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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인간군상'에 해당되는 글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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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망에 사로잡혀 극단으로 치달은, 한통속 인간군상 <타이거 킹: 무법지대> 2020.05.10
  • 배우 김혜자의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영화 <마더> 2019.09.22
  • 수작에 가깝게 재조명되어야 마땅할 <라이터를 켜라>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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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드맨> 다양한 인간군상들, 그 안에서 현대인을 보다(4) 2015.03.13

욕망에 사로잡혀 극단으로 치달은, 한통속 인간군상 <타이거 킹: 무법지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5. 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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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타이거 킹: 무법지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 무법지대>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 3월 중하순,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시리즈 하나가 공개되었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에 역량을 쏟는 넷플릭스는 점차 다큐멘터리 명가가 되어가고 있는데, <타이거 킹: 무법지대>(이하, '타이거 킹')는 그중에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바, 동물에 관련된 다큐 또는 동물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다룬 다큐 정도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연출한 두 감독 중 한 명인 에릭 구드는 5년 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도 5년이나 걸릴 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나 끔찍할 줄도 몰랐고 말이다. 플로리다 남부에서 악명 높은 파충류 중개인을 조사하다가 시작되었다는 <타이거 킹>, 감독은 우연히 눈표범을 샀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이후 감독은 '미국에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 관한 다큐를 제작하고자 한다. 


그렇게 공간은 플로리다주에서 오클라마호마주로 옮겨지고, 세계 최대 규모 대형 고양잇과 공원이라는 '그레이터 윈우드 이그조틱 동물원'을 찾게 된다. 그곳의 주인, 조 이그조틱이 다큐의 주인공이다. 그로 말하자면, 청부 살인 혐의와 대형 고양잇과 살해와 판매 혐의로 2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미친놈에 동성애자에 총기를 소지했으며 마약에 중독된 광신도였다. 대형 고양잇과 200여 마리와 함께 생활했고, 3명의 남편과 결혼했으며, 대통령 선거와 주지자 선거에도 나간, 세상에 둘도 없는 아니 신화 속에서도 존재할 것 같은 인물이다.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으랴, 어찌 이 다큐를 보지 않을 수 있으랴.


빌런들이 판 치는 욕망의 소용돌이


최근 10년 넘게 전 세계 영화계를 '슈퍼히어로 영화'가 점령하다시피 하게 되면서, 악당을 뜻하는 '빌런'이 덩달아 중요성을 띄기 시작했다. 빌런은 극의 재미를 위해 슈퍼히어로만큼 강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이거 킹>은 주인공부터가 빌런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세상의 중심이 본인이고 온갖 희한한 짓은 다 하고 다니지만, 마냥 욕만 할 수 없는 매력 덩어리로 응원까지 하게 된다. 


다큐 초반을 장식하는 게 G.W.동물원과 이그조틱을 향한 직원들의 숭배에 가까운 충성심이다. 호랑이에게 손목을 뜯기는 중상을 입고도 입원 5일만에 복귀하는 이유가 언론에게서 동물원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직원을 비롯, 직원 대부분이 돈을 거의 받지 못하고 쉬는 날 없이 엄청난 중노동에 시달리거니와 상사에게 학대까지 당하면서도 충성을 다해 일을 한다. 


한편, 이그조틱의 롤모델로 지목되는 머틀비치 사파리의 닥 앤틀과 이그조틱이 청부 살인을 하려 했다는 동물구조대 빅 캣 레스큐의 캐롤 베스킨이 있다.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수많은 여자들과 함께 산다는 닥 앤틀이나 수백 억 자산가였던 남편의 실종 사망 처리 과정에 연류되었다는 말이 무성한 캐롤 베스킨이나 범상치 않은 빌런들이다. 


동물권을 둘러싸고 끝없이 대립하는 이그조틱, 앤틀과 베스킨이지만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숨길 수 없는 끼를 지닌 '관종'이라는 점과 사람을 부려 먹을 때 사이비종교가 연상되는 수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로 일치단결한다. 더군다나, 그들끼리 비방을 서슴지 않는 부분에 다름 아닌 '동물'이 있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그들이 동물을 착취해 돈을 벌고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이다. 빌런들이 판 치는 욕망의 소용돌이이다. 누구 하나 이긴 '사람'들 하나 없고 주인공이어야 할 '동물'들만 피해를 봤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할까


다큐 중반을 장식하는 건 이그조틱과 베스킨의 끝없는 상호 비방과 협박과 소송이다. 베스킨의 빅 캣 레스큐는 동물권을 앞세워 동물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이그조틱의 G.W.동물원은 빅 캣 레스큐야말로 동물을 착취하며 돈을 벌고 베스킨 본인은 남편을 죽여 토막내 호랑이에게 먹힌 파렴치한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돈이 훨씬 많고 이미지도 좋은 베스킨이 이그조틱에게 승리해 거금의 돈이 오가게 된다. 


하지만, 이그조틱으로선 그만한 돈을 줄 여력이 없다. 와중에 라스베이거스에서 구원자가 등장한다. 남는 건 돈밖에 없다는 대형 고양잇과 애호가이자 사업가 제프 로우이다. 언급한 세 명에 버금가는 또 다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본격적으로 G.W.동물원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와중에, 이그조틱은 관종끼를 최대한 발휘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당연히 떨어지지만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이미 이그조틱은 인터넷 방송과 TV 출연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명성, 즉 '악명'을 떨치고자 노력(?)해 왔는데 한술 더 뜬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일인이 떠오르는데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만, 단순한 어그로꾼은 아닌 듯하니 그들의 생각방식과 생활방식이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잘못을 저지르면 범의 심판을 받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 선 안에서 최대한의 비상식적 기행을 일삼으며 살아갈 것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또 그들을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한통속,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군상


다큐는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점입가경이다. 이그조틱은 자신이 만든 동물원에서 쫓겨나고, 제임스 개럿슨이라는 이그조틱의 조력자는 뜻밖의 FBI 스파이였으며, 로우가 G.W.동물원을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고, 이그조틱은 결국 온갖 협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어느 누구 하나 승리자가 없는 아수라, 끝에 웃는 자는 이그조틱일까 베스킨일까 앤틀일까 로우일까. 제5자일까.


<타이거 킹>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대형 고양잇과를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키운다. 일반인이라면 오금이 저려 눈을 쳐다 보지도 못할 최강의 육식동물들과 함께한다니, 범상치 않은 기이한 이들임에 분명하다. 그들 간의 아수라인 만큼, 우리네 일반 상식을 지니고 일반적 생각과 생활을 해 온 이들이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어떻게 봐도 그들 모두 한통속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우리를 엿보긴 힘들 테지만, '인간'을 엿보긴 어렵지 않다. 인간의 극단 말이다. 인간이 극단으로 치달으려면 끊임없이 들끓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게 바로 욕망밖에 없다. 이 다큐는, '그들은 왜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라는 의문 대신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거지?' 또는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거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한편 그 궁금증에 대한 일면의 답을 제시한다. 다양한 인간군상 대신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군상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다큐 시리즈가 큰 인기를 계속해서 끌고 있는 건, 비단 자극적인 면면들에서 기인한 재미와 흥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큐를 이끄는 '빌런' 급의 주요 인물들이 보여 주는 바가 막연히 희미하게 상상 정도만 해 보았지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싶은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극히 리얼이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다큐멘터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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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대형 고양잇과 동물원, 빌런, 소송, 욕망, 이그조틱, 인간군상, 타이거 킹: 무법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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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자의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영화 <마더>

오래된 리뷰 2019. 9.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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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봉준호의 <마더>(Mother)


영화 <마더>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정확히 10년이 되었다. <기생충>으로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선 봉준호 감독이 영화 <마더>를 내놓은 때가. 봉준호의 작품 중 최고의 흥행작은 <괴물>이고,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품은 <기생충>이며,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영화는 <살인의 추억>이지만, 진정한 대표작은 그의 유일무이한 청소년 관람불가 <마더>가 아닐까 싶다. 


청소년 관람불가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둡기 짝이 없기에 <마더>는 봉준호 작품 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옥자>를 제외하곤 가장 낮은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기도 했다. 평론가들에겐 유례 없을 극찬을 받았지만, 관객들에겐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호불호가 갈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300만 명이 넘는, 청소년 관람불가치곤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봉준호의 힘인가, 영화의 힘인가. 


봉준호의 영화, <마더>라는 영화는 자타공인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영화가 풍기는 분위기를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았을 테다. 그곳이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신경을 갉아먹는 듯, 긴장과 불안이 쌓이는 듯, 어두워지는 듯. 누군가는 흥미롭게, 누군가는 불편하게 대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불편한 만큼 흥미로웠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엄마는 아들의 누명을 벗길 수 있을까


아들 도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 혜자는 시골 읍내에서 약재를 판다. 도준이 스물여덟 살임에도 많이 어리바리하고 어리숙해서 그런가 싶다. 그날도 도롯가에서 친구 진태와 있다가 지나가는 차량에 부딪혀 쓰러졌는데, 진태가 도준을 꼬득여 득달같이 따라가 깽판을 친다. 다음 날 도준은 진태와 자주 가는 동네 술집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는 나와서 어느 여고생을 어슬렁어슬렁 쫓아간다. 그러다가 여고생의 반격에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온동네가 뒤집힌다. 도준이 쫓아갔던 여고생이 시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했고 정황상 도준을 용의자로 체포한다. 반 강요로 도준의 자백을 받아내고는 수사를 끝내버린다. 하지만 혜자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한없이 착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 도준이 살인을 저지를 리가 없다. 사실 온동네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도준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혜자는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형량을 최소한으로 해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직접 수사를 시작하는 혜자는 진태를 용의자로 본다. 하지만 덜미를 잡혀 돈까지 뜯기고는 오히려 그의 도움을 받아 수사를 계속 진행한다. 실마리가 될 만한 건 도준의 정확한 기억 그리고 살해당한 여고생 아정이 남긴 핸드폰 등이다. 과연 혜자는 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길 수 있을까? 


김혜자, 그리고 과잉과 모호


<마더>는 극중 혜자로 분한 배우 김혜자의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영화다. 물론 많은 주조연들이 너나없이 훌륭한 연기를 펼치지만 모두 혜자를 거쳐가고 받혀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한국 어머니 상'의 한 전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녀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처절하고 처연한 모습에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혜자의 과도함은 비단 혜자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있다. 과하면 넘친다고 했던가, 흘러 넘친 과잉은 극점으로 모였다가 흩어져 모호함을 남긴다. 영화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할 텐데, 과잉이 남긴 모호함과 함께 관객들을 속이는 한편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관객들과 함께 미스터리를 풀고자 하는 의지의 피력인 듯하다. 이는 누군가에겐 흥미로 다가갈 테고 누군가에겐 피로로 다가갈 테다. 


봉준호의 연출력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모호함조차 정확하고 섬세하게 직조해내어 많은 보기 중 하나를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 두세 가지 보기 중 하나를 생각해야 하게 한다. 하여 보다 더 어렵고 흥미롭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듯 의식하지 않게 되는 배경 미장센에도 한없는 정확성과 미세함을 부여했을 테다. 그렇기에 후반부의 극단적 반전이 충격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아이러니까지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전체적 분위기는 봉준호의 두 번째 연출작 <살인의 추억>과 맞닿아 있다. 마더(Mother)의 머더(Murder, 살인)의 추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골에서 일어난 살인, 누명을 쓴 듯한 용의자, 풀리지 않는 의문,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와 미장센 등. 10년이 지나 <기생충>까지 이어지는 '살인의 추억' 시리즈의 중간 다리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고 할까. 


인간 군상을 엿보다


영화가 함의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요목조목 집어볼 생각은 없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한 뒤 도출해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출하고 싶은 함의는 '인간'이다. 단순히 영화 속 캐릭터에만 머무르지 않는 인간 그 자체. 


캐릭터에 영혼을 불어넣어 불멸이 된 케이스가 참으로 많다. 역사에 오랫동안 남을 캐릭터들인데, 정작 영화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보이지 않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캐릭터가 우리 자신과 다름 없이 느껴지거나 주위에서 흔히 볼 이와 다름 없이 느껴진다면, 비록 그 캐릭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만 머무르지 않지만 오히려 영화도 함께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더>의 혜자가 그렇다. 주지했듯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어머니 상의 한 단면 그 자체다. 그런가 하면, 여타 주조연들도 특별하다기 보다 평범하기 그지없다. 최소한의 영화적 의미를 담기 위해 특이할 뿐이다. 아마 모든 인간들이 서로가 서로를 특이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 군상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엿보는 재미는 특별하다. 처음엔 공감이 일고 나중엔 감탄이 샘솟는다. 봉준호 감독이 해왔던 작업물들이 하나같이 그렇다. 평범함과 특이함이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그의 모든 영화들에서 만끽할 수 있다. <마더>는 그중에서도 출중하기 그지없는 결과물로서, 한국영화계에서도 한 시대의 정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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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김혜자, 누명, 마더, 모호, 봉준호, 살인, 인간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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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에 가깝게 재조명되어야 마땅할 <라이터를 켜라>

오래된 리뷰 2019. 6. 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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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라이터를 켜라>


영화 <라이터를 켜라> 포스터. ⓒ시네마 서비스



지금은 <시그널> <킹덤>의 작가로 이름 높은 김은희 작가의 남편으로 유명한 장항준 감독, 재작년 14년 만의 장편영화 <기억의 밤>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낸 바 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리바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1996년 <박봉곤 가출 사건> 각본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장항준 작가는, 2002년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 데뷔를 한다. 이후 드라마판으로 넘어가 나름의 성공을 거둔 그는 영화판에서는 감독이나 작가 아닌 특별출연과 까메오와 조단역으로 수없이 많은 영화에 얼굴을 비췄는데, 지금까지도 <라이터를 켜라>가 대표작으로 남아 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쏟아진 조폭 코미디 영화 중 하나인 이 영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와중에 작가와 감독이 의도한 것들이 곳곳에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라이터'로 상징될 그것은, 굉장히 날것이고 일면 저렴하며 너무 직설적이라 해석하거나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꺼려지기도 한다. 


300원짜리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300원짜리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돌진하는 허봉구.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동원예비군훈련이 있는 날, 서른 살 먹고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단돈 만 원도 없어서 몰래 훔치려다 혼나는 허봉구(김승우 분)는 점심 먹고 한가하게 낮잠을 자다가 쫓겨난다. 그리하여 오후 시간을 채우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 다시 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남은 돈은 300원뿐, 어쩌지 못하다가 전재산을 털어 라이터를 사고는 담배를 피울 뿐이다. 


우연히 예비군훈련장에서 만난 떠벌남이 태워줘 서울역으로 향한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우고는 나왔는데 라이터가 없는 게 아닌가. 다시 들어가봤더니 조폭으로 보이는 이가 라이터를 가지고 있다. 양철곤(차승원 분)은 부하 앞에서 쪽팔림을 무릎쓸 수 없어 그에게 라이터를 주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던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허봉구는 양철곤 부하에게서 기차표를 훔쳐 기차를 탄다. 


한편, 양철곤은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서는 한 칸을 점령해버리고 다른 칸에 있는 국회위원 박용갑(박영규 분)에게 가 돈을 요구한다. 검사였던 박용갑이 국회위원이 되게끔 안 보이는 곳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양철곤이었는데, 국회위원이 되고는 연락을 피하는 게 아닌가. 마지막으로 남은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허봉구는 300원짜리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수없이 얻어터져도 계속 돌진한다. 양철곤 일당이 질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 양철곤은 기차를 점령해버려 중간에 멈추지 않게 하곤 박용갑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다 죽자는 식으로 협박한다. 하지만 박용갑은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민주투사'적 기질로 절대 굴하지 않는다. 기차를 탄 수많은 승객들의 운명은? 허봉구와 양철곤과 박용갑의 운명은?


기차에서의 인간군상


기차에서의 인간군상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영화는 이름이 있는 세 명인 허봉구와 양철곤과 박용갑의 물고 물리는 관계와 더불어 이름이 없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의 캐릭터 이야기를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내보인다. 기본적으로 저 세 명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유명해진 배우들이 연기한 조단역의 인간군상들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은근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 '기차'라는 한정되어 있고 칸마다 구분이 되어 있는 공간을 훌륭하게 이용한다. 라이터로 대변되는 찌질한 백수 허봉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이용만 당하고 버림 받은 조폭 보스 양철곤의 쪽팔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폭 같은 거 때려 치우고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그의 발로는, 조폭과 엮이기 싫어하는 당연한 전략적 마음과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자존심으로 이어진다. 


결국 저 세 명이 원했던 건, 또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 알량한 자존심이다. 그 하찮은 자존심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국가를 뒤흔드는 사태에 직면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좌관 말마따나 크지 않은 돈이니 줘버리면 되는 것이고, 300원 짜리 라이터야 더 말 할 게 뭐 있겠으며, 또 그깟 300원 짜리 라이터를 받겠다고 죽음도 불사하리라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도 웃길 노릇이다. 


은근한 풍자와 비판


은근한 풍자와 비판이 재밌게 날카롭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그야말로 답답하기 짝이 없어 그만큼 웃기고 우리나라 남성들과 남성들이 구성하는 각 계층의 믿을 수 없을 만치 얄팍한 구성이 주는 황당함이 보면 볼수록 치욕으로 다가오는 와중에, 인간군상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어 몇 명 되지 않는 조폭의 폭압적이고 도구적인 압박에 대응하는 모습은 시원하다. 이 양가적으로 보여지는 모순적인 양상은 꽤나 이채롭고 인상적이다. 


영화 앞 부분에서 예비군훈련의 폐해를 신나게 비판하는 모습, 기차를 탄 후 인간군상들에서 유일하다시피 활약하는 여성 승객의 모습, 국회위원 한 명에 경찰청장까지 나서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는 모습 등은, 일면 클리셰로 비춰질 수 있지만 적어도 적재적소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비춰졌다. 즉, 쓸 데 없이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불필요한 장면이 없었다는 것이다. 


<라이터를 켜라>를 적어도 코미디 수작으로 생각해 단정지어 소개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분명 하찮을 수 있는 겉모양에 꽤나 체계적인 사회풍자적 요소들을 나름 적재적소에 배치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긴 하는데,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했던 시기가 시기였던 지라 지금에 와서 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감안한다는 전재 하에 수작에 가깝게 재조명될 순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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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라이터를 켜라, 비판, 인간군상, 장항준, 코미디,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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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를 치욕스럽게 비추는, 진실에 가까운 거울 <그때 그사람들>

오래된 리뷰 2019. 5.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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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그때 그사람들>


영화 <그때 그사람들> 포스터. ⓒMK픽처스



80년대부터 스탭으로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임상수 감독,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바람난 가족> <하녀> <돈의 맛> 등을 통해 풍자 가득한 한국형 블랙코미디의 한 장을 장식했다. 하지만 2016년부턴 영화계에서 잘 볼 수 없다. 


그중 4번째 작품 <그때 그사람들>은 큰 논란거리를 던진 한편, 임상수의 초기작 이후 마지막으로 잘 만든 작품이 아닌가 싶다. 성도덕 비틀기를 정치 역사 실화로 가져가 '높으신 분들'의 건드리는데, 모자랄 것 없이 훌륭히 해냈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총으로 쏴죽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박흥주 수행대령, 박선호 의전과장 등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픽션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또 그 지점이 이 영화의 재미요소이다. 


1979년 10월 26일


1979년 10월 26일 그때 그 사건.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한 장면. ⓒMK픽처스



박정희, 그가 군사쿠데타 이후 18년째 권력을 유지해오던 1979년 가을 부산과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의 '뜻밖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폭압적인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간단히' 진압해버린다. 시민들은 한껏 움크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게도' 박정희는 총에 맞는다.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 대통령 각하와 김 중앙정보부장과 차 경호실장과 양 비서실장이 자리를 함께 한다. 대통령 각하의 푸념에 양 실장은 비위를 맞추고 차 실장은 핏대를 세우며 김 부장은 조용히 있을 뿐이다. 이 자리의 주타겟은 김 부장, 이전보다 유화적인 정책을 쓰는 그를 향해 대통령 각하와 차 실장이 강하게 할 것을 밀어붙인다. 


안 그래도 헬기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 각하의 옆자리에 앉지 못하고 술자리에서도 차 실장이 2인자 노릇을 해대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쌓인 게 아니다. 이내 그는 민 대령과 주 과장을 불러 거사를 명령한다. 자신이 대통령 각하와 차 실장을 쏘는 즉시 각각 경호실장과 경호팀을 제거하라고 말이다. 계획은 큰 차질 없이 진행된다. 그러곤 김 부장과 민 대령은 마침 저녁을 먹고 있었던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차를 타고 '중정'이 아닌 '육본'으로 향한다. 김 부장은 왜 그랬을까. 


당대를 치욕스럽게 비추는 거울


당대를 치욕스럽게 비추는 거울.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한 장면. ⓒMK픽처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하루를 다룬다. 그 사건을 전후로 한 준비(?) 과정과 처리(?) 과정 말이다. 하지만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준비나 처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실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김 부장은 아무런 준비 없이 당일 당시에 부하들에게 거사를 명령하고 부하들은 아무 생각없이 따를 뿐이다.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못될 시 어떻게 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모양새이다. 


김재규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들,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 한몸 희생한 영웅적인 일이라든지 시민들에 의해 정당한 방법으로 쟁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렸다든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권력을 찬탈하려다 실패한 것뿐이라든지 말이다. 이 영화는 당대를 비추되, 하루의 한 장소에 집약해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을 조명함으로써 감독과 각본을 맡은 임상수만의 시선으로 보았다. 


임상수의 눈엔 그놈이 그놈이다. 민주주의를 '폭압적으로' 제압하자는 대통령 각하와 차 실장이나, 민주주의를 위해 '혁명'을 했다고 하지만 역시 '유화적으로' 제압해왔던 김 부장과 부하들이나, 이저저도 아닌 빈 껍데기 '술상무'일 뿐인 양 실장이나, 모두 그 자리에서 당대를 정확하게 그래서 치욕스럽게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보면, 여대생 품에 아기처럼 안겨 잠드는 대통령 각하나 경호실장이라는 작자가 총에 맞아 손가락이 날라가자 화장실로 숨지 않나 비서실장이라는 작자는 총에 맞지도 않았는데 상 아래로 기어들어가 숨질 않나. 김 부장은 준비도 하지 않고 거사를 치르곤, 처리하는 과정도 전혀 '프로'답지 못하다. 거사를 치르고 난 후부터 한순간도 빠짐없이 오판에 오판에 오판을 거듭하는 것이다. 답답할 노릇. 


진실에 가까운


영화는 진실에 가깝게 그때 그곳의 그사람들을 그린다.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한 장면. ⓒMK픽처스



결국, 그때 그사람들은 단 한 명도 '쓸모 있지' 않았다.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임상수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이보다 더 '비웃길 수 없을' 정도로 국가를 말 한 마디, 손짓과 턱짓 한 번에 좌지우지했던 그때 그사람들을 그리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과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도 생각할 정도이다. 


권력은 만들 수 있고 손에 쥘 수 있고 겉으로나마 따르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권위는 만들 수 있고 손에 쥘 수 있지만 따르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때 그사람들의 권력이란 무소불위였을지 모르지만, 권위는 없어진 지 오래였을지 않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권력이 무엇이고 권위가 무엇인지. 또 권력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권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영화는 사실, 그다지 재밌진 않다. 인간군상을 그려내고자 다양한 캐릭터들의 디테일한 부분이 소소한 웃음을 주지만, 대체적으로 사건의 앞뒤 과정이 지루하긴 하다. 특히 후반부에서 시선이 급격히 분산되면서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밀한 초점도 흐려지고 자연스레 재미도 반감된다. 의미도 있고 논란도 많아 생각할 거리도 다양하지만,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너무 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외국 영화들은 정치역사 실화를 가져와 다큐멘터리로도 영화로도 자못 훌륭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끝없는 대화라는 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인데, 우리나라에선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하는 것일 테다. 관심 없는 대중이 먼저인지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창작자가 먼저인지, 그럼에도 언제나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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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1026, 그때 그사람들, 김재규, 민주주의, 박정희, 블랙코미디, 인간군상, 혁명
  • BlogIcon 여강여호
    2019.05.22 13:19 신고

    한국 근현대사만큼 전세계적으로 내부 논란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 싶습니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가 왜 논란이 되는지...청산을 못하는 우리 문화 때문이지 싶기도 하고....박정희 관련 영화 리뷰를 보고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9.05.22 13:20 신고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도 말 하지도 못하는 게 참담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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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죽음 이후 우왕좌왕 좌충우둘 권력 쟁탈 블랙 코미디 <스탈린이 죽었다!>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5.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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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스탈린이 죽었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 포스터. ⓒM&M 인터내셔널



1953년 소련 모스크바, 라디오 모스크바에서 모짜르트를 연주하고 있다. 와중에 총서기장 스탈린이 전화를 해서는 17분 뒤에 본인한테 전화를 하라고 한다. 정확히 17분 뒤에 끝나서 청중이 흩어진 모짜르트 연주를 녹음해 대령하라는 명령이었다. '죽기 싫은' 감독은 명령을 실행에 옮긴다. 한편 그 시각 스탈린은 핵심 측근 4인방과 함께 다차(시골 별장)에 머물러 있다. 


총서기장과 함께 술을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낸 4인방은 집으로 향하고 스탈린은 모짜르트 연주 녹음집을 감상하다가 함께 딸려온 피아니스트의 쪽지를 읽고는 쓰러진다. 다음 날 아침, 식사 담당에 의해 발견되어선 핵심 4인방과 주요 장관에게 알려진다. 가장 먼저 달려온 NYPD(내부인민위원회) 장관 라브렌티 베리야는 일급기밀로 보이는 문건을 빼돌린 후 다음 사람을 기다린다. 


이어 달려온 이는 부서기장 게오르기 말렌코프로, 어리바리한 듯 2인자이지만 베리야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다음 단계로 의사를 부르길 원하지만 베리야는 원하지 않는다. 파자마 차림으로 나타난 모스크바 제1서기 니키타 흐루쵸프는 베리야의 정적인 듯, 강력하게 의사를 부를 것을 주장한다. 설전이 오가는 사이 노동부, 통상부, 국방부 장관들이 등장한다. 한편 스탈린의 핵심 측근 4인방 중 외무부 장관 몰로토프는 오지 않았다. 의사를 부르기로 한 그들, 하지만 유능한 의사들은 스탈린을 독살하고자 한 혐의로 모조리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 상태였다. 


곧바로 후계를 위한 치열한 암투에 들어간 그들, 흐루쵸프는 노동부 장관과 함께 하고 베리야는 게오르기와 함께 한다. 그들은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의 눈에 들기 위해 혈안인 와중에, 게오르기를 바지사장 격의 1인자로 추대하고 2인자를 베리야로 올린다. 흐루쵸프는 스탈린 장례위원장으로 권력놀음에서 배제된 느낌이다. 베리야는 군대를 대신하여 자신의 NYPD를 배치시키고 흐루쵸프는 새 보안령을 내리고는 소련군 사령관 주코프와 작당해 맞불을 놓는다. 스탈린의 죽음 이후 이 '개판'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


스탈린 죽음 이후 권력 쟁탈기


스탈린 죽음 이후 권력 쟁탈기를 그렸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의 한 장면. ⓒM&M 인터내셔널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련의 모든 권력이 응집된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죽음 이후 핵심 측근들이 벌이는 우왕좌왕 좌충우돌 권력 쟁탈기를 블랙 코미디로 그렸다. 스탈린의 손발이 되어 충실히 독재를 완성시킨 핵심 측근들의 행동은 정말 가관이다. 주지했다시피 실화와 실존 인물을 그대로 가져다놨기에 오히려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극장 상영 금지를 당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러시아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당시를 코믹이하게 그린 것에 누군가의 반감을 살 수 있는 건 이해가 간다. 그만큼 이 영화가 스탈린의 죽음 당시를 강력하게 희화화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이 박정희의 죽음 당시를 블랙 코미디로 그렸듯이 말이다. 


살아생전은 물론 죽어 없어진 지 오래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독재자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그 무지막지한 억압의 분출이 어떤 식으로든 이뤄져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비록 그 분출이 또 다른 억압을 낳는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식의 방법은 당시를 보다 가감없이 들여다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영화를 즐기는 두 가지 방법


실화와 실존 인물을 알고 보든, 모르고 보든 각각의 재미가 있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의 한 장면. ⓒM&M 인터내셔널



영화는 스탈린을 제외한 스탈린의 핵심 측근 4인방, 장관 3인방, 자식 2인방, 군사령반 1인방이 사실상 모두 주연이다. 이보다 더 인간군상을 잘 드러내 보여줄 수도 없을 것이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자가 없고 서로 물리고 물리지 않는 자가 없기에, 반드시 누군가 죽어야 끝이 난다. 비록 스탈린 생전 당시 2인자인 게오르기가 엄연히 1인자를 물려받았지만, 사실상 흐루초프와 베리야 간 죽음의 대결이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영화를 보는 또는 즐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스탈린의 죽음과 이후 실존 인물들의 권력 쟁탈 실화를 어느 정도는 알고 나서 보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름과 직책과 스탈린 생전, 사후의 행동양식을 간략히나마 일별하고 나서 보면 블랙 코미디적 요소에 집중할 수 있다. 즉, 영화적으로 재밌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실화와 실존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보는 것이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영화를 '즐길 수' 있을 텐데, 실화와 실존 인물이야 어쨌든 저쟀든 그저 영화를 이끄는 사건과 등장 인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편견 없이 다양한 인간 군상 하나하나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겠다. 앞엣것의 '영화적'이 블랙 코미디적 말장난과 웃픈 행동거지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면, 이번 것의 '영화적'은 수많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서 각자 모두 다른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이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 하겠다. 


블랙 코미디의 정석


블랙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준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의 한 장면. ⓒM&M 인터내셔널



영화의 배경은 분명 소련이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은 대부분 영국과 미국 출신이다. 감독 아만도 이아누치는 스코틀랜드인이고, 흐루초프로 분한 스티브 부세미는 미국인이며, 베리야로 분한 사이몬 러셀 빌은 영국인이다. 극 중 스탈린의 죽음에 결정적 역할을 한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니아미노프나 유디나로 분한 올가 쿠릴렌코만이 우크라이나인으로 주연 중 유일한 소련 출신이라고 한다. 


그러 하니 자연스레 영어를 쓰는데, 그 자체로 코미디가 아니고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주요 역사 인물을 동양의 다른 나라 누군가가 다른 나라 언어로 연기한다고 생각해보면 아주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그 어느 것에도 예속되지 않고 또한 굴하지 않고 유연하고 활기차게 이끄는 코미디의 정석이란 것이 이런 게 아닐까. 


그렇지만, 영화는 결코 웃기기만 하진 않는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만 생각하면서 봤다간 종종 끔찍하게 진지한 정치 드라마 못지 않은 장면을 목격하면서 치를 떨지도 모른다. 우리 주인공들은 스탈린 살아생전 그를 도와 당시 1억 7천만 소련 국민들을 공포에 벌벌 떨게 한 장본인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되겠다. 하나 같이 어리바리하고 한심하고 웃기기까지 해도 말이다. 그들 모두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턱짓과 손짓, 말 한 마디와 펜 한 자루로 죽였다. 스탈린은 고유명사였지만, 소련이라는 시스템에서는 하나의 명사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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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 베리야, 블랙 코미디, 소련, 스탈린, 스탈린이 죽었다!, 실존 인물, 실화, 인간군상, 흐루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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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경탄스러운 글로 여러 세계와 삶을 경험하다 <남한산성>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7. 12.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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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


소설 <남한산성> 표지 ⓒ학고재



김훈 작가의 글은 우직하다. 밍기적 거리지 않고 직진한다. 그러면서도 주위를 살필 줄 아는데, 어느 글보다도 수려하게 대상을 그려낸다. 공수(攻守) 양면을 다 갖춘 작가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그의 글은 따라하고 싶고 그의 숙고를 닮고 싶고 무엇보다 그의 글을 읽고 싶다. 그의 글을 읽기 전의 설렘은 글의 끝까지 함께 하고, 그의 글을 마치면서 찾아오는 여운은 아주 오래간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김훈을 <칼의 노래>로 시작했다. 20살 남짓의 어린 나이였으니 단번에 읽어내리지 못하고 자꾸만 서게 되는 그 소설을 완독하는 데 시간이 무척 오래걸렸을 건 자명한 일이다. 몇 번의 도전 끝에 2년여 만에 완독해냈던 게 기억난다. 한마디로 가늠해내기 힘든 소설이고 소설가이다. 


<칼의 노래> 이후 그의 장편은 <현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공터에서> 등으로 이어졌다. 이 일련의 리스트를 보면, 글로 표현되어 역사에 남지 않은 말을 상상해 쓰지 않았음에도 그 안에서 우린 '말'과 함께 '울음'을 느낄 수 있다. 그 행간에 드러내는 김훈의 능력은 탁월하다 못해 경탄스럽다. 


개인적으로도, 아마도 김훈을 읽은 많은 사람들도 <남한산성>을 최고로 치지 않을까 싶다. '김훈 스타일'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특징들이 모두 극대화되어 있다. 특히 '한달음에 읽어내리지 못하는' 김훈 작가 글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그건 문체 때문일 수도, 극중 사건과 인물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생각지 못하게 빨리 읽어내려갈 수 있는 건 정말 '잘' 쓰인 글 덕분일 것이다. 


병자호란, 주전파와 주화파


1636년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용골대를 조선에 사신으로 보내지만 조선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홍타이지는 용골대를 앞세워 조선을 침공한다. 인조와 세자는 남한산성으로, 빈궁과 왕자들은 강화도로 피란간다. 병자호란이다. 


한겨울의 매서운 날씨, 터무니 없이 적고 오합지졸인 병력, 한계를 보이는 식량과 사기, 현실을 보지 못하고 말뿐인 주전파의 득세,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리는 임금과 영의정. 1636년 남한산성은 총체적 난국 그 자체이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임금이라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상헌을 위시한 주전파에겐 사는 게 곧 죽는 것이다.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건 어버이 나라 명을 배반하는,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결사항전 후 장렬히 죽어야 한다. 사는 건 한순간이지만 치욕은 영원하다.


최명길을 위시한 주화파에겐 사는 건 사는 것이고 죽는 건 죽는 것이다. 자존심이고 의리고 뭐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살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무엇도 끼어들 여지는 없다. 치욕은 한순간이지만 사는 건 영원하다. 


인간의 위대한 단상, 그리고 입체적 인물


주전파와 주화파의 계보와 변화, 그들을 향한 시선들은 매우 복잡하다. 특히 조선 말이 되어서는 주전파는 폐쇠적이지만 나라의 존망을 끝까지 걱정하고 저항했지만, 주화파는 외국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개화파에서 친일파로까지 나아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누구의 생각과 행동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보다 백성을 위한 선택으로 치열하게 나아갈 뿐이다. 


그들 모두가 나라의 앞날을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했기에 옳고 그름의 철학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아니, 그런 철학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었다. 서로 완전히 다른 철학의 수장격이었던 김상헌과 최명길을 그래서 서로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위했다. 우린 그 모습에서 인간의 위대한 단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소설에선 역사상의 중요한 인물은 아닐지라도 의미있게, 또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인물들이 있다. 관노 출신으로 청나라에 끌려가 청조 통역으로 위세를 떨친 정명수라는 인물과 남한산성 안에서 기거하는 대장장이 서날쇠가 그들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기 전까지 하염없이 오로지 부정적인 면모만 생각했던 인조라는 인물을 조금은 새롭게 보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 그는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빼앗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나라를 전란의 참화 속에 내던지게 한 것도 모자라 치욕스러운 항복을 하였고 이후에는 아들을 독살시켜 나라 부흥의 싹을 지워버렸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소설 속 남한산성에서의 그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가엾고 힘없는 인간이었다. 


여러 세계와 삶을 경험하다


정명수는 본래 조선 사람으로, 조선 입장에선 그야말로 나라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적군의 길잡이이자 위세 좋은 앞잡이이다. 하지만 그의 출신은 관노, 그에게 과연 조선이란 나라는 무엇이었나. 그가 충성을 다해야 하는 나라인가? 그에게 어떤 극렬한 적의를 느낄 수 없었다. 주화파와 먼 친척뻘이라 할 수도 있는 그의 면면이 흥미롭다. 


서날쇠는 김상헌의 부탁으로 여러 중요한 임무를 말끔히 수행한다. 그가 보이는 특유의 행동력은 남한산성 내 그 어떤 사람도 따라할 수 없는 그것이었다. 임금을 포함해 나라를 떠받드는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마찬가지로 조선이란 나라는 충성의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살기 위해, 김상헌이라는 사람을 위해 모진 임무를 떠맡았다고 본다. 자신도 모르게 주전파의 임무를 행하는 그가 흥미롭다. 


<남한산성>은 흥미로운 인간군상들의 집합체를 보여준다. 각자 다른 이유로 나라를 위하고 자신을 위하며 나아가는 모습들은 의도치 않게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이들 중 누구의 역할을 하였을까. 아무래도 이름없는 지나가는 백성 중 한 명이었을 테지만, 정명수가 되기에는 배포가 작고 서날쇠가 되기에는 중심이 부족하며 김상헌이나 최명길이 되기에는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인조...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장면을 전하게 될 그때 그곳, 그 이면에는 철학을 위시한 수많은 말들의 부딪힘과 삶, 죽음을 넘나드는 무시무시한 육체적 부딪힘이 있었다. 이 소설은 그 이면들에 관한 것이다. 그 이면들은 실제적인 것들과 관념적인 것들이 뒤섞여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고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전쟁, 우린 이 소설로 여러 세계와 여러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남한산성 - 10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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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의 폭력과 피지배자의 폭력은 같지 않다 <필론의 돼지>

지나간 책 다시읽기/한국 대표 소설 읽기 2016. 6.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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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필론의 돼지>


<필론의 돼지> 표지 ⓒ아시아



"필론이 한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 안은 곧 수라장이 됐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 필론은 현자인 자기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내는 것 뿐이었다." (본문 58~59쪽 중에서)


많은 사람의 정곡을 찌를 우화이다. 굳이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가게 마련이다. 관성의 법칙도 있지 않은가? 세상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조급하게 나서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니, 현자가 보기에는 딱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필론이 현자가 아닌 거다. 


필론과 돼지의 우화로 사회를 바라보다


이문열의 <필론의 돼지>는 필론과 돼지의 우화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라보았다. 이 소설도 그의 스타일에 맞게, 어떤 특수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곳에 여러 인간 군상을 배치시켰다. 곧 사회의 축소판이다. <필론의 돼지>의 특수한 상황은 이렇다. 1980년대 대학을 졸업한, 우쭐댈 만한 학력을 가진 주인공이 군대를 제대하고 군용열차에 올랐다. 그곳에서 멍청하기 짝이 없었던 훈련소 동기 '홍'을 만나고, 얼마쯤 지나 술 취한 '검은 각반 두른 현역' 즉, 특전사 현역이 난장을 피우며 돈을 빼앗는 장면을 목격한다. 백 명에 육박하는 육군 예비역들은 다섯에 불과한 특전사들에게 꼼짝도 못하거니와, 그 또한 아무것도 못하고 똑같이 돈을 빼앗길 뿐이다. 


그에게 특전사보다 앞 선 문제는 다름 아닌 홍이다. 본명이 홍덕동인 홍은 워낙 멍청했기에 '홍 똥덩이'라고 불렸는데, 그런 홍이 자꾸 자신과 맞먹으려 하는 게 아닌가. 그가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홍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홍은 분노는 커녕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반면 그는 이 상황에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홍처럼 행동하고 만다. 


그런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나보다 못한 사람과 섞이기 싫어할 때가, 그런데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그나 나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걸 알게 될 때가, 그렇게 분노와 좌절과 자기혐오를 느낄 때가 말이다. 내가 그 반대로 못한 사람일 때는 움츠려들고 아무것도 못하곤 하는데, 하필 내가 잘난 사람인 것 같을 때는 그렇게 되곤 한다. <필론의 돼지>에서 그는 현자 필론이고, 홍은 돼지일 거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은 '말짱 황'이다. 


정작 중요한 건 '폭력'의 정당성 여부


술취한 특전사 현역 다섯 명이 육군 예비역 100여 명이 몸을 실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하는 객실로 난입해, 되지도 않는 노래를 부르며 돈을 갈취한다. 대부분의 예비역들은 3년 간 '당했던' 뼛속 깊은 무력감으로 순순히 돈을 준다. 종종 저항의 불꽃이 일지만 더 이상 번지지 못하고 사그라든다. 그 또한 분노로 치를 떨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익명의 목소리가 들린다. 100명이 다섯 명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말한다. 다같이 달려들면 당연히 이길 거라고 말한다. 이 선동에 맞춰 수많은 발길질이 특전사 현역 다섯이 아닌 한 명씩으로 향한다. 아무리 단련된 그들이라고 당해낼 도리가 없다. 무참히 쓰러져 얼마 전까지 그들이 행했던 바를 그들이 당한다. 소수 권력의 무참한 말로다. 


이 지점이 논란 거리가 될 수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지식인이 행동하지 않을 때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걸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바는 '폭력'의 정당성 여부에 있다. 작가는 주인공의 생각을 빌어 폭력의 악순환을 비판하고자 한 것 같다. 


"만약 이들을 진실로 죽여야 할 대의가 있다면, 그에게도 동료 제대병들과 함께 살인죄를 나눌 양심과 용기는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눈먼 증오와 격양된 감정이 있을 뿐, 대의는 없었다."(본문 68쪽 중에서)


지배자의 폭력과 피지배자의 폭력은 같지 않다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런 것일까. 주인공의 눈에는 지배자의 폭력과 피지배자의 폭력이 같아 보이는가. 작가도 그렇다. 주인공이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곳에 대의가 없다는 핑계를 댔다고 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주인공에게서 그런 생각이 나오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하나의 우화로 작동하는 것이겠지만, 폭력에 대한 생각은 우화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일제 시대 친일 부역자들을 모조리 잡아 그에 맞는 벌을 받게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야, 하면서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많이 오버된 것 같지만, 충분히 같은 맥락이다. 


물론 크게 보면 특전사 현역이나 육군 예비역이나 국가와 시대가 낳은 피해자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생각이 일언반구 들지 않게 한다. 단지 폭력에 당한 만큼 폭력으로 갚는다는 것이 대의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을 뿐이다. 현상만 볼 뿐 본질은 보지 '않은' 것 같다. 본질을 보았으면, 한 발 더 나아가 폭력과 폭력이 만나게 된 그 상위층의 폭력에 대해 생각했어야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못지 않은 탁월한 알레고리 형식으로 1980년대 우리 사회를 들여다본 이 소설은, 그러나 이처럼 잘못된, 좋게 말해 논란 거리가 되는 바를 남겼다. 그럼에도 하나는 확실하다. '필론의 돼지'는 1980년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보든 '그들'은 분명 혐오스러운 존재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까지 '그들'일까. '우리'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때도 여전히 혐오스러운 존재일까. 문제는 그 혐오스러운 존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많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 혐오스러운 존재들을 환영하고 그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필론의 돼지가 스스로가 아닌 그들이 만들어낸 거라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심히 걱정된다. 


아시아 출판사가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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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열차, 사회, 예비역, 이문열, 인간군상, 지배자, 특전사, 폭력, 피지배자, 필론의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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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15 13:50

    알찬 정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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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다양한 인간군상들, 그 안에서 현대인을 보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5. 3.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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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버드맨>



영화 <버드맨> 포스터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1980년대 가장 핫한 흥행 대작인 <배트맨>(1989년)으로 주가를 올린 배우 '마이클 키튼'. 그는 1992년 <배트맨 2>에도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에도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배우 생활을 이어갔지만, 사람들 머리에 각인된 어마어마한 영화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명배우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모자라고 그렇다고 조연급 배우는 아닌, 어정쩡한 배우로 20년 세월을 살아왔다. 


영화 <버드맨>은 그런 그의 영화배우 인생사를 거의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배트맨> 하면 전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한데, 영화에서도 <버드맨>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사했던 영화이다. 그리고 그 <버드맨>은 1992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는데, 마이클 키튼이 실제로 1992년 <배트맨 2>로 하늘을 날 정도의 인기를 구사하고 그 인기로만 20년 넘게 버텨온 시간과 같다. 


한물 간 슈퍼 히어로 전문 배우의 눈물겨운 재기


1992년을 마지막으로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은 슈퍼 히어로물에 더 이상 출연하지 못했고, 그 이후 그는 곧 '버드맨'이었으며, 그는 혼란스러운 배우 생활을 이어 왔던 것이다. 그는 지금 영화판이 아닌 연극판으로 적을 옮겨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한 번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최고의 단편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이다. 연극은 아내의 배신에 좌절한 남자의 자살을 다룬다. 주연 뿐만 아니라 연출도 겸하여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영화 <버드맨>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그는 어떻게든 재기에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연출을 하며 총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무명 여배우 레슬리(나오미 왓츠 분)는 언제까지 무명 배우로 허우적거려야 하는지 항상 불안에 떤다. 톰슨은 그녀를 다독여야 한다. 리허설 도중 사고로 배우 하나가 하차하자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인기가 자자한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한 강한 자존감을 지니고 있어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연출자인 톰슨에게 연기 수업까지 시키곤 한다. 톰슨은 그를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겐 딸 샘(엠마 스톤 분)이 있는데 그녀는 그의 재기 도전에 냉소적이다. 또 이혼한 전 부인이 괴롭히고, 제작자는 매일 찾아와서 딴지를 건다. 그 뿐이랴? 그녀의 한 문장에 연극의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평론가가 대놓고 악평을 예고하기도 한다. 한물 간 슈퍼 히어로 전문 배우의 재기가 정말 쉽지 않다. 


실제 모습과 거의 똑같은 배우들, 연기가 살아있는 이유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주인공인 리건 톰슨 역의 마이클 키튼이 실제와 영화에서 거의 똑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했는데, 극 중에서 무명 여배우 레슬리 역의 나오미 왓츠와 마이크 역의 에드워드 노튼 또한 이와 비슷하다. 



영화 <버드맨>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실제로 나오미 왓츠는 30년 전인 1986년에 데뷔했지만 이후 15년 동안 무명 배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빛을 보기 시작해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사랑 받는 할리우드 대표 여배우가 되었다. <버드맨>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가 살아있는 이유다. 


에드워드 노튼은 조금 다른 경우인데, 그는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함께 일하기 굉장히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일명 '스타병'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로, 그의 연기에 대한 지나친 헌신과 열정 때문이라고 한다. 예일대 역사학과 출신의 이 범상치 않은 배우는 재능과 열정과 헌신과 준비에 한해서 동시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버드맨>에서의 마이크는 곧 에드워드 노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롱테이크의 맛을 알면 영화 보는 재미가 높아진다


영화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롱테이크'이다. 롱테이크 카메라 기법은 말 그대로 한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기법으로, 명감독들이 사용하곤 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다. 롱테이크 하면 생각나는 감독이 알폰소 쿠아론인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나 <그래비티>의 롱테이크를 보면 그 진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버드맨>은 <그래비티>의 촬영 감독이었던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촬영을 맡아 전작을 능가하는 롱테이크를 선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아카데미에서 촬영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시공간이 바뀌는 기막힌 롱테이크를 감상하는 것으로도 <버드맨>은 그 가치가 충분할 정도이다. 롱테이크의 맛을 알면 영화 보는 재미가 한껏 높아질 것이다. 


이렇듯 영화 <버드맨>은 연기와 촬영에서 100점 만점에 의의가 없을 줄 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는 어떨까? 단순히 추락했던 한 남자의 비상을 다룬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추락한 한 남자의 비상, 브로드웨이의 진짜 모습, 나아가 인간의 기이하고 진실된 모습까지. 



영화 <버드맨>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어느 것이 진짜 인간의 모습인지 중요하지 않다


최고와 최악, 비상과 추락, 사랑과 증오의 극과 극은 언제나 인간과 함께 한다. 영화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이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것이 진짜 인간의 모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모든 걸 지니고 있어야 비로소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방면에서 생각해볼 때 영화 안에서 리건 톰슨이 연극으로 옮긴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는 이 소설가는 미국인 나아가 현대인을 가장 예리하고 정확하고 깊숙이 들여다봤다. <버드맨> 안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을 연극으로 옮겼지만, 사실 감독은 영화 <버드맨> 자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게 아닐까?


이 영화 또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방식은 다르지만 현대인을 예리하고 정확하고 깊숙이 들여다본 느낌이 든다. 우리는 톰슨처럼 추락을 했다가 비상을 꿈꾸고, 레슬리처럼 불안에 떨며, 마이크처럼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자존감도 지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샘처럼 냉소적이기도 하고, 제작자처럼 돈 문제에 천착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다. '설명할 수 없음'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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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나오미 왓츠, 레이먼드 카버, 롱테이크, 마이클 키튼, 배트맨, 버드맨, 브로드웨이, 슈퍼 히어로, 에드워드 노튼, 인간군상, 현대인
  • BlogIcon 空空(공공)
    2015.03.13 09:45 신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3.15 14:55 신고

      한 번 더 봐야겠습니다 ㅎㅎ

  • BlogIcon 늙은도령
    2015.03.14 00:26 신고

    캐치온에서 상영할 때까지 참고 있는데 봐야 할 것 같네요.

    • BlogIcon singenv
      2015.03.15 14:55 신고

      보고 또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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