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헌법 탄생 리얼 다큐 <두 얼굴의 헌법>
<두 얼굴의 헌법> ⓒ폴리티쿠스
여기저기에서 '대한민국이 법치국가가 맞는가'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울 뿐인 법치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대한민국. 여기에는 사법권력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직접 법을 만들고 수정하고 그 누구보다도 헌법을 잘 알고 있는 당사자들이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일어났었다.
사전에 따르면 법치국가란 경찰국가와 대립되는 말로, 절대군주가 마음대로 행정을 휘두르는 경찰국가와는 달리 행정을 미리 정립된 법률에 의해서만 시행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에 의거하는 국가를 뜻한다. 직접 헌법을 만들었거나 만드는 데 관여했다고 해서, 국가 통수권자 대통령이라고 해서, 초헌법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연 그러했었는가?
대한민국 통수권자의 초헌법적 행동
전두환, 노태우는 1996년 3월부터 시작된 공판에서 반란죄, 내란죄, 수뢰죄로 각각 사형과 22년 6개월의 징역을 언도받은 바 있다. 한때 국가 최고통수권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결국 헌법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법치국가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후 특별사면으로 출소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고 선언하며 초헌법적 국가긴급권을 발동해 국회를 해산하고 전국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미 3선 대통령이기도 했던 박정희는 그해 10월 27일 헌법 개정안이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 11월 21일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확정, 12월 27일 공포·시행됨에 따라 사실상 종신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제7차 헌법 개정이었지만, 실상은 박정희의 장기집권 나아가 독재를 가능하게 한 헌법이었다. 그 앞에서 헌법은 헝겊 쪼가리보다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한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한 나라의 기본 토대가 송두리째 뽑히다니 말이다.
문제는 대한민국 통치권자의 초헌법적 행동에 관한 사실을 대부분 여기까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 위의 이승만 대는 너무 오래 되었기도 하거니와, 그 시대 분들이 거의 남아 계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통치권자의 초헌법적 행동의 원조는 이승만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과 이후 헌법의 수난을 리얼하게 담은 책 <두 얼굴의 헌법>(폴리티쿠스)에 그 자세한 내막이 나와 있다.
헌법의 탄생과 수난, 그 리얼 다큐
1948년 헌법의 탄생과 1952년 부산정치파동에 깊숙이 개입한 이승만의 행적을 기자 출신의 저자가 당시 제헌의원의 생생산 증언과 국회속기록을 바탕으로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사실들을, 재밌지만 가볍지 않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1940~50년대의 일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책에 따르면, 헌법 탄생 당시에 제헌국회의 주류는 내각 책임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제헌국회 의장이었던 이승만이 강력하게 대통령중심제를 고집했고 이후 열린 헌법기초위원회에 참석해서 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하였다. 대통령제가 아니면 민주주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이에 많은 의원들이 반발하였지만, 결국 굴복하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자신이 대통령에 자리에 앉게될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을 직시하고 건 드라이브였다. 이미 그의 독재적인 풍모가 드러나고 있다.
시간은 흘러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1952년 이승만 정부는 임시 수도 부산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일찍이 1950년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하며 이승만의 재선이 어려워지자 1951년 말 정부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초 국회가 이를 부결하자 정부와 국회의 알력이 시작되었다. 이에 정부는 국회해산을 강행하기 위해 부산을 중심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구속하기에 이른다. 비록 국제적 비난 여론에 국회해산은 보류되지만, 국회의원 장택상을 중심으로 한 신라회가 주동이 되어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발췌개헌안'이 마련되었다. 이어 그 유명한 국회의원 기립투표 방식으로 발췌개헌안이 통과되었고 이승만 독재정권의 기반이 굳어진다.
책에서는 헌법의 탄생을 1장에, 부산정치파동을 헌법의 수난이라는 제목으로 2장에 배치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헌법은 탄생과 동시에 한 사람의 욕심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는 수모를 당했고, 이어서 동일한 인물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유명무실해진 헌법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승만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54년에는 그 유명한 위헌적인 '사사오입' 개헌으로 결국 장기집권의 소헌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책은 3장과 4장을 각각 '제헌 2년의 풍경'과 '헌법의 현장'의 제목으로 마무리한다. 특히 4장은 저자가 직접 현재 일어나고 있는 용산참사, 쌍용차사태, 제주 강정마을 현장을 방문·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60년을 훌쩍 건너뛰었지만, 세월이 무색할만큼 변한 게 없다는 느낌이 든다. 국가통치체제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법규인 헌법의 균형잡힌 서술이 눈에 띈다.
그때그때 달리 이용되는 헌법. 정확히 말하면 '두 얼굴의 헌법'이라기보다 '헌법을 이용하는 이들의 두 얼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헌법에 대한 유린과 함께 헌법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
두 얼굴의 헌법 - 김진배 지음/폴리티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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