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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우주'에 해당되는 글 12건

제목 날짜
  • 지금, 여기, 우리는 진정으로 중요한 걸 깨닫고 해야 할 때 <미드나이트 스카이> 2021.01.01
  • 전대미문의 대참사, '챌린저호 폭발'의 막전막후 <챌린저: 마지막 비행> 2020.10.14
  • 미미하지만 경이로운 '인간'과 '우주'의 연결을 찬란한 작화로 표현한 수작 <해수의 아이> 2020.10.02
  • 화성 탐사 이야기를 표방한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 <어웨이> 2020.09.28
  • 제대로 들여다보는,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순간 <아폴로 11> 2020.04.10
  •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난해한 우주 스릴러 <하이 라이프> 2019.10.31
  • 인문학적 통찰력 충만한, 아버지 혹은 내면으로의 여정 <애드 아스트라> 2019.09.28
  • 3D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힘든' 삶으로의 나아감까지 <그래비티> 2018.12.14
  •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놀란표 평작 <인터스텔라> 2018.01.26
  •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콘택트> 2017.08.23

지금, 여기, 우리는 진정으로 중요한 걸 깨닫고 해야 할 때 <미드나이트 스카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1. 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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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미드나이트 스카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 포스터. ⓒ넷플릭스



조지 클루니가 어느덧 60세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그는 신뢰감 풍부한 목소리에 자타공인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외모'를 지녔으며, 그에 못지 않은 출중한 연기력은 물론 사업가 기질이 남다르고 정치적으로도 올바름을 추구한다. 단순히 할리우드 스타로만 그를 지칭할 수 없고, 시대를 아우르는 아이콘이 되어 가는 중이라고 본다. 본인도 잘 아는지 이미지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같다. 


그는 20대 때 무명 시절을 보내고 30대에 <ER>을 만나 꽃을 피운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만나 할리우드 스타로의 길을 간다. <오션스> 시리즈로 유명세의 방점을 찍었고, <시리아나>로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석권하며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마이클 클레이튼> <인 디 에어> <디센던트> 등에서도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컨페션>부터 시작된 감독으로서의 여정으로 진정한 능력이 드러났다. <굿나잇 앤 굿럭> <킹 메이커> <서버비콘> 등으로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어 후보에 오르고 또 수상했다.


최근 들어 제작, 연출, 주연 3종 세트에 각본까지 맡는 경우가 있었는데, <서버비콘> 이후 실로 오랜만에 돌아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에서도 제작에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그가 연출하고 또 주연도 맡았던 작품들이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보면 이 작품 또한 괜찮을 거라는 기대를 가진다. 평단과 대중의 고른 평가를 받았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지구 종말 후 북극과 우주의 교신


2049년, 오거스틴 박사는 원인불명의 재앙으로 종말을 맞이한 지구를 뒤로 하고 북극 바르보 천문대에 홀로 남았다. 다른 이들이 철수 명령에 따라 살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 반면, 말기 환자인 그로선 떠날 이유가 없었다. 천문대에 마련된 시설과 약으로 겨우 버티며, 지구로 돌아오는 중인 에테르호에게 지구의 소식을 알리려 한다. 하지만 교신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7살 소녀 아이리스와 조우한다. 그녀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었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오거스틴은 그녀를 챙기며 에테르호와 교신하고자 노력한다. 


한편, 에테르호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목성의 위성 K-23에서 2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질문보다 많은 해답을 가지고 돌아가는 중이다. 그곳에선 생명체가 살 수 있고 확장도 가능하며 삶의 터전으로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지구상의 그 어떤 곳에서 그 어떤 답도 없는 것이다. 너무 조용하고, 너무 이상하다.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에테르호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구와 교신하고자 계속 노력하며 어떻게든 교신에 성공하는 것.


오거스틴은 바르보 천문대에선 에테르호와 교신할 수 없다고 판단, 아이리스와 함께 북쪽에 있는 하젠 호주 기상 관측소로 먼 길을 떠난다. 그곳에 가면 먹을 것도 풍부하거니와 무엇보다 에테르호와 교신할 수 있다. 오거스틴과 아이리스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텐데, 과연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에테르호도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본인들은 모르지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랄 수 있는 그들은 문제들을 뚫고 오거스틴과 교신해 희망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고독, 연결, 전달의 미학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조지 클루니의 다방면에 걸친 역량을 한껏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SF 드라마를 표방하지만 실상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별로였다. 글로만 쓰인 원작이 북극과 우주라는 거대하고 장엄하기까지 한 곳에 남겨진 극소수의 사람들의 '고독'을 아름답고 처절하게 표현해 냈다면, 영상미 가득한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의 장점을 살리면서 원작의 장점까지 살리려다가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되었다. 영상미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서사와 표현과 캐릭터 등은 낙제점을 겨우 면한 정도이다. 


일례로, 조지 클루니 주연작 <그래비티>는 완벽한 영상미는 영상미대로 둔 채 우주에서의 지독한 '고독'을 서사와 캐릭터 등으로 완벽히 표현해 냈다. 결국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고독의 두려움을 이겨 내고 살아 내고야 마는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까지 드러냈고 말이다. 반면,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오거스틴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에테르호를 오가며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핵심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었으며 무슨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는지 알고 싶지 않은 지경에 이른다. 


마지막에 가서 '아!' 하는 짧은 탄성을 자아 내며 감동의 클라이막스를 전하지만, 아주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거니와 결과만 좋고 과정은 별로였다는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다 과감한 연출과 편집으로 '고독에의 희망 어린 연결'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고독을 전하고자 많은 공을 들인 게 보이지만, 방향이 잘못되었다. 단순히 북극이나 우주에 홀로 있는 느낌이 고독의 전부일까? 고독은 그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의 감정이다. 바로 그 '감정'을 전달하려 했어야 했다. 


영화적 만듦새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들여다보자. 주지했듯, 영화는 원작의 장점을 살리려 했다. 춥디 추운 북극에 홀로 남겨진 '차가운 고독'의 심정과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절망적인 고독'의 심정을 따로 또 같이 보여 주며, 인간의 심연 또는 인류의 마지막에 있는 무엇을 들여다보고자 한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연결'될 때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또한, 고독에서 그치지 않고 연결되어 희망이 '전달'될 때 의미가 있다는 걸 말이다. 


지금, 여기, 우리를 반영한 이야기이자 메시지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메시지가 더 와닿는데, 이 또한 잘 연출해 냈다고 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제작과 연출과 주연까지 도맡은 조지 클루니가 던지는 것이기도 한데, 기성세대이자 어른 세대로서 지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자책하고 있다. 영화 외적인 '올바름'의 행보를 영화 내적으로 가져와, 언행일치 또는 영화 안팎의 일치를 이루려 한 것이다. 


그러며 그보다는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을 에테르호 승무원들에게 유일할 만한 희망의 방법을 전하고자 한다. 구원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오거스틴 본인과 인류 전체에 대한 구원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후회와 회한으로 점철된 마지막에 이를 것인가? 영화는 '희망'이라는 단어로 구원을 대신하려는 것 같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구원'에의 희망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걸로 기성세대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소임을 그나마 이루려고 한 게 아닐까. 


지금, 여기, 우리를 반영한 이야기이자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대면하지 못하는 소통의 방식과 그 소중함 그리고 전 인류에게 경고하는 초유의 위기, 환경 문제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근 미래 언젠가 닥칠지 모를 <미드나이트 스카이> 속 인류의 종말까지. 미래의 시점에서 지금을 후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구원에의 희망을 말하며 방법과 대안을 전하고 있다. 하여 다음 세대에겐 한없는 미안함과 자책이 어린 위로를 보내고 기성세대, 어른 세대, 부모 세대로서 지금, 여기,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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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기성세대, 다음세대, 미드나이트 스카이, 북극, 연결, 우주, 전달, 조지 클루니, 종말, 환경,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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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대참사, '챌린저호 폭발'의 막전막후 <챌린저: 마지막 비행>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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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챌린저: 마지막 비행>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챌린저: 마지막 비행> 포스터. ⓒ넷플릭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소련과 미국은 지구에서 모든 분야를 두고 경쟁했는데 우주에서도 경쟁을 했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시작되었는데, 초반에 소련이 앞서 나가다가 케네디의 유인 달 탐사 계획이 10여 년만인 1969년 실현되면서 미국이 승리했다. 미국이 '우주 경쟁'을 '문 레이스'로 국한시키고 또 성공해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소련은 1974년 달 탐사 계획을 중단했다고 한다. 


소련과의 문 레이스에서 승리하면서 이른바 '우주 패권'을 손에 쥔 미국은, 룰루랄라 후속 미션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야말로 인류를 대표해 우주와 경쟁하게 되었다고 할까. 80년대, 우주왕복선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비행기 모양의 익숙함과 우주를 상대하는 '간지'로 일반 대중에게 깊숙이 침투한다. 어느새 군사 목적에서 상업 목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하지만 우주선과 NASA에 퍼붇는 엄청난 돈에 비해 그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 버린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떨어지고 있었던 바, NASA는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데 '일반인도 우주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들었던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일거에 받고는, 고심 끝에 '우주에서 시행하는 수업'을 매개로 교사를 모집한다. 1986년 1월 28일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제2호기 '챌린저호'의 10번째 임무이자 우주왕복선의 25번째 임무 'STS-51-L' 수행의 전말이다. 


전대미문의 챌린저호 폭발 참사


1986년 1월 28일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전 11시 38분, 챌린저호가 케네디 우주센터를 떠나 날아올랐다. 총 7명의 대원이 타고 있었다. 공군 중령이자 사령관 딕 스코비, 공군 중령이자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우주비행사 엘리슨 오니즈카, 물리학자이자 사상 두 번째 미국 흑인 우주비행사 론 맥네어, 엔지니어이자 사상 두 번째 미국인 여성 우주비행사 주디 레스닉, 탑재체 전문가이자 휴즈 항공기 회사 직원 그레그 자비스, 해군 중령이자 조종사 마이크 스미스, 그리고 비행 중 우주선 안에서 수업을 진행하게 될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까지. 


NASA의 꿈은 물론 일반인의 꿈까지 싣고 화려하게 날아오른 챌린저호는, 그러나 73초만에 폭발해 버리고 만다.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 7명 대원 전원이 사망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챌린저: 마지막 비행>은 그 막전막후를 상세히 다룬다. 그 너무나도 강렬한 폭발 장면 때문에 그밖의 사항들을 알기 싫은 경향이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사실, NASA의 우주 탐사에서 큰 사건사고가 몇 차례 있었다. 1967년 아폴로 1호는 임무 훈련 중 화재로 3명의 대원 전원을 잃은 참사를 당했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 이후 1970년 4월에 쏘아올린 아폴로 13호는 달에 가던 도중 사고를 당해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지구에 귀환했다. 기적적으로 3명의 대원 전원이 생환하여 '성공적인 실패'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1986년 1월 챌린저호의 출발 직후 폭발 사고와 2003년 2월 컬럼비아호의 귀환 도중 폭발 사고로 7명 대원 전원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 


치명적인 문제들을 내포한 발사 강행의 결과


<챌린저: 마지막 비행>을 보면, 챌린저호의 STS-51-L 임무 수행은 애초에 여러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던 걸로 드러난다. 위에서 주지했던 바, NASA의 사활이 걸린 이벤트성 다분한 임무 수행으로 '무조건' 발사되어야만 했었다. 문제는, 나중에 드러난 바 고드름이 얼 정도로 평년 기온보다 너무나도 낮은 추운 날씨에 로켓 부스터 이음새를 메우는 고무 O-Ring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챌린저호 발사 전, 부스터 제작사 타이오콜 사의 기술자들과 O-Ring 설계 담당자는 위험성을 간파하고 NASA 측에 발사 연기를 요청한다. 하지만, NASA와의 계약 문제로 얽혀 있는 타이오콜 사와 자사의 사활이 걸린 임무 수행이라는 점과 레이건 대통령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NASA는 그 의견을 묵살해 버리고 발사를 강행시킨다. 그들 입장에선, 이전에도 수차례 더 추운 날씨에도 발사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알고서도 강행한 후과는 본인들이 아닌 희생된 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NASA의 우주왕복선 계획은 안전이 담보된 혁신이 아닌 진보라는 이름을 먹칠한 되도 않는 모험으로 밝혀진다. 계속되는 성공에 도취되어 본래의 임무를 잊고, 한편으론 관료주의에 절은 채 한편으론 대중과 언론의 관심에 취한 채 제대로 중심을 잡기 힘들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대미문의 대참사로 수직상승하던 NASA의 우주 계획은 뒤흔들린다. 


대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도전을 계속한다?


작품에는, 당시 챌린저호 발사와 관련된 다양한 부류의 관계자들이 대거 출현했다. 7명 대원들의 유족들, NASA 직원들과 핵심 관계자들, 타이오콜 사의 기술자들과 핵심 관계자들, 청문회 관계자들, 언론인들, 우주비행사들까지. 당시의 참혹함을 전하며, 그리워하고 분노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반면, '빌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당시 챌린저호 발사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존슨 우주 센터장은 '어쩔 수 없었다'는 정도가 아닌 '인류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소신(?) 발언을 이어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황당함과 분노를 자아냈다. 가히 그 거시적인 안목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본인이 희생 당사자였어도 그런 소리를 해 댈 수 있을지...


시종일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모두의 말을 듣는가 싶었던 작품은, 마지막 화의 마지막쯤에 이르러서 황당하게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출현한 관계자들의 숙연한 얼굴을 하나하나 비추며, 당시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애도하는 레이건 대통령의 담화문을 얹힌 것이다. 주요 요지는, '대참사를 애도하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우리는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였다. 당시 존슨 우주 센터장의 망언에 가까운 주장과 상호보완적으로 일치하는 말이 아닐 수 없는데, 설령 그게 그것대로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서 이런 식으로 다루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나라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는 건, 그게 노동이든 돈이든 노력이든 목숨이든 권력과 명예와 돈을 두루두루 또는 한 가지만 가진 저 높으신 분들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들의 명령에 따라 그야말로 '아랫것'들이 희생되는 게 명백하다. 그 비극적 사실을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거룩하게 보여 주면 안 된다. 


이 작품 <챌린저: 마지막 비행>은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막전막후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걸 추천하되, 마지막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양새는 절대적으로 비추천한다. 사실뿐만 아니라 진실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로서 쓰레기 같은 모양새라고 말하고 싶다. 다큐멘터리의 뉘앙스는 픽션의 그것과는 달리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비록 나의 개인적인 성향과 반하는 뉘앙스였다고 하지만, 시종일관 취하던 스탠스와 너무 빗나가는 것이어서 작품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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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다큐멘터리, 문제, 사망, 성공, 우주, 일반인, 챌린저: 마지막 비행, 폭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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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하지만 경이로운 '인간'과 '우주'의 연결을 찬란한 작화로 표현한 수작 <해수의 아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0. 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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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해수의 아이>


영화 <해수의 아이> 포스터 ⓒ (주)영화사 오원



포구 마을에 사는 소녀 루카, 핸드볼 동아리에 속한 그녀는 기대하던 방학 첫날 훈련 도중 선배를 팔꿈치로 가격해 팀에서 제외된다. 사실, 선배가 먼저 그녀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지만... 선생님도 동료들도 그녀를 믿어 주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외로운 루카, 술캔이 수북한 집에 엄마가 있지만 그녀를 반겨 주지 못한다. 루카는 마음을 달래려 어릴적 추억이 깃든 도쿄의 수족관으로 향한다. 그곳엔 아빠도 있었다. 


수족관 관계자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루카는 그곳에서 특별하고 신비한 바다 소년 우미(바다)를 만난다. 그는 필리핀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 바닷속에서 듀공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그에겐 형 소라(하늘)도 있는데, 그들은 지금은 루카의 아빠가 일하는 수족관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지만 해양학자 짐 그리고 그의 조수 앙글라드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 중이다. 루카와 우미 그리고 소라는 급속히 친해진다. 


한편, 바다의 축제가 다가오는 듯 운석이 떨어지고 거대 고래가 출현하는 것도 모자라 보기 힘든 심해어가 뭍으로 나와 떼죽음을 당하는 등 이상한 현상이 계속된다. 우미와 소라 또한 바다의 축제에 연관이 있는 듯,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인다. 바다 소년 형제를 이용해 축제의 실체를 밝히고 메커니즘을 알고자 하는 과학자와 권력자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와중, 운석아을 품고 있던 소라는 루카에게 입을 맞추며 그녀에게 운석을 전하고 사라진다. 우미와 함께 소라를 찾아나선 루카,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특별하고 신비한 경험을 만끽한다. 


'드림팀'이 모여 만든 수작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는 <리틀 포레스트> 원작자로 유명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또 다른 유명작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도라에몽> 극장판 시리즈로 유명한 와타나베 아유무가 연출을 맡았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음악을 전적으로 맡다시피 했던 20세기 일본 최고의 아티스트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았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가 주제곡을 맡기도 했다. 


여러 모로 '드림팀'의 면모를 보인 작품인데, 그에 걸맞게 큼지막한 상을 탔다. 일명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로 아트, 엔터테인먼트, 만화,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선정해 시상한다. 2000년대 들어 심사위원 추천작이 신설되었고 5년여 전부턴 신인상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해수의 아이>는 2009년 만화 부문 우수상을 탔고, 2019년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탔다.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작 중 알 만한 작품으로는,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크레용 신짱>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정도가 있겠다. 


반면 박스오피스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후술하겠지만, 보는 이에 따라 모 아니면 도 정도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 기대하는 난이도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는커녕 어른이 보아도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이 보여 준 작화의 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신카이 마코토'였던 이유 중 하나가 빛을 적재적소에 이용한 작화였는데, <해수의 아이> 앞에선 명함을 내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온갖 상징과 은유로 뒤섞인 대향연


애니메이션 영화 <해수의 아이>를 제대로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원작 만화를 접해 스토리와 메시지에 대한 보다 깊고 넓은 견해를 갖추고 영화를 보는 방법이 가장 좋을 텐데, 막바로 영화를 접하게 되면 스토리나 메시지나 대사를 해석하고 분석하며 머리로 받아들이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흘러가듯 받아들이되 최대한 아름다운 작화를 감상하는 데 집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으로 시작해 우주적인 이벤트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는, '별의 탄생'이라는 거시적 측면이 주를 이룬다. 태곳적부터 반복되어 온 바다의 축제는 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로, 때마침 떨어진 운석이 '씨앗'이고 운석을 품은 소라가 루카를 '게스트'로 선택해 씨앗을 전한다. 그녀는 축제에 참여해 별의 탄생을 견인하는데, 몸 속에서 운석 씨앗을 깨워서는 우미에게 전한다. 우미는 별로 재탄생하여 세상 밖으로 나간다.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곳은 바닷속 거대 고래의 뱃속이다. 


한 번에 절대 이해하기 힘든 온갖 상징과 은유로 뒤섞인 대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러나 '별의 탄생'이라는 거시적 측면 외에 외로웠던 사춘기 소녀 루카의 '성장'이라는 개인적 측면도 함께 보인다. 스스로를 하찮고 나약하고 우울하며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던 그녀였는데, 범우주적으로 가장 특별한 축제를 한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함께했으니 이후 스스로를 '경이'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거라고 본다. 


또한 영화를 보는 우리들한테는 '우주=인간'이라는 공식을 여러 가지 측면과 대사로 전한다. 특별한 바다 소년 형제 소라와 우미가 별로 재탄생하는 것이나 한낱 어린 인간 소녀에 불과한 루카가 별의 탄생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우주의 탄생에 일조하는 한편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대우주의 극히 미미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우주의 일부분인 경이로운 존재 인간, 우주의 일부분일 뿐인 미미한 존재 인간. 


이 작품을 제대로 보는 방법


이 영화의 백미이자 압권인 아름답고 찬란한 작화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매순간 반짝이는 순간,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스토리, 별의 탄생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연결을 전하는 메시지를 사진을 찍은 듯 보이면서도 한편 만화적인 작화로 선보이려 하는 건 가히 신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근접한 답을 보여 준 것이다. 작화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영상 매체가 대중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는 둘 모두의 입맛까지 잡아야 하게 된 현대 어느 때 이후, 영상 매체는 가장 기본이 되는 '보이는 것' 못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스토리와 다름 아니겠다. 그럼에도, <해수의 아이>의 경우 스토리를 저멀리 보내 버리고 보이는 것에만 열중해도 충분하다는 걸 입증했다. 비록 스토리 또한 아름답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이 작품을 제대로 보는 진짜 방법, 즉 세 번째 방법은 두세 번 보면서 한 번은 작화를 감상하고 한 번은 스토리와 메시지에 집중하고 한 번은 모든 걸 아우르면서 감탄하는 것이겠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굳이 몇 번 돌려 보면서까지 이해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해한 만큼 머리와 가슴과 마음으로 많은 걸 받을 수 있을 거라 단언한다. 감성과 이성의 면면을 두루두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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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탐사 이야기를 표방한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 <어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9.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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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볼 만한 넷플릭스 드라마] <어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어웨이> 포스터. ⓒ넷플릭스



나사 수석 엔지니어 남편과 10대 어린 딸을 둔 에마 그린은 사령관 자격으로 아틀라스호를 타고 인류 최초의 화성 탐사를 나선다. 영국의 식물학자, 러시아의 엔지니어, 인도의 외과의사, 중국의 화학자가 동행한다. 그들은 달을 거쳐 화성으로 가는, 생존 확률 50%의 3년 동안의 긴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화성으로 제대로 된 출발도 하기 전에 난관에 부딪힌다. 그린 사령관의 남편 멧이 해면상 혈관종을 가지고 있었던 바,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 딸 렉스가 혼자 감당하기 벅찼기에, 그린은 포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때 멧이 의식을 찾아 그린이 화성을 가게끔 한다. 


우여곡절 끝에 화성으로 떠난 아틀라스호와 5명의 대원들, 우주선 안팎에서 갖가지 문제들에 직면한다. 그린 사령관의 흔들리는 멘탈을 불신하는 러시아의 포포프와 중국의 루, 그럼에도 그린을 신뢰하는 또는 신뢰하려는 인도의 람과 영국의 크웨이시. 우주 유영을 하는 것도 모자라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직접 손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생기는 우주선. 지구에서 들려 오는 소식들, 이를테면 멧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던가 렉스가 C+을 받았다거나 하는 크고작지만 부정적인 얘기들. 


무엇보다 힘든 건 5명의 대원들 각각 직면한 정신적 고통들이다. 다른 이에게 결코 쉽게 말하기 힘든 과거 지구에서의 사연들이, 우주선 안 같은 공간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증폭된다. 그런가 하면, 생존 확률이 반반인 여정에서 오는 현실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정신적 압박이 그들을 따로 또 같이 괴롭힌다. 과연, 수많은 문제를 뚫고 화성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 그리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힐러리 스왱크가 다시 한 번 큰 족적을 남길 기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웨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류 최초의 화성 탐사를 떠난 5명의 우주비행사 이야기를 앞세워 'SF'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론 더할 나위 없는 '드라마'이다. 극적이고 긴장되기 짝이 없는 문제들과 온갖 절망을 딛고 희망을 찾아가 쟁취하고 마는 '인간'의 이야기 말이다. 근래 보기 드문,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거기에 SF적 요소가 듬뿍 담긴 우주 공간과 우주선과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가 훌륭하게 곁들여 있다는 점이 포인트라고 하겠다. 즉, 정작 이 시리즈를 보게 되는 이유는 'SF'에 있지만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의 대부분은 '드라마'에서 기인한다. 이토록 장르적으로 균형 잡힌 콘텐츠를 보기 힘든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을 정도이다.


크게 기여한 이가 있으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에마 그린 사령관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입체적으로 완벽하게 풀어낸 '힐러리 스왱크'다. 아직 50대에 들어서지 않은 젊은 나이지만 이미 올타임 레전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연기파 배우다. 2000년 20대 중반 나이에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석권했고, 2005년 30대 초반 나이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역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2년 뒤 2007년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다가, <어웨이>로 다시 한 번 큰 족적을 남길 기세다. 그녀에게 이 작품이 중요하게 자리 잡을 게 분명하다. 


고뇌하는 리더십, 함께하는 리더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는 1963년 러시아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이고,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사령관은 1999년 미국의 에일린 콜린스이며, 최초의 여성 국제우주정거장 사령관은 미국의 페기 윗슨이다. <어웨이>의 에마 그린이 모티브로 삼은 게 바로 페기 윗슨, '우주에서 가장 오래 머문 미국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 그녀다. 인간 여성으로서 지구 아닌 우주에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 주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고뇌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린 사령관은 개인적으로 멘탈이 자주 그리고 심하게 흔들리기도 하거니와 자신을 포함해 5명에 불과한 대원들을 카리스마 있게 통솔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고는 그녀를 최고의 사령관으로 치켜 세울 수 있는 건, 일방적이고도 수직으로 내리꽂는 리더십이 아닌 그녀'를' 둘러싸지 않고 그녀'와' 함께 각자의 전문 분야를 힘껏 내보이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더 오랜 시간과 더 많은 공력이 들겠지만, 가면 갈수록 탄탄해지고 신뢰와 믿음이 쌓이는 걸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성 리더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남성은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채 센 척하며 명령을 내리고 윽박지르며 리더를 중심으로 뭉치는 리더십을 내보여야 하고, 여성은 혼자 모든 걸 할 순 없으니 도움을 청하며 각각의 특기와 특징을 최대한 내보여 모두가 함께하는 리더십을 내보여야 하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극중 에마 그린은 여성 리더십이 아닌, 여러 리더십의 하나 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선보인 것이다. 여성이라서 이런 리더십을 선보인 게 아니라, 이런 리더십을 선보인 게 여성인 것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사실, 이 작품 '여성' 리더십을 앞세워 이 시대의 페미니즘 또는 정치적 올바름을 설파하고 있지는 않다. 독특한 리더십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 언급한 것뿐이다. <어웨이>의 강점은, 그보다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감동에 있다. 최첨단 우주 시대의 최전선을 달리는 이들이 '한낱' 인간적 고뇌에 시달리고 또 흔들리고 있다는 아이러니 말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금 바로 잡고난 후에 느끼는 감동까지, 전형적이고 정통적이지만 인간인 이상 그 고뇌와 감동에 자극받고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상 모든 걸 뒤로 하고 화성 탐사를 결심한 5명의 대원들은, 조국 그리고 지구에의 헌신과 임무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자신과 가족들은 2선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출발해 육체적 힘듦은 둘째 치고 온갖 정신적 압박과 고통에 시달리니 생각나는 건 사랑하는 이들뿐이다. 물론 대부분이 가족일 테지만, 드라마적 장치로 가족 아닌 사연 있는 타인인 경우도 있다.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특별한 사연들 말이다. 


드라마 특성상 어떻게든 화성에 착륙하는 데 성공할 게 뻔하다. 인류 전체의 '희망' 그 자체를 실었으니 말이다. 비록, 수많은 난관을 뚫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 화성으로 향하는 여정이 모든 이의 인생 여정과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선 안팎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못지 않게 인생 안팎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심각하고 또 풀기 힘들지 않나 싶다. 하물며 이 작품에서도 에마 그린 사령관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지구에서 일어나는 하찮다면 하찮은 일들 아닌가. 


작품은 그럼에도 나아가자고 말한다. 대신, 무조건적인 타협과 어쩔 수 없는 좌절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얘기할 건 하고 행동에 옮길 건 옮기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지켜 내자고 말한다. 인생은 위대하지만, 한편 '인생 뭐 있어' 하는 마음가짐도 필요한 게 아닐까. 적절한 균형 감각을 두루두루 유지하며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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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들여다보는,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순간 <아폴로 11>

오래된 리뷰 2020. 4.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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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아폴로 11>


다큐멘터리 <아폴로 11> 포스터. ⓒ넷플릭스



1957년 10월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데 성공한다. 한 달 후엔 살아 있는 개 라이카를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보냈다. 이에 미국은 이듬해 초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에 질세라 소련은 익스플로러 1호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가하는 크기와 무게의 스푸트니크 3호를 발사했다. 때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었을 때, 무대는 지구에서 우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은 10년이 넘게 완전한 소련의 승리였다. 최초란 최초는 모조리 가져갔던 것이다. 이를 무기화하면 절대 미국이 이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5월 국회에서 "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 살아돌아오게 하겠다"는 요지의 연설을 한다. 이에 미국의 NASA(미국항공우주국)는 유인 달탐사 계획인 '아폴로 계획'에 착수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케네디가 공언한 대로 60년대가 저물기 직전인 1969년 7월 미국의 NASA는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리며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게 하였다. 지구 아닌 곳에 최초로 발을 디딘 것이다. 지난 2019년이 50주년 되는 해로, 미국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 많이 기념하였는데 다큐멘터리 <아폴로 11>이 방점을 찍지 않았나 싶다. 오다 가다 엿보는 수준의 '아폴로 11호'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당시 그대로의 영상으로도 충분하다


<아폴로 11>은 우주 전쟁이라든지 아폴로 계획이라든지 심지어 아폴로 11호 준비 과정도 완전히라고 할 만큼 제외시키고, 온전히 '아폴로 11호' 임무 과정에 몰두한다. 더불어 작품을 이루는 거의 모든 영상은 오롯이 발사 당시 공개 및 미공개 영상과 우주선에 설치된 카메라 영상과 우주인들이 찍은 영상들로만 꾸려져 있다. 심지어 내레이션도 당시 공개되었던 그대로의 목소리다. 


추가로 덧붙인 것 없이 기존에 존재했던 것만으로 어떻게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시각과 지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게 분명하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텐데,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동안 수없이 봐왔던 왠만한 우주 영화들을 훨씬 상회하는 스펙터클과 그를 뒷받침하는 믿기 힘들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모순적 리얼리티. 


지나간 사건의 단면을 나름의 문제의식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흥미로운 문제제기를 가하는 게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의의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어도 충분하고도 남을 사건이 주제이자 소재이기에 특단의 선택을 한 것이리라 본다. 선택은 적중했고, 작품을 보게 된 우리는 마치 50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도취하게 되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인간


아폴로 11호에는, 누구라도 이름을 들어 보지 않을 수 없는 '닐 암스트롱'과 '마이클 콜린스'와 '에드윈 버즈 올드린'이 탑승했다. 각각 맡은 임무는 사령관, 사령선 컬럼비아호 조종사, 달착륙선 이글호 조종사였다. 1969년 7월 16일 오전에 출발했고, 달로 향하는 3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달로 향하는 동안 우주선 안의 우주인 이야기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는데, 이보다 신기한 일이 있었나 싶었을 것이다. 


7월 20일, 달착륙선 이글호는 사령선 컬럼비아호와 분리되어서 달 착륙 궤도에 진입한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생겨 예상보다 4초 빠른 위치에 착륙이 예상되었다. 잠시 후 계속 에러가 뜨니 모두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컴퓨터 엔지니어가 착륙해도 좋다는 말을 전한다. 닐 암스트롱은 착륙을 강행하고, 무사히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할 수 있었다. 


마이클 콜린스가 지구와의 교신이 끊긴 채로 홀로 컬럼비아호에서 달 궤도를 도는 사이,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며 그 유명한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이어 에드윈 버즈 올드린이 달에 발을 디딘다. 그들은 기념판을 설치하고 성조기를 꽂아 '미국의 달 정복'을 명확히 한다. 2시간 반 이후 착륙선으로 복귀한다. 


컬럼비아호와 도킹한 이글호, 세 비행사는 다시 지구로 향한다. 달에 발을 디디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중요할 지구 귀환은 무사히 진행된다. 1969년 7월 24일 오후 태평양에 착륙했고, 항공모함 호넷이 그들을 맞이했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 때문에 2주간 격리되었고,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국과 지구를 대표할 영웅으로 환영·칭송받았다. 그야말로 아폴로 11호의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전말이다. 


아폴로 11호의 실질적 주체를 향한 헌사


<아폴로 11>는 50년 전 영상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선명하게 복원되고 보정된 화질을 자랑한다. 사실 자체만으로도, 여전히 믿기 힘든 인류의 달 착륙에 더불어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여, 1960년대 후반 당시 미국의 긴장과 희망을 자세히 엿볼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지나 베트남 전쟁 한가운데에 있던 당시 미국, 세계 최고의 국가로 기세와 영향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을 테다. 하지만 미국의 곁에는 항상 소련이 있었던 바, 아폴로 11호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반 국민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나른한 일상에 아폴로 11호가 한 줄기 빛과 같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대부분은 '아폴로 11호' '케네디 대통령' '미국 NASA' '인류 최초의 달 착륙' '닐 암스트롱' 정도로 요약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자세히 알 수도 없었고, 사실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 다큐멘터리로 새롭다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알게 된 건, 하나의 프로젝트에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이다. 한 명의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수백 수천 명의 관계자 및 담당자들 말이다. 


이 작품은 아폴로 11호가 아닌 아폴로 11호를 만들고 뒷받침하며 실질적으로 운용한 주체들을 향해 보내는 헌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가 계속되며 기억해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만큼 축소되고 요약되어 한마디로 알려지곤 하는데, 아폴로 11호 50주년을 맞이해 다시금 알려지지 않은 진짜 주인공이자 영웅들을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비단 아폴로 11호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역사와 다가올 역사 모두에 해당한다.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다양하게 기억하고, 더 오래토록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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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난해한 우주 스릴러 <하이 라이프>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0.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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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하이 라이프>


영화 <하이 라이프> 포스터.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아무것도 모른 채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여성 감독이자 북미의 대표 영화제인 뉴욕영화제의 총아라고 할 만한 클레어 드니 감독의 신작, 로버트 패틴슨과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은 <하이 라이프>도 그런 경우였다. 지난 6월말에 개봉한 <마담 싸이코>도 그러했는데, 영화가 상당히 기대에 못 미쳤었다. 


줄리엣 비노쉬라고 하면, 이자벨 위페르와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세계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미국 영국 여우조연상을 최초로 석권한 걸로 유명하다. 그도 그렇지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영화 보는 눈이 탁월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그 유명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2000년대 말에서 2010년대 초를 화려하게 수놓고는 예술영화로 노선을 틀어 연기력을 뽐냈다.


<하이 라이프>는 사실 로버트 패틴슨이 원탑 주연에 가까운 영화인데, 보다 진중하고 누가 봐도 연기에 도가 텄다고 생각할 만한 배우를 염두에 뒀다는 클레어 드니 감독의 심중을 로버트 패틴슨이 열렬한 구애로 움직였다고 한다. 영화를 즐김에 있어 그의 연기를 일순위로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런 그가 매달렸다는 영화의 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양계 밖, 지구의 범죄자들


태양계 너머 우주 어딘가, 몬테는 우주선 안에서 홀로 아기 보이스를 키우고 있다. 태양계를 지나온 후부턴 지구와 통신이 되질 않는다. 원래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었는지 죽은 걸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는 우주복을 입혀 그들을 우주선 밖으로 하나하나 내보낸다. 몬테를 포함, 그들 모두는 사형수에 준하는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해오는 임무를 띄고 있다. 


사실 그들은 지구에서 행한 실험의 일환으로 우주선을 탔다. 금기를 범하고 사형수가 된 범죄자들을 우주로 버려 사실상 사형시킨 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체크하는 것이다. 하여 그들은 의무적으로 지구와의 통신을 이어가야 했다. 문제는, 우주선 안에서 행해진 또 다른 실험이다. 아이를 죽이고 우주선에 타게 된 딥스 박사는 우주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게 가능할지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실험을 강행한다. 


하나둘 씩 죽어가는 범죄자들, 추악한 욕망과 본성을 오가며 서로가 서로를 탐하고 죽이며 자신이 자신을 죽인다. 와중에 태어난 아기 보이스, 욕망과 본성을 억제하며 살아간 몬테. 하지만 포기 없이 살아가려 해도 희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지구와의 통신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구로 돌아갈 순 없을 테고 돌아간다 해도 사형수를 면치 못한다. 그렇다고 임무를 행하기에도 힘들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우주의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돌아다닐 뿐이다. 


금기와 욕망


영화 <하이 라이프>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SF라고 하기엔 힘들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힘들다. 장르적으론 여기 한 발 저기 한 발을 걸치곤,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다양하고 난해한 질문을 던지며, '있어 보이는' 영화를 내놓았다. 어정쩡한 우주SF보단 괜찮을 수 있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린 느낌이 강하다. 


'금기'가 영화를 관통한다. 몬테가 아기에게 타부 인형을 건네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준다. '금기'라는 뜻의 타부, 몬테는 여동생을 살해했고 딥스 박사는 남편과 자식을 살해했다. 딥스는 우주선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행하는데, 방사능으로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도 여자 탑승자들에게 계속 임신 실험을 강행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몬테에게 약을 먹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한 후 그를 강간해 정액을 빼내어 보이시를 억지로 임신시킨다. 


금기된 행동의 결과로 결국 우주선에 타게 된 범죄자 탑승자들, '욕망'이 그들을 휘몰아친다. 자위방에서 욕정을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제로 이성을 탐하다가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고, 갑작스런 뇌종양으로 죽어가면서도 마지막으로 갖는 생각이 이성을 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딥스는 모든 행동이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결과,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금기에의 욕망이 고개를 든다. 


효율적이지 못한 은유와 상징


범죄자 탑승자들을 상징하는 게 금기와 욕망이라는 단순 추상 개념뿐만은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들을, 특히 몬테와 딥스를 지칭하는 개념이 존재한다. 욕망의 화신과도 같은 딥스와 달리, 몬테는 적어도 우주선에선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극중에서 몬테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자신은 수도승이고 딥스는 마녀이자 주술사인 것이다. 욕망은 타락하고 타락한 욕망은 파멸에 이르는가. 


몬테, 딥스와 더불어 극중 중요인물 중 하나라고 할 만한 보이시 또한 분명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을 테다. 그녀는 관계를 가지지 않고 임신하였다. 동정녀 마리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가 성령의 아이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수태고지' 후, 성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 수도승, 주술사, 마리아 등의 상징으로 보아 영화를 종교적으로 해석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영화는, 그러나 주지한 은유나 상징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저 늘어놓기만 하고는 제대로 연결시켜 의미 있는 무엇을 내놓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희망을 찾을 길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하는데, 그것이 희망일지 허무일지 보는 이들마다 다를 것이라는 열린 결말과 해석 정도? 결국 해석을 요하는 또는 강제하는 서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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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통찰력 충만한, 아버지 혹은 내면으로의 여정 <애드 아스트라>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9.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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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애드 아스트라>(Ad Astra)


영화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칸 영화제 단골손님 제임스 그레이 감독, 지난 2013년 <이민자>로 오랜만에 칸에 귀환했을 때 '씨네21'과 한 인터뷰를 들여다보자. 맨 마지막에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생각하고 있는지의 질문에 SF영화를 구상하고 있다고 답한다. 실제로 그는 차기작으로 SF가 아닌 어드벤쳐영화 <잃어버린 도시 Z>를 내놓았지만, 차차기작으로 SF영화를 들고 온다. 


인터뷰는 '우주에서 진행되는 매우 리얼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제임스 그레이의 답변으로 끝난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애드 아스트라>는 그의 구상을 영화로 옮긴 실제물이다. SF우주영화의 현재는 2013년 <그래비티>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후 매해 메이지급 SF우주영화가 한 편 이상씩 나왔다. <인터스텔라> <마션> <패신져스> <라이프> <퍼스트맨> 그리고 <애드 아스트라>까지. 


현재 SF우주영화의 특징은 거시적이고 광활한 서사 대신 미시적이고 협소한 여정이다. 물론 우주라는 것 자체가 미시적이고 협소할 수가 없겠지만, 역으로 거시와 광활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는 걸 시사한다. <애드 아스트라>는 SF우주영화의 현재를 상징한다고 단언할 정도로, 기본 장착된 우주적 외향에 개인으로 끊임없이 천착하는 내향을 지녔다. 다음의 어떤 SF우주영화라고 이런 식으로 더 잘 만들긴 힘들 것이다. 


아버지 찾아 떠나는 머나먼 길


미군 소속 우주비행사 소령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 분)는 우주 안테나에서 작업을 수행하다 예측할 수 없는 이상 현상 때문에 지구로 추락해 죽다 살아난다. 우주사령부는 로이를 불러 1급 기밀사항을 전하며 임무를 맡긴다. 수십 년 전 지적 생명체를 찾는 '리마 프로젝트' 수행 차 해왕성으로 떠났다가 실종된 아버지 클리포드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것과 지구는 물론 우주를 위험에 빠트릴 이상 현상 '써지'가 다름 아닌 클리포드가 벌인 실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로이는 달을 거쳐 화성으로 가 해왕성에 있는 아버지와 교신해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고 또 써지 현상의 배후 조종을 하지 않게 설득해야 하는 임무를 진행한다. 역사상 모든 우주비행사들 중 가장 멀리 향했던 위대한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아버지로 두고 당연히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며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뤄 최고가 된 로이는, 아버지를 찾고 싶은 것인지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른다. 


아버지와의 교신 중 개인 감정을 드러낸 로이는 미션에서 빠지게 되고, 망연자실한 와중 화성의 책임자 중 한 명이 전해주는 리마 프로젝트와 클리포드에 관한 또 다른 1급 기밀사항을 보고 해왕성으로 향한다. 해왕성행 로켓에서 뜻하지 않게 큰 문제에 봉착한 로이지만, 아버지를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절대적 바람으로 홀로 머나먼 길을 떠난다. 로이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클리포드와 리마 프로젝트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엔 어떤 게 도사리고 있을까? 우주는 써지에서 벗어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경이로운 일상으로의 초대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우리를 경이로운 일상으로 초대한다. SF우주영화 하면 떠올릴 스펙터클하고 장엄한 우주서사보다 일상적이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일상적인 우주를 보여준다. 근미래의 우리가 우주를 생각하고 대하고 행하는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자연스럽게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지금의 우리로선 경이롭기만 한 우주가 극중에서는 대수롭지 않다. 


로이의 직업특성상 그리고 성격특성상 그래 보일지 모르겠다. 그는 우주비행사로 합당함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심박수 80 이하의 차분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문명을 향한 환멸의 자세를 취한다. 차분함을 유지해 비로소 벗어날 때 안도감을 느끼는 아이러니. 그의 눈에 비치는 우주적 일상이 곧 관객인 우리가 보게 되는 일상적 우주인 만큼, 환멸로 가득찬 황량한 그곳이 경이롭게만 보일리 만무하다. 


다르게 말하면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6년 전 자신감을 비추고 바람을 한껏 고무시킨 '리얼한 우주'가 <애드 아스트라>를 통해 눈앞에 나타난 것일 테다. 미래지향적 최첨단 계획도시 같은 우주가 아닌 지금 우리가 두 발 붙이고 사는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우주, 그게 바로 지금의 우린 경이롭지만 미래의 그들에겐 진짜 우주 모습이다. 


영화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만큼 거시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다. 영화는 로이라는 한 개인의 내면과 여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데 천착하기에, 그의 내면과 여정은 처참할지 몰라도 그를 둘러싼 외면은 그렇지 않다. 다만, 로이의 여정에 필수불가격적으로 수반되는 죽음들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단면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면으로의 여정


극중 로이의 내면과 여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로이가 임무를 맡아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해왕성으로 떠나는 여정을 로이가 내면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여정과 동일시 했다고 본다. 그곳에 이성의 끈을 놓고 괴물이 되어버린 최고이자 최전방의 문명인이었던 우주비행사 과학자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로이 또한 아버지처럼 인간과 문명에 등을 돌려버린 채 살아온 지난날이 존재한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며 그 실체에 도달하고는 선택해야 한다. 아버지와 함께 과학이 알아내지 못한 것을 찾아 헤맬 것인가, 지구로 돌아와 현실에 두 발 붙이고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갈 것인가. 현재 SF우주영화들의 대부분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그럴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영화에 담긴 철학적 명제와는 결이 상당히 다른 유치한 메시지를 전형적인 기승전결로 전달하는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 


한편 영화의 철학적 명제는 조지프 콘래드 소설 <어둠의 심연>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떠오르는 게 자연스럽다. 서구문명이 야만스럽다고 단정한 원시적 자연으로 향한 서구인과 그곳에 사는 원시인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 작품들 말이다. 이 작품들이 서구문명과 제국주의 나아가 민족차별주의의 야만성을 고발하고자 했다면 <애드 아스트라>는 '문명'에만 천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참 재미없는 영화일 것 같다. 괜히 어렵게 꼬아 놓은 겉멋 든 영화일 것 같다. 사실이 아니다. 스펙터클하곤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따분하지 않은 액션과 긴장감 조성하는 시퀀스가 꾸준히 이어진다. 브래드 피트 30여 년 연기 경력 최초의 SF라는 점은 그 자체로 흥미요소이다. 진중하기만 한 그의 모습이 오랜만이다. 로이의 여정은 일방통행이지만 그의 여정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철학적이다 못해 문학적이다. <애드 아스트라>는 통찰력 충만한 '인문(문학, 역사, 철학)'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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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우주영화, 경이, 내면, 브래드 피트, 아버지, 애드 아스트라, 여정, 우주, 인문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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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힘든' 삶으로의 나아감까지 <그래비티>

오래된 리뷰 2018. 12.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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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로 시작된 3D 혁명, 그 유산은 2012년 이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2013년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3D 혁명의 유산을 목적 아닌 수단으로 이용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삶'의 경이로움을 말하는데, 평생 뇌리에 남을 기적 같은 비쥬얼을 선사한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올해 사이좋게 재개봉을 했다는 공교로움이 함께 한다. 


이중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2013년의 올해 최고에 이어 2018년의 올해 최고로 등극했는데, 필모를 들여다보면 알다시피 굉장히 과작하는 감독이다. 기획과 제작하는 영화에 비해 연출하는 영화는 많지 않다. 


90년대 최고의 음수대 키스신으로 유명한 <위대한 유산>, '해리포터' 시리즈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지만 어두운 톤 때문에 흥행성적은 가장 낮았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그래비티>의 성공 이후 10년 만에 국내에 개봉되었던 명작 <칠드런 오브 맨>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밖에도 그가 연출한 작품들이 5개도 되지 않으니 25년 여 동안 10 작품 정도 내놓은 것이다. 와중에 <그래비티>는 영화 역사상 CG와 3D에 있어서도 '우주 영화'라는 장르에 있어서도 한 기수가 넘어가는 기준이 될 만한 중요 영화이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 개인의 필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영화일 것이다. 


'편안한' 죽음과 '힘든' 삶 사이에서


'편안한' 죽음인가, '힘든' 삶인가.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우주 왕복선 익스플로러에 탑승해 우주에서의 첫 번째 임무인 허블 만원경 수리를 작업 중인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 그녀와 함께 마지막 임무를 수행 중인 우주 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 임무를 마칠 때까지 아직 한 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인 상황에서, 휴스턴의 우주비행 관제센터에서 경고가 날아온다. 


러시아 측에서 자국의 사용하지 않는 인공위성을 부술 요량으로 미사일을 쏴 거대하고 많은 파편들이 생성되어 빠른 속도로 지구 궤도를 돌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즉시 임무를 중지할 것과 익스플로러에 탑승해 빨리 지구 궤도로 재진입할 것을 명한다. 하지만 이내 파편들이 그들을 덥쳐 뿔뿔이 흩어진다. 


우주미아가 된 스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맷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 그녀를 구해준다. 익스플로러로 돌아가봤으나 모두 죽고 모두 박살났다. 그들은 비록 산소가 다 떨어져 가지만 멀리 떨어진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그들은 '함께'지만 과연 언제까지 함께일 수 있을까. 


90분마다 더 거대하고 많은 파편들이 더 빠른 속도로 그들을 덮칠 예정인 와중에 산소는 다 떨어져 간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실날 같은 방법을, 즉 기적을 수없이 되풀이해야만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힘든' 삶을 영위할 것인가. 


삶과 죽음의 대치들


영화에 수많은 삶과 죽음의 대치들이 보인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드넓다' 또는 '끝없다'는 표현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지구 궤도 밖 우주 한복판, 삶과 죽음에 어떤 차이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티끌보다 작고 못한 존재인 한 인간이 있다. 그녀, 라이언 스톤 박사는 지구에서 어린 딸을 허무하게 잃고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주의 고요함이 좋다. 


영화는 광활한 우주와 아름다운 지구가 주배경임과 동시에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와중에, 다름아닌 우주와 지구 사이를 여러 가지 의미들로 대치시켜 놓는다. 기본적으로 이 재난 상황과 스톤 박사의 상황에 비춰볼 때, 우주는 죽음으로 지구는 삶으로 대치할 수 있겠다. 


그리고 티끌 같은 소리 한 점 찾을 수 없는 우주적 고요함을 역시 죽음과 다름 없는 단절 상황에, 시시콜콜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는 스톤, 맷, 우주비행 관제센터 간의 대화는 우주적 고요의 단절과 대비되는 연결 상황으로 바꿔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드디어 제목 '그래비티'의 의미에 다다른다. 지구로 향하는 끝없는 타의지인 중력은 다름 아닌 '삶' 그 자체이다. 반면, 우주미아가 되어 우주를 유영할 때나 죽어서 우주를 허망하게 떠돌 때나 모두 무중력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죽음'과 다름 아니다. 영화는 이처럼 모든 것들에 삶과 죽음이 대치되어 있다.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영화


결국, '삶'이다. 그래도, '삶'이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 영화가 CG와 3D의 영화 외적으로 영화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충분히 느끼고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정 '위대'한 점은, 영화 내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에서 '삶'에의 끝없고 끈기있는 나아감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가 계속 죽음을, 그러니까 우주의 고요함과 재난 상황과 제어할 수 없는 무중력과 이어지는 죽음, 단절을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은 죽음에 가장 직면했을 때 비로소 삶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 어차피 혼자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쓴웃음을 유발시키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이 명제를, 영화는 진지하게 그래서 끔찍하다고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삶의 '당연함'이 아닌 그럼에도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단절된 혼자와 연결된 혼자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과 외로움을 동반하는 절대적 큰 차이가 있다. 


결론에 비춰 영화에서 말하는 '삶'을 조금 더 들어가보면, 스톤 박사의 상황은 단순히 죽음에서 삶으로의 방향 선회가 아닌 죽음에 몇 번이고 이르렀다가 다시 사는 부활 또는 재탄생의 의미가 있다. 그녀는 적어도 세 번(우주미아, 산소부족, 연료부족) 이상 사실상의 죽음에 이르렀는데, 다시 살게 된다. 


삶에의 향함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이성적 본능인 것일까, 본능적 이성인 것일까. 스톤 박사가 다시 살게 되는 몇 번의 장면들은 이성 또는 본능 어느 한 면만으로는 완벽한 설명이 부족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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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놀란표 평작 <인터스텔라>

오래된 리뷰 2018. 1.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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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10년 전 <다크나이트>부터였던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던져줄 거라고. 2년 뒤에 나온 <인셉션>은 그 기대에 부합하는 최상의 작품이었다. 아니, 놀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메멘토>부터 우린 그에게 기대를 해왔고 그는 항상 부합해 왔다고 보는 게 맞다. 


2017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 할 만한 <덩케르크>로 '부활'하기까지 그에겐 사실상 여러 부침이 있었다. 그가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기획하고 프로듀서하고 제작했던 영화들이 흥행과 비평에서 쓴맛을 맛본 것이다. 그 한가운데 그가 연출한 <인터스텔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1000만 명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가 놀란의 '흑역사'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놀란이라면'에 부합하지 못한 흥행과 비평 성적을 거두었다. 북미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고 그나마 월드와이드 흥행이 잘 되었다. 영화는 놀란의 엄청난 필모에 비해 명백한 '평작'이다. 그럼에도 <인터스텔라>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이유는, 영화가 던지는 이야기들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가지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줄거리를 알 필요가 있다.


실현 가능한 최신·최고의 우주적 상상력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세기에 저지른 잘못으로 모든 게 무너진 미래의 머지 않은 미래의 어느 때, 인류는 끝없이 불어닥치는 먼지와 옥수수밖에 남지 않은 식량 고갈로 앞날이 캄캄하다. 아들 딸과 함께 옥수수밭을 일구며 농부로 살아가는 전직 NASA 연구원 쿠퍼(매튜 매커너히 분)는 집에서 일어난 초자연적인 일이 중력에 의한 좌표를 말하는 걸 알고 그곳을 찾아간다. 알고 보니, 그곳은 극비로 운영되고 있는 NASA였다. 


NASA는 다목적 우주선 인듀어런스호를 만들어 지구를 떠나 '새 집'을 찾기 위한 마지막 탐험을 준비하고 있다. 쿠퍼는 모두를 뒤로 하고 막중한 임무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48년 전에 생겨난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가고자 한다. NASA는 이미 여러 행성에 여러 탐험대를 내보냈었고 이번 탐험으로 그들 중 몇몇을 구출하며 그들에게서 행성의 정보를 얻어 '새 집' 여부를 판단하고자 한다. 


성공적으로 떠나는 탐험대 겸 구출대, 여지없이 실패를 맛보며 대원 중 한 명을 잃고 아무런 소득 없이 지구 시간으로 20년 넘게 써버리는 불상사도 겪지만 굴하지 않고 전진한다. 결국 성공에 가까워지지만, 뜻하지 않은 거대한 비밀 또는 거짓말을 알게 된다. 그들은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구는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가. 


영화는 실현 가능한 최신·최고의 이론을 바탕으로 상상 그대로의 우주를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3시간 가까이 다른 무엇도 아닌 그 신세계들만 감상해도 충분할 정도이다. 이 영화를 앞뒤로 1년의 차이를 두고 찾아온 <그래비티>와 <마션>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 고증과 상상력이다. 


압도적인 반쪽 짜리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놀란은 <인터스텔라>로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 중심엔 다른 누구도 무엇도 아닌 '인간'이 있었을 텐데, 그래서 볼 거리와 감상할 거리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으면 했을 텐데, 보는 이로 하여금 과학적으로 단련된 상상력의 구현과 함께 그와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랑과 가족애가 돋보였다. 


영화는 현재까지 물리학, 그중에서도 우주론에 입각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들이 다수 나온다. 인듀어런스호가 웜홀 입구로 가기 위해 화성 주변에서 화성의 중력을 이용하는 건 '중력기둥'이라 한다. 인듀어런스호가 계속 회전하는 이유는 '등가원리' 때문이다. 이것을 활용하면 인위적인 중력을 만들 수 있어 불편함 없이 우주선 생활이 가능하다. 그리고 '블랙홀과 웜홀'이 있다. 


<인터스텔라>는 블랙홀의 '중력렌즈' 효과, 즉 블랙홀을 원반층이 적도를 가로지르고 있고 블랙홀 주면으로 고리 모양의 층이 보이는 모습을 최초로 묘사했다. 웜홀을 이용한 시간여행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인데, 영화의 감수를 본 세계적인 학자 킵 손은 웜홀의 입구를 광속으로 운동시킬 수 있다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영화는 그의 주장에 입각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놀랍도록 비영화적인 이론에 놀란의 상상력이 입혀지니 경이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압도한다. 그런데, 거기에 '사랑'이라는 옷을 입히니 많이 어설퍼 보인다. 아니, 사랑이라는 건 옷 따위가 아닌 결정체이니 '과학'의 옷을 입히고자 했다는 게 맞다. 하지만 과학이 쏘아보낸 강렬함이 눈길을 모조리 뺏아가 버리니 사랑의 위대함이 오히려 묻혀버리고 만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한 마리 토끼만 그것도 의도치 않은 토끼만 잡은 셈이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실상 반쪽 짜리, 아니 반쪽도 못 되는 정도이지만, 그 반쪽 짜리가 엄청난 힘을 발휘했기에 이 정도 대접(?)을 받는 것이다. 적어도 그 힘과 영향력에 대해선 이의가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돌고 돌아 다시 '놀란'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놀란이 설 자리는, 놀란의 전후 작품들보다 훨씬 적다. 경이로운 볼 거리에 압도 당하고, 블랙홀과 웜홀 등에 관한 과학적 논란에 흥미를 빼앗기고, 점점 사랑의 산으로 향하는 영화를 향한 호불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 영화만큼은 귀결점이 놀란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누구도 아닌 놀란의 영화에서 놀란을 빼놓을 순 없다. 놀란의 생각과 의도를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건 큰 차이다. 그의 필모와 인터뷰를 살펴 봤을 때, '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결국 과학도 사랑도 모두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리라. 쿠퍼가 NASA에 가게 되어 우주 저 멀리까지 가게 된 것도 결국 알 수 없는 '그들'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 때문이지 않은가. 


문제는, 우주를 은하계를 심지어 시간을 관통하고 관장까지 하게된 인간의 중심성이 과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 <인셉션>과 달리 밖으로 밖으로 나간 <인터스텔라>의 성향과 맞지 않았을지도. 과도해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아무도 알아채려 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부분에서 놀란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다시금 '인간'에 천착한 놀란은 <덩케르크>로 성공과 부활을 만끽했다. 


그의 차기작도 인간에 천착할 것은 명약관화이다. 그가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다른 <다크나이트>를 보고 싶다고 하면 너무 큰 바람일까. 내러티브와 스타일에 매몰되지 않고 완전히 장악한 그의 면모를 말이다. 기대는 기대를 낳고 실망은 실망을 낳지 않는 법. 크리스토퍼 놀란을 향한 기대는 영원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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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상상력, 우주, 웜홀,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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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콘택트>

오래된 리뷰 2017.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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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익숙한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의 숨겨진 명작 <콘택트>. ⓒ워너브라더스



1980년대 '스타워즈'와 쌍벽을 이루며 그야말로 역대급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백 투 더 퓨쳐'. 그 단편적인 재미만큼은 그 어느 콘텐츠도 따라잡을 수 없을 영화 시리즈였다. 스타워즈에 조지 루카스가 있었다면, 백 투 더 퓨쳐엔 로버트 저메키스가 있었다. 이후 그는 작품성으로 선회하는데, 우리가 모를 리 없는 영화들이 포진되어 있다. 


1994년 <포레스트 검프>, 2001년 <캐스트 어웨이>,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 등이 그것이다. 이쯤까지가 그가 1990년~2000년대 초반 우리에게도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 도식을 만들고 알린 시기이다. 기본적인 대서사의 지붕 아래, 약간의 사랑과 약간의 유머와 약간의 감동과 약간의 사연과 약간의 전문지식 등이 생동하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즐기며 동시에 감정이입과 몰입까지 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을 영화 한 편이 있다. 1992년작 <죽어야 사는 여자>는 아니고, 2000년작 <왓 라이즈 비니스>도 아니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1997년작 <콘택트>이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장편소설을 영화한 작품으로, 전문적인 지식과 문학적 유흥의 완벽한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상과학 영화가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현실


현실과 지극히 동떨어진 일을 하는 우주과학자들, 하지만 그들도 현실과 지극히 연결되어 있다. ⓒ워너브라더스



앨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분)는 어릴 적 매일같이 모르는 이의 교신에 열중했다. 일찍 세상을 떠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끼고 좋아해줬지만 9살 때 세상을 뜬 아버지.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수학과 과학 분야에 인생을 건다. 과학이야말로 진리 추구의 해답이거니와 '거대하고 거대한 우주에 오직 지구 생명체만 존재한다는 건 공간 낭비다'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 신념은 지구 아닌 우주에의 인간 아닌 생명체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게 되는 것으로 발현되고, 그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나 메시지를 잡아내 결국에는 그들과 접촉하고자 하는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그녀는 보장된 자리를 내팽겨치고 미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은 일개 프로젝트 그룹을 이끌며 나라의 돈을 받아 천문대를 돌아다닌다. 


'위대한' 일을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과학자들, 하지만 그들도 자본의 지원이 없으면 나라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애로웨이처럼 출중한 실력의 소유자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소속되어 안정된 상황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일정 정도의 논문은 물론이고 행정과 정치도 병행해야 하는 곳이 그런 곳이다. 


애로웨이는 가히 그 출중한 실력으로 몇 년에 걸쳐 수많은 난관을 뚫고 중요한 발견을 해낸다. 외계 생명체가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신호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공은 고스란히 그녀의 프로젝트에 가차없이 지원을 끊어버린 국가에서 가로채버린다. 그러곤 군대까지 대동한 검열도 시행한다. 일개 개인의 위대한 발견은 곧 나라의 위대한 발견이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과학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상과학 영화가 보여주는 지극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종교와 과학, 이중적 잣대의 아이러니한 차별


기독교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종교가 최우선이지만 과학 또한 그들이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워너브라더스



애로웨이가 수신한 신호는 1936년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 연설이 송출된 후 다시 보내진 것이었다. 지구를 침공한다는 둥 비상식적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내뱉으며 애로웨이의 공을 깎아내리는 국가, 이에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그 영상의 프레임 사이에 있는 디지털 신호를 알아낸다. 그 신호는 다름 아닌 운송 수단, 외계를 오갈 수 있는 운송 수단 설계도였던 것이다. 


이전과 똑같이 다시금 애로웨이의 공을 뺏어가는 국가, 각 나라의 대표를 뽑아 외계로 향하는 운송 수단에 탑승시킨다. 하지만 애로웨이는 그 대표에 낄 수 없었다. 그녀가 종교를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다는 이유였다.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대표를 뽑는 대통령 직속 고문단에는 당연히 종교인 팔로 조스(매튜 맥커너히 분)도 있었다. 그와 그녀는 사랑도 나눈 사이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나라에서 과학자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이중적이기 그지 없다. 과학자로서 객관적인 데이터로 판단하건대 신이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을 텐데, 그럼에도 절대다수가 절대자를 믿는다는 주장 하에 그녀의 신념은 묵살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그녀는 가장 큰 공을 세우고 나서도 역사적인 믿음과 대다수의 사람들의 바람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대표로 선별되지 못한다. 과학자의 비애임과 동시에 '종교는 종교대로 과학은 과학대로'라는 절대적 이성적 잣대의 아이러니한 차별이다. 


여기서 영화가 나아갈 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연히 보인다. '조화'. 절대로 맞물리지 못할 것 같은 과학과 종교의 화합. 신은 믿지 못하되 외계생명체 존재는 믿는 애로웨이 박사와 신에의 절대적인 믿음의 팔로 조스 신부가 방향과 신념은 다르되 '진리에의 추구'라는 지향점은 같다는 결론까지. 그건 서로를 존중하고 믿는 것일 테다. 자신이 믿는 바의 중심을 지키면서 상대의 중심에게 다가가기.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영화는 주인공 애로웨이를 통해 말한다. 과학과 종교에의 화합을 말이다.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우주에 속해 있는 위대한 존재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 ⓒ워너브라더스



인간 대표들의 외계 탐험은 결국 무산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애로웨이는 비밀리에 진행되는 똑같은 종류의 외계 탐험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송선에 탑승하게 된다. 그녀는 기이하고 기이한 일을 겪고 돌아오는데, 전세계 모든 이가 지켜본 그녀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주장하는 18시간은 1초도 되지 않은 찰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청문회가 열리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 설전이 이어진다. 


과학자 애로웨이 박사의 과학자답지 않은 발언이 이어진다.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와중에 오로지 그녀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1조 달러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간 초국가적 프로젝트인 것,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과학자적인 신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없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직접 경험했고 다같이 나누고 싶기 때문에. 


"제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린 우주에 속해 있는 위대한 존재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전 그 경험을 모든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게 바로 제 희망입니다."


과학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발언이다. '절대자'를 믿는 종교인과 '절대적' 데이터를 믿는 과학자. 그녀는 과학자로서 과감히 한 축을 무너뜨리는 생각과 발언을 한 것이다. 과학의 끝에 영적 경험이 있을 수 있고, 영적 경험을 과학으로 증명할 수도 있을 테다. 또한 인간 그 자체로서의 위대하고 완벽한 존재의 발현과 동시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의 발현, 이는 과학과 종교 모두를 인정하는 태도다. 그걸 모든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게 그녀의 희망이고 이 영화가 바라는 바이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지은 칼 세이건은 무신론자였지만 마냥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과학적으로도 생각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신이 자신을 본떠 만들었다는 '위대한' 존재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지를 말이다. 그건 외계생명체와의 끈임없는 접촉과 대화 시도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코 절대자의 부정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겠다. 상호존중과 자가보완이 함께 나아가는 길이다. 그것이 모든 이의 행복과 그 기반 위의 진보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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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로버트 저메키스, 아이러니, 우주, 인정, 종교, 차별, 콘택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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