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표지 ⓒ윌북



그 어느 때보다 문자에 많이 노출되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책에 대한 수요는 매년 최하한가를 경신하고 있다. 문자를 기본으로 하는 책을 상당한 금액을 주고 물성으로 소유하기까지 해야 하는 게 여러모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편으론 그럴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일 테다. 우린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책은 여전히 전례 없이 많이 출간된다. 이는 책이 가진 여전한 전통적 공신력과 더불어 전에 없이 정보와 문자에 많이 노출된 신인류의 출현 때문이겠다. 넘쳐나는 정보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대상으로 지식인 또는 전문가가 아닌 지식일반인들이 책을 이용해 큐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 평준화 와중에 아직까지는 책이 대접을 받고 있다. 


와중에 삶에서 거의 '아웃 오브 안중'인 것처럼 되어버린 책이 있다. 다름 아닌 '사전'인데,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사전 없는 곳이 없었다. 특히 학생들에게 사전은 필수였다. 공부의 기본이랄까. 물론 학생 아닌 이에게도 사전은 필수였다. 살아가는 데 말과 글이 필수이자 기본이듯. 


지금은 어떤가? 인터넷이 도입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종이사전은 사장되었다. 그러면 온라인에서는? 내가 보기에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사전이라는 것 자체가 정보범람 시대에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지만, 사전은 여전히 존재한다. 종이로도, 온라인으로도. 자고로 누군가는 사전을 만든다. 


사전과 사전 편찬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인 메리엄 웹스터, 그곳에서 20년 넘게 사전 쓰는 편집자로 살아가는 코리 스탬퍼는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윌북)를 통해 사전 편찬자의 관점에서 사전 편찬업이라는 날것의 실체를 다룬다. 그녀는 누군가가 찾는 정답을 만들기 위해 정답을 절대 찾을 수 없는 망망대해를 탐험한다. 


그곳에서 사전 편찬자들은 영어라는 근사하고 음탕한 언어를 다룬다. 그들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돈이나 명예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스스로 객체가 되어 영어라는 주의 깊은 관찰과 보살핌이 필요한 주체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어를 한글로 바꾸어도 전혀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터, 그들의 마음가짐과 하는 일은 만민공통일 듯. 


사전이라 함은 자못 위대하고 위엄 있고 고귀하고 깨끗할 것 같다. 최소한 사전은 그런 곳에서 만들어질 것 같은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인 메리엄 웹스터는 잘 쳐줘야 '단조로운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곳엔 사람들의 느낌은 있지만 사람들의 소리는 없다. 


사람들은 사전이 그냥 존재하는 것,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 오류 없는 진실과 지혜가 담긴 신성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하기에 사전 편찬자들을 언어의 창조자이자 구원자이자 지속자 같은 신성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사전은 살아 움직이는 멋 없는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편찬되고 교정되고 개정되고 있다. 


그들은 객관적이 되도록, 개인적으로 지닌 언어적 짐은 일찌감치 내려놓도록 훈련을 받는다. 사전 편찬업은 사전 편찬자를 익명이자 무형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끊임없는 변화에 노출되어 있으며 사전 편찬자도 마찬가지다. 사전 편찬이란 과학적인 과정인 만큼이나 창조적인 과정이다. 


작은 단어


저자가 전하는 사전 편찬의 깊숙한 에피소드들은 사전에 관심이 없는 정확히 그만큼 흥미롭다. 또는 관심 없는 사전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가 우리의 언어가 아닌 정확히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 흥미롭지 않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뽑아보았다. 진중하기 짝이 없는 '사전'을 말하는 이 책을 읽는 아이러니한 이유인 '재미'를 이 에피소드를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운하게도 사전 편찬자의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항목들은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 항목들이라고 한다. 'get' 'but' 'as' 'make' 'is' 'a' 'take' 'run' 같은 단어 말이다. 저자는 그중 'take' 항목 작업 전반을 전해주는데, 동사 take의 인용문 분류, 동사 take의 정의 집필 작업, 그리고 명사 take... 


쉼 없이 한 달을 일한 뒤 그녀의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앞으로 take가 거쳐야 할 편집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한 달이란 시간이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졌을 때가 있었으니, 북미사전학회 격년 모임에서 였다. 60만 개 이상 의미가 실린 유서 깊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집자가 'run'을 작업하는 데 아홉 달이 걸렸다고...


틀린 단어와 나쁜 단어


작은 단어에 이어 틀린 단어와 나쁜 단어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irregardless'는 '유관하게'라는 뜻이어야 하지만 '무관하게'라는 뜻으로 쓰인다. 찾아보면, 어이없게도 동의어가 'regardless'다.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명백히 틀린 단어가 아닌가? 저자는 이해할 수 없고 맹렬히 반대하다가 나중에는 강력히 찬성한다. 


그녀는 깨닫는다. 표준 영어 자체가 교육을 받으며 학습하는, 글로 적힌 이상에 기반을 둔 '방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irregardless는 명백히 비논리적이지만, 적극적으로 성장해가는 힘 있는 언어의 예시였고, 나름대로의 깊이와 역사와 고집이 있는 단어였다. 즉, 언어에 '맞는' 게 따로 없고 '틀린' 게 따로 없다는 것이다. 언어는 변한다. 


나쁜 단어는 어떤가. 저자는 'bitch'를 가지고 왔다. 이 단어는 '개나 다른 육식 포유류 암컷' '음란하거나 부도덕한 여자' '심술궂거나 못됐거나 고압적인 여자' '극히 어렵거나 못마땅하거나 불쾌한 것' '불평'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전엔 다양한 금기어가 존재한다. 이 단어도 일반적인 금기어에 포함되기에 충분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그 점에 의문을 품고 파헤친다. 


'bitch'는 오랫동안 금기어에 속하지 않았다. 사전 편찬업이라는 게 미국에서는 유복하고 교양 있고 나이 든 백인 남자의 영역이기에, 두 번째 뜻이 여성에게 쓰일 때 폄하 의미일 수 있다는 걸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걸 지적한 두 사람은 직접 bitch라고 불려본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단어는 개인적일뿐더러 형체가 있다. 사전 편찬자들은 단어에 실체가 있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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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표지 ⓒ메디치



지난 2004년 11월 개최된 중국고도학회 회의에서 정저우가 중국 8대 고도 중 하나로 공인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대표 고도는 중국 역사상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도읍 중에서 여러 면에서 명망이 높아 공인된 도읍을 말한다. 최초 논의될 당시엔 시안, 뤄양, 카이펑, 난징, 베이징의 5대 고도였는데, 항저우와 안양 그리고 정저우가 합세했다.


이 도시들 중 뒤늦게 합세한 안양과 정저우는 고대 상(은)나라 때 도읍이다. 안양은 상나라의 도읍인 은허가 발굴된 곳이고, 정저우 또한 상나라의 도읍인 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내부에서는 쉬이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만 중국 외부에서는 쉬이 인정할 수는 없는 고도들이다. 


<중국을 빚어낸 여서 도읍지 이야기>(메디치미디어)는 제목에서처럼 중국 6대 고도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최초의 5대 고도인 시안, 뤄양, 카이펑, 난징, 베이징에 항저우를 추가한 6대 고도. 그래서 책은 '중국을' 다루지만,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책은 절대 아니다. 비판적인 시선이 다분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중국 역사 이야기를 읽다가도 흠칫 놀라고 화들짝 생각에 미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중국 역사를 대하는 명백한 논조


책은 우리에게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좋은 의미로 여기저기서 귀가 따갑게 들었거나 지나가면서 얼핏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을 짜깁기해놓았다. 중국의 여섯 도읍지 3000년 이야기는 새로울 게 하등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저자의 시선이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건, '하나라' 논쟁에 관련한 부분이다. 책은 친절하게도 면지를 이용해 여섯 도읍지의 위치와 역대 중국에 존재했던 왕조들의 도읍지를 정리해두었다. 책에 정리된, 즉 저자가 정리했을 역대 중국 왕조에 하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나라가 중국 왕조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상나라가 BC 1600~BC 1646이고 서주가 BC 1646~BC 771이라고 되어 있는데, 큰 실수인 듯하다. 공통으로 BC 1646를 BC 1046으로 고쳐야 하겠다.)


저자의 중국 역사를 대하는 명백한 논조가 반영된 모습이라 하겠다. 지난 1996년 중국 국가주의 프로젝트의 역사 부분 중 하나로 '하상주단대공정'이 실시되어 하, 상, 주나라 세 중국 고대 국가 존재가 확정된 것이다. 하지만 다분히 중화주의적인 의도가 엿보이지 않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의도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우린 중국을 알아야 한다. 건국 이후 30년을 지나 개혁개방 이후 30년도 지난 지금,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몽'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 실현의 작동방식에서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게 아닌 현재와 미래로까지 뻗어나간다. 고로 우리는 중국의 역사를 가장 잘,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도읍지'를 택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처럼 땅덩어리가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역사라면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흥미로운 일이거니와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여섯 도읍지


장안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시안'은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한, 중국은 물론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 중 하나라 꼽히며, 개척 2000년이 넘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다. 이곳엔 수많은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도,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는 실천 동력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다. 


시안은 중국 역사에서 초반과 중반에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나라들인 주, 진, 한, 수, 당 등의 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했다. 그 기간이 도합 1100년을 넘어 '천년고도'라는 근사한 별명(?)도 갖고 있다. 


반면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750여 년 전 원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35여 년을 제외하곤 쭈욱 도읍지로서 역할을 다 해왔다. 이곳 또한 시안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끊기지 않고 내려오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기에 남다르다 하겠다. 앞으로의 중국은 다름 아닌 베이징과 함께 하지 않을까. 


베이징은 근대 중국의 멸망과 함께 쓰러졌지만, 현대 중국의 부활과 함께 전에 없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현대화된 글로벌 도시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베이징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으니, 고대 베이징성의 중심을 관통하여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일직선인 '중축선'이다. 이 선의 상징은 지고무상의 황권이고, 그것은 곧 작금의 중국이 나아가고자 하는 궁극일 것이다. 


뤄양, 카이펑, 항저우, 난징은 중국 7대 고도 혹은 중국 8대 고도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명망 높은 도시들이다. 중국 역사상 각각 수백 년씩은 도읍을 한 곳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뤄양은 '천하의 중심'이고, 카이펑은 중화민족의 '불요불굴과 자강불식의 정신'을 구현한 곳이며, 항저우는 쑤저우와 더불어 '천당'에 비유할 만큼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난징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상기하게 만든다. 


책은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지만 동시에 자칫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협소한 시각으로만 중국을 바라보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말했듯 중국처럼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일수록 '중심'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편하겠'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천대받고 소외받는 중심 아닌 '소수'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참으로 많다. 단순히 생각하면, 수많은 중국 역사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때론 그 자체로, 때론 비판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조금 더 심층적으로 생각하면, 한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눈 즉 '공간'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통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꺼운 책을 끝내고 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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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표지 ⓒ문학동네



1997년 <작은 것들의 신>으로 데뷔와 동시에 부커상을 거머쥔 아룬다티 로이. 부커상이 노벨 문학상,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며, 한 해 동안 영연방 국가에서 영어로 씌어진 가장 뛰어난 소설 작품에게 선정하는 만큼 아룬다티 로이의 데뷔는 충격적이었다. 


인도를 배경으로 사회의 관습과 제도가 한 가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린 이 작품 이후 20년 넘는 시간 동안 소설을 더 이상 내놓지 않고 있는 그녀는, 인도로 돌아가 반체제 활동과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생존의 비용>, <9월이여 오라>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등에 그녀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문학동네)는 지난 2014년 출간한 르포르타주 작품으로,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인도의 모습을 까발리고자 한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같은 르포르타주이거니와 내용도 상당 부분 겹쳐서, 저 작품을 접했다면 이 작품을 접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듯싶다. 


인도를 배경으로 논하는 현대 자본주의 작동 방식


책은 현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르포르타주로 논한다. 시작은 인도 최고의 갑부 무케시 암바니 소유의 사상 최고가 집인 안틸라이다. 그곳엔 총 27층에 헬리콥터 이착륙장 세 곳, 엘리베이터 아홉 대, 공중정원, 무도회장, 웨더룸, 체력단련실, 여섯 층에 이르는 주차장, 그리고 600명의 하인이 있다. 그 모습은 인구 부자 100명이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인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역시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이기도 할 것이다. 즉, 세계 최악의 자본주의 국가. 인도를 넘어 세계적인 갑부인 무케시 암바니와 함께 하루 3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유령같은 사람들이 8억 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빚에 쪼들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5만 농민의 숫자가 너무 적어보일 정도이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인도는 지난 1991년 신산업정책을 내세우며 엄청난 성장일로를 걸었다. 그 결과 말도 나오지 않는 소득불균형과 빈부격차가 생산되었을 뿐이다. 저자가 통찰력 있고 강력하면서도 서늘하게 밝혀내는 그 과정은 충격적이다. 인도 부자들은 '국제적 기업'이라는 탈을 쓰고는 돈으로 모든 짓을 저지른다. 


이념적, 종교적, 정치적 갈등을 빌미로 토착민을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학살하고, 나아가 기업 자선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기묘하고 온건한 언어를 진화시켜 포용과 연대의 능력으로 정부와 정당과 선거와 법정과 미디어와 진보적 여론 그리고 민중까지 포섭하고 관리한다. 


저자는 지난 2001년 국회의사당 공격의 주요 피의자였던 '무함마드 아프잘 구루'의 사법살인이 그 연장선상의 끝에 위치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영유권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출신으로, 2012년 2월 초 아무도 모르게 전격적으로 교수형 당한다. 카슈미르에서는 당연히 시위가 잇달았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응징했다. 


파스키탄과의 전쟁은 계속 되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가며, 정부는 합법적으로 군대를 이용해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아, 일부 사람들이 무기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는 사실을 깜박할 뻔 했다. 


빈민을 향한 묵념, 부자를 향한 선언, 자본주의를 향한 선전포고


일련의 일들이 과연 21세기 현재 세계적인 IT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며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우뚝 일어선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세계소득불평등보고서에 의하면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소득불평등을 보이고 있는 나라 중 하나라고 하는데, 저자가 알리려는 인도 자본주의의 폐해가 머리 아닌 가슴으로 다가온다. 


비록 인도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가 두 발 붙이며 살아가는 한국도 가히 준세계적인 수준이다. 전체 소득 중 상위 1%가 15%, 상위 10%가 50%에 육박하니 말이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우린 이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는가?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저자는 책을 내놓을 당시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큰 감명을 받고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아예 갈아엎자는 주장을 한다. 끝없는 불평등을 제조하는 이 체제에 뚜껑을 덮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며 명백한 요구사항을 밝힌다. 기업 교차소유 금지. 필수적 사회기반시설 민영화 금지. 주거, 교육, 그리고 보건의 권리 누릴 수 있는 자유. 부자의 자녀들이 부모의 부 세습 금지. 


짧은 상황 인식, 굵고 강력한 주장, 와중에 아주 넓은 식견이 담겨 있는 이 세계적인 운동가이자 작가의 르포르타주는, 빈민을 향한 묵념임과 동시에 부자를 향한 선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향한 선전포고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행동에 앞서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정치적 언어를 담아낼 그릇을 요구한다. 그러고 나선 이 터무니없을 것 같은 혁명을 더 이상 터부시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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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북한소설 <벗>


북한소설 <벗> 표지 ⓒ아시아



4.27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판문점선언은 대한민국이, 아니 한반도가 65년만에 진정한 평화를 되찾는 첫걸음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도 바라마지 않을 한반도 평화를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염원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먼저 해야 할 건 북한에 대해 알아가는 게 아닐까요. 


'먼나라 이웃나라'는 아주 유명한 학습만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웃해 있는 나라가 오히려 가장 먼 나라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의 명구이기도 합니다. 우린 일본, 중국, 러시아와 굉장히 가깝지만 그들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 인종, 문화, 역사를 가졌기에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요.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 동안 한 민족으로서 동일한 문화를 영위했던 한반도는 65년 전 한국전쟁 휴전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두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당연히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모릅니다. 


남북 해빙 시기, 북한소설을 소개하다


문화의 총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문학'은, 상대적으로 소개되기 쉬울 수 있습니다. 의외로 북한소설은 1980~90년대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이 소개되었죠. 당시 서슬 퍼런 군부독재 하에서 운동권을 중심으로 많이 읽혔는데, 그중 북한에서도 당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백남룡, 남대현 작가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버금가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백남룡 작가의 <벗>, <60년 후>, 남대현 작가의 <청춘송가>가 그것들인데, 우리 아시아 출판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복간을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에도 소개했던 '북한' 소설을 몇 년 전 당시에 소개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는 건 당시에도 지금에도 명약관화한 일이죠. 그리고 이 날이 왔습니다. 


남북 해빙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 확신한 저희는 빠르고 면밀한 내부검토를 거친 후 남북정상회담 즈음을 목표로 북한소설 복간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모든 걸 뒤로 하고 책 구입, 필사, 대조, 교정교열, 해설(발문), 디자인 순으로 일사천리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첫 책 백남룡 작가의 <벗>을 때맞춰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겨레말큰사전사업회' 상임이사이자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결성한 남북작가 모임인 '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집행위원장인 정도상 작가께서 발문을 써 주시는 등 다방면에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겨레말'들의 뜻풀이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도상 작가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책이 출간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받은 도움은 책의 맨 뒤에 '단어 표기와 뜻풀이'라 하여, 남한어와 북한어를 나란히 두어 겨레말을 이해해 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마련해 두었습니다. 일종의 '겨레말소사전'이 아닐까 싶은데, 간혹 틀린 풀이도 있을 줄 알며 추후 계속 수정 및 추가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북한의 사랑, 결혼, 이혼


<벗>은 북한의 사랑, 결혼, 이혼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한 예술단 여가수 채순희와 공장 선방공 리석춘의 이혼 갈등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이혼 상담을 주관하는 인민재판소 판사 정진우가 주인공으로 나서 극을 이끕니다. 북한에서 이혼이라... 다른 건 몰라도 북한에서 이혼은 절대불가일 것 같은데, 이 소설로 우리는 북한에서의 이혼이 가능은 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이미 30년 전에 말이죠. 


정진우 판사는 채순희와 리석춘의 이혼을 부추기는 인물을 배척하고 교화시키려는 한편, 판사 아닌 '벗'으로서 위기의 부부 주위에 있는 이들을 챙깁니다. 채순희와 리석춘 부부, 그들의 아들 리호남은 물론, 채순희가 속한 예술단의 부단장과 리석춘이 속한 공장의 기능공 아바이, 그리고 본인의 아내 한은옥과도 벗이 되는 그다. 정도상 작가는 발문을 통해 '백남룡은 북한 사회에 만연해 있는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을 것이다'라고 평합니다. 


더불어 정진우 판사는 북한 사회가 요구하는 공동체적 인간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모로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인데, <벗>이라는 소설 자체가 북한소설이 흔히 보여주는 비약적인 서사적 흐름과 결말에서 크게 벗어나 나름의 확고한 흐름과 결말을 보여주어 그 속에서 소설미학적 활약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북한을 알아가는 방법


저희는 백남룡 작가의 <벗>을 필두로, 같은 작가의 <60년 후> 그리고 남대현 작가의 <청춘송가>도 곧이어 선보일 예정입니다. <벗>이 사랑과 '이혼' 이야기였다면, <60년 후>는 노동과 '노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청춘송가>는 북한의 '연애교과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또한 북한의 명단편소설들을 추려 <북한단편소설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아는 수많은 방법,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을 방법 중 '북한 소설'을 통해 그들의 기민한 일상을 접해보심이 어떨까요. 물론 소설 자체로 문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문학적 재미가 담보(보장)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소개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곧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알아야 할 시기가 도래할 텐데, 이미 도래했을지도 모르는데, 이 소설들로 최소한의 맛보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북한에서는 남한의 소설을 접하고 있을까요. 자못 궁금합니다. 북한에서의 외부로의 반출보다 외부에서의 북한으로의 반입이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죠. 당장의 완전한 자유왕래는 아닐지라도 당장의 영구평화를 기조로 한 종전과 자유왕래와 경제협조가 시행되길 바랍니다. 남과 북이, 북과 남이 진정한 '벗'으로 첫걸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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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2차세계대전>


<제2차세계대전> 표지 ⓒ교유서가



'제2차 세계대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 전 세계 인구의 4/5를 끌어 들여 5대양 6대륙에서 벌어진 전쟁, 인류 문명의 지형·질서·사회·문화·경제·기술·정치 등 모든 면을 바꿔버린 전쟁. 정녕 이 전쟁에 붙일 수식어는 끝이 없고 그 수식어들의 어마무시한 면모 또한 끝이 없다. 


그런 만큼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연구와 문헌 또한 끝이 없다. 그중에서 책으로 나와 있는 걸 보면, 세 대작을 뽑을 수 있겠다. 제2차 세계대전사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손색 없는 이 책들은 하나 같이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는 일명 벽돌책들인데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게르하르트 L. 와인버그의 <2차세계대전사 1·2·3>(길찾기), 앤터니 비버의 <제2차 세계대전>(글항아리)이다. 


너무나도 중요한 전쟁사라면 응당 벽돌책이어야 하는 바, 하지만 여기 채 200쪽도 안 되는 분량에 제2차 세계대전의 전부가 응축되어 들어가 있는 책이 있다. 게르하르트 L. 와인버그의 <제2차세계대전>(교유서가)이 그것으로, 이보다 얇은 제2차 세계대전사 책을 찾기 힘들 것이다.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의 일환인 만큼, 입문서용으로 큰 맥락을 훑은 데 적격일 수 있겠다. 


1차대전의 기억 속에 2차대전이 일어난 이유는?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오래된 질문이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제2차'라는 건 '제1차'도 존재했었다는 증거인데,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전쟁의 기억이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생히 남아 있는 와중에 어떻게 또다른 전쟁이 벌어졌냐는 점이다. 2차대전의 경우, 과정이나 양상보다 원인이 중요할 수 있겠다. 


저자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국가사회주의당이 1차대전에서 패배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해 혼란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신화'를 주장했다고 말한다. 독일이 전선에서 진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유대인을 비롯한 체제전복 세력들에 의해 등뒤에서 칼을 맞았다는 것이다. 


1차대전 후 처참한 경제 상황에서 나라의 비전을 제시한 히틀러가 급부상했다는 해석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등뒤에서 칼을 맞았다는 신화가 당시 독일인들에게 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자기합리화라고 할까. 


그리하여 히틀러의 아리안족 우수혈통 이론에 이은 독일의 세계 정복 비전이 그로 하여금 총통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게끔 하였고, 다시 한 번 전쟁을 일으킴과 동시에 체제전복 세력들의 씨를 말리면 절대 질 수 없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일 게다. 


독일은 왜 패망의 길로 가게 되었는가?


두 번째 오래된 질문이자 중요한 질문은 그런 독일이 반드시 이길 것으로 예상하고 전쟁을 시작한 이후, 얼마 동안은 그런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음에도 어떻게 연합군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는가? 역으로 독일을 필두로 한 추축국은 왜 패망의 길로 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전쟁 초기 독일은 정녕 파죽지세였다. 소련과 협상을 맺어 동유럽 쪽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 독일은 북유럽을 전격적으로 침공해 광범위한 승리를 손에 쥐고는 서유럽으로 눈을 돌려 넓게 마지노선을 구축한 당시 전 세계 최고의 육군을 자랑하는 프랑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천금 같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 성공으로 독일은 완벽한 승리 뒤에 패배의 불씨를 남겨두었다. 


저자는 독일의 결정적 패착은 소련과 미국이라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라고 말한다. 히틀러는 애초의 전쟁 계획에 기초해 소련을 침공하고 머지 않아 추축국 중 하나인 일본이 미국을 침공하는데, 그가 보기에 소련은 열등한 슬라브인의 나라이고 미국 또한 인종적으로 열등하긴 마찬가지인 나라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독일의 소련 침공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들을 괴롭힌 재앙이었고, 히틀러가 존경해마지 않은 무솔리니가 이끈 또 다른 추축국인 이탈리아의 능력은 함량 미달의 재앙 수준이었으며, 일본이 건드린 세계 최고의 전투력 미국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결국 전쟁을 끝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진정한 재앙이었다. 


위에서 소개한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바이블 중 하나인 <제2차세계대전사>의 저자 존 키건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2차세계대전의 원인과 경과와 결과를 단 한 권 분량으로 논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완전히는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 이 책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완전히 논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럴 의도가 없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입문용으로 적합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접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엄청난 양의 문헌이 필요한데, 그걸 독파할 시간도 이유도 없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역사인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런 딜레마에서 우리를 구해줄 훌륭한 구세주와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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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의 MB재산답사기>




지난해 10월경부터 전국민을 강타한 유행어가 있다. "다스는 누구겁니까?" 2017년 10월 13일, 인기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주진우 기자가 나와 "이제부터 '다스는 누구 거예요?'를 계속 물어봐 달라"라며 요청한 후로 정녕 인터넷을 도배되다시피 한 이 어구는 이제는 누구나 알듯이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겨냥한 말이다. 


2016년 10월 말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퇴진과 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 축출에 큰 역할을 한 국민의 시선은 '이명박근혜'의 한 축인 MB로 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박근혜보다 MB로의 100% 가까운 확실한 의혹에 가득찬 시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를 향해 있었다. 


그 유명한 '나꼼수' 일원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MB의 갖가지 의혹에 관해 수없이 많은, 그리고 더없이 촘촘하고 꼼꼼한 증거들을 포착해 소개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린 도곡동 땅, 다스, BBK로 이어지는 MB의 실소유주 논란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략' 알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사유화해 사익을 챙긴' MB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 그저 역대 대통령들도 다 각각의 잘못이 있듯이 MB도 잘못을 했구나 하는 정도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MB 저격수'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과 베테랑 탐사보도 전문 기자 구영식의 <나의 MB재산답사기>(비아북)는 맞춤 제격인 책이다. 그가 '돈'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그 장황한 정보를 정확하게 취득해보자.


MB 재산을 추적하고 답사하는 이유


MB의 재산을 추적하고 답사하기 전에 우선 그 의미부터 확립하는 게 좋겠다. 저자는 말한다. 군사정권이 종식된 후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졌는데 MB가 집권하고는 다시금 부정과 부패, 비리, 탄압과 속임수로 우리 사회를 물들게 했다고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죄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세금과 공기업 자금을 사유화 하고, 권력을 남용해 이를 착복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즉, MB 재산을 추적하는 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기보다 MB의 은닉 재산 의혹을 추적해서 진상을 밝히고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해 그 어떤 권력자라도 그 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사례를 남기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 부여 없이 MB의 재산을 추적 답사하는 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 하겠다. 


최초에 도곡동 땅이 있었다고 한다. 1985년 MB의 처남 김재정과 큰형 이상은 명의로 소유권 등록을 한 땅을 말하는데, 당시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MB가 회사 안팎의 보는 눈을 의식하여 차명으로 구입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MB의 '차명 인생'을 살게 한 잘못 끼운 첫 단추라 한다. 


이 도곡동 땅은 이후 대규모 차익을 남기면서 263억 원에 팔리고 그중 190억 원이 다스로 들어갔으며 그 돈 190억 원이 다시 BBK로 들어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조작 자금원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이 주가조작 사건은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가정을 파탄시키고 자살로 몰고 간 대형 범죄 사건이다. 


MB의 재산을 위한 나라


다스는 1987년 대부기공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최초에는 김재정 명의로, 곧이어 이상은과 친구 김창대가 지분 일부를 인수 양도해 세 명이서 한 명이 과반을 지니지 않게 구도가 짜여졌다. 저자는 다스 설립 자금이 다름 아닌 도곡동 땅 매매대금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다스에 많은 돈을 투입한 김재정은 현대 건설을 퇴사한 후 MB의 재산 관리와 집사 역할을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수입이 없었다. 


2010년 김재정이 예상치 못하게 사망한 후 거의 즉시 공교롭게도 경력이 일천한 MB의 장남 이시형이 해외영업팀 과장으로 입사한다.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017년에는 회계 재무책임자의 자리까지 오른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모습이 MB가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한편, BBK는 1999년 MB가 김경준과 함께 직접 세운 회사이다. 다스는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는데 회사 등록 실패로 인해 100% 돌려받아야 했을 테지만 최초에는 50억 원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김경준은 BBK와 다스가 모두 MB의 것으로 190억 원은 투자금이 아니라 자본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주가조작 사건으로 김경준은 실형을 살았지만 MB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140억 원까지 돌려받아 내었다. 


사실 대선 직전 2007년 말 BBK 사건 수사와 대선 직후 2008년 초의 정호영 특검으로 MB를 향한 검찰의 칼날이 꽤나 날카로운 듯 보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칼날은 무디기 짝이 없었고 MB에게 완벽한 면죄부까지 주고 말았다. 그야말로 지난 세월은 MB의 재산의, 재산에 의한, 재산을 위한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나의 MB재산답사기>는 MB가 은닉한 재산을 추적하는 데, 아니 추적해놓은 길을 탐사하는 데 완벽한 책이다. 비록 MB가 현재 구속 당한 상태이지만,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의혹'이고 '추정'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보다 중요한 건 그 의혹과 추정을 '확실'로 바꾸는 '확신'이 이 책이, 이 저자가 나아간 추적과 우리가 따라가는 답사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다시 한 번 대다수 국민(일 거라 믿는다)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하루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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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오랫동안, 그러니까 결혼을 하기 전까진 식단으로만 본다면 채식주의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다. 당연히 주식은 쌀밥, 주반찬은 국(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등)과 김치류였다. 가끔, 특식으로 삼겹살이나 닭볶음탕, 소갈비를 먹었다. 아주 가끔, 몸보신 용으로 곰탕을 먹었던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한국인의 보편적 식습관일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상당한 육식이 함께 하지만, 보다 훨씬 상당한 채식이 함께 한다. 결혼을 하고 몇 개월 정도 아내의 친정에 얹혀 살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특이한 식습관을 가진 가족이었다. 아내는 본인 가족의 주식은 쌀밥이 아닌 고기 또는 면이고, 주반찬은 그때그때 다르다고 했다. 


서양식에 가까운 식단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간 평생 먹었던 고기에 버금가는 고기를 먹었던 것 같다. 거의 매일매일이 고기, 넓은 의미의 육식이었다. 대신 나만큼은 쌀밥을 아예 안 먹을 수 없으니 소량의 쌀밥을 함께 먹었다. 굉장히 특이하고 특별한 경험, 나의 식문화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바뀌었다. 


이제 독립해 둘만 살아가는 지금, 여전히 나의 아내는 쌀밥을 먹지 않는다. 아니, 쌀밥이 주식은 아니다. 반면, 나는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예전 식습관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고기는 육식은 나의 영원한 갈망 대상이다. 고기를 먹으면, '정말 잘 먹었다'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오고 심지어 내가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고기를 엄청 찾지는 않지만 고기를 끊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메디치)은 나를 포함해 모든 비(非)금식자를 위한 책이다. 


육식의 시작, 육식의 신화, 육식의 경향


책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육식을 주체로 놓고 육식에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오히려 부정적에 가까운 생각의 발현을 내보인다. 인류는 왜 육식을 끊을 수 없는지 사실상 육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기정사실화 해놓고, 인류의 육식에의 필연적 욕망을 수백 만 년 전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들여다본다. 


저자는 우리 조상이 250만 년 전에 육식 식단으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먹잇감을 사냥할 도구가 있었고, 소화시킬 몸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변했을까? 갑작스런 기후변화가 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강수량이 줄어 식물들은 줄어든 대신, 동물들은 증가했다. 한편, 지금도 초식동물이 가끔 육식을 하는 것처럼 그저 칼로리를 보충하기 위해 육식을 시작했다고도 한다. 


육식은 인류가 사회적 동물인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식물을 얻는 것보다 고기를 얻는 게 훨씬 더 힘들다는 걸 알고난 후, 육식은 칼로리 보충용이 아닌 권력에의 표상과 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육식이 주는 칼로리의 열량이 채식보다 훨씬 더 크다는 단순한 이유도 물론 존재한다. 


이는 비단 구석기시대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시아의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고기의 섭취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선진국=서양=육식'의 등식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육식이 있다는 자못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


최근 들어, 건강을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진 듯한 느낌이다. 한편으론 인권에 버금가는 동물권리에의 이유를 들어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 고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너무 더럽고 잔인해 먹을 수 없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정작 주변에서는 찾기 힘들거니와, 나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도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내 안에, 인류의 안에 250만 년 전에 시작된 고기를 끊지 못하는 DNA가 있다는 것과 상관없이, 지금 인류가 비록 많은 부분에서 진보를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채식주의를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는 이상 누구도 고기를 쉽게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고기를 끊을 수 없는 이유


미국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책은 우리가 고기를 끊을 수 없는 여러 이유가 더 있다고 말한다. 육류 관련 협회는 육류 생산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육류가 더 많이 소비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일을 하며 수수료로 먹고 사는데, 정부 시책과 맞물려 시행되는 그들의 어마어마한 홍보는 사람들의 인식까지 지배할 정도라고 한다. 그들은 광고는 물론 과학자들을 동원, 학술적으로까지 접근하여 우리의 가슴과 마음 깊숙이까지 육식에의 어느 정도는 만들어진 심리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만들어진 신화'를 차치하고서라도 고기가 주는 직접적이고 '만들어지지 않은 맛'에의 욕망을 인간 누구도 저버릴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감칠맛과 지방의 조합이 환상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건 우리 몸에 내재된, 우리가 고기를 끊을 수 없는 가장 어쩔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의 건강과 미래 후손의 세상이다. 이런 식의 육식이라면 단적으로, 여전히 심장 질환과 암 질병 발생률에 지대한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지금도 지구에 엄청난 아픔을 초래하는 가축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기에 대기 및 수질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안길 것이다. 


저자는 크게 위의 두 이유로 육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가 육식을 포기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 길이 너무나 길고 험하다는 걸 잘 알기에,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게 아닌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린 것이다. 매우 적절하고, 매우 마음에 드는 결론이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육식을 많이 하면 몸에 좋을 게 없지만 최소한은 섭취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있는지라, 그 인식에 완벽히 부합한다. 


육식을 끊을 수도 없겠지만, 끊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채식주의를 하는 건 자유지만, 채식주의를 강요하고 육식주의자를 혐오하고 배척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다. 물론, 그 반대의 행위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저자의, '여러 방면에서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고, 대립하는 양 면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취합하여, 실현 가능한 절충안을 내는 방법'에 박수를 보내며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그 취지에 공감하며 따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육식 연대기'라는 이 책의 부제와 다른 또 다른 부제를 붙이고 싶다. '육식을 줄여야 하는 이유'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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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학과 권력>


<대학과 권력> 표지 ⓒ휴머니스트



대학 위기론이 팽배하다. 사학 비리는 추악한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표적 얼굴마담이 된 지 오래이고,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는 등록금으로 먹고 사는 사립대학들이 폐교의 수순까지 밟게 하는 폭탄으로 자리매김하기 직전이다. 그야말로 이곳 저곳에서 위기의 촉수를 뻗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학 위기의 현대적 원인들 즉,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계속된 원인들이 존재한다. 대학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 대학은 많아졌는데 대학교육 질적 상태는 답보상태라는 것, 취업자 알선소도 모자라 실업자 양성소 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것,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딜 가나, 누구나 한 마디씩 해봤음직한, 누구한테나 한 마디씩 들어봤음직한 대학 위기의 원인들이다. 와중에 충격적일 수 있는 사실을 전하자면, 위의 '현대적 원인들'이 결코 현대적이지 않다는 것 즉, 우리나라 대학이 생기기 시작한 100여 년 전부터 이미 존재해온 고질적 병폐라는 것을 말이다. 


한편에서는, 한국의 대학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수도권과 지방 대학 간의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대학 특성화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 대학 자율화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 등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대학 역사 100년을 되짚은 책 <대학과 권력>(휴머니스트)은 지금의 대학, 그 위기와 문제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그 원인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권력'을 꼽았고 그중에서도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을 핵심으로 보았다. 권력으로 본 대한민국 대학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대한민국 대학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볼 수도 있겠다. 


타율적 권력의 그림자 그리고 대학권력


우리나라 대학은 애초에 자율적이 아닌 타율적으로 생겨나 운영되었다. 근대 고등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제 시기였다. 서울대학교의 전신이라 할 만한 경성제국대학과 관립 전문학교, 그리고 조선인을 위한 사립 전문학교가 모두 일제의 식민권력의 통제 아래 있었다. 해방이 되고서는 일제 식민권력 대신 미군정이 들어서 미국적 학문을 토대로 미국식 대학 모델을 심었다. 이후 대학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가장 미국화된 곳이 되었다. 


이미 70여 년 전, 한국의 대학은 가장 미국화된 곳이었다. 즉,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고 무방한대, 작금의 대학 위기 중 하나인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와 정반대의 지점이라는 게 흥미롭다. 한편, 태초의 지점에서부터 자율이 아닌 타율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작금의 대학 개혁 방향인 '자율성 회복'과 맞물리는 대목이라 역시 흥미롭다. 


1950년대 들어 그동안 식민권력에 억눌러 있었던 교육열이 폭발하면서 대학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거기에는 이승만 정부의 방임만이 아닌 부추김, 대학교육 특히 사립대학 재건에 앞장 선 주요 인물들의 대학 안팎 권력 독점 등의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1950년대가 저물고 1960년대 들어 4.19로 이승만이 물러가면서 대학 또한 크게 변한다. 


대학 위기의 현대적 원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너무 많은 대학'은 이미 60년 전에 존재하는 대학 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다. 또한 대학의 양적 팽창이 대부분 사립대학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점이 현대 대학이 나아가야 할 개혁 방향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대학의 공공성 확보'와 맞닿아 있다는 게 한편 신기하면서도 자못 충격적이다. 사학 비리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한 '대학권력'의 모태는 이미 오래전에 존재했었다. 


국가권력, 그리고 시장권력


1960년대 들어 대학 민주화를 통해 대학 위기를 돌파하려 했었지만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며 무참히 짓밟혔다. 대학권력을 압도하는 국가권력의 손길은 대학의 자율과 자치를 고려하지 않고 개혁과 대학 안정화라는 명목으로 대학 운영 전반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는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까지, 즉 20여 년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짧은 서울의 봄이 지나고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며 국가권력의 무시무시한 촉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졌다. 


현대에도 여전한 대학 위기 최대의 원인이자 대학 개혁 최대 기원, 그리고 대학교육 방향 중 가장 첨예한 논란의 주인공인 '대학 자율화'가 가장 침해를 받았던 시기가 1960~80년대다. 필자도 최소한의 의문이 드는 부분이 '대학 공공성 회복'과 '대학 자율화 회복'의 동시 추구 가능성인데, 이 중 한 가지를 추구하면 다른 한 가지를 추구할 수 없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아마 극악적 양자택일의 우리나라 역사의 성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1990년대들어 한국 대학은 전에 없는 놀라운 변화를 했다. 양적 팽창에 버금가는 질적 향상은 평가에 따른 선별 지원과 대학 스스로의 개혁으로 확보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를 휩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의한 시장권력에 포섭되어 갔다. 더 큰 문제는, 국가권력과 대학권력이 바로 이 시장권력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세 권력의 공고한 연대는 2010년대에서 2020년대로 넘어가는 바로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대학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주체가 없다. 


돌아보니,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가 한국 대학만큼 잘 적용되는 사례도 드문 것 같다. 1950년대가 저물 때 대학은 위기에 몰렸고 여기저기서 '대학망국론'이 등장했고 이에 대학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1950년대'를 '2010년대'로 고쳐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도 제시한 대학 개혁의 방향 중 진정한 '대학 자율화'야말로 한국 대학 위기의 반복된 역사의 가장 큰 이유이자 그 역사의 반복을 그만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다른 위기나 개혁 방향이 그때 그때의 시대와 포섭된 권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는 다르게,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한국 대학의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공통적으로 진정 이룩할 수 없던 게 '대학 자율화'이기도 하고 말이다. 


2015년 8월 17일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고현철 교수는 교육부가 총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 대신 간선제로 바꾸라고 요구한 데 반발해 투쟁하다 부산대 본관 4층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 대학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요구한 것인데, 이에 정부는 국립대 총장 선출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간선제 유도 방식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한 교수의 고귀한 죽음이 던지는 파장이 부디 널리널리 퍼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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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랩 걸>

 

 

<랩 걸> 표지 ⓒ알마


 

'과학책'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본래 과학책은 잘 읽히지 않았다. 인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을 다룬 책이라면 역시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가 대중화에 앞장섰다. 칼 세이건,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면, 올리버 색스 등은 의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세 명이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에 와서는, 알파고의 출현이나 4차 산업 혁명의 도래 등의 트렌드에 맞춰 과학의 대중화가 상당히 진척된 느낌이다. 그 총체적 접근법은 역시 책이다. '과학책' 말이다. 과학 자체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소개하기도 하고, 과학자를 색다르게 대중에게 소개하기도 하며, 때론 그저 과학자가 썼을 뿐 과학과 연결된 게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여성 식물학자이자 교수 호프 자런의 <랩 걸>(알마)은 과학자가 썼을 뿐 얼핏 과학과 연결된 게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중구난방 건네는 책이다. 식물에 대한 다층적이고 다방면인 단편, 종종 드러내는 내외면의 깊숙한 이야기, 그리고 과학자로서 치열하게 사투하는 자전적 에세이까지. 저자는 치밀하게 구성한듯, 마음대로 느슨하게 구성한듯, 크게 세 이야기들을 오가며 식물, 과학, 사랑, 인간을 말한다.

 

식물에서 과학으로

 

저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나무는 은청가문비라고 한다. 그 나무는 모질고 긴 겨울 내내 초록색을 자랑하며 우뚝 서서 푸른 빛을 발한다. 팔십 년을 넘게 살고는 어느 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죽고 만다. 때아닌 5월의 폭설 때문이었다. 저자는 그때 비로소 나무가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람의 삶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고비를 넘겨 최고의 시간을 누리고 시간에 따라 변화했다. 


나무에게서 과학의 정수를 발견했다. 과학은 가르쳐주었다.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을.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저자가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저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저자에게 제공해준 것이 다름 아닌 과학이었다. 저자의 식물을 향한 관심이 곧 저자의 과학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로 나아간 것이다. 그녀는 식물학자가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 아닌 여자였다. 그녀는 아빠와 같아지기를 절실히 원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극복할 수 없는 큰 산과 같은 엄마의 연장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학 생활은 문학 전공으로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과학이야말로 진정 속한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지 않아 과학계에 만연한 성차별을 받게 될 운명. 


과학계 내 성차별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그건 "저 여자가? 그럴 리가."와 같이 지금의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다. 


인간에서 사랑으로


책은, 인간과 사랑에 대한 심오하지 않은 에세이적 고찰, 그래서 훨씬 마음에 와 닿는 고찰로 나아간다. 거의 1년 365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그녀에게도 평생 친구가 생기고, 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 평생 친구는 다름 아닌 빌, 함께 실험실을 꾸려가는 동료이기도 하다. 


빌은 오른손 일부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졸업무도회도 가본 적 없다는 그, 저자와 함께 액슬하이버그 섬에 도착해 연구를 할 때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춤을 추다. 저자는 빌의 바로 앞에 앉아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본다. 빌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빌이라는 인간,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똑바로 목격하는 증인으로서. 


저자는 야외에서 간단하게 피크닉하는 자리에서 클린트를 만난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희생하지도 않았다. 사랑은 너무 쉬웠고 달콤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닐까. 머지 않아 저자는 사랑의 결정체, 임신을 한다. 하지만 임신은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조울증을 앓았는데 당연히 약을 먹을 수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녀의 조울증을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었고, 그저 함께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임신 기간 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정상적이고 건강한 분만을 했다. 그녀는 아이의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될 것을 결심한다. 그게 얼마나 이상한 생각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그를 사랑할 것이고, 그도 그녀를 사랑할 것이고, 모든 게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훗날 그녀는 아이의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녀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했고, 태어난 후에는 그녀의 사랑이 아이가 이해하기에 너무 큰 게 아닐까 걱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아들이야말로 그녀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렸던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 그 아이는 불가능한 동시에 불가피했다는 것, 누군가의 엄마가 될 단 한 번의 기회가 한 번 그녀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게 과학이고 과학의 눈으로 보면서도 과학은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은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점에서 식물과 같지만, 식물은 중대하고도 기초적인 면에서 인간과 같지 않다. 사랑은, "널 사랑해"라는 말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줄지는 아는 것과 같다. 형체가 없어 만질 수는 없지만 항상 함께 있다는 걸 믿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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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인 강제연행>


<조선인 강제연행> 표지 ⓒ뿌리와이파리



일본제국은 1868년 1월 메이지유신으로 설립된 메이지정부 이래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 후 미국에 의한 군정 실시 2년 뒤 1947년 5월까지 계속되었다. 이 79년 동안 일제는 천황을 국가원수로 제국주의 시대를 이어갔는데, 우리나라는 그 절반 이상의 시간 동안 사실상의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았다. 


일본으로선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의 전성기였을 그때, 일제는 단기간에 최고의 위치로 치고 올라가 역시 단기간에 최악의 위치로 곤두박칠 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나치독일과 더불어 수없이 많은 콘텐츠로 재생산되었고 수없이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많은 자료가 있을 그들 스스로 조작하고 차단하고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채 정교하게 재멋대로 재생산과 연구를 해버리는 바람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잘못 알려져 왔다. 그럼에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려 했는데, 그렇게 그들 스스로를 올바르게 되돌아보는 것만이 진정한 일제의 역사를 아는 것일 테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근대사 전문가 도노무라 마사루 교수가 전격적으로 총체적인 기본 사료를 통해 1939년~45년까지의 총력전체제 하의 전시 노무동원 실체를 파헤친 책 <조선인 강제연행>(뿌리와이파리)도 그 일환이라 하겠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건 결국 일본제국주의(일제)의 본질, 나아가 일제 식민지 통치의 본질이다.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저자는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라고 주장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할 만한 이 말은, 사실 심층적이다 못해 굉장히 새로운 해석에 의한 것이다. 극히 일부의 조선인과 대부분의 일본인이 이루는 동원된 사람과 그 가족이 국가의 원조를 보장받는 반면, 조선에서는, 조선인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즉, 일본인 동원과 조선인 동원 사이에 명백한 차별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중심에 두고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선, 노무동원이 실시될 당시 일본 내지에 비해 조선은 물질적 근대화가 훨씬 더뎠고, 미디어가 발달하지 못했고, 행정기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으며, 사회교화에 한계가 있었다. 대다수 농민들은 몰락했고 생존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제는 군수 경기 하에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탄광 등 광업 부문이 심각했고, 이에 일제는 조선인의 도일을 억제하는 한편 통제에 의한 조선인 도입을 모색해 일손 부족 문제 해결을 촉진했다. 와중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제는 이른바 총력전 체제로 진입한다. 그렇게 1939년부터 국가총동원계획이 수립되고 노동력과 관련해 노무동원계획이 수립된다. 이 계획은 일본 내지는 물론 상대적으로 많은 것들이 열악한 조선에서도 실시된다.


이 계획은 일본제국 하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즉, 오히려 일본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동원계획의 조잡함과 강제성과 열악함 등에 있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준비가 부족한 채, 역시 일손 부족에 허덕이는 조선 남부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실정을 무시한 채, 조선인의 반발은 물론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지의 피동원인들의 반발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진행한 것이다. 


허접하고 무모하다 못해 모순적이기까지 한 일제


저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이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로, 최종 결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결여한 사회에서 충분한 조사와 준비가 부족한 조직이 무모한 목표를 내걸고 추진하는 행위가 가장 약한 사람들의 희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는 일제라는 가해자와 조선이라는 피해자라는 이분법 층위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우선 실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일제의 노무동원은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적재적소에 일손을 배치해 국가의 보다 나은 앞날로 나아가는 것일 텐데, 제대로 된 준비와 관리와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행태는 내부에서의 진지한 목소리도 모두 무시한 채 계속되다가 패망에 직면해 강제적으로 그만두어졌다. 


그런 속 빈 강정 같은 계획 하에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면 필연적으로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다. 계획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반발이 생길 것이고, 그럼에도 밀어붙인다면 강제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거기엔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폭력이 수반된다. 문제는, 이런 국가폭력이 소위 제국민의 일원이라 할 만한 조선인에게만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일제의 명백한 존재와 함께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 등을 비롯한 일제 통치 하의 식민지민 모두를 하나의 제국 하의 국민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저자의 시각이 그렇고, 저자의 철저한 기본사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지표와 결론이 그를 반영한다. 일제는 허접하고 무모하다 못해 모순적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일제의 실체, 일제의 식민지 통치 본질이 그렇다. 그들은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군국주의를 앞세워 많은 식민지를 영위하며 그 위세를 만방에 떨쳤지만, 실상 속 빈 강정에 무대포에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고 있었다. '조선인 강제연행'이라는 일제의 수많은 헛짓거리 중 하나일 뿐인 것만으로도 그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일제에 대한 연구는 더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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