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컬러의 말>


<컬러의 말> 표지 ⓒ윌북



유독 한 가지 계열의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검정색, 빨강색, 핑크색, 보라색, 노란색 등. 굉장히 일반적이고 일방적인 생각으로 이들은 '무난한' 색은 아니다. 초록색, 파란색, 갈색, 회색보다는 튀는 색깔이랄까. 여하튼 색은 그 색을 좋아하는 사람의 성격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누가 회색을 좋아한다면, '회색분자'라 하며 뚜렷하지 않은 성향으로 이도 저도 아닌 성격을 가졌다고 놀리지 않겠나. 


난 어떤 한 가지 계열의 색을 좋아하진 않는다. 왠만한 모든 색에 감탄하고 좋아한다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 모든 색들의 '파스텔 톤'을 좋아한다. 원색의, 진하고, 탁해보이는 느낌보다 톤이 다운되고, 흐릿하고, 힘을 뺀 듯한 느낌을 좋아한다. 그런 색들은 보고 있기만 해도 편안해지고 종종 마치 나를 다른 어딘가로 데려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색은 정녕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어딜 보아도, 그 어떤 풍경 또는 물건을 보아도, 필히 볼 수밖에 없는 게 '색'이다. 그걸 하나하나 보고 느끼고 표현하고 호불호를 말할 수 있는 건 가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출판편집자로서 책을 만들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표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다름 아닌 색이다. 매일 매일 축복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축복이 주는 색의 감옥에서 살고 있는 걸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컬러의 말>은 <이코노미스트> 미술 분야 전문 편집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가 75가지 컬러의 숨은 비밀을 파헤쳐 짧게 기술해 놓은 책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매력적이거나 중요하거나 불쾌한 역사가 깃든 색들인데, 간략한 역사와 성격 묘사 중간 어딘가에 속하는 이야기들이다. 책 그 어딜 펼쳐보아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뿐이다. 


아이보리는 상아색의 다른 말이다. 상아는 바다코끼리, 일각고래, 코끼리 등 거대 포유류의 엄미를 가리키는데, 오직 특권층을 위해 자라났다고 한다. 몇천 년 동안 고급 장식 재료로 쓰인 상아, 이런 수요 탓에 1800년대만 해도 2600만 마리에 이르렀던 코끼리의 수는 20세기에는 몇십 만 마리만이 남았을 뿐이다. 야생 코끼리는 머지 않아 멸종할 것이며 바다코끼리 또한 멸종 위기 동물 목록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한다. 


서양은 파란색을 폄하해왔다고 한다. 로마인들에게 파란색은 야만, 애도, 불운을 상징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도 파란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파란색의 위상은 12세기 들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신의 색'이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동정녀 마리아가 밝은 파란색 가운으로 갈아입었는데, 중세에는 옷 색마저 바꿔버렸다고 한다. 


우르두어로 '흙'이라는 뜻의 카키는 군대의 상징과도 같다. 1846년 인도군 이동 수비대를 양성한 해리 럼스덴 경이 처음 고안했다고 여겨지는 카키색 군복은 '흙의 땅에서 병사들이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는 혁신적 생각의 작품이다. 몇천 년 동안 군인은 상대를 겁주기 위해 눈을 사로잡는 복식을 차려 입어왔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컬러들 이야기


저자는 익숙한 컬러들뿐만 아니라 난생 처음 들어보는 컬러들 이야기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 컬러들 모두 익히 아는 하양, 노랑, 빨강, 파랑, 초록, 검정 등의 계열에 속해 있음에도 말이다. 몇몇은 아이보리처럼 터무니 없이 고급지고, 몇몇은 파란색처럼 좋지 못한 취급을 받았으며, 몇몇은 카키처럼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과 함께 했다. 


노랑 계열의 인디언 옐로는 18세기 말에 동양에서 유럽에 상륙했다. 이 컬러에는 오줌 비슷한 냄새가 났다. 1880년에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인 조지프 후커 경이 나섰다. 인도 사무부의 도움까지 받아서 이 색이 동물 오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밝혔으나 의문이 완전히 풀리진 않았다. 2002년에 이 의문을 추적해보았지만 허사였다. 현재 인디언 옐로 안료는 희미한 오줌 냄새를 풍기며 큐 왕립식물원 수장고에 남아 있다. 


빨강 계열의 코치닐은 연지벌레라는 아주 작은 생물체로 만들어낸다. 1파운드의 코치닐을 만드는 데 말린 연지벌레 7만 마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서는 적어도 기원전 2세기부터 써왔다고 한다. 스페인이 그곳을 침공한 후로 금, 은과 더불어 스페인 제국의 확장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게 바로 코치닐이다. 지금도 화장품 및 식품 산업에서 쓰이는 코치닐은 연지벌레에서 추출한다. 


갈색 계열의 머미는 미라 가루이다. 이집트에서 삼천 년 동안 일상적인 장례 절차로 삼았던 그 미라 말이다. 이 진한 갈색의 가루는 만평통치약으로 쓰였고, 화가들의 팔레트에도 자리를 잡았다. 미라 가루는 충격적이지만 20세기까지 쓰였는데, 1810년 문을 연 런던 화구상 C. 로버트슨에서는 1960년대에 남은 머미가 소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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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편집자가 독자에게] 장강명 작가의 <팔과 다리의 가격>


<팔과 다리의 가격> 표지 ⓒ아시아



장강명 작가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인권 단체에 후원을 하기도 하고, 북한 문제에 대해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도 했죠. 일종의 사명감이랄까요. <팔과 다리의 가격>(아시아)는 장강명의 사명감을 가장 잘 표현해낸 첫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나온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예담)이 있습니다만, 장강명이 사명감을 갖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진 않았죠. 


그는 문학계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전무후무할 네 개의 문학공모전 수상으로 문학계의 ‘적자’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순문학 아닌 장르문학 또는 대중문학에 천착한 ‘서자’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10년 넘게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터득한 건조한 문체에, 그때그때 들여다본 현실을 비판하고 조명하는 데 ‘장르’를 도구로 사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그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궁극적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업작가가 되면서 재미있지만 날카로운 현실 비판 소설을 내놓았고 최근 들어선 더욱 직접적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화두를 던지는 논픽션을 내놓았습니다. 그에게서 ‘조지 오웰’의 스멜(?)이 나는 건 비단 저뿐인가요? 그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길의 종류는 같은 것 같습니다. 


조지 오웰은 풍자와 투철한 비판 정신에 입각해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비판하는 글을 여럿 발표했죠. 르포와 소설과 에세이를 오갔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신문사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이, 그의 글이 나아가는 그 끝엔 ‘전체주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자 궁극적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장강명 작가의 '북한 문제'


장강명에게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는 ‘북한 문제’일까요. 그가 그동안 내놓은 책들, 『표백』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당선, 합격, 계급』 등으로 한국의 기막힌 현실을 다방면으로 비판해왔던 건 ‘빅픽쳐’였던 것일까요. 현실 비판 작가로서의 확고한 자리매김. 비판의 방향을 북한으로 틀어도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아니, 굉장히 영리해 보입니다. 한국 비판=북한 옹호, 북한 비판=한국 옹호의 구도를 생각하기 쉬운데, 그 구도를 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엔 북한 ‘인권’ 문제라는, 인권이 붙고 인권은 곧 ‘인간’이 됩니다. 그가 바라보는 궁극적인 대상은 인간 또는 개인이 되는 것이고, 비판의 대상은 사회 혹은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는 그걸, 즉 북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팔과 다리의 가격>에서 대상이 되는 ‘이 사람’ 지성호 씨의 경우, 장강명 작가가 기자 시절 때인 5년 전에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죠. 그는 북한인권단체이자 북한이탈주민 지원단체 NAUH의 대표로, 북한의 실상과 인권 문제를 알리며 북한이탈주민 구출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지성호의 소년 시절 이야기이자 동시대 ‘고난의 행군’ 실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장강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북한 문제’의 일환이긴 하지만, 거기에 스며있을 수밖에 없는 직접적 정치·이념의 사항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니, 저자 본인이 이 책이 그런 길로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히죠. 


제목에서 암시하듯 지성호 씨는 한쪽 팔과 다리가 없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 오직 생존을 위해 기차에서 석탄을 훔치고는 제때 뛰어내리지 못하고 전봇대에 부딪친 결과라고 합니다. 고난의 행군이 낳은 피해를 떠앉고 진정한 고난으로 나아간 모습이랄까요. 저자가 묘사한 그때 그곳에서의 소년 지성호의 처참한 모습은 치가 떨리고 모골이 송연합니다. 


'고난의 행군'과 소년 지성호의 이야기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고난의 행군 당시 소년 지성호와 가족의 파란만장한 여정은 아닙니다. 그들의 여정, 특히 소년 지성호의 여정을 통해 본 ‘고난의 행군’, 나아가 고난의 행군을 통해 본 ‘북한 실상’이죠. 그래서 책의 성격이 조금 특이합니다. 인물 논픽션이자 실상을 파헤치는 르포이기도 한 것이죠. 


저자는 소년을 소개하고, 소년이 당한 사고를 소개하기 전에 ‘…… 대하여’ 3탄을 준비합니다. 마치 소년이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고, 소년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야기하려는 게 부가적인 것 인양 배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들은 ‘굶을 때 생기는 일’ ‘탄광마을의 삶’ 그리고 ‘미공급 사태’입니다. 보편적 실상, 북한의 실상, 고난의 행군 실상을 차례로, 그리고 점점 더 디테일하게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건 다름 아닌 보편적 실상, 굶을 때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매우 배가 고파지는 현상에서 시작해 먹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며 결국에는 필히 죽고 마는... 고난의 행군, 즉 미공급 사태 당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소 33만 명 이상이 죽은 이유가 바로 굶어 죽은 것, 아사(餓死)였던 것이죠. 


탄광마을의 삶은 소년 지성호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 한편 1990년대 북한의 생생한 실상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은 실상을 내보입니다. 특권계층에 속한 소년의 장래 희망은 노동당 간부가 아니라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을 일으켜 남한을 공산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라죠. 일상 전체가 잿빛은 아니었던 바, 착하고 순박한 마을 사람들과의 추억은 보편을 기반에 두고 있습니다. 


미공급 사태는 수많은 이들이 눈앞에서 굶어죽는 상상초월의, 상상불가의, 상상불허의 현장입니다. 완벽한 통제, 감시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재앙은, 통제와 감시만이 선사하는 최악의 일이었습니다. 그곳에 조금의 자유라도 있었다면 절대까지는 아니라도 그 정도의 죽음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었을 테죠. 모든 걸 떠나서 너무나도 안타깝고 치가 떨리는 죽음입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기 


장강명 작가가 주목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에 대해서, 그때의 참혹함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잘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요. 저자는 말하죠.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이들에겐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그에 맞춰 관심을 가지는 반면, 눈앞에서 굶어 죽어간 동포들에겐 어떻게 이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느냐고요. 동포 아닌 인류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이죠. 


그 대상이 ‘북한’이기에, 고난의 행군에서 살아남아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내려와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북한이탈주민’이기에, 남한의 보수와 정치·이념 지향점이 맞닿을 수밖에 없기에, 관심을 가질 수 없던 이들이 많았을 테고 관심을 가졌어도 내색할 수 없던 이들이 많았을 테며 관심을 가지기 싫었던 이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저자의 바람과는 별개로 솔직히 정치·이념적으로 생각의 물꼬가 자연스레 터지지 않기가 힘듭니다. 우리 모두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자의 말마따나 한국 사회의 정치·이념 지형에서 북한 문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진영 간 정쟁 소재로 소모되다가 갈피를 잃지 않나요. 


다만, 이 책이 저자의 바람대로 그런 길을 걷지 않는다면,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 속절없이 굶어 죽어간 인민들의 존엄만을 생각하는 데만 그 몫을 다한다면, 우리 한국 사회는 비로소 바람직한 사회로 진입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해하고 공감하고 인정하는 사회, 우리 모두가 바라지만 너무나도 진입하기 힘든 사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팔과 다리의 가격>은 이 남북 해빙 시기에 오히려 더 많이 읽혀야 할 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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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맹>


<문맹> 표지 ⓒ한겨레출판



살아생전 스위스에 거주하며 프랑스어로 창작활동을 했던 헝가리인 소설가 아고타 크리스토프. 우리나라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번역된 세 권의 시리즈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이 세 권을 포함 9권의 책을 썼는데, 우리나라엔 이 세 권을 포함한 5권만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그녀 자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바, 그녀가 쓴 작품들에 그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삶이. 그녀는 어쩌다가 헝가리에서 스위스에 와 살게 되었고, 왜 프랑스어로 창작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그녀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가. 코스다운 코스를 밟아보지 못했을 것 같지 않은가. 


2004년 그녀는 자전적 소설 <문맹>을 내놓았다. 2000년대 들어 처음 내놓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택한 것이다. 70대에 들어선 그녀가 온전한 작품 속에 자신을 투영하는 게 아닌, 자신이 자신임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이 작품은 아주 짧고 단순명료하지만, 그녀의 여타 작품들처럼 처절하다. 그래서 인상 깊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과 언어


그녀는 1935년에 태어나 전쟁이 막 시작될 무렵인 네 살 때부터 인쇄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시작이다. 읽기는 말하기로 옮겨가고 말하기는 쓰기로 옮겨갔다. 그녀는 그녀가 지은 이야기를 말하는 걸 즐겼다. 열네 살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절대 침묵을 해야 하는 학습실로 간다. 그녀는 모든 것을 적고 계속 읽는다. 문장들이 태어난다. 


누구나와 같이 그녀에게도 당연히 태초에 하나의 언어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홉 살 때 인구의 4분의 1이 독일어를 쓰는 국경 도시로 이사를 했다. 1년 후 러시아 군인들이 헝가리를 점령했을 때 러시아어가 의무화되었다. 스물한 살 때는 혁명의 여파를 피해 정치적으로 연류된 남편과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했다. 우연히 정착하게 된 그곳 뇌샤텔은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이다. 


그녀는 프랑스어로 말한 지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여전히 실수를 하고 사전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프랑스어 또한 독일어와 러시아어처럼 적의 언어라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읽고, 말하고, 쓰는' 행위가 가장 중요하기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뇌샤텔에서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프랑스어로 말을 하지만 읽지는 못한다. 네 살부터 읽을 줄 알았던 그녀는 다시 문맹이 된 것이다. 그녀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해 2년 후 훌륭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는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쓸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프랑스어로 글을 써 작가가 되게 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택하지 않았다. 운명, 우연, 상황에 의해 그녀에게 주어진 언어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쓰는 건 영원한 도전이다. 


생존과 생존 이후 설계를 위한 문맹 탈출


아주 짧게 간추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인생을 훑어볼 수 있는 책, <문맹>이다.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 부제처럼 자전적 이야기에 가깝다. 그녀 인생 중심엔 '언어'가 있다. '언어 자서전'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헝가리어에서 독일어로 러시아어로 프랑스어로 의무화된 언어가 바뀌는 과정이 곧 인생이다. 


언어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나의 실체를 구성하는 게 단순히 몸과 마음, 즉 육체와 정신이라고 한다면, 나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있는 게 '언어' 아니겠는가.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글, 내가 보는 모든 것이 언어, 그것도 모국어에 기반한다. 다른 언어로 그러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고 상상도 안 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처럼 언어가 특별한 사람일수록, 다른 무엇보다 언어와 가깝고 언어가 중요한 사람일수록, 다른 언어의 의무화는 치명적이다. 그녀에게 '문맹'이라는 건, '문맹'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건, 도전 너머 전쟁이다. 생존을 위해, 생존 이후 설계를 위해,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는 때문인지, 그녀의 글엔 깊이가 없다. 단순하고 단편적이고 단조롭다. 하지만 그건 문체(文體)다. 문신(文神)에서는 깊이가 전해진다. 이면을 살피고 여백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곳에 어린 그녀의 전쟁 같은 언어와의 사투를 느껴야 한다. 느껴지지 않으면 당장 던져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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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구병모 소설가의 <네 이웃의 식탁>


소설 <네 이웃의 식탁> 표지. ⓒ민음사



나라에서 젊은 부부 대상으로 마련한 꿈미래실험공동주택, 편의 시설 하나 없는 고즈넉한 산속에 지은 열두 세대 규모의 작은 아파트로 깨끗하고 구조도 좋고 평수도 적당했다. 까다로운 입주 조건에 20여 종의 서류 항목을 갖추어야 했고, 경쟁률은 20:1에 달했다. 서류 항목엔 자필 서약서도 있었는데, 이곳에 들어갈 유자녀 부부는 자녀를 최소 셋 이상 갖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효내가 보기에 공동이라는 이름이 유난히 강조되는 느낌이 큰 반면 실험은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로 아이까지 돌보느라 너무 바빴다. 한편 요진은 홀로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데, 약사인 육촌 언니가 차린 약국에서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교원은 집에서 전업주부로 '일'하며 아이를 돌보고 있었고, 단희는 천성으로 장착된 활발함도 그렇고 이것저것 섬세하게 살피거나 돌보기를 즐기는 부녀회장 스타일이었다. 


이들 네 이웃, 정확하게는 네 아내의 크고 작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부부, 아이, 이웃, 공동체, 자연... 단희의 남편 재강이 접촉 사고로 차를 센터에 맡기고 당분간 요진과 함께 카풀로 출근하면서 일어나는 일, 겉에서 보는 일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차이가 너무나도 큰 효내의 경우, 제 몫으로 주어지고 대부분 스스로 선택했던 모든 일과 그것의 결과들에 환멸을 느끼는 교원의 이야기가 뒤따른다. 


공동체의 허위


소설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은 데뷔 10년 차에 불과함에도 10권의 책을 쏟아낸 다작 소설가이자 판타지적인 이야기에 시니컬한 문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가 구병모의 신작이다. 소설은 '공동체'의 허위와 '여성 삶'의 본위를 폭로한다. 이 지극한 현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하게 만드는 동시에 서늘하게 만들 것이다. 


언젠가부터 공동체를 향한 로망이 생긴 것 같다. 행복지수가 한 없이 낮아진 데 대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 지역주의 팽배가 급부상하고 그 대안으로 공동체가 떠오른 이유 때문이리라. 더욱이 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30%에 육박한 상황에서 공동체를 향한 선망은 더해갔다. 시민, 지역, 마을, 교육 등의 수많은 종류의 공동체가 만들어져 잘 운영되고 있다. 


세상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들에 반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공동체라는 개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처럼 예전부터 자연스레 존재해왔지만 이젠 시스템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유로 시작되어 선순환을 계속하고 있지만 완벽할 순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이 파고드는 건 바로 그 지점, 공동체의 단점 또는 약점과 개인주의의 장점 또는 강점이 만나는 지점이다. 


공동체에는 서로 간의 의무와 유대가 필수이고 공동으로 공유해야 할 이해관계 또한 필수이다. 그렇지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성향과 성격과 환경이 다르기에 조율이 힘들 때가 다분하다. 그중 많은 것들이 절대적일 때가 있다. 즉, 의무와 유대를 지키지 못하고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건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재활용품 수거 차량이 왔을 때 한 군데 안 흩어지게 잘 모아서 담아 놓는 '공동의 일'을 함에 있어 누구는 하고 누구는 하지 않는다. 그것도 몇 번이나. 이럴 때 한 사람은 하지 않은 사람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결코 서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여성 삶의 본위


소설은 나아가 여성 삶의 실제를 낱낱이 파고든다. 소설가 구병모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인데,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는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유자녀 부부만 입주할 수 있다. 고로 이곳에 들어와 있는 모든 부부에게는 자녀가 있고, '당연히' 자녀는 엄마의 손에 키워진다. 그런데 이곳의 네 아내 중 두 아내는 경제적 일도 하고 있다. 그리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엄연한 '일'이다. 


여성의 삶은 곧 육아이다. 소설은 거기에 다름 아닌 공동체를 붙인다.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네 부부 모두 서로의 아이들 부모가 되어 육아 전쟁을 치른다. 이 얼마나 환희로운 생각이고 광경인가. 그 어떤 공동체보다 실체적이거니와 많은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공동체의 의미를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이 규현해내는 육아 공동체의 실체는 마냥 환희롭지 않다. 99%를 만족시켰다고 해도 1%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피해를 준다면 그건 과연 옳은 걸까?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훨씬 다수가 만족하였으니 괜찮을 걸까? <네 이웃의 식탁>이 주목하는 건 공동체에 속하게 된 개개인의 사정이다. 그건 개인주의도 이기주의도 아닌, 살다 보니 처하게 된 사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육아라는 건 아마도 인간이 행하는 일 중 가장 고되고 어려운 일일 터, 더군다나 인간 한 사람이 지니는 성향이 모두 다른 만큼 개개인에 맞는 방법이 모두 다를 터, 공동 육아 또는 육아 공동체는 그 사랑과 책임의 강도가 훨씬 더 강하지 못할 시 가장 심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공동체의 허위와 여성 삶의 본위는 이렇게 만나 뒤엉킨다. 


아이를 가진 부부 간의 공동체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지만 여성이 주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 그곳에서 여성의 삶은 오히려 더 피폐해질 수 있는 법, 피폐의 여파는 공동체의 균열로 이어지고 그 원인을 다시 여성에게 돌리는 순환. 공동체를 만능이라고 우러를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삶부터 그 구조적인 문제와 스스로를 옭아매게 되는 순환을 해결해야 한다. 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여성의 삶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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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르포 <당선, 합격, 계급> ⓒ민음사



장강명 소설가는 자타공인 2010년 이후 문학공모전 최대 수혜자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 2014년 수림문학상, 2015년 문학동네작가상과 제주4.3평화문학상까지. 한 소설가가 네 개의 문학공모전 수상을 한 건 그 이전에 없었고 아마도 그 이후에도 없을 것 같다. 그는 문학상을 받을 만한 문학적인 소설을 쓰는 소설가일까?


그는 10년 넘게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이달의 기자상' '관훈언론상' '대특종상' 등 기자로 일찌감치 이름을 높였다. 기자로 일하던 와중 한겨레문학상을 탄 작품이 <표백>이다. 기자 출신다운 건조한 문체로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거기에 어떤 '문학적인' 느낌이 들어서 있지는 않은 듯하다. 


장강명은 이후로도 계속 비판적인 어조로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그의 소설은 장르소설 또는 대중소설 쪽에 더 천착한 듯하여 한국문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순문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임에도, 한국문학계의 주류 중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공모전 최대 수혜자이다. 그 아이러니는 곧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또는 실마리. 


그는 그 아이러니를 누구보다 잘 인지한듯, 한국문학계에도 또한 자신에게도 파격적인 소설 아닌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을 들고 왔다. 이 책은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의 기원과 선발 메커니즘, 영향력을 수치와 팩트에 입각한 저자의 조심스럽지만 물러서지 않는 생각으로 알려온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한국 사회'이다. 공채와 간판과 계급의 시스템이 낳은 좌절의 한국 사회.


좌절의 시스템,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 이 둘은 굉장히 한국적인 제도로 대규모 동시 시험을 치러서 인재를 뽑는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는 곳은 한국 말고는 찾기 힘들다고 하는데, 저자는 한국 소설과 한국 사회가 서열구조와 관료주의로 역동성을 잃어가는 건 상당 부분 이 제도들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두 제도와 궤를 같이 하는 대학 입시를 생각해보자. 간판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우리나라 대학, 사활을 걸고 입학하여 간판을 걸고 나면 또 다른 간판이 보인다. 이젠 대학은 중요한 게 아니니, 대학에의 경쟁력은 급격히 저하한다. 한편 선발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우월감이 생기고 내부 결속력은 강해진다. 관료 집단의 출현이다. 


그럼에도 두 제도는 안정성과 신뢰성이 높고 공정하며 제너럴리스트를 뽑기에 좋은, 장점 많은 제도이다. 똑같은 시험을 동시에 치르고 같은 기준 하에 당선자와 합격자를 고른다.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주의와 당파성이 그나마 옅은 제도라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런 제도가 있는 한 서열과 간판과 계급의 시스템, 즉 다수에게 지극한 좌절을 안겨주는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서 절대 없어질 수 없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이대로 존재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없앨 수도 없다. 마땅한 대안 없이 그저 기존의 제대를 유지할 뿐이다. 


저자는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가 좌절의 시스템이라 확신하는 듯한데, 최소한 이대로 존재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면 어떻게 고쳤으면 좋을까 하는 대안이 있을까? 아니면 아예 없애버리는 게 맞다고 보는 걸까? 그 스스로가 문학공모전이 생기고 난 후 최대 수혜자임에도? 


독자들의 문예운동


장강명은 그다운 대안을 제시한다. 시선을 달리하는 것이다. 제도의 존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병폐인 서열과 간판과 계급의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간판의 힘이 정보 부족에서 나온다 보고 사람들에게 지도를 그려서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대안이다. 다른 두 가지 중요한 요소인 충분한 보상과 실패의 대비책은 많은 비용이 들고 그에 대비한 파급력이 작을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문학계에서의) 대안은 새로운 종류의 운동, '독자들의 문예운동'이다. 우리 문학계의 기존 시스템으로는 발견할 수 없거나 묻히기 쉬운 작가들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찾아내고 응원하는 운동이다. 그 중심에 '서평'이 있는데,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의 북큐레이션 뉴스레터 '비:파크레터', 온라인 도서 플랫폼 '밀리의서재', 독서 문화 잡지 월간 <책>의 인포그래픽 서평, 저자가 기획한 서평집 <한국 소설이 좋아서>, 서울 성북구의 '책읽는성북' 독서 운동 등의 구체적인 예를 든다.


그의 '간판 소설' <한국이 싫어서>(민음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궤를 같이 하는데, 이 소설은 헬조선을 탈출해 호주로 떠났지만 그곳도 헬호주였을 뿐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헬조선이 헬조선이 되는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하지 않나? 대안도 대안이지만 논쟁거리가 다분하다. 


논쟁에서 대안으로, 대안에서 실천으로


<당선, 합격, 계급>도 마찬가지로 논쟁거리가 다분하다. 완전한 해결 뒤 변하지 않고 굳어져 가는 시스템 대신, 치열하고 생산적인 논쟁이야말로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도 저자가 바라보는 현실과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문학공모전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현실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하거니와, 양자택일 아닌 본질을 생각하는 대안에 찬성한다. 


하지만 저자가 과연 진정으로 이 문제, 즉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에 관심을 갖고 당사자로서 해결을 하려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저자는 이 제도를 한국 사회의 병폐인 서열, 간판, 계급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수단으로 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들여다보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으며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다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가 내세운 대안이라는 것도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인데, 일반 독자가 '왜' 나서야 하며 '어떻게' 나설 수 있겠는가. 더욱이 저자 또한 책에서 '내 의견이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라며 미리 발을 빼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난 저자가 말한 대안에 발맞춰 나서서 하고 싶다. 나서야 할 이유도 있고 나서서 할 능력도 있다. 하지만 난 유명하지도 않고 이 제도들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 엄연한 당사자는 아니다. 저자는 해야 할 이유도 있고 할 능력도 있으며 당사자로서 대안 이후의 실행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이 부디 그 결과물이 아닌 시작이길 바란다. 그러하다면 미미한 힘이나마 힘껏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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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표지 ⓒ윌북



그 어느 때보다 문자에 많이 노출되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책에 대한 수요는 매년 최하한가를 경신하고 있다. 문자를 기본으로 하는 책을 상당한 금액을 주고 물성으로 소유하기까지 해야 하는 게 여러모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편으론 그럴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일 테다. 우린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책은 여전히 전례 없이 많이 출간된다. 이는 책이 가진 여전한 전통적 공신력과 더불어 전에 없이 정보와 문자에 많이 노출된 신인류의 출현 때문이겠다. 넘쳐나는 정보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대상으로 지식인 또는 전문가가 아닌 지식일반인들이 책을 이용해 큐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 평준화 와중에 아직까지는 책이 대접을 받고 있다. 


와중에 삶에서 거의 '아웃 오브 안중'인 것처럼 되어버린 책이 있다. 다름 아닌 '사전'인데,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사전 없는 곳이 없었다. 특히 학생들에게 사전은 필수였다. 공부의 기본이랄까. 물론 학생 아닌 이에게도 사전은 필수였다. 살아가는 데 말과 글이 필수이자 기본이듯. 


지금은 어떤가? 인터넷이 도입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종이사전은 사장되었다. 그러면 온라인에서는? 내가 보기에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사전이라는 것 자체가 정보범람 시대에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지만, 사전은 여전히 존재한다. 종이로도, 온라인으로도. 자고로 누군가는 사전을 만든다. 


사전과 사전 편찬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인 메리엄 웹스터, 그곳에서 20년 넘게 사전 쓰는 편집자로 살아가는 코리 스탬퍼는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윌북)를 통해 사전 편찬자의 관점에서 사전 편찬업이라는 날것의 실체를 다룬다. 그녀는 누군가가 찾는 정답을 만들기 위해 정답을 절대 찾을 수 없는 망망대해를 탐험한다. 


그곳에서 사전 편찬자들은 영어라는 근사하고 음탕한 언어를 다룬다. 그들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돈이나 명예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스스로 객체가 되어 영어라는 주의 깊은 관찰과 보살핌이 필요한 주체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어를 한글로 바꾸어도 전혀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터, 그들의 마음가짐과 하는 일은 만민공통일 듯. 


사전이라 함은 자못 위대하고 위엄 있고 고귀하고 깨끗할 것 같다. 최소한 사전은 그런 곳에서 만들어질 것 같은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인 메리엄 웹스터는 잘 쳐줘야 '단조로운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곳엔 사람들의 느낌은 있지만 사람들의 소리는 없다. 


사람들은 사전이 그냥 존재하는 것,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 오류 없는 진실과 지혜가 담긴 신성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하기에 사전 편찬자들을 언어의 창조자이자 구원자이자 지속자 같은 신성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사전은 살아 움직이는 멋 없는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편찬되고 교정되고 개정되고 있다. 


그들은 객관적이 되도록, 개인적으로 지닌 언어적 짐은 일찌감치 내려놓도록 훈련을 받는다. 사전 편찬업은 사전 편찬자를 익명이자 무형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끊임없는 변화에 노출되어 있으며 사전 편찬자도 마찬가지다. 사전 편찬이란 과학적인 과정인 만큼이나 창조적인 과정이다. 


작은 단어


저자가 전하는 사전 편찬의 깊숙한 에피소드들은 사전에 관심이 없는 정확히 그만큼 흥미롭다. 또는 관심 없는 사전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가 우리의 언어가 아닌 정확히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 흥미롭지 않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뽑아보았다. 진중하기 짝이 없는 '사전'을 말하는 이 책을 읽는 아이러니한 이유인 '재미'를 이 에피소드를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운하게도 사전 편찬자의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항목들은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 항목들이라고 한다. 'get' 'but' 'as' 'make' 'is' 'a' 'take' 'run' 같은 단어 말이다. 저자는 그중 'take' 항목 작업 전반을 전해주는데, 동사 take의 인용문 분류, 동사 take의 정의 집필 작업, 그리고 명사 take... 


쉼 없이 한 달을 일한 뒤 그녀의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앞으로 take가 거쳐야 할 편집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한 달이란 시간이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졌을 때가 있었으니, 북미사전학회 격년 모임에서 였다. 60만 개 이상 의미가 실린 유서 깊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집자가 'run'을 작업하는 데 아홉 달이 걸렸다고...


틀린 단어와 나쁜 단어


작은 단어에 이어 틀린 단어와 나쁜 단어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irregardless'는 '유관하게'라는 뜻이어야 하지만 '무관하게'라는 뜻으로 쓰인다. 찾아보면, 어이없게도 동의어가 'regardless'다.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명백히 틀린 단어가 아닌가? 저자는 이해할 수 없고 맹렬히 반대하다가 나중에는 강력히 찬성한다. 


그녀는 깨닫는다. 표준 영어 자체가 교육을 받으며 학습하는, 글로 적힌 이상에 기반을 둔 '방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irregardless는 명백히 비논리적이지만, 적극적으로 성장해가는 힘 있는 언어의 예시였고, 나름대로의 깊이와 역사와 고집이 있는 단어였다. 즉, 언어에 '맞는' 게 따로 없고 '틀린' 게 따로 없다는 것이다. 언어는 변한다. 


나쁜 단어는 어떤가. 저자는 'bitch'를 가지고 왔다. 이 단어는 '개나 다른 육식 포유류 암컷' '음란하거나 부도덕한 여자' '심술궂거나 못됐거나 고압적인 여자' '극히 어렵거나 못마땅하거나 불쾌한 것' '불평'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전엔 다양한 금기어가 존재한다. 이 단어도 일반적인 금기어에 포함되기에 충분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그 점에 의문을 품고 파헤친다. 


'bitch'는 오랫동안 금기어에 속하지 않았다. 사전 편찬업이라는 게 미국에서는 유복하고 교양 있고 나이 든 백인 남자의 영역이기에, 두 번째 뜻이 여성에게 쓰일 때 폄하 의미일 수 있다는 걸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걸 지적한 두 사람은 직접 bitch라고 불려본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단어는 개인적일뿐더러 형체가 있다. 사전 편찬자들은 단어에 실체가 있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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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표지 ⓒ메디치



지난 2004년 11월 개최된 중국고도학회 회의에서 정저우가 중국 8대 고도 중 하나로 공인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대표 고도는 중국 역사상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도읍 중에서 여러 면에서 명망이 높아 공인된 도읍을 말한다. 최초 논의될 당시엔 시안, 뤄양, 카이펑, 난징, 베이징의 5대 고도였는데, 항저우와 안양 그리고 정저우가 합세했다.


이 도시들 중 뒤늦게 합세한 안양과 정저우는 고대 상(은)나라 때 도읍이다. 안양은 상나라의 도읍인 은허가 발굴된 곳이고, 정저우 또한 상나라의 도읍인 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내부에서는 쉬이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만 중국 외부에서는 쉬이 인정할 수는 없는 고도들이다. 


<중국을 빚어낸 여서 도읍지 이야기>(메디치미디어)는 제목에서처럼 중국 6대 고도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최초의 5대 고도인 시안, 뤄양, 카이펑, 난징, 베이징에 항저우를 추가한 6대 고도. 그래서 책은 '중국을' 다루지만,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책은 절대 아니다. 비판적인 시선이 다분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중국 역사 이야기를 읽다가도 흠칫 놀라고 화들짝 생각에 미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중국 역사를 대하는 명백한 논조


책은 우리에게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좋은 의미로 여기저기서 귀가 따갑게 들었거나 지나가면서 얼핏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을 짜깁기해놓았다. 중국의 여섯 도읍지 3000년 이야기는 새로울 게 하등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저자의 시선이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건, '하나라' 논쟁에 관련한 부분이다. 책은 친절하게도 면지를 이용해 여섯 도읍지의 위치와 역대 중국에 존재했던 왕조들의 도읍지를 정리해두었다. 책에 정리된, 즉 저자가 정리했을 역대 중국 왕조에 하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나라가 중국 왕조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상나라가 BC 1600~BC 1646이고 서주가 BC 1646~BC 771이라고 되어 있는데, 큰 실수인 듯하다. 공통으로 BC 1646를 BC 1046으로 고쳐야 하겠다.)


저자의 중국 역사를 대하는 명백한 논조가 반영된 모습이라 하겠다. 지난 1996년 중국 국가주의 프로젝트의 역사 부분 중 하나로 '하상주단대공정'이 실시되어 하, 상, 주나라 세 중국 고대 국가 존재가 확정된 것이다. 하지만 다분히 중화주의적인 의도가 엿보이지 않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의도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우린 중국을 알아야 한다. 건국 이후 30년을 지나 개혁개방 이후 30년도 지난 지금,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몽'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 실현의 작동방식에서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게 아닌 현재와 미래로까지 뻗어나간다. 고로 우리는 중국의 역사를 가장 잘,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도읍지'를 택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처럼 땅덩어리가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역사라면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흥미로운 일이거니와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여섯 도읍지


장안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시안'은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한, 중국은 물론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 중 하나라 꼽히며, 개척 2000년이 넘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다. 이곳엔 수많은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도,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는 실천 동력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다. 


시안은 중국 역사에서 초반과 중반에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나라들인 주, 진, 한, 수, 당 등의 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했다. 그 기간이 도합 1100년을 넘어 '천년고도'라는 근사한 별명(?)도 갖고 있다. 


반면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750여 년 전 원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35여 년을 제외하곤 쭈욱 도읍지로서 역할을 다 해왔다. 이곳 또한 시안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끊기지 않고 내려오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기에 남다르다 하겠다. 앞으로의 중국은 다름 아닌 베이징과 함께 하지 않을까. 


베이징은 근대 중국의 멸망과 함께 쓰러졌지만, 현대 중국의 부활과 함께 전에 없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현대화된 글로벌 도시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베이징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으니, 고대 베이징성의 중심을 관통하여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일직선인 '중축선'이다. 이 선의 상징은 지고무상의 황권이고, 그것은 곧 작금의 중국이 나아가고자 하는 궁극일 것이다. 


뤄양, 카이펑, 항저우, 난징은 중국 7대 고도 혹은 중국 8대 고도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명망 높은 도시들이다. 중국 역사상 각각 수백 년씩은 도읍을 한 곳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뤄양은 '천하의 중심'이고, 카이펑은 중화민족의 '불요불굴과 자강불식의 정신'을 구현한 곳이며, 항저우는 쑤저우와 더불어 '천당'에 비유할 만큼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난징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상기하게 만든다. 


책은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지만 동시에 자칫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협소한 시각으로만 중국을 바라보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말했듯 중국처럼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일수록 '중심'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편하겠'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천대받고 소외받는 중심 아닌 '소수'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참으로 많다. 단순히 생각하면, 수많은 중국 역사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때론 그 자체로, 때론 비판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조금 더 심층적으로 생각하면, 한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눈 즉 '공간'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통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꺼운 책을 끝내고 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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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표지 ⓒ문학동네



1997년 <작은 것들의 신>으로 데뷔와 동시에 부커상을 거머쥔 아룬다티 로이. 부커상이 노벨 문학상,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며, 한 해 동안 영연방 국가에서 영어로 씌어진 가장 뛰어난 소설 작품에게 선정하는 만큼 아룬다티 로이의 데뷔는 충격적이었다. 


인도를 배경으로 사회의 관습과 제도가 한 가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린 이 작품 이후 20년 넘는 시간 동안 소설을 더 이상 내놓지 않고 있는 그녀는, 인도로 돌아가 반체제 활동과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생존의 비용>, <9월이여 오라>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등에 그녀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문학동네)는 지난 2014년 출간한 르포르타주 작품으로,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인도의 모습을 까발리고자 한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같은 르포르타주이거니와 내용도 상당 부분 겹쳐서, 저 작품을 접했다면 이 작품을 접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듯싶다. 


인도를 배경으로 논하는 현대 자본주의 작동 방식


책은 현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르포르타주로 논한다. 시작은 인도 최고의 갑부 무케시 암바니 소유의 사상 최고가 집인 안틸라이다. 그곳엔 총 27층에 헬리콥터 이착륙장 세 곳, 엘리베이터 아홉 대, 공중정원, 무도회장, 웨더룸, 체력단련실, 여섯 층에 이르는 주차장, 그리고 600명의 하인이 있다. 그 모습은 인구 부자 100명이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인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역시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이기도 할 것이다. 즉, 세계 최악의 자본주의 국가. 인도를 넘어 세계적인 갑부인 무케시 암바니와 함께 하루 3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유령같은 사람들이 8억 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빚에 쪼들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5만 농민의 숫자가 너무 적어보일 정도이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인도는 지난 1991년 신산업정책을 내세우며 엄청난 성장일로를 걸었다. 그 결과 말도 나오지 않는 소득불균형과 빈부격차가 생산되었을 뿐이다. 저자가 통찰력 있고 강력하면서도 서늘하게 밝혀내는 그 과정은 충격적이다. 인도 부자들은 '국제적 기업'이라는 탈을 쓰고는 돈으로 모든 짓을 저지른다. 


이념적, 종교적, 정치적 갈등을 빌미로 토착민을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학살하고, 나아가 기업 자선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기묘하고 온건한 언어를 진화시켜 포용과 연대의 능력으로 정부와 정당과 선거와 법정과 미디어와 진보적 여론 그리고 민중까지 포섭하고 관리한다. 


저자는 지난 2001년 국회의사당 공격의 주요 피의자였던 '무함마드 아프잘 구루'의 사법살인이 그 연장선상의 끝에 위치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영유권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출신으로, 2012년 2월 초 아무도 모르게 전격적으로 교수형 당한다. 카슈미르에서는 당연히 시위가 잇달았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응징했다. 


파스키탄과의 전쟁은 계속 되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가며, 정부는 합법적으로 군대를 이용해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아, 일부 사람들이 무기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는 사실을 깜박할 뻔 했다. 


빈민을 향한 묵념, 부자를 향한 선언, 자본주의를 향한 선전포고


일련의 일들이 과연 21세기 현재 세계적인 IT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며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우뚝 일어선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세계소득불평등보고서에 의하면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소득불평등을 보이고 있는 나라 중 하나라고 하는데, 저자가 알리려는 인도 자본주의의 폐해가 머리 아닌 가슴으로 다가온다. 


비록 인도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가 두 발 붙이며 살아가는 한국도 가히 준세계적인 수준이다. 전체 소득 중 상위 1%가 15%, 상위 10%가 50%에 육박하니 말이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우린 이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는가?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저자는 책을 내놓을 당시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큰 감명을 받고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아예 갈아엎자는 주장을 한다. 끝없는 불평등을 제조하는 이 체제에 뚜껑을 덮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며 명백한 요구사항을 밝힌다. 기업 교차소유 금지. 필수적 사회기반시설 민영화 금지. 주거, 교육, 그리고 보건의 권리 누릴 수 있는 자유. 부자의 자녀들이 부모의 부 세습 금지. 


짧은 상황 인식, 굵고 강력한 주장, 와중에 아주 넓은 식견이 담겨 있는 이 세계적인 운동가이자 작가의 르포르타주는, 빈민을 향한 묵념임과 동시에 부자를 향한 선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향한 선전포고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행동에 앞서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정치적 언어를 담아낼 그릇을 요구한다. 그러고 나선 이 터무니없을 것 같은 혁명을 더 이상 터부시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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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북한소설 <벗>


북한소설 <벗> 표지 ⓒ아시아



4.27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판문점선언은 대한민국이, 아니 한반도가 65년만에 진정한 평화를 되찾는 첫걸음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도 바라마지 않을 한반도 평화를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염원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먼저 해야 할 건 북한에 대해 알아가는 게 아닐까요. 


'먼나라 이웃나라'는 아주 유명한 학습만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웃해 있는 나라가 오히려 가장 먼 나라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의 명구이기도 합니다. 우린 일본, 중국, 러시아와 굉장히 가깝지만 그들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 인종, 문화, 역사를 가졌기에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요.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 동안 한 민족으로서 동일한 문화를 영위했던 한반도는 65년 전 한국전쟁 휴전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두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당연히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모릅니다. 


남북 해빙 시기, 북한소설을 소개하다


문화의 총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문학'은, 상대적으로 소개되기 쉬울 수 있습니다. 의외로 북한소설은 1980~90년대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이 소개되었죠. 당시 서슬 퍼런 군부독재 하에서 운동권을 중심으로 많이 읽혔는데, 그중 북한에서도 당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백남룡, 남대현 작가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버금가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백남룡 작가의 <벗>, <60년 후>, 남대현 작가의 <청춘송가>가 그것들인데, 우리 아시아 출판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복간을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에도 소개했던 '북한' 소설을 몇 년 전 당시에 소개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는 건 당시에도 지금에도 명약관화한 일이죠. 그리고 이 날이 왔습니다. 


남북 해빙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 확신한 저희는 빠르고 면밀한 내부검토를 거친 후 남북정상회담 즈음을 목표로 북한소설 복간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모든 걸 뒤로 하고 책 구입, 필사, 대조, 교정교열, 해설(발문), 디자인 순으로 일사천리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첫 책 백남룡 작가의 <벗>을 때맞춰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겨레말큰사전사업회' 상임이사이자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결성한 남북작가 모임인 '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집행위원장인 정도상 작가께서 발문을 써 주시는 등 다방면에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겨레말'들의 뜻풀이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도상 작가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책이 출간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받은 도움은 책의 맨 뒤에 '단어 표기와 뜻풀이'라 하여, 남한어와 북한어를 나란히 두어 겨레말을 이해해 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마련해 두었습니다. 일종의 '겨레말소사전'이 아닐까 싶은데, 간혹 틀린 풀이도 있을 줄 알며 추후 계속 수정 및 추가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북한의 사랑, 결혼, 이혼


<벗>은 북한의 사랑, 결혼, 이혼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한 예술단 여가수 채순희와 공장 선방공 리석춘의 이혼 갈등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이혼 상담을 주관하는 인민재판소 판사 정진우가 주인공으로 나서 극을 이끕니다. 북한에서 이혼이라... 다른 건 몰라도 북한에서 이혼은 절대불가일 것 같은데, 이 소설로 우리는 북한에서의 이혼이 가능은 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이미 30년 전에 말이죠. 


정진우 판사는 채순희와 리석춘의 이혼을 부추기는 인물을 배척하고 교화시키려는 한편, 판사 아닌 '벗'으로서 위기의 부부 주위에 있는 이들을 챙깁니다. 채순희와 리석춘 부부, 그들의 아들 리호남은 물론, 채순희가 속한 예술단의 부단장과 리석춘이 속한 공장의 기능공 아바이, 그리고 본인의 아내 한은옥과도 벗이 되는 그다. 정도상 작가는 발문을 통해 '백남룡은 북한 사회에 만연해 있는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을 것이다'라고 평합니다. 


더불어 정진우 판사는 북한 사회가 요구하는 공동체적 인간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모로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인데, <벗>이라는 소설 자체가 북한소설이 흔히 보여주는 비약적인 서사적 흐름과 결말에서 크게 벗어나 나름의 확고한 흐름과 결말을 보여주어 그 속에서 소설미학적 활약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북한을 알아가는 방법


저희는 백남룡 작가의 <벗>을 필두로, 같은 작가의 <60년 후> 그리고 남대현 작가의 <청춘송가>도 곧이어 선보일 예정입니다. <벗>이 사랑과 '이혼' 이야기였다면, <60년 후>는 노동과 '노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청춘송가>는 북한의 '연애교과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또한 북한의 명단편소설들을 추려 <북한단편소설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아는 수많은 방법,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을 방법 중 '북한 소설'을 통해 그들의 기민한 일상을 접해보심이 어떨까요. 물론 소설 자체로 문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문학적 재미가 담보(보장)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소개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곧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알아야 할 시기가 도래할 텐데, 이미 도래했을지도 모르는데, 이 소설들로 최소한의 맛보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북한에서는 남한의 소설을 접하고 있을까요. 자못 궁금합니다. 북한에서의 외부로의 반출보다 외부에서의 북한으로의 반입이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죠. 당장의 완전한 자유왕래는 아닐지라도 당장의 영구평화를 기조로 한 종전과 자유왕래와 경제협조가 시행되길 바랍니다. 남과 북이, 북과 남이 진정한 '벗'으로 첫걸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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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2차세계대전>


<제2차세계대전> 표지 ⓒ교유서가



'제2차 세계대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 전 세계 인구의 4/5를 끌어 들여 5대양 6대륙에서 벌어진 전쟁, 인류 문명의 지형·질서·사회·문화·경제·기술·정치 등 모든 면을 바꿔버린 전쟁. 정녕 이 전쟁에 붙일 수식어는 끝이 없고 그 수식어들의 어마무시한 면모 또한 끝이 없다. 


그런 만큼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연구와 문헌 또한 끝이 없다. 그중에서 책으로 나와 있는 걸 보면, 세 대작을 뽑을 수 있겠다. 제2차 세계대전사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손색 없는 이 책들은 하나 같이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는 일명 벽돌책들인데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게르하르트 L. 와인버그의 <2차세계대전사 1·2·3>(길찾기), 앤터니 비버의 <제2차 세계대전>(글항아리)이다. 


너무나도 중요한 전쟁사라면 응당 벽돌책이어야 하는 바, 하지만 여기 채 200쪽도 안 되는 분량에 제2차 세계대전의 전부가 응축되어 들어가 있는 책이 있다. 게르하르트 L. 와인버그의 <제2차세계대전>(교유서가)이 그것으로, 이보다 얇은 제2차 세계대전사 책을 찾기 힘들 것이다.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의 일환인 만큼, 입문서용으로 큰 맥락을 훑은 데 적격일 수 있겠다. 


1차대전의 기억 속에 2차대전이 일어난 이유는?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오래된 질문이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제2차'라는 건 '제1차'도 존재했었다는 증거인데,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전쟁의 기억이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생히 남아 있는 와중에 어떻게 또다른 전쟁이 벌어졌냐는 점이다. 2차대전의 경우, 과정이나 양상보다 원인이 중요할 수 있겠다. 


저자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국가사회주의당이 1차대전에서 패배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해 혼란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신화'를 주장했다고 말한다. 독일이 전선에서 진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유대인을 비롯한 체제전복 세력들에 의해 등뒤에서 칼을 맞았다는 것이다. 


1차대전 후 처참한 경제 상황에서 나라의 비전을 제시한 히틀러가 급부상했다는 해석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등뒤에서 칼을 맞았다는 신화가 당시 독일인들에게 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자기합리화라고 할까. 


그리하여 히틀러의 아리안족 우수혈통 이론에 이은 독일의 세계 정복 비전이 그로 하여금 총통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게끔 하였고, 다시 한 번 전쟁을 일으킴과 동시에 체제전복 세력들의 씨를 말리면 절대 질 수 없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일 게다. 


독일은 왜 패망의 길로 가게 되었는가?


두 번째 오래된 질문이자 중요한 질문은 그런 독일이 반드시 이길 것으로 예상하고 전쟁을 시작한 이후, 얼마 동안은 그런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음에도 어떻게 연합군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는가? 역으로 독일을 필두로 한 추축국은 왜 패망의 길로 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전쟁 초기 독일은 정녕 파죽지세였다. 소련과 협상을 맺어 동유럽 쪽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 독일은 북유럽을 전격적으로 침공해 광범위한 승리를 손에 쥐고는 서유럽으로 눈을 돌려 넓게 마지노선을 구축한 당시 전 세계 최고의 육군을 자랑하는 프랑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천금 같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 성공으로 독일은 완벽한 승리 뒤에 패배의 불씨를 남겨두었다. 


저자는 독일의 결정적 패착은 소련과 미국이라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라고 말한다. 히틀러는 애초의 전쟁 계획에 기초해 소련을 침공하고 머지 않아 추축국 중 하나인 일본이 미국을 침공하는데, 그가 보기에 소련은 열등한 슬라브인의 나라이고 미국 또한 인종적으로 열등하긴 마찬가지인 나라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독일의 소련 침공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들을 괴롭힌 재앙이었고, 히틀러가 존경해마지 않은 무솔리니가 이끈 또 다른 추축국인 이탈리아의 능력은 함량 미달의 재앙 수준이었으며, 일본이 건드린 세계 최고의 전투력 미국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결국 전쟁을 끝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진정한 재앙이었다. 


위에서 소개한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바이블 중 하나인 <제2차세계대전사>의 저자 존 키건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2차세계대전의 원인과 경과와 결과를 단 한 권 분량으로 논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완전히는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 이 책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완전히 논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럴 의도가 없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입문용으로 적합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접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엄청난 양의 문헌이 필요한데, 그걸 독파할 시간도 이유도 없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역사인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런 딜레마에서 우리를 구해줄 훌륭한 구세주와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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