대중매체 콘텐츠는 드라마이다. 아니, 영화는 극장이라는, 직접적인 돈이 지불되는 제한된 곳이 메인 매체인 반면 드라마는 TV라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무한정의 곳이 메인 매체이기에 가장 친숙한 콘텐츠인 게 자명하다 하겠다. 


즉, 드라마는 우리의 삶의 깊숙히 들어와 있다.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라면 삶 그 자체와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드라마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라고 해도 알게 모르게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보다 그 영향력에 비해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가 정통적으로 상정했던 시청자층의 협소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드라마를 오직 TV로만 접할 수 있었을 때는 오히려 영화보다 영향력이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아침, 저녁, 밤 시간대에 주로 방영한 드라마, 그 드라마의 주시청자는 주부였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회에서 빅마우스 역할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었다. 


시대가 지나 대중매체가 다양해짐에 따라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영화는 여전히 제약이 있는 반면, 드라마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드라마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시청자층은 다양해지고 다양한 시청자층을 수용할 다양한 드라마를 선보이게 되었다. 웰메이드 영화처럼 웰메이드 드라마도 탄생했다. 


드라마 분석과 연구와 비평


드라마를 무시하기는커녕 한국드라마는 일본, 중국을 포함 아시아를 완전히 점령했다. 드라마에서 파생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유행을 선도했다. 단순히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왔던 드라마는 우리의 세상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 대한 분석과 연구와 비평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는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드라마가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가미해 분석한 책이다. 드라마는 시대를 선도하기도 하고 시대에 각고히 발맞춰 가기도 한다. 반면 절대 시대에 뒤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만들면 온국민이 한 번쯤은 본다는 가정 하에 영화나 책처럼 종종 있는 허투루 만들어진 콘텐츠가 절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한국드라마를 중심으로 미국, 영국, 일본드라마도 종종 다루며 멜로, 가족, 판타지, 범죄의 네 가지 장르로 나눠 분석한다. 지금은 전방위적으로 퍼져 나갔지만 '한류열풍'의 원조는 한국드라마일진대, 그들 거의 모두가 멜로이다. 멜로와 필적할 만한 제작 편수를 자랑하며 흥행불패에 가까운 신화를 써내려온 가족드라마.


201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제작 편수를 늘리며 새로운 흥행신화를 써내려가고 그 환상성에 우리의 이야기를 잘 녹여내며 호평을 받고 있는 판타지드라마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자리잡아 가장 대중적으로 만들어지고 또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인 범죄는 우리나라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상륙한 모양새이다. 


드마라를 통해 현 시대를 들여다보다


이 책은 드라마 장르의 구분에 따른 분석, 드라마의 변천사, 드라마와 함께 해왔던 함께 하고 있는 시청자와의 조우 등을 소재와 주제로 삼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드라마가 만들어진 당대의 시대상을 요밀조밀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시청률의 압박은 심할지 모르지만, 영화보단 덜 상업적일 테고 영화보다 더 소통지향적일 테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드라마'에 한정해 누군가의 연구와 누군가의 드라마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또한 추천사를 통해 드라마 마니아, 드라마 작가지망생, 드라마 비평이나 논문을 준비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 책에서 '드라마'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즉, 드라마를 통해 다른 무엇, 현 시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드라마는 대상이 아닌, 대상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책은 드라마 자체를 들여다보는 데에도 훌륭히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난 편집자로서 그 점을 인지했고 저자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는 목적으로서의 드라마와 수단으로서의 드라마 모두를 들여다보는 데 문제 없이 가능한 훌륭한 책이다. 


멜로드라마와 판타지드라마


저자의 멜로드라마와 판타지드라마를 대하고 분석하는 시선은 대단히 균형 잡혀 있고 공감간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멜로드라마를 가장 무시하고 하찮게 여길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 고정관념 속에서 저자는 그 인기요인과 위험성을 분석한다. 패턴으로 고착화되어 간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있지만, 반복적으로 누적된 경험으로서의 관습이 기대와 만족감을 주기에 마니아층과 팬덤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로맨스가 생기고 사랑에의 금기를 내보이는 데에도 변화가 있다는 점을 인지한다.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사랑을 모두 성취하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결혼의 신성함과 순결은 더 이상 도덕적 관념의 틀 안에서만 해석되지 않게 되었으며, 중년과 노년의 로맨스와 재혼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망측한 짓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불륜, 동성애 등은 금기의 선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저자는 드라마가 판타지라 말한다. 드라마가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며 판타지의 환상성이 우리 안의 결핍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별에서 온 그대>의 사랑에의 욕구, <너의 목소리가 들여>의 행복에의 욕구, <시그널>의 정의에의 욕구. 드라마는 판타지이고 판타지는 우리 안에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드라마 관계자들은 사람들의 결핍과 결핍에 따른 욕구를 면밀히 분석해 현실적인 대리만족과 현실참여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여렴이 없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분들을 향한 헌사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그런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이다. 언젠가 세상은 보다 좋게 바뀔 것이다. 아니, 이미 세상은 보다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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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표지 ⓒ산지니



1990년대 초, 일본에 '북오프'라고 하는 중고 서점이 생겼다. 정확히 일본의 장기침체 기간 '잃어버린 10년'과 시작을 함께 했고, 일본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중고 서점은 호황했다. 일본 여행의 필수 관광지라는 타이틀을 얻고는 일본을 넘어 해외에 진출도 하였다. 북오프가 생긴 지 정확히 20년째 한국에는 알라딘 중고 서점이 생긴다. 


알라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06년 한국에 진출한 북오프는 2014년에 철수했다. 한국의 알라딘은 일본의 북오프만큼 호황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헌책방' 사업이 약진하는 중이라 한다. 맞는 말인가? 전체 파이로 보면 분명 그래 보인다.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이다. 알라딘 중고 서점을 제외한 많은 헌책방들이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와중에도 살아남는 소규모 헌책방들이 있을 것이다. 나름의 자타가 공인한 내공으로 대형 헌책방들이 지니지 못한, 지닐 수 없는 색깔을 지니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 그 대표격이라 하겠다. 이 헌책방의 주인장인 윤성근 작가는 많은 책을 통해 책에 대해, 헌책방에 대해, 이상한나라의헌책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 또한 익히 알고 있다. 


2년여 만에 '작가'로 돌아온 윤성근 주인장의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산지니)에는 그가 운영하는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상 '이나헌') 운영 철학과 그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생활'의 다짐이 담겨있다. 그 중심엔 20세기 가장 탁월한 사상가로 불리는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있다. 이는 곧 저자의 사상이기도 하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주인장의 이반 일리치적 사상


지난 2007년에 문을 열어 올해 2018년으로 11년차를 맞이한 '이나헌'에는 주인장이기도 한 저자 윤성근의 철학과 다짐, 그리고 그 기원인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곳곳에 담겨 있다. 노동, 생활, 속도, 에너지, 자립, 자유, 전문가, 평화로 풀어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가는 항목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아픈'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지 않을까. 


개중에 더 와닿은 것들이 속도, 자립, 평화 등이다. 저자는 '이나헌'이 일터이고 돈을 벌어 생활하는 수단이지만 삶과 이를 대하는 태도를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속도를 가지고 있는데 현대사회는 무조건 '빠름'을 들이댄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병든다. '이나헌'은 주인장의 속도감에 맞춰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오후 3시에 출근하고 주4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돈을 많이 벌진 못하지만, 돈보다 건강이 중요한 사람에겐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이거 해서 먹고살 수 있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비싼' 삶을 살진 못하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빠듯한 삶을 살고 있다. 그때 나타난 게 어김없이 이반 일리치이다. 그는 말한다. 돈을 벌어 집을 구입해 가족과 떨어져 따로 거주하는 일차원적인 것이 자립이 아니고, 우리를 잡아매도록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탈출해 그것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 게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라고 말이다. 


'평화'는 어떤가. 헌책방과는 너무 동떨어졌거니와 너무 거창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평화는 우리가 흔히 갈망하는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축제와 같은 것이라고. 그는 그가 일하는 터전을 그런 풍경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여기에 이반 일리치도 거든다. 평화에는 잠재력이 필요한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시를 써내는, 누군가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배웠던 게 아닌데도 엉뚱한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해내는 창의력 등이 그것들이다. 


이반 일리치 사상의 구체적 사례들


이반 일리치의 사상을 '이나헌'에 옮긴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여다보자. 이 작업은 비단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라는 상점을 '한번 찾아가보고 싶다' 정도에서 멈출 게 아니라, 이반 일리치의 사상과 철학을 더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접목해보고 실행에 옮기는 데 도움을 주고받는 차원에서 봐야한다. 우린 현대사회의 여러 병폐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공동체적으로 또 보다 광범위하게 치료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이나헌'이나 '윤성근'이 아닌 '이반 일리치'라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이반 일리치가 주인공인 책이라 해도, 저자가 이반 일리치 아닌 윤성근인 이상 이반 일리치의 사상과 철학을 자기 식으로 소화한 윤성근의 사상이 책에 담겨 있어야 하겠다. 이 책은 서평 모음집이나 이반 일리치 사상과 철학 해석집이 아닌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소개집에 가깝지 않은가. 


2년 동안 꾸준히 헌책방을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아무 말 없이 아무런 책도 구경하지 않고 사지도 않은 채 가만히 있다가 가는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저자가 말을 걸었을 때 돌아온 말은 헌책방이라는 장소의 비전을 선사해주었다. "저는 여기 뭘 하러 오는 게 아니에요. 여기 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래서 오는 거예요." 덕분에 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이 책을 통해 고민할 시간을 주는 장소를 마련하는 거라는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 


'심야책방'이라는 이름의 밤샘영업 이벤트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성황리에 계속되었다. 이 이벤트는 주인장이 계속해서 찾고 있는 '재미있는' 이벤트의 대표격이었다. 그는 사실 이벤트보다 타인의 삶과 생활에 더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있고 그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의 주체는 헌책방일 수도, 이벤트 그 자체일 수도, 주인장일 수도 없다. '재미'의 주체는 헌책방을 찾는 모든 이들, 다른 말로 현대사회의 개인이다. 


2012년 추운 겨울, 잘 아는 이가 헌책방으로 다 죽어가는 어린 고양이를 데려왔다고 한다. 겨우 살려낸 그 아이의 이름을 '앙또'라고 붙여주고 헌책방 독서모임 막독의 리더 시로 군의 집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 와중에, 헌책방이 이사하게 된  2015년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주인공의 눈에 띈다. '짹순이'라고 이름 붙인 그 아이는 여러 손님들의 도움으로 여전히 동거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언젠가 헌책방도 없어질 테고, 고양이도 죽을 테다. 슬픈 일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말이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자. 


저자는 확신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진정한 자립,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는 것, 버텨낸다는 것. 이런 것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끝없이 연구하고 실천에 옮기고 수정하고 나아간다. 인터넷으로 책을 팔지 않고, 간판과 명함이 없다. 한 번 오면 잊히지 않게 특이한 것들을 직접 만들며, 손님들을 믿고 무료 나눔 상자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헌책방 주변 이것저것 지도'를 만들어 단순 가게 홍보 차원을 넘어 주변 공동체와 동네, 그리고 마을의 공동 이익선의 확대를 추구하고자 한다. 다른 건 몰라도 10년 동안 하나는 확실히 알아냈다고 한다. 시간이 걸리고 더디게 움직이더라도 여럿이 함께 설 수 있는 자립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그'가 아닌 '우리'의 자립을 위해 있는 자리에서 하루하루 노동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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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델마>


영화 <델마>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언 강을 장총 든 아빠와 딸이 함께 건넌다. 맞은편 숲에 도착한 그들, 아빠는 조심스레 사슴의 목숨을 노린다. 곧 죽을지 모를 사슴을 지켜보는 딸, 아빠는 사슴을 향한 총구를 돌려 딸에게 향한다. 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진 못하고 사슴은 도망간다.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그 사연의 총량이 결코 작아보이지 않는다. 


딸 델마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한 그녀,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도서관 창문으로 맹렬히 날아오더니 부딪혀 떨어지고 동시에 델마는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당일 밤 뱀이 목을 조르는 꿈을 꾸고 다음 날 수영장에서 안부를 묻는 안자를 만나 페이스북 친구가 된다. 


곧 친해지는 그녀들, 하지만 델마는 부모님의 전화로 급히 빠져나온다. 그러곤 당일, 안자는 자기도 모르게 델마를 찾아가게 되고 그들은 한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잔다. 델마는 안자에게 연심을 품은 듯 보인다. 이후 그들은 함께 술, 담배를 하고 키스도 한다. 델마는 아버지께 최소한의 일탈을 고백하고 신앙심을 다시금 고취해보려 하지만, 안자를 향한 마음을 접을 길이 없다. 그리고 계속되는 발작... 


21세기판 <캐리>의 북유럽 버전


영화 <델마>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재작년 <라우더 댄 밤즈>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최신작 <델마>로 찾아왔다. 영화는 초자연적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띤,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이다. 감독은 전작에 이어 한 가족의 '폭탄보다 더 큰 소리'가 나는 사연과 비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연 생각나는 건 스티븐 킹 원작,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78년작 <캐리>, 독실한 신자인 엄마 밑에서 순결을 강요받으며 내성적이고 소심한 학교 생활을 하다가 끔찍한 따돌림을 당하고선 초능력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캐리. 그리고 과거의 비밀과 딸의 배신에 뒤엉켜 목을 졸리게 된 엄마는 딸을 향한 광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델마>는 21세기판 <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초자연적 힘과 광적이고 화려하다고 할 만한 비쥬얼이 주가 되는 대신, 보다 신화적이고 은유적이고 관능적이다. 그리고 배경이 북유럽이다 보니 특유의 자제된 서늘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쯤에서 <렛 미 인>이 생각나는 건 비단 나뿐일까. 섹슈얼한 공포를 유발시키는 설(雪)의 향연이 <델마>에서는 배우들의 몸짓과 눈빛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이런 면에서 <캐리>의 북유럽 버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델마의 발작과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억압과 금기


영화 <델마>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델마의 발작은 그녀로 하여금 일어나는 것 같은 초자연적 현상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단순히 그녀의 가족 중 누군가가 같은 병력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는 추측과 확신에만 시선이 가지는 않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가족력의 비밀이 중요하게 다뤄지게 되는 건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덕분이겠다. 


영화는 이야기들과 비유, 상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델마의 성장의 고됨과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자체로 훌륭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기능한다. 투철한 기독교 집안의 꽉 막히고 고지식한 자제의 세상 알아 가기. 그 교육이 결코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본능을 이길 소지는 없다. 


그런 면에서 델마의 발작은 그녀가 하나하나 풀어가는 억압과 금기의 실타래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녀의 끔찍한 내적 갈등과 싸움이 표출되는 것이리라. 그녀는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그 갈등의 한복판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발작과 함께 찾아오는 초자연적 현상은 그녀의 본능이 폭발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 설명할 길 없는 초자연적 현상은 델마의 어린 시절도 돌아가 그녀 가족의 사연과 직결된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서가 아닌 그 현상 때문에 억압되어야만 했던 그녀의 사연, 첫 장면에서 아버지가 총구를 사슴 아닌 델마로 향했던 사연 등. 그렇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 모든 것들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공상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마치 델마의 성장 이야기에 편입된 거대한 세계의 조각조각난 일부분인 것처럼. 


델마의 성장 이야기


영화 <델마>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를 델마의 성장에 맞춰서 볼 필요도 있겠다. 그럼 모든 일들이 더 뚜렷하고 더 명확하고 더 다채롭게 다가온다.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모양새를 띠지만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는 반면, 진짜를 얻기 위해 엄청난 껍질 손질을 해야 하는 밤송이처럼. 


<델마>의 완벽하리만치 직조된 이야기와 비유, 상징들의 타래는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의미를 찾기 위해선 그 모든 매력적인 것들을 헤치고 들어가 델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평생 길들여지고 교육된 정중동의 삶의 입방체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영화 <송곳니>에서 완벽하게 '잘못' 교육받은 큰딸이 큰 결심과 행동 끝에 빙퉁그러진 세계에서 탈출하고, 소설 <데미안>에서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구절처럼 말이다. 힘들고 가혹한 탈출의 투쟁이 <델마>에서는 곧 험학한 발작과 끔찍한 초자연적 현상이다. 


델마는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금기를 깨뜨리고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나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인생 처음으로 맞이하는 통과의례를 남들보다 늦게 힘겹게 지날 수 있을까. 이 세상 모든 델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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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업그레이드>


영화 <업그레이드> 포스터. ⓒUPI코리아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2003년 개봉한 <매트릭스2-리로디드>의 메인 광고 문구이다. 1999년 세기말에 개봉해 가히 액션 패러다임의 신기원을 이룩하며 지금까지도 그 이상을 선보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매트릭스>의 후속편이자 위대한 매트릭스 트롤리지의 한 편으로 그 가치는 충분함 이상이다. 


21세기 들어 <매트릭스>의 액션을 이어받으려는 또는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매트릭스는 잊어라!'며 당당하게 SF 액션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퀼리브리엄>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잔인함의 미학을 새로 새운 <킬 빌> 시리즈, 부드러운 강함의 영원한 판타지를 실현시킨 <와호장룡>, 면대면 맨몸 액션의 새로운 장을 연 <본> 시리즈, 아크로바틱 100% 리얼 액션을 표방한 <옹박> 시리즈 등. 이밖에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들이 부지기수이다. 


최근 이 계보를 이을 만한 액션영화로는 <존 윅> 시리즈 정도가 생각난다. <이퀼리브리엄>과 <킬 빌>과 <본>을 투박하게 합쳐놓은 듯한 영화로,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이 영화 <업그레이드>이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겟 아웃> 등으로 유명한 공포호러 명가 '블룸하우스'의 첫 액션 영화라고 한다. '공포음악' 영화라는 새장르를 개척한 <위플래쉬>를 만든 제작사이기도 한 바, 어떤 액션을 선보일지 한껏 기대된다. 


전신마비 환자에게 다가온 최첨단 기술의 유혹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하루종일 집에서 차를 가지고 노는 그레이는 아내와 함께 차 주인에게 차를 돌려주러 간다. 차 주인은 다름 아닌 유명한 베슬컴퓨터사의 주인 베론 킨이다. 그는 온 김에 그들에게 스템이라 불리는 칩을 보여준다. 그것은 말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새롭고 더 나은 두뇌이다. 


그레이와 아내는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자동주행 차가 오류를 일으켜 집이랑 정반대인 뉴크라운이라는 빈민도시로 향한다. 사고를 당하는 그들에게 네 명의 괴한이 들이닥치고 그들은 죽임을 당한다. 전신마비로 살아난 그레이와 결국 죽은 아내. 그레이는 최첨단 로봇기술 덕분에 누워만 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런 그 앞에 베론 킨이 나타나 뭐든지 할 수 있는 스템을 들이댄다. 그건 그레이를 다시 걷게 해줄 수도 있다. 그레이는 아내를 생각하며 극비수술을 받아들이고 몸에 스템을 이식한다. 스템은 그를 걷게 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첨단 기술과 시스템을 이용해 그의 몸뿐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와 최선의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해준다. 그레이는 자의 혹은 스템에 의해 아내의 복수를 시작하는데... 


신선한 로봇 액션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는 그레이의 은근 코믹 말빨과 스템에 의한 로봇(컴퓨터) 액션이 외양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근미래를 배경으로 최첨단 로봇이 아날로그적 인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디스토피아적 메시지가 내용을 진중하게 채운다. 새로운 양식의 액션을 관람하면서, 오래된 SF적 두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100% 액션 영화라 할 만한 이 영화에, 그것도 은근한 잔인함을 내세우는 와중에 '코믹'이 들어갈 소지는 없어보이는데, 그레이와 스탬의 케미가 주는 재미가 툭툭 튀어나온다. 대놓고 코믹이 아닌 은근한 코믹, 지배하려는 스템과 지배당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레이의 밀당이 주는 재미도 은근하다. 


그래도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쾌감은 뭐니뭐니 해도 스템에 의한 그레이의 로봇 액션이다. 완벽한 각본과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에 저절로 따라올 절대적인 연습, 그리고 카메라의 환상적인 워킹이 혼연일체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레이는 상대방과 약속된 행동을 완벽히 하는 와중에, 카메라는 카메라대로 정밀하게 움직인다. 


애드리브가 있을 수 없는 액션이란, 아무리 영화에서 액션이라는 것이 각본에 완벽히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정말 힘든 것이다. 이 영화가 비록 리얼 액션과는 거리가 조금 멀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신기하고 반갑고 신선하다. 현 액션 영화의 대세가 리얼 액션 아닌가. 그에 당당하게 반기를 들었다고 할까. <업그레이드> 액션의 신선함은 '로봇 액션'에서, 로봇 액션의 신선함은 '리얼 액션'의 반감에서 오는 것이다. 


아날로그적 인간에 침투한 최첨단 시스템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신선한 액션만 가지고는 앞에 'SF'를 붙이기에 민망하다. SF가 물론 이제는 마니아 아닌 대중지향적인 장르가 되어 보다 볼 거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인간세계에 대한 진중한 철학이다. 그리고 SF의 배경은 주로 미래, 거기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상천외한 것들이 부지기수인 바 개중에는 꼭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 그것들이 노리는 인간은 최첨단을 달리던지 가장 아날로그적이던지. 


괴한의 습격으로 아내는 죽고 전신마비가 된 그레이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첨단두뇌 스템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비록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마 스템은 그런 그이기에 그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들 한다. 그게 맞을지 모른다. 아니, 맞다. 괜히 외계생명체들이 뇌에 침투해 육체를 조종하겠는가. 이 영화는 그 명제를 조금 비튼다. 정신은 나의 것이지만, 정신의 반과 온전한 육체는 너의 것이라면? 그것도 육체가 가진 능력을 온전히 끌어올리게 해준다면? 


그런 공존이 가능하다면 무서워진다. 나는 육체를 가질 수 없지만, 너는 육체'까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정신까지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육체는 껍데기이기 때문에 가지는 비사고성으로 정신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육체는 주체가 될 순 없겠지만 주체에 의한 절대성이 고스란히 침유된다면 못할 게 없다. 인간은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육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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