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의 MB재산답사기>




지난해 10월경부터 전국민을 강타한 유행어가 있다. "다스는 누구겁니까?" 2017년 10월 13일, 인기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주진우 기자가 나와 "이제부터 '다스는 누구 거예요?'를 계속 물어봐 달라"라며 요청한 후로 정녕 인터넷을 도배되다시피 한 이 어구는 이제는 누구나 알듯이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겨냥한 말이다. 


2016년 10월 말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퇴진과 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 축출에 큰 역할을 한 국민의 시선은 '이명박근혜'의 한 축인 MB로 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박근혜보다 MB로의 100% 가까운 확실한 의혹에 가득찬 시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를 향해 있었다. 


그 유명한 '나꼼수' 일원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MB의 갖가지 의혹에 관해 수없이 많은, 그리고 더없이 촘촘하고 꼼꼼한 증거들을 포착해 소개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린 도곡동 땅, 다스, BBK로 이어지는 MB의 실소유주 논란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략' 알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사유화해 사익을 챙긴' MB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 그저 역대 대통령들도 다 각각의 잘못이 있듯이 MB도 잘못을 했구나 하는 정도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MB 저격수'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과 베테랑 탐사보도 전문 기자 구영식의 <나의 MB재산답사기>(비아북)는 맞춤 제격인 책이다. 그가 '돈'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그 장황한 정보를 정확하게 취득해보자.


MB 재산을 추적하고 답사하는 이유


MB의 재산을 추적하고 답사하기 전에 우선 그 의미부터 확립하는 게 좋겠다. 저자는 말한다. 군사정권이 종식된 후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졌는데 MB가 집권하고는 다시금 부정과 부패, 비리, 탄압과 속임수로 우리 사회를 물들게 했다고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죄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세금과 공기업 자금을 사유화 하고, 권력을 남용해 이를 착복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즉, MB 재산을 추적하는 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기보다 MB의 은닉 재산 의혹을 추적해서 진상을 밝히고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해 그 어떤 권력자라도 그 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사례를 남기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 부여 없이 MB의 재산을 추적 답사하는 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 하겠다. 


최초에 도곡동 땅이 있었다고 한다. 1985년 MB의 처남 김재정과 큰형 이상은 명의로 소유권 등록을 한 땅을 말하는데, 당시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MB가 회사 안팎의 보는 눈을 의식하여 차명으로 구입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MB의 '차명 인생'을 살게 한 잘못 끼운 첫 단추라 한다. 


이 도곡동 땅은 이후 대규모 차익을 남기면서 263억 원에 팔리고 그중 190억 원이 다스로 들어갔으며 그 돈 190억 원이 다시 BBK로 들어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조작 자금원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이 주가조작 사건은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가정을 파탄시키고 자살로 몰고 간 대형 범죄 사건이다. 


MB의 재산을 위한 나라


다스는 1987년 대부기공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최초에는 김재정 명의로, 곧이어 이상은과 친구 김창대가 지분 일부를 인수 양도해 세 명이서 한 명이 과반을 지니지 않게 구도가 짜여졌다. 저자는 다스 설립 자금이 다름 아닌 도곡동 땅 매매대금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다스에 많은 돈을 투입한 김재정은 현대 건설을 퇴사한 후 MB의 재산 관리와 집사 역할을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수입이 없었다. 


2010년 김재정이 예상치 못하게 사망한 후 거의 즉시 공교롭게도 경력이 일천한 MB의 장남 이시형이 해외영업팀 과장으로 입사한다.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017년에는 회계 재무책임자의 자리까지 오른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모습이 MB가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한편, BBK는 1999년 MB가 김경준과 함께 직접 세운 회사이다. 다스는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는데 회사 등록 실패로 인해 100% 돌려받아야 했을 테지만 최초에는 50억 원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김경준은 BBK와 다스가 모두 MB의 것으로 190억 원은 투자금이 아니라 자본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주가조작 사건으로 김경준은 실형을 살았지만 MB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140억 원까지 돌려받아 내었다. 


사실 대선 직전 2007년 말 BBK 사건 수사와 대선 직후 2008년 초의 정호영 특검으로 MB를 향한 검찰의 칼날이 꽤나 날카로운 듯 보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칼날은 무디기 짝이 없었고 MB에게 완벽한 면죄부까지 주고 말았다. 그야말로 지난 세월은 MB의 재산의, 재산에 의한, 재산을 위한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나의 MB재산답사기>는 MB가 은닉한 재산을 추적하는 데, 아니 추적해놓은 길을 탐사하는 데 완벽한 책이다. 비록 MB가 현재 구속 당한 상태이지만,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의혹'이고 '추정'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보다 중요한 건 그 의혹과 추정을 '확실'로 바꾸는 '확신'이 이 책이, 이 저자가 나아간 추적과 우리가 따라가는 답사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다시 한 번 대다수 국민(일 거라 믿는다)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하루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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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번지점프를 하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포스터. ⓒ눈엔터테인먼트



1983년 여름의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서인우(이병헌 분)의 우산 속으로 젊은 여인이 달려 들어온다. 첫눈에 반한 게 분명한 인우는 왼쪽 어깨가 젖어가는 줄도 모른 채 멍한 표정이다. 그렇게 헤어지고는 매일 같이 그 자리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인우다. 


다시 한 번 어느 날, 학교 교정에서 그녀를 발견한다. 국문학과 서인우와 조소과 안태희(이은주 분)의 만남이 시작된다. 급속도로 친해져 사귀게 된 그들, 여타 커플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우가 군대를 가게 되었을 때 태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났다. 


17년이 지나 인우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딸까지 있는 그인데, 태희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담임으로 있는 반의 임현빈(여현수 분)이라는 학생이 자꾸 태희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는 정도로 넘어 갔지만, 너무나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계속 보임에 인우는 현빈이 태희임을 알아보는데... 17년 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빈이 태희일까? 


판타지적 장르가 섞인 멜로/로맨스 영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 ⓒ눈엔터테인먼트



2000년대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까지 <접속> <약속>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연풍연가>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주옥같은 멜로/로맨스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그 기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는데, 와중에 정통이 아닌 판타지 장르가 조금 섞인 멜로/로맨스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감> <시월애> <번지점프를 하다>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사랑합니다> <인어 공주>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2000년대 초반의 판타지적 장르가 섞인 멜로/로맨스 영화 판도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영화에서 판타지적 장르는 지극히 수단일 뿐이다. 


영화는 1/3을 정말 소소하고 평범한 사랑의 시작을 보여준다. 분명 거기에는 일부러 보여주지 않고 감춘 절절함이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17년 후를 다룬 후반부에서 하나하나 회상하며 강도를 높여가는 특별하고 본질적인 사랑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본질'에 관한 영화이다. 거기에 '사랑' 정도를 덧붙일 수 있겠다. 사랑의 모습은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인간 대 인간'까지 나아간다.


사랑의 외연 그리고 본질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 ⓒ눈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처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초반 1/3 보다 후반 2/3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판타지적 장르를 수단으로 썼듯이, 동성애적 코드도 수단으로 써버리면서까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 메시지가 2001년 당시에는 꽤 파격적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여러 사랑의 정의 중 한 방면의 정석이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외연 상 인우가 남학생 현빈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히 동성애적 끌림이라 볼 수 있다. 그가 태희를 연상시키는 것도 모자라 태희 그 자체라는 확신이 선다 해도 말이다. 다분히 판타지적 설정임에 분명하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정의가 드러난다. 사랑은 외연이 아닌 본질이라는 것 말이다. 


인우에게 현빈은 현빈이 아닌 태희다. 평생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그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그녀 태희 말이다. '남학생' 현빈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등식이 성립됨과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졌을 거라는 등식도 성립된다. 아주아주 오랜 후에도 계속될 거라는 등식도 역시. 


절벽에서 바다에 떨어지면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죽고 말지만, 같은 절벽에서 번지점프를 하면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살아 돌아와 다시 만난다. '본질'이라는 사랑의 정의에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불교 색체가 덧붙여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 대 인간의 사랑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 ⓒ눈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말하는 '본질'의 사랑의 정의는 태희의 현빈화가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차원까지 나아갈 수 있는데, 남자를 사랑한다는 외연과 여자를 사랑한다는 본질적 외연을 넘어서 인간을 사랑하는 본질까지 내다본 것이리라. 인우가 남학생의 모습을 한 태희를 사랑한다는 건, 여자 태희가 아닌 인간 태희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반증이다.


굳이 등식화 하자면 남자 현빈->여자 태희->인간 태희인데, 그 스스로도 남자 인우, 가장 인우, 동성애자 인우 등의 정체성을 넘어선 인간 인우가 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정의를 이 정도까지 진척시켰고 이 정도에서 멈췄다. 현빈이 그저 남학생 정도로 나왔으니 망정이지, 동물이나 벌레로 나왔으면 어쨌겠는가. 


결혼하기도 한참 전 지금의 아내랑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자주 물어봤었다. "나 사실 남자야. 나이도 엄청 많아. 그런데도 나랑 사귈 거야?" 나는 그때마다 "그래.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그땐 반은 장난이고 반은 진짜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나서 그때를 돌이켜 보면서, 아내가 '나라는 인간을 사랑하는 건지' 시험해본 거라고 말했다. 


흔히 "다음 생애에도 지금의 남편 혹은 배우자와 다시 만날 거나?"라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 장난 반 진담으로 "훨씬 예쁘거나 멋있고 훨씬 돈 많은 사람과 만날 거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며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운명의 상대가 다름 아닌 아주 오래 전부터 만나왔던 단 한 사람이고, 그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나도 그 역시 그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 그 인연의 끈, 그 형용할 수 없이 길고 끝과 끝이 만날 수 있는 비현실적인 확률을 되새기며, 극 중 서인우의 대사를 읊어본다. "이 줄은 세상인데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꽃일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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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오랫동안, 그러니까 결혼을 하기 전까진 식단으로만 본다면 채식주의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다. 당연히 주식은 쌀밥, 주반찬은 국(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등)과 김치류였다. 가끔, 특식으로 삼겹살이나 닭볶음탕, 소갈비를 먹었다. 아주 가끔, 몸보신 용으로 곰탕을 먹었던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한국인의 보편적 식습관일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상당한 육식이 함께 하지만, 보다 훨씬 상당한 채식이 함께 한다. 결혼을 하고 몇 개월 정도 아내의 친정에 얹혀 살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특이한 식습관을 가진 가족이었다. 아내는 본인 가족의 주식은 쌀밥이 아닌 고기 또는 면이고, 주반찬은 그때그때 다르다고 했다. 


서양식에 가까운 식단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간 평생 먹었던 고기에 버금가는 고기를 먹었던 것 같다. 거의 매일매일이 고기, 넓은 의미의 육식이었다. 대신 나만큼은 쌀밥을 아예 안 먹을 수 없으니 소량의 쌀밥을 함께 먹었다. 굉장히 특이하고 특별한 경험, 나의 식문화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바뀌었다. 


이제 독립해 둘만 살아가는 지금, 여전히 나의 아내는 쌀밥을 먹지 않는다. 아니, 쌀밥이 주식은 아니다. 반면, 나는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예전 식습관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고기는 육식은 나의 영원한 갈망 대상이다. 고기를 먹으면, '정말 잘 먹었다'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오고 심지어 내가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고기를 엄청 찾지는 않지만 고기를 끊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메디치)은 나를 포함해 모든 비(非)금식자를 위한 책이다. 


육식의 시작, 육식의 신화, 육식의 경향


책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육식을 주체로 놓고 육식에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오히려 부정적에 가까운 생각의 발현을 내보인다. 인류는 왜 육식을 끊을 수 없는지 사실상 육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기정사실화 해놓고, 인류의 육식에의 필연적 욕망을 수백 만 년 전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들여다본다. 


저자는 우리 조상이 250만 년 전에 육식 식단으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먹잇감을 사냥할 도구가 있었고, 소화시킬 몸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변했을까? 갑작스런 기후변화가 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강수량이 줄어 식물들은 줄어든 대신, 동물들은 증가했다. 한편, 지금도 초식동물이 가끔 육식을 하는 것처럼 그저 칼로리를 보충하기 위해 육식을 시작했다고도 한다. 


육식은 인류가 사회적 동물인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식물을 얻는 것보다 고기를 얻는 게 훨씬 더 힘들다는 걸 알고난 후, 육식은 칼로리 보충용이 아닌 권력에의 표상과 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육식이 주는 칼로리의 열량이 채식보다 훨씬 더 크다는 단순한 이유도 물론 존재한다. 


이는 비단 구석기시대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시아의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고기의 섭취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선진국=서양=육식'의 등식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육식이 있다는 자못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


최근 들어, 건강을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진 듯한 느낌이다. 한편으론 인권에 버금가는 동물권리에의 이유를 들어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 고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너무 더럽고 잔인해 먹을 수 없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정작 주변에서는 찾기 힘들거니와, 나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도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내 안에, 인류의 안에 250만 년 전에 시작된 고기를 끊지 못하는 DNA가 있다는 것과 상관없이, 지금 인류가 비록 많은 부분에서 진보를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채식주의를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는 이상 누구도 고기를 쉽게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고기를 끊을 수 없는 이유


미국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책은 우리가 고기를 끊을 수 없는 여러 이유가 더 있다고 말한다. 육류 관련 협회는 육류 생산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육류가 더 많이 소비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일을 하며 수수료로 먹고 사는데, 정부 시책과 맞물려 시행되는 그들의 어마어마한 홍보는 사람들의 인식까지 지배할 정도라고 한다. 그들은 광고는 물론 과학자들을 동원, 학술적으로까지 접근하여 우리의 가슴과 마음 깊숙이까지 육식에의 어느 정도는 만들어진 심리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만들어진 신화'를 차치하고서라도 고기가 주는 직접적이고 '만들어지지 않은 맛'에의 욕망을 인간 누구도 저버릴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감칠맛과 지방의 조합이 환상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건 우리 몸에 내재된, 우리가 고기를 끊을 수 없는 가장 어쩔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의 건강과 미래 후손의 세상이다. 이런 식의 육식이라면 단적으로, 여전히 심장 질환과 암 질병 발생률에 지대한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지금도 지구에 엄청난 아픔을 초래하는 가축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기에 대기 및 수질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안길 것이다. 


저자는 크게 위의 두 이유로 육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가 육식을 포기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 길이 너무나 길고 험하다는 걸 잘 알기에,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게 아닌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린 것이다. 매우 적절하고, 매우 마음에 드는 결론이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육식을 많이 하면 몸에 좋을 게 없지만 최소한은 섭취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있는지라, 그 인식에 완벽히 부합한다. 


육식을 끊을 수도 없겠지만, 끊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채식주의를 하는 건 자유지만, 채식주의를 강요하고 육식주의자를 혐오하고 배척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다. 물론, 그 반대의 행위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저자의, '여러 방면에서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고, 대립하는 양 면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취합하여, 실현 가능한 절충안을 내는 방법'에 박수를 보내며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그 취지에 공감하며 따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육식 연대기'라는 이 책의 부제와 다른 또 다른 부제를 붙이고 싶다. '육식을 줄여야 하는 이유'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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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로건 럭키>


영화 <로건 럭키> 포스터. ⓒ스톰픽쳐스코리아



스티븐 소더버그는 20대 때 내놓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선댄스와 칸을 휩쓸며 굴지의 천재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그는 연출과 각본뿐만 아니라 편집과 촬영과 기획, 그리고 제작에 이르는 영화판 일련의 작업을 거의 모두 섭렵했는데 진정 영화를 즐기는 느낌이랄까. 데뷔 30년이지만 아직 50대 한창의 나이다. 


2000년대 극초반 <에린 브로코비치> <트래픽> <오션스 일레븐>을 잇달아 내놓으며 최전성기이자 지금까지 보건대 마지막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오션스 일레븐>으로 범죄 전문가들이 한 탕을 계획하고 치밀한 전략 하에 다채로운 기법으로 흥미로운 강탈 범죄를 저지르는 '하이스트 무비'(케이퍼 무비)의 전형을 수립했다. 


2010년대 흥행과 비평에서 나쁘지 않은 작품들을 내놓으며 부활의 날개짓을 펴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려는 것인가? 와중에 하이스트 무비 <로건 럭키>가 눈에 띈다. 현대판 하이스트 무비의 전형을 세운 장본인인 만큼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지만, <오션스 일레븐>의 후속편들이 워낙 처참했기에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스티븐 소더버그의 하이스트 무비라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나 싶다. 


비(非) 범죄 전문가들의 대규모 범죄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고교 시절 미식 축구 스타였지만 부상으로 다리를 다쳐 지금은 공사장 인부 일하는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 분)은 어느 날 갑자기 다리 부상을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이혼도 한 마당에 살길도 막막하고 할일도 없는 그는 세계 최대 규모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털 '한탕' 계획을 세운다. 레이싱 경기장 보수 공사 인부로 일하던 중 그 수많은 돈이 어떻게 지하 금고로 모이는지 그 원리를 터득한 덕분이다. 


그는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이라크 파병을 나갔다가 왼쪽 팔꿈치 아래를 잃고 지금은 바텐더로 근근히 생활하는 남동생 클라이드 로건(아담 드라이버)과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여동생 멜리 로건(라일리 코프 분)의 '로건 남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일명 폭파 전문가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 분)와 두 남동생들의 '뱅 형제'. 


문제는, 그들 중 누구도 '범죄 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로건 남매는 범죄 전문가는커녕 제대로 된 범죄를 저질러 본 적도 없는 시골 촌뜨기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다. 어설프고 허술하기까지 한 그들이 어떻게 세계 최대 규모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터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자. 


매력적인 소소함, 어설프고 허술함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는 기대완 다르게 소소하다. 앞서 말한대로 어설프고 허술하다. 아둥바둥 사는 모습이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그 스스로가 정립한 전형적인 하이스트 무비의 범죄자 같지 않은 이들이 저지르는 깔끔하고 체계적이고 완벽하리만치 믿을만한 행각이 이 영화엔 전혀 나오지 않다시피 한다. 


그 점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기대완 다르다'는 말의 한 꼭지에 해당한다. 전문가 아닌 우리도 이들처럼 어마어마한 강탈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 하는 환상 아닌 환상을 품게 해주는 면도 있겠지만, 그들의 아둥바둥 지리멸렬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자체에 연민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범죄 행각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비록 꽤나 치밀한 전략을 세웠지만 너무도 쉽게 쉽게 실행에 옮기는 장면들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영화 한 편 또는 드라마 한 편 전체를 할애하는 탈옥을 몇 초만에 실현시키지 않나, 수많은 리허설로도 실패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금고까지의 초행길을 역시 몇 초만에 실현시키는 것이다. 


반면 영화는 캐릭터들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 그들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연유을 되짚어보는 게 아닌,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연유를 말이다. 이는 그들이 어설프고 허술하고 소소하기까지 한 이유임과 동시에, 한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티와 이어진다. 


트럼프 시대를 향한 이유 있는 항변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자본주의 세상에서 휴머니티란 무엇일까. 반자본주의까진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로건 남매가 금고를 터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누구도 납득할 만한 명분이라는 게 없다. 


몸이 성하지 않다는 이유로, 블루칼라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명분이랄까. 자본주의, 그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터는 걸로 세상에 소소한 하이킥을 날리는 것이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영화 외적으로도 메이저 배급사를 통하지 않는 배급으로 자본주의 세상에 소소한 하이킥을 날렸다. 


영화는, 그래서 스티븐 소더버그의 이유 있는 항변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항변이냐, 어디를 향한 항변이냐. 자본주의 세상, 더 파고들면 미국의 현 트럼프 시대다. 그는 통계로도 나와 있듯이 블루칼라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엎고 그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영화에서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형편 없는 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 웨스트 버지니아는 최악. 


상당히 노골적인 반 트럼프 어조를 영화 전반에 깔고 있음에도 잘 느끼지 못하는 건, 그 진지할 수 있는 어조를 상쇄시키는 발랄한 어조의 연출과 촬영과 편집 센스 그리고 그동안의 연기톤을 180도 바꾼 다니엘 크레이그를 비롯 배우들의 대체적인 톤 다운 덕분이었겠다. 그런 한편, 만연해 있고 당연시 되는 차별과 혐오의 풍토가 현 시대를 잠식하고 있어 잘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서늘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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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학과 권력>


<대학과 권력> 표지 ⓒ휴머니스트



대학 위기론이 팽배하다. 사학 비리는 추악한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표적 얼굴마담이 된 지 오래이고,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는 등록금으로 먹고 사는 사립대학들이 폐교의 수순까지 밟게 하는 폭탄으로 자리매김하기 직전이다. 그야말로 이곳 저곳에서 위기의 촉수를 뻗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학 위기의 현대적 원인들 즉,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계속된 원인들이 존재한다. 대학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 대학은 많아졌는데 대학교육 질적 상태는 답보상태라는 것, 취업자 알선소도 모자라 실업자 양성소 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것,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딜 가나, 누구나 한 마디씩 해봤음직한, 누구한테나 한 마디씩 들어봤음직한 대학 위기의 원인들이다. 와중에 충격적일 수 있는 사실을 전하자면, 위의 '현대적 원인들'이 결코 현대적이지 않다는 것 즉, 우리나라 대학이 생기기 시작한 100여 년 전부터 이미 존재해온 고질적 병폐라는 것을 말이다. 


한편에서는, 한국의 대학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수도권과 지방 대학 간의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대학 특성화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 대학 자율화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 등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대학 역사 100년을 되짚은 책 <대학과 권력>(휴머니스트)은 지금의 대학, 그 위기와 문제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그 원인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권력'을 꼽았고 그중에서도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을 핵심으로 보았다. 권력으로 본 대한민국 대학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대한민국 대학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볼 수도 있겠다. 


타율적 권력의 그림자 그리고 대학권력


우리나라 대학은 애초에 자율적이 아닌 타율적으로 생겨나 운영되었다. 근대 고등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제 시기였다. 서울대학교의 전신이라 할 만한 경성제국대학과 관립 전문학교, 그리고 조선인을 위한 사립 전문학교가 모두 일제의 식민권력의 통제 아래 있었다. 해방이 되고서는 일제 식민권력 대신 미군정이 들어서 미국적 학문을 토대로 미국식 대학 모델을 심었다. 이후 대학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가장 미국화된 곳이 되었다. 


이미 70여 년 전, 한국의 대학은 가장 미국화된 곳이었다. 즉,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고 무방한대, 작금의 대학 위기 중 하나인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와 정반대의 지점이라는 게 흥미롭다. 한편, 태초의 지점에서부터 자율이 아닌 타율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작금의 대학 개혁 방향인 '자율성 회복'과 맞물리는 대목이라 역시 흥미롭다. 


1950년대 들어 그동안 식민권력에 억눌러 있었던 교육열이 폭발하면서 대학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거기에는 이승만 정부의 방임만이 아닌 부추김, 대학교육 특히 사립대학 재건에 앞장 선 주요 인물들의 대학 안팎 권력 독점 등의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1950년대가 저물고 1960년대 들어 4.19로 이승만이 물러가면서 대학 또한 크게 변한다. 


대학 위기의 현대적 원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너무 많은 대학'은 이미 60년 전에 존재하는 대학 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다. 또한 대학의 양적 팽창이 대부분 사립대학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점이 현대 대학이 나아가야 할 개혁 방향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대학의 공공성 확보'와 맞닿아 있다는 게 한편 신기하면서도 자못 충격적이다. 사학 비리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한 '대학권력'의 모태는 이미 오래전에 존재했었다. 


국가권력, 그리고 시장권력


1960년대 들어 대학 민주화를 통해 대학 위기를 돌파하려 했었지만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며 무참히 짓밟혔다. 대학권력을 압도하는 국가권력의 손길은 대학의 자율과 자치를 고려하지 않고 개혁과 대학 안정화라는 명목으로 대학 운영 전반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는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까지, 즉 20여 년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짧은 서울의 봄이 지나고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며 국가권력의 무시무시한 촉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졌다. 


현대에도 여전한 대학 위기 최대의 원인이자 대학 개혁 최대 기원, 그리고 대학교육 방향 중 가장 첨예한 논란의 주인공인 '대학 자율화'가 가장 침해를 받았던 시기가 1960~80년대다. 필자도 최소한의 의문이 드는 부분이 '대학 공공성 회복'과 '대학 자율화 회복'의 동시 추구 가능성인데, 이 중 한 가지를 추구하면 다른 한 가지를 추구할 수 없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아마 극악적 양자택일의 우리나라 역사의 성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1990년대들어 한국 대학은 전에 없는 놀라운 변화를 했다. 양적 팽창에 버금가는 질적 향상은 평가에 따른 선별 지원과 대학 스스로의 개혁으로 확보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를 휩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의한 시장권력에 포섭되어 갔다. 더 큰 문제는, 국가권력과 대학권력이 바로 이 시장권력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세 권력의 공고한 연대는 2010년대에서 2020년대로 넘어가는 바로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대학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주체가 없다. 


돌아보니,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가 한국 대학만큼 잘 적용되는 사례도 드문 것 같다. 1950년대가 저물 때 대학은 위기에 몰렸고 여기저기서 '대학망국론'이 등장했고 이에 대학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1950년대'를 '2010년대'로 고쳐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도 제시한 대학 개혁의 방향 중 진정한 '대학 자율화'야말로 한국 대학 위기의 반복된 역사의 가장 큰 이유이자 그 역사의 반복을 그만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다른 위기나 개혁 방향이 그때 그때의 시대와 포섭된 권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는 다르게,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한국 대학의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공통적으로 진정 이룩할 수 없던 게 '대학 자율화'이기도 하고 말이다. 


2015년 8월 17일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고현철 교수는 교육부가 총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 대신 간선제로 바꾸라고 요구한 데 반발해 투쟁하다 부산대 본관 4층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 대학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요구한 것인데, 이에 정부는 국립대 총장 선출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간선제 유도 방식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한 교수의 고귀한 죽음이 던지는 파장이 부디 널리널리 퍼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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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이, 토냐>


영화 <아이, 토냐> 포스터. ⓒ누리픽쳐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피겨스케이팅에 관심을 갖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토냐 하딩(마고 로비 분), 극악한 엄마(앨리슨 제니 분)의 폭력적인 관심과 가르침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반면, 그 때문인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출중한 성적과 함께 성격과 행동의 돌출적이고 폭력적인 끼를 숨기지 못했다. 


토냐는 우연히 만난 제프 길롤리(세바스찬 스탠 분)와 격렬한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그는 폭력적이기 짝이 없는 광인이었다. 지옥 같은 엄마와의 일상에서 빠져 나와서 정착한 곳이 또 다른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들한테서 사랑을 느꼈다. 문제는, 삶을 파괴할 게 분명한 그의 폭력이 끝없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킬 정도의 출중한 실력은 대중의 사랑을 불러일으킨 반면, 클래식이 아닌 하드코어 음악을 틀고 점잖치 못한 의상을 입고서 무대에 오르는 이 선수를 심사위원들은 고깝게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였고, 1992년 알베르빌과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직전 일어난 '그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더 이상 피겨스케이팅을 타지 못하게 하였고, 그녀에게 '은반 위의 악녀'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부여했으며, 미국 피겨스케이팅계 추락의 빌미를 제공했다. 


미국이 원하는 여성상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누리픽쳐스



영화 <아이, 토냐>는 1990년대 미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 중 하나인 '낸시 캐리건 습격 사건'을 주요 키워드이지만 루즈한 톤으로 깐, '토냐 하딩'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거대한 사건에 가려진 토냐의 진짜 삶의 면면들 말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토냐의 모습을 통해 '그대로의 여성'과, 또한 미국과 대중과 미디어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다. 


1980, 90년대 미국은 절제와 통제의 시대로 진입해 있었다.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집합체는 여러 곳에 손을 뻗었고, 스포츠 종목 중 유독 예술적이고 여성적인 피겨스케이팅은 실력만큼 중요한 아니, 그보다 중요한 외모와 이미지가 순위를 결정하고 대표를 선발했다. 가난해서 '제대로 된' 의상을 입을 수 없었고, 치명적인 환경에서 자라와 '고상할' 수 없었던 토냐 하딩은 부적격자였다. 


그녀의 실력은 미국을 대표하고도 남았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미국(의 심사위원)이 원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성과 개성이 추구되는 지금이라면 그녀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원석의 느낌도 충분히 강점이 되고도 남았겠지만, 그때는 더할 나위 없는 특급의 약점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그녀, 그대로의 여성으로 남아 있기 힘들었다. 만들어진 여성, 미국이 원하는 여성상, 보수적인 여성상이어야만 했다. 


토냐 하딩의 삶의 면면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누리픽쳐스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며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면서도 블랙 코미디 요소를 섞는 기발함을 발휘했다. 그때 그 시절의 느낌과 캐릭터를 최대한 그대로 가져와 토시 하나 바꾸지 않는 대사를 차용했지만 진지하지 않은 편집과 음악과 여러 영화적 기법을 통해 더 깊은 감정이입을 차단하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시종일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토냐 하딩의 삶의 면면에 환멸과 냉소를 던지기도 한다. 


반강제적인 통합과 편입에는 필히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세계 패권 국가로서의 미국이라면 당연히 자기 입맛에 맞는 선수를 국가대표로 내보내려고 했을 터, 출중한 실력과 외모를 자랑하는 문제아 토냐는 골칫덩어리이자 고민덩어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 삼는 게 바로 그녀 삶의 면면들이다. 


그녀의 삶은 비극의 연속이다. 비극은 그녀의 모든 것인 피겨스케이팅에 거대한 명과 암을 선사한다. 명암은 미국에 고민을 던지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다시 그녀에게 돌아와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그녀,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 그에 대한 고민을 또는 반론을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조심스럽게나마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적나라하게 내보이면서도 빠르고 단편적으로 쓸고 지나가는 듯한 영화의 면면들은 그런 조심스러운 들여다보기의 흔적들이다. 


토냐 하딩이고 싶었던 토냐 하딩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누리픽쳐스



토냐 하딩이 더 이상 피겨스케이팅을 할 수 없게 만든, 그리고 그녀에게 '은반 위의 악녀'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그 사건은 엉망진창이다. 하필이면 그 사건의 주인공(피해자) 낸시 캐리건은 토냐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이 원하는 여성상에 거의 완벽히 부합하는, 그야말로 토냐와 정반대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하필이면 그 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가해자)인 괴한이 토냐의 남편과 토냐의 보디가드(라고 주장하는)와 연류되어 있던 게 아닌가. 미디어와 대중이 그런 스캔들과 가십거리를 가만히 놔둘리가 없다. 미디어로서는 그만큼 대중의 이목을 끌만한 사건이 더이상 있을 수가 없고, 대중으로선 그만큼 신나게 열광할 사건이 더이상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토냐 하딩과 낸시 캐리건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미국 피겨스케이팅계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라이벌이 아닌가. 어떤 식으로든 최고의 유명인의 속절없는 추락은 하릴없는 대중, 별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 그런 대중에게 입맛 당기는 기삿거리를 찾는 미디어에게 가장 핫한 일이다. 


이 사건을 온전히 토냐 하딩의 불우한 비극의 삶의 연속적인 행태의 정점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미국과 미디어와 대중이 한통속이 되어 토냐 하딩을 지옥으로 이끌어 버렸다고 할 수도, 토냐 하딩의 전 남편과 보디가드가 그녀 모르게 꾸민 범죄의 결과로만 생각할 수도 없다. 진실은,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 어디에서도 정작 '토냐 하딩'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냐 하딩은 그저 토냐 하딩이었을 뿐이고, 토냐 하딩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 피겨스케이팅을 타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바람을 이해하고 동조하고 도와준 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신조차도 말이다. 그녀는 '은반 위의 악녀'는커녕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이용당하고 조작당한 한 여자였다. 단순히 불쌍하다는 말로는 그녀를 설명할 수 없다. 차라리 악녀가 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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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랩 걸>

 

 

<랩 걸> 표지 ⓒ알마


 

'과학책'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본래 과학책은 잘 읽히지 않았다. 인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을 다룬 책이라면 역시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가 대중화에 앞장섰다. 칼 세이건,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면, 올리버 색스 등은 의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세 명이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에 와서는, 알파고의 출현이나 4차 산업 혁명의 도래 등의 트렌드에 맞춰 과학의 대중화가 상당히 진척된 느낌이다. 그 총체적 접근법은 역시 책이다. '과학책' 말이다. 과학 자체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소개하기도 하고, 과학자를 색다르게 대중에게 소개하기도 하며, 때론 그저 과학자가 썼을 뿐 과학과 연결된 게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여성 식물학자이자 교수 호프 자런의 <랩 걸>(알마)은 과학자가 썼을 뿐 얼핏 과학과 연결된 게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중구난방 건네는 책이다. 식물에 대한 다층적이고 다방면인 단편, 종종 드러내는 내외면의 깊숙한 이야기, 그리고 과학자로서 치열하게 사투하는 자전적 에세이까지. 저자는 치밀하게 구성한듯, 마음대로 느슨하게 구성한듯, 크게 세 이야기들을 오가며 식물, 과학, 사랑, 인간을 말한다.

 

식물에서 과학으로

 

저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나무는 은청가문비라고 한다. 그 나무는 모질고 긴 겨울 내내 초록색을 자랑하며 우뚝 서서 푸른 빛을 발한다. 팔십 년을 넘게 살고는 어느 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죽고 만다. 때아닌 5월의 폭설 때문이었다. 저자는 그때 비로소 나무가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람의 삶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고비를 넘겨 최고의 시간을 누리고 시간에 따라 변화했다. 


나무에게서 과학의 정수를 발견했다. 과학은 가르쳐주었다.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을.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저자가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저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저자에게 제공해준 것이 다름 아닌 과학이었다. 저자의 식물을 향한 관심이 곧 저자의 과학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로 나아간 것이다. 그녀는 식물학자가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 아닌 여자였다. 그녀는 아빠와 같아지기를 절실히 원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극복할 수 없는 큰 산과 같은 엄마의 연장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학 생활은 문학 전공으로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과학이야말로 진정 속한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지 않아 과학계에 만연한 성차별을 받게 될 운명. 


과학계 내 성차별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그건 "저 여자가? 그럴 리가."와 같이 지금의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다. 


인간에서 사랑으로


책은, 인간과 사랑에 대한 심오하지 않은 에세이적 고찰, 그래서 훨씬 마음에 와 닿는 고찰로 나아간다. 거의 1년 365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그녀에게도 평생 친구가 생기고, 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 평생 친구는 다름 아닌 빌, 함께 실험실을 꾸려가는 동료이기도 하다. 


빌은 오른손 일부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졸업무도회도 가본 적 없다는 그, 저자와 함께 액슬하이버그 섬에 도착해 연구를 할 때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춤을 추다. 저자는 빌의 바로 앞에 앉아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본다. 빌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빌이라는 인간,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똑바로 목격하는 증인으로서. 


저자는 야외에서 간단하게 피크닉하는 자리에서 클린트를 만난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희생하지도 않았다. 사랑은 너무 쉬웠고 달콤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닐까. 머지 않아 저자는 사랑의 결정체, 임신을 한다. 하지만 임신은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조울증을 앓았는데 당연히 약을 먹을 수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녀의 조울증을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었고, 그저 함께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임신 기간 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정상적이고 건강한 분만을 했다. 그녀는 아이의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될 것을 결심한다. 그게 얼마나 이상한 생각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그를 사랑할 것이고, 그도 그녀를 사랑할 것이고, 모든 게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훗날 그녀는 아이의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녀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했고, 태어난 후에는 그녀의 사랑이 아이가 이해하기에 너무 큰 게 아닐까 걱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아들이야말로 그녀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렸던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 그 아이는 불가능한 동시에 불가피했다는 것, 누군가의 엄마가 될 단 한 번의 기회가 한 번 그녀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게 과학이고 과학의 눈으로 보면서도 과학은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은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점에서 식물과 같지만, 식물은 중대하고도 기초적인 면에서 인간과 같지 않다. 사랑은, "널 사랑해"라는 말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줄지는 아는 것과 같다. 형체가 없어 만질 수는 없지만 항상 함께 있다는 걸 믿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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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온리 더 브레이브>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포스터. ⓒ코리아스크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모티브만 따오고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각색한 유형,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그 사건 안에 충분한 내러티브와 메시지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가 많다. 내용은 같은데 재해석한 유형, 유명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건을 다룬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모티브도 내용도 메시지도 캐릭터도 모두 거의 그대로 가져오되 큰 틀이 바뀌지 않게 영화적 요소들만 가미한 유형, 유명하거니와 논란의 여지도 없고 충분한 내러티브와 메시지와 감동까지 있는 실화를 다룬 경우라 하겠다. 전무후무한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이 더할 나위 없는 인간 승리의 모습을 선사하면 100%이다.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는 전무후무한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실화를 다뤘다. 불과 5년 전, 미국 애리조나주의 주도인 피닉스에서 북서쪽으로 80마일 떨어진 야넬힐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던 소방대원 19명이 몰살한 사건이다. 이 산불로 9.11 테너 이후 가장 많은 소방대원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닛 마운틴 핫 샷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의 한 장면. ⓒ코리아스크린



크루 7 소방팀, 실력 좋은 소방대원들로 구성되었지만 '핫 샷'이 아니기에 매번 뒷전이다. 실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다. 팀장 에릭(조슈 브롤린 분)은 단장 두에인(제프 브리지스 분)을 통해 시장에게 직접 부탁해 '핫 샷' 승급 심사를 요청한다. 가까스로 얻은 기회, 에릭은 신입 소방대원들을 모집한다. 


브렌든(마일즈 텔러 분)은 일전에 잠깐 소방대원의 꿈을 꿨지만 지금은 마약에 찌들어 사는 약쟁이일 뿐이다. 그는 딸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개과천선의 기회로 크루 7의 소방대원 모집에 지원한다. 에릭은 대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들이고, 그는 남들보다 수십 배는 지옥일 훈련과 동료들의 질타를 묵묵히 또 성실하게 이겨낸다. 


우여곡절 끝에 '그래닛 마운틴 핫 샷'이 된 크루 7 소방팀, 실력을 인정받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지원을 나간다. 그들은 여지없이 수많은 산림과 집과 사람들을 살려낸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족들에게서 멀어지는 아픔을 겪는 그들이다. 한편, 애리조나주 야넬힐에서 발생한 산불에 투입되는 그들, 별 거 아닐 거라 생각했던 불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불길로 번지고 마는데... '핫 샷' 크루 7 소방팀은 이를 어찌 돌파할까?


액션보다 드라마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의 한 장면. ⓒ코리아스크린



'핫 샷'은 산불 초기에 방어선 구축을 위해 투입되는 최정예 소방대원팀을 말하는데, 그들은 땅을 파고 나무를 잘라 경계선을 만들고 맞불을 놓아 산불이 더 이상 번지는 걸 막는 임무를 맡는다. 즉, '핫 샷'은 불을 끄는 소방팀이 아니라 불을 막는 소방팀인 것이다. 정녕 최정예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영화는 얼핏 액션을 기반으로 한 재난 영화로 비춰지기 쉽다. 예를 들면,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산불이 엄청난 피해를 입히지만 그에 대항해 획기적인 방법으로 진압에 성공하는 최정예들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온리 더 브레이브>는 그런 방법을 크게 비껴간다. 이 영화는 '드라마'인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로 소방대원의 일상을 들여다볼 뿐이다. 그저 그들의 일이란 게 매순간 죽음을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스펙타클하게 보이고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산불 화재에 투입되어 자신의 일을 한다. '핫 샷'이 되기 위해 수없이 훈련을 받는다. 전장에 투입된 군인들의 전우애 버금가는 우정과 가족들 간의 갈등도 크게 다가온다. 


영웅들의 비극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의 한 장면. ⓒ코리아스크린



실화이기에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야넬힐 산불에 투입된 '그래닛 마운틴 핫 샷' 팀은 20명 중 브렌든만 제외한 19명이 현장에서 몰살했다. 에릭 팀장이 '휩쓸고 지나가면 세상의 종말 같을 거다. 하지만 숨만 쉬면 산다'고 하며 철저히 방어 훈련을 했음에도, 그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비극적 실화의 결말이다. 


영화는 사실을 알고 봐도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홀연히 떠나버리고 만 대원들에 대비해, 살아남은 브렌든과 몰살한 대원들의 가족들에게 불어닥친 거대한 재앙 같은 슬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게 이 영화를 만든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으로선 이길 수 없는 대재앙에 스러져 간 영웅들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그들을 제대로 기리고 기억하는 것. 


영화 자체는 비록 '전형적'이라는 용어의 큰 개념에서조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런 하자라면 하자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슬그머니 옆으로 치워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묵직하고 진지하며 올곧게 나아가는 느낌이랄까, 최소한 '볼 만하다'는 타이틀 정도는 충분히 가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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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소니픽쳐스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남쪽의 어느 별장에 한 가족이 기거한다. 열일곱 살 청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는 책읽기와 악기 연주, 작곡 등으로 여름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화사한 햇살 아래에서 하릴 없이 누워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그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누구일까. 


어느 날 아버지 필먼 교수의 인턴으로 스물넷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 분)이 찾아온 것이다. 다름 아닌 엘리오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동네 여기저기를 안내한다. 올리버는 잘생기고 키 큰 외모에 자유분방함과 박식함으로 무장한 매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엘리오도 그런 올리버에게 빠져든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올리버, 그럴수록 떨쳐내기는커녕 더욱더 빠져드는 엘리오. 결국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다 솔직해지기로 하고 욕망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해 여름은 짧았고, 올리버는 떠나야 했으며, 엘리오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첫사랑의 아픔을 삭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범 통과의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2007년 출간 당시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으며 화제를 뿌린 바 있는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했다. 정확히 10년 만에 영화로 재탄생되었는데, 원작보다 더 한 찬사를 받았다. 소설에서 영화로의 재탄생에 대한 찬사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색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2014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6년의 <캐롤>, 2017년의 <문라이트>, 그리고 2018년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우리는 매년 감각적이고 사려깊으며 사랑스러운 동성애 이야기를 만나는 축복을 누려왔다. 이제 더 이상 동성애는 '특별한' 사랑의 한 종류가 아니다. 


영화는 여타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과 명백한 차별점을 두었다. 그동안 동성애는 상당히 조심스레 다뤄졌다. 시대와 조우하는 동성애의 아픔이 가장 많이 다뤄졌고, 동성애가 극의 중심이 되지 않게 잘 포장하는 영화도 많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첫사랑과 조우하는 한 청년의 아픔으로 승화시켰다. 동성애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고, 동성애의 아픔을 동성애에 국한하는 게 아닌 사랑의 범 통과의례로 확대한 것이다.  


첫사랑 성장 이야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다분히 엘리오의 입장에서 서술되어지는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을 통해 성장해가는 엘리오의 이야기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농담, 그만큼 첫사랑은 여러 모로 강렬하다는 통념, 강렬함은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진다는 정설까지 아우른다. 그저 그 대상이 남자였을 뿐. 


이탈리아 남부의 찌는듯한 더위와 나른한 분위기는 첫사랑의 강렬함을 수반하는 상당히 노골적인 에로틱 판타지와 굉장한 조화를 이룬다. 어느 누구라도 사랑에 빠져 강렬하게 노골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엘리오의 첫사랑은 남부 이탈리아의 날씨와 분위기에 큰 빛을 지고 있다. 


한편 역사고고학을 연구하는 필먼 교수와 올리버, 고대 조각상들에게서 보이는 관능적인 젊음과 모호성의 곡선이 엘리오에 투영되어 올리버로 하여금 엘리오를 열망하게 한다. 엘리오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는 올리버의 행위는 다분히 인간 본성에 따른 것일 테다. 그저 아름다움을 쫓는 순수 인간이랄까. 


무엇이 어쨋든, 자연의 섭이리건 인간의 본성이건,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오와 올리버였다.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서로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나아가 우정 그 이상의 특별한 사랑을 나누었다. 동성애는 특별한 게 아니지만, 우정과 사랑은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은가. 


자유로움과 다양함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특별한 건 엘리오의 부모님이다. 시대가 개인을 완전히 규정할 순 없지만 최대한의 통제는 가능한 바, 1980년대 미국의 '절제와 통제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은 진솔하고 너른 품과 마음을 지니고 있다. 엘리오는 시대를 거스르는, 아니 시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유로움은 부모님 덕분이다. 


여기서 우린 사랑의 의미, 마음의 의미를 조우할 수 있다. 환경에 영향을 받고, 본성을 따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과 행동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사랑이고 마음이다. 그건 때론 불같이 빠르고 강렬하게 달려들고, 때론 물처럼 느리고 안정적으로 스며든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그해 여름도 불과 물이 함께 했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다양한가. 다양함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가. 우리의 마음을 진솔하고 너른가. 그런 크기의 그릇을 지니고 있는가. 엘리오에게 진심을 다해 건네는 아버지 필먼 교수의 진지한 격려와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옮긴다. 경청할 만하다. 


너희 둘은 아주 멋진 우정을 나눴어. 넌 너희가 가진 게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드문 건지를 알기엔 너무 똑똑하단다. 너희 둘이 나눈 그건 말이야... 그 모든 것은 지적인 거와는 상관이 없단다. 그는 그냥 좋은 사람이었던 거야. 너와 올리버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어 굉장히 운이 좋은 거란다. 너도 굉장히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지.


세상은 교활한 방법으로 네 약점을 찾는단다. 그러면 내가 옆에 있다는 걸 명심하렴.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단다. 아마 넌 어떠한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그리고, 네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그렇지만 분명 무언가를 느꼈을 거야.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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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20세기폭스코리아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일명 <포스트>. <뉴욕타임스>가 1971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펜타곤 문서' 보도로 미국에 '치명적이고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히며 명성을 떨친 것처럼, <포스트>는 이듬해 1972년 역시 전 세계를 뒤흔든 '워터게이트' 진상 보도로 명성을 떨쳤다. 영화 <더 포스트>는 어느 신문사의 어떤 보도를 다루는가. 


<더 포스트>는 큰 틀에서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명백한 메시지로 점철된 그것들은, 당연한 '언론'과 의외의 '여성'이다. 영화는 <타임스>가 아닌 <포스트>의 '펜타곤 문서' 보도를 다룬다. 왜 <포스트>의 '펜타곤 문서' 보도일까. 최초의 보도로 세상을 뒤집은 건 <타임스>인데 말이다. 또한 <포스트> 발행인 캐서린의 선택이 중요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그녀의 선택은 왜 특별히 중요한 것일까. 


할리우드의 신 '스티븐 스필버그'와 그의 페르소나 '톰 행크스', 그리고 연기의 신 '메릴 스트립'의 만남은 불꽃 튀긴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상 그러진 않았다. 영화는 감독, 배우, 연기에서 힘을 빼고, 메시지에 거의 모든 힘을 쏟는다. 그래서 기대했던 영화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으나,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봐야 할 영화로 거듭났다. 그들의 이야기에 한 발 더 들어가보자. 


세계 역사를 바꾼 일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1971년,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 의사 결정 기록, 일명 '펜타곤 문서'가 <뉴욕 타임스>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 펜타곤 문서 작성에 참여했던 댄 엘스버그가 몇 개월 동안 빼돌려 복사해 제보한 것이었다. 닉슨 정부는 이를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는 행위라며 후속 보도를 금지하였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한낱 닉슨 대통령 딸의 결혼식 보도로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는데, 사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파악한 편집장 벤(톰 행크스 분)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펜타곤 문서 입수에 사활을 건다. 천신만고 끝에 입수하지만,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이 보도를 망설인다. 


'언론의 자유'라는 당연한 권리와 함께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언론의 사명으로 중무장한 벤, <워싱턴 포스트> 전통과 역사와 존폐,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원의 생존과 안전이 걸려 결정을 내리기 힘든 캐서린. 우리는 그녀의 선택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언론의 자유와 사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해 모든 걸 걸고 나아간다. 그 위기를 기점으로 <워싱턴 포스트>는 더 이상 지역 일간지 수준이 아니게 되었고, 이어진 '워터 게이트' 취재 및 보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회사뿐만 아니라 미국,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꾼 일을 해냈다. 


언론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는 앞서 말했던 '언론'과 '여성'의 투 트랙을 중심으로, 그 명성 높은 감독과 배우들의 연출과 연기가 아닌 '메시지'에 중점을 둔다. 언론 윤리라는 게 있다. 진실을 추구하고 사회정의를 지향하고 인간적 연대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미국의 베트남 참전 계기가 되는 사건이 조작이었고, 이길 수 없는 전쟁인 줄 알고도 지속했으며, 선거를 조작한 것도 모자라 거짓 선언으로 전 세계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속속들이 들어 있는 '펜타곤 문서' 폭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진실을 추구하고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행동이 아닌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계속해서 파병시켜 죽게 만든 행위는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언론 윤리에 힘을 보탰고, 닉슨 정부의 보도 금지 압박은 자유를 추구하는 또다른 언론 윤리에 합당함을 부여했다. 문제는, 자본주의 세상에선 이 모든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문사도 회사인 바, 후원과 투자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위대함의 많은 선행 사항 중에 가장 힘든 게 희생이다. 캐서린은 '언론'을 지키고 결국 <포스트>를 지키기 위해, <포스트>를 희생시킬 각오를 한 것이다. 언론이 있고 <포스트>가 있는 것이지, <포스트>가 있고 언론이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적중했다. 그녀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이 영화를 상징하는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라는 대사는 나아가 언론의 총체적이고 궁극적인 존재 이유를 반영한다. 궁극적으로 '언론'이 아닌 '국민'을 지키는 게 언론의 의무이자 사명의 결정체라는 것.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할 때, 지키려 하지 않을 때,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여성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 캐서린으로 집약되는 '여성'이라는 메시지는 이 영화가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다. '펜타곤 문서' 보도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타임스>가 <포스트>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다루는 언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잊힐 뻔한 한 여성의 성장 이야기가 이채롭다. 


캐서린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포스트>를 물려준 이는 캐서린이 아닌 캐서린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갑작스레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캐서린이 경영자가 된다. 가족 경영이라는 꼬리표도 떼지 못한 채 최초의 여성 발행인으로 회사를 이끌어야 하는 처지, 당연히 당당한 결정과 선택을 하지 못하고 휘둘리기 일쑤인 것이다. 


영화는 회사의 존폐가 달린 결정과 선택을 하기까지 <워싱턴 포스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포착함과 동시에, 그에 못지 않게 많은 비중을 캐서린이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편, 부당한 모습에 할애한다. 그 두 접점이 펜타곤 문서 후속 보도 결정이라는 클라이막스에서 만나 확신에 찬 메시지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 고색창연한 메시지들은 속이 뻥 뚫리는 환희를 선사하기도 한다. 


<더 포스트>는 비단 언론의, 언론을 위한, 언론에 의한 영화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또한 50년 가까이 지난 옛이야기를, 그것도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를 그저 역사를 계속해서 되새김질하는 당위성 차원에서 불러온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이 영화는 지금 여기 우리에게 보내는, 명백한 목적 하의 명백한 메시지이다. <더 포스트>는 분명 '기대보다 못 미치는 게' 아닌 '기대와는 다른' 영화지만, 어떤 면에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최고의 영화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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