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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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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미카엘 하네케가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 <해피엔드>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7. 4. 08:00



[모모 큐레이터'S PICK] <해피엔드>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미카엘 하네케, 자타공인 '거장'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현역 영화감독 중 하나이다. 영화평론가를 하다가 연극, 텔레비전 일을 전전하고는 한국 나이 48세에 비로소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올해로 데뷔 30주년, 그동안 10편 남짓한 작품을 만들었고 어느덧 80세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활동적으로 작품을 내놓고 있다. 


코엔 형제, 다르덴 형제, 켄 로치와 더불어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일 미카엘 하네케, 심사위원대상과 감독상과 대망의 황금종려상 2회 수상에 빛난다. 그의 작품을 통해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메인 상에서 각본상과 심사위원상만 타지 못했을 뿐, 그 위의 진짜배기 상들은 모조리 수상한 이력이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09년 <하얀 리본>과 2012년 <아무르>(미카엘 하네키 필모 상으로) 초유의 연속 황금종려상 수상은 그를 더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올려놓았다. 아무래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5년 만에 들고 온 <해피엔드>는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숙미의 끝을 보여주며 더할 나위 없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만들었을지, 시도해보지 않았고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찾아 실험정신을 발휘해 영화를 만들었을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피 엔드>는 후자에 가까웠다. 


파편화되고 단절된 가문


파편화되고 단절된 프랑스의 어느 가문을 중심으로.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프랑스 칼레, 지방 유지이자 건설업 부자 '로랑'가로 13살 여자아이 에브가 들어온다. 그곳에는 최연장자이자 로랑 가문의 건설회사를 일으킨 조르주, 조르주의 뒤를 이어 CEO로 활동 중인 앤, 에브의 아빠이자 외과의사 토마스, 앤의 아들이자 가문과 회사의 유일한 후계자 피에르가 있다. 토마스의 전 부인이자 에브의 엄마는 약물과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다름 아닌 에브가 저지른 일이다. 


식사 때면 어김없이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가족들, 하지만 지극히 파편화되고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조르주는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지만 실패했고, 앤은 무너진 공사현상 뒷수습을 매정하게 진행하는 등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토마스는 잘 나가는 외과과장이지만 두 번째 결혼임에도 바람을 피우는 듯하며, 피에르는 가문과 회사의 후계자로서 그에 걸맞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피를 나누고 함께 살며 밥을 먹지만 서로를 잘 모르는 듯하다. 아니, 서로를 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일원이자 가문의 일원인 에브를 향한 시선도 못마땅이 아닌 무관심에 가깝다. 와중에 최연장자 조르주와 최연소자 에브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이지만 순수한 매개체로 조금씩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린 이 영화가 '해피'한 '엔드'를 이룰 것 같진 않다. '해피'가 '엔드'하면 몰라도. 


파편 그리고 SNS


영화의 메인 키워드는 '파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누가 보았든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계속 들게 할 영화 <해피엔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여러 의도가 복잡다단하게 깔려 있다. 영화를 보기 전과 보는 도중과 보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이 전혀 다를 테고, 같은 캐릭터와 사건과 장면을 보면서도 저마다 해석이 다를 테다. 필자는 이 영화를 이룰 수많은 개념들 중에서 나름 몇몇을 골라 관련하여 생각과 해석을 달아보겠다. 현상보다 본질에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우선, '파편'이라는 단어 개념을 상정해보았다. 영화 자체의 만듦새도 그러하고, 영화 속 로랑 가문의 면면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지극한 부정적 단면'이라는 전제 하에 감독이 다분히 의도한 듯 보인다. 영화 구성이 매우 불친절하다. 앞뒤를 매끄럽게 연결시키기 힘든 파편화된 장면들이 나열되다 보니, 맥락 있는 이야기를 감상하기가 힘들다. 나중에 은근슬쩍 설명으로 어찌저찌 맥락을 구성하긴 하지만 말이다. 덕분에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지만, 자칫 영화 자체를 기피하게 될 공산이 있다는 점을 말해둔다. 


로랑 가문 구성원들의 파편화된 면면이 아니었다면, 이런 불친절한 구성은 그냥 그렇게 불친절함으로 의미없이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해피엔드>에서는 영화 밖과 안이 의미있고 재미있게까지 조우하는 것이다. 그러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야말로 작금 현대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중류층의 표본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밖에 모르며 다른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남들에게 해피해 보이는 데에만 신경 쓰며, 극단적 상황이 닥칠 때면 끝까지 놓아주지 않거나 혹은 가차없이 버린다. 파편화된 것도 모자라 단절된 삶을 산다."


파편은 'SNS'라는 소재로 자연스레 옮겨가는 듯하다. 영화 초반 에브의 라이브 영상을 통해, 영화 중반 토마스의 채팅 장면을 통해, 후반 다시 에브의 라이브 영상을 통해 감독은 SNS의 특성과 폐해를 다룬다. 우린 SNS로 자연스레 일상적으로 습득한다. 그것이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띄고 있더라도 말이다. 한편, 우린 SNS 때문에 당사자와 제3자 간의 직접통로를 경험한다. 피아 구분이 잘 되지 않기에 아직 덜 성장한 아이들에게서 윤리적인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사실,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직시하고 들여다보고 파고드는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무수히 선보여왔다. 그래서 우린 그 무서움을 익히 알고 그에 대한 두려움을 새기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많지 않다.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그 무서움과 두려움이 무뎌졌거나 몸에 깊숙히 박혀 감수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해피엔드>는 날카롭거나 집요하게 파고들진 않는다. 광범위하게 루즈하게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다만, 평면적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입체적으로 다가간다. 소재와 주제, 구성 및 전달 방식, 캐릭터와 사건 요소 등 모든 면에서 입체적이다. 위에서 영화의 만듦새가 파편적이라고 했기에, 영화가 입체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다가간다는 게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앞엣것은 의도적인 것이고 뒤엣것은 의도하지 않은 것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영화 속 조르주는 미카엘 하네케의 전작 <아무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르주는 손녀 에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에브의 기억 속엔 없는 할머니이자 조르주의 부인 안느가 반신불수가 되곤 3년 후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자 직접 목을 졸라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일환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르>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물으며 사람과 사람의 촘촘한 사이사이로 파고 들었다면, <해피엔드>는 진정한 사랑이 지나고 난 이후 세대의 삶을 논하며 사람과 사람의 느슨해진 사이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는 듯하다.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은 진정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반면 적당한 사랑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이득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으로 흩어져버린 세상에서는 극단적인 사랑법이야말로 그나마 소용이 있을지 모른다. 왠만한 극단에는 이미 적응되고 무뎌져버린 지금이 아닌가. <해피엔드>를 계기로 한 번쯤 우리와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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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비극이자 악몽이자 재앙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2. 1. 08:0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영화 포스터. ⓒ넷플릭스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사업가 빌리 맥팔랜드, 그는 '파이어 미디어'라는 이름의 회사로 힙합계의 대부 자 룰과 일치단결, 누구나 유명한 아티스트를 섭외할 수 있는 혁신적 플랫폼 '파이어 앱'을 만든다. 


이제 이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홍보해야 하는 시기, 업계 전문가를 위한 페스티벌이나 콘서트를 열자는 의견이 나온다. 빌리는 곧바로 수용하여 진행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데, 변질되어 '파이어 페스티벌'로 기획된다. 이 페스티벌로 말할 것 같으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델, 아티스트, 인플루언서들을 바하마의 아름다운 섬으로 초대해 사상 초유의 파티를 열자는 것이었다. 


빌리와 자를 위시한 파이어 측은 대대적인 사전 홍보를 실시한다. 세계적인 모델들과 페스티벌이 진행될 현지를 배경으로 광고 촬영을 하여 인플루언서들과 합작해 SNS를 광란으로 몰아넣는다. 자연스레 언론이 이에 발을 맞추고 결국 페스티벌에 관심 있는 일반 대중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대급 페스티벌의 진행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 아니, 빌리를 제외하곤 누구나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방향은 다름 아닌 파멸, 사전 홍보대로 절대 이뤄질 수 없는 방향이다.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지만, 광기와 무지로 무장한 수장인 빌리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꿈의 축제'는 '악몽의 사기극'으로 변하는 중이다. 애초에 꿈의 축제 따위는 없었던 것일까. 


최고의 축제에서 시작된 최악의 사기극


최고의 축제로 기획된 'FYRE'는 최악의 사기극으로 끝난다. 한 개인의 무지와 광기가 이 시대의 비극, 악몽,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비단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 의 한 장면. ⓒ넷플릭스



결론부터 말하면, 빌리 맥팔랜드는 지난해 10월 감옥에 갔다. 이 파이어 페스티벌로 체포되었다가 보석금을 주고 풀려난 사이에 비슷한 사기극을 또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자 소시오패스이자 사기꾼이다. 하지만 그는 전도유망한 젊은 사업가였다.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이하 'FYRE')에서 빌리의 자세한 행적을 엿볼 순 없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고 계속 밀고 나간 것인지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Hulu에서 공개한 <FYRE Fraud>에서 빌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FYRE>는 파이어 페스티벌이 축제에서 사기극으로 변모한 전말을 자세히 파헤친다. '빌리'라는 한 개인보다 '인플루언서'로 대표되는 이 시대, 이 사회의 표상에 더 천착하는 모습이다. 


무지와 광기


축제, 좋아하고 열광하고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필자도 참여는 물론 진행의 일원으로 참여도 해보았다. 참석하는 이들로 하여금 좋아하고 열광하고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안다. 그에 맞게 준비하는 건 더 어렵다. 


빌리는 페스티벌을 좋아하고 열광하지만 준비는커녕 진행해본 적도 없다. 그들과 함께 하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뭐에 열광하는지 잘 알지만 실현에 옮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첫 번째로, 자신이 무지한지 모르는 게 잘못이었다. 


준비하고 진행에 착수하면 알 수 있다. 화려하기 그지 없었던 사전 홍보가 매우 과도하고 과장되었다는 것을. 그때 바로 사과하고 시정하면 큰 문제 없이 축제를 이뤄낼 수 있다. 물론, 애초에 기대했던 만큼의 '꿈의 축제'가 되진 못할 테지만. 


그렇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무조건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는 주문과 함께 불가능한 게 불보듯 뻔하면서도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듯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식의 진행은 실패와 파멸을 불러올 뿐이다. 그 사이사이 수많은 분기점, 분수에 맞는 축제를 이뤄낼 수 있는 기회들을 날려버린 건 돌이킬 수 없다. 두 번째로, 통제할 수 없는 광기가 잘못이었다. 


비극, 악몽, 재앙의 사기극


빌리는 사기꾼임에 분명하지만, 이 시대와 사회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은 가졌다. 일면 천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은 이 축제는 그 자체로 비극이자 악몽이자 재앙이다. 


일플루언서란 SNS계의 셀럽이라 할 만한대, 수십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을 지칭한다. 그들도 현대인이 아니, 사람이 가지는 '선망'을 이용하여 유명해진 사람들일진대 빌리가 읽어낸 게 바로 그 점이다. 


오프라인 아닌 온라인에서는 '그 사람'의 겉모습만 볼 수 있다. 그 사람은 겉모습 따위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야 어떻든, 잘 지내는 것처럼, 잘 나가는 것처럼, 잘 사는 것처럼. 그 포장의 기술에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열광하고 따라하고 같이 하고 싶어 한다. 


파이어 페스티벌에 세계적인 모델, 아티스트, 인플루언서들이 총집합한다는데 어찌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페스티벌은, 모두 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인플루언서의 허상이 단지 매우 매우 커진 양상일 따름이다. 정녕 매우 놀라운 사기극이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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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집' 유행, 그 이면에는?

생각하다 2018. 11. 19. 12:45



문학 작품의 영화화는 어느덧 오래된 주제입니다. 문학만이 가지는 고유의 문학적 상상력을 어떻게 스크린에 구현해내느냐가 주된 포인트죠. 그렇게 참으로 많은 영화들이, 좋은 영화들이 좋은 문학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앞으로도 그들의 공생 관계는 영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시류가 달라졌습니다. 현 세계 영화시장을 여전히 좌지우지하고 있는 할리우드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문학'의 영화화는 이어지고 있지만, 여기에서 문학이 가지는 원작 콘텐츠로서의 자체 확장성에 주목한 것이죠.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코믹스 작품의 영화화입니다. 


코믹스, 문학의 한 부분으로 충분히 편입 가능한 분야입니다. 흔히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르는 명작 만화들이 존재하죠. 마블과 DC의 영화 원작들이 이 범주에 들 만한 정도로 문학적 퀄리티를 자랑하는가와 별개로, 또한 굳이 만화가 문학의 범주에 들어야 하는가의 논의와 별도로, 만화가 가지는 영화 원작으로서의 가능성은 이미 무한이죠. 


반대로, 비단 영화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읽는 콘텐츠에서 보는 콘텐츠로의 통행이 전방위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와중에 읽고 보기도 하는 콘텐츠인 만화가 각광받고 있는 건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들이 게을러진 것인지,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것처럼 관객 수준에 맞추고자 한 것인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겠습니다. 


각본집과 대본집 출간의 새로운 움직임


<아가씨 각본> 표지 ⓒ그책



요즘 출판계에 새로운 움직임이 조금씩 보입니다. 아직 '유행'이라고 할 것까진 아닐지 모르지만, 워낙 작고 잘 휘둘리는 한국 출판계의 사정상 유행을 넘어 광범위하게 문어발식으로 뻗어나가는 광풍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읽는 콘텐츠에서 보는 콘텐츠로의 통행만이 아닌, 반대의 움직임이 그것입니다. 


영화엔 시나리오 또는 각본이 있을 테고, 드라마엔 대본이 있을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감독이나 배우뿐만 아니라 작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텐데, 바로 그들이 남긴 글인 것이죠. 범문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요즘, 각본집과 대본집 출간이 속속 들려옵니다. 


지난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여러 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중 하나가 다름 아닌 각본집 출간인데요.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가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유행에 따른 의례적인 출간이 아닌, 팬들의 요구에 따른 이례적인 출간이었던 것이죠. 책은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러곤 곧 같은 출판사에서 박찬욱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들 각본집을 출간했죠.


2년이 지난 지금,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개들의 섬> 각본집과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아는 와이프> <시간> <라이프> <너도 인간이니?> <미스 함무라비> 대본집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게 팔렸고 최근들어 더 많이 팔리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중 한눈에 보이는 것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신과 함께> <미스 함무라비>는 만화와 웹툰과 소설로 원작도 있는 작품들인데 말이죠. 


출판계의 '원 소스' 위상이 사라지다


팔리니까 만드는 것일 테죠. 한편으론 출판계 생태계가 변화 또는 파괴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건 출판계를 주체로 생각할 때이고, 영화계나 드라마계를 주체로 생각해보면 관객이나 시청자층의 마니아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겠죠. 그들이 볼 때는 각본집이나 대본집이 또 하나의 콘텐츠가 아닌 홍보 또는 부가수익인 것이겠죠. 


그들보다 훨씬 작은 자본 생태계인 출판계에서는 충분히 지각변동을 일으킬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문학 하다못해 만화가 가지고 있던 텍스트의 위상이랄까, 스스로를 향한 위로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었지만 그나마도 있긴 있었던 '멀티 유즈' 아닌 '원 소스'만의 위상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읽는 콘텐츠 즉 텍스트든, 보는 콘텐츠 즉 영상이든, 오직 퀄리티로 승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방 통행은 사리지고 쌍방향 통행이 가능해졌기에 원 소스가 되기 위한 전쟁이 문화예술 콘텐츠 전방위적으로 시작된 것이죠. 


SNS조차 텍스트의 트위터에서 텍스트와 포토, 영상의 페이스북을 지나 포토의 인스타그램, 그리고 영상의 유튜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그중에서도 영상의 영화계와 드라마계, 그리고 텍스트, 포토의 문학계와 만화계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명약관화입니다. 각본집과 대본집이 소소하게 하지만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는 이면입니다. 


자리를 지키며 버텨야 하는 출판계


이쯤 되면 출판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생각을 개진하고,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까 하는 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시대를 이끄는 SNS이 그런 움직임을 빠르고 견고하게 이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영상이 대세가 되고 텍스트는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시대는 이미 와버렸고, 앞으로 그 양상은 더욱더 가파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다만, 위안이랄까 황당무계한 바람에서 오는 시덥잖은 들여다봄이랄까 SNS의 텍스트를 담당하는 트위터가 죽을 듯 죽지 않고 자리를 버티고 있다는 점이 새삼 고맙게 다가옵니다. 


앞으로 출판계는 이리저리 휘둘릴 것입니다. 사방 팔방에서 불어오는 광풍으로 휘청거릴 것입니다. 다양한 다른 생태계들의 부하 노릇을 해야 할 테고, 노예 노릇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지요. 자리를 지키며 휠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버티면 다시 출판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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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미션, 따라오는 인기와 돈... 플레이할 것인가? <너브>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 13. 08:00



[리뷰] 현대판 글레디에이터 <너브>


SNS 미션 수행 사이트 '너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0대들의 이야기, 영화 <너브>. 별 생각 없이 봐도 무방하지만, 현대판 글레디에이터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발상이겠다. ⓒBoXoo 엔터테인먼트



시티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에 거주하는 소심한 성격의 비, 대학 입학을 앞두고 고민이다. 엄마와의 소소한 말다툼, 결국 엄마의 말을 듣기로 한다. 학교에서는 럭비 선수들 사진 담당인듯, 선수들 사진을 멋지게 찍어 대지만 정작 짝사랑하는 주장 JP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한다. 친구들이 놀리는 와중에, 시드니가 '너브' 운운하며 비의 소심함을 지적한다. 그러고는 JP에게 가서 비에 대한 감정을 떠보는데, 그 자리에서 비가 자기 스타일이 아님을 말한다. 비는 빈정이 상해 자리를 뜨고, 집으로 가서는 너브에 접속하고는 '플레이어'로 시작하는데...


'너브(Nerve)'에는 여러 뜻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용기 또는 대담성을 뜻하겠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주로 10대들의 비밀 사이트로, 운영자는 미션을 내리고 '플레이어'가 이를 수행하면 일정 정도의 돈을 주며 '왓쳐'는 미션 수행 동영상을 보고는 '좋아요'를 눌러주는 시스템이다. 미션은 단계가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대신 금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미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면 그동안 받았던 돈을 모조리 돌려주어야 하며, 끝까지 남은 최종 2인은 수많은 와쳐들이 모인 경기장에서 죽음의 대결을 벌인다. 그에게는 엄청난 인기와 함께 엄청난 돈이 수여될 것이다. 


영화 <너브>는 SNS를 기반으로 한 비밀 미션 수행 사이트 '너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0대들의 치기 어린 이야기를 담았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10대 대상 저예산 스릴러 영화로, 현실을 그대로 담으려고 하면서 문제제기를 한다. 현대판 글레디에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영화가 길지 않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너브에 접속하면서 사건이 급속도로 제기되며 재미지수 또한 그만큼 올라간다. '시간때우기' 용 이상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영화다. 


영화 속 미션이 주는 적당한 퀄리티와 긴장감


영화는 미션으로 거의 모든 걸 설명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즉 미션의 스토리인 것이다. 고로 미션의 퀄리티가 중요할 텐데 괜찮은 수준이다. ⓒBoXoo 엔터테인먼트


플레이어가 된 비에게 내려진 미션은 처음엔 주로 부끄럽고 민망한 것들이다. 두 눈 꼭 감고 그저 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단계가 올라갈수록 주어지는 미션은 그저 한다고 되는 게 아닌,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비는 1단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안과 함께 미션을 수행한다. 서로가 서로의 미션 수행 대상이 되기도 하고, 미션을 수행함에 있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서로를 향한 좋은 감정이 싹튼다. 비의 경우엔 소심한 자신의 성격에 대한 반발심이 크게 작용했을 거다. 


영화에서 플레이어가 미션 수행하는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아무래도 플레이어가 이 시스템의 한 가운데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보는 다양한 눈이 없다면, 그들도 존재하지 않을 테고 그들의 미션 수행도 재미 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의미도 없을 테고. 그들을 지켜보는 왓쳐들의 시선, 그들 스스로의 미션 수행 장면을 찍는 시선, 외부의 시선, 그리고 그들 모두를 몰래 통제하는 운영자의 시선까지. 이 영화를 '스릴러' 장르로 표현할 수 있는 이유가 다름 아닌 거기에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왓쳐가 되어서 플레이어의 미션 수행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도 들지만 플레이어가 되어서 직접 미션 수행을 하고 있는 느낌도 드는 것이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허접하지도 않은 수준의 퀄리티를 선보였다.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에, 좋다 안 좋다를 논할 수 없을 정도의 무(無)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기승전결'을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 속 미션 수행에 가져다 붙인 것이다. 한 우물을 판 전략이 유용했다고나 할까. 


플레이어인가, 왓쳐인가


직접 미션을 수행하고 인기를 얻고 돈을 받는 '플레이어', 플레이어가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열광하는 '왓쳐'. 무엇이 되고 싶은가? ⓒBoXoo 엔터테인먼트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아프리카 BJ의 자극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끌끌 차며 저게 뭐하는 거냐며 비난하지만 쉽게 나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들의 행동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좋아하고 환호할 만한 요소가 풍부한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고 보여주려 한 것이든,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 제안한 것이든, 서로가 좋아하고 원하는 시스템이니만큼 성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에 대중심리라는 소프트웨어와 SNS라는 하드웨어가 합쳐지니, 그 시너지 효과는 그동안 발전해 왔던 인터넷 문화가 한 정점에 다다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영화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이 어떤지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는다. 그게 나쁘냐 좋으냐 가타부타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의 행동을 보여줄 뿐이다. 선택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테니. 너브에 가입해서 플레이어가 되든 왓쳐가 되든, 너브에 가입하지 않고 지나가다가 가끔 혹해서 몰래 보곤 하는 외부인이 되든. 


나라면 무엇을 선택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너브를 가입할까? 가입하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도 받겠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에 들어와 설명할 도리 없는 욕구를 분출하는 환희를 맛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난 가입할 것 같다. 


플레이어인가, 왓쳐인가. 돈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그 세계에선 신만큼 위대해질 수 있는, 즉 수많은 사람들의 추종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플레이어이다. 물론 그만큼, 그 이상의 위험이 따를 것이다. 반면, 왓쳐는 그저 즐기면 된다. 원하는 것을 꺼리낌 없이 말하고 마음껏 비난하고 욕하고 환호하면 된다. 간편하지만, 그게 끝이다. 그걸 함으로써 돈도 벌 수 없고 인기도 얻을 수 없다. 난 열심히 왓쳐를 하다가 어느 때는 플레이어를 할 것 같다. 


'통제'가 필요한가? '자가해결'이 답인가?


10대들의 위험천만한 미션 수행을 보고 있노라면 계속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통제'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다행히도 영화는 '자가해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비록 미숙하더라도 좋은 모습이다. ⓒBoXoo 엔터테인먼트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다. 이 영화는 한 면만 부각한다. 그저 보여줄 뿐이지만, 그 자체가 자극적이고 대담하고 위험하다는 걸 누구나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TV, 유튜브, 페이스북 라이브까지 퍼져나가는 실시간 동영상 세계, 그 세계도 양면이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소통'의 부재, 이를 타파할 수 있는, 아니 이를 타파하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이 실시간 동영상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 어떤 이들보다 더 많이 소통하고 있으며, 그 하드웨어는 그 어떤 하드웨어보다도 더 쉽게 소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린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문제는, 그 '좋은 세상'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너브>에서 보여지는 '너브'의 세상이 그렇다. 그 세상에 속한 이들은 너무 즐거워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보호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한 곳으로 휩쓸리는 건 한순간이고 그 휩쓸림이 좋지 않은 쪽으로 가는 것도 한순간이며 최악의 결과를 내고서도 모르는 게 다반사다. 그들 서로를 지켜주는 보호장치는 아무 소용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칫 '통제'가 필요하다는 말로 귀결될 요지가 있다. 이 영화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던지는 메시지가 굉장히 크게 다가오는 게 바로 여기에 있는데, 외부의 '통제'가 아닌 순수한 '보호' 또는 '자가해결'이 답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방법까지 보여줄 역량은 못 되었지만,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이 속한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는 건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좋은 세상이 되든, 힘겨운 세상이 되든 말이다. 누군가가 재단하고 제시하고 통제한다면 그 순간 지옥이다. 영화는 플레이어가 될 것인지, 왓쳐가 될 것인지 물어보지만, 그 이면엔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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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포비아> 무법천지 인터넷 세상에서 사는 법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5. 4. 17. 09:03




[리뷰] <소셜포비아>



영화 <소셜포비아> 포스터 ⓒCGV 아트하우스




무장으로 탈영한 후 3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 이 사건이 보도되던 날 어김없이 인터넷은 들끓는다. 군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글과 댓글들, 그리고 그렇고 그런 악플들. 그 와중에 '레나'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가 폭언을 남긴다. 가차 없이 날아오는 폭언에 대한 폭언들. 사건은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레나의 폭언. 군인을 욕하는 걸 참을 수 없는 몇몇 남자 네티즌들은 급기야 한 데로 똘똘 뭉친다.  


레나의 신상을 털고, 레나와의 '현피'를 계획한다.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레나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현피 과정을 인터넷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던 터라, 모든 게 인터넷으로 적나라하게 퍼지고 외려 이들이 엄청난 지탄을 받는다. 이들은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레나의 타살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회손녀' 사건을 모티브로 하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유도의 왕기춘 선수에게 폭언을 일삼은 일명 '회손녀'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왕기춘 선수는 금메달이 유력했는데 아쉽게도 은메달에 그치자 어떤 네티즌이 그의 홈페이지에 폭언을 남겼고, 이를 본 다른 네티즌이 발끈해 설전이 벌어졌다. 이에 회손녀는 자신의 신상을 털어보라고 도발했고 결국 주민등록번호, 사진, 전화번호 등이 털려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회손녀는 이들을 '명예회손' 한다고 맞대응했다. 회손녀는 '명예회손'에서 나왔다. 


7년 전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시의성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당시보다 현재의 '신상 털이'와 '현피'가 훨씬 쉬워진 터라 오히려 시의성이 완벽하다 하겠다. 이 영화가 스릴러 드라마 장르이지만, 공포영화 못지 않은 공포를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인터넷을 하고 SNS를 하는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지 않고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와 닿는 무엇이 있다. 



영화 <소셜포비아>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책 서평이나 영화 리뷰를 주로 하면서, 출판계나 영화계 전체를 위해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이다. 그러다 보니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하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든 콘텐츠의 단점을 찾아내 들춰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그럴 때마다 이런 비판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한데, 언제 한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책을 가차 없이 비판한 서평을 올린 후, 책의 저자가 직접 글을 남기고 자신의 블로그로 서평을 퍼갔다. 그러자 저자의 지인들이 그 서평과 필자에 대한 욕 비슷한 걸 남기는 게 아닌가. 결국 필자는 그들을 향해 해명 비슷한 걸 남겼고, 저자의 중재로 마무리 되었다. 다행인 건 저자 분이 쿨하게 모든 비판들을 받아들이시고 중재를 해주셨다는 것. 그렇지 않고 반대로 행동했다면 그야말로 마녀사냥을 당할지 알 수 없었을 일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본다는 미명 하에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타진요' 사건이 생각나게 하는 '마녀사냥단'


영화로 돌아가서, 레나와의 현피를 계획하러 갔다가 시신만 보고 지탄의 대상이 된 이들은 자신들에게 쏠린 이목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레나의 타살을 확신하고 자체 수사를 시작한다. 레나의 본명인 민하영의 이름을 빌려, 카페 '민진사(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을 만들고 사람을 모아 여론도 조작하려 한다. 그리고 일전에 설전에서 레나에게 지고 인터넷 세상에서 완전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이 범인일 거라 확신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 기업체 CEO도 있었다. 


레나 '마녀사냥단'은 이제 레나의 죽음을 밝히고자 다른 이를 심판하려 한다. 그들은 여전히 '마녀사냥단'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악랄해진다. 자신들의 앞날이 걸려 있는 만큼. 마지막에 그들의 의혹이 쏠리는 이는 다름 아닌 그들 내부의 어떤 이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가 레나를 죽인 범인일까? 레나는 자살한 것일까, 타살된 것일까. 이 돌고 도는 마녀사냥의 끝은 언제 일까.


영화에 나오는 '민진사'를 보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건. 가수 타블로의 학력을 의심해 마녀사냥 그 이상 가는 집중포화를 날려 대며 타블로와 타블로 가족들을 나락을 떨어뜨린 희대의 사건이다. 당시에는 진짜라는 수많은 증거들과 재판에서의 승소도 소용이 없었다.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회손녀 사건과 함께 인터넷 그리고 SNS 시대가 줄 수 있는 최악의 기억들일 것이다. 



영화 <소셜포비아>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무법천지 인터넷 세상


더 큰 문제는 이런 대형 사건들 보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일 것이다. 그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고 인생이 바뀌고 자살까지 생각했을 것이 아닌가. 인터넷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옹호만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인터넷 세상은 무법천지이다. 


영화는 잘 나가는 청춘 배우들은 변요한과 이주승이 이끌어 가는데, 개인적으로 배우 이주승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곱상하고 아담한 체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서늘한 눈빛. 그는 껄렁하지만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양아치 아닌 건달 연기의 달인이다. 그의 연기를 보면 뒤가 없는 듯하다. 깊숙이 묻어 놓은, 절대 말할 수 없는 아픔 같은 것이 보인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그만큼 특징을 완벽히 살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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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5.04.17 09:36 신고

    현피가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ㅎ

    • BlogIcon singenv
      2015.04.19 15:42 신고

      현피는 인터넷 세상에서 벌어졌던 일이 실제로 번져 일어나는 걸 뜻해요~ 주로 좋지 않은 일이죠. 싸움이나 살인.

  • BlogIcon mindman
    2015.04.17 09:46 신고

    흐. 댓글을 쓰고싶을 때 쓰지말고 한 숨 돌리고 쓰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모니터나 모바일은 발광체라는 특성 때문에 우뇌를 바로 자극하거든요? 감성을 자극해서 바로 행동이 튀어나오지요.

    • BlogIcon singenv
      2015.04.19 15:43 신고

      아, 우뇌를. 그건 예술 쪽과 감성을 담당한다고 들었는데요. 조심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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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신작 수다-1311 첫째주

내맘대로 신작 수다 2013. 11. 9. 07:07




[신간 도서]




<병자호란 1, 2>-역사평설

2013년 10월, 각각 396쪽, 각각 15900원, 한명기 지음, 푸른역사 펴냄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에서 어김없이 역사 대작을 펴냈다. 저자 한명기 교수는 일전에 광해에 대한 영화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때, 10여년 전의 책인 <광해군>(역사비평사)이 재조명된 적이 있다. 주류에 편입하지 않는 독특한 해석이 특기인듯. 그러나 그 논리와 자료가 굉장히 탄탄하다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저자의 본래 특기인 동아시아사를 살려, 병자호란을 국제전쟁으로 재조명하는 책을 냈다. 

최소 3개국이 참여한 임진왜란의 경우, 국제전쟁이라는 인식이 재조명을 통해 널리 퍼져있다. 반면, 조선을 뒤흔든 2대 전쟁 중 하나인 병자호란의 경우는, 전혀 그런 인식이 퍼져 있지 않다. 사실 들어본 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는 것이다. 단순히 청나라와 조선의 싸움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에 저자는 병자호란을 현재로 환치해보아야 하며, 엄연히 국제전쟁적 성격이 띠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작금의 한국이 G2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명분과 실리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 병자호란 당시 명과 청 사이에서 저울질했던 것과 같다는 이치이다. 이런 식의 현실과 과거의 병치가 아니라면, 지금에 와서 병자호란을 꺼낼 이유가 하등 없을 것이다. 


어릴 때의 병자호란은 임경업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리고 학생 때는 인종의 삼배구고두로 남아 있다. 지금은?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광해군의 실리 외교와 인종의 명분 외교 사이에서 오는 진한 아쉬움까지. 이 책을 보게 된다면, 그 이후 남게될 이미지는 무엇일까?



[신작 영화]



요즘 컴퓨터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인터넷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SNS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에 와서는 컴퓨터=인터넷=SNS는 필수인 것 같다. 필자도 하루에 몇 번씩 확인하고 그러니까 말이다. 언제부턴가는 그렇게 확인하지 않으면, 하루라도 그러지 않으면 마치 나 혼자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디스커넥트된 느낌이랄까. 매일 같이 남들의 생활과 생각을 확인해야만 그들과 연결되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상태를 한 번 더 꼬아서 제목을 붙였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것이 사실은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일 게다. 왜냐? 온라인 연결에 신경쓸 사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서 멀어질 테니까. 온라인 연결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옆에 있는 사람에게서 더욱 더 멀어질 테니까. 


영화는 크게 3개의 스토리 라인이 있다.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다. 어린 친구들 두 명이 가짜 여성 아이디로 음악에 푹 빠져 있는 학교 친구와 페이스북 채팅을 하다가 일어난 사건. 그 가짜 여성 아이디 친구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음악에 푹 빠져 있는 친구와 그의 가족들과의 관계는?


여기에 온라인 불법 성매매를 하는 아이를 꾀어내어 자신의 커리어를 높이려는 방송국 여기자. 그 여기자는 아이를 꺼내오려고 하지만, 과연 아이는 좋아할까? 아이가 죽고 나서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한 부부. 부인은 실의를 참을 수 없어 온라인 채팅을 통해 우울증을 풀어내려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닥친 온라인 피싱 사건. 과연 그들의 앞 날은? 자세한 건 리뷰를 통해서. 


함께 읽어볼만한 "책으로 책하다" [내맘대로 신작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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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sns, 광해군, 디스커넥트, 병자호란, 온라인 불법 성매매, 온라인 채팅, 인종, 책으로 책하다, 청나라, 페이스북
  • BlogIcon 오렌지수박
    2013.11.10 16:02 신고

    디스커넥트..의미심장 하네요.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에 치중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바로 옆을 소홀하게 만드는 sns가 참 아쉬워요. 요즘 같은 시대에 잘 어울리는 영화같네요ㅎㅎ

    • BlogIcon singenv
      2013.11.11 12:19 신고

      네, 아주 작정하고 만든 영화인듯 해요~
      슬픈 현실의 자화상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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