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그해 크리스미스에는>
지난 11월 26~28일 동안 경기도 남부 지방 쪽을 중심으로 역대 최악의 폭설이 내렸다. 3일 동안 적은 곳은 20cm, 많은 곳은 50cm 가까이 눈이 내려 쌓였다. 몇몇 곳은 기상 관측 이래 최다 적설 기록을 갈아치웠다. 5천억 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고 하는데, 항공편이 결항되고 차량이 도로에서 서 있다시피 했으며 사람 또한 길을 걸어갈 수 없었다.
기후 위기의 단적인 예라고 할 만한데, 개인적으로 경기도 남부에서 살고 있어 직접 겪어 보니 근원적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난 2011년 여름에 직접 겪었던 일명 '강남 물난리' 때가 생각날 정도다. 그때가 '인재'에 가까웠다면 이번엔 순수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런데 역대 최악의 폭설이 이제 전 연령을 위한 애니메이션의 주요 배경으로까지 나아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그해 크리스마스에는>의 주요 배경이 바로 폭설이다. 역대 최악의 폭설로 일어난 일들이 주를 이룬다. 이 작품은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등으로 유명한 리처드 커티스의 도서를 원작으로, 드림웍스 애니메이터로 오랫동안 활동한 사이먼 오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쏟아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고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를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내린 역대급 폭설 속에서
영국의 작디작은 해안 마을 웰링턴온씨.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학교에서 뮤지컬을 한다. 트래퍼 교사의 깐깐한 지도 아래 버나뎃이 감독을 맡았다. 쌍둥이 샘이 각본을 맡았고 쌍둥이 찰리는 주인공 중 한 명을 맡았다. 한편 대니는 시원찮은 병아리콩 역을 맡았다. 그렇게 소소한 일들을 겪으며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는 와중에 버나뎃의 부모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동네의 몇몇 또래 어른들과 함께 나선다.
이미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웰링턴온씨는 매년 눈이 웬만큼 내리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도 별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가려니 눈이 많이 내려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여 허름한 차를 타고 눈 쌓인 길을 멀리 돌아가려 한다. 즉 버나뎃과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른 없이 지내야 했다.
한편 대니는 비상근무로 밤늦게 들어오는 간호사 엄마와 이혼한 후로 잘 보지 못하는 아빠 때문에 힘겨워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 자기 비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니네 맞은편에 사는 트래퍼 교사는 무감정한 평소와 달리 집에선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쌍둥이 샘과 찰리의 경우 샘이 모범생인 것과 다르게 찰리는 말썽꾸러기다. 와중에 찰리는 속이 깊은데 샘은 시무룩하고 실의에 빠져 있다.
고립된 마을, 실의에 빠진 아이들
고립된 작은 마을, 아이들이 나름의 이유로 절망에 실의에 슬픔에 빠져 있다. 폭설이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본래 지니고 있던 것들이다. 들여다보면 모두 다 가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은 조금씩 어긋났던 가족 관계의 문제가 폭설로 터져 버렸고 다시 봉합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크리스마스인 만큼 산타클로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데, 아이들에게 건네는 선물의 종류가 일찍이 접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아이로서 마냥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필요로 하지만 장작 자신은 그 필요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을 선물한다. 하여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폭설로 터진 가족 관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한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물성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으며 마음을 발현하는데 물성이 훌륭한 도구로 쓰이니,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우정, 믿음, 돌봄, 의지 등이 선물과 다름 아니다.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다름 아닌 트래퍼 교사인데, 평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서워하는 철인이지만 마을의 그 어떤 문제든 앞장서서 푸는 카리스마를 지녀 모두 그녀를 신뢰한다. 비록 그녀는 가족이 없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가족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기후 위기의 현실성과 재난에 처한 인간군상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로 이어지는 때에 맞게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풍부한 이 작품은 그러나 일면 굉장히 두려운 면모를 풍기고 있다. 기후 위기의 일환으로 촉발된 폭설은 분위기를 망쳐 버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하고 외부에 있던 이를 위험에 빠트린다. 위험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작품에서도 비록 코믹하게 그렸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위험에 빠진 이들이 나온다. 실제였다면 뉴스에 나올 만한 일을 당한 것인데 기후 위기가 가속화된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가족 애니메이션의 주요 배경으로까지 쓰였다는 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기후 위기의 현실성을 상황적으로 주입시키는 교육 영화임과 동시에 재난 상황에 처한 인간군상을 그린 블랙 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다. 심각성을 코믹함으로 중화하여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방식인데 성공했다고 본다. 재밌기도 하면서도 일면 두려움이 엄습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는 아련한 감동이 찾아오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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