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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적이고 완벽한 외연미와 현실적인 내연의 조화 <쉘부르의 우산> 2019.08.29
  • '계획' '계단' '계시' 세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기생충>(2) 2019.06.10
  •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로제타>(4) 2019.05.31

환상적이고 완벽한 외연미와 현실적인 내연의 조화 <쉘부르의 우산>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8. 29. 08:00



[모모 큐레이터'S PICK] <쉘부르의 우산>


영화 <쉘부르의 우산> 포스터. ⓒ에스와이코마드



프랑스 현지 개봉 55년 만에 <쉘부르의 우산>이 한국에 두 번째로 재개봉했다. 프랑스에서는 1964년, 한국에서는 1965년과 1992년 개봉했던 이 영화는, 누벨바그 대표 감독 중 하나인 자크 데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는 또 다른 누벨바그 대표 감독으로 유명한 아녜스 바르다와 부부로도 유명하다. 자크 데미는 1990년 세상을 등졌고, 아녜스 바르다는 불과 반 년 전 세상을 등졌다. 


영화는 제3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외국어 영화상, 제3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각본상, 주제가상,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진 못했다. 프랑스 뮤지컬 영화의 대표작으로서 노미네이트에 그친 게 의아하지만,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을 대표한 영화들이 그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과 <닥터 지바고>인 걸 확인하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쉘부르의 우산>은 제17회 칸영화제에서 대망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멜로 영화가 어떻게 칸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한편, 이번에 <쉘부르의 우산>이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면서 자크 데미의 다른 네 작품도 '특별전'으로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롤라> <로슈포르의 숙녀들> <당나귀 공주> <도심 속의 방>이 그것들인데, 하나같이 전설적인 작품들이다.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해서 전설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게 아닌, 오래 회자되고 계속 사랑받아 왔기에 전설적이라는 칭할 수 있는 것이리라. 


기와 주느비에브


영화는 제1부 이별, 제2부 고독, 제3부 재회로 이루어져 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도시 쉘부르, 우산가게를 하고 있는 에머리 부인의 하나밖에 없는 17살 딸 주느비에브는 주유소의 자동차 정비공 20살 기와 사랑에 빠져 있다. 그들은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에머리 부인은 어린 나이의 딸이 앞길이 창창하지만은 않은 기와 결혼하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어느 날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운동 여파로 기에게 징집명령이 떨어진다. 기의 입대 하루 전 그들은 뜨거운 밤을 보낸다. 


위험한 곳으로 발령이 난 듯한 기, 주느비에브는 기에게서 통 연락이 오지 않는 걸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녀의 뱃속엔 기와의 결실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에머리 부인은 형편이 어려워져 가지고 있던 보석을 팔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다.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젊은 보석상 카사르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에머리 부인은 카사르를 딸 주느비에브와 엮으려 한다. 연락도 없는 기를 기다리기 힘든 주느비에브는 결국 카사르에게 간다. 카사르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 책임지겠다고 한다.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제대한 기, 다리를 조금 저는 걸 보니 의과사제대인 듯하다. 그는 제대하자마자 주느비에브의 우산가게로 간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다. 주느비에브는 결혼했고 얼마 안 있어 에머리 부인은 우산가게를 닫았다는 소식을 들은 기는 망연자실하여 하릴 없이 거리를 떠돈다. 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주느비에브는 행복할까. 기와 주느비에브의 자식은?


혁신적 시도와 완벽한 미(美)


영화 <쉘부르의 우산>은 하찮은 줄거리조차 차별화 시키는 혁신적 시도와 완벽한 미(美)를 장착한 걸작이다. 이미 뮤지컬 영화계의 신화적 존재로 오랫동안 유명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영화이지만, 현대에 와서 <라라랜드>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로 더욱 유명하다. 색감, 음악, 노래 면에서 다시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엑스트라조차 거의 없는 한정적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열연이 빛을 발한다. 


주조단역 할 것 없이 모두, 모든 대사를 음악에 맞춰 노래 형식으로 내보낸다. 지극히 단편적인 대화조차 노래로 하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고로 대사가 때론 단편적일지 모르나 절대 평범하진 않은 것이다.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대사들로 꽉 짜여져 있다. 55여 년 전에 프랑스에서 시도한 혁신적 개념이다.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코 색감 즉, 영상이다. 색감이 영상을 절대적으로 대체하는 <쉘부르의 우산>은 의상과 벽지와 실내외 장식품과 거리 풍경까지 일체감을 선사한다. 빨강, 초록, 노랑, 파랑 등의 원색을 바탕으로 한 파스텔톤이 시종일관 영화를 장악한다. 당연히 보는 이의 시각도 장악한다. 감탄, 또 감탄하며 감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기는커녕 오히려 더 고급지고 세련되어 보이는 의상은 크리스찬 디올에서 맡았다고 하는데, 등장인물의 의상 색과 배경이 되는 각종 소품들의 색이 인위적으로 어우러지게 하는 건 감독의 솜씨인 듯하다. 색감으로만 보여지는 미장센의 향연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영화의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서라도 색감만 감상해도 충분하다. 


환상적인 외연과 현실적인 내연


영화의 환상적인 외연과 달리 별 것 없어 보이는 스토리의 내연은 현실적이다. 그러하기에 한 번쯤 들여다볼 필요는 있겠다. 우선, '남자' 주인공 기가 아닌 '여자' 주인공 주느비에브가 주(主)가 된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기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도 가졌지만, 기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걸 '선택'한다. 엄마 에머리 부인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는 한편 연락이 닿지 않는 기와의 불우한 현실이 존재하지만, 카사르가 다른 남자의 아이도 받아준다면 결혼하겠다고 한 본인의 정확한 선택이 작용했다. 


그런가 하면, 주느비에브의 현실적 판단과 선택과 더불어 기의 판단과 선택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다고 했던가. 그는 주느비에브와의 사랑을 잊기 위해 빠르게 다른 사랑을 찾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러곤 우연히 마주친 주느비에브와 별다른 느낌 없이 대화를 나누고는 주느비에브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기가 군대에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주느비에브의 가정 형편이 어렵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기가 다치지 않고 계속 연락이 닿았으면 어땠을까, 그들의 아이를 카사르가 받아주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사람의 힘으론 어찌 해볼 수 없는 운명의 길이라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더불어 그 길을 속절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영화의 외연이 환상적인 만큼 내연은 한 치의 환상도 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 아이러니야말로 이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린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을까. 색감과 음악과 노래만으로도 충분한 이 영화를 영원히 남게 해준 일등공신이 아닐까. <쉘부르의 우산>을 좋아하는 사람 수없이 많을 테고 이 영화를 수없이 본 이들도 많을 텐데, 이 참에 한 번 더 감상하며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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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누벨바그, 뮤지컬 영화, 색감, 쉘부르의 우산, 자크 데미, 현실, 황금종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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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계단' '계시' 세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기생충>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6. 10. 12:20

 

 

[모모 큐레이터'S PICK] <기생충>

 

영화 <기생충>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젊은 감독, 장편 연출 필모가 채 10편이 되지 않는 그는 봉준호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본인은 부끄러워 하지만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 내놓은 <플란다스의 개>부터 달랐다. 이후 3~4년을 주기로 내놓은 작품들, 이를 테면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까지 하나같이 평단과 대중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켰다. 어느 하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봉준호 하면 박찬욱, 김지운과 더불어 2000년대 한국영화 감독 트로이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박찬욱처럼 전 세계 영화제와 씨네필이 사랑한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김지운의 미장셴처럼 그만의 독창적인 영화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다. 대신 그는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함을 자랑한다. 굳이 '봉테일'이란 별명을 가져오지 않아도 그가 영화를 완벽하게 만든다는 걸 잘 안다.

 

사실 그는 저 둘뿐 아니라 한국영화 감독들을 통틀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감독 중 하나이다. 6편의 장편을 내놓으며 약 3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옥자>는 32만 명을 동원했는데, 넷플릭스 배급작이었거니와 당시 모든 멀티플렉스들이 상영을 반대했음에도 거둔 성과였다. <옥자>가 멀티플렉스에도 정상적으로 개봉했다면 73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을 거란 예측도 있다. 여기에, <기생충>이 1000만 명 이상 관객이 들 게 확실시되는 상황이니 만큼 흥행에서 비교불가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적절한 타이틀이 붙은 시기에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것이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베니스, 베를린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칸영화제의 명명백백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 이미 흥행에서 비교불가가 된 봉준호 감독에게 평단의 비교불가 딱지가 붙어버렸다. 일찍이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등이 세계 3대 영화제를 휘젓고 다녔지만 해당 영화제 최고 상을 탄 건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탄 게 유일하다.

 

계획 

 

키워드 1 '계획'.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식탁에 앉아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끝이 보이는 반지하 집에 사는 기택(송강호 분)네 네 식구, 어쩌다 보니 네 명 모두 백수로 지낸다. 돈이 없으니 핸드폰은 있는데 인터넷을 신청하지 못하니 윗집이나 근처 카페 와이파이를 빌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짠하다. 그들에게도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있으니 기택 아들 기우의 절친 민혁이다. 그는 기택네를 잘 챙겨주는 것 같은데 곧 유학을 떠난다며 기우에게 본인이 하던 부잣집 딸 과외를 부탁한다. 비록 기우는 대학을 다니지 않지만 네 번이나 수능을 본 경험으로 충분히 거짓말을 칠 수 있다.

 

<기생충>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몇몇 단어들을 자주 언급하는데 '계획'이 그중 하나다. 보아 하니 기택네 네 식구가 굶어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계획인 듯한대, 그 시작이 우연히 그리고 거짓으로 시작된 부잣집네 딸 과외인 것이다. 기우의 말마따나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 계획적 행위는 현실 탈출 아닌 현실 유지의 의지에 맞닿아 있다. 반'지상' 아닌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건 언감생심, 지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들이다.

 

영화 속 기택네 식구들의 계획이 잘 성공하길 바라면서도, 그런다고 무엇이 바뀔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들을 응원하고 동조하고 공감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아직은 영화가 불편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씁쓸하지만 자못 웃기기까지 하다. 한편, 영화 속 이들의 계획과는 달리 영화 밖 봉준호 감독의 계획은 시작부터 완벽해 보인다.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하면서도 다분히 판타지적인 <기생충> 속 세계는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직조된 직물과 같다. 기택네라는 씨실과 박사장네라는 날실의 교차가 너무나도 정교하다.

 

계단

 

키워드 2 '계단'.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잘 나가는 IT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 분)네 역시 네 식구다. 아내 연교(조여정 분)는 착하고 쿨하고 나이스한데 남편도 그러하다. 흔히 생각하는 상류층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박 사장은 '선'을 중요시한다. 층과 단과 급을 구분짓는 선을 넘나드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기택네는 그걸 이용해 계획을 짰고 성공한다. 과연 그들도 박 사장의 선을 잘 지킬 수 있을까? 똑똑한 그들이니 이성적으로 잘하겠지만 그만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선이 허물어지는 건 한순간이 아닐까.

 

<기생충>의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계단'이다. 기택네 계획이 계단으로 상징되는 계급·계층을 허물거나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앞서 언급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똑똑한 그들이니 만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았을 테다. 그러하기에 이 영화에서 계단은 감독이 다분히 일부러 만들어놓은 상징이다. 그 자체로 특별한 뜻이 있다기 보다 기택네와 박 사장네를 오가고 교차하고 비교하는 표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기택네는 계단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오르내리지만 결국 원래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봉준호 감독은 필모를 통해 일관적으로 사회 비판적 성격을 유지해왔다. 자연스레 대안 없는 자본주의 하에서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계급·계층을 형상화하여 드러내고자 했다. <설국열차>가 기차라는 수평적 구조의 소재를 가져와 아이러니하게도 촘촘히 나뉘어져 있는 계급·계층의 단면을 보여주려 했다면, <기생충>은 계단이라는 수직적 구조의 소재를 가져온 듯하다.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구조는, 그래서 더욱더 극명하게 대조되며 한편 절대 서로 맞닿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쯤 되면 불편하다.

 

계시

 

키워드 3 '계시'.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기택네와 박 사장네의 조우는 자못 훌륭해 보인다.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기택네는 기필코 선을 넘으려고 하진 않고 박 사장네는 선만 넘지 않으면 쿨하고 나이스하지 않나. 그냥 그렇게 제 자리를 지키며 살면 만사형통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지 않나. '지상'의 박 사장네와 반'지하' 또는 반'지상'의 기택네라면, '지하'에도 누군가가 존재해야 하지 않겠나. 수직적 구조가 완성되어야 한다면 말이다.

 

<기생충>을 이루는 세 개의 '계'가 있다면 '계획' '계단'과 함께 '계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선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한다는 뜻의 계시. 영화에서 '선'과 함께 박 사장네를 통해 자주 언급되는 '냄새'가 깨달음을 준다. 그건 영화 속 기택네에게도 영화 밖 우리네에게도 동일하게 통용될 수 있을 듯한대, 씁쓸과 불편을 넘어 불쾌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이다. 99%라고 일컬어지는 절대다수 소시민이 이 영화를 보고 깨닫게 되는 그것, '계급·계층은 냄새로 구분지어 진다'는 섬뜩하고 불쾌하지만 부정하기 힘든 명제.

 

기택네가 박 사장네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1차 현실적 깨달음, 박 사장네가 사회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2차 자조적 깨달음, 층과 단과 급을 구분짓는 선이 사실 본능적 냄새로 구분짓게 된다는 3차 명제적 깨달음. 물밑듯이 들이닥치는 개인 정신파괴적이지만 사회 체제파괴적이지는 않은 깨달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영화는 결코 부정적이기 짝이 없는 암흑세계가 아닌 다분히 지금 여기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명백한 디스토피아 영화이다. 지금 여기의 현실이야말로 최악의 디스토피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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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계단, 계시, 계층, 계획, 기생충, 냄새, 디스토피아, 범죄, 봉준호, 선, 자본주의, 현실, 황금종려상
  • BlogIcon 여강여호
    2019.06.10 15:12 신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너무 무겁지 않게 비판하는 게 봉준호만의 매력인 듯 합니다.
    이 영화만은 꼭 봐야지 했는데 여태 못 보고 있네요..ㅎㅎ..

    • BlogIcon singenv
      2019.06.10 16:02 신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안 볼 수가 없었어요~ 개봉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무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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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로제타>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5. 31. 12:20



[모모 큐레이터'S PICK] <로제타>

 

 

영화 <로제타> 포스터. ⓒ찬란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들 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 칸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이 수여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황금종려상'이다. 당연히 평생 한 번 타본 감독도 많지 않을 터, 그런 황금종려상을 두 번 이상 탄 감독들이 있다. 일명,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다. 이 상이 만들어진 건 1955년이지만, 그 전후로 일정 기간 '국제영화상 그랑프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때까지 합치면 총 8번이다.

 

그중 한 명이 벨기에 감독 '다르덴 형제(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1996년 <약속>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후 9편을 내놓을 동안 칸에서 6번 수상했다. 칸의 경쟁부문 주요 상이 '황금종려상'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 '심사위원상'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정도가 있는데, 다르덴 형제는 심사위원상을 제외한 모든 상을 탔다. 칸의 보기 드문 애(愛)다르덴심이다.

 

그중에서도 1999년 그들의 두 번째 장편영화 <로제타>는 특별하다. 칸에서 처음으로 수상한 게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연스레 그들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 영화가 벨기에 사회에 끼친 영향이 실질적으로 엄청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또 이뤄내고자 한 걸 정확히 행할 수 있었다.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로제타

 

로제타는 계속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영화 <로제타>의 한 장면. ⓒ찬란



공장에서 일하던 18세 로제타는 수습기간을 채우고는 쫓겨난다. 이럴 순 없다고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하소연하고 부탁하고 발악해보지만 해고 통보를 받은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나와야 한다. 앞날이 막막하다. 그녀는 알코올중독자 엄마와 함께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생활한다. 헌옷을 팔고 관리인 몰래 낚시를 해서 생계를 이어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렵다.

 

수습기간을 채웠을 뿐이라 실업급여도 받기 힘들다. 여기저기 아무 데나 들어가 일자리를 청해보지만 거절당하기 일쑤다. 와플과 맥주로 끼니를 때울 뿐이다. 와플 가게 사장에게 일자리를 얻어 와플 반죽 일을 시작한다. 가게에서 일하는 리케와도 친해져 친구가 된다. 무표정하기만 하던 로제타에 얼굴에 억지웃음일지 모를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녀는 일자리를 얻었고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반죽 일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로제타는 쫓겨난다. 사장이 본인의 못난 아들을 그 자리에 대신 앉힌 것이다. 로제타는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어떻게 3일 만에 쫓아내냐고, 아들놈보다 내가 훨씬 일을 잘한다고 하며 발악한다. 하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나가는 수밖에. 로제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핸드헬드, 클로즈업, 롱테이크 

 

영화는 핸드헬드, 클로즈업, 롱테이크 등으로 로제타의 내면을 표현한다. 영화 <로제타>의 한 장면. ⓒ찬란



영화 <로제타>는 1998년 당시 청년실업률이 50%에 육박했던 벨기에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 숙달된 기술과 지식을 갖추지 않은 사회초년생 청년들은 일자리를 잡기 힘들었고 힘들고 힘들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50%의 실업률은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극중 로제타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일자리가 생계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르덴 형제는 앞으로도 그들의 영화에 계속 쓸 영화적 기법으로 로제타의 내면을 충실히 들여다보았다. 로제타의 처절하지만 특별한 사건이랄만 한 게 없는 일상에 열중하게 만든다.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기법은, 로제타가 두 발로 디딘 현실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지럽기 짝이 없어 보기가 힘들지만, 그럴수록 로제타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녀의 내면은 이보다 더 어지럽겠구나.

 

클로즈업에 이은 롱테이크는, 그런 로제타의 무표정을 비춘다. 그녀는 생계도 유지하고 엄마도 챙겨야 하는 와중에 일자리를 얻으려는 몸부림을 친다. 그야말로 치가 떨릴 정도로 어지러운 현실인데, 표정은 딱히 없는 것이다. 모든 걸 초월한 듯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그녀의 속사정을 아는 만큼, 그녀의 무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이다.

 

대사를, 특히 로제타의 대사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와중에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건 비단 영화적 기법들 덕분은 아니다. 세상에 내놓은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국내개봉에 성공한 것처럼, 20년 전 당시의 벨기에 청년과 지금 한국 청년의 상황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공감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고 쉽게 좋아지지 않나 보다.

 

로제타 플랜 

 

영화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타는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자 벨기에 정부는 '로제타 플랜'을 가동한다. 영화 <로제타>의 한 장면. ⓒ찬란



영국의 켄 로치 감독과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주의 감독이라 할 수 있는 다르덴 형제. <로제타>는 그들의 초창기 작품인 만큼, 사회주의 성향에 기반해 상당히 투철하게 현실비판적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실이라면 다름 아닌 '자본주의'가 아닐까 싶다. 오로지 개인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로제타를 보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리인으로 '기업'을 내보인다. 로제타를 쫓아내는 사장들 말이다. 하지만 그건 기업을 이끄는 오너의 개인적 마인드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영화가 그들을 내보인 이유는, '정부'에게 그들을 컨트롤하라고 항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기업들이 이따구로 행동해서 청년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렇게 생활하고 있으니 너네가 나서라, 하고 말이다.

 

영화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에서 보란듯이 최고 상인 황금종려상을 타면서, 벨기에의 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진 마당에 정부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벨기에 정부는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시행하고 있던 청년실업대책을 더욱 강화해 2000년부터 '로제타 플랜'을 가동한다.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에겐 일자리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기업에게는 일정 이상의 청년 고용을 의무화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을 현실로 옮긴 가장 정통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다르덴 형제는 지금도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으로, 어쩌면 영화를 수단으로 생각하며 영화를 찍고 있을 것이다. 다 좋은데, '로제타 플랜'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언론에 오르내리며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씁쓸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로제타 플랜만으로는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 아닌 개인의 안위, 장기 아닌 단기만을 보고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건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마인드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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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다르덴 형제, 로제타, 롱테이크, 모모 큐레이터, 일자리, 청년, 클로즈업, 핸드헬드, 황금종려상
  • BlogIcon 여강여호
    2019.05.31 17:37 신고

    20세기 끝자락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요즘 우리 현실과 별반 차이가 없네요.

    • BlogIcon singenv
      2019.05.31 17:40 신고

      그러게나 말이에요ㅠ 그것이 지금에 와서 개봉한 이유일 텐데, 씁쓸합니다

  • BlogIcon 컴알모옷
    2019.06.01 10:00 신고

    깊은 생각을 한번 해보게 하는 영화네요. 구독했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9.06.01 10:04 신고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구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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