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추수밭
8월 경에 전례없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리에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난데 없이 표절 시비가 붙었다. 4~6회 분에 해당하는 '쌍둥이 살인 사건'이 2012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의 도진기 작가 '악마의 증명' 편을 표절했다는 논란이었다. 출판사 측에서 먼저 저작권 침해에 대한 내용증명을 보내며 포문을 열었고 제작진은 이를 반박했다.
하지만 이후 이번엔 추리작가협회에서 공문을 통해 SBS와 제작사의 사과를 촉구하였다. 역시 이에도 제작사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박했다. 더 이상의 관련 기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악마의 증명'이란 단편소설은 대중의 뇌리 속에 확실히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을 지은 도진기 작가도 부각이 되었는데, 이미 그는 유명인사였다. 그는 무려 현직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2010년 추리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매년마다 꾸준히 추리소설을 내며 적지 않은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재밌고 코믹한 법률 이야기
이번에는 추리소설이 아닌 교양서를 출간했다. 그런데 참 애매하다. 이 책을 어떻게 포지셔닝시켜야 하는지. 온라인 서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회과학'의 '법' 분야로 분류되어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분명 법률을 소개하는 책이니까. 하지만 겉모습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이자 핵심 내용이 '법'이긴 하나, 이를 끌고 가는 건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의 뛰어난 스토리텔링이다. 재미있고 코믹하고 반전까지 있는 스토리텔링. 추리 소설가답게 곳곳에 복선이 깔려져 있다. 이를 캐치하고 나중에 어떻게 전개될지 생각하면서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한 방법이 되겠다.
의학이나 법률, 정치, 경제 등 전문가적인 식견이 필요한 영역은 일반인이 다가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직접 쉬우면서도 알찬 내용의 책을 내려고 한다. 그런데 상당수가 솔직히 재미없다. 그 이유에는 단조로운 전달 방식과 일방적인 전달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거나 아니면 선생님이 되어서 가르쳐 주거나.
반면 이 책은 정말 특이하다. 특이한 것이 아니고 본래 이 방식이 정상일지 모른다. 먼저 확고한 캐릭터성을 부여한 등장인물들이 세 명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염라대왕(판사), 소크라테스(변호사), 욱 검사(검사)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 한다. 그러며 소크라테스는 피고인들을 천국으로 보내기 위해서, 욱 검사는 피고인들을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서 대결을 벌인다. 이들 가운데 낀, 법 모르는 판사 염라대왕은? 프롤로그를 통해 어떻게 이들이 등장하게 되었는지부터 보면 책 읽는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22개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피고인, 원고인)이 등장한다. 성냥팔이 소녀, 봉이 김선달, 양치기 소년, 윌리엄 텔, 고흐, 미란다 그리고 이태원 살인 사건까지. 스토리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그냥 지나쳤을 법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런 습득이 바로 '외우기'가 아닌 '이해'가 아닌가 싶다. 그 중 몇 개만 살짝 집어 본다.
법률 상식,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먼저 법의 기본 중에 기본인 '법과 도덕의 구분'을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을 통해 알려준다. 아울러 착한 사마리안의 예시를 들어 보강하고 있다. 이어서 '형사와 민사'라는 재판의 큰 두 갈래를 봉이 김선달의 예시를 들어 아주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다. 계속해서 법과 재판과 죄의 기본 원칙과 개념 등을 스토리가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알려준다. 거기에는 익히 알고 있는 미필적 고의나 정당방위 등과, 죄형법주의, 긴급피난, 심신상실 등 익히 들어보진 못했지만 굉장히 중요한 개념과 원칙 등이 있다.
저자는 책의 절반에 해당하는 후반 부분 전체를 형사와 민사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테다. 사실 재판이란 것이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으로 나누어 지는 것이다. 중요한 만큼 저자의 말을 빌려 형사와 민사의 개념을 정리해본다.
"법 문제는 크게 나누어 돈 문제인 민사와 범죄를 처벌하는 형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민사에는 민법이, 형사에는 형법이 적용됩니다. 그리고, 형사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물어 주어야 하는 민사 문제가 늘 따라 생깁니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챕터를 구성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 한 개가 '미란다 원칙'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면서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란다 원칙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란다 원칙은 어떻게해서 생기게 된 것일까? 책에서는 죽은 미란다가 연옥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장면으로 스토리텔링하여 자세하게 그러나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미란다는 여러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이다. 그러던 중 어린 여자 아이를 납치했고 경찰에 붙잡히게 되었다. 그때 경찰은 그에게 피의자의 권리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미란다는 자신의 범행 일체를 자백하였다. 당연히 그것이 결정적 증거로 작용되어 유죄로 판결되어야 했지만, 그는 무죄가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경찰이 법에서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을 어긴 수사로 얻은 증거는 무효가 된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범죄자를 체포할 때는 체포당하는 이유와 변호사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는 유명한 미란다 원칙의 탄생이다.
밀려오는 법에 대한 의문과 회의
책에서 판사 염라대왕은 이런 말을 한다.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실제에도 많이 통용이 된다. 책에 나오는 또 다른 실제 사건인 '이태원 살인사건'도 그에 해당된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햄버거 가게에서 한 사람이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 두 명의 사람이 용의 선상에 올랐다. 이 둘은 서로가 상대를 범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수사 결과 키가 큰 용의자가 찔렀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제기되었을 뿐 결정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결국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즉, 이 정도면 그 사람이 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하는 데에 상식적으로 의문이 없다는 정도에 이른 상태에 이르지 못했기에 둘 중 어느 누구에게도 유죄를 선언할 수 없었다. 이 두 명의 용의자는 무죄로 풀려놨다.
저자는 이 유명한 사건을 예로 들어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의 명제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염라대왕의 시선을 통해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를 애도하고 있다. 여기서 밀려오는 법에 대한 의문의 회의. 분명 피해자는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위의 명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이 사건을 쉬이 잊지 못한 염라대왕은 나중에 CCTV 카메라에 찍힌 확실한 증거를 들고 다시금 동일한 재판을 치르려 한다. 하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서 그 용의자들을 다시 법정에 세울 수 없었다. 여기서도 법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밀려온다.
"한 번 재판을 받아 확정되었으면, 같은 범죄로 다시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그것이 일사부재리입니다." (본문 중에서)
전문가들이 일반인 대상으로 출간하는 책의 완벽한 정답을 보여준 것 같다. 물론 자칫 가벼워 보이거나 성의없어 보일 우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이 책에는 코믹한 요소가 많이 나오니까 말이다. 또한 스토리에 치중할 새에 더욱 많은 정보들을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핵심적인 법률 사항을 진하게 표시하는 배려까지 보이고 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법률 사항들이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다. 소설 이상의 재미와 핵심적 법률 지식을 원하는 분들께 추천드린다. 단, 썰렁한 개그를 싫어하거나 '입문' 단계 이상의 법률 지식을 가진 분은 삼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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