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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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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년마다 나타나는 용의자... 누가, 어떻게, 왜? <문 섀도우> 2019.10.08
  •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일상이란 <한강에게> 2019.04.19
  • 덴마크산 독특한 현대적 스릴러 영화 <더 길티> 2019.04.15
  • 호불호가 갈릴, 혁신적 인터랙티브 방식의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2019.01.25
  • 외로운 이들의 '진짜 어른' 되기 <어른도감> 2018.09.21
  • 사랑과 시공간을 내보이는 '감각'의 절정 <고스트 스토리> 2018.01.10
  • SF로 풀어낸 소통, 시간, 사랑... 인류보편적 고전이 될 영화 <컨택트> 2017.02.03
  • 이 소울메이트의 사랑 방정식, '따로 또 같이' <원 데이> 2016.08.24
  • 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 <중경삼림> 2016.06.17
  • 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살인자, 그 섬뜩한 마지막은?(2) 2013.08.21

9년마다 나타나는 용의자... 누가, 어떻게, 왜? <문 섀도우>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0.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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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문 섀도우>


영화 <문 섀도우> 포스터. ⓒ넷플릭스



공포, 스릴러, SF 장르에 두각을 나타내며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어 이름을 알린 감독 짐 미클, 그는 20대 후반에 비교적 성공적인 장편 데뷔에 성공해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4편 작품 중 3편이나 개봉해 관객들에게 선보였을 정도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비록 개봉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만한 스코어였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최신작은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로 선보였다. 오리지널이면 영화, 드라마를 불문하고 장르에 천착하는 넷플릭스의 성향과 맞아떨어진 것일까 생각해본다. 한편으론, 오히려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과 편집, 심지어 시각효과까지 도맡아 하는 짐 미클의 성향을 최대한 맞춰줄 수 있는 게 넷플릭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짐 미클 감독의 최신작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문 섀도우>가 선보였다. 역시 장르물로 SF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다. 영화 <더 프레데터>의 주인공 보이드 홀브룩이 주연으로 분하고, 두 베테랑 마이클 C. 홀과 보킴 우드바인이 옆을 받치며, 두 신인 여배우가 뒤를 받치는 모양새이다. 연기에 흠잡을 곳은 크게 없었지만, 역시 넷플릭스 장르 영화답게 흥미진진한 초중반과 다른 미지근한 후반부가 불만이겠다. 


9년마다 나타나는 절체불명 용의자


2024년 자연재난 상황은 아닌 듯 내전에 의한 혼란인 듯한 상황이 도시 거리에 펼쳐진다.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988년 필라델피아, 어느 날 피아니스트와 버스 기사와 주방장이 동시다발적으로 눈과 입과 코와 귀에서 다량의 피를 쏟으며 죽어간다. 경관 로크는 형사 진급을 앞에 두고 열정적으로 수사하는 와중,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뇌수를 뿜으며 죽어갔다는 점과 목 뒤에 세 개의 자상이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누군가에 의해 알 수 없는 물질이 투여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로크는 결코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로크, 누군가에 의해 목 뒤에 세 개의 자상이 생긴 젊은 여성을 만난다. 그녀에게서 후드티를 입은 젊은 흑인 여성이라는 단서를 알아내지만, 그녀는 곧 죽고 만다. 경찰은 단서 하나로 후드티를 입은 젊은 흑인 여성들을 체포하는 한편, 로크는 용의자로 확인되는 자를 쫓는다. 용의자는 로크의 미래를 아는 듯한 얘기를 전하고, 결투 끝에 로크는 용의자를 죽인다. 같은 날 로크의 딸이 태어나고 아내는 죽는다. 


9년이 흐른 1997년, 형사 로크는 여전히 경찰 일을 하며 딸과 함께 살고 있다. 9년 전 용의자가 죽고 딸이 태어나고 아내가 죽은 그날이 다시 왔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9년 전 죽은 용의자가 다시 나타나 동일한 수법으로 사람들이 죽어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수사하는 와중, 어떤 박사가 나타나 이상한 말을 한다. 그의 연구가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달과 관련된 현상인데, 이번 경우엔 9년 간격으로 나타나며 그때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다리가 생긴다는 것. 즉, 미래에서 온 용의자가 특정한 날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처음엔 믿지 않았던 로크는 다시 만난 용의자의 말을 듣고 확신이 생겨 다음 9년 이후의 그날을 준비한다. 


무리 없는 모양새의 용두사미 영화


<문 섀도우>는 흥미로운 소재와 흥미진진한 전개와 거시적 개연성의 합에 이은 맥 빠지는 결말과 미시적 개연성의 불합이 특징인 영화이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딱 들어맞고, 유종의 미와는 하등 거리가 멀다 하겠다. 수많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이 호평을 받으며 에미상과 골든 글러브에서 수상하고, 역시 많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이 유수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대체적인 모양새는 큰 무리 없다. 특히 초중반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연쇄 살인과 특유의 감각으로 뒤를 쫓는 경찰의 모습이 긴장감 조성에 최적화 되어 있는 듯한 배경음악과 함께 나름 긴장감 있게 보여지며 진행된다. 미스터리에 걸맞는 최소한의 복선을 곳곳에 배치하고, 스릴러에 걸맞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슬슬 SF에 걸맞는 스토리를 구성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볼 만한 영화를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9년씩 바뀌어 가는 로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류의 장르 특성상 뒷부분을 일정 부분이나마 밝히는 건 완벽한 스포일러가 될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를 즐기는 데 큰 영향을 끼치기에, 내용은 말하지 않고 그저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진 않다는 정도만 말하겠다. 물론 내용 자체보다 로크의 시선에 천착해 완전히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게 영화의 묘미라면 묘미이다.


무언가를 바뀌기 위해, 현재에서 과거로


현재에서 과거로 가 무언가를 바꾸고자 한다는 설정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가 현재의 위협이 아예 탄생하지 못하게 막는 게 목적이다. 그런가 하면, 만화 <드래곤볼>에서 중반부쯤 미래의 트랭크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와 미래에 위협이 되는 싹을 아예 없애버리려 한다. 두 작품 모두 1980년대 중반에 나왔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시간만 과거, 현재, 미래로 오가며 과거를 바꾸면 현재와 미래가 바뀔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같은 차원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달라진 과거는 기존의 현재와 미래를 다르게 하지 못한다. 달라진 과거에 맞는 달라진 현재와 미래가 따로 존재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각각의 차원이 따로 존재한다. 


하여, <문 섀도우>는 더 확장하지 않고 이 정도에서 멈추고 마무리한 게 차라리 나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싶다. 볼품은 없을지언정 불품 없는 게 오히려 방패막이가 되어 여타 문제점들을 막아준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주요 캐릭터에 천착할 수 있게 보다 판을 잘 깔아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전하면서, 한편으론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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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SF미스터리스릴러, 과거, 넷플릭스 오리지널, 문 섀도우, 미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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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일상이란 <한강에게>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4. 1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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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한강에게>


영화 <한강에게> 포스터. ⓒ인디스토리



진아(강진아 분)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녀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술도 마시고, 합평회나 낭독회에도 나가 자리를 빛낸다. 하지만, 왜인지 잘 타던 자전거를 팔아버린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그녀에겐 10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 길우(강길우 분)가 있었다. 하필 그와 크게 싸우던 나날이 이어질 때 그에게 사고가 났다. 결과는 의식불명, 진아는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자기 탓인 것만 같다. 매일, 매순간이 괴롭다. 시가 써지지 않는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백이면 백 그녀의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묻는다, 괜찮냐고. 안 괜찮다고 할 수 없으니 괜찮다고 말하는데,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 10년 동안 헤어질 거라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다툼을 벌인 후 영영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일련의 과정. 나아갈 수도 멈출 수도 뒷걸음칠 수도 없다. 


멈춰버린 시간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시인 진아.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영화 <한강에게>는 생각지 못한 사고로 모든 게 멈춰버린 시인 진아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영화의 첫 장면이 광화문에서의 416 낭독회인 만큼, 5년 전 그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니고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일상이란 무엇일까. 


그래도 감히 상상해본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인식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눈물만 흘리고 있을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할 것 같지만, 한편으로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며 위로를 바라고 싶을 것 같다. 끝없는 모순에 흔들린다. 


무엇보다 죄책감이 들 것이다. 그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것, 잘해주기는커녕 심술부리고 짜증내고 화를 내며 멀리하려 했던 말과 행동이 하나하나 떠올라 가시처럼 박혀올 것이다. 이 정도가 감히 상상해본 멈춰버린 시간이다. 쓰는 것으로도 아프다. 연기는 어떨까.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다


진아는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느니, 그래도 살아진다느니 하는 말이 있다. 누구나 언젠가 나보다 더 또는 나만큼 소중한 사람을 잃을 것이기에 저런 말들은 고깝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위로를 위한 위로가 아닌 경험에서 나온 말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의 극렬한 경험이라고 해도 고스란히 전해져 완벽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전하는 바는 꽤 적확한 편이다.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진솔하게 전달된다. 처절할수록 조용하고 아플수록 움츠러들며 슬플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영화는 느리면서도 긴 호흡의 롱테이크를 전반적으로 사용해 시인 진아의 상태와 상황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게 또 전달받을 수 있게 하였다. 먹고 싸고 자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게 있을 테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와중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들이 애처롭다.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


이 영화가 유의미한 건 진아가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한강에게>가 유의미한 건 진아가 아픔을 대하고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그녀는 외부성으로서의 일상을 계속 살아간다. 떨쳐버릴 순 없을지라도 과거의 기억을 끌어안고 현재에 두 발을 굳건히 붙인 채 말이다. 누군가에겐 괜찮다고, 누군가에겐 괜찮지 않다고 말하며. 


하지만, 그녀는 내부성으로서의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다. 시인인 그녀에게 외부의 일상 아닌 내부의 일상은 곧 '시'일 텐데, 전혀 진전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 다 거짓말 같고 또 한없이 죄책감만 들 뿐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라면 본인의 경험을 한 번쯤 짚고 넘어간다고 하며, 이런 큰 경험이야말로 기막힌 자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는 사람을 향해, 조용히 그리고 정중하게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 같냐고. 


세상에, 인간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강은 흘러간다. 나는 멈춰버렸지만 언제나 한강은 흘러간다. 바다는 갔다 왔다 하지만, 한강은 그런 바다를 향해 끝없이 흘러간다. 강을 보고 있으면 동일반복되는 흘러감에 답답하기도 하지만 흘러가는 모습 자체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흘러가기만 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극 중 시인 진아가 쓴 '한강에게' 일부를 옮겨본다. 박근영 감독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책의 첫 장에 그 사람을 써서 보냈다

그가 손목을 잡아 당겼다

그의 말이 떠오르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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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산 독특한 현대적 스릴러 영화 <더 길티>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4. 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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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길티>


영화 <더 길티>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긴급 신고 센터 112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스게르(야곱 세데르그렌 분), 그는 본래 경찰으로 재판 중인 사건 때문에 경질되어 이곳에 있다. 내일 재판을 잘 받으면 무리없이 복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 대한 재판인지 아스게르는 퇴근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그는 이런저런 '별 볼 일 없는' 긴급 전화를 받고 있다. 


와중에, 어떤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 아가"라고 말을 건넨다. 흔하디흔한 장난전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대화의 양상은, 곧 그녀가 납치 상태에 있다는 걸 알아치린 후에도 바뀌진 않지만 긴박하게 흘러간다. 이후 아스게르는 이벤이라고 알린 납치된 여인을 두고, 다른 지역의 긴급 신고 센터 교환대와 동료 경찰과 이벤의 딸, 이벤의 남편 등과의 통화를 이어간다. 


퇴근 시간을 많이 남겨놓지 않고 벌어진 이 사건에 아스게르는 자리를 옮겨가며 매진한다. 교환대로서 그의 일은 사건에 개입하는 게 아닐 테지만, 본직이 경찰인 만큼 사건에 개입하는 것인지 그가 연류된 사건에 대한 재판과 관련되어 있어 개입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아주 개략적으로만 유추할 뿐. 납치된 여인은 잘 구출될까? 그는 내일 재판을 잘 치를까? 그전에 그는 오늘 퇴근을 잘 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특이하고 기대되는 영화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덴마크산 스릴러 <더 길티>는 영화 개봉 전 특이한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개봉미정>이라는 현실반영 제목으로 극장 관계자들이 윗선의 개봉 반대를 돌리기 위해 마케팅을 한 것인데,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어 '강제개봉'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도무지 보지 않고선 배길 수 없게 영상과 글을 내보내 필자도 몇 번이나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사전 마케팅을 통해 가장 크게 부각시킨 건, 오로지 통화를 통해서만 영화가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실제로도 그랬는데, 동료들이 몇몇 얼굴을 비추는 걸 제외하곤 오직 아스게르의 얼굴만이 스크린을 채운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스게르와 누군가의 통화들이다. 


초반의 몇몇 통화들은 본격적인 사건에 발을 담구기 전 숨고르기용으로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지나쳐도 크게 무리는 없지만, 덴마크의 현실을 살짝이나마 엿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일지 모른다. 


영화는 제34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전년도 수상작이 다름 아닌 <서치>이다. 서치 또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스릴러로, 스크린을 오직 PC와 모바일과 CCTV로 채웠다. 그 점에서 <더 길티>와 <서치>는 영화적 기법 측면에선 동일선상에 서 있지만 또 영화적 기법을 완성시키는 주요 소재의 측면에선 정반대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여하튼 제35회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기대된다.


한정된 것들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과 등장인물과 감각과 소통 등의 제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동료들과 함께 있는 사무실, 혼자만 있는 방, 블라인드 친 방, 붉은색으로 점철된 방, 사무실 밖으로 옮겨다니며 한정된 공간임에도 그 자체를 '기-승-전-결' 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충실하게 대입시켜 이해와 몰입을 도왔다. 


실제 사건이 진행되는 시간과 아스게르가 근무하는 시간, 그리고 관객이 영화를 보는 시간이 일치하게끔 하여 감정이입을 완벽하게 맞췄다. 여기에 1인극에 가까운 등장인물의 최소화도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제약은 감각과 소통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각은 모아지는 게 아니라 퍼진다. 감각이 무뎌짐을 느낄 수 있는데, 기술의 발전이라는 게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 대신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감각을 퇴화시킬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같다. <더 길티>는 실로 오랜만에 '집중'이라는 걸 하게 만든 영화이다. 오직 듣는 것으로 상황과 감정을 상상해내야 하니까 말이다. 


듣는 것도 듣는 것이지만, 오직 통화만 할 수 있으니 만큼 소통의 제약도 여러 의미로 치명적이다. 소통의 제약도 감각의 제약과 일맥상통하는데, 현대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소통의 창구가 많아지는 만큼 진정한 소통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 아닌가.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방편으로 감각과 소통의 제약을 택했지만, 동시에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죄책감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제목이 <The Guilty>로 알다시피 '유죄' 혹은 '죄책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 덴마크어 원제는 <Den skyldige>로 '범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다시피 우리나라는 영어 제목을 채택하였는데, 보다 더 정확하고 보다 더 영화가 가지고 또 주는 의미를 잘 드러낸 듯하다. '유죄' 아닌 '죄책감'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이벤 납치 사건이라는 메인과 아스게르 재판 사건이라는 서브로 진행되는 영화는, 막판에 가서 두 사건에 생각할 수 있고 유추할 수 있지만 꽤나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반전은 영화 밖 관객은물론 누구보다 영화 안 아스게르에게 큰 충격를 주고 영향을 끼치는데, '죄책감'이 발현되어 사건이 터지기도 하고 해결되기도 한다. 


이는 시종일관 감독이 의도한 여러 중의적 의미 표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바, 경찰이라는 공공의 개념과 큰 실수를 저지르고 공공으로서의 할 일을 넘어선 개입이라는 사사의 개념을 오고간다, 또 아우른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보다 더 영리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의 향연이다. 한껏 기대했던 영화가 한껏 풍족한 볼 거리를 선사한 격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아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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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갈릴, 혁신적 인터랙티브 방식의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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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포스터.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등과 함께 넷플릭스 전성시대를 열어젖히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4까지 나온 현재 1, 2는 영국 channel 4를 통해 방영되었고 3, 4는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었다. 


미디어와 정보기술의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SF 옴니버니 드라마 시리즈인 이 작품은, 시즌 3의 네 번째와 시즌 4의 첫 번째가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에미상 TV영화 부문 작품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한다. 


2011년 처음 공개된 <블랙 미러>는 2년, 3년, 1년마다 다음 시즌을 공개했는데 시즌 5는 다시 시즌 4 이후 최소 2년 이후인 올해 또는 내년에 공개될 것 같다. 그 공백을 메우려는지 시즌 2와 3 사이인 2014년 말에 화이트 크리스마스 스페셜 단편을 공개한 적이 있고, 이번 2018년 말엔 영화를 공개했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가 그것이다. 


우선, 이 작품은 드라마 <블랙 미러>를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블랙 미러> 시리즈가 애초에 옴니버스식으로 서로 연관 없는 단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띄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 영화가 드라마 <블랙 미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린 프로그래머의 게임화 작업


때는 1984년 6월 미국, 엄마 없이 아빠하고만 사는 어린 프로그래머 스테판 버틀러는 제롬 F. 데이비스라는 작가가 쓴 인터랙티브 판타지 게임 소설 <밴더스내치>를 게임화하고자 한다. 그는 잘 나가는 신흥 게임회사 터커 소프트를 찾아간다. 


사장 모함 터커와 현존 최고의 프로그래머이자 터커 소프트 수석 프로그래머 콜린 리트먼을 만나 자신의 뜻을 전하는 스테판, 그들은 이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인터랙티브 게임에 관심을 갖고 그 자리에서 게임화를 수락한다. 


스테판은 이 방대하고 촘촘한 스토리가 모조리 머릿속에 있다고 하며 혼자서 작업을 완료해 납기일에 맞추겠다고 하며 집으로 와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와중에도 어린 시절 엄마와 관련된 충격적 기억으로 상담을 다니기도 한다.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던 어느 날엔 길에서 콜린을 만나 그의 집으로 함께 간다. 콜린은 스테판에게 마약을 권하며 그것이 작업을 도와줄거라 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설파한다. 시간은 구조물이며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죽고 다른 선택을 하러 돌아갈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지 못한다, 거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다, 정부는 음식에 약을 넣고 사람들을 감시한다 등. 


이후 스테판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다고 믿게 되며 모든 걸 의심하기 시작한다. 상담사가 주는 약, 아버지가 잠가놓은 문. 그런가 하면 작업 도중 자신도 모르게 컴퓨터를 부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되는데...


혁신적 '인터랙티브'


시청자가 영화의 주요 길목에서 직접 선택한다는 '인터랙티브' 방식, 정녕 신선하고 혁신적이다.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의 한 장면. ⓒ넷플릭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뉠 게 분명하다. 우선, 영화 내적으론 볼 만한 것도 생각할 만한 것도 없다. 스토리, 사건, 캐릭터 그 어느 면에서도 봐줄 만한 게 없다. 완전히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넷플릭스'가 내놓은 지극히 실험적인 이벤트성 영화이다. 이 사실을 반드시 숙지하고 영화를 봐야 한다. 그리고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넷플릭스'를 통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영화가 초점을 맞춘 건 '인터랙티브'다. 영화의 외적 방식과 내적 주제 모두와 관련이 있다. 영화 속 주요 소재인 게임북 <밴더스내치>의 게임화와 일맥상통하는데, 제공자인 넷플릭스와 사용자인 시청자들의 상호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이다. 즉, 사용자의 직접적인 참여 선택에 따라 영화의 주요 스토리라인이 바뀌며 자연스레 결말까지 바뀐다. 


어릴 때 종종 했던 인터랙티브 게임북이나 "그래, 결심했어!"로 유명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TV인생극장'이 생각나게 하는 이 콘텐츠는, 사용자가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창작자와 제공자만의 고유한 전유물인 '신'이 되는 경험을 사용자도 일정 정도 이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여러 면에서 혁신적이다. 


미디어와 정보기술적 질문들


이 영화를 내적 아닌 위와 같은 외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감상하면 일찍이 해본 적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우린 영화 콘텐츠 방식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극중 콜린이 설파하는 말들 중, '시간은 구조물이며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죽고 다른 선택을 하러 돌아갈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지 못한다'는 생각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상당한 철학을 함유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시간과 차원에 관한 관한 과학적, 자유의지에 관한 정치적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이기도 하다. 


이 모든 철학, 과학, 정치적 질문을 현대로 옮기면 드라마 <블랙 미러>의 주요 소재이자 주제인 미디어와 정보기술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삶은 미디어에 의해 지배 당하고 정보기술은 시간을 구조화하여 수많은 선택지를 주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게 한다. 그런 반석 위에 이 영화는 실험적이지만, 이벤트성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평균 러닝타임은 90여 분이고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이 될 수 있고 두 시간이 넘을 수도 있다. 제공된 총 러닝타임은 다섯 시간이 넘는다 하고, 공식적인 엔딩만 다섯 가지라고 하며, 비공식적 엔딩은 열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필자는 외적 방식에 한껏 기대감을 갖고 영화를 보았고 60% 정도 만족을 했다. 최초의 엔딩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보았는데, 중간의 중요 분기점으로부터 다양하게 퍼지는 내용과 결말을 몇 개 더 보는 데도 몇 십 분 정도 걸렸을 뿐이다. 짧고 굵게 신선한 경험을 해보았는데 전혀 후회는 없고 앞으로 보다 괜찮은 인터랙티브 영상 콘텐츠들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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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넷플릭스, 미디어,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시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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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이들의 '진짜 어른' 되기 <어른도감>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9. 2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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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른도감>


영화 <어른도감> 포스터. ⓒ㈜영화사 진진



열네 살 경언(이재인 분)은 아빠를 잃고 혼자가 된다. 장례식 때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을 삼촌이라는 하는 재민(엄태구 분), 장례 이후 절차를 하나하나 도와준다. 그러면서 조의금이니 보험금이니 하는 것들을 넌지니 물어본다. 경언은 똑부러지게 대처한다. 경언은 그가 어딘지 못마땅하고 못미덥다. 


미성년의 나이로 혼자가 된 경언, 재민은 후견인이 되어준다는 명목 하에 경언의 집에 들어앉는다. 그러다가 아빠의 죽음으로 남겨진 보험금 8000만원 행방이 재미을 향했다는 걸 알게 되고 끈질긴 추적 끝에 재민을 추궁하지만 이미 어딘가에 몽땅 다 써버린 상태이다. 이에 재민은 우연히 알게 된 경언의 연기력(?)으로 함께 제비 작업을 할 것을 제안하고 경언은 받아들인다. 


작업 대상은 4층 짜리 건물주 싱글 약사 점희(서정연 분), 일명 철벽녀다. 재민은 조심스레 접근해보지만 번번히 막히고 만다. 그런 그녀가 왜인지 '딸' 경언에게는 반응을 보인다. 아빠와 딸로 위장한 재민과 경언은 본격적으로 점희를 공략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한다. 이 아이 같은 어른 재민과 어른 같은 아이 경언의 앞날은 어떨까. 


안정과 편안함을 앞세운 독립영화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오랜만에 폭력 없이 코믹하고 예쁜 독립영화, 신파 없이 감동 어린 영화를 보았다. 탄탄한 기본기에 막무가내로 밀어넣는 사회적 개인적 메시지 없이 자연스레 느끼고 잔잔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의미들의 향연이 신선하고 이채롭다. 


<어른도감>은 영화적 해석을 위해 또는 감탄 어린 영화적 연출이나 각본 감상을 위해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은 영화라기보다 특유의 안정과 편안함을 즐기기 위해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은 영화이다. 


특별할 것 없는 무난함과 별다를 것 없는 익숙함을 앞세운 듯, 뻔함 속에 단백함과 잔잠함 속에 초롱함이 빛을 잃지 않는다. 즐길 만한 게 없을 것 같은 와중에 '잘 봤다'라고 저도 모르게 나온다면 어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 만듦새가 한몫 하는 것이리라. 


여러 단편을 통해 연출과 각본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김인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새삼 특이할 것 없는 당연함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극을 이끄는 세 주인공을 맡은 엄태구, 이재인, 서정연 배우의 안정감과 탄탄함은 완벽에 가깝다. 


외로운 이들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경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서 굴러왔는지 알 수 없는 경언의 삼촌(이라고 하는) 재민 또한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의 이해로 힘을 합쳐 작업을 하려는 점희도 싱글이다.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외로움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 이들을 사연 있는 외톨이로 그려낸다. 이들 셋에겐 공통점인듯 아닌듯 아이와 어른을 오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평범하다고 하는 아이와 어른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경언은 어른 같은 아이다. 아빠를 일찍 여의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어른 같았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빠가 철이 없지 않았을까. 그 아빠에 그 동생이라고, 재민은 아이 같은 어른이다. 형의 장례식 때 십수 년만에 경언 앞에 나타난 모양새부터 어딘가 꺼림직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경언과 재민은 극명하게 갈리는 캐릭터다. 그래서 입체적이진 않다. 반면 점희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첫인상, 재민과 경언의 작업으로 보여지는 허당끼 어린 모습, 경언과 이어지는 아픈 과거까지. 아이 같은 모습과 어른 같은 모습이 공존하는 그녀가 진짜 어른이 아닐까. 


쌓는 작업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진짜 어른'은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그저 시간이 흐르도록 놔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시간을,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드려고 노력해야만 그나마 어른 비슷한 거라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걸 '경험'이라고 부르면 맞을까. 베이컨에 따르면 인간 인식의 원천은 경험에 있다고 하는데, 경험이 쌓이듯 시간이 쌓이듯 무엇이든 쌓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무언가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경언과 재민은 이제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점점 다가갈 것이다. 부득이하게 있게 된 그 자리 말고, 그들이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 그 자리가 비단 '아이 같은 아이' '어른 같은 어른'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어른 같은 아이'보다는 '아이 같은 아이'가, '아이 같은 어른'보다는 '어른 같은 어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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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시간, 아이, 안정, 어른, 어른도감, 외로움, 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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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시공간을 내보이는 '감각'의 절정 <고스트 스토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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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스트 스토리>


2017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극찬 받는 <고스트 스토리>. ⓒ리틀빅픽쳐스



한적한 교외의 작은 집에서 단란하게 둘이 살아가는 작곡가 C와 M. 어느 날 집 앞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뜬 C. 그는 영안실에서 유령이 되어 깨어나 돌아다닌다. 그러곤 당연한듯 집으로 향하고 M을 지켜본다. M은 C, 그리고 C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견뎌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M은 새로운 사랑을 하고 그 사랑 역시 상실한다. 급기야 M은 집을 떠나고 C는 홀로 남는다. 집은 계속해서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도 C는 계속 그 집을 지킨다. 아니, 그 집에서 M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모르는 걸까. 한번 떠난 집에 그녀는 결코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녀는 올 수 없다는 걸. 그럼에도 그는 그 집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지극히 한정된 말과 몸으로만 표현해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랑일까, 시간일까, 공간일까. 


'유령' '이야기'


영화는 '유령'의 '이야기'다. 유령도 중요하고 이야기도 중요하다. ⓒ리틀빅픽쳐스



2018년 해가 뜬 지도 열흘이 되었지만, 2017년에서 완전히 헤어나올 수 없는 건 2017년 말에 나온 좋은 영화들 때문이겠다. <고스트 스토리>도 나의 발목을 잡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별 내용 없이 온전히 '감각'으로만 영화를 채우는 솜씨가 기막히다. 그 감각은 사랑과 시간과 공간이라는 큰 개념들을 아우른다. 


'유령 이야기'라는 상투적이고 예측가능한 제목은 이 영화의 노림수이자 전체적인 주제 및 느낌 등과 부합한다. 화려하고 예측불가능한 건 눈길을 가게 만들지만 몰입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진 못한다. 반면, 전형적인 건 신경이 사방으로 뻗지 않고 한 곳으로 모이는 결과를 도출한다. 이 영화는 그걸 실현시킨다.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령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유령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가 '유령'이어야 한다. 일념을 가진 채, 영원불변한 존재여야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고 우리가 그 이야기를 통해 여러가지를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독특하게 눈에 띄는 것들


화면비율이나 롱테이크와 같은 감각적 영화 기술이 눈에 띈다. ⓒ리틀빅픽쳐스



이 영화를 두고 '독특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도 같다. 초반부터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우선 화면 비율이다. 1.33:1 비율이라는데, 네 모서리가 둥그스름하게 처리되어 있다. 의식하지 못하게 클래식한 느낌을 전하며 시간이라는 개념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집요한 무동(無動) 롱테이크와 절제된 대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롱테이크의 대가라 하면, 알폰소 쿠아론이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등을 뽑는다. 그들은 완벽한 동선에 따라 인물의 움직임에 맞춰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롱테이크로 유명하다. 대단한 기술과 연기에 감탄을 보낸다. 


반면 이 영화의 롱테이크는 가만히 있는 카메라가 기본이다. 거기에 일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 영화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장면이 길게 등장한다. 어떨 때는 정물화를 찍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절제된 대사와 함께 조만간 행해질 움직임과 대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한편, 유령답게(?) 한순간 시공간을 뛰어넘는 전개는 앞엣것들과 대조를 이루며 또다른 몰입을 불러온다. 


이렇게 완성된 몰입과 집중은 감독이 내보인 감각의 결과이며 감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감각이란 무엇일까. 여러 예술 콘텐츠 중에서 영화만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고스트 스토리>의 대다수 장면들은 영화가 아닌 다른 콘텐츠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사랑, 그리고 시공간의 덧없음


사랑과 더불어 시공간의 덧없음이 영화의 주를 이루고 맥을 형성한다. ⓒ리틀빅픽쳐스



고스트가 된 C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M에게 말을 건넬 수도 M의 몸을 만질 수도 M의 머릿속이나 꿈을 통해서 표현할 수도 없다.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기다릴 뿐이다. 그는 그저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대로는 이별다운 이별이 될 수 없지 않은가. C는 M에게서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C는 M이 남기고 간 쪽지를 봐야 한다. 


시간의 덧없음은 사랑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라 할 수 있다.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고스트 C, 그에게 시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는 정반대로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이 아닌 인간사 나아가 최초와 최후의 역사로 보면 또한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결국 최후에는 모든 게 사라질 운명이라면 말이다. 무한의 시간을 가진 고스트도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의 집이 수없이 다른 무엇으로 변하는 것도 시간의 덧없음과 일맥상통한다. 사랑도 시간도 공간도 다 부질없는 것인가. 그 와중에 고스트 C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을 이어나간다. 그게 사랑이 아니고 무언가. 오직 사랑뿐이다. 


영화는 엄청난 여백을 자랑한다. 더불어 많은 궁금증을, 영화가 끝나도 풀어지지 않는 궁금증들을 남겨두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시공간의 덧없음을 이겨내는 무모하고 절절한 사랑'이라는 필자의 해석은 아주 협소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랑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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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고스트 스토리, 공간, 롱테이크, 사랑, 시간, 유령, 화면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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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로 풀어낸 소통, 시간, 사랑... 인류보편적 고전이 될 영화 <컨택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2.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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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컨택트>


그 명성은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대작 <컨택트>. 제목이 바뀐 건 조금 이해가 안 가지만, 감독이 '드니 빌뇌브'이니 아무렴 어떠랴. 믿고 보면 된다. ⓒUPI코리아



비극적으로 끝날 것만 같은 OST와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들의 부조화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듯한, 그런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의문의 물체, 친숙한 UFO라고 하기엔 뭔가 이질적인, 12개의 그것은 '쉘'이라 불린다.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고, 18시간마다 문이 열린다. 그때 비로소 그들과 접촉할 수 있다. 


언어학자 루이스 박사(에이미 아담스 분)는 정부에서 파견된 콜로넬 대령(포레스트 휘태커 분)과 함께 쉘에 근접해 있는 기지로 간다. 이론물리학자 이안 박사(제레미 레너 분)도 합류한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등을 언어학적으로,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게 이들의 임무다. 그렇지 않으면 전지구적인 전쟁이 시작될 것이었다. 


영화 <컨택트>는 보다시피 SF영화이다. 그렇지만 그건 수단, 목적은 굳이 말하자면 인문에 가깝다. <그래비티> <마션> <인터스텔라>로 이어진 일련의 '지적 SF' 계보를 따르면서, 한 발 더 나아가 인문적인 깨달음까지 선사한다. 거기엔 소통, 시간, 사랑의 키워드가 존재한다. 어디에서도 접하기 힘든 SF영화, 아니 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SF적 요소, 즉 비쥬얼에 신경을 쓰지 않았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도 앞엣것들이 보여준 신기원적인 비쥬얼에 버금가는 비쥬얼을 선보인다. 상대적으로 가려졌을 뿐이다. 그 중 압권은 단연 '쉘', 그리고 '소통'의 장면들. 지극히 압도하는 장엄한 비쥬얼을 목도할 준비가 되었는지?


'소통', 해낼 수 있겠는가?


외계인의 출현, 분명 SF 영역에 속하는 영화.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전혀 아니다. 영화는 다른 걸 말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소통'. ⓒUPI코리아



외계인인지 새로운 인류인지도 불분명한 상황,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나타난 것인지 알기 위해선 우선 대화가 통해야 한다. 루이스는 우선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다. '루이스', 이름부터 밝히는 게 순서. 그녀는 단순한 번역자가 아닌듯, 언어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말이 통해야 뭐라도 하지 않겠는가. 급기야 그녀는 자신을 내놓는다. 혹시 모를 바이러스에 대비해 꼼꼼하게도 차려 입은(?) 팀원들의 경고와 만류를 뒤로 하고 맨몸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언어란 말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마음, 행동, 눈빛, 분위기도 언어인 거다. 


이질적인 무엇이 눈 앞에 있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은 '적으로 상정하기', '눈살 찌푸리기', '두려움에 떨기', '눈 돌리기', '멀찌감치 떨어지기'. 즉, 너와는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기 싫다는 뜻이다. 당연히 상대방도 나를 똑같이 대할 것이다. 그 순간 벽이 생기고 그 벽은 깨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 실천해야만 하는 100가지 중에 한 가지만 실천해도 세상은 많이 바뀌겠지만, 그 한 가지도 실천하기 쉽지 않다. 루이스는 그 한 가지를 실천한 것뿐. 그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위대한 능력'이다. '소통', 해낼 수 있겠는가?


정해진 불행, '사랑'으로 나아간다


'소통'과 더불어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사랑'이다. 단순한 사랑이 아닌, 엄청난 불행을 그것도 정해진 불행을 뚫고 나가는 그런 사랑. ⓒUPI코리아



영화는 루이스와 딸아이의 장면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커갔을 때, 사춘기를 오롯이 보냈을 때,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와의 마지막. 이 장면들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미래인가. 


이질적인 존재와의 대화 도중 떠오르는 장면들, 다름 아닌 아이의 모습이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 그녀는 아이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남편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 걸 보여줄 겨를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으니 알 도리가 없다. 적어도 현재는 아닌 바, 왠지 미래의 모습인 것 같다. 


과거의 모습이 회상되는 거라면 별다른 특별할 게 없다. 반면, 미래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다름 아닌 아이가 죽음을 맞이할 게 아닌가.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삶을 택하게 될 게 아닌가. 이보다 더 가혹한 게 무얼까. 


그녀가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영웅이 될 순 있겠다. 전 지구를 구할 순 있겠다. 다만, 그 끝엔 정해진 미래가 있다. 예정된 불행으로의 미래가 말이다. 그래도 그녀는 그 길을 갈 것이다. 다름 아닌 '사랑'이 있으니까. 후회없이 사랑할 자신이 있으니까. 사랑을 한다면 여한이 없으니까. 도망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영역의 고전이 될 영화


결단코 이 영화는 최소 일정 영역의 고전이 될 것이다. 인류보편적 키워드들을 이와 같이 풀어낸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무엇보다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UPI코리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런 영화는 처음 봤다. 최근 SF 영화를 선도한 '지적 SF'도 하찮게 보일 정도다. 기존 SF의 수준을 몇 단계 높였다거나 SF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경지가 아니다. 아예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SF 영화가 아니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블레이드 러너>처럼 영역의 고전이 될 게 분명하다. 


고전이 되기 위해선 장르를 벗어던지고서도 통할 수 있는 줄기가 있어야 한다. 장르를 발판삼거나 또는 장르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기껏 해당 장르의 고전이 될 것이다. 반면, 장르를 수단으로 삼아 장르가 주는 재미를 한껏 취하면서도 진정 하고자 하는 얘기를 잘 풀어낸다면 만인의 고전이 될 수 있다. <컨택트>는 그런 여지가 있다. 


소통, 시간, 사랑 등은 지극히 인류보편적인 키워드들이다. 그만큼 풀어내기 쉽지만, 충족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 영화는 그 불가능을 장르의 힘을 빌어 해결한 것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선택했던 건 주로 드라마였는데, 점차 외연을 넓혀 스릴러, 미스터리, 그리고 SF까지 왔다. 


차기작은 그 유명한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 올해 개봉할 예정이다. 아마도 그의 절정 작품일 듯한대, 과연 어떤 작품을 선사할지 지극히 기대된다. <컨택트>로 확인한 수준 정도라도 가히 또 하나의 인생작일 것 같다. 우린 또 한 명의 거장 탄생을 목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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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울메이트의 사랑 방정식, '따로 또 같이' <원 데이>

오래된 리뷰 2016. 8.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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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원 데이>


시간과 사랑의 방정식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20년 넘는 7월 15일 하루를 보여주며 소개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사랑, 영화 <원 데이> ⓒ(주)팝 파트너스



대학 졸업식 날, 엠마와 덱스터는 우연히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아닌 친구가 된다. 1988년 7월 15일이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둘. 엠마는 소설가를 꿈꾸는 다부지고 당찬 여인이다. 다만, 사랑엔 조금 서툴다. 덱스터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방탕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모든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바람둥이다. 그래도 그들은 인연의 끈을 붙잡고 놓치 않는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지만. 


많은 로맨스 영화들이 사랑을 보여줄 때 요긴하게 쓰는 게 '시간'이다. 시간 덕분에 우정이 사랑이 되고, 시간 때문에 사랑이 식기도 하며, 시간이 사랑을 아프게 한다. 무수히 많은 러브스토리를 양산해낼 수 있게 한다. 영화 <원 데이>도 시간과 사랑의 방정식을 아주 훌륭하게 보여준 작품 중 하나다. 1988년부터 2011년까지 20년이 넘는 7월 15일 하루를 보여주며 그 둘만의 특별한 사랑을 소개한다. 


이들의 사랑 방정식, '따로 또 같이'


'따로 또 같이'만큼 이들의 사랑을 잘 표현한 말이 없다. 이들의 사랑 뿐일까? 사랑이란 본래 '따로'만 존재하지도 그렇다고 '같이'만 존재할 수도 없다. 변화무쌍할 것까진 없지만 기본적으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변하는 사랑인 거다.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사랑이 변하니?'에 대한 그들만의 답.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서로를 향한 알듯 모를듯한 사랑. ⓒ(주)팝 파트너스



엠마와 덱스터의 사랑은 어떨까. '사랑은 다시 돌아오는 거야!'에 가깝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서로를 궁금해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끔은 서로를 의지한다. 누가 봐도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들은 결코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순간이 몇 번 찾아오지만 번번이 놓치고 망치고 밀친다. 


삶은 계속되는 법. 그들은 서로를 마음에 또는 속 깊이 또는 전체에 두고 각자의 길을 간다. 엠마는 소설가의 꿈을 간직한 채 일을 계속한다. 현재에 두 발을 굳건히 디딘 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덱스터는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바람둥이끼는 여전하며 허영심은 극에 달해 있다. 


영화는 매년 7월 15일만을 보여준다. 둘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바뀌고 상황은 알아차릴 만큼 바뀐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서로를 향한 알듯 모를듯한 사랑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의 애뜻함과 애절함을 그린다. 시간과 사랑의 방정식을 적절하게 풀어낸 것 같다. 


마음처럼 쉽지 않은 소울메이트의 사랑법


영화의 본판은 '사랑과 우정 사이' 또는 '밀고 당기기(밀당)'이라고 할 수 있다. 흔하디 흔한 사랑의 모습 중 하나인 것이다. 거기에 풍덩 빠질 것인가 휙 돌아서 갈 것인가 하는 건 공감과 카타르시스의 여부에 있겠다. 엠마와 덱스터는 영혼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데 '소울메이트'라고 하면 알맞겠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보여준 평생동안 잊히지 않는 단 한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강렬하다면, 이 영화는 잔잔하다. 이들도 그렇게 우연히 하룻밤을 보낸 후 헤어지고는 다시 못볼 수도 있었다. 


소울메이트끼리의 사랑은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지 않을까. 그건 그거대로 또 사랑은 사랑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주)팝 파트너스



여기서 소울메이트의 사랑법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소울메이트는 소울메이트로 평생을 살아가는 게 좋을까, 같이 살며 끊임없이 서로를 확인하고 사랑하는 게 좋을까. 어디서도 소울메이트끼리 서로의 마음을 안 후 합일을 이룩하고는 잘 되었다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롯이 그(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그녀)는 또 다른 나이기에, 그(그녀)를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름이 아닐까?


소울메이트끼리의 합일은 비추천이다. '따로 또 같이'가 아니라 '같이'만으론 오래 이어가기가 힘들다는 거다. 인생이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딜레마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거다. 인생에서 소울메이트를 찾는 게 힘들지만, 찾고 나서 더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이? 따로? 따로 또 같이?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런 논리라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소울메이트가 아닌가.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둘 다 좋다. 아니라면 아닌데로 난 온전히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다. 맞다면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자신같이 사랑할 수 있을 거다. 다만, 명심해야겠지.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을. 


촉촉해지고 훈훈해지는 센스 있고 아름다운 영화


영화의 여러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었다. 장면 하나하나에 힘을 불어 넣은 듯, 오랫동안 서로를 사랑했음에도 항상 같이 있지 못한 그들을 잘 표현한 듯. ⓒ(주)팝 파트너스



음악, 배경, 의상, 배우, 대사, 분위기가 이렇게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 거기에 일 년에 단 하루만을 배치해 앞뒤 상황을 전달하고 마음을 보여주기란 정말 힘들었을 거다. 그걸 해냈기에 참으로 센스 있고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했다. 모든 면에서 과하지 않고 적절한 조화가 주는 센스와 아름다움이다. 


사실 로맨스 영화가 적절하기 쉼지 않다. 그래서 아름답기 쉽지 않다. 많은 로맨스 영화들이 눈물 바다를 선사하기 때문인데, 거기엔 과한 설정이 뒤따른다. <원 데이>도 보는 이에 따라 과하고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 하기 쉽다. 20년 이상 이어지는 '사랑과 우정 사이'라. 그렇지만, 그 20년을 '기다림'으로 채웠기에 과하다는 생각 전에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일년에 하루만 보여주는 설정도 한몫 했다. 


마음이 잔잔했다가 파도쳤다가 가라앉았다가 촉촉해진다. 촉촉하게 적셨으면 그건 좀 과한 건데, 이 영화는 적시지 않는다. 촉촉해지고 또 훈훈해진다. 결국엔 모든 걸 다 잊고 '나도 저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로 귀결될 것이다.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넘어선, 강점이입이자 바람일까. 


그들의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내려 본다면, '엠마는 덱스터를 사람이 되게 하였고, 덱스터는 엠마를 행복하게 했다.' 지금 나의 사랑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의 방식이 모두 다르듯, 사랑을 주고 받고 그 사랑을 어떻게 체화하는지도 모두 다를 것이다. 중요한 건 사랑을 하라는 것, 사랑을 찾아 떠나라는 것, 사랑을 지키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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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기다림, 따로또같이, 사랑, 소울메이트, 시간, 원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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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 <중경삼림>

오래된 리뷰 2016. 6.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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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중경삼림>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영화이다. . 영화 <중경삼림> 포스터. ⓒ엔드플러스



왕가위 감독을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르게 한 영화 중 하나인 <중경삼림>. 제목을 이야기하지 않고 영화를 이야기하기 힘들다. 중경삼림을 영어로 바꾸면 'Chungking Express'이다. 홍콩에 가면 Chungking Mansion(重慶大廈: 중경대하)이 있다고 하는데,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고급 아파트였던 것이 현대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는 소란스럽고 낡은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은 그곳을 중심으로 <중경삼림>을 찍었다.


또 하나, Express는 영화에서 주된 장소로 등장하는 패스트푸드점의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머무르지 않고 떠나곤 하는 곳이다. '급행의' '신속한' '속달'의 의미를 지닌 Express와 일맥상통한다. 영화에서는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찾아와 외로움과 고독을 놓고 가곤 한다. 그러며 그곳에서 또다른 사랑을 찾는다. 


<중경삼림>은 이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은유와 상징이 상당한, 그래서 난해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면, 그건 스포일러 등의 방해가 아닌 도움이 될 것이다. <중경삼림>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홍콩이 반환되기 3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 시기 만들어진 많은 홍콩영화가 그렇듯이 홍콩 사회의 불안과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 영화에 그런 점이 없다고 할 순 없다. 다분히 있다. 반환을 앞두고 불안과 혼란에 빠진 홍콩사회를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분명 너무도 뻔한 도식이다. 애초에 실화도 아니고 사회를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사복경찰 223(금성무 분)은 매일 Chungking Express에서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헤어진 옛 애인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들이며 자신의 생일이자 이별 한 달 째가 되는 5월 1일까지 연락이 안 오면 그녀를 잊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그녀한테서 연락은 오지 않고 223은 파인애플 통조림 30개를 모조리 먹어치우며 그녀를 잊는다. 비로소 이별이다.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곧 223과 옛 애인 간의 사랑의 유통기한이다. 그가 매일 사들인 유통기한 5월 1일자 파인애플 통조림을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다 먹어치운 이유는, 자신의 사랑이 쓰레기 취급 받기 싫어서 라는 순수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수함은 비웃음을 사는 게 아닌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는 무작정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이(임청하 분)와의 하룻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23의 순수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가 왜 사랑을 잃었는지 왠지 수긍이 가게 되는 장면이지만, 세상은 그런 이의 사랑이 있기에 청량하고 아름답다. 급기야 그는 그 스쳐지나간 사람의 생일 축하한다는 한 마디에 "난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고 독백한다. 


특별한 공간 '집', 그녀의 사랑 방식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공간에 다른 이가 들어온 걸 견디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집을 꾸며주고 사랑으로 다친 상처를 치유해주려는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정복경찰 663(양조위 분)은 223처럼 매일 Chungking Express에서 애인이 좋아하는 샐러드를 사간다. 하지만 애인은 곧 이별을 고하고 Chungking Express 점원 페이(왕페이 분)에게 편지와 열쇠를 건넨다. 663은 실의에 빠진다. 밖에서는 멀쩡해보이지만, 집에서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느낌이다. 물이 떨어지는 수건에 자신을 이입해 울지말라고 위로하고, 인형이나 비누를 붙잡고 하소연한다. 


한편 페이는 매일 663의 집에 몰래 가 663의 옛 애인의 흔적을 지워나간다. 그렇게 663이 자신도 모르게 이별을 해나가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며 자신도 그곳에서 힐링을 받는다. 663이 받아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것이 페이의 사랑 방식이다. 


언젠가는 663이 애인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달려 들어온다. 그런데 잡그지 않은 수돗물이 넘쳐 집이 물바다가 된 게 아닌가. 663은 집을 치우며 "이 집은 점점 감정을 가진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며 급기야 집에 자신을 이입한다. 그녀와의 특별한 공간인 집이 우는 건 아직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런 집에 페이가 몰래 침입한 사실을 알게 된 663은 어떤 마음일까. 가택침입죄를 물어 감방에 쳐 넣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특별한 공간에 다른 이가 들어온 걸 견디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집을 꾸며주고 사랑으로 다친 상처를 치유해주려는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혹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


<중경삼림>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때가 과거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현재화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주제로 한다. 그렇다면 223과 663의 이야기가 각각 시간과 공간에 관한 것일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볼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223과 663의 이야기 모두 시간과 공간을 말하고 있다. 두 이야기에 공통으로 나오는 Chungking Express라는 공간, 223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사랑의 유통기한', 663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특별한 공간, 집'과 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혹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 그것이다. 


이 영화를 이렇게 한 마디로 정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모순적으로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가위 감독의 비서사적이면서 상징과 은유로 꽉 찬, 그러며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영상미가 그러하다. '감성의 자유로운 표현이나 놀이의 요소를 도입한 사고 방식이나 표현 수법'이라는 뜻의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대가 양가위의 대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꿰뚫는 무엇을 말하라면 단연 'California Dreaming'을 들겠다. 극 중에서 페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황금빛 낙원 캘리포니아를 근심 있고 우울한 감정선으로 처리했다. 그건 곧 <중경삼림>과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순수함과 불안이 공존하고 시종일관 우울한 듯하지만, 결국 해피엔딩을 이룬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이들(남자 주인공)의 도시 홍콩은 이들에게 불안과 혼란을 주지만, 불안과 혼란에서만 잉태되는 설렘과 꿈을 청춘에게만 허용되는 방황을 준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중경삼림>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때가 과거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현재화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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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사랑, 시간, 양가위, 유통기한, 중경삼림, 청춘, 캘리포니아 드리밍, 파인애플 통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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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살인자, 그 섬뜩한 마지막은?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3. 8. 2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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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


25년 전쯤 살인을 그만두고 개점휴업에 들어간 일흔의 늙은 살인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병수로 프로페셔널 살인자였다. 살인 충동이나 변태 성욕 따위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쾌감을 위해 살인을 해왔다. 그리고 뒤처리도 아주 깔끔해서 열여섯에 처음 살인을 한 후 수십 명을 죽였지만, 경찰은 그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자꾸 넘어지고 실수하고 잊어먹는다. 딸 은희의 권유로 병원에 가 보았다. 검사를 하니 알츠하이머라고 한다. 치매란 말이다. 그렇게 점점 기억이 사라지고 혼란이 찾아온다. 그 혼란 속에서 동네에 여대생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제발 우리 은희에게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살인자의 기억법> ⓒ 문학동네

알고 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는...

소설가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늙은 살인자가 벌이는 사투를 그린다. 1인칭이기 때문에 사투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극 중에서 다른 인물들이 보기엔, 치매 걸린 노인이 정신 못 차리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겠다. 

이 소설이 아주 잘 읽히고 또 비록 싸늘하지만 웃음 짓게 하는 농담이 곳곳에 있어 재밌게 생각됨에도, 섬뜩하기 그지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1인칭이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기억을 잃고 혼란에 빠진 노인의 심정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한테만 찾아오는 끝없는 고독의 심연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다. 

한편, 김병수는 딸 은희 주변을 맴도는 한 사람 박태주를 알게 된다. 김병수의 눈엔 그가 여지없는 연쇄살인범으로 보인다. 그런데 얼마 후 은희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며 박태주를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그 살인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김병수는 그가 이유 없이 싫었다. 낯이 익은데 말이다. 

이제 김병수는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간다. 마당에 알짱거리는 똥개가 옆집 개인지 우리 집개인지 조차 분간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정신이 돌아와 여기가 어디인지, 왜 여기 있는지 조차 모를 때가 많다. 알츠하이머를 진단받고 어떤 일을 하든지 기록을 하는 습관을 들여놨는데도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살인자로 살다보니 안 그래도 작아진 나의 세계가, 점점 더 작아지는 걸 느낀다. 

반면, 방금 기억과 최근 기억은 홀라당 까먹어도 옛날 기억들은 더욱 생생해진다. 특히 젊은 시절을 수놓았던 살인의 추억. 미래는 아예 사라지고, 현재는 뒤죽박죽, 과거는 눈앞에서 벌어진 듯 생생하다. 살인을 해서 다행인건가? 이렇게 생생하고 강렬한 과거의 기억을 눈앞으로 불러와주니? 살인자가 기억하는 건 살인밖에 없는가 보다. 그게 살인자의 기억법인가.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살인자?

이 소설은 장편 소설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조금 어색할 정도로, 굉장히 짧은 분량을 자랑한다. 뒷부분의 해설을 제외하고 나면 140쪽 안팎에 불과하다. 또한 기록들 사이의 공간을 제외하면 많아야 120쪽 안팎일 것이다. 분량만 치자면, 잘 쳐줘야 경장편이고 중편 내지 단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이 살인자의 뒤죽박죽 띄엄띄엄 기억의 파편들과 그가 읽은 책의 잠언들이 아주 짜임새 있게 서사적으로 들어맞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분량으로는 절대 장편 소설이 될 수 없음에도, 그 서사적 짜임새로 인해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자주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가 살인자이니까 당연히 살인이 제일 많이 나올 테고, 알츠하이머 환자이니까 기억도 많이 나올 테다. 의외로 농담이란 단어가 눈에 많이 띈다.(김병수가 직접 말하고 생각하는 농담 즉,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농담과 김병수가 어느 때에 맞이하는 농담 같은 상황) 초반에는 살인에 관련한 농담이 주를 이루고, 후반으로 갈수록 기억에 관련한 농담이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이 잘 읽히는 이유는 비단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농담 중에 김병수가 직접 말하고 생각하는 농담, 즉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농담은 사실 유머에 가깝다. 극 중에서 그는 분명 유머 감각이 출중하다. 그리고 이를 인지하는 것 자체가 작가가 의도한 게 아닌가 싶다. 살인자에게 유머 감각이 있다니? 알츠하이머로 죽어가는 노인에게 유머 감각이 있다니? 

섬뜩함과 유머의 앙상블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섬뜩하다. 겉으로 보면 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살인자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해하려 하는 다른 살인자를 죽이려 한다는, 살인의 관점을 적용한 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그것만 본다면 이 소설은 단언컨대 그냥 재미있고 잘 읽히는 소설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억의 섬뜩함이 존재한다. 시간이 감에 따라 기억이 없어지고 세계가 없어지고 결국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해설에서는 무너져 내린다고 표현했는데, 내가 보기엔 소멸해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김병수는 그 사실을 인지한 후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극 중에서도 김병수가 말하지 않는가.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본문 속에서)

소설은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 거기에는 분명 김병수의 성격이 작용하고 있다. 사실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는 이 늙은 노인의 독백. 그 시크하고 냉랭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가끔은 포커페이스가 웃길 때가 있듯이. 

나이가 먹어갈수록 무뎌지는 그의 악(惡)이, 과거의 전유물이 되고 지금은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섬뜩함을 잃어버린 그의 시크한 말투와 생각들은 반대급수의 재미를 양산한다. 이빨 빠진 호랑이를 보고 조소를 보내는 것과도 조금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 김병수 개인이 갖고 있었던 섬뜩함을,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표출했던 섬뜩함을 이제는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그만이 철저히 느끼게끔. 1인칭임에도 독자는 그가 느끼는 철저한 고독감과 두려움, 허탈감을 느낄 수 없다. 다만 섬뜩함을 느낄 뿐이다. 처음 읽을 때는 유머를, 두 번째 읽을 때는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어떤 느낌이 찾아갈 지 직접 읽어보시길...


살인자의 기억법 - 10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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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김영하, 농담, 늙은 살인자, 살인자의 기억법, 시간, 알츠하이머, 유머, 책으로 책하다

  • 2013.08.30 17:4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3.08.30 17:43 신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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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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